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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사역의 내막>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1. 인류는 사탄에게 너무나 깊이 패괴되어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게 되었고, 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게 되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던 그때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영광과 증거가 따랐었는데, 사람이 패괴되면서 그 영광이 사라졌고 그 증거도 사라졌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은 모든 증거를 빼앗아 오고 모든 영광을 빼앗아 오려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여 피조물 가운데에 증거가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이 단계에 하려는 사역이다. 인류를 도대체 어떻게 정복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 단계의 말씀 사역으로 사람을 심복구복하게 하는 것이다. 폭로, 심판, 형벌과 무정한 저주로 사람을 철저히 탄복하게 하고, 사람의 패역을 드러내고 사람의 대적을 심판하여 인류의 불의를 인식하게 하고 인류의 더러움을 인식하게 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두드러지게 한다. 주로 이런 말씀으로 사람을 정복하여 심복구복하게 한다. 말씀은 최종에 인류를 정복하는 경로이다. 정복을 받아들이는 자는 다 말씀의 격타와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말씀하고 있는 과정이 바로 정복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협력해야 하겠느냐? 이런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알고 이런 말씀을 깨닫도록 협력해야 한다. 어떻게 정복되는지는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는데, 이런 말씀을 먹고 마시는 기초에서 자신의 패괴와 더러움을 인식하고 자신의 패역과 불의를 인식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될 뿐이다. 너는 하나님의 뜻을 더듬은 다음 실행해야 하고, 또한 이상(異象)도 있어야 한다. 네가 이런 말씀에 완전히 순복하고 어떠한 선택도 없다면 그것이 정복된 것인데, 말씀으로 말미암아 정복된 것이다. 인류는 왜 증거를 잃게 되었겠느냐?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한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인류로 하여금 ‘믿음’을 회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늘 세상을 좇는다. 소망이나 앞날, 사치스러운 요구가 너무나 많고, 늘 육체를 생각하고 육체를 위해 타산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도를 찾고 구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지만, 사람은 마음을 다 사탄에게 빼앗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일심으로 사탄을 위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증거를 잃게 되었는데, 곧 하나님의 영광을 잃게 된 것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영광을 빼앗아 오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2. 오늘날의 정복 사역은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사역이다. 왜 오늘날의 형벌과 심판이 바로 끝날의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이라고 하느냐? 너는 아직도 이것을 꿰뚫어 보지 못한단 말이냐? 왜 마지막 단계 사역이 정복의 사역이겠느냐? 바로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형벌과 심판의 정복 사역에서 원래 모습이 드러나게 한 다음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인류를 정복한다고 하기보다는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낸다고 하는 편이 낫다. 사람의 죄를 심판한 다음에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어 그것으로 악한 자인지 의로운 자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정복 사역 다음은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사역인데, 완전히 순복한 사람, 즉 철저히 정복된 사람은 전 우주에 확장하는 다음 단계 사역 가운데 두고,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흑암 속에 두어 재앙이 닥치게 한다. 그러면 사람은 각기 부류대로 되는데, 악인은 악에 속하여 다시는 해의 비춤이 없고, 의인은 선에 속하여 광명을 얻고 영원한 빛 속에서 살게 된다. 만물의 결말이 가까이 왔고, 사람의 결말도 다 눈앞에 드러났다. 만물도 다 각기 종류대로 될 것인데, 사람이라고 어찌 각기 부류대로 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는 것은 만물의 결말이 가까이 왔을 때 드러내는 것이고, 또한 전 우주의 정복 사역(즉, 지금의 사역부터 시작되는 모든 정복 사역)을 하는 가운데서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인류의 결말은 심판대 앞에서, 형벌 가운데서, 말세의 정복 사역 가운데서 드러내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3. 사람의 결말은 창세부터 정해 놓은 것이 아니다. 처음에 사람은 한 부류만 있었기에 통틀어 ‘인류’라고 하였다. 사람이 처음에는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고 있었고 흑암이 임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에 온 땅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즉 남녀를 통틀어 ‘인류’라고 하는 이 대가족에서 갈라져 나온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두루 퍼지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조상에게 이끌려 그들의 가장 오래된 선조인 남자와 여자, 이 인류(최초의 아담과 하와, 그들의 가장 오래된 선조)를 떠나게 되었다. 그때 여호와에게 이끌려 땅에서 생활한 사람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뿐이었다. 이스라엘 온 땅(최초의 대가족)에서 갈라져 나온 각 부류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인솔을 잃게 되었다. 처음 난 이런 인류는 인간 세상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조상을 따라 그들이 차지한 땅에서 지금까지 생활하였다. 더 나아가 그들은 여호와를 떠나 오늘날까지 각종 더러운 귀신과 악령에게 패괴되었어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른다. 지금까지 아주 깊이 패괴되고 중독된 사람들, 즉 마지막에 이르러도 구해 낼 수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 ― 그들을 패괴시킨 더러운 귀신 ― 에게 귀속시킬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이르러 구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인류의 적합한 처소에 귀속될 것이다. 즉, 구원받고 정복된 사람의 결말이다. 구원할 만한 사람들은 다 힘써 구원할 것이다. 그러나 마비되어 구제 불능인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을 따라 사람을 형벌하는 무저갱에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너는 너의 결말을 태초에 다 정해 놓고 오늘에야 드러낸다고 여기지 말라. 그렇다면 너는 태초에 인류를 만들 때 아담과 하와 그 둘(남자와 여자), 이런 인류만 만들고 사탄과 같은 인류는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잊었느냐? 네가 처음부터 사탄의 후손이었다면, 여호와가 사람을 만들 때 사탄 부류의 사람도 그 가운데 만들었다는 말이냐? 그가 그렇게 할 리 있겠느냐? 그가 사람을 만든 것은 그의 증거를 위한 것이고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가 일부러 사탄 자손 부류를 만들어 고의적으로 자신을 대적하게 할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그렇게 하겠느냐? 그렇다면 누가 그를 공의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지금 너희 중 어떤 사람들이 마지막에 사탄에게 속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사탄에게 속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깊이 타락되었기 때문이다. 설령 너를 구원한다고 해도 네가 이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너를 사탄 부류에 속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네가 구제 불능이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너를 공의롭게 대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또한 너를 일부러 사탄의 화신으로 명정한 다음 다시 사탄에게 돌려주어 일부러 고통받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복 사역의 내막이 아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의 인식법은 너무 단편적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4. 