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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저는 풍성한 잔치를 누렸습니다

저장성 신워이

6월 25, 26일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이날은 우리가 머무는 절강 구역에서 매우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구역 인솔자와 일꾼 다수가 큰 붉은 용에게 붙잡혔는데, 저희 몇 명만 운 좋게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이에 저는 감사하는 마음뿐이고, 계속되는 본분에 꼭 잘 협력하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다짐을 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분주하게 후속처리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가량의 협력을 통해 마침내 안배가 거의 다 끝났습니다. 한창 더운 날씨로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오히려 뿌듯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역을 큰 붉은 용의 눈앞에서 순조롭게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사역에 협력한 후에, 저도 모르게 자신을 대견스럽게 여기는 상태에 빠졌습니다. 저는 머리가 좋아 이렇게 사역을 잘한 것으로 자신의 사역 능력은 꽤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마침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저에게 임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우리 몇몇 자매들이 모여 함께 어떤 일을 상의하고 있었습니다. 한 자매가 저에게 ○○와 ○○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고, 또 저에게 일부 사역을 배치하며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자매님, 뛰어다니지만 말고 지금은 은밀히 영 생활을 하는 시기로 영 생활과 생명 진입도 중시해야 합니다.” 자매의 말에 저는 심기가 아주 불편해졌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편지를 써라, 나가서 협력하라 하는데, 이 와중에 영 생활 할 시간이 어디 있어? 당신은 외지 사람이고 나는 토박이이기에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나가서 협력한 것인데, 당신은 가만히 앉아 무책임한 말만 내뱉는군. 내가 당신처럼 집에서 영 생활만 한다면, 이렇게 많은 사역을 누가 협력하겠어? 일의 안배에도 경중을 따져야 하고, 나를 책망하더러도 상황을 봐야잖아…’ 이튿날 아침, 모두 함께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교통할 때, 저는 정신을 딴 데 팔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먹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자매님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말했지만, 저는 되려 입을 다물었습니다. 한 자매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왜 말이 없나요?” 저는 볼멘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어떤 생각도 인식도 없습니다.” 자매님은 또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을 발견했어요.” 저는 별생각 없이 무심코 말하였습니다. “저는 제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제 마음속 생각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어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것을 쏟아냈습니다. 자매는 듣고 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교만을 인정하였고, 임의대로 다른 사람에게 사역을 배치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 응어리를 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저는 ‘내가 그동안 협력한 것은 모두 진리를 행한 것이야. 내 상태가 나쁘다고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옆에 있는 소구역 인솔자가 나를 어떻게 보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자매가 또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자매가 이렇게 사역만 하다가 자매 본인의 생명에 진입이 없고 타락될까 봐 걱정돼서…” 자매의 그 말은 더욱 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타락한다고? 내 상태는 이렇게 좋은데? 타락할 리가 만무하지!’ 저는 아예 그 자매의 교통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을 처리하러 가면서도 계속 짜증이 났습니다. 속으로 ‘인솔자 일꾼을 하지 말자. 사무를 보는 것만도 못해. 이렇게 내가 타락하고 생명의 진입이 없다는 말을 들은 이상,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끌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할수록 영 안이 가라앉아 속으로 이렇게 마음먹었습니다. ‘이번 사역 협력이 끝나면, 나는 책임지고 물러나야겠어.’ 나중에 저는 병에 걸린 것처럼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신이 잘못된 상태에서 살고 있음을 의식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는 아주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진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주신 형벌 심판 그리고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저의 마음과 영을 지켜 주시어 제가 하나님의 역사에 순종하고, 진지하게 반성하여,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게 도와주십시오.” 그런 다음 저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너는 자신이 한 것이 좋다고 여기는 부분일수록, 자신이 한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자신이 하나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자신이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일수록 더욱 자신을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그 속에 도대체 어떤 불순물이 있는지, 어떤 것이 하나님 뜻을 만족게 할 수 없는 것인지를 깊이 파헤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 …바울의 사례는 지금 하나님을 믿는 각 사람에게 경고를 준다. 즉 자신이 한 것이 아주 좋다고 여길 때, 또는 어떤 방면에 특별한 은사가 있다고 생각할 때, 또는 자신이 변화될 필요가 없고 대처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부분에서, 더욱더 이 방면에서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네가 좋다고 본래 여기던 부분에서 틀림없이 그것을 파헤치지 않고 그것을 중요시하지도 않고, 거기에 도대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있는지를 해부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려면 자신 안의 깊이 뿌리박힌 사상과 관점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처럼 저의 마음을 비춰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자신을 알려면 자신이 잘했고, 옳다고 여기는 곳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스스로 반성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곳일수록 더욱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책임이 있고 협력한 사역에 효과가 있으며, 그렇게 큰일을 모두 잘 처리한 것을 돌이켜 보았을 때, 저는 진리를 행하고 모두가 긍정적, 적극적인 측면으로 진입하여 상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혀 하나님 앞에 와 스스로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않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한동안 사역에 잘 협력하였지만, 교만한 본성은 이미 꿈틀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역 효과가 있었던 것이 모두 자신의 공로이며, 자신에게 사역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어 자아도취에 빠져 자신을 대견스럽게 여기는 상태에서 살았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사역만 하였고 또한 그때의 사역은 성령의 인도와 보호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저는 사역하면서 진리를 찾지도 구하지도 않았고, 생명 진입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다고 해서 특정 부분의 진리에 대해 더 명확하게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교만방자하여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사역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습니다. 