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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사역의 실정> 네 편에서 발췌한 말씀

1. 인류는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타락해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게 되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만든 그때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영광과 증거가 따랐지만 사람이 타락하면서 영광과 증거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은 모든 증거와 영광을 되찾아 옴으로써 모든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고 피조물 가운데 증거가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이 단계에 하려는 사역이다. 인류를 어떻게 정복하는 것일까? 이 단계에서 하는 말씀 사역을 통해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고, 폭로, 심판, 형벌, 무자비한 저주로 사람이 철저히 인정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의 패역을 들추어 밝히고 사람의 대적을 심판하여 사람으로 인류의 불의와 더러움을 알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부각시킨다. 주로 이런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한다. 말씀은 최종적으로 인류를 정복하는 경로이다. 정복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말씀의 매와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말씀하고 있는 과정이 바로 정복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겠느냐? 너는 이런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써 말씀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정복될지는 사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런 말씀을 먹고 마신 기초에서 자신의 타락과 더러움, 패역과 불의를 깨달아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는 길밖에 없다. 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음 실행해야 하며, 또한 이상(異象)도 있어야 한다. 네가 어떤 선택도 없이 오로지 말씀에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복된 것이다. 바로 말씀으로 인해 정복된 것이다. 인류는 왜 증거를 잃었을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인류가 이 ‘믿음’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늘 세상을 좇는다. 소망이나 미래에 대한 바람, 사치스러운 요구가 너무 많고 늘 육체에 신경 쓰고 육체적인 것을 고려할 뿐, 하나님을 믿는 길을 찾으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 또 사탄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사라졌고 일심으로 사탄만 위한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증거를 잃게 되었는데, 즉 하나님의 영광을 잃게 된 것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영광을 되찾기 위함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1)>에서 발췌

2. 지금의 정복 사역은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사역이다. 왜 지금의 형벌과 심판이 바로 마지막 날의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이라고 하느냐? 이것도 꿰뚫어 보지 못했느냐? 왜 마지막 단계 사역은 정복 사역이냐? 바로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냐? 형벌과 심판의 정복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본모습을 드러낸 후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인류를 정복한다고 하기보다는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낸다고 하는 편이 낫다. 다시 말해, 사람의 죄를 심판함으로써 각 부류의 사람들을 드러내고, 그것으로 악한 자인지 의로운 자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정복 사역 다음은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사역이다.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 즉 완전히 정복된 사람은 전 우주로 확장하는 다음 단계 사역으로 넘어갈 것이고,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어둠 속에 놓여져 재앙을 당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각기 부류로 나뉘게 되는데 악한 자는 악에 속하여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하고, 의인은 선에 속하여 빛을 얻고 영원한 빛 속에서 살게 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고 사람의 결말도 눈앞에 드러났다. 만물이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인데, 사람이 어찌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은 만물의 결말이 가까이 왔을 때 드러나고, 또 전 우주의 정복 사역(지금부터 시작되는 모든 정복 사역을 포함) 중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모든 인류의 결말은 심판대 앞에서, 형벌 중에서, 말세의 정복 사역 중에서 드러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1)>에서 발췌

3. 사람의 결말은 창세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한 부류밖에 없었는데, 통틀어 ‘인류’라고 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빛 속에 살았으며 어둠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에는 각종 사람, 즉 남자, 여자의 통칭인 ‘인류’라는 이 대가족에서 갈라져 나온 각종 사람이 온 땅에 널리 퍼졌다. 그들은 모두 자기 조상에게 이끌려 그들의 가장 오래된 조상인 남자와 여자(최초의 아담과 하와, 그들의 가장 오래된 시조), 그 인류를 떠나게 되었다. 그때, 여호와의 인도로 땅에서 생활한 사람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뿐이었다. 이스라엘 온 땅(최초의 대가족)에서 갈라져 나온 각 부류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인도를 잃게 되었다. 처음 난 인류는 인간 세상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조상을 따라 그들이 차지한 땅에서 지금까지 살았다. 더 나아가 그들은 여호와를 떠나 오늘날까지 온갖 더러운 귀신과 악령에 의해 타락했으면서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른다. 오늘날에 이르러 심하게 타락하고 중독된 사람들, 즉 마지막에도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 ― 그들을 타락시킨 더러운 귀신 ― 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인류의 적합한 귀착지에 들어갈 것이다. 이는 구원받고 정복된 사람의 결말이다.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최선을 다해 구원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마비되어 구원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을 따라 사람을 형벌하는 무저갱에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너의 결말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오늘에야 드러낸다고 생각하지 말라. 태초에 인류를 만들 때 아담과 하와 그 둘 같은 인류만 만들고(남자와 여자만 만들었음), 사탄과 같은 부류의 인류는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잊었느냐? 만약 네가 처음부터 사탄의 후손이었다면, 여호와가 사람을 만들 때 사탄과 같은 부류의 사람도 만들었다는 말이냐? 그가 그렇게 할 리가 있겠느냐? 그가 사람을 만든 것은 그의 증거를 위한 것이고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가 일부러 사탄의 자손과 같은 부류를 만들어 고의로 자신을 대적하게 할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누가 그를 공의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지금 너희 중 어떤 자는 마지막에 사탄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네가 처음부터 사탄에게 속했던 것이 아니라 너무 심하게 타락했기 때문이다. 설령 너를 구원한다고 해도 네가 이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너를 사탄 부류로 분류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공의롭게 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네가 구제 불능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너를 사탄의 화신으로 정한 다음 사탄에게 주어 고통받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복 사역의 실정이 아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의 인식이 너무 단편적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1)>에서 발췌

