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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의 차이

1)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의 본질적인 차이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전 인류와 관계된 사역이자 전체 시대를 대변하는 사역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모든 성령 역사의 동향과 추세를 대변한다. 반면, 사도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 있은 이후에 이어지는 것으로, 시대를 이끌지도, 그 전체 시대의 성령 역사의 동향을 대변하지도 못한다. 그것은 그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이며, 경영 사역과는 관계가 없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한 항목이지만,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단지 쓰임 받는 사람이 이행하는 본분이므로 경영 사역과는 무관하다. 신분, 그리고 행하는 사역이 대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성령의 역사라고 해도 하나님 자신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는 극명한 본질적 차이가 있다. 또한,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대상에게 이뤄지는 성령의 역사에도 경중의 차이가 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역사의 원칙과 범위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열고, 전 인류를 인도하고, 비밀을 밝히는 말씀이자 사람에게 새 시대에서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는 말씀이다. 사람이 얻은 깨우침은 간단한 실천이나 인식에 지나지 않아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인도할 수 없으며, 하나님 자신의 비밀도 밝힐 수 없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졌고, 사람은 사람의 본질을 가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성육신의 사역은 새 시대를 여는 사역이며, 그에게 쓰임 받는 사람이 그의 사역을 이어서 한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의 직분 안에 있는 사역이며, 절대로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사역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낡은 시대를 끝낼 수 없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도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단지 마땅히 해야 하는 것, 즉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사역일 뿐이지, 절대로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할 수 없다. 오직 성육신 하나님이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수할 수 있을 뿐, 그가 아닌 누구도 그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물론 내가 한 말은 모두 성육신의 사역에 대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성육신 하나님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각 시대가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의 영이 친히 말씀을 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고, 사람을 새로운 기점으로 인도한다. 그의 말씀이 끝나면 신성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 것이다. 그다음부터 사람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을 따라 생명 체험에 진입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중에서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그의 경영에 따라 하고자 하는 사역이며 커다란 경영에 관계된 일이다. 반면 사람(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개인의 체험을 공급하고 앞사람이 개척한 길을 이어 다른 체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다른 형제자매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들이 공급하는 것은 개인의 체험이나 영적 인물의 영적 저술이다. 성령께 쓰임 받기는 하지만 그들의 사역은 6천년 경륜에서 큰 경영과 관계된 사역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단계별로 성령이 세운 사람으로, 자신의 역할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 뿐이다. 그들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을 위해 적합한 길을 예비하거나 땅에서 하나님이 행한 경영 사역의 한 부분을 이어 갈 뿐이다. 그들은 경영 안에서 더 큰 사역을 할 수가 없고, 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없으며, 더욱이 아무도 하나님의 옛 시대 사역을 끝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은 피조물이 자신의 기능을 다하는 것을 의미할 뿐, 하나님 자신이 직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사역과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를 여는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며, 성령의 감동이나 깨우침을 받아서 하는 사역이다. 그들의 사역은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실행해야 하는 길과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는 길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경영과 관련이 없고 영의 사역을 대변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가 한 사역은 모두 길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새 길이든 옛 길이든 성경을 벗어나지 않는 이런 원칙을 기반으로 행한 사역이다. 지방 교회를 회복시켰든 세웠든, 어쨌든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은혜시대에 예수와 다른 제자들이 다 하지 못했거나 심화시키지 못한 사역들을 이어서 행한 것이었다. 그들의 사역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세례를 받고, 떡을 떼거나 포도주를 마시는 것 등은 모두 예수가 사역할 당시 사람에게 요구했던 것을 회복하여 행한 것이었다. 그들의 사역은 모두 성경을 지키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이며, 새로운 진전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을 보면, 성경에서 새 길을 발견하고 더 훌륭하고 현실적인 실행 방법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그 당시의 뜻을 찾아볼 수 없고, 말세에 하나님이 하려는 새로운 사역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그들이 계속 옛 길을 가며 새로워지지 않고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과 ‘사람으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라는’ 실행을 고수하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과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며,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라는 말을 지키며, 더욱이 “자매는 설교할 수 없고 순종하는 사람만 될 수 있다”라는 전통 관념을 고집하였다. 