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증거는 무엇인가?

성경 참고: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9~2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 22:1~10)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자가 욥에게 와서 고하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욥 1:13~21)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지금 정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기 시작했다. 완전해지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폭로, 심판, 형벌을 거쳐야 하고, 하나님 말씀의 시련과 연단(봉사자와 같은 시련들)을 겪어야 하며, 또한 죽음의 시련을 견뎌야 한다. 다시 말해, 진실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그리고 시련 속에서 진실된 찬미를 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실되고 단순하며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사람이다. 또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자 하나님이 이루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 절차에 관하여> 중에서

예수가 하나님이 맡긴 일을 완수하고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을 위해 계산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너희가 가장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의 지기이자 하나님 자신이다(사실, 그는 하나님이 증거한 하나님 자신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이유는 이 사실을 통해 한 가지 일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는 하나님의 경륜을 중심으로 늘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였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만일 당신의 뜻이라면 이루소서. 제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하소서. 사람이 연약하긴 하나 당신께서 어찌 그것까지 헤아리시나이까? 당신 손안의 개미와도 같은 사람이 어찌 당신의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겠나이까? 저의 마음은 오직 당신의 뜻을 이루기 원하오니, 원컨대 당신의 뜻에 따라 제게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소서.”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가슴이 칼로 에는 듯 아프고 괴로웠으나 마음속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그는 계속 어떤 큰 힘에 이끌려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곳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인의 형상으로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수하고, 모든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사망, 지옥과 음부는 그의 앞에서 위력을 잃고 그에게 패하였다. 그는 33년의 생애 동안, 언제나 하나님의 당시 사역에 맞춰 하나님을 흡족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개인의 득과 실을 따지지 않고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가 세례를 받은 뒤에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그에게 맡겨 완수하게 한 것이다. 그는 그 중임을 완수할 자격과 권리가 있었다. 그는 일생 동안 하나님을 위해 수많은 고통과 사탄의 시험을 받았지만, 낙담한 적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사랑하였기에 그 크고 중요한 임무를 그에게 맡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친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했던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지기(知己)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이며, 하나님께 일편단심 충성하는 자여야 한다. 사람 뒤에서 한 일이든 사람 앞에서 한 일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설 수 있으며,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하든 너는 항상 네가 가야 할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지기인 것이다. 하나님의 지기가 직접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중임을 맡고 하나님의 짐을 함께 지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생각하며, 전망과 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설사 아무런 미래도 없고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라도, 그는 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지기인 것이다. 하나님의 지기는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한다. 비록 육체는 고통스럽고 연약할지라도 그 고통을 인내하며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더 많은 부담을 주며,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런 사람을 통해 증거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만이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을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어떻게 섬겨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중에서