4. 마지막 때의 정복은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심판으로 사람의 타락 성품을 들춰내고, 이를 통해 사람이 회개하고 분발하고 생명을 추구하고 인생의 올바른 길을 추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무감각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고, 심판으로 사람 내면의 패역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인생의 바른길을 추구하지 않으며 이런 타락한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으며 사탄에게 삼켜질 것이다. 이것이 정복의 의의다. 정복은 구원하기 위한 것이요, 또한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좋은 결말이든 나쁜 결말이든 다 정복 사역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받는지 저주받는지도 정복 사역에서 드러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1)>에서 발췌

5. 말세는 정복을 통해 만물이 각기 부류대로 나뉘게 하는 것이다. 정복은 말세의 사역이다. 즉, 각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 말세의 사역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이 어찌 각기 부류대로 나뉠 수 있겠는가? 너희들 가운데서 하는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사역은 전 우주에서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사역의 시작이다. 이후에 각 지역, 각 민족도 다 이 정복 사역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 피조된 사람이라면 모두 각기 부류대로 나뉘게 될 것이고, 모두 심판대 앞으로 돌아와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사람과 사물도 이 형벌과 심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고 또한 다 각기 부류대로 나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부류에 따라 나누어진다. 만물의 결말이 가까이 왔고 온 천지가 끝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어찌 사람의 생존이 끝나는 날을 피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1)>에서 발췌

6. 지금은 중국 사람들에게 하는 사역을 통해 이 사람들의 패역한 성품을 모두 드러내고 추한 모습을 다 들추어낸다. 이런 배경을 통해 모든 말씀을 마치고, 그 후에 전 우주를 정복하는 다음 단계 사역을 한다. 너희를 심판함으로써 전 우주 사람들의 불의를 심판할 것이다. 너희가 인류의 패역자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따라오지 못한 사람은 *부각물이 되고 기여품이 될 것이며, 따라온 사람은 쓰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오지 못한 사람을 왜 부각물이라고 하느냐? 지금 사역하고 말하는 것은 모두 너희의 배경에 비춰 말한 것이고, 너희는 인류 중 패역자의 대표이자 전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너희를 정복한 이런 말씀을 외국으로 가져가 외국 사람들을 정복할 것인데, 네가 얻지 못했다면 부각물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전 인류의 타락 성품, 사람의 패역한 행위, 사람의 이런 추한 모습과 면모가 오늘날 너희를 정복한 말씀 중에 다 기록되어 있고, 이런 말씀을 가지고 각 나라와 각 교파의 사람들을 정복할 것이다. 이는 너희가 본보기이고 선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러 너희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네가 잘 추구하지 않아 구원받을 수 없다면 완전히 기여품이 되고 부각물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1)>에서 발췌

7. 오늘날 너는 믿음으로 인해 정복되었고, 또 정복됨으로 인해 여호와의 모든 행사를 믿게 된 것이다. 너는 믿음으로 인해 이런 형벌과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너는 이런 형벌과 심판으로 인해 정복되고 온전케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이런 형벌과 심판이 없었다면 너의 믿음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실제가 없는 텅 빈 글귀이기 때문이다. 네가 이런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순종하게 되면 그때서야 너의 믿음이 진실하고 확실하며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될 것이다. 네가 ‘믿음’으로 인해 많은 심판이나 저주를 받았을지라도 너는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가장 참되고, 가장 알차고, 가장 귀한 것을 얻게 되었다. 너는 심판으로 인해 피조물의 귀착지를 알게 되었고, 그러한 심판으로 인해 창조주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 것이다. 또 너는 이러한 정복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팔을 보게 되었으며, 이러한 정복으로 인생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으로 인생의 바른길을 얻었고, ‘사람’이란 진정한 의미도 깨닫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으로 전능자의 공의로운 성품과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되었으며, 사람의 근원과 전 인류의 ‘불후한 역사’도 알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으로 인류의 조상과 인류가 타락한 기원을 알게 되었으며, 이러한 정복으로 희락과 위안을 얻었다. 또한 끝없는 채찍질과 징계도 받았고, 창조주가 지음 받은 인류에게 주는 질책의 말씀도 듣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사역에서 축복은 물론, 사람이 받아야 할 화도 입었다… 이 모든 것이 너의 그 작은 믿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냐? 이런 것들을 얻음으로 인해 너의 믿음도 커지지 않았느냐? 네가 아주 많은 것을 얻지 않았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1)>에서 발췌

