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말세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19. 자고로 참도가 핍박받아 온 이유

2) 교계는 왜 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거부하고 정죄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가?

성경 참고: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좇아 죽였느니라”(마 21:33~39)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요 11:47~48)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요 11:53)

관련된 하나님 말씀:

『정말이지 생각해 볼 만한 일이 아니냐! 성육신한 하나님은 왜 늘 사람에게 버림받고 비방을 당하는 것이냐? 사람들은 어째서 늘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때를 잘못 맞춰 왔기 때문이냐? 하나님이 장소를 잘못 골라 왔기 때문이냐? 하나님이 사람과 계약하지 않고 마음대로 결정했기 때문이냐? … 사람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공급받고, 그의 피를 마시고, 그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그를 대적했다.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누가 베풀어 주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살을 먹고, 그가 해 주는 밥으로 배를 채우며, 그가 개척한 길을 걷고, 그의 피를 마시면서도 그를 저버리려 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생명을 준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고, 자신과 같은 부류의 노예를 ‘하늘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고의로 대적하는 것이 아니냐? 예수가 어떻게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고 있느냐? 그를 먹고 마시고 누리며 그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유다가 그를 팔아넘겼기 때문이 아니더냐? 팔아넘긴 이유는 예수가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선생’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더냐? 사람들이 정말로 예수가 하늘에 속한 비범한 분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를 산 채로 십자가에 못 박아 숨이 끊길 때까지 24시간 동안이나 매달아 놓았겠느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더냐? 사람은 끝을 모르고 탐욕스럽게 하나님을 누릴 줄이나 알지, 한 번도 그를 안 적이 없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원하면서 ‘예수’가 자신의 지시와 부름에 완전히 복종하기만을 원했다. 이 머리 둘 곳도 없는 ‘인자’에게 일말의 온정을 베푼 이가 있었더냐? 그와 한마음으로 협력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맡긴 사명을 완수하려고 했던 자가 있더냐? 그를 생각해 준 자가 있더냐? 그의 고충을 헤아려 준 자가 있더냐?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그를 이리 끌어당기고 저리 밀치고 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광명과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인간 세상의 고난을 체험한 2천 년 전의 ‘예수’를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을 꿍꿍이만 가지고 있다. 설마 ‘예수’가 그렇게 증오스러운 존재란 말이냐? 그가 해 준 모든 것을 사람은 다 잊었단 말이냐? 수천 년 전부터 쌓인 원한을 끝내 쏟아 내려고 하는구나. 유대인 같은 자들아! ‘예수’가 언제 너희에게 적의가 있었느냐? 어찌하여 그리도 그를 증오한단 말이냐? 그는 수많은 일을 하고, 또 수많은 말씀을 했다. 설마 다 너희에게 무익하기라도 했단 말이냐? 그는 너희에게 자신의 생명을 값없이 베풀어 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산 채로 그를 삼키려 드느냐? … 이런 ‘유대인’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똑같은 일, 그러니까 대적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하나님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육안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단 말이냐? 육으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영에서 비롯되어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겠느냐? 누가 알아볼 수 있겠느냐? 인간 세상에 진리가 어디에 있더냐? 진정한 공의는 또 어디에 있더냐? 하나님의 성품을 누가 알 수 있겠느냐? 누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겨룰 수 있겠느냐? 그러기에 사람은 인간 세상에 온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저버렸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용인할 수 있겠느냐? 어찌 빛이 인간 세상에서 어둠을 쫓아내는 것을 용인하겠느냐? 이것들은 전부 사람의 광명정대한 봉헌 정신이 아니더냐? 정정당당한 진입이 아니더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10> 중에서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것만 믿으며 생명과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한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커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다시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느냐? 너는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정말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증할 수 있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느냐?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다면, 너는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메시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고, 훼방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저버리고 모욕할 수 있으며,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다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너희는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훼손하고, 예수가 선포한 말씀을 경멸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너희가 이처럼 미망에 빠져 있는데 예수에게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잡귀와 요괴가 세상에서 잠시 횡행하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심혈을 물샐틈없이 차단시켰다. 이토록 말할 수 없이 극악무도하거늘 어찌 하나님이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찌 하나님이 크게 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심히 가로막고 대적하니 이보다 더한 패역이 어디 있겠느냐! 크고 작은 잡귀조차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덩달아 풍파를 일으키며, 진리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대적한다. 패역한 자식들! 그것의 염라대왕이 ‘왕’이라고 새겨진 보좌에 오르기라도 한 듯 유유자적[1]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구나. 진리를 찾고 정의를 따르는 자가 몇이나 되느냐? 개돼지,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역겨운 파리 떼를 이끌고 거름 더미 속에서 의기양양해하며 못된 수작을 부린다[2]. 자신의 ‘염라대왕’이 가장 대단한 ‘왕’이라고 생각하며 우쭐한다. 자신이 역겨운 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는 것이냐? 개돼지만도 못한 부모의 힘에 기대어 하나님의 존재를 모독한다. 보잘것없는 파리가 자신의 부모는 이빨고래[3]만큼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보잘것없이 작고, 제 부모는 자신보다 수억 배나 큰, 더러운 개돼지임을 어찌 알지 못하느냐? 자신의 비천함을 모른 채 개돼지의 ‘썩은 냄새’를 믿고 곳곳에서 횡포를 일삼고, 후대를 번성하겠다는 헛된 생각에 빠져 부끄러움도 모른다! 초록색 날개를 달고(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을 가리킴) 잘난 체하며, 여기저기서 자신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을 뽐낸다. 자신의 더러움을 슬그머니 사람에게 내던지고, 오색찬란한 날개로 자신의 더러운 것들을 감추었다는 듯 득의양양해하며 참하나님의 존재를 핍박한다(종교계의 실상을 가리킴). 파리가 날개는 아름답고 매혹적일 수 있어도 배 속은 불결함으로 가득 차 있고, 온몸은 독을 가진 균으로 들끓는, 작디작은 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 파리는 개돼지 부모에 기대어 횡포를 부리고(하나님을 핍박하는 종교계의 관계자들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믿고 참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배반하는 것을 일컬음), 미쳐 날뛴다. 마치 떠돌던 유대 바리새인의 영혼이 하나님을 따라 큰 붉은 용의 나라, 자신의 소굴로 되돌아와 또다시 핍박을 시작하고, 수천 년 동안 해 온 일을 이어 나가는 듯하다. 이 인간쓰레기들은 결국에는 땅에서 멸망할 것이다! 수천 년 후 더러운 귀신은 더욱더 ‘교활하고 간사해진’ 듯하다. 속으로 늘 하나님의 사역을 허물겠다는 생각을 품고, 온갖 술수를 쓰며, 수천 년 전의 비극을 자신의 고국에서 ‘재연’하려 한다. 하나님은 핍박을 받다 못해 큰 소리로 부르짖을 뻔했고, 당장이라도 셋째 하늘로 되돌아가 당장 그것을 멸해 버리고 싶게 만든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7> 중에서

─────────

[1] 유유자적[悠閑自得]: 여기에서는 표정이나 태도가 오만하고 무례하여 혐오감을 유발하는 것을 의미함.

[2] 못된 수작을 부린다[興妖作怪]: 여기서는 마귀에 속한 자들이 곳곳에서 횡포를 부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것을 가리킴.

[3] 이빨고래[齒鯨]: 여기서는 작디작은 파리가 ‘개돼지’를 ‘고래’로 생각한 것을 풍자함.

이전:중국 정부는 왜 전능하신 하나님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광적으로 핍박하고 탄압하고 박해하는가?

다음:휴거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지,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

추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