제가 드러낸 이런 사탄의 성정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도 남아 정죄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타락하지 않도록 자매를 통해 영 생활을 중시하라고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사리 분간 못 하며 너무나도 자신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태가 너무 두렵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매를 통해 저의 상태를 지적하지 않고, 저를 제때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이렇게 타락한 상태에서 저도 모르게 성령 역사를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심하게 거스르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면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끝장인 것입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의 심판 훈계로 저의 앞길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비록 형벌 심판과 훈계 책망이 임할 때, 체면이 땅에 떨어져 속으로 고통스러웠지만, 확실히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하나님의 이런 역사를 더 많이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번의 형벌 심판을 겪은 후, 저는 상태가 많이 돌려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처신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고, 사람의 관념과 부합되지 않는 하나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저는 하나님의 드러내심에서 자신의 인식이 너무나 얕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8월 초, 저는 구역으로 발탁되어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열정이 넘쳐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높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이렇게 큰 부탁을 주심에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제가 최대한 본분을 잘할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저는 곧바로 시급한 사역에 몰입했습니다. 매일 올라오는 한 무더기의 편지를 새벽까지 일일이 회신하고 지도해야 했지만 정말 행복했습니다. 간혹 알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에 부딪히면,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사역 배치는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또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사역도 잘하고, 능력도 꽤 있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가지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구역의 책을 어떻게 보급하는지 몰라 사무에 혼선을 빚었고, 서신 왕래까지도 지연되었으며 대부분 업무가 마비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기도하고 고민하던 중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노선을 찾아야 해. 예를 들면, 일부 자리가 공석이면 다시 인원을 채워야 해. 몇 곳의 구역급 인원을 찾으면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될 거야.’ 그래서 저는 제 생각을 편지로 써 인솔자에게 이렇게 진행해도 되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저는 또 생각했습니다. ‘인솔자는 분명 나를 책임감이 있고, 사역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편지를 보내고, 인솔자의 회신을 기다리며 칭찬을 받을 생각에 한껏 들떴습니다. 며칠 후, 답장을 받고 뛸 듯 기뻤지만, 편지를 읽은 후, 맥이 쭉 빠졌습니다. 인솔자의 회신에는 저에 대한 칭찬은커녕 훈계 책망하는 말뿐이었습니다. “자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원칙이 없는 것입니다. 자매는 거창하게 하려고 하는데, 고집을 피운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사역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소구역의 사역은 그들에게 맡기고 스스로 처리할 수 있으면 처리하게 하고, 안 되면 우선 내려놓으라고 하세요. 그리고 자매는 얼른 영 생활을 하고 문장을 쓰세요…” 그때 저는 흑백 논리 속에 살게 되었고, 제가 틀렸다고 질책한 것으로만 생각해 너무 억울했습니다. “인솔자는 어떻게 된 거지? 소구역에 어려움이 있는데 해결해 주지 않다니. 우리 구역에 문제가 생겼고 각 부분의 사역이 혼란스러운데 해결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소구역의 사역을 그들 스스로 처리하게 하면, 이 많은 편지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인가? 올려 보낸 출교하고거나 제명하는 데 관한 자료와 동영상을 심사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구역의 책을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배급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위험에 직면하고 있고 계속 편지를 보내 독촉하는데 상관치 않겠다는 말인가? 내가 거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해결책을 제시한 것뿐인데…” 저는 반성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나아가 억울하다고 생각되자 섬김의 집 자매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심지어 ‘관두자, 일하려는 것이 오히려 방해하는 꼴이잖아. 내가 아무리 고생해도 방해하는 꼴인데 그럴 필요가 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저는 하나님 앞에서 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상면의 형제님께서 훈계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인성이 나쁜 사람이라고 하신 교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을 차리고 ‘훈계 책망을 받아들이는 원칙’을 찾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은 후에 소극적이 되어 본분을 해도 힘이 나지 않고 충성심도 없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일까? 한 방면은 사람이 자신이 일 처리하는 방식의 실질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여 책망과 훈계에 불복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방면은 사람이 지금까지도 책망과 훈계의 의의를 깨닫지 못하여 모두 책망과 훈계를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 표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 하나님에 대해 충성심이 조금이라도 있기만 하면 책망과 훈계가 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훈계가 따르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라고 그릇되게 생각한다. 그런 오해로 많은 사람들은 주저하며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사람이 너무 궤사하여 고통은 전혀 받지 않고 수월하게 복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를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공의로운 일을 한 적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공의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 사람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한 일이 공의로운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한 일이 사람의 뜻에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이 한 일이 인지상정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은 지금까지도 자신이 행한 것이 합당하지 않고,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사람이 행한 것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표현에 따라 결말을 정한다는 말씀에 내포된 뜻>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은 저의 잘못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제가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제 행위의 실질에 대해 몰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합당하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저의 본분은 이미 사역안배에서 벗어났지만. 저는 여전히 충심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득, 상면의 형제님이 하신 교통이 생각났습니다.

