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님은 인류에게 어떻게 그의 공의 성품을 드러내시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그의 증거를 위한 것이다. 그가 사람의 패괴 성품을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그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낡은 인식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바꿀 수도 없다. 그의 증거와 그의 경영을 위해, 그는 자신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공개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의 공개적인 현현으로 그를 알게 하고, 성품 변화를 이루며, 그를 힘 있게 증거하게 한다.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을 통해 변화된다.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도 없다. 사람의 성품 변화는 사람이 이미 사탄의 속박과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나님 사역의 모델과 표본이 되었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으며,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하며 사람들에게 한 요구는 바로 그를 알고,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사역을 알라는 것이요, 사람의 고정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그의 모든 말씀과 사역에 순종하라는 것이요,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모든 사역과 사람을 정복하는 모든 행사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증거야말로 정확하고 실제적이며, 사탄을 수치스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겪고 그를 알게 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탄에 의해 패괴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하고, 성품 변화로 그의 축복을 받은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바라지 않고, 그에게 구원받지 못한 사탄의 부류가 그를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성품이 변화된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고의로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가장 낙후되고 더러운 곳에 임해야 그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전부 드러낼 수 있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은 무엇을 통해 드러나겠느냐? 바로 사람의 죄와 사탄에 대한 심판, 죄에 대한 혐오, 그를 거역하고 대적하는 원수에 대한 증오를 통해 드러난다. 오늘날 내가 말을 하는 이유는 사람의 죄와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려는 데 있다. 사람의 간사함과 교활함, 사람의 언행 등 그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심판받아야 하며, 사람의 패역은 정죄받아야 한다. 심판을 중심으로 말하는데,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며 사람의 모든 추한 면모를 밝혀냄으로써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낸다. 거룩함은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상징으로, 그의 거룩함이 곧 그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오늘날 이런 말들을 하는 배경은 다 너희의 패괴 성품을 빌려 말하고 심판하며,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질적인 사역이며,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완전히 부각시킬 수 있다. 만약 네게 패괴 성품이 조금도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심판하지 않을 것이며, 네게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드러내지도 않을 것이다. 네가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그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나 더럽고 패역한데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너를 심판하지도 않고 너의 불의로 인해 너를 형벌하지도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그런 존재는 근본적으로 죄를 미워하지 않을뿐더러 사람과 똑같이 더럽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너를 심판하는 이유는 너의 더러움 때문이며, 오늘 내가 네게 형벌을 가하는 이유는 너의 패괴와 패역 때문이다. 너희에게 위풍을 떨거나 일부러 너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러운 땅에 태어난 너희가 더러움에 너무 많이 물들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정말이지 인격도 인간성도 잃어버렸으며, 가장 더러운 곳에 태어난 돼지와 다름이 없다. 바로 너희의 이러한 점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하는 것이다. 또 너희는 바로 이러한 심판 때문에 하나님이 공의로운 하나님이며 거룩한 하나님임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거룩하고 공의롭기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패역을 보고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며, 사람의 더러움을 보고 거룩함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그가 바로 흠 없이 거룩한 존재이자, 또한 더러운 땅에 살고 있는 하나님 자신임을 알 수 있다. … 사람이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 말씀으로 심판해야 사람에게 그가 거룩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그가 사람의 죄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드러내면 그 어떤 존재도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러운 것은 모두 그에게 심판을 받으니 그의 이러한 성품이야말로 공의롭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를 어찌 명실공히 부각물이라고 칭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두 번째 정복 사역은 어떻게 성과를 거두는가> 중에서

