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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상> 세 편에서 발췌한 말씀

1. 요한은 예수가 세례를 받기 7년 전부터 천국 복음을 널리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한 사역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후에 예수가 한 사역보다 큰 것 같지만, 어쨌든 그는 선지자에 불과하다. 그는 사역하고 말할 때에도 성전에 들어가지 않고 성전 외의 여러 마을에서 하였다. 물론, 유대 백성들 가운데서 하였는데, 특히 가난한 유대 백성들 가운데서 하였다. 그는 상류 사회의 인물은 아주 적게 접촉하였고, 유대 평민 가운데서 복음을 널리 전하여 주 예수를 위해 적합한 사람을 예비하고 적합한 역사 장소를 예비하였을 뿐이다. 길을 닦는 그런 선지자가 있었기에 주 예수가 와서 십자가의 길을 바로 전개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역사할 때는 사람을 택하는 사역을 할 필요가 없고, 자신이 친히 사람을 찾거나 역사 장소를 찾을 필요도 없다. 그는 이런 사역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적합한 사람이 와서 그를 위해 예비하였던 것이다. …요한은 7년 동안 사역하였는데, 곧 7년 동안 천국 복음을 전하였다. 사역하는 기간에 그가 행한 표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사역은 단지 길을 닦는 것이고 예비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지, 그 외의 사역, 예수가 하려는 사역은 그와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사람들에게 죄를 자백하게 하고, 회개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구원을 얻게 하였을 뿐이다. 비록 그가 새로운 사역을 하고 이전 사람이 간 적이 없는 길도 개척하였지만, 그는 단지 예수를 위하여 길을 닦는 자이고 준비 사역을 하는 선지자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예수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다. 비록 예수는 첫 번째로 천국 복음을 전한 사람이 아니고 또한 요한이 밟은 길을 이어 갔지만, 예수의 사역은 아무도 대체할 수 없었고, 예수가 한 사역은 요한을 훨씬 뛰어넘었다. 예수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예비할 리는 없었다. 예수가 한 사역은 직접 하나님을 대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몇 년 동안 일을 하였든, 그는 여전히 선지자이고 여전히 길을 닦는 자였다. 예수는 3년 동안 사역을 하였으나 요한이 한 7년 동안의 사역을 뛰어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한 사역의 실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1)>에서 발췌

2. 예수가 당시에 역사할 때, 일부 사역은 구약성경이나 율법시대의 여호와 말씀과 모세의 율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 것으로 일부 사역을 하였다. 당시에 그는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사람을 교훈하였으며, 그를 적대하는 바리새인들을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 훈계하였고, 성경 말씀으로 그들의 패역을 드러내어 그것으로 그들의 죄를 정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예수가 한 것을 혐오하였는데, 특히 예수의 많은 사역이 성경의 율법에 따라 한 것이 아니고, 게다가 예수의 교훈이 그들의 말보다도 높고 심지어 성경 선지자의 예언보다도 높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사역은 단지 구속하는 것과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더 많은 말씀을 하여 사람들을 정복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사람을 교훈할 때는 성경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였다. 그는 사역을 할 때, 설사 성경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한 사역은 말씀의 사역이 아니고 인류를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인류의 속죄제만 되었을 뿐 인류의 말씀 원천은 되지 않았다. 그는 이방 사역, 즉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역을 하였는데,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한 것이다. 설사 그가 사역하는 것이 성경의 기초에서 하고 옛 선지자의 예언으로 바리새인들을 정죄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십자가의 사역을 충분히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 성경에 기록된 옛 선지자의 예언의 기초 위에서 역사한다면, 너희를 정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약에는 너희들, 중국 사람의 패역과 죄업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너희들의 그 죄악의 역사(歷史)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성경에서 배회한다면, 너희는 언제나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유한한 이스라엘 사람의 역사로는 너희가 악한지, 선한지를 정하거나 너희를 심판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말해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사람의 역사에 따라 너희를 심판한다면, 너희가 오늘처럼 따를 수 있겠느냐? 너희를 다루기 힘들다는 것을 너희들 자신은 아느냐?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단계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정복 사역을 완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정복하기 위해 성경을 벗어나 말을 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1)>에서 발췌