“일반적인 문제에 여러분은 관여하지 마세요… 가서 해결할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가서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층 인솔자가 사역하면 됩니다.”

상면의 형제님은 우리에게 일반적인 문제는 상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아래에서 반영한 문제를 아무도 지도하지 않고, 회신이 없으면 안 돼.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다 챙길 거야. 잘 챙기고 잘 배치해야만 마음이 안정되어 영 생활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앞에서 저 자신이 사역안배에 대해 절대적으로, 조건 없이 순종하지 못하고, 성령의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늘 많은 면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고, 이성이 없을 정도로 교만방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역자가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 제 마음속의 것들을 책망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신의 본성을 알게 하였고, 현재 성령 역사의 흐름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당연히 영 생활을 위주로 하고, 사역에만 치우치지 말아야 했으나, 저는 제 행위의 실질이 하나님 집의 요구에 어긋나며, 하나님께 거역하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인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오히려 시시비비 속에 살고 있었으니, 정말 영이 통하지 않고 하나님 역사를 너무 몰랐던 것입니다. 나중에 또 사람의 교통이 생각났습니다.

“누구든, 어느 인솔자든, 어느 일꾼이든 자신을 훈계 책망하면 그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부분이라도 옳으면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일부분만 옳아도 전부 받아들이고, 그 이유를 따지지 말아야 하는데, 자신이 몇 퍼센트는 받아들이고, 몇 퍼센트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이유를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역사에 순종하는 표현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이런 순종이 없다면 당신은 진리를 얻기 쉽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설교 교통 (1)ㆍ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먹고 마셔야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에서 발췌)

그렇습니다. 설령 사역자의 말이 저의 실정과 완전히 부합되지 않았을지라도 마땅히 순종하고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하물며 제가 본분을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 집의 안배를 어기고 성령 역사에 어긋난 것이니 당연히 더 빨리 순종하고, 받아들이고, 돌이켜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 후로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 집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느 정도 상태를 돌려세우고 마음을 안정시켜 영 생활을 하고 문장을 쓰는 훈련을 하였을 때,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수호하고 계심을 보게 되었는데, 사역도 예전처럼 진행되어 전혀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이 두 차례의 형벌 심판과 책망 훈계를 겪음으로써 비록 저는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어 제때에 상태를 돌려세웠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실질은 선한 것이다. 그는 모든 미와 선의 발표이고, 또한 모든 사랑의 발표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그가 너를 저주하는 것은 너로 그를 사랑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육체의 본질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가 너를 형벌하는 것은 너로 각성하게 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이 너무나 자격이 없음을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는 모두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너희에게 나타내고 있는 공의 성품은 모두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이때 저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미(美)와 선(善)의 발표입니다. 하나님의 실질은 미와 선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실질은 사랑이므로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은 미와 선의 사물입니다. 심판이든 형벌이든 아니면 주위의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통한 훈계 책망이든, 비록 사람의 육체에 가져다준 것은 고통이고 채찍질이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은 사람의 생명에 가장 유익한 것이고 사람에게 있어 구원이고 사랑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역사를 몰랐으며, 하나님의 고심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형벌 심판과 훈계 책망을 받으면, 반항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걸핏하면 본분을 팽개치는 것으로 대항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저를 못살게 구는 것 같아 하나님으로부터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차례 드러내 주심으로 저는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많은 도(道)를 들었으나, 형벌과 심판, 책망과 훈계가 다가오면 패역이 가득 차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정이 전혀 변하지 않았고, 사탄의 본성이 깊이 뿌리박혀 완전히 하나님께 대적하고 배반하는 본성으로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형벌과 심판, 책망과 훈계가 저에게 필요한 것임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역사를 체험하지 않았다면, 제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진정으로 저 자신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본성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에서야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패괴된 인류가 바로 하나님의 원수이고, 사탄의 후예라고 말씀하신 그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형벌 심판과 책망 훈계의 사역에서 드러난 것이고, 역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사역에서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니 마음이 아주 밝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정성껏 배치하여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하셨으며, 저를 인생의 정도로 이끄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은 사랑이고, 하나님의 형벌 심판과 책망 훈계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자 가장 좋은 구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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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②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③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④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이전 말씀:본인이 진입해야 다른 사람에게 공급해 줄 수 있다

다음 말씀:하나님의 사랑만이 가장 진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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