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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편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

진리 실행은 주로 본분을 잘하는 것을 말한다. 본분을 잘하는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지, 본분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본분을 잘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수많은 진리 원칙과 연관된 것이니 반드시 진리를 찾고 구해 해결해야 한다. 어떤 본분은 너희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심사숙고하고 반복적으로 생각해 보면서 자신의 능력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완성한 다음 다시 봤을 때 제법 잘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지 않으면 사람은 다 바보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면 사람은 매우 총명해지고 지혜가 생긴다, 그렇지? 성경에 유명한 구절이 있는데 뭐라고 했느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잠언 9:10)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며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말씀의 의미를 도리적으로는 다 알고 있다. 그럼 실생활에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체험하고 실행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겠느냐? 이것은 사람의 실행과 관련되지 않느냐?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믿고, 이 말씀이 진리라는 것도 믿는다. 자신이 이미 체험하였고 직접 체감을 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검증해 주지 않아도 맞는 말씀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는 이 말씀을 인정함과 동시에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시켜야 하겠느냐? 너는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겠느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긴 뒤로 언제부턴가 자신이 총명해진 느낌, 지혜가 생긴 느낌, 머리가 트이고, 뭘 해도 방향이 생기고,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을 느꼈다. 너는 이런 체험이 있느냐? 너도 이런 체험이 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실행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너의 진리가 되었고 너의 생명이 되었고, 너의 실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의 행동과 생각, 마음가짐, 사람됨의 원칙, 처세 방식을 인도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말씀의 실제적인 부분이다. 너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느냐?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과 역사에 순종함으로써 적용합니다.) 그 대답은 좀 공허하다. 들어 보면 말은 맞다. 그러면 어려운 일이 임해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이 현실적인 어려움이 아니냐? 그럴 때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어떻게 해야 이 말씀이 너에게서 효과를 볼 수 있고,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해야 너의 행위를 단속하고, 네가 일 처리하는 원칙과 방향을 바꾸도록 하겠느냐? 예를 들면, 배가 아플 때 누군가 “배가 아플 때는 진통제를 먹으면 나아요. 통증이 멈추거든요.”라고 말했다고 하자. 이것도 어느 한 분야의 이치이다. 너는 이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배가 아플 때, 너는 진통제를 먹겠느냐?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다. 그렇지 않으냐? 언제 먹어야 하는지, 식전에 먹어야 하는지 아니면 식후에 먹어야 하는지, 한 번에 몇 알을 먹어야 하는지, 하루에 몇 번 먹어야 하는지, 몇 알을 먹어야 통증이 멈추는지, 몇 번 먹어야 통증이 사라지는지 이런 세부적인 내용은 모르고 있다. 그렇지 않으냐? 이런 세부 내용은 네가 ‘진통제를 먹고 통증이 멈춘다’라는 말을 경험하고 적용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세부적인 내용은 이 말을 실생활에 적용해야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말을 적용하지 않으면, 네가 이 말을 아무리 찬성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여도 단지 도리나 한마디 말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네가 이 말을 실생활 속에 적용해 병이 나았다면, 유익을 얻은 것이고 도움을 받은 것이다. 그때 가서 다시 이 말을 하게 된다면, 이 말은 더 이상 빈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말이다. 그러면 너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이 말에 관한 실제적인 경험으로 도와줄 수 있다. 방금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에 대해 말했다. ‘여호와를 경외하다’라는 말씀은 사람이 실행해야 할 것이고, ‘지혜의 근본이다’라는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얻는 성과이다. 다시 말해, 네가 ‘여호와를 경외하다’라는 말씀을 실행하여 실생활에 적용해 너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어야 지혜라는 성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 ‘여호와를 경외하다’라는 말씀을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 이 말씀은 실생활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문제와 연관된다. 즉 사람의 마음과 생각, 정형, 난관, 사람의 관념과 상상,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의혹, 추측 그리고 본분을 하면서 사람에게 항상 나타나는 것, 즉 건성으로 하거나 기만하는 것, 독선적이거나 독단전행하는 등등, 이런 모든 것과 연관된다. 너는 어떻게 이 말씀을 적용해서 자신의 일 처리 원칙과 사람됨의 원칙을 바꾸겠느냐? 너희들은 여기의 세부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네가 이 말씀을 체험하고 이해하고 체득하였다면, 이 말씀이 너에게는 진리인 것이다. 만약 네가 이 말씀을 들은 적은 있지만 전혀 경험한 적이 없고 그냥 알기만 한다면, 이 말씀이 너에게는 진리가 아니라 영원히 도리이고 책에 실린 글귀이며 한마디 말씀일 뿐이다. 왜 진리가 아니라고 할까? 지금까지 이 말씀으로 너는 마음가짐이나 생각을 바꾼 적이 없고, 너의 일 처리하는 태도와 본분하는 태도를 전혀 바꾸지 못했으며, 너의 정형을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너는 이 말씀을 통해 그 어떤 유익도 얻지 못했으며, 또한 사상 관점과 사람됨의 원칙, 처세 원칙,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전혀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유명한 구절을 많이 말하다 보면 다 알게 된다. 너희도 그런 말들을 많이 알게 되면 말은 할 줄 알게 된다. 그러면 종교 바리새인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차이가 없다. 그렇지 않으냐? 종교에서 오래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기껏해야 성경의 유명한 구절을 좀 외우는 정도가 아니냐? 