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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하나님을 믿는 길에 들어서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룽광

1991년, 저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은혜를 입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기묘하게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을 읽으면 누림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할 때에도 늘 성령의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고, 마음속으로 느끼게 된 그 달콤함과 누림은 꼭 좋은 일이 임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예배 장소에서 성령이 크게 역사하실 때면, 저는 자신이 마치 육체를 벗어나 셋째 하늘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세속의 모든 것은 하늘 끝 저 멀리 떨쳐 버렸고, 마음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는지 몰랐습니다. 자신이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말씀이 점점 많아지게 되면서(그때 하나님의 말씀은 한 편씩 교회에 발부되었습니다.) 제가 알게 된 것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때의 저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장자’를 언급한 것을 보고, 게다가 하나님께서 장자에게 주는 복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알고서는 바로 장자가 되는 것을 좇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게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나중에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부분을 보게 되자 저는 마음이 더 급해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는 이렇게 늦게 믿었는데 저렇게 좋은 복을 얻을 수 있을까? 안 되겠어. 좀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집에서 저에게 먹지를 대고 복사하는 본분을 시키자 저는 유달리 적극적으로 응하였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장자의 복을 얻기 위해 저는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하였고, 직장도 그만두었습니다. 장자만 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포기해도 되고,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해도 달가웠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우리가 장자라고 명확하게 언급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사람에게 야심이 있고 사치스런 욕망이 있기 때문에,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또 우리를 높여주시니 우리는 당연히 장자일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아주 당연하게 자신을 장자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새로 발부되어 내려온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주 ‘효력자’가 언급되는 것을 보게 되었고, 게다가 효력자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운 좋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랐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나도 효력자가 되었을 걸.’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자에 대해 하신 축복과 약속의 말씀을 보게 되면 그중에는 제 몫도 있다고 생각했고, 하나님께서 장자에 대해 위로하고 권면하는 말씀을 보면 마치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대재난은 절대 나의 아들,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시각마다 분초마다 나의 아들을 보살펴 줄 것이다. 너희는 절대 그 고통을 받지 않고 그 고난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 그들에게는 내 말이 응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나의 전능을 확실히 알게 하고, 생명이 더 잘 자라나 하루빨리 나를 대신해 부담을 질 수 있게 하며, 나의 경영 계획의 완성을 위해 너희의 전인(全人)을 바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너희는 이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모든 것을 다 너희에게 주어 주관하게 하고 너희의 손에 맡길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모든 기업을 이어받는데, 하물며 장자인 너희들이랴? 너희는 참으로 복이 있는 자들이다. 대재난의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복을 누릴 텐데,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68편 말씀>에서 발췌)라고 하신 말씀을 보고 저는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늘에서 이렇게 큰 떡이 떨어졌는데 어쩌면 이렇게 정확히 내 머리 위에 떨어질 수가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좀 믿기 어려웠지만 형제자매들이 저의 믿음이 너무 적다고 말할까 봐 믿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신바람 나게 예배 장소에 가 보았더니 교회에 두 사역자가 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교제할 때에 모두 자신을 효력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엄청 놀라 “당신들이 효력자라고 하면 우리는 더더욱 효력자가 아니겠습니까?”라고 캐물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우리 중국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효력자입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얘기해 주자 저는 속이 ‘덜컹’ 했습니다. ‘아니겠지! 이것이 참말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들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어두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생각을 바꿔 봤습니다. ‘이들은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가정과 일을 내려놓았고, 그렇게 많은 고생도 했고, 그렇게 많은 대가도 치르지 않았는가? 난 이들에 비하면 한참 멀잖아. 이들이 자신을 다 효력자라고 하는데 내가 뭘 더 말하겠어. 효력자라고 하면 그냥 효력자 하지 뭐.’ 이렇게 생각을 하니, 마음은 그렇게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 들고 하나님께서 효력자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효력하는 사람은 들어라! 효력할 때 나의 은혜를 조금 얻을 것이다. 즉, 너희가 잠시 동안 이후의 사역과 이후의 일을 알 수는 있지만 전혀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은혜이다. 효력을 다 했으면 머물지 말고 즉시 물러가라! 장자는 거만해서는 안 되지만 긍지를 가질 수는 있다. 그것은 내가 너희에게 무궁무진한 축복을 주었기 때문이다. 멸망될 대상은 스스로 번뇌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으로 인해 비통해하지 말라. 네가 사탄의 후예인 걸 어쩌겠느냐? 나를 위해 효력을 다 한 후에는 무저갱으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것은 네가 내 앞에서 쓸모가 없게 되었고, 이제부터 나는 형벌로 너희를 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작을 하면 끝장을 본다. 손을 대면 반드시 이루고 이룬 것은 영원까지 갈 것이다. 뭇 장자, 뭇 아들, 자민들도 이렇게 대하지만 너희를 대하는 것도 이렇게 형벌을 하는 이상 꼭 영원까지 갈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86편 말씀>에서 발췌)