하나님이 보기에 위대한 사람이든 보잘것없는 사람이든 상관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명령과 받은 사명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순조롭게 완수될 수 있도록 한다면, 하나님 입장에서 이런 행위는 하나님이 기억할 만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이런 행위를 아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이런 정과 마음을 귀하게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의 태도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욥은 처음의 시련에서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로 인해 무너지지 않았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 냈고, 재산과 자녀 그리고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는 시련을 이겨 냈다. 다시 말해, 욥은 하나님이 그의 소유를 거두어 간 것에도 순종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감사와 찬양까지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이 욥이 사탄의 첫 번째 시험에서 보여 준 것이며, 또한 욥이 하나님의 첫 번째 시련에서 증거한 것이다. 두 번째의 시련에서 사탄은 손을 뻗어 욥에게 갖은 해를 가했다. 욥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을지라도 그의 증거는 오히려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는 그의 강인함과 믿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외심으로 또 한 번 사탄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가 보여 준 것과 증거한 것 역시 또 한 번 하나님께 인정받고 열납되었다. 이번 시험에서 욥은 자신의 실제 행동을 통해 사탄에게 선포했다. 육체의 고통으로도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순종을 변하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과 경외심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선포한 것이다. 또한 죽음에 이르렀어도 하나님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버리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욥의 의연함을 본 사탄은 겁이 났다. 욥의 믿음으로 사탄은 두렵고 간담이 서늘해졌으며, 사탄과 사생결단하겠다는 욥의 기세를 보고 침통해졌다.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에 사탄은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래서 사탄은 욥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짓을 그만두었다. 이것은 욥이 세상을 이기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사망을 이겨 하나님께 속한 완전한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욥은 그 두 차례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섰으며,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실제로 살아 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의 생존 법칙의 범위 역시 확장될 수 있었다. 그 두 번의 시련을 겪은 후, 욥은 인생에 더욱 풍부한 경험이 생겼다. 이 ‘경험’으로 인해 그는 더 성숙해지고 원숙해졌으며, 더 강인해지고 더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또한, 자신이 지키고 있는 순전함의 정확성과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으로 욥은 사람을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되었으며, 하나님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로부터 욥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이 더 추가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준 시련에 욥은 천 리 밖으로 밀려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 욥은 육체의 고통이 극한에 달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보살핌을 느끼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게 되었다. 그런 모습은 욥이 일찍이 계획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욥의 그 ‘자연스러운 발현’은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욥은 자신을 미워했고, 하나님이 고통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헤아림과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잊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때의 욥은 오랜 세월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데서 헤아리고 사랑하는 경지로 자신을 승화시켰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순종과 경외심을 헤아림과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상처 주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이 슬퍼하거나 상심하는 것은 물론, 괴로워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눈에 욥은 여전히 변함없는 욥이었지만, 그의 믿음과 순종,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하나님은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때의 욥은 하나님이 기대했던 완전함에 이르렀으며, 하나님 눈에 명실공히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욥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으로 사탄을 이겼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섰으며, 온전하게 되었고, 자신의 생명 가치를 승화시켰으며, 초월하게 되었다. 또한, 더 이상 사탄에게 공격받지 않고 시험당하지 않는 사람의 첫 사례가 되었다. 욥은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에게 참소당하고 시험당했으며, 의로움으로 인해 사탄의 손에 넘겨졌고, 또한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이기고 사탄을 물리쳤으며 굳게 섰다. 그로부터 욥은 더 이상 사탄에게 넘겨지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으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빛 속에서 살고, 사탄의 감시와 해가 없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눈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고, 자유로워졌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베드로는 삶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흡족게 하지 못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지 못하면 통회했으며, 그 후에 적합한 길을 찾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 위해 힘써 노력했다. 그는 생활 속 사소한 일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려고 했으며, 자신의 옛 성품을 조금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항상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진리에 깊이 들어가려고 했다. …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자 했으며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종하고자 했다. 그는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연단과 환난, 궁핍한 생활 역시 받아들였으며,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것 아니겠느냐?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 것 아니겠느냐? 형벌이든 심판이든 환난이든 너는 죽기까지 순종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도달해야 하는 경지이자, 사랑 안에 있는 순결한 요소이다. 사람이 이런 경지에 도달한다면 그는 합당한 자격을 가진 피조물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창조주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사람들은 베드로를 얘기할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가 하나님을 세 번 부인한 일, 사탄을 위해 일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한 일,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린 일 등을 떠올린다. 지금 나는 베드로가 어떻게 나를 알게 되었고 그의 마지막 결말이 어땠는지에 중점을 두어 너희에게 얘기하겠다. 베드로는 좋은 자질을 갖췄지만, 바울과는 상황이 달랐다. 그의 부모는 나를 핍박했고, 사탄에게 점령된 악마에 속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베드로에게 전도했다고는 할 수 없다. 베드로는 총명하고 타고난 자질이 좋아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장성한 후에는 부모의 ‘원수’가 되었다. 이는 베드로가 끊임없이 나를 알고자 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그로 인해 부모와 등지게 되었다. 베드로는 무엇보다 먼저 천지 만물이 모두 전능자의 수중에 있고, 또한 모든 긍정적인 사물은 사탄의‘가공’을 거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한 것이자 직접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부모의 부정적인 면으로 인해 나의 자비와 긍휼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를 찾으려는 마음이 더욱 불타올랐다. 그는 내 말을 먹고 마시는 것을 중시했고, 더욱이 내 뜻을 찾는 것을 중시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늘 신중했기에 영은 언제나 민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내 뜻에 부합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실패의 사슬에 매이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에 평소에 지난날 실패했던 사람들에게서 교훈을 얻어 자신을 다그치는 것을 중시했다. 그는 또한 역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의 믿음과 사랑을 본받는 것을 중시했다. 그런 까닭에 부정적인 면을 통해, 더 중요하게는 긍정적인 면을 통해 더 빨리 성장하였으며, 나아가 내 앞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손에 맡기고 의식주마저도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않고 모든 것에서 나를 만족게 하는 것을 바탕으로 내 풍요로움을 누렸음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그 시련 속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 베드로는 수백 번의 시련을 겪으면서 단 한 번도 믿음을 잃고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 때에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실제적으로 나를 사랑했다. 나는 베드로에게 그가 나를 사랑할지라도 칭찬하지 않을 것이고 마지막에는 그를 사탄의 손에 내버릴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육신에 실제로 임하지는 않는 이러한 말씀의 시련 속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나에게 기도했다. ‘하나님, 천지 만물 중에 어떤 사람, 어떤 사물, 어떤 일이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겠나이까? 당신이 저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 제 마음은 당신의 긍휼로 매우 기쁘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 때, 저는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행사가 얼마나 심오한지 더욱 느끼나이다. 이는 당신께 권병과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나이다. 제 육체는 고통받지만, 영은 위로를 받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와 행사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당신을 알고 난 후에 저를 죽게 한다 해도 어찌 기꺼이 원하지 않겠나이까? 전능자시여! 당신은 정말 저에게 보이기 싫어하시나이까? 제가 정말 당신의 심판을 받을 자격이 없나이까? 혹시 저에게 당신이 보고 싶지 않으신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니나이까?’ 베드로는 그런 시련 속에서 나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쓰임 받는 것으로(나에게 심판 받아 사람들이 나의 위엄과 진노를 볼 수 있을지라도) 스스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고, 시련으로 고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내 앞에서 보인 충성심과 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모범과 본보기가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6편> 중에서