그들의 그런 방식대로 계속 이끌어 간다면 성령은 영원히 새 사역을 할 수 없고 사람을 규례에서 해방시킬 수 없으며 사람을 자유롭고 아름다운 경지로 인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시대를 바꾸는 이 단계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행하고 친히 말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지금은 이 흐름 밖에 있는 성령의 사역이 모두 정지되었고, 성령께 쓰임 받았던 사람들도 속수무책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과 다르고, 그들의 신분이나 대표하는 대상도 다르다. 이는 성령이 하려는 사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써, 각각의 사역에 따라 그 사역을 행하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도 달라진다.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도 몇 가지 새로운 사역을 할 수 있고 몇 가지 옛 시대의 사역을 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하는 사역으로 하나님이 새 시대에 나타내려는 성품과 뜻을 나타낼 수는 없다. 그저 옛 시대의 사역을 버리기 위해 사역을 하는 것일 뿐, 직접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대변하는 새 사역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낡은 방식을 얼마나 버리든, 또는 새로운 방식을 얼마나 가져오든, 그들은 사람을 대표하고 피조물을 대표할 뿐이다. 반면 하나님이 직접 사역할 때는 공개적으로 옛 시대의 방식을 폐한다고 선포하지 않고 시대를 연다고 직접 선포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곧장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행한다. 즉, 곧바로 자신이 가져온 사역을 선포하고, 자신이 본래 하려는 사역을 행하며, 자신의 어떠함과 성품을 나타낸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의 성품이 과거 시대와 다르고 그의 사역도 과거의 시대와 다르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사역을 이어 가고 더 심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고 직접적으로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사람이 사역하는 것은 곰곰이 헤아리거나 연구한 뒤에, 다른 사람이 도출한 결론을 기반으로* 인식을 심화하고 실행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정해진 대로 착실히 따르고’, ‘새 신을 신고 옛 길을 가는’ 것이다. 즉,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가는 길이라도 하나님이 친히 개척한 길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고,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들과 선지자들의 말과 사역은 모두 사람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피조물로서 자신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은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의 외형이 피조물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그의 사역은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본분은 피조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직분은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서 서로 바꿔 사용할 수 없다. 사람이 사역한다 함은 단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사역한다 함은 경영을 하고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사도들이 성령께 쓰임 받고, 많은 선지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지라도 그들이 사역하고 말한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 그들의 예언이 성육신 하나님이 말한 생명의 도보다 더 대단하게 여겨지고, 심지어 그들의 인성이 성육신 하나님보다 훨씬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지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기능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이 이행하는 직분은 경영과 관련된 일로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하든, 사역하든, 아니면 이적을 나타내든 간에, 한마디로 말해 그가 행하는 것은 경영 사역 중의 큰 사역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행하는 사역은 단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어느 단계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영이 없다면, 즉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이 없어진다면 피조물의 본분도 없어지게 된다. 하나님이 사역하고 직분을 이행하는 것은 사람을 경영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의 직책을 수행하고, 창조주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그의 고유한 본질인 영에게 있어서는 경영을 하는 것이고, 성육신하여 피조물의 외형을 갖춘 하나님께 있어서는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가 어떤 사역을 하든지 모두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그의 경영 범위 내에서, 그의 인도하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다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요한, 베드로, 바울이 많은 말을 했고, 예수 또한 그러했다. 그런데 그들의 신분은 왜 다른 것이겠느냐? 주로 그들이 한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가 대표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었으니, 하나님의 영이 친히 역사한 것이다. 또한, 그의 사역은 새 시대의 사역으로, 누구도 한 적이 없는 사역이었다. 그는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여호와를 대변하고 하나님 자신을 대표했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다윗은 어떤 호칭으로 불렸는지에 상관없이 그저 피조물의 신분을 대변하고 예수 또는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하고, 아무리 대단한 이적을 보였을지라도, 그들은 그저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영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사역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그들은 예수나 여호와가 열어 준 시대 안에서 사역한 것이지, 그 밖의 사역을 한 것은 아니다. 결국 그들은 그저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하여> 중에서