그냥 한 번 읽어 보았을 뿐인데 전례 없던 아픔이 저에게 엄습해 왔습니다. 저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덮어 버리고 감히 더 보지 못하였습니다. 억울하고, 이해되지 않고, 불만스러운 감정이 순식간에 저의 마음을 덮쳤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는 행복한 요람 속에 있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하나님 집에서 쫓겨난 셈이고, 어제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오늘은 하나님의 적, 곧 사탄의 후예가 되었던 것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무궁한 축복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무저갱이 저의 거처라고 하고 게다가 형벌을 받되 영원히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축복을 안 주면 그만인데 왜 또 저를 형벌하는 것입니까? 제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 이 모든 것은 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저는 그런 현실을 대하기 싫었고 그런 현실을 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냥 꿈이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그때부터 저는 자신이 효력자라는 생각을 떠올리기만 하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로웠고,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하여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말 지혜로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고 드러내는 말씀 중간중간에는 또 심오한 비밀을 밝힌 것이 있었고, 나중의 재난과 하나님 나라의 앞날을 예언하는 부분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은 모두 제가 알고 싶은 것들이라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면 날 선 검 같은 말씀이 계속하여 저의 마음을 찔렀는데, 저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의 심판이 늘 자신을 떠나지 않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저는 자신이 사탄에게 패괴된 사실의 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큰 붉은 용의 자손이었고, 사탄의 후예였으며, 멸말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어찌할 수 없이 저는 더 이상 어떤 복도 바라지 않기로 하였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대로 그저 효력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젠 안심하고 효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던 그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늑대를 유인하여 동굴에서 나오게” 하였는데, 저의 내면에 은밀히 숨겨져 있던 것들을 전부 드러내셨습니다. 하루는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간 후에도 땅에는 찬미가 그치지 않고, 충성된 효력자들은 여전히 나를 위해 효력하고자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기능이 이미 끝나 내가 땅에 있었던 때를 그리워하기만 할 뿐이다. 그때 나는 화를 입어야 할 자들에게 재난을 내리기 시작하지만 사람마다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임을 믿는다. 나는 절대로 충성된 효력자들을 징벌하지 않을 것이고 나의 은혜만 받게 할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20편 말씀>에서 발췌)

저는 속으로 ‘장자의 명분은 더 이상 바라지 않고 큰 복도 원치 않겠어. 지금 난 충성스러운 효력자가 될 수 있게 노력할 거야. 이것이 내가 유일하게 추구할 수 있는 길이야. 지금부터 하나님 집에서 내게 뭘 하라고 시켜도 난 모두 충성을 다할 거야. 절대 충성스러운 효력자가 되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충성스러운 효력자마저 될 수 없다면 단순한 효력자밖에 안 되는데, 그런 자들은 효력이 끝나고 나면 다시 무저갱이나 유황불못에 돌아가야 합니다. ‘그럼 내가 뭘 바라겠어? 아예 안 믿고 말지!’ 저는 아무에게도 감히 이런 생각을 말하지 못하였지만 하나님 눈의 감찰을 벗어나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 선 검과 같은 말씀으로 저의 마음을 찔렀고, 저의 영혼을 쪼갰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나 외에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이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여기는데, 그 ‘충성’ 속에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 불순물이 사람을 망친다. 왜냐하면 그 불순물은 바로 일찍이 나에게 폭로된 큰 붉은 용의 음모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인데, 이렇게 간단한 일을 모를 리 있겠느냐? 나는 너의 피와 살을 지나 너의 속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이 내게는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오히려 스스로 똑똑한 척하면서 자신 외에는 아무도 자신의 속셈을 알지 못한다고 여긴다. 천지 만물 가운데 전능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현재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조그마한 희망을 품고 있는데, 희망이 실망으로 변할 때면 더 이상 못하겠다며 나가겠다고 할 것이다. 나는 한 사람도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너는 네게 있게 될 결과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이것은 내가 너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사실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18편 말씀>에서 발췌)

이런 말씀을 보고 저는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하나님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고, 사람이 사적으로 조그마한 소망을 감추고 있어도 하나님은 싫어하시고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조금 생기게 되었고, 하나님과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고 착실한 효력자가 되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움직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그 3개월 간 겪었던 것이 효력자의 시련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 시련 사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효력자의 시련을 겪고 저는 하나님이 긍휼과 자애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공의와 위엄,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고 위력이 있어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연한 일이고, 이유가 없고 조건이 없으며, 더욱이 야심이 있어서는 안 되고 사치스러운 욕망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런 믿음은 하나님을 이용하고 기만하는 것으로서 양심과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설령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고, 마지막에는 징벌을 받는다고 해도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합니다. 또한 자신은 원래 큰 붉은 용의 자손이고 사탄의 후예로서 멸망의 부류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자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 마땅한 것이고 모두 공의로운 것입니다.