8. 어쩌면 네가 자신이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벌이나 심판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는 네가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벌과 전능자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창조주를 만날 기회도 영영 놓치고, 또 인류의 기원도 영원히 알지 못하고, 인생의 의미도 영원히 깨닫지 못했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설령 너의 육체가 멸망되고 영혼이 이탈한다고 해도 너는 창조주의 모든 행사를 알지 못할 것이고, 더욱이 창조주가 인류를 만든 후에 땅에서 이처럼 큰 사역을 했다는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창조된 인류로서, 너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어둠 속에 떨어져 영원히 징벌받기를 원하느냐? 네가 오늘날의 형벌과 심판을 떠난다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오늘날의 심판을 떠난다고 해서 이 고난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냐? ‘이 땅’을 떠나면, 네가 고통에 시달리거나 마귀에게 해를 입지 않겠느냐? 견디기 힘든 나날이 닥치지 않겠느냐? 너는 오늘날의 심판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훗날의 고통을 영원히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장차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네가 바라는 무릉도원이겠느냐? 너는 자신이 이렇게 현실을 도피하면 훗날 그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기회와 축복을 네가 이후에 두 번 다시 찾을 수 있겠느냐? 재앙이 임할 때 찾을 수 있겠느냐? 모든 인류가 안식에 들어갈 때 찾을 수 있겠느냐? 지금의 만족스러운 생활과 화목한 가정이 너에게 훗날의 영원한 귀착지를 가져다줄 수 있겠느냐? 네게 만약 진실한 믿음이 있고 믿음으로 인해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면, 그것은 피조물인 네가 마땅히 얻어야 할 몫이고, 또한 너에게 본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정복은 너의 믿음에도 가장 이롭고 너의 생명에도 가장 이로운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1)>에서 발췌

9. 지금 너는 어떻게 해야 정복되는지, 또 정복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너는 네가 정복되었다고 말하지만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느냐? 너는 앞날에 희망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를 수 있고,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두 가지 증거, 즉, 죽기까지 순종했던 욥의 증거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베드로의 증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욥과 같아야 한다. 욥은 물질적인 것을 다 잃고 육체에 질병의 고통이 임했어도 여호와의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이것이 욥의 증거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다.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는 자기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스러운 것들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에 순종하기를 추구했다. 네가 이런 기준에 도달해야만 간증했다고 할 수 있고,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본질을 알고 자기 지위를 안다면 어떤 미래나 소망을 추구하겠느냐? ‘하나님이 날 온전케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하나님을 따라가야 해. 지금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은 다 좋은 것이고, 나를 위한 것이구나.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켜 사탄의 권세에세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구나. 우리가 더러운 곳에 태어났지만 그 더러움을 벗어 버리고, 부정한 것과 사탄의 권세를 떨쳐 내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구나.’ 너는 이러한 인식을 갖춰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2)>에서 발췌

10. 사실, 정복은 온전케 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를 정복하는 동시에 너를 초보적으로 온전케 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정복하는 것과 온전케 하는 것의 차이는 사람의 변화 정도에서 나타난다. 정복되는 것은 사람이 온전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정복된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온전케 된 것이 아니고, 사람이 완전히 얻어졌음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정복되면 성품이 어느 정도 변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얻어진 사람의 변화에는 훨씬 못 미친다. 지금 하는 것은 온전케 되기 위한 기초적인 사역, 즉 정복되는 것이다. 정복될 수 없다면 너는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도 없다. 형벌과 심판의 말씀을 조금 얻을 수는 있지만 네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너는 도태된 사람이고, 식탁에 차려진 산해진미를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 못한 것과 같다. 그러면 너무 가련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너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정복되는 것이든 온전케 되는 것이든 다 너의 변화 여부와 순종 여부에 달려 있다. 바로 이것으로 네가 얻어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결정된다. 정복되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의 차이는 변화받은 정도와 순종하는 정도를 두고 하는 말이며,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결도를 두고 하는 말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지금 네게 철저히 온전케 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먼저 네가 정복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형벌과 심판에 대해 충분히 알고 하나님을 따를 믿음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변화와 효과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온전케 하는 과정에서 정복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온전케 한다는 사실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지금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도 좋고, 외적인 인성의 변화, 자질 향상을 추구해도 좋다. 하지만 가장 주된 것은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이 의미 있고 이로운 일임을 아는 것이다. 그 일들로 인해 너는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더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더러움을 떨쳐 버릴 수 있으며,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사탄의 어두운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너는 그 일들을 중요하게 여김으로써 더러운 땅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너는 최종적으로 어떤 간증을 하게 될까? 네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거룩해질 수 있고 더 이상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의 소유가 되지 않고, 사탄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지 않으며 전능자의 손안에서 살게 된다는 간증이다. 이것이 바로 간증이고 사탄과 싸워 이긴 증거이다. 네가 사탄을 배반할 수 있으면 네 삶에서 사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 즉 사람에게 요구한 정상 인성, 사람의 정상적인 이성과 정상적인 식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정상적인 의지,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이 해야 할 간증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2)>에서 발췌