마지막 때의 정복은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심판으로 사람이 타락한 것을 폭로하여 사람으로 회개하게 하고 분발하게 하며 생명을 추구하게 하고 인생의 올바른 길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비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고, 심판으로 사람 속에 있는 패역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인생의 바른길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런 패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구제 불능으로, 사탄에게 삼켜질 것들이다. 이것이 정복의 의의인데,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좋은 결말이든 나쁜 결말이든 다 정복 사역으로 인해 드러나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받거나 저주를 받는 것은 다 정복하는 사역에서 드러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5. 말세에는 정복하는 것을 통해 만물을 다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한다. 정복하는 것은 말세의 사역이다. 즉, 각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것은 말세의 사역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어찌 각기 부류대로 될 수 있겠느냐? 너희들 가운데서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사역은 전 우주에서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사역의 시작이 된다. 그 후에는 각 지역, 각 족속의 사람들도 모두 이 정복 사역을 받아들일 것이다. 다시 말해, 피조된 사람이라면 다 각기 부류대로 될 것이고, 다 심판대 앞에 귀복하여 심판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 형벌과 심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인일물(一人一物)은 없고, 각기 부류대로 되지 않을 일인일물도 없는데, 사람은 모두 부류에 따라 나누어진다. 그것은 만물의 결말이 가까이 왔고, 온 천지도 끝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찌 사람의 생존이 끝나는 날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6. 지금은 중국 사람들에게 하는 역사를 통해 이 사람들의 패역 성정을 다 드러내고, 이 사람들의 추한 몰골을 다 들추어낸다. 또한 이런 배경을 통해 모든 말씀을 마친 후에 전 우주를 정복하는 다음 단계의 사역을 하고, 너희를 심판함으로 전 우주 사람들의 불의를 심판한다. 그 까닭은 너희가 인류 중 패역한 자들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따라오지 못한 사람이라면 부각물이 될 것이고 효력품이 될 것이며, 따라온 사람은 쓰임받는 대상이 될 것이다. 왜 따라오지 못한 자를 부각물이라고 하겠느냐? 그것은 지금 사역하고 말하는 것이 다 너희의 배경에 비추어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전 인류 중 패역자의 대표이자 전형이 된 것이다. 이후에 너희를 정복한 이런 말씀을 외국에 가져가 외국 사람들을 정복할 것인데, 네가 오히려 얻지 못한다면 부각물에 속하지 않겠느냐? 전 인류의 패괴 성정, 사람의 패역 행위, 사람의 이런 추한 형상과 추한 모습은 오늘날 너희를 정복한 말씀에 다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말씀으로 다시 각 나라, 각 교파의 사람들을 정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본보기이고 선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러 너희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네가 잘 추구하지 않아 구제 불능이 된다면 순전히 효력품과 부각물에 속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7. 오늘날 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복되었고, 또한 정복으로 인해 여호와의 모든 행사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또한 너는 이런 형벌과 심판으로 인해 정복되고 온전케 된다. 오늘날의 이런 형벌과 심판이 없으면, 너의 믿음은 모두 헛된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믿어도 텅 빈 글귀만 있고 실제가 없기 때문이다. 네가 이런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순복하게 되면, 그때에야 너의 믿음이 진실하고 확고하게 될 것이고,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될 것이다. 설사 네가 ‘믿음’이란 글자로 인해 심판이나 저주를 적지 않게 받게 되었을지라도 너에게는 참된 믿음이 있게 되었고, 너는 가장 진실하고, 가장 실제적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너는 심판 중에서 비로소 피조물의 처소를 보게 되었고, 이런 심판 중에서 창조주의 사랑스러움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같은 정복 사역 중에서 하나님의 팔을 보게 되었고 이런 정복 중에서 인생을 꿰뚫어 보게 되었으며, 이런 정복 중에서 인생의 바른길을 얻게 되었고 ‘사람’이란 참뜻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이런 정복 중에서 비로소 전능자의 공의로운 성품과 아름다운 영광의 얼굴을 보게 되었으며, 이런 정복 사역 중에서 사람의 근원을 알게 되고 전 인류의 ‘불후의 역사(歷史)’도 알게 되었으며, 이런 정복 중에서 인류의 선조와 인류가 패괴된 기원을 알게 되었고, 이런 정복 중에서 희락을 얻었고 위로를 받았고 또한 끝없는 채찍과 징계 그리고 피조된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질책의 말씀도 얻었으며, 이런 정복 사역 중에서 축복을 받게 되었고 사람이 당할 화도 입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다 너의 그 조그마한 믿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냐? 이런 것들을 얻음으로 너의 믿음도 더해지지 않았느냐? 네가 얻은 것은 매우 많지 않으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8. 너는 아마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벌이나 심판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는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벌과 전능자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창조주를 만날 기회도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또한 너는 인류의 근원을 영원히 모를 것이고, 인생의 의의도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이다. 설령 너의 육체가 멸망되고 영혼이 초탈된다고 할지라도 너는 창조주의 모든 행사를 알지 못할 것이고, 더욱이 창조주가 인류를 만든 후에 땅에서 이같은 큰 사역을 했다는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너는 피조된 인류로서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기꺼이 흑암 속에 떨어져 영원히 징벌받기를 원하느냐? 네가 오늘날의 형벌과 심판을 떠난다면, 너에게 닥치게 될 것은 무엇이겠느냐? 설마 네가 오늘날의 심판을 떠난다면 그 고난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냐? ‘이 땅’을 떠난다면 너에게 닥치는 것은 고통스러운 시달림이나 마귀의 참해(원문: 殘害)가 아니겠느냐? 견디기 어려운 고달픈 나날들이 아니겠느냐? 너는 오늘날의 이 심판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나중의 그 고통을 영원히 피할 수 있다고 여기느냐? 장차 네게 임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래 네가 바라는 무릉도원이겠느냐? 너는 네가 이렇게 현실을 회피하면 나중의 그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느냐? 너는 이후에 이런 기회와 이런 축복을 두 번 다시 찾을 수 있겠느냐? 재앙이 임할 때에 찾을 수 있겠느냐? 모든 인류가 안식에 들어갈 때에 찾을 수 있겠느냐? 오늘날의 아름답고 행복한 생활과 너의 그 단란한 가정이 네 훗날의 영원한 처소를 대체할 수 있겠느냐? 네게 만약 참된 믿음이 있고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것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모두 피조물인 네가 마땅히 얻어야 할 몫이고, 또한 너에게 본래부터 있어야 할 것들이다. 이런 정복은 너의 믿음에 가장 유익하고, 너의 생명에도 가장 유익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9. 지금 너는 어떻게 정복되는지, 정복된 후에 사람에게 어떤 표현이 있게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너는 네가 정복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느냐? 