3. 오늘날 하는 것은 완전히 현실에 근거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율법시대에 여호와가 역사한 기초에서 하는 것이지 그 범위를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입과 혀를 경계해야 하고 음란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은 그런 것도 구약 율법이 아니냐? 지금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십계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이전보다 더 높은 계명과 율법이지 그것을 폐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각 단계 사역은 모두 앞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에 대한 요구가 단지 계명을 지키고 구약 율법을 지키는 데에만 국한되고, 너희에게 하라고 하는 것이 모두 이스라엘 사람이 하는 것과 같고, 심지어 또 여호와가 정한 율법을 외우라고 요구한다면, 너희에게 전혀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단지 유한한 몇 가지 계명만 지키거나 무수한 조목의 율법만 기억한다면, 너희의 옛 성정은 여전히 깊이 뿌리박혀 파낼 수가 없다. 그러면 너희는 갈수록 타락할 수밖에 없고, 너희는 아무도 순복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간단한 몇 가지 계명이나 무수한 조목의 율법은 너희가 여호와의 행사를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과 다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계명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여호와의 행사를 볼 수 있었고, 여호와께 일편단심으로 충성할 수 있었지만, 너희는 절대로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 구약시대의 몇 가지 계명만으로는 너희의 마음을 바치게 할 수 없고 너희의 보호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희를 느슨하게 하여 음부에 떨어지게 할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은 정복 사역이고, 전적으로 너희의 패역과 옛 성정을 겨냥해 하는 것이기에 예수와 여호와의 선한 말씀은 오늘날의 이 엄한 심판의 말씀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다. 이 엄한 말씀이 없으면 몇천 년 동안이나 패역했던 너희 이 ‘전문가’들을 전혀 정복할 수 없다. 구약 율법은 일찍이 너희에게서 효능을 잃었고, 오늘날의 심판은 그 당시 율법의 위력을 훨씬 뛰어넘는다. 너희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그래도 심판이지 율법으로 조금 단속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너희는 시초의 인류가 아니라 몇천 년 동안이나 패괴된 인류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에게 도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두 오늘날 사람의 실제 정형, 오늘날 사람의 소질과 실제 분량에 근거해 요구하는 것이지, 규례를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너의 옛 성정이 변화될 수 있게 하고, 너의 관념을 다 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1)>에서 발췌

4.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그를 믿는 자라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기만 하면 속량되었고,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에는 사람을 온전케 하거나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국의 복음을 가져오고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는 한 단계 사역을 위한 것이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그의 사역은 전부 끝났다. 그러나 이 단계의 정복 사역은 반드시 더 많은 말씀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며, 또한 많은 과정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가 이전에 한 사역이나 여호와가 한 사역의 심오한 비밀을 다 열어 놓아 모든 사람이 다 분명하고 밝히 알고 믿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말세 사역인데, 말세는 사역을 마무리하고 끝마칠 때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 사역에서 너에게 여호와의 율법과 예수의 구속을 밝히 알게 하는 것은 주로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알게 하고,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의의와 실질을 터득하게 하며, 예수가 한 많은 사역과 예수가 한 많은 말씀의 목적, 더 나아가 성경에 대한 너의 맹목적인 숭배까지 알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것을 다 꿰뚫어 보게 하는 것이다. 너에게 예수가 그때 한 것과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것을 알게 하고, 모든 진리, 생명, 길을 알게 하고 보게 한다. 예수는 그 단계 사역에서 왜 전체 사역을 마무리하지 않고 갔느냐? 그것은 그 단계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가 한 말씀도 끝났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그의 사역도 그에 따라 전부 끝났으며, 그 단계는 이 단계처럼 반드시 할 말을 다 하고 모든 사역을 다 마무리해야 사역을 끝마치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그 단계 사역에서 많은 말씀을 속속들이 다 하지 않았고, 밝히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다 했는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가 하는 것은 말씀의 직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떠났다. 그 단계는 주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한 것이므로, 이 단계와는 다르다. 이 단계 사역은 주로 마무리하고, 마당을 깨끗이 하고, 모든 사역을 끝마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을 끝까지 다 하지 않으면 사역을 끝마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단계는 말씀으로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예수는 자신이 한 많은 사역을 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였어도 조용히 떠났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 해석하고도 아주 옳다고 여기며 틀린 줄도 모른다. 마지막 이 단계에서는 사역을 철저히 끝마치고 마무리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깨닫게 하고 알게 한다. 사람 내면의 관념과 속셈, 잘못된 터득 방식, 여호와의 역사에 대한 관념, 예수의 역사에 대한 관념, 이방인에 대한 견해, 치우치고 그릇된 모든 점을 다 돌려세워 사람에게 모든 인생의 바른길을 알게 하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을 알게 하고 모든 진리를 알게 하면, 이 단계 사역은 끝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2)>에서 발췌