11. 말세에 하는 사역은 모든 규례를 타파한다. 네가 저주받은 자든 징벌받은 자든, 내 사역에 이롭고 지금의 정복 사역에 이롭다면 충분하며, 모압의 후손이든 큰 붉은 용의 자손이든 상관없다. 네가 이 단계 사역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사역을 철저하게 행한다면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네가 큰 붉은 용의 자손이든 모압의 후손이든, 어쨌든 혈기에 속한 사람은 모두 피조물이고 창조주가 만든 것이다. 네가 피조물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이것이 너의 본분이다. 물론 오늘날 창조주는 우주 전체를 향해 역사한다. 네가 누구에게서 태어났든지 간에 어쨌든 너는 피조물이다. 모압의 후손인 너희들도 피조물이지만 다만 신분이 비천할 뿐이다. 오늘날의 사역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우주 전체를 향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주는 사람과 일을 임의로 선택해 사역할 수 있다. 그는 너의 과거 출생이 어떻든 간에 네가 피조물이기만 하면, 네가 그의 사역 ― 정복과 증거 ― 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너에게 자신의 사역을 행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전통적인 관념을 깬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이방인에게, 특히 저주받은 천한 사람에게 역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념, 조상이 저주받았으니 후손도 영원히 저주받아 영영 구원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관념,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이방에 임하거나 사역하는 일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더러운 땅에 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념을 깨뜨린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고, 천지 만물의 주재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하는 이 단계 사역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열방에 널리 전할 일이 아니겠느냐? 훗날에는 큰 증거가 중국에서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들만 정복한다면 마귀들이 굴복할 수 있겠느냐? 마귀는 정복되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큰 능력이 무엇인지 모른다. 전 우주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선민들에게 이 단계 사역의 최종적인 효과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피조물이 정복된다. 모압의 후손은 가장 낙후되고 타락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조차 정복된다면, 다시 말해, 가장 심하게 타락한 사람, 과거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정복되어 입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복된 증거이다. 너희가 비록 베드로는 아니지만 베드로의 모습처럼 살 수 있고, 베드로의 증거와 욥의 증거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큰 증거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2)>에서 발췌

12. 정복 사역에서 얻으려는 효과는 주로 사람의 육체가 거역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생각에 새로운 인식이 생기고 우러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완전히 순종하며, 하나님을 생각하려는 의지를 다지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나 육체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고 해서 정복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사상, 사람의 의식, 사람의 이성, 즉 너의 정신적인 면에 모두 변화가 생겼다면 그것이 바로 네가 하나님께 정복된 것이다. 순종하려는 의지가 생기고, 생각도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 아무런 관념도 속셈도 없게 되고, 정상적인 사유를 가질 수 있으면, 다시 말해 오로지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으면, 그런 사람은 완전히 정복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3)>에서 발췌