너는 앞날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를 수 있어야 하고,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복한 욥의 간증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베드로의 간증, 이 두 방면의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방면은 욥과 같아야 하는데, 물질적인 것들이 없어지고 육체에 질병이 임했지만, 욥은 여호와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간증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는데, 죽음에 이르렀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 달려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였으며,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한 생각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추구하였다. 너는 이 기준에 도달해야 간증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지금 참으로 자신의 실질을 알고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다면, 또 어떤 앞날이나 소망을 추구하겠느냐?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케 하시든 하시지 않든 나는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것은 다 좋은 것이고, 다 나를 위한 것이다. 또한 우리의 성정을 변화시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우리가 더러운 곳에서 태어났어도 더러움에서 벗어나고 더러움을 떨쳐 버리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네가 인식해야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10. 사실, 정복하는 동시에 온전케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너를 정복하는 동시에 온전케 하는 기초적인 효과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정복된 것과 온전케 된 것을 서로 다르다고 한 것은 사람의 변화된 정도에 따라 말한 것이다. 정복된 것은 사람이 온전케 되는 데의 첫걸음이다. 정복된 것은 사람이 완전하게 온전케 된 것을 대체할 수 없고, 사람이 완전히 얻어진 것이라고 증명하지 못한다. 정복된 사람에게도 성정의 변화가 어느 정도 있지만, 완전히 얻어진 사람의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 하는 것은 온전케 되는 데의 기초적인 사역, 곧 정복 사역이다. 네가 정복되지 못한다면, 너는 온전케 되거나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 없다. 그저 형벌과 심판의 말씀만 조금 얻을 수 있을 뿐, 너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도태될 사람인데, 그저 상 위에 차려진 산해진미를 보기만 하고 먹어 보지 못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너무나 가련한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너는 변화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정복되든, 온전케 되든 그것은 다 너에게 변화가 있는지에 달렸고, 너에게 순복이 있는지에 달렸다. 그것으로 네가 도대체 얻어질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정복되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은 그저 변화된 정도와 순복하는 정도에 따라 말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결 정도에 비추어 말한 것이다. 오늘날은 네가 철저히 온전케 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너는 먼저 정복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형벌과 심판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있고 따를 믿음이 있어야 하며, 또한 변화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효과가 있기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온전케 하는 과정에서 정복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온전케 하는데, 이런 것은 다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다. 현재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든 외적인 인성 변화나 소질 높이기를 추구하든 다 괜찮은데, 가장 주요한 것은 오늘날 하나님이 한 모든 것이 다 의의 있고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네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어도 더러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더러움을 떨쳐 버리게 하며,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며, 이런 것을 중요시하도록 하여 더러운 땅에서 보호받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에 너에게 어떤 간증을 하게 하느냐? 말하자면, 네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어도 성결하게 되고 더 이상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태어났어도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에게 점유되지 않고, 사탄에게 시달리지 않고, 전능자의 손안에서 사는 것이다. 이것이 간증이고 사탄과 싸워서 이긴 증거(證據)이다. 네가 사탄을 배반할 수 있으면 살아내는 것은 사탄을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도달하라고 한 요구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정상 인성, 사람의 정상적인 이지(理智)와 식견,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정상적인 심지(心志),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인데, 이것이 곧 피조물이 해야 할 간증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11. 말세에 하는 사역은 모든 규례를 타파한다. 네가 저주받은 자든 아니면 징벌받은 자든, 내 사역에 유리하고 오늘의 정복 사역에 유익하기만 하면, 네가 모압의 후손이든 큰 붉은 용의 자손이든 상관없다. 오직 네가 이 단계 사역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하고 사역을 철저히 잘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효과에 도달한 것이다. 네가 큰 붉은 용의 자손이든 모압의 후손이든, 결론적으로 혈기에 속한 사람은 다 피조물이고, 창조주가 만든 것이다. 네가 피조물이라면 그 어떤 선택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너의 본분이다. 물론, 창조주는 오늘날 전 우주를 향해 역사한다. 네가 누구에게서 났든지, 결론적으로 너는 피조물 중의 하나이다. 너희 이 모압의 후손은 피조물 중의 일부분인데, 그저 신분이 비천할 따름이다. 오늘날의 역사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하고, 전 우주를 향해 하는 만큼 창조주는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임의로 택하여 그의 사역을 할 수 있다. 그는 네 과거의 출생에 관계없이 네가 피조물이기만 하면, 네가 그의 역사, 곧 정복과 증거에 유익하기만 하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의 사역을 너에게 구체화시킨다. 이것은 사람의 전통 관념, 즉 하나님은 영원히 이방인 가운데서, 특히 저주받은 비천한 사람들에게서 역사할 리가 없고, 조상이 저주받았으면 후손도 영원히 저주받고 영원히 구원받을 기회가 없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이방의 땅에 강림하거나 역사할 리가 없으며, 하나님은 거룩하기 때문에 더러운 곳에 설 리가 없다는 이런 관념들을 깨뜨린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고, 천지 만물의 주재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하는 이 단계 사역은 매우 깊은 의의가 있는 사역이다. 이것은 만방에 널리 전할 일이 아니냐? 이후에는 큰 증거가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너희들만 정복한다면 그 마귀들이 인정하겠느냐? 마귀는 정복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큰 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전 우주의 하나님 선민들에게 모두 이 단계 사역의 최종 효과를 보게 해야만 모든 피조물이 정복되는 것이다. 모압의 후손은 가장 뒤떨어지고 가장 깊이 패괴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마저도 모두 정복된다면, 다시 말해 가장 깊이 패괴된 사람, 지난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모두 정복되어 입으로 하나님을 시인하고 또 하나님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까지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복된 간증이다. 너희가 비록 베드로는 아닐지라도 베드로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고 베드로의 간증과 욥의 간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큰 간증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2)>에서 발췌