지금 네 인식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느냐? 네 마음과 생각, 처신, 언행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거룩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지 않더냐? 너희가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폭로한 패괴 성품 아니더냐? 너의 마음과 생각, 속셈, 그리고 네가 드러내는 패괴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거룩함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똑같이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조금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고, 똑같이 더러운 세상에서 생활하지만 그는 이성과 식견을 갖추었다. 그는 더러운 것을 혐오하며, 너의 언행과 너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더러운 것까지 모두 발견하고 짚어 줄 수 있다. 오늘날, 네가 지닌 낡은 것들, 교양도 식견도 이성도 없는 모습과 낡아 빠진 생활 방식들을 하나님은 전부 폭로하며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이렇게 사역하기에 사람은 그의 거룩함과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너를 심판하고 형벌하여 인식하게 한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훤히 꿰뚫고 있기에 네게서 마귀의 본성이 드러날 때 그것을 짚어 줄 수 있다. 그는 너희들 가운데서 생활하며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환경에서 살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너를 드러낼 수 있으며, 사람의 패괴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사람의 처세 철학이나 간사함, 교활함은 모두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사람의 육적인 왕래를 증오한다. 그는 사람의 처세 철학은 모르지만 사람이 드러낸 패괴 성품은 꿰뚫어 볼 뿐만 아니라 폭로할 수 있다. 그는 사람의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말씀하고 가르침을 주는 사역을 한다. 또한 이러한 것을 통해 사람을 심판하며, 그의 공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보여 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두 번째 정복 사역은 어떻게 성과를 거두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과 하나님의 위엄은 하나님 자신만의 본질이고,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 자신만의 성품이다. 하나님이 노하는 원칙은 하나님 자신만의 신분과 지위를 뜻하며, 그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상징한다는 것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의 본질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고 지리적 위치로 인해 바뀌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고유의 성품은 하나님의 고유의 본질이다. 그가 누구에게 사역하든 간에 그의 본질과 공의로운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노하게 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 원래의 성품이다. 이때 하나님이 노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고,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과 지위도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노하는 이유는 그의 본질에 변화가 생기거나 그의 성품에 다른 요소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사람이 공공연히 하나님께 도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하나님이 봤을 때, 하나님에 대한 도전은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자 하나님의 노를 시험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할 때, 하나님과 겨룰 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노를 시험할 때가 바로 죄악이 범람할 때이며, 이때 하나님의 진노가 자연스럽게 발현하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는 것은 모든 사악한 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모든 적대 세력이 멸망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이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진노이다. 하나님의 존엄과 거룩함이 도전을 받을 때, 정의의 힘이 저지당하고 사람이 정의를 찾아볼 수 없을 때는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낼 때이다. 하나님의 본질 때문에 땅에서 하나님과 겨루고 대적하고 맞서는 세력들은 모두 사악하고 패괴되고 정의롭지 않은 세력이며, 사탄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사탄에 속하는 세력이다. 하나님은 정의롭고 빛이며, 흠이 없이 거룩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악하고 패괴되고 사탄에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게 되면 모두 소멸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감춰져 알려지지 않았지만,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지몽매한 온 인류를 주로 긍휼과 관용으로 대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대부분의 시간과 사건에서 가려져 있고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보기 아주 어렵고, 하나님의 진노를 알기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마지막 사역과 절차로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고 용서했을 때, 즉 마지막으로 긍휼을 베풀고 경고했을 때도 사람이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대항하고 조금도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으며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인내하지 않는다. 이때 하나님은 반대로 긍휼을 거두고 사람에게 진노만을 발한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의 진노를 표현할 수 있고 사람을 징벌하고 멸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불로 소돔 성을 멸망시켰다. 이 방식은 하나님이 인류나 물체를 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불을 이용해 인류를 멸한 것은 그 육체뿐 아니라 영, 혼, 육 전부를 멸하여 소돔 성 사람들이 물질세계와 사람이 볼 수 없는 세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진노를 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이런 발현은 하나님의 진노 본질의 일면이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할 때 더 이상 그 어떤 긍휼과 자비, 관용을 베풀지 않고 인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어떤 이유도 하나님이 계속 인내하도록 설득할 수 없고, 다시 긍휼과 관용을 베풀도록 설득할 수 없다. 