『예수의 사역과 요한의 사역이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단순히 요한은 예수를 위해 길을 닦는 자였기 때문이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 놓았기 때문이겠느냐?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외치며 천국의 복음을 전했지만, 그의 사역은 시작일 뿐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반면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낡은 시대를 끝냈으며 구약 율법도 완전케 했다. 그는 요한보다 더 큰 사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했다. 요한은 길만 잘 닦아 놓았을 뿐이다. 비록 그도 큰 사역을 하고 많은 말을 했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주는 데 그쳤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생명과 길 또는 더 깊은 진리를 얻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했다. 요한은 큰 선지자(엘리야)다. 그는 예수의 사역을 위해 장소를 준비하고 적합한 사람들을 예비하였으며, 은혜시대의 길을 여는 선구자였다. 정상인의 겉모습만 보고는 이런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 더구나 요한도 매우 큰 사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이 약속한 자이고, 성령이 그의 사역을 수호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사역을 통해 각자의 신분을 구별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의 겉모습으로는 본질을 구별할 수 없고, 사람 또한 무엇이 성령의 증거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한과 예수의 사역이 다르고 사역의 성질 또한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것을 통해 그가 하나님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예수는 시작, 후속, 종결, 성취의 이 몇 단계 사역을 했지만 요한은 시작하는 사역만 했다. 예수는 처음에 회개의 도를 말씀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그 후에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마지막에는 죄에서 인류를 속량함으로써 그의 전체 시대 사역을 완성했다. 예수도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천국의 복음을 전했다. 이 점은 요한과 같다. 다른 점은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사람들에게 은혜시대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은혜시대에 사람들이 실행해야 하는 것과 가야 하는 길을 말씀해 주었고, 마지막에는 구속 사역을 완성했다. 요한은 이런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사역을 한 것이며,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표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든, 쓰임 받는 사람의 사역이든 모두 성령의 사역이다. 하나님 자신의 본질은 원래 영이기 때문에 영은 성령이라고도, 일곱 배 강화된 영이라고도 불리는데, 어쨌든 모두 하나님의 영이다. 시대가 다른 관계로 하나님의 영에 대한 호칭이 다를 뿐, 그 본질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원래부터 성령의 사역이며,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 또한 성령의 사역에 속한다.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 역시 성령의 사역이다. 다만 하나님의 사역은 성령의 완전한 발현으로, 조금의 오차도 없지만, 쓰임 받는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에 속하는 것들이 많이 섞여 있다. 쓰임 받는 사람의 사역은 성령의 직접적인 발현이 아니며, 완전한 발현은 더더욱 아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어떠함으로,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즉, 사람의 사유로 이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전 인류를 이끄는 사역을 선포하는데, 이는 그 자신의 경영과 관계가 있지 사람의 세부적인 체험과는 무관하다. 사람이 말하는 것은 사람의 체험이고,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어떠함이다. 이 어떠함이 바로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으로, 사람이 갖출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체험은 하나님이 나타낸 어떠함을 기초로 깨닫고 인식한 것이다. 이렇게 깨닫고 인식한 것을 모두 사람의 어떠함이라고 한다. 이는 사람의 고유한 성품과 자질을 기초로 나타내는 것이므로 사람의 어떠함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사람이 체험하고 본 것이며, 사람 혼자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사람의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일들을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 반면,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말은 영의 직접적인 발현으로, 영이 이미 행했던 사역을 발현하는 것이다. 육신이 체험한 것도, 본 것도 아니지만, 발현하는 것은 여전히 그의 어떠함이다. 육신의 본질이 영이고, 발현하는 것은 영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설령 육신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영이 이미 행한 사역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후에 육신의 발현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어떠함을 알게 했고, 하나님의 성품과 그가 하는 사역을 보게 했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땅히 진입해야 할 것과 깨달아야 할 것을 더욱 명확하게 하도록 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진리를 깨닫고 체험하게 한다. 즉, 사람이 하는 것은 붙들어 주는 사역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인류를 위해 새로운 활로와 시대를 여는 것이며, 평범한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밝혀 그의 성품을 알게 하는 것이다. 즉, 그가 하는 것은 전 인류를 이끄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사역에서 너는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의 체험 성분이 많고, 사람이 나타내는 것은 사람의 어떠함이다. 하나님도 사역할 때 자신의 어떠함을 나타내지만, 그의 어떠함은 사람의 어떠함과 같지 않다. 사람의 어떠함은 사람의 체험과 생애(사람이 평생 어떤 체험을 하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또는 어떤 처세 철학을 갖고 있는지)를 상징한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 나타내는 어떠함은 서로 다르다. 사회 경험이 있는지, 가정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경험했는지는 모두 네가 드러낸 것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에서는 그의 사회적 이력을 볼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을 모두 들춰낼 수 있으며,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역 행위는 더욱 잘 들춰낼 수 있다. 