5. 여호와가 한 사역은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고 시작이며, 이 단계 사역은 사역을 끝마치는 것이고 결말이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선민 가운데서 하였고 가장 거룩한 곳에서 천지개벽을 하였으며, 마지막 단계는 가장 더러운 국가에서 하여 세상을 심판하고 시대를 끝마친다. 첫 단계는 가장 광명한 곳에서 역사하였고, 마지막 단계는 가장 흑암한 곳에서 역사하여 이 흑암들을 몰아내고 광명을 가져와 이 사람들을 다 정복한다. 가장 더럽고 가장 흑암한 곳의 사람을 정복하여 모든 사람들이 입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고 참 하나님임을 시인하고 심복구복하게 하는 이 사실로 전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을 하는데, 이 단계 사역은 대표적인 의의가 있다. 이 시대의 사역을 다 하면 6천년의 경영 사역이 철저히 끝나게 된다. 가장 흑암한 곳의 사람을 이미 정복하였다면, 그 외의 곳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오직 중국의 정복 사역만이 대표적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모든 흑암 세력을 대표하고, 중국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고 혈기에 속한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중국 사람은 큰 붉은 용에게 가장 심하게 패괴되고,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며, 인성이 가장 비열하고 가장 더럽다. 그러므로 전체 패괴된 인류의 전형적인 대표이다… 왜 늘 너희를 내 경영 계획의 부속물이라고 하겠느냐? 사람의 패괴, 더러움, 불의, 대적, 패역, 이런 것들이 중국 사람에게서 가장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온갖 모양으로 드러난다. 한 방면으로는 소질이 낮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생활과 사상이 뒤떨어졌으며, 생활 습관, 사회 환경, 출생 가정이 다 좋지 않고 다 가장 뒤떨어졌다. 이 사람들은 지위도 낮아 이곳에서 역사하면 대표성이 있는 것이다. 시범 사역을 전면적으로 하면 이후에 사역을 전개하기에 더 편리하게 된다. 이 단계 사역을 이루게 되면 이후의 사역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이 단계 사역이 이루어지고 큰 공이 철저히 이루어지면 온 우주의 정복 사역도 철저히 끝나게 된다. 사실, 너희들 가운데서 하는 사역이 성공되면 전 우주의 사역이 성공된 것과 같다. 왜 너희에게 모형과 표본이 되라고 하는지, 그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패역이면 패역, 대적이면 대적, 더러움이면 더러움, 불의면 불의가 있는데, 이들은 인류의 모든 패역을 다 대표하였다. 이 사람들은 정말 간단치 않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을 정복의 모델로 삼는 것이다. 물론, 정복한 후에는 표본과 모형이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2)>에서 발췌

6. 이스라엘에서 첫 단계 사역을 한 것은 가장 대표적인 의의가 있다. 이스라엘 사람은 가장 성결하고 가장 얕게 패괴된 인류이기에 그 땅에서 천지개벽을 한 것은 가장 의의 있다. 인류의 선조는 이스라엘 땅에 있었고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 역사의 발원지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 그 사람들은 가장 성결하였고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역사하면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가장 얕게 패괴된 인류이다. 처음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제사장 옷을 입고 제사장 화관을 쓰고 늘 성전 안에서 섬겼는데, 그들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한 사람들이고 또한 하나님의 최초의 역사 대상이었다. 그들은 전 인류의 표본과 모형에 속하고, 성결의 표본과 모형, 의인의 표본과 모형에 속한다. 욥, 아브라함, 롯 또는 베드로, 디모데 등등의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이고, 가장 성결한 표본과 모형이다. 이스라엘은 인류 중에서 가장 일찍 하나님을 경배한 국가이고, 거기에서 나온 의인 역시 가장 많다. 그들에게 역사한 것은 그 후에 온 땅에서 인류를 더 잘 경영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행적’과 여호와를 경배하면서 행한 의를 기록하여 은혜시대에 이스라엘 외의 사람들의 표본과 모형으로 삼았는데, 그들이 한 것으로 몇천 년의 사역을 오늘날까지 유지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2)>에서 발췌

7. 은혜시대는 예수의 이름을 기점으로 하여 시작된 것이다. 예수가 직분을 시작할 때는 성령이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기 시작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고,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를 믿는 사람이 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한 것이었고, 사역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다. 구약의 율법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 뒤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 이상 여호와라 부르지 않고 예수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을 하기 시작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8. 예수가 재림할 때는 벌써 시대가 바뀌었는데, 계속 예수라고 불릴 수 있겠느냐? 설마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로만 불러야 한단 말이냐? 설마 더 이상 새 시대에 새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단 말이냐? 단 하나의 ‘사람’ 형상과 하나의 특정된 이름이 하나님의 전부란 말이냐?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가 어찌 서로 다른 시대에 같은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 그가 어찌 낡은 것을 지키겠느냐? ‘예수’, 이 이름은 구속 사역으로 인해 불린 이름인데, 말세에 예수가 재림할 때에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느냐? 또다시 구속 사역을 할 리 있겠느냐?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 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겠느냐? 그것은 사역하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냐? 단 하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전부를 다 대표할 수 있겠느냐? 그러기에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이름으로 시대를 대체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히 대표할 수 없고 시대성을 띤 하나님의 성품만 대표하기 때문에, 사역을 대표할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이름을 하나 택하여 전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다. 여호와 시대든 아니면 예수 시대든 다 이름으로 시대를 대표한 것이다. 은혜시대가 끝나고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여 예수도 이미 왔는데, 그가 어찌 또 예수라고 불릴 수 있겠느냐? 그가 어찌 또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올 리가 있겠느냐? 