12. 정복 사역으로 이루려는 효과는 주로 사람의 육체가 패역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사상 면에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있게 되고, 마음속으로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게 되고, 하나님을 위하는 심지(心志)가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나 육체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정복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사상, 사람의 의식, 사람의 이지, 다시 말해 사람의 모든 정신 면모가 다 변화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께 정복된 것이다. 순복하려는 심지가 있고, 사상도 새롭게 바뀌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아무런 관념과 속셈도 없으며, 머리로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면, 이런 사람은 완전히 정복된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발췌

13. 교계의 많은 사람들은 평생 적지 않은 고난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거나 십자가를 졌으며, 심지어 죽기 전까지도 고난을 받고 인내하였다! 어떤 자는 죽는 날 아침까지도 금식하였고, 평생 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좋은 옷을 입지 않았으며, 고난받는 것만 중요시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게 할 수 있었고, 육체를 배반할 수 있었다. 그들이 고생하는 정신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들의 사상과 관념, 그들의 정신 면모, 더 나아가 그들의 옛 성정이 전혀 다루어지지 않아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은 없었다.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전통적인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으려는 심지는 그들의 열심과 그들의 인성 안에 있는 착한 성격으로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뜻도 몰랐으며, 그저 하나님을 위해 사역만 하고 하나님을 위해 고난만 받았을 뿐, 분별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았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도 중요시하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을지는 더욱 몰랐다. 그들이 섬긴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을 지닌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낸, 다른 사람에게 들었거나 글에서 찾아낸 전설 속의 하나님이다. 그들은 자신의 그 풍부한 상상과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았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담당하였다. 그들이 섬긴 정확도는 너무 낮아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기꺼이 고난을 받았든지, 그들에게 원래 있었던 그 섬김의 관점과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는 도무지 변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연단과 온전케 함을 거치지 않았고 또 아무도 진리로 그들을 이끌지 않았기 때문이며, 설사 그들이 믿는 분이 구주 예수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지금까지 구주를 본 적이 없었고 전설과 풍문만 들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섬김은 두 눈을 감고 자기 나름대로 섬긴 것에 불과하다. 마치 소경이 자기 아버지를 모시는 것과 같다. 그런 섬김이 마지막에 또 무슨 성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 누가 또 인정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섬김은 시종일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가 인위적인 교훈을 받아들였고, 자신의 천연적인 것과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섬겼는데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예수를 본 베드로조차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 모르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즉 나이가 들었을 때에야 인식하게 되었는데, 하물며 어떤 훈계도, 어떤 책망도 받지 않았고 인도자도 없었던 그 소경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오늘 너희의 많은 섬김에도 소경의 섬김과 같은 것이 허다하지 않으냐?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냐? 이런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너의 사상, 인생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변화가 없고 또한 진실한 수확도 전혀 없다면, 너의 섬김에는 영원히 아무 성과도 없게 된다! 너에게 이상(異象)이 없고 하나님 사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없으면, 너는 정복된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네가 따르는 것은 고난받고 금식하는 그 사람들처럼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들이 한 것은 아무런 간증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섬김을 헛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한평생 고난받기도 하였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며, 항상 인내하고 사랑을 베풀고 십자가를 지고, 세상 사람에게 훼방과 버림을 받으면서 어떤 고난이든 다 받았다. 그들은 비록 마지막까지 순복하기는 하였지만 정복되지 않았기에 정복된 간증이 없다. 고난은 적지 않게 받았지만 내면에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인식도 없다. 그들에게 있는 그런 옛 사상, 옛 관념, 종교적인 행실, 인위적인 인식, 사람의 생각은 모두 훈계를 받지 않았으므로 내면에는 새로운 인식이 전혀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하고 정확한 인식이 전혀 없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였다. 이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전에 네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었으면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여전히 자신의 관념과 생각대로 하나님을 인식한다면,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새롭고 참된 인식이 없고,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과 고유한 성품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봉건 미신 사상에 주도되고 있으며, 여전히 사람의 상상과 관념이라면, 너는 정복되지 못한 것이다. 지금 내가 너에게 한 많은 말은 다 인식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런 인식으로 너를 인도하여 너에게 정확하고 더 새로운 인식이 있게 하는 것인데, 네 안에 있는 그런 옛 관념과 옛 인식법을 대처하여 너에게 새로운 인식이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진실로 먹고 마신다면, 너의 인식법은 많이 바뀔 것이다. 네가 순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신다면 너의 관점은 돌려질 것이다. 네가 이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형벌을 받아들인다면 너의 옛 사상도 점차 바뀔 것이다. 너의 옛 사상이 철저히 바뀌면 그에 따라 너의 실행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너의 섬김도 갈수록 정확해지고, 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다. 네가 너의 삶을 바꾸고 인생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하나님에 대한 많은 관념을 바꿀 수 있다면, 너의 천연적인 것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람을 정복하여 있게 된 효과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변화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고 인내하며 고난받는 것만 알 뿐, 옳고 그름도 모르고 더욱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면, 그렇게 실행하여 어떻게 변화가 있을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발췌