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 무조건 순종해야 하고, 이치를 따지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대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그때 시련 속에서 드러낸 추태를 돌이켜 보면, 정말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전형적인 사탄의 후예로서 교만하고 이성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만하고 이성이 없으며, 그저 높은 지위와 큰 복을 얻기만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처하려고 했고,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물건짝인지도 모르고 자격이 되는지도 모르면서 파렴치하고 탐욕스럽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했던 복을 얻지 못할뿐더러 화까지 입어야 한다니 하나님을 배반하고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적나라한 표현들에서, 저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복을 얻기 위한 것이고, 적나라하게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었음을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교만이 극치에 달했고,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이성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지혜로운 역사, 곧 효력자의 시련으로 저를 정복하지 않고 복을 얻으려는 저의 야심을 깨지 않으셨더라면, 저의 양심과 이성은 절대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에게서 온 진리, 길, 생명을 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영원히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효력자의 시련을 겪고 난 뒤, 저는 더 이상 복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거래하는 마음으로 일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을 이용하고 기만하는 것은 너무 비열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때의 시련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고심을 얄팍하게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는 사람을 증오하는 요소가 없다는 것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부터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앞으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복받고자 하는 속셈과 거래하는 마음가짐이 사람의 내면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에, 한 번의 시련으로 철저하게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그런 것들이 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더욱 깊고 더욱 철저하게 우리를 정복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연속적으로 몇 번의 시련 사역, 곧 형벌시대의 시련, 죽음의 시련 및 7년 시련을 하셨습니다. 그 몇 번의 시련 속에서 제가 가장 고생하고 가장 이득을 많이 얻은 것은 1999년의 7년 시련입니다.

1999년, 저는 새 구역에 배치되어 교회를 인솔하게 되었습니다. 그해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 대거 확장될 때라 하나님 집에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구원해 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그렇게 준비하는 것을 보고, 저는 2000년도가 되면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는 줄로 알았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을 얻어 자신에게 좋은 처소가 있게 하기 위해, 저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복음 사역으로 바빴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생활에 대해서는 간혹 안부를 물을 정도로 형식만 지켰습니다. 비록 저는 자신의 속셈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였지만 복받겠다는 욕망을 도저히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어찌나 바빴던지 복음 사역 이외에는 그 무엇을 해도 시간을 지체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조차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쉬지 않고 바삐 움직였고, 어느새 연말이 되자 하나님 집에서 그 지역의 사람을 선출하여 사역에 협력하게 하였기 때문에 저는 바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게 되면 꼭 큰 재난이 있을 거라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뒤, 저는 매일 집에서 재난이 임하기를 기다렸고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설을 코앞에 두게 되었는데, 저는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이전에 가족과 친척이 저의 혼사 문제를 추궁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2000년도면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사역이 2000년이면 틀림없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고, 결혼 문제에 있어 제가 버틸 수 있는 한계는 2000년까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2000년이 올 줄 몰랐고, 설에는 친척들이 다 올 텐데 난 대체 어떻게 그들에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 집에서는 아직도 7년의 시련을 더 겪어야 한다고 교통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저는 마음속이 요동치며 복잡해졌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하나님께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집에는 제가 있을 곳도 없고, 가족들도 제가 이렇게 장기간 집에서 머물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날은 하루뿐이라도 고역인데, 지금 또 7년 시련이 왔으니 저보고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제발 저를 멸해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런 고생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음날에도 저는 마음속의 우울을 여전히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직도 7년이란 시간이 있잖아. 앞날이 멀었으니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차에 오르자마자 성령이 제 안에서 질책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달갑게 추구하고, 심혈과 대가를 다 지불했었지.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말하고, 영원히 떨어지지 않겠다고 했어. 어려움은 함께 나누고, 낙은 같이 누린다고 했었지. 넌 자신을 기만하고 있어!” 성령의 질책 앞에서 저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때에는 하나님께 맹세를 했었는데, 고생을 하게 되자 저는 약속을 저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맹세는 거짓말이 되어 버린 것이잖습니까? 하나님은 제게 그렇게 많은 사랑을 주셨는데, 제가 조금만 뜻에 맞지 않는 환경이 임해도 그렇게 크게 원망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배반할 생각까지 하다니, 저는 정말 양심이 눈곱만큼도 없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는 더 이상 나들이할 기분이 나지 않아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비록 저는 어쩔 수 없이 ‘순종’하였지만, 저에 대한 가족의 불만과 주변 사람들의 이상히 여기는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너무 괴롭고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아직도 7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자신을 느슨하게 대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느긋하게 처리하였고, 본분을 해도 하루하루 때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소극적이고 대적하는 상태로 저는 점점 성령 역사를 잃게 되었습니다. 저도 자신의 상태를 돌이키려고 생각하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이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나올 때 정말 열의가 넘치고, 막 본분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았는데, 왜 한참 가다 보니 힘이 없어졌느냐? 당시의 그 사람을 지금과 대조해 보면 마치 두 사람인 듯하다. 왜 달라졌느냐? 이것은 어찌 된 영문일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여 치우쳤고, 잘못된 길을 선택했으며, 이전의 추구에 어떤 것이 숨겨져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이 숨겨져 있었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마음에 소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날이 빨리 도래하여 이런 고난이 다 끝나고, 하나님의 형상이 바뀌어 사람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령 역사를 잃은 사람은 가장 위험하다>에서 발췌)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 병의 근원을 찾았습니다. 