너는 예수가 나사렛 사람의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잊었느냐? 너는 ‘예수’가 인류의 구속주일 뿐이라는 것을 잊었느냐? 그가 어찌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말세의 사역을 담당할 리가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9. 하나님은 땅에 한 번 오면 이름을 한 번 바꿔야 하고, 한 번 오면 성별을 바꾸고, 형상을 바꾸고, 사역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므로 중복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가 이전에 왔을 때 예수라고 불렸는데, 이번에 와서도 계속 예수라고 불리겠느냐? 그가 이전에 왔을 때 남성이었는데, 이번에 와서도 여전히 남성이겠느냐? 이전에 왔을 때 은혜시대의 십자가 사역을 하였는데, 이번에 와서도 여전히 사람을 구속하여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겠느냐? 또 십자가에 못 박히겠느냐? 그렇게 한다면 중복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냐? 너는 하나님이 항상 새롭다는 것을 모르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0.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고 하는데, 그 말도 맞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이 영원불변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의 이름이 바뀌고 사역이 바뀌었다고 하여 그의 실질이 바뀌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다. 이것은 영원불변한 것이다. 네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이 끝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그러나 하나님이 또 항상 새롭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오늘날까지 인류를 이끌어 올 수 있었겠느냐? 그가 영원불변한 하나님인데, 왜 이미 두 시대의 사역을 하였겠느냐? 그의 사역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의 성품을 점차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내는 것인데, 나타내는 것은 모두 그의 고유한 성품이다. 처음에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에게 감춰진 것이었고, 그가 지금까지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아 사람은 그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역사로 사람에게 자신의 성품을 점차적으로 나타내는데, 이렇게 역사한다고 하여 시대마다 성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끊임없이 바뀐다고 하여 하나님의 성품도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역하는 시대가 다름으로 인해 하나님이 자신의 고유한 모든 성품을 점차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내어 하나님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에게 원래 특정된 성품이 없었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시대가 다름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도 점차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그릇된 터득이다. 하나님은 고유한 특정된 성품, 곧 자신의 소시를 사람에게 나타내는데, 시대가 다름에 따라 나타내는 것이지, 한 시대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발표해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항상 새롭다’는 이 말은 하나님의 사역을 놓고 말한 것이고,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고유한 소유소시를 놓고 말한 것이다. 어쨌든 너는 6천년의 사역을 어느 부분에 지정해 놓거나 한 마디 고정된 말에 못 박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사람이 우매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나님의 사역은 한 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마치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대체할 수 없고, 하나님이 또 예수의 이름으로도 역사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있는 상징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1.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고 사탄이 될 수 없으며, 사탄은 영원히 사탄이고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기묘,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위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는 영원불변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끊임없이 심화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새롭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게 되고, 시대마다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게 되며, 시대마다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자신의 새로운 뜻과 새로운 성품을 보게 한다. 새 시대에 사람이 새로운 성품의 발표를 보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아 놓지 않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2. 하나님은 시대마다 중복되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지금이 말세인 이상, 하나님은 말세의 사역을 하고 말세에 나타낼 자신의 모든 성품을 나타내려고 한다. 말세라고 하면 또 다른 시대이다. 예수는 너희가 그때 반드시 재앙을 겪게 되고, 반드시 지진과 기근, 온역을 겪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때라고 하면 더 이상 낡은 은혜시대가 아니라 다른 시대임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사람의 말처럼, 하나님은 영원불변한 분이고 하나님의 성품은 영원히 긍휼과 자비이며, 사람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여 어떤 사람이든 다 구원하며 전혀 미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수 있겠느냐?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죄인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제단에 바침으로 이미 구속 사역을 완성하였다. 예수가 이미 은혜시대를 끝마쳤는데, 말세에 또다시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다면 무슨 의의가 있겠느냐? 