13. 종교에서 많은 사람들은 일생 동안 적지 않은 고난을 받았다. 그들은 자기를 치거나 자기 십자가를 졌으며, 심지어 죽기 전까지도 고난받고 인내했다! 어떤 이는 죽는 날 아침까지도 금식했고, 일생 동안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 좋은 옷도 입지 않았으며 고난받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들은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육체를 배반할 수 있었다.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그들의 정신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들의 생각, 관념, 정신적 면모 나아가 그들의 옛 성품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전통적인 관념 속의 막연한 하나님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으려는 그들의 의지는 그들의 열정과 인간성적인 좋은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했다. 무작정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고난받는 것만 중시할 뿐, 분별에 대해 전혀 중시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들이 섬긴 하나님은 하나님 본연의 모습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해 냈거나 남에게서 들었거나 혹은 글에서 찾아낸 전설 속의 하나님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풍부한 상상과 자기만의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려고 했다. 그들의 섬김은 정확도가 너무 떨어져, 그들 중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난을 달게 받았든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섬김의 관점과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 연단, 온전케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또 진리로 그들을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구주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구주에 대해서는 전설과 풍문만 들었을 뿐 구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섬김은 소경이 제 아버지를 모시듯 두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섬긴 것에 불과했다. 그런 섬김이 최종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또 누가 칭찬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섬김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 인위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타고난 천성과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섬겼는데,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예수를 본 베드로조차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 모르고 지내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즉 늙어서야 깨달았다. 그러니 어떤 책망도 훈계도 받지 않고 인도자도 없는 소경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않느냐? 지금 너희의 섬김도 대부분 소경의 섬김과 같지 않으냐? 심판을 받지 않고 책망 훈계를 받지 않고 아무 변화도 없는 사람들은 모두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자들이 아니냐? 이런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너의 사상, 인생에 대한 인식,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변화가 없고 진정한 수확도 없다면, 너의 섬김은 영원히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 너에게 이상(異象)이 없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없다면 너는 정복된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네가 따르는 것도 고난받으며 금식하는 사람들처럼 아무 가치가 없다! 그들이 행한 것은 아무런 증거도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섬김은 헛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일생 동안 고난도 받고 옥살이도 했으며, 언제나 참으며 사랑하고, 십자가 지는 것을 중시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비방당하고 버림 받으며 숱한 고난을 받았다. 비록 그들이 마지막까지 순종하기는 했지만 정복되지 않았고 정복된 증거도 없었다.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에게 있는 낡은 사상, 낡은 관념, 종교적인 행실, 인위적인 인식, 사람의 생각은 모두 다루어지지 않았고 새로운 깨달음이 조금도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진실하고 정확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며, 하나님의 뜻도 잘못 이해했다. 이것을 두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예전에 네가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이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오직 자기 관념과 생각대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즉 하나님의 대한 인식이 새롭고 참된 것이 없고 하나님의 본래 모습과 본래 성품에 대해 알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봉건 미신 사상이 주체가 되고 여전히 사람의 상상과 관념에 머물러 있다면, 너는 정복되지 못한 것이다. 지금 내가 너에게 한 많은 말은 모두 네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인식으로 너를 이끌어 정확하고 더 새로운 인식을 심어 주려는 것이며, 또한 네가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네 안에 있는 낡은 관념과 진부한 인식 방법을 깨뜨리려는 것이다. 네가 제대로 먹고 마신다면 너의 인식 방법이 많이 바뀔 것이다. 네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신다면 너의 관점이 바로잡힐 것이다. 네가 이 한번 또 한번 임하는 형벌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너의 낡은 사상이 점차 바뀔 것이다. 너의 낡은 사상이 철저히 바뀌면 그에 따라 너의 실행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너의 섬김도 점점 바로잡혀, 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될 것이다. 네가 너의 생활을 바꾸고 인생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하나님에 대한 많은 관념을 바꿀 수 있다면, 너의 천성적인 것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정복함으로써 나타난 효과, 즉 사람의 변화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인내하며 고난받아야 하는 것만 알고, 그것이 옳은지 틀린지도 모르고, 누구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면, 그렇게 실행해서 어떻게 변화가 나타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3)>에서 발췌

14. 너희에게 바라는 것은 너희의 육체를 단속하거나 허튼 생각을 하지 않도록 통제하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내 사역의 목적이 아니고, 지금 할 사역도 아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알아야 하고, 너희의 본성, 본질, 너희의 진부한 삶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특히 과거 너희의 그릇된 실행과 인위적인 행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너희가 변화되려면 먼저 사상부터 변화해야 한다. 먼저 너희의 사상을 새롭게 하고, 그 새로운 사상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너희 개개인에 대한 요구다. 맹목적으로 실행하지 말고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라. 마땅히 기초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는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지, 또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지금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너는 이런 것들을 다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3)>에서 발췌

15.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너의 인식 방법이 바뀌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담긴 진리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내면의 인식 방법이 향상되면, 네 생활에 새로운 전환점이 있을 것이다. 지금 사람이 행하고 말하는 것은 모두 실제적인 것이다. 그것은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에 필요한 것이고,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복 사역 중에 사람에게 나타나는 변화이자, 사람에게 나타나야 할 변화이며, 사람이 정복된 후에 나타나는 효과이기도 하다. 너의 사상이 변화하고, 정신 면모가 새로워지고, 너의 관념, 속셈, 과거의 논리적인 추리도 다 뒤집히고, 네 안에 깊게 뿌리박힌 것들을 벗어던진 뒤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면, 네가 말하는 간증이 높아지고 너의 모든 것이 진정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며 가장 근본적인 것들이다. 이는 과거에 알지 못했고 또 사람이 접할 수 없었던 것이며, 영의 진정한 역사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3)>에서 발췌