베드로는 형벌 속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 저의 육은 패역한 것이니 저를 형벌하고 심판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당신의 형벌과 심판을 기쁨으로 여기나이다. 당신께서 저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당신의 심판 속에서 당신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나이다. 저를 향한 당신의 심판 가운데 사람들이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하나이다. 당신의 성품이 나타나 모든 피조물이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고, 또한 당신의 심판을 통해 당신을 향한 저의 사랑이 더욱 순결해지게 되어 의인의 모습에 이를 수 있으면, 이러한 심판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나이다. 그 속에는 당신의 아름다운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아직 패역한 면이 많아 당신 앞에 갈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나이다. 그러니 저를 더 많이 심판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열악한 환경이든 커다란 환난이든, 당신께서 무엇을 하시든 제게는 모두 귀하나이다. 당신의 사랑이 너무도 깊나이다. 저는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고 당신이 지배하시는 대로 따르겠나이다.” 이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며 알게 된 인식이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간증이다. … 베드로는 온전케 된 후, 즉 세상을 떠날 때가 됐을 무렵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제 수명이 몇 년 더 연장될 수 있다면 당신을 더 순수하게, 더 깊게 사랑하고 싶나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도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 당신의 때가 되었나이다. 바로 당신이 저에게 예비하신 때가 되었나이다. 저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올라 이 증거를 해야 하나이다. 제 사랑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기를, 더 순수해지기를 바라나이다. 제가 오늘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고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음에 위안과 평안을 느끼나이다. 제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고 당신이 바라시는 바를 충족시켜 드릴 수 있기 때문이옵나이다. 당신께 제 자신을 전부 바치고 제 생명까지 바칠 수 있음에 더없는 기쁨과 위안을 느끼나이다. 하나님, 당신은 참으로 사랑스럽나이다. 앞으로 좀 더 살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저는 당신을 더 사랑하겠나이다. 살아 있는 한 저는 당신을 사랑하겠나이다.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하길 원하옵나이다. 저는 불의와 죄로 인해 당신의 심판과 형벌, 시련을 받았고, 그러면서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더 많이 보게 되었나이다. 이는 저의 복이옵니다.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으니 말이나이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해도 저는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고 싶나이다. 저는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고 싶나이다. 제가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으니 말이옵나이다. 저는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하나이다. 제가 당신으로 인해 십자가에 오르고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나이다. 하지만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에 저는 만족하지 못하나이다. 저는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완전히 충족시켜 드릴 수 없고, 당신께 보답한 것이 너무 적음을 알고 있나이다. 살아 있는 동안 당신에게서 받은 사랑에 다 보답해 드리지 못했나이다. 제가 너무 부족하나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죄스러운 마음이 더 드나이다. 제 모든 잘못과 당신께 보답해 드리지 못한 모든 사랑을 그저 이 한순간으로 메울 수밖에 없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지금 너는 어떻게 해야 정복되는지, 또 정복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너는 네가 정복되었다고 말하지만,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느냐? 너는 앞날에 희망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르고,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마지막에는 두 가지 증거, 즉 죽기까지 순종했던 욥의 증거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베드로의 증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

욥과 같아야 한다. 욥은 물질적인 것을 다 잃고 육체에 질병의 고통이 임했어도 여호와의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이것이 욥의 증거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는 자기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스러운 생각들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기를 추구했다. 네가 이런 기준에 도달해야 증거했다고 할 수 있고,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2> 중에서