계속 그렇게 한다면 예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이번에 와서 십자가의 사역을 하지 않지만 여전히 긍휼과 자비를 베푼다면, 그가 시대를 끝마칠 수 있겠느냐? 긍휼과 자비만 베푸는 하나님이 시대를 끝마칠 수 있겠느냐? 시대를 끝마치는 마지막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형벌과 심판인데, 모든 불의를 드러내어 만민을 공개적으로 심판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런 성품이어야 시대를 끝마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3. 이미 말세가 되어 만물은 각기 종류대로 나뉘는데, 모두 각기 다른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부류로 구분된다. 이때는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귀착지를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체험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는 다 드러날 수 없다. 오직 형벌과 심판을 통해야만 만물의 결말을 다 드러낼 수 있다. 사람은 형벌과 심판 속에서만이 본색이 드러나게 되어 악한 자는 악한 것에, 선한 자는 선한 것에 속하게 되므로 다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것이다. 형벌과 심판으로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상선벌악(賞善罰惡)하고, 만민을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귀복시킨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으로 도달해야 한다. 사람이 극도로 패괴되었고 사람의 패역 또한 너무나 심하기에,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낸 하나님의 공의 성품만이 사람을 철저히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 있는데, 이것으로 모든 불의한 자들을 크게 징벌한다. 그러므로 이런 성품은 다 시대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성품을 나타내고 공개하는 것은 각 새 시대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의의 없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는 말세에도 여전히 사람에게 끝없는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사랑해 주고, 공의로운 심판이 없이 사랑만 있고 관용해 주고 인내해 주고 사해 주며,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계속 용서만 해 주고 공의 심판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전체 경영은 언제 매듭지을 수 있겠느냐? 그런 성품으로 언제 사람을 인류의 적합한 처소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는 인자한 법관이 있는데, 그가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든 다 사랑해 주고, 어떤 사람이든 다 포용하고 사랑해 준다면, 언제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겠느냐? 말세에 오직 공의로운 심판만이 인류를 각기 부류대로 나눌 수 있고, 사람을 더 새로운 경지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렇게 심판과 형벌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전체 시대를 끝마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4. 전체 경영 중에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다 분명하다. 은혜시대는 은혜시대이고 말세는 말세이며, 어느 시대든 다 뚜렷한 구별이 있다. 그것은 시대마다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있기 때문이다. 말세의 사역을 하려면 반드시 불사름, 심판, 형벌, 진노, 훼멸을 지니고 시대를 끝마쳐야 한다. 말세라고 하면 마지막 시대를 가리킨다. 마지막이라면 시대를 끝마치려는 것이 아니겠느냐? 시대를 끝마친다고 하면 반드시 형벌과 심판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만 시대를 끝마칠 수 있다. 예수는 사람을 계속 생존하고 계속 살아가게 하기 위해 그것도 더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해, 사람이 계속 타락하여 음부와 지옥에서 살지 않도록 죄에서 구원하였고,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음부와 지옥에서 구원해 주었다. 이제는 말세가 되었으니, 하나님은 사람을 멸절시키고 인류를 완전히 훼멸시키려고 하는데, 인류의 패역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긍휼과 자비의 성품으로는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6천년의 경영 계획을 완성할 수도 없다. 시대마다 특별한 대표적인 성품이 있고, 시대마다 하나님이 해야 할 사역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에는 시대마다 발표하는 진정한 성품이 있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시대에 따라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5. 율법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류를 인솔하는 사역을 하였고, 땅에서 첫 단계 사역을 전개하였다. 그 단계 사역은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고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솔한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솔한 것은 땅에서 하나님이 사역할 근거지를 펼치는 것이었다. 그 근거지로 이스라엘 이외의 사역을 확장하였는데, 이스라엘에서 밖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후의 사람은 모두 점차적으로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여호와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였고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였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사역을 밖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한 첫 번째 성지이다. 하나님이 제일 처음 땅에서 역사한 것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한 것인데, 그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다. 은혜시대에 한 사역에 대해 말하자면, 예수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다. 그의 소유소시(所有所是)는 은혜, 자비, 긍휼, 포용, 인내, 겸손, 사랑, 관용인데, 그가 와서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한 것은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성품에 대해 말하자면, 그의 성품은 긍휼과 자비이다. 