16. 모든 정복 사역이 끝날 때, 너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알아야 한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만 만든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만들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라고 하거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외의 어떤 민족 가운데서도 성육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너는 정복 사역에서 아무런 인식도 얻지 못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중국으로 옮겨와 부득이하게 너의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만 인정할 뿐이다. 네가 아직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내가 한 사역이 너에게서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고, 내가 한 말을 네가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결국에는 너도 마태처럼 나에게 족보를 하나 써 주고 알맞는 ‘조상’을 하나 찾아 주고 정통 뿌리를 하나 찾아 준다면, 두 차례 성육신한 하나님에게 족보가 두 개 있게 될 텐데, 그럼 큰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느냐? 내게 족보를 찾아 주는 ‘마음씨 좋은 사람’인 네가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자가 되지 않겠느냐? 네가 그 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정복 사역을 이토록 많이 했는데, 네가 아직도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는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오늘날 너를 정복하는 것은,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자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기도 하고, 더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자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인 동시에 애굽 사람의 하나님이고, 영국 사람의 하나님인 동시에 미국 사람의 하나님이다. 그는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의 하나님이며, 하늘에 있는 만물의 하나님인 동시에 땅에 있는 만물의 하나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3)>에서 발췌

17. 이스라엘 족속이든, 이방의 모든 족속이든 모두 하나님 한 분이 관장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수천 년 동안 역사하고 유대 땅에 태어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중국 땅에 강림했다. 그가 유대에서 태어났을 때는 유대인의 왕이었지만, 지금은 너희들 가운데 강림하였으니 너희의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그는 이스라엘 사람을 인도했었고, 유대 땅에 태어났었으며, 다시 또 이방에 태어났지만, 그가 행한 모든 사역은 그가 만든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가 이스라엘 사람은 백 배로 좋아하고 이방인은 천 배로 미워하겠느냐? 이것은 모두 너희의 고정 관념이 아니냐?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의 하나님이 아닌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 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피조물 중에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는 이가 있느냐? 오늘날 너희를 정복하는 것도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냐? 너희가 아직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이스라엘의 다윗 집안만이 하나님의 출생지가 될 수 있고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어느 민족도 하나님을 ‘탄생시킬’ 자격이 없으며, 더욱이 어떤 이방 민족도 여호와의 사역을 직접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면,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완고한 자가 된 것이 아니냐? 계속 이스라엘만 주시하고 있지 말라. 지금 하나님이 바로 너희들 가운데 있으니, 계속 하늘만 쳐다보지도 말고, 더 이상 하늘에 있는 너의 하나님을 그리워하지도 말라! 하나님이 너희들 가운데 왔는데 그가 어떻게 하늘에 있을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은 길지 않지만, 너의 관념은 적지 않다. 더 나아가 너는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 너희들 가운데 ‘왕림’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더욱이 몹시 더러운 너희가 몸소 나타난 하나님을 볼 수 있을지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너희는 하나님이 이방에 몸소 강림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하나님이 시내산이나 감람산에 강림하여 이스라엘 사람에게 나타날 것이고, 이방인(이스라엘 외의 사람)은 모두 그가 미워하는 대상이므로 몸소 그들에게 역사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오래전부터 너희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던 관념이다. 오늘날 너희를 정복하는 것은 너희의 이런 관념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하나님이 너희들 가운데 몸소 나타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시내산도 아니고 감람산도 아닌, 과거에 인도한 적 없는 사람들 가운데 나타났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3)>에서 발췌

18.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두 단계 사역을 한 후에 이스라엘 사람과 모든 이방인에게 이런 관념이 생겼다. 즉,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 되기만을 원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은 너희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다. 너희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여호와, 즉 우리의 하나님이 너희를 미워하신다.’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유대인들은 ‘주 예수는 우리 유대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고 유대인의 특징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서 역사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 형상과 비슷하고 우리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에 가깝다. 주 예수는 우리 유대인의 왕이시며 이방인은 이렇게 큰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 주 예수는 우리 유대인의 속죄제시다.’라고 생각한다. 그저 두 단계 사역을 했을 뿐인데, 이스라엘 사람과 유대 족속에게 이처럼 많은 관념이 생겼다. 그들은 하나님을 독점하고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방인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백지 상태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치 않고, 그의 선민인 이스라엘 사람과 유대인들, 특히 자신을 따른 제자들만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와 여호와가 행한 사역이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한 것임을 모른단 말이냐? 지금, 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밖에서 태어난 너희 모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느냐? 오늘날 하나님이 바로 너희들 가운데 있지 않으냐? 설마 이것이 꿈이란 말이냐? 너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느냐? 도무지 믿을 수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너희가 어떻게 생각하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냐? 너희는 아직도 이 말을 믿지 못하겠느냐? 이제부터 정복된 사람과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냐? 지금 따르고 있는 너희들이 바로 이스라엘 이외의 선민이 아니냐? 너희의 신분도 이스라엘 사람의 신분과 같아지지 않았느냐? 이 모든 것은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너희를 정복하는 것도 이러한 목적을 위한 사역이 아니겠느냐? 너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히 너희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너희가 모두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종하는 피조물이 되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너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3)>에서 발췌