도대체 참된 간증이란 무엇이냐? 여기에서 말하는 간증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정복된 간증이고, 다른 하나는 온전케 된 간증이다(물론 이것은 미래에 더 큰 시련이나 환난을 겪은 후의 간증을 말함). 즉, 네가 환난과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의 간증을 하는 것이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부분을 간증하는 것이다. 즉, 연이은 형벌과 심판의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복된 간증이다. 지금은 정복되는 기간(너는 지금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성육신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주된 사역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과 형벌로 정복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이기 때문이다. 네가 정복되었음을 간증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렸다. 또한, 더 중요하게는 네가 각 단계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는지, 이 모든 사역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지에 달렸다. 끝까지 따른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한번 또 한번 반복되는 형벌과 심판에 기꺼이 복종하고, 네가 체험하는 단계별 사역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최종적으로 해야 할 정복된 것에 대한 간증이다. 정복되었음을 간증한다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해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간증의 핵심은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한 것이다. 네가 세상 사람이나 집권자들 앞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사역에 순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이 단계의 간증은 사탄과 모든 원수를 ―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하여 더 큰 사역을 한다는 것과 하나님이 육신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모든 마귀와 원수, 즉 모든 적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모든 원수를 ―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

마지막 단계의 간증은 네가 온전케 될 수 있는지를 간증하는 것이다. 즉, 네가 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이해한 다음, 하나님을 알고, 확신하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살아 냄으로 하나님이 너에게 요구하는 ‘베드로의 풍격’, ‘욥의 믿음’, 이런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죽기까지 순종하고 자신을 온전히 바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어 정복되고 온전케 된 사람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종적인 간증이고, 궁극적으로 온전케 될 사람이 해야 할 간증이다. 이는 사람이 두 차례에 거쳐 해야 할 간증으로, 이 두 단계는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오늘날 너에게 요구하는 간증은 세상 사람이나 어느 특정 인물 앞에서 간증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요구한 것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내가 만족스러워할 수 있는지, 내가 너희 각 사람에게 요구한 기준에 완전히 합치할 수 있는지에 근거한다. 이는 너희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4> 중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한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하는 그 수많은 사역이 모두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연단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더욱이 형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며, 사람이 누리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왔으니 사람은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엄하든,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서 왔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고,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며, 시련이 있을 때마다 사람이 가져야 할 간증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증거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기는 자다. 하나님이 어떻게 연단하든 너는 믿음이 넘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즉, 사람이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고 항상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기는 자다.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탄의 포위 공격 아래에서, 그러니까 흑암 세력 속에서도 굳게 설 수 있고 원래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을 지킬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다. 하나님이 너를 축복해 줄 때는 잘 추구하다가 하나님이 축복해 주지 않을 때 물러선다면, 이것이 정결한 것이겠느냐? 참도라고 확신했다면 끝까지 가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켜야 하며, 하나님이 친히 너를 온전케 하려고 이 땅에 왔음을 알았다면 마땅히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혹여 마지막에 네게 나쁜 결말을 주더라도 네가 계속 따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을 지킨 것이다. 거룩한 영체, 정결한 동정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진심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진심이 곧 정결함이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정결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 실천해야 하는 바이다. 기도해야 할 때는 기도하고, 예배하고 교제해야 할 때는 예배하고 교제하며, 찬송을 불러야 할 때는 찬송을 부를 수 있다면, 육을 버려야 할 때 육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할 때 건성으로 하지 않으며, 시련이 닥쳤을 때 굳게 설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지키라> 중에서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증거하는 것은 주로 네게 실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에게 순종할 수 있는지, 나아가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지와 관계된다. 네가 정말 이러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한다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뜻한다. 죽기까지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한 마디의 원망도 하지 않고, 판단도 비방도 하지 않으며, 관념도 다른 속셈도 갖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영광을 얻을 것이다. 사람들이 경시하는 평범한 사람에게 죽기까지 순종하고 전혀 관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참된 증거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입하라고 요구하는 실제는 그가 하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그것을 실행하며, 실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패괴를 깨닫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이러한 말씀을 통해 그에게 얻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에 네가 정복되어 그에게 완전히 순종한다면, 그때 하나님은 영광을 얻게 되며, 그것을 통해 사탄에게 수치를 주고 사역을 끝마칠 것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의 실제에 대해 관념이 없다면, 즉 네가 그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다면, 너는 잘 증거한 것이다. 언젠가 네가 실제 하나님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되고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종하게 된다면, 너는 하나님께 얻어졌다고, 즉 온전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행하는 일이 네 관념에 맞지 않는 것은 너에게는 시련이다. 만약 네 관념에 맞는다면 고난을 겪을 필요도, 연단을 받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역이 너무나 실제적이고 너의 관념에 맞지 않기에 너는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너에게는 시련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제로 인해 모든 사람이 시련을 겪고 있다. 그의 사역은 초자연적이지 않고 실제적이다. 네가 실제의 말씀과 음성에 대해 분명히 알고 관념도 전혀 가지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역이 실제적일수록 더 참되게 그를 사랑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다.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 즉 하나님의 실제를 아는 사람이자, 하나님의 실제 사역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실제’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중에서

* 너는: (직역) 한 방면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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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죄성을 이기고 회개하고 또 죄짓는 상태에서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희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그 길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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