알고 보니 저의 추구 속에는 소망이 하나 감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바로 오게 될 것을 소망했던 것은 자신이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좋은 처소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소망의 지배를 받아 추구하였기에 그 소망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자 마음은 고통스러워 무너지게 되었고, 심지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죽음으로서 벗어나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저는 자신이 하나님을 그렇게 오랫동안 따라왔지만, 걸어온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길이 아니라 계속 하나님의 날을 바라보며 복받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를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저는 비록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집에 남아 있으면서 하나님을 떠나가지 않았지만, 내면의 그런 불순물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런 위험 요소를 보고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협력해야만 ‘하나님의 날을 바라는’ 이런 불순물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너희가 이 국가에서 이런 고난을 받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고 있는 것을 외국인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너는 아느냐? 외국인들의 소원은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싶습니다. 어떤 고난을 받는다고 해도 좋습니다. 우리도 진리를 얻고 싶습니다! 우리도 식견을 넓히고 분량을 키우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런 환경이 없습니다.’라는 것이다. …큰 붉은 용 국가에서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데, 이 사람들에게 이런 고난을 받게 하는 것은 지극히 크게 높여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에 “나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동방에 옮겨 왔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너희는 이 말의 뜻을 알고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이후의 길을 갈 것이냐? 너는 어떻게 진리를 추구할 것이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어떻게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일단 성령 역사를 잃게 되면 그런 사람은 가장 위험하다. 눈앞의 이런 고난은 다 무엇이냐? 그것이 너희를 위해 무엇을 성취할지 너는 아느냐?』(<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령 역사를 잃은 사람은 가장 위험하다>에서 발췌)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에서 사람이 오늘날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생을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였고, 그저 고생하는 의미를 투철하게 깨달아야 자신이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상태를 돌려세울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 가지 해결책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지금 고생을 하는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제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진리를 잘 추구하고 진리를 많이 찾고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진리를 얻어야만 고생을 하는 의미를 진정 깨달을 수 있고, 제 안의 그런 불순물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마치 날아가는 화살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2009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7년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지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느낀 것은 그 7년이라는 시간이 제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몇 년간 하나님이 심판하고 폭로하신 말씀 속에서 그리고 시련과 연단으로 드러내신 것에서, 저는 자신의 참모습을 실제적으로 보았고, 자신이 바로 큰 붉은 용의 자손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저의 몸에 큰 붉은 용의 독소가 가득하기 때문이었는데, “이익이 없으면 일찍 일어나지 않고, 모든 일은 ‘이(利)’ 자가 먼저”라는 이런 독소가 전형적인 큰 붉은 용 형상의 대표였던 것입니다. 이 독소의 지배를 받게 된 저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받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기한의 제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저 고생은 좀 적게 하고 복은 크게 받기만을 바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 안에 있는 강렬한 기복적인 속셈과 거래하는 마음가짐을 제거하기 위해 저에게 여러 번 시련과 연단의 사역을 하셨고, 마침내 제 믿음 속에 들어 있던 불순물을 제거하셨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밝히고 드러내신 것에서 제 자신에게는 아직 교만, 교활, 간사, 이기심, 비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대충 하고 넘어가는 것 등의 사탄 패괴 성정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점점 자신의 진면목을 똑똑히 보게 되었고, 자신이 사탄에게 너무나 깊이 패괴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바로 지옥의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실로 하나님께서 높여주신 것이고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의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지극히 큰 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많아지고 요구가 적어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도 많아지고, 자신을 좀 적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직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하는 진정한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지금까지 체험해 오면서 저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실제적이고, 하나님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시는 사역은 결코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철없는 아이처럼 하나님의 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늘 자신이 너무나 깊이 패괴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이 너무나 필요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 시련 연단을 더 많이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상 인성에 마땅히 있어야 할 양심과 이성을 좀 갖추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정상적으로 체험하여 참된 사람의 모습을 살아냄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으면 만족할 것입니다. 지금 7년 시련이 임하였을 때에 자신이 드러냈던 것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 너무 많은 빚을 졌고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많이 상하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2000년도에 끝났더라면 저는 단언컨대 멸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7년의 시련은 사실 저에 대한 하나님의 관용과 긍휼이었습니다.