19. 온전케 되는 것이란 무엇일까? 정복되는 것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정복되고 싶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온전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정복되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은 모두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원래 모습을 되찾아 사탄의 타락 성품과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정복은 사람을 만드는 기초적인 사역, 즉, 사람을 만드는 1단계 사역이고,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을 만드는 2단계 사역이자 마무리하는 사역이다. 모든 사람은 정복을 경험해야 한다. 정복을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인정할 수가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그를 온전케 할 수가 없다. 사람이 온전케 될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하나님을 추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을 만족게 할 만한 믿음은 더더욱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온전케 되려면 제일 먼저 정복 사역을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하지만 정복이든 온전케 하는 것이든 모두 사람을 만들고 변화시키는 것이며,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하나다. 완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두 단계 사역을 거쳐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정복된다’는 말이 듣기에 좋지는 않지만 사실 정복의 과정도 역시 사람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네가 정복된 후 그 타락한 성품이 완전히 벗겨지지는 않았지만 정복 사역을 통해 자신의 비천한 인성과 수많은 패역은 알게 되었다. 비록 짧은 정복 사역 기간 동안 너의 성품이 벗겨지거나 변화되지 못했더라도 그것이 네가 온전케 되는 기반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복하는 것과 온전케 하는 것은 모두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또 사람이 가진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겨 냄으로써 사람 자신을 전부 하나님에게 바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다만 정복되는 것은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첫 단계이자 사람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첫 단계이며, 온전케 되는 것보다 낮은 단계의 사역일 뿐이다. 정복된 사람의 생명 성품 변화는 온전케 된 사람의 생명보다 그 변화 정도가 훨씬 낮다. 정복되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의 표현이 다른 것은 사역 단계가 다르고 사람에 대한 요구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을 정복하기 위한 요구 기준은 낮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요구 기준은 높다. 온전케 된 사람은 의인이고 거룩하며,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의 결정체이자 완성품이다. 비록 온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의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복된 사람은 어떠한가? 그들은 그저 입으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을 인정하며,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났음을 인정할 뿐이다. 또한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격타와 연단이 모두 사람에게 이롭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이다. 이제 막 사람의 모습이 생기고 인생을 조금 꿰뚫어 보게 되었지만 아직도 모호하다. 다시 말하면, 이제 막 인성을 조금 갖추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정복됨으로써 나타난 효과다. 사람이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면 옛 성품이 변할 수도 있고, 생명이 부단히 자라 진리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며,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혐오하게 된다. 특히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더 나아가 분명한 인식이 생기면서 진리에 따라 살기를 원하고, 진리 추구를 목표로 삼는다. 또한 자기 생각대로 살지 않으려 하고, 사람의 독선과 오만함, 자기 과대평가에 염증을 느끼며, 분수에 맞게 말하고, 무슨 일을 하든 분별 있게 처리하고, 지혜롭고, 하나님에게 충성하고 순종한다. 형벌과 심판을 겪어도 의기소침해지거나 연약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형벌과 심판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나지 않는데, 이로 인해 보호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평안함, 즐거움, 기복 신앙을 추구하지 않고, 일시적인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모두 온전케 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4)>에서 발췌

20. 너는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을 인정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을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 뒤에서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며 속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인정하지만 네가 도달할 수 있는 말씀도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경계하는 마음만 있을 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고, 하나님이 한 사역을 보고, 인정하고,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시큰둥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런 사람은 정복되지 않은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4)>에서 발췌

21. 정복된 사람은 자기 능력을 다할 수 있고 비록 깊은 진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미치지도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도달하길 원해야 한다. 깨달음이 유한하기 때문에 실행하는 것도 일정한 범위와 한계가 있지만 최소한 자기가 가진 능력은 다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이것들을 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정복 사역으로 인해 나타난 효과다. 가령 네가 “그분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말씀을 이렇게 많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누가 하나님이겠습니까?”라고 말한다고 치자. 너에게 이런 인식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는 행동이 필요하다. 교회를 이끄는 자가 공의를 행하지 못하고 재물을 탐내 교회 돈으로 자기 주머니를 채운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전능하며 사람이 경외할 가치가 있는 분이다.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파렴치한 일까지 저지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을까? 너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가? 네가 믿는 분이 진정 하나님인가? 너는 막연한 신을 믿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나 양심에 찔리는 일은 하지 못한다. 특히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 일은 더더욱 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너의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막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이 너에게 잘해 준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형제자매가 너를 미워한다면 너는 또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까? 네가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이런 일이 있을 때 적절하게 행동하고 실제적으로 살아야 한다. 네가 실제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입으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너는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고 인정한다고 말하는 너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너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는가? 경외심이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슬프고 의지할 데가 없을 때는 하나님이 사랑스럽다고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없었던 일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다! 최종적으로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도달하게 될까? 내가 언급한 여러 상황들, 예를 들면 스스로 대단하다고 자부하고, 무엇이든 빨리 깨닫는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구속하고 업신여기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착한 사람을 괴롭히고, 교회 돈을 탐내는 등등, 이런 사탄의 타락 성품이 너에게서 일부 벗겨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네가 정복된 후에 나타나야 할 모습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4)>에서 발췌