14. 너희는 마땅히 너희에 대한 요구가 자신의 육체를 속박하거나 함부로 생각하지 않도록 머리를 통제하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내가 역사하는 목적이 아니고, 지금 하려고 하는 사역도 아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하고, 너희의 본성과 실질, 너희의 그 옛 생활에 대해서도 다 알아야 한다. 특히 너희의 지난날의 그릇된 실행과 인위적인 행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너희가 변화되려면 먼저 사상 면에서 변화되어야 한다. 먼저 너희의 사상을 새롭게 바꾸어 새로운 사상으로 너희의 언행과 삶을 지배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너희 각 사람에 대한 요구이다. 너희는 맹목적으로 실행해서는 안 되고, 맹목적으로 따라서도 안 되며, 마땅히 기초가 있고 목표가 있어야 하며,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마땅히 너희가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지, 하나님을 믿어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지금은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너는 이런 것을 반드시 다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발췌

15.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너의 인식법이 바뀌고,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의 진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있고, 내면의 인식법이 향상되면, 네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 사람이 행하고 말하는 것은 모두 실제적인 것이다. 그것은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에 필요한 것이고,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정복 사역에서 사람에게 있게 되는 변화인데, 그것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변화이고, 또한 사람이 정복되어 있게 되는 효과이다. 너의 사상이 바뀌고, 정신 면모가 새롭게 바뀌고, 너의 관념과 속셈 그리고 이전의 논리적인 추리까지도 뒤집히고, 네 안에 깊이 뿌리박힌 것들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새로운 인식이 있게 되면, 그 후에 네가 말하는 간증은 높아질 것이고, 너의 전인(全人)에도 진실한 변화가 있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며 가장 근본적인 것들인데,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이고, 사람이 접할 수 없었던 것이며, 또한 영의 진실한 역사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발췌