그의 긍휼과 자비에 따라,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자신을 전부 바칠 정도로 사람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고,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며 그의 사랑, 그의 긍휼, 그의 구원으로 각 사람을 동반하고 있다. 사람은 오직 예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해야만 평안과 희락을 얻을 수 있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그의 지극히 크고 지극히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그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그를 따르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고 죄사함을 받았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이었으므로 은혜시대의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는 구약성경을 벗어나 새로운 사역을 하였는데, 그의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끝났다. 이것이 예수가 한 모든 사역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는 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이었고, 은혜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을 대표하였으며, 말세에는 그의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 곧 전능자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인솔하고,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얻으며, 최종에는 시대를 끝마친다. 각 시대에서, 각 단계 역사에서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6. 가령 하나님이 각 시대에 하는 사역이 다 같고 다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면, 사람은 어떻게 인식하겠느냐? 하나님은 여호와라고만 불려야 하고, 여호와라고 불리는 분만이 하나님이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인식할 것이다. 혹은 하나님은 예수일 수밖에 없고, 예수란 이름 외에는 더 이상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없고, 예수 외에는 여호와도 하나님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전능한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라고 여긴다. 또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므로 그를 예수라고 불러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면 너는 규례를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한 범위 내에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 불리는 이름, 지니는 형상, 하는 각 단계의 사역은 지금까지 전혀 규례를 지키지 않았고 전혀 제한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이면서도 예수이고 또한 메시아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의 사역이 점차 바뀌면서 그의 이름도 상응하게 바뀌었는데, 어느 한 이름도 그를 완전하게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불리는 이름은 다 그를 대표할 수 있고, 각 시대마다 하는 사역은 다 그의 성품을 대표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7. 가령 말세가 왔을 때, 네가 본 하나님이 여전히 예수이고, 또한 흰 구름을 타고 오고, 모습도 여전히 예수 형상이고, 여전히 예수가 “너희는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고, 금식기도를 해야 하고, 원수를 사랑하되 자기의 목숨을 아끼는 것과 같이 사랑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인내하고 겸손할 수 있어야 한다. 너희는 이런 것들을 해내야만 내 제자가 될 수 있다.”라는 이런 말씀을 한다고 하자. 만약 너희가 이런 것을 해내어 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은혜시대의 사역에 속하지 않겠느냐? 가르치는 것도 여전히 은혜시대의 도에 속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그런 말씀을 듣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그것은 여전히 예수가 한 사역이라고 느껴지지 않겠느냐? 그러면 중복되지 않겠느냐? 사람에게 누림이 있을 수 있겠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 지금의 이 정도에만 머물러 있을 뿐 더 이상 앞으로 발전할 수 없고, 그의 능력도 그저 이 정도일 뿐 새 사역이 없으며, 있는 것을 다 발휘했다고 느낄 것이다. 2천 년 전에도 은혜시대였는데, 2천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은혜시대의 도를 가르치면서 여전히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이 보고는 ‘하나님은 이 정도의 능력밖에 없으신가? 내가 전에는 하나님이 정말 지혜로우시다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사람을 포용하고 인내하고 원수를 사랑할 줄만 아시고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줄 모르시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영원히 은혜시대에 규정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여길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의 사역이 되풀이되겠느냐?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며, 또한 너희가 보게 되는 것이나 접하게 되는 것은 너희가 상상한 것이나 들은 전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8. 예수 이름,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해 밝히 설명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만일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바꿀 리가 없기에 하나님은 예수라고 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 이 말이야말로 모독인 것이다! 말해 보아라. 단지 ‘예수’라는 이름,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어느 이름도 하나님의 전부를 개괄할 수는 없고, 어느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그 많은 이름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전부 밝히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풍부해서 그야말로 다 인식할 수가 없다. …하나의 특정한 단어와 특정한 이름만으로는 전혀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할 수 없다. 