22. 너희들에게 하는 정복 사역은 그 의의가 가장 깊다. 한편으로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 것인데,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하여 처음으로 온전케 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첫 열매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의 가장 큰 구원과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은 긍휼과 자비를 누리지만, 더 중요하게는 형벌과 심판을 받게 된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행한 모든 사역은 다 사랑이며 사람에 대한 미움은 하나도 없다. 네가 본 형벌과 심판도 역시 사랑으로, 더욱 진실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 사람을 인생의 바른길로 인도한다. 또 한편으로는 사탄 앞에서 증거하기 위함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복음 사역을 확장하기 위해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을 인생의 바른길로 인도하여 정상적인 인류의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생활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인도해 주지 않으면 헛되게 살아간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지 않으면 너는 아무 가치도 의의도 없이 살아가며 정상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정복하는 가장 깊은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4)>에서 발췌

23. 너희들은 모두 죄악이 넘치는 음란한 땅에 살고 있으며 모두 음란하고 죄악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 너희들은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형벌과 심판을 받았다. 이런 가장 깊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것은 모두 진실한 사랑이며 악의는 조금도 없다. 너희들의 죄악 때문에 너희들을 심판하여 반성하게 하고 이렇게 큰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시종일관 전력을 다해 사람을 구원한다. 하나님은 친히 만든 사람이 완전히 멸망하길 원치 않는다. 지금 또 너희들 가운데 와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더욱 구원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너희들을 미워했다면 또 이렇게 큰 사역을 하여 직접 너희들을 인도하겠는가? 굳이 이런 고난을 겪을 필요가 있겠는가? 너희들에게 미움도 없고 조금의 악의도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진실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사람의 패역 때문에 심판으로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너희들은 생활할 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며, 이 음란하고 죄악이 넘치는 땅에 살고 있기에 음란하고 더러운 귀신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더 타락하는 것이 안타깝고, 너희가 이렇게 더러운 땅에 살면서 사탄에게 마구 짓밟히고 음부에 떨어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오로지 너희들을 얻고 철저히 구원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들에게 정복 사역을 하는 주된 목적이며, 또한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4)>에서 발췌

24. 하나님이 너에게 행하는 것이 모두 사랑이고 구원임을 보지 못하고, 이것이 그저 일종의 방식일 뿐이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의 세계로 돌아가 고통과 고난을 겪으라! 이 흐름 속에서 이 심판과 커다란 구원을 누리고 인간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이 모든 복과 이 사랑을 누리고 싶다면, 온순하게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고 온전케 되어라. 네가 지금 심판으로 인해 약간의 고난과 연단을 받고 있지만, 이 고난은 가치가 있고 의의도 있다. 형벌과 심판이 사람에게 연단이고 무정하게 들춰내 밝히는 것이지만,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의 육체를 정죄하여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죄와 육체를 징벌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으로 엄하게 들추어 밝히는 것도 모두 너를 바른길로 이끌기 위함이다. 너희들이 이렇게 많은 역사를 직접 겪었지만 하나님이 너희들을 비뚤어진 길로 인도한 적은 없지 않은가! 모든 것은 네가 정상 인성으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너의 정상 인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역은 너에게 감당하기 힘든 짐을 억지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필요한 것을 바탕으로, 너의 연약함에 따라, 너의 실제 분량에 맞추어 행해지는 것이다. 네가 지금은 꿰뚫어 보지 못하여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 같고, 내가 너를 미워해서 날마다 형벌하고 심판하고 꾸짖는다고 여기지만, 네가 받는 형벌과 심판은 사실 너에 대한 사랑이고 커다란 보호다. 이 단계 사역의 더 깊은 의의를 알지 못한다면 너는 이 사역을 겪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 너는 이런 구원에서 위안을 얻어야 하고, 잘못된 생각에 빠져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겪었으면 네가 이 정복 사역의 의의를 분명하게 알 것이므로 더 이상 이런저런 이의를 가져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정(4)>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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