그 대신 하나님은 한시도 지체 없이 그의 진노와 위엄을 나타내고, 그가 하려는 일을 하고 또한 깔끔하고 마음에 들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나타내는 방식이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일부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걱정하고 사랑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볼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느낄 수 없는데, 이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오직 긍휼, 관용, 사랑만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성을 멸하고 인류를 증오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인류를 멸하는 그의 노와 위엄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피조물도 상상할 수 없고, 피조물이 아닌 어떤 것도 간섭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으며, 사칭이나 모방은 더욱 불가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의 하나님 성품을 인류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러한 성품을 갖추고 있으며 하나님만이 이런 성품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공의로운 성품을 갖춘 것은 하나님이 사악함, 암흑, 패역, 인류를 패괴시키고 집어삼키는 사탄의 온갖 악행을 증오하는 데에서 기인하며, 하나님께 대항하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증오하는 데에서 기인하고 또 하나님의 거룩하고 무결한 본질에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조물이든 비피조물이든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대항하고 하나님과 겨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하나님이 긍휼히 여겼던 자일지라도, 설령 하나님이 택한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의 원칙을 거슬렀다면 하나님은 가차 없이, 주저하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든 간에,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은 그 순간 하나님의 마음은 점차 누그러져 뜻을 되돌리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을 멸할 것이라 선포하기 바로 직전, 즉 그들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 직전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점차 관용과 긍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두 성품이 하나의 일에서 동시에 나타났는데, 이는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서 모순되지 않음을 사람은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하느냐? 완전히 다른 두 본질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 전과 후에 하나님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고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본질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이 어렵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노할 때 하나님은 사람이 진실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사람의 참된 회개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낌없는 긍휼과 관용을 베풀 것이다. 사람의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는 자와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을 대한 일에서 하나님의 태도는 아주 명확하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고, 하나님은 사람의 참된 회개를 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리고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노할 때에도 사람에게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의 면을 보여 준다.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에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은 크게 긍휼을 베푼다. 사람이 심히 패괴되고 하나님을 매우 적대시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은 크게 노한다. 그리고 그 노는 어느 정도로 분출될까? 그 사람의 대적과 악행이 더 이상 하나님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 눈앞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노가 사라지게 된다. 즉,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의 몸과 생각이 외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따르고 순종하고 싶든지 간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노는 끝없이 분출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을 때, 하나님이 크게 노할 때, 하나님의 노는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분출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에게는 영원히 더 이상의 긍휼도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 성품의 일면이다. … 그는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관용과 긍휼을 베풀며, 악한 것과 죄에 속한 것, 사악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노하며, 그 노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가장 주된 부분이자 가장 두드러지고, 더욱이 하나님이 시종 나타내고 있는 주요 2가지 측면이다. 즉,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므로 끝까지 따르기만 하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누구보다도 공의로우신데, 끝까지 따른 사람을 어떻게 뿌리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공의로운 성품으로 모든 사람을 심판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에는 다 적합한 기준이 있어서 내가 무엇을 요구하든 사람은 다 그것을 충족시켜야 한다. 나는 네가 얼마나 대단한 경력이나 관록을 갖고 있는지 보지 않고, 오직 네가 나의 도를 행하는 사람인지, 또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인지만 본다. 너에게 진리가 없고 오히려 내 이름을 모욕하며 나의 도에 따라 행하지 않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따르기만 한다면, 그때는 내가 너의 악을 이유로 너를 치고 징벌할 것이다. 그때 네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오늘 내가 한 말을 다 지킨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칭찬할 것이다. 너는 네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따르면서 고난을 받고 비바람 속에서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며 환난을 함께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지는 못했다. 너는 날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거나 헌신하면 된다고 생각할 뿐, 의미 있는 인생을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또 너는 “어쨌든 저는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걸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헌신했는데,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했잖아요. 그러니 하나님은 꼭 저를 기억하실 겁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공의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고, 사람의 뜻이 전혀 없으며, 육적인 것도, 사람처럼 거래하는 것도 섞여 있지 않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의 도를 지키지 않는 자는 모두 징벌을 받아야 한다. 하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봐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저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니 나중에 제게 축복을 조금 베풀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너는 내가 한 말을 지켰느냐?” 