16. 모든 정복 사역이 끝날 때, 너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알아야 한다. 그는 전 인류를 만들었지 이스라엘 사람만 만든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라고 하거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외의 어떤 족속 가운데서도 성육신될 수 없다고 한다면, 너는 정복 사역에서 여전히 아무런 인식도 없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중국으로 옮겨 와 부득이하게 너의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만 인정할 뿐이지, 너의 하나님이라고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만일 네가 아직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내가 한 사역이 너에게서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고, 내가 한 말을 네가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에 너도 마태처럼 나에게 족보를 하나 써 주고, 적합한 ‘조상’을 하나 찾아 주고, 진정한 뿌리를 하나 찾아 준다면, 두 차례 성육신한 하나님에게 족보가 두 개 있게 될 텐데, 그때는 매우 큰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느냐? 내게 족보를 찾아 주는 너 같은 ‘마음 좋은 사람’은 하나님을 분열시키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너는 그 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정복 사역을 이처럼 많이 하였는데, 네가 아직도 하나님을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단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으로 여긴다면, 너는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대적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오늘날 너를 정복하는 것은 너에게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기도 하며, 더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고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시인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자 애굽 사람의 하나님이고, 영국 사람의 하나님이자 미국 사람의 하나님이다. 그는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의 하나님이며, 하늘에 있는 만물의 하나님이자 땅에 있는 만물의 하나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발췌

17. 이스라엘 족속이든, 이방의 모든 족속이든 다 한 분의 하나님 손에 장악되어 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몇천 년 동안 역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유대 땅에 태어난 적이 있고, 오늘날은 또 큰 붉은 용이 도사리고 있는 중국 땅에 강림하였다. 그가 유대에 강생하였을 때는 유대인의 왕이었다. 오늘날에는 너희들 가운데 강림하였으니 너희의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인솔하였든, 유대 땅에 태어났든, 또 이방 땅에 태어났든, 그가 한 사역은 모두 그가 지은 전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가 이스라엘 사람은 백배로 기뻐하고 이방인은 천배로 혐오하겠느냐? 이런 것은 다 너희의 관념이 아니냐? 너희가 전혀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의 하나님이 아닌 것은 아니고, 너희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지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 되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피조물 중에 어느 누가 전능자의 손에 장악되어 있지 않느냐? 오늘날 너희를 정복하는 것도 너희에게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임을 시인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아직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또 이스라엘의 다윗 집만 하나님이 처음으로 태어난 곳이므로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어느 족속도 하나님을 ‘탄생시킬’ 자격이 있을 수 없고 더욱이 어떤 이방 족속도 여호와의 역사를 직접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면, 아직도 그렇게 여긴다면 완고파가 된 것이 아니냐? 너는 눈길을 계속 이스라엘에 두지 말라. 오늘날은 하나님이 바로 너희들 가운데 있으니 너는 눈길을 계속 하늘에 두지도 말고, 더 이상 하늘에 있는 너의 그 하나님을 그리워하지도 말라! 하나님이 너희들 가운데 왔는데, 그가 하늘에 있을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관념은 적지 않다. 심지어 너는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 너희들 가운데 ‘왕림’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또한 너희는 이처럼 더럽기 짝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친히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더욱 생각지도 못했다. 너희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이 어찌 이방 중에 친히 강림하실 수 있을까? 그분은 시내산이나 감람산에 강림하여 이스라엘 사람에게 나타나셔야 맞는 거잖아. 이방인(이스라엘 외의 사람)은 모두 그분이 혐오하시는 대상이 아닌가? 그분이 어떻게 친히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실 수 있을까?’ 이런 것은 모두 너희에게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깊이 뿌리박힌 관념이다. 오늘날 너희를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너희의 이런 관념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친히 너희들 가운데 나타난 것을 보게 되었고, 시내산도, 감람산도 아니라 전에 인솔한 적이 없었던 사람들 가운데 나타난 것을 보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발췌

18. 이스라엘에서 두 단계 사역을 한 후에 이스라엘 사람과 모든 이방인은 다 이런 관념을 갖게 되었다. 즉,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는 단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 되기 원하고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기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일 뿐 너희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여호와, 곧 우리의 하나님은 너희를 증오하신다.’라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더더욱 ‘주 예수님은 우리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인의 특징을 지니고 계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들 가운데서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우리의 형상은 비슷한데, 우리의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에 가깝다. 주 예수님은 우리 유대인의 왕이시니 이방인은 이렇게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 주 예수님은 우리 유대인의 속죄제이시다.’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 두 단계 사역으로 이스라엘 사람과 유대 족속에게는 이처럼 많은 관념이 생겼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소유로 독점하고는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방인의 마음속에서 공백이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모두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기를 싫어하고, 이스라엘 사람, 즉 그의 선민만 좋아하고 또 유대인들, 특히 그를 따랐던 제자들을 좋아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와 여호와가 한 사역은 모두 전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임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지금, 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밖에서 태어난 너희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임을 시인하느냐? 오늘날 하나님은 바로 너희들 가운데 있지 않으냐? 설마 이것이 꿈이란 말이냐? 너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느냐? 너희는 믿을 엄두도, 생각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지만, 너희가 어떻게 보든 하나님은 바로 너희들 가운데 있지 않으냐? 너희는 아직도 이 말을 믿지 못하느냐? 이제부터, 정복된 사람,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냐? 오늘날 따르고 있는 너희들이 바로 이스라엘 외의 선민들이 아니냐? 너희의 신분도 이스라엘 사람의 신분과 같게 되지 않았느냐? 이 모든 것은 다 너희가 인식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를 정복하는 것도 이렇게 역사하는 목적이 아니겠느냐? 너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히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너희가 다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복하는 피조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너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발췌