그러면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이름이 고정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이처럼 위대하고 거룩한데, 너는 하나님이 시대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러므로 각 시대마다 하나님 자신이 친히 역사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시대에 부합되는 이름으로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갖춘 특정한 이름으로 그 시대의 하나님 성품을 대표하는데, 하나님이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다. …어느 날이 되면, 하나님은 여호와라고도 하지 않고 예수라고도 하지 않고 메시아라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창조주’이다. 그때에는 그가 땅에서 취한 이름이 모두 끝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땅에서 하는 사역이 끝나게 되고, 그에 따라 그의 이름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물이 다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가 계속 아주 합당하면서도 불완전한 이름으로 불릴 필요가 있겠느냐? 너는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따지고 있느냐? 네가 아직도 하나님을 여호와라고만 해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아직도 하나님은 예수로만 불려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본래 이름이 없었는데 사역을 해야 하고 인류를 경영해야 했기에 하나의 이름이나 두 개의 이름 또는 더 많은 이름을 취했을 뿐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어느 이름으로 불리든 다 그 자신이 자유로 택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피조물인 네가 규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 자신의 이름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따라, 인류의 언어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사람이 개괄할 수는 없다. 너는 다만 “하늘에 하나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은 하나님이라고 하고 큰 능력이 있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너무나 지혜로우시고 너무나 높고 크시며 너무나 기묘하시고 너무나 신비로우시고 너무나 전능하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 더 말하고자 해도 말할 수 없고 그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예수 이름 하나만으로 하나님 자신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 말세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가 역사하지만,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바뀌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9. 예수가 당시에 와서 사역을 한 것은 그 당시에 성령이 그에게 지시한 대로 한 것이고 성령이 하려는 대로 한 것이지, 구약 율법시대에 따라, 여호와가 한 사역에 따라 한 것이 아니다. 비록 예수가 와서 한 사역은 여호와의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고 여호와가 정한 계명을 지킨 것이 아니지만, 그들의 근원은 하나이다. 예수가 한 사역은 예수 이름을 대표한 것이고, 은혜시대를 대표한 것이다. 여호와가 한 사역은 여호와를 대표한 것이고, 또한 율법시대를 대표한 것이다. 그들이 역사한 것은 하나의 영이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가 한 사역은 은혜시대만 대표할 뿐이고, 여호와가 한 사역은 구약 율법시대만 대표할 뿐이다. 여호와는 다만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인솔했고, 이스라엘 외의 각 족속도 인솔했다. 신약 은혜시대에 예수가 한 사역은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 이름으로 역사하여 시대를 이끈 것이다. 네가 만일 예수는 여호와 사역의 기초에서 사역하면서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지 않고 완전히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여호와가 한 사역에 따라, 이사야가 한 예언에 따라 사역하였다고 말한다면, 예수는 성육신이 아니다. 그가 그런 사역을 하였다면, 그는 율법시대의 사도나 일꾼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20. 네가 말한 대로라면, 예수는 시대를 개척할 수 없고 따로 사역을 할 수도 없다. 마치 성령이 반드시 여호와를 위주로 역사해야 하고, 여호와 외에는 성령이 더 새로운 사역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이 예수의 사역을 이렇게 인식한다면, 그것은 다 틀린 것이다. 사람이 만약 예수가 한 사역은 모두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예수는 성육신 하나님이냐, 아니면 선지자에 속하느냐? 이런 논법대로라면 은혜시대는 없을 것이고, 예수를 성육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한 사역은 구약 율법시대를 대표할 뿐 은혜시대를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가 와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로운 시대를 전개할 뿐만 아니라, 이전에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을 깨뜨리고, 이스라엘에서 여호와가 한 사역에 따라 하지 않고, 여호와의 낡은 규례대로 하지 않고, 어떤 규례에도 맞추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새로운 사역을 해야만, 새로운 시대가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21. 하나님 자신이 와서 시대를 개척하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 와서 시대를 끝마친다. 사람은 시대를 전개하는 사역을 할 수 없고,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도 할 수 없다. 예수가 여호와의 사역을 끝마치지 않았다면, 그는 사람일 뿐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예수는 와서 여호와의 사역을 끝마쳤고 또한 여호와의 사역을 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사역을 전개하였고 자신의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새로운 시대임을 증명하고, 예수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한다. 그들은 확연히 다른 두 단계의 사역을 하였는데, 한 단계의 사역은 성전 안에서 하였고, 한 단계의 사역은 성전 밖에서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한 단계의 사역은 율법으로 사람을 인솔하여 생활하도록 한 것이고, 한 단계는 속죄제로 드린 것이다. 