그 7년의 시간을 지내 오면서, 저는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지금 너희가 이 국가에서 이런 고난을 받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고 있는 것을 외국인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너는 아느냐? 외국인들의 소원은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싶습니다. 어떤 고난을 받는다고 해도 좋습니다. 우리도 진리를 얻고 싶습니다! 우리도 식견을 넓히고 분량을 키우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런 환경이 없습니다.’라는 것이다. …큰 붉은 용 국가에서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데, 이 사람들에게 이런 고난을 받게 하는 것은 지극히 크게 높여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에 “나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동방에 옮겨 왔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너희는 이 말의 뜻을 알고 있느냐?』(<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령 역사를 잃은 사람은 가장 위험하다>에서 발췌)라는 말씀을 지금은 조금 깨닫게 되었고, 비로소 고생하는 것이 너무나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록 한번 또 한번 시련을 겪으면서 고통을 좀 받았지만, 고통으로 얻게 된 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가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련을 겪으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보았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도 보았으며, 하나님의 지극한 고심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같은 깊고 무게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권세와 위력도 보게 되었으며, 사탄에게 패괴된 자신의 참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원 사역을 하시는 하나님의 노고도 보았고, 하나님의 거룩과 존귀도 보았는데, 그에 비하면 사람은 정말 추하고 비열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구원하여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로 이끄시는지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한번 또 한번 제게 고난과 시련의 사역을 하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이런 인식을 가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고난과 연단은 사람의 생명 성장에 정말 너무나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얻어야 할 가장 실제적이고 가장 소중한 것, 곧 진리를 얻을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생을 하는 가치와 의미를 보게 되었고, 더 이상 꽃가마를 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게 되었으며, 착실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실제적으로 진리를 추구하여 변화되고 싶어졌습니다.

여러 해 동안 체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지금 저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하신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라고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런 노정을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라는 이 말씀에 대해 조금 더 실제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이런 시련 사역을 체험하기 전에는 제 내면이 강렬한 기복적인 속셈과 거래의 관점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이치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저는 계속 복받기 위해 진리를 전혀 개의치 않았고, 더욱이 패괴 성정을 벗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며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을 자신의 추구 목표로 삼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저는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역사하면서 가장 먼저 사람 안의 기복적인 속셈과 거래의 관점을 제거하려고 하신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것들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 안에 이런 것들이 존재하면 진리를 추구할 줄 모르게 되고, 정확한 추구 목표가 있을 수 없으며, 모두 잘못된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하시는 정복과 구원의 사역은 제 안에 있는 이 사탄 보루를 부서뜨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복받거나 화를 입는 것 때문에 전전긍긍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사치스런 욕망을 위해 애타게 쫓아가지 않게 되었으며, 더 이상 재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의 날에 대하여 하나님께 조건을 따지거나 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순물이 없어지자 저의 마음은 홀가분하고 해방된 느낌이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정상적으로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시련과 연단의 사역이 가져온 효과인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시련과 연단의 사역은 진정한 믿음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였습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어떠한 시련 사역을 하시든 저로 얼마나 큰 고통과 연단을 겪게 하시든, 저는 다 순종하고 받아들일 것이고, 실제적으로 체험하는 중에 진리를 찾고 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함으로 하나님의 오랜 심혈 대가에 보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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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②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④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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