세상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지 않지만 일반인의 본성과 세상 사람의 모든 패괴를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겪어 보지 못했지만, 세상살이에 관련된 작은 것까지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본성을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영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현재나 과거의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여기에는 처세 철학이 아닌, 지혜와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기묘함이 담겨 있다. 이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사람에게 공개되기도 하고, 숨겨져 있기도 하다. 그가 나타내는 것은 비범한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영의 고유한 속성과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천하의 일을 모두 알고 있다. 그는 지식도, 식견도 없는 ‘유인원’들을 접했지만 지식보다 뛰어나고 위인보다 고매한 말씀을 선포한다. 또 그는 인성이 없고 인성의 상규와 인성 생활을 모르는 어리석고 무감각한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인류에게 정상 인성으로 살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동시에 인류의 비열하고 천박한 인성을 들춰낸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육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의 어떠함보다도 높다. 그는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불결한 사회생활을 체험하지 않아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남김없이 들춰낼 수 있다. 불결한 사회생활은 그의 육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사역과 말씀은 사람의 패역을 들춰내기만 할 뿐, 사람에게 처세 경험이나 교훈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때, 사회 조사도, 사람의 가정 조사도 할 필요가 없다. 그가 사람을 들춰내고 심판하는 것은 그의 육신이 체험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패역을 알고 인류의 패괴를 증오했기에 사람의 불의를 들춰내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다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공개하고, 그의 어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사역은 그 자신만이 할 수 있으며, 육에 속한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한 사역을 놓고 보면 사람은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가 행한 사역을 놓고 보나, 그의 어떠함을 놓고 보나 사람은 그를 피조된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어 비인류로 분류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몰라 ‘신’으로 분류했다. 사람의 이런 행동이 이치에 어긋난 것은 아니다. 이는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역을 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사역은 범위가 있고 제한적이다. 한 사람은 특정 단계의 사역만을 할 수 있을 뿐,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사역은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규례로 이끌게 된다. 사람의 체험에는 모두 범위가 있기 때문에 특정 시기, 또는 특정 단계에만 적용될 뿐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또한, 사람이 실행하는 길과 깨달은 진리는 모두 특정 범위에 적용되며, 사람이 가는 길이 완전히 성령의 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은 성령의 깨우침을 받을 수만 있지, 완전히 성령으로 충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정상 인성의 범위 안에 있으며, 정상 인성의 두뇌 사유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적인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이 범위 안에서 체험한 것이다. 그들의 진리 체험은 다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정상 인성의 삶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지, 정상 인성의 삶을 벗어나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 인성의 삶을 유지하는 기초에서 성령이 깨우쳐 주는 진리를 체험하게 된다. 게다가 그 진리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르며, 그 깊이도 사람의 영적 상태에 관련 있다. 그들이 가는 길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정상 인성의 삶이자, 성령의 깨우침이 있는 정상인이 가는 길일 뿐, 성령이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상 인성의 체험을 보면, 추구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성령이 하는 사역도 각기 다르다. 또한, 사람이 체험하는 환경과 범위가 서로 다르고, 사람의 생각과 사유가 섞이게 되므로 사람의 체험에는 서로 다른 정도의 불순물이 섞이게 된다. 그래서 똑같은 진리라고 해도 그 진리에 대한 인식은 개인의 조건 차이에 따라 다르다. 그들이 인식하는 진리의 참뜻은 완전하지 않으며, 단지 어느 한 측면, 또는 여러 측면에 국한된다. 사람이 체험하는 진리의 범위 역시 개인의 조건에 따라 다르므로 똑같은 진리라고 해도 사람마다 인식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체험에는 한계가 있기에 성령의 뜻을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잘 맞는다고 해도, 또 사람의 체험이 성령이 온전케 하려는 사역에 매우 근접한다고 해도 사람의 사역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이 맡긴 사역만을 할 수 있다. 사람은 그저 성령의 깨우침으로 얻은 인식과 자신이 직접 체험해서 얻은 진리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성령의 대변인이 될 자격도, 조건도 없으며, 사람의 사역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말할 자격 또한 없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사역하는 원칙이 있고,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체험과 조건을 갖고 있다. 사람의 사역에는 성령의 깨우침으로 얻은 모든 체험이 포함되지만, 이 체험은 사람의 어떠함을 대변할 수 있을 뿐, 하나님의 어떠함이나 성령의 뜻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사람이 가는 길을 성령이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사역과 사람의 체험은 완전한 성령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사람이 하는 사역은 흔히 규례에 빠지고, 사역 방식도 유한한 범위 안에 국한되기 쉬워 사람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인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따르는 사람들도 대부분 유한한 범위 안에서 살며, 체험 방식 또한 제한된 범위 안에 있다. 