두 단계의 사역은 확연히 다른데, 이것은 신구 시대의 구분이고, 조금도 틀림없는 두 시대이다! 그들이 역사한 장소는 다르고, 사역한 내용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다. 그리하여 두 시대로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신구약은 신구 시대를 가리킨다. …비록 서로 다른 두 이름으로 불렸지만 한 분의 영이 두 단계의 사역을 한 것인데, 사역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이름이 다르고 사역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시대도 다르다. 여호와가 오면 여호와 시대이고, 예수가 오면 예수 시대이다. 그러므로 한 번 오면 불리는 이름이 하나 있고,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며,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는데, 하나의 이름은 새로운 출로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분이고,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歷史)는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한다. 6천년 경영 계획을 끝마치려면 반드시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해야 한다. 날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해마다 새로운 사역을 해야 하며,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고 신기원을 개척하고 더 새로운 사역과 더 큰 사역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을 가져오고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22. 사람의 상상대로라면 예수가 또 와야 하고, 말세에도 여전히 예수라고 해야 하며, 또한 흰 구름을 타고 와야 하고,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임해야 한다. 그러면 중복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냐? 성령이 계속 낡은 것을 지킬 리가 있겠느냐? 사람이 여기는 것은 모두 관념이고, 사람이 터득하는 것은 글자의 뜻대로 터득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의 상상대로 터득하는 것이기에 전혀 성령 역사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렇게 할 리가 없고, 그렇게 우매하거나 어리석을 리가 없다. 그의 역사는 네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람이 한 것과 생각한 대로라면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온다든가, 너희들 가운데 임하여 너희가 그를 본다든가, 흰 구름을 타고 너희에게 자신을 예수라고 말한다든가, 너희가 또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고서 예수임을 알아본다든가, 또한 다시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에게 능력이 매우 큰 하나님이 된다든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에게 새 이름을 주고 너희 각 사람에게 흰 돌을 하나씩 준 다음 너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든가, 천국으로 받아들인다든가’ 하는 것인데, 그렇게 여긴다면 사람의 관념에 속하지 않겠느냐?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대로 역사하겠느냐, 아니면 사람의 관념에 반하여 역사하겠느냐? 사람의 관념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사람은 모두 사탄에게 패괴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대로 한다면 사탄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가 피조물과 동류가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피조물은 지금 이미 사탄에게 이 정도로 패괴되어 다 사탄의 화신이 되었다. 그러면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탄의 것에 따라 한다면 사탄과 한패가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그는 사람의 관념대로 할 리가 없고, 너의 상상대로 할 리가 없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인 것은 틀림없지만, 너는 아무도 하나님의 심오한 비밀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너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너는 성령이 너를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준 것이라고 100% 자신 있게 보증할 수 있느냐? 설마 성령이 너에게 그렇게 직접 지시했단 말이냐? 성령이 지시한 것이냐, 아니면 너의 관념으로 그렇게 여긴 것이냐? 그가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관념과 머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이사야가 한 말일지라도 네가 100% 자신 있게 해석할 수 있겠느냐? 네가 그의 말을 감히 해석할 수 있느냐? 네가 이사야의 말을 감히 해석하지 못하면서 왜 예수의 말씀을 감히 해석하느냐? 예수가 높으냐, 아니면 이사야가 높으냐? 예수가 높은데, 왜 너는 예수가 한 그런 말씀을 다 해석하느냐?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미리 너에게 다 알려 줄 리 있겠느냐? 피조물은 아무도 알 수 없고, 하늘의 사자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는데, 네가 알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는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다. 지금 너희에게 가장 관건적인 것은 3단계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23. 여호와부터 예수까지, 예수부터 이 단계까지 3단계 역사가 이어져 오면서 완전한 경영이 되었는데, 다 한 분의 영이 한 역사이다. 창세 이래 하나님은 계속 역사하면서 인류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처음과 나중이고, 시작과 끝이며, 시대를 전개하는 분이자 시대를 끝마치는 분이다. 3단계 역사는 시대가 서로 다르고 장소가 서로 다르지만, 확실히 한 분의 영이 한 것이다. 3단계 역사를 분리시키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이제 너는 1단계부터 지금까지 한 사역은 의심할 바 없이 한 분의 하나님이 한 것이고, 한 분의 영이 한 사역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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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④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⑤귀복(歸服): 돌아와 복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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