19. 온전케 된 것이란 어떤 것을 말하느냐? 정복된 것이란 어떤 것이냐? 사람이 정복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느냐? 온전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느냐? 정복되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은 다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고, 사람의 원래 모양을 회복시키고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정복하는 것은 사람을 만드는 기초적인 사역, 즉 사람을 만드는 제1단계 사역이다.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을 만드는 제2단계 사역, 즉 끝마치는 사역이다. 사람마다 정복되는 것을 겪어야 한다. 정복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존재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을 시인할 수 없다.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도 없다. 그것은 너에게 온전케 될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을 시인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느냐? 또 어떻게 하나님을 추구하겠느냐? 하나님을 증거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만족게 할 믿음은 더욱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온전케 되려면 가장 먼저 반드시 정복 사역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선결 요건이다. 그러나 정복하든 온전케 하든, 다 사람을 만들고 변화시키는 것인데, 다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하나이다.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이 두 단계 사역을 해야 하는데,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 ‘정복된다’는 말이 듣기에는 거북하지만, 사실 정복하는 과정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네가 정복된 후에 비록 너의 패괴 성정이 완전하게는 벗겨지지 않았을지라도 인식은 하게 되는데, 정복 사역을 통해 너의 그 비천한 인성을 알게 되고, 또한 너의 많은 패역도 알게 된다. 비록 정복 사역의 짧은 시간 내에 네가 벗어 버리지 못하고 변화되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알게 된다면, 네가 온전케 되는 데에 기초를 다진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하는 것과 온전케 하는 것은 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다 사람의 사탄 패괴 성정을 벗겨 버려 사람으로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정복되는 것은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첫 단계이자 사람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첫 단계이고, 온전케 되는 것보다 낮은 한 단계 사역일 뿐이다. 정복된 사람의 생명 성정의 변화는 온전케 된 사람의 생명 변화 정도보다 훨씬 낮다. 정복된다는 것과 온전케 된다는 것의 표현이 다른 까닭은 사역 단계가 서로 다르고 사람에 대한 요구 기준도 다르기 때문이고, 사람을 정복하는 요구 기준은 낮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요구 기준은 높기 때문이다. 온전케 된 사람은 의인이고, 성결케 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에서 나온 결정체이고 완제품이다. 비록 온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복된 사람은 어떠냐? 그들은 그저 입으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을 시인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을 시인하고, 하나님이 땅에 와서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한 것을 시인하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격타와 연단이 다 사람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시인할 뿐이다. 다시 말해, 이제 막 사람의 모양이 있게 되었고 인생을 조금 꿰뚫어 보게 되었지만 아직도 모호하다. 즉, 이제 막 인성이 조금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정복되어 있게 되는 효과이다. 사람이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선 후에는 사람의 옛 성정이 변화될 수 있고, 또한 생명이 부단히 자라 진리 속으로 점차 깊이 진입하고, 세상을 혐오할 수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분명한 인식까지 하게 되어 진리에 따라 살기를 원하고 진리 추구를 목표로 하며 자신의 사유로 살기를 원치 않게 된다. 그리고 사람의 독선과 교만, 자대(自大)에 혐오감을 느끼고, 말을 분수 있게 하며, 일이 닥치면 분별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순복이 있게 된다. 한 차례 형벌과 심판을 겪어도 소극적이 되지도, 연약해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형벌과 심판에 감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날 수 없어 하고, 형벌과 심판으로 보호받을 수 있으며, 평안과 희락과 떡으로만 사는 신앙을 추구하지 않고 잠시적인 육체의 누림도 추구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다 온전케 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발췌

20. 네가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을 시인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을 시인한다고 말은 하지만, 돌아서서는 일을 저지르고 그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며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이냐? 너는 그가 한 말씀은 시인하지만, 네가 도달할 수 있는 말씀도 실행하지 않고 그의 도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시인하는 것이냐? 네가 비록 그를 시인할지라도 그를 경계(警戒)하는 마음만 있을 뿐, 그를 경외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만약 그가 한 사역을 보고 시인하고 또한 그가 하나님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하며, 변화가 전혀 없다면, 이런 사람은 여전히 정복되지 않은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발췌

21. 정복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복된 사람은 비록 높은 진리에는 진입하지 못하고 이르지도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도달하기 원한다. 터득한 것이 유한하기 때문에 실행하는 것도 그저 범위가 있고 한계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능력을 다할 수 있어야 하는데, 네가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정복 사역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 효과이다. 네가 “그분은 사람이 할 수 없는 말씀을 이렇게 많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누가 하나님이겠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인식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시인하는 데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교회 인솔자가 공의를 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돈을 탐내기까지 하고, 교회의 돈으로 늘 자신의 주머니를 채운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는 것이냐? 하나님은 전능하고 사람에게 경외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런 파렴치한 일까지 저지르는데,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정말 그를 시인하느냐? 네가 믿는 분이 하나님이 맞느냐? 너는 막연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시인하는 사람,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나 양심에 찔리는 일이라면 감히 하지 못한다. 특히 어떤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하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는 것이다. 너의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가로막을 때,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믿지 않는 남편이 잘해 줄 때,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냐? 형제자매들이 너를 미워할 때, 너는 또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냐? 네가 그를 시인한다면, 그런 일들에서 적합하게 행하고 실제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네가 실제 행동은 없고 입술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한다면, 너는 입술파에 속한다! 네가 그를 믿고 그를 시인한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너는 어떤 방식으로 그를 시인하는 것이냐? 어떤 방식으로 그를 믿고 있는 것이냐? 너는 마음에 두려움이 있느냐? 경외심이 있느냐? 너에게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너는 슬플 때, 의지할 데가 없을 때만 하나님이 사랑스럽다고 느끼고, 그 후에는 없던 일처럼 여기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에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이르게 하느냐? 내가 언급한 각종 정형, 예를 들면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고 빨리 깨닫는다고 여기면서 다른 사람을 속박하고 업신여기며,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착한 사람을 괴롭히고, 교회의 돈을 탐내는 등등, 이런 사탄의 패괴 성정이 너에게서 일부분 벗겨져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네가 정복된 후에 있어야 할 표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발췌