사람의 체험은 모두 한계가 있고, 사역 방식도 몇 가지에 국한되기에 성령의 사역이나 하나님 자신이 행하는 사역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체험은 어쨌든 모두 유한하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어떻게 이뤄지든 규례가 없고, 하나의 방식에 국한되지 않으며, 어떤 규례도 없이 자유롭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따랐다 해도, 그의 사역 방식에서 어떤 법칙도 도출해 낼 수 없다. 비록 그의 사역에는 원칙이 많지만,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이뤄지고 새로운 발전이 있으며, 게다가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시기에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사역을 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몇 가지 인도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진입을 할 수 있고, 늘 새로운 변화를 얻을 수 있다. 그의 사역은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이뤄지기에 너는 그가 사역하는 법칙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해야 따르는 사람들이 규례에 빠지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의 관념을 피해 가고, 관념을 일축한다. 진심으로 그를 따르고 추구하는 사람만이 어떤 규례의 제약이나 종교 관념의 제한을 받지 않고 성품의 변화를 얻을 수 있고, 또 자유로운 방식으로 살 수 있다. 사람은 사역할 때, 자신의 체험과 자신이 달성할 수 있는 것에 근거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의 기준은 특정 범위에 국한되며, 실행 방법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따르는 사람까지 어느샌가 유한한 범위 안에서 살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규례나 의식이 형성되고 만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육신의 체험을 대변하지 않지만, 사람이 하는 사역은 그 사람의 체험을 대변한다. 모든 사람은 다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직접 진리를 선포하지만, 사람은 진리를 체험한 후에야 그에 상응하는 체험을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규례가 없고, 시간과 지리적인 제한을 받지도 않는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그의 어떠함을 나타낼 수 있으며, 그의 사역은 다 자유롭게 이뤄진다. 반면, 사람은 조건과 배경이 없이는 사역할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나 진리에 대한 체험도 말하지 못한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인지, 사람의 사역인지는 대조해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만약 하나님의 사역이 없고 사람의 사역만 있다면, 사람의 말이 고차원적이라는 것만 알 뿐, 그것은 아무도 해내지 못한다. 그 사람의 어투, 일 처리 원칙, 사역할 때의 능숙함과 진중함은 아무도 따라가지 못한다. 너희는 대단한 인성을 가진 사람들을 우러러보지만, 하나님이 사역하거나 말씀하는 모습에서는 대단한 인성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매우 평범할 뿐이다. 그러나 사역할 때 정상적이며 실제적이지만, 그것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의 사역에서 보면, 그 사람의 체험이나 상상, 추리가 아주 높을 수도 있고, 인성이 특히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사람을 탄복하게 할 수는 있어도 경외와 두려움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사람은 사역 능력이 있고 체험이 깊으며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며 탄복하지만, 어찌 됐든 경외하지는 않는다. 그저 감탄하고 부러워할 뿐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께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이 사람이 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것임을 인지하며 신선함과 놀라움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은 그 사역은 측량할 수 없고 지혜로우며 또 놀랍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된다. 또한, 사람은 그가 하는 사역의 비밀이 사람의 사유로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그의 요구에 다다르고 그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 그를 뛰어넘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의 사역은 사람의 사유나 상상을 초월하고,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조차 스스로의 부족함을 모르지만, 그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새로운 길을 열어 사람을 더 새롭고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인도했다. 그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진전과 시작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이 그에게 느낀 것은 탄복이 아니다. 아니, 탄복뿐만이 아니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경외와 사랑이다. 사람은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묘함을 느끼는 한편, 그가 하는 사역과 말씀을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의 사역을 체험한 사람은 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을 받곤 한다. 더 깊게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특히 더 사랑하게 되며, 언제나 그의 사랑스러움, 그리고 그가 하는 사역의 지혜로움과 기묘함을 느끼게 된다.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무궁무진한 힘이 생겨난다. 또한 이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추앙심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깊이 느낀다. 하지만 그의 형벌과 심판을 체험한 사람은 또 그의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을 느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사람이 사역을 한다면 너무 제한적이어서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만 온전케 할 수 있을 뿐, 영원한 종착지로 이끌어 갈 수는 없다. 사람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으며, 사람의 미래와 훗날의 종착지를 보장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이 하는 사역과 다르다. 그는 사람을 창조한 이상 사람을 인도하고, 사람을 구원하려고 한 이상 사람을 철저히 구원해 완전히 얻을 것이다. 또한 사람을 인도하는 이상 적합한 종착지로 이끌어 갈 수 있고, 사람을 창조하고 경영하는 이상 사람의 운명과 앞날을 책임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주가 하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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