네가 말한 공의는 거래를 전제로 한 것이다. 너는 내가 공의로우니 그 누구도 차별할 리가 없으며, 끝까지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얻고 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끝까지 따르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나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 있다. 끝까지 따르는 사람은 나에게 완전히 얻어지는 사람이고, 또 나에게 정복된 후 진리를 구해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너는 몇 가지를 해냈느냐? 끝까지 따랐다면 그 외의 것은 어떠냐? 너는 내 말을 준행했느냐? 너는 내가 내놓은 다섯 가지 요구 가운데 하나만 충족했을 뿐, 그 외의 네 가지는 충족시킬 생각도 하지 않는다. 너는 가장 단순하고 쉬운 길을 찾아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추구한다. 나의 공의로운 성품은 너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형벌이자 심판이고 공의로운 응징이다. 악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공의로운 징벌이다. 나의 도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설령 끝까지 나를 따른다고 해도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다. 이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 사람을 징벌할 때가 되면 사람은 매우 당혹해할 것이다. 하나님을 따를 때 그의 도를 행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그동안 고난만 조금 받았지, 하나님의 도를 행하지는 않았으니 할 말이 없어. 그냥 형벌을 받자!’라고 할 것이다. 또 마음속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아무튼 나는 끝까지 따랐으니 형벌을 받더라도 너무 무거운 형벌은 받지 않겠지. 형벌을 받고 나면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받아 주실 거야. 나는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라는 걸 알아. 그러니 나를 계속 이렇게 대하지는 않으실 거야. 어쨌든 난 멸망당할 사람들과는 다르거든. 멸망당할 사람은 무거운 형벌을 받겠지만 나는 좀 가벼운 형벌을 받을 거야.’ 공의 성품은 네가 말한 것과 다르다. 죄를 순순히 인정한다고 해서 가볍게 처벌하지는 않는다. 공의란 바로 거룩함이자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이다. 더러운 자와 변화되지 않은 자는 모두 하나님이 싫어하는 대상이다. 공의로운 성품은 법률이 아니라 행정, 하나님나라의 행정이다. 이런 행정은 진리와 변화가 없는 모든 자에게 있어 공의로운 징벌이며, 돌이킬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이는 사람이 각기 부류대로 나뉠 때, 상선벌악(賞善罰惡)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인류의 종착지가 드러나는 때이자 구원 사역이 끝나는 때이므로 그 후로는 더 이상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지 않고 악을 행한 모든 사람을 응징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너는 무엇이 심판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이해했느냐? 만일 이해했다면 고분고분 심판받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고, 하나님께 이끌려 그의 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없을 것이다. 심판받기만 하고 끝까지 정결케 되지 못하는 자들, 즉 심판 사역에서 도망간 자들은 영원히 하나님께 혐오받고 버림받을 것이다. 그들의 죄상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무겁고 더 많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했으며, 하나님의 반역자이기 때문이다. 봉사할 자격조차 없는 그들은 더 무거운 징벌, 게다가 영원한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입으로는 그에게 충성한다고 하면서 그를 배반하는 어떠한 변절자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영과 혼과 육이 다 징벌받는 보응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의 발현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드러내는 목적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심판 기간 동안 많은 악행을 쌓은 사람을 악령이 득실거리는 곳에 두어 악령이 마음대로 그 육체를 훼손하게 할 것이며, 그들의 육체에서는 시체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보응이다. 하나님은 충성하지 않은 거짓 신자와 거짓 사도 그리고 거짓 일꾼들의 각종 죄상을 일일이 그들의 기록 책에 적어 두었다가 적합한 때에 그들을 더러운 귀신들 속에 던질 것이다. 더러운 귀신들이 마음대로 그들의 온몸을 더럽혀 영원히 환생하지 못하고 다시는 빛을 볼 수 없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한동안 봉사했지만 끝까지 충성하지 않고 외식한 자들을 악인들 가운데 두어, 악인들과 한 패거리인 오합지졸이 되게 하였다가 최종적으로 그들을 멸해 버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적이 없거나 작은 힘도 바친 적이 없는 자들을 한쪽에 내버려 두고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시대를 바꿀 때 모두 멸해 버릴 것이며, 그들은 더 이상 땅에서 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고 마지못해 건성으로 대한 자들은 백성들을 위해 힘을 쓴 사람들 속에 넣어 둘 것이다. 이들 중 적은 수만이 살아남을 것이며, 대부분은 봉사조차 제대로 못 한 자들과 함께 멸망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와 한마음 한뜻이 된 모든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들과 아들들 그리고 그가 제사장으로 예정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이들은 다 하나님이 사역해서 얻은 결정체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눈 부류에 속하지 못한 자들은 다 이방인의 행렬에 들게 된다. 그들의 결말이 어떨지는 너희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내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어떤 길을 택할지는 너희들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사역은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그 어떤 사람도 기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누구에게나 무정하다는 것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이전: 4)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는 주로 어떤 측면에서 나타나는가?

다음: 5)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오늘날까지 이끌고 공급해 오셨는가?

어떻게 해야 죄성을 이기고 회개하고 또 죄짓는 상태에서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희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그 길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관련 콘텐츠

4) 하나님의 새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어떤 성질의 문제인가?

사람이 늘 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내가 말세에 또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였고 더 새로운 사역을 전개한 것은 모르고 어리석게 구주 예수의 강림만 계속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은 모두 나를 믿지 않고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또한 거짓으로 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

설정

  • 텍스트 설정
  • 테마

색상

테마

폰트

폰트 사이즈 조정

줄 간격 조정

줄 간격

페이지 너비

목차

검색

  • 페이지 내 검색
  • 도서 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