22. 너희에게 하는 정복 사역의 의의는 가장 깊다. 한편으로는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려는 것인데, 바로 한 무리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하여 첫 번째로 만들어진 무리, 즉 처음 익은 열매가 되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하고 하나님의 가장 큰 구원과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인데, 사람에게 누리게 하는 것은 긍휼과 자비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형벌과 심판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역에서 행한 모든 것은 다 사랑이고, 사람을 미워하는 요소가 전혀 없다. 네가 본 형벌과 심판마저도 사랑인데, 더욱 참되고 실제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이 바로 사람을 인도하여 인생의 바른길에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사탄 앞에서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복음 사역을 확장하기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다 사람을 인생의 바른길로 인도하여 정상적인 인류의 삶이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생활할 줄 몰라, 이런 인도가 없으면 그저 공허하게 살아가고 아무런 가치와 의의도 없이 살아갈 뿐, 전혀 정상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을 정복하는 가장 깊은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발췌

23. 너희는 모두 죄악된 음란한 땅에 살고 있으며, 다 음란하고 죄악된 사람에 속한다. 오늘날 너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형벌과 심판을 받고 이런 가장 깊은 구원을 받은 것인데, 즉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가 하는 것은 다 너희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지,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의 죄악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여 반성하게 하고 이 지극히 큰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역은 다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늘 힘을 다해 사람을 구원한다. 하나님은 친히 만든 사람을 완전히 멸해 버리기를 전혀 원하지 않는다. 지금 다시 너희들 가운데 와서 역사하는데, 이는 더욱더 구원이 아니겠느냐? 너희를 미워했다면, 그가 또 이렇게 큰 사역을 하여 너희를 친히 인도하겠느냐? 이 고난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에 대해 미움도 없고 악의도 전혀 없다. 너희는 마땅히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진실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사람의 패역 때문에 반드시 심판으로 사람을 구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너희는 생활할 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며, 이 음란하고 죄악된 땅에 살고 있기에 음란하고 더러운 귀신에 속한다. 그는 너희가 더 깊이 타락되는 것이 안타까워, 또 너희가 이렇게 더러운 땅에 살면서 사탄에게 마구 짓밟히고 음부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오로지 너희를 얻고 너희를 철저히 구원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에게 정복 사역을 하는 주목적인데, 바로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발췌

24. 너는 하나님이 너에게 하는 것이 다 사랑이고 구원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것이 그저 일종의 방식에 불과하여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고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너의 세계로 돌아가 고난과 수난이나 겪어라! 네가 이 흐름 속에서 이 심판과 엄청난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인간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이 모든 복을 누리고 이 사랑을 누리고 싶다면, 너는 고분고분 이 흐름 속에서 정복 사역을 받아들여 온전케 되어라. 네가 지금 심판으로 인해 고난을 조금 받고 연단을 조금 받기는 하지만, 이 고난을 받는 것은 가치 있고 의의 있다. 형벌과 심판이 사람에게 연단이 되고 무정한 폭로가 되지만,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의 육체를 정죄하여 멸절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죄와 육체를 징벌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으로 엄하게 폭로하는 것도 다 너를 바른길로 이끌어 가기 위한 것이다. 너희도 이렇게 많은 역사를 체험해 보았겠지만, 너희를 다 사악한 길로 이끌어 간 적은 없지 않으냐? 모든 것은 다 너로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모두 너의 정상 인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사역마다 너의 필요에 근거하여, 너의 연약에 따라, 너의 실제 분량에 따라 하는 것이지, 너에게 지기 어려운 짐을 억지로 지우는 것이 아니다. 네가 지금은 꿰뚫어 보지 못해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늘 내가 너를 미워하여 날마다 형벌하고 심판하고 책망한다고 여기지만, 네가 받는 형벌과 심판은 사실 너에 대한 사랑이고 크나큰 보호이기도 하다. 네가 이 단계 사역의 더 깊은 의의를 알지 못한다면, 너는 체험해 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너는 이런 구원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아야지, 계속 잘못된 생각에 빠져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왔으면, 너 또한 정복 사역의 의의를 분명히 알 때도 되었으니 더 이상 이런저런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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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③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④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⑤귀복(歸服): 돌아와 복종함.

⑥부각물[襯托物]: 한 사물을 통해 다른 한 사물을 두드러지게 하는 존재.

⑦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⑧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⑨본분(本分): 피조물이 수행해야 할 의무와 천직.

⑩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⑪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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