유명한 구절을 많이 외운 사람일수록 영적인 사람으로 추앙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고, 명성도 높아지고 지위도 높아진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그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관점과 인류를 대하는 관점, 각종 사람을 대하는 관점을 보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것은 하나의 사실을 증명한다. 즉, 그 사람이 외운 구절이 전혀 그 사람의 생명으로 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론이나 종교 도리만 되었을 뿐이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지는 못했다. 만약 너희도 종교 인사들과 같은 길을 간다면 너희는 기독교를 믿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짧은 사람은, 믿은 지 오래되고 말을 근거 있고 확실하게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앉은자리에서 2~3시간씩 말했어도 지친 기색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보고는 그들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영적인 용어와 표현, 언행을 따라 배우고 또 영적인 말씀 구절을 외운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며느리 늙어 시어미 되듯 그런 날이 찾아온다. 믿은 햇수도 많아졌으니 그때는 어디에 자리 잡고 앉으면 고상한 이론들이 청산유수 같이 쏟아진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 보면 다 쓸데없는 말이고 빈말이며 글귀일 뿐이다. 그런 사람은 종교 사기꾼이 확실하다. 자신도 속이고 다른 사람도 속였으니, 얼마나 슬픈 일이냐! 너희는 절대 그 길로 가면 안 된다. 일단 그 길로 갔다 하면 끝장이고 돌아오기 힘들다. 그런 사람들은 그것을 보물로 여기고, 그것을 생명으로 간주하여 어디에 가든 그것으로 사람들과 비교한다. 그렇게 되면 사탄의 패괴 성정 외에 또 영적 이론이 많아지고 외식하는 성분도 많아지게 되는데, 그런 사람은 수치를 모르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우며 보기에 징그러울 정도로 정말 꼴불견이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믿었던 교파를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교파이다. 다시 말하면, 형식에만 얽매이고 어떠한 생명 성정의 변화도 없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진리, 길, 생명은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적대적인 바리새인이 되기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러한 무리를 기독교라고 정의를 내린 것이다. ‘기독교’라는 이 이름은 어떻게 생긴 것이냐? 그들이 자신을 성결한 사람이자 영적인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자 참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사칭하는 동시에 모든 진리를 부인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제를 부인한 것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이 전에 하셨던 말씀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무장하고 포장한 다음, 나중에 그것을 자본으로 도처에서 공짜로 먹고 마시고, 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간판을 내걸고 도처에서 공공연히 사기를 치며 사람들과 비교하고 겨룬다. 그들은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자본으로 여기며, 또 하나님을 속여 복과 상을 얻어 내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가는 길이다. 말하자면 그들이 이런 길로 가기 때문에 결국 기독교라고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지금 보면 ‘기독교’라는 이 이름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이것은 치욕의 표징이지, 영광스럽고 영예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생명 진입을 추구하려면 주로 무엇을 알아야 하느냐?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에서 어떤 측면의 말씀이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무엇인지를 찾아 거기에서 실행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다음 생활 속에서 자신의 처신과 관점, 여러 가지 정형과 각 측면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비춰 봐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분을 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해야 하는지를 비춰 봐야 한다.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면서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글귀와 종교 이론으로 자신을 무장해 영적인 사람으로 사칭하지 말고 영적인 척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실행을 중요시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의 정형을 비춰 보고 성찰을 중요시해야 한다. 그다음 여러 가지 일을 대하는 자신의 관점과 태도를 바꾸면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함부로 하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하지 않으며, 자신의 욕망대로 일을 하지 않고, 패괴 성정 속에서 살지 않으며, 일하거나 말할 때 항상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고 진리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점차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지, 스스로를 억제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억제해서 생기는 것은 단지 하나의 행동일 뿐, 이는 겉으로 단속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실행함으로 말미암아 패괴 성정이 점점 줄어들고 정형도 점점 좋아지고, 늘 하나님 앞에 나옴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생기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되고 마음속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즉 사람이 어떠한 마음 자세와 정형, 성정을 갖추어야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너희들은 이런 것에 대해 체득한 것이 있느냐? (조금 있습니다.) 조금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점차 더 깊이 진입해야 한다. 지금은 진리를 많이 듣고 예배도 많이 드리고, 여러 가지 조건이 다 갖춰진 환경에서 본분을 하고 있으니, 너는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아주 크다고 느낀다. 하지만 만약 너의 상황이 바뀐다면 지금의 정형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금 알고 있는 진리로 너의 행위와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바뀌지 않게 할 수 있느냐? 이건 불확실하다. 그렇지 않으냐? 언젠가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이 됐을 때, 그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실제에 진입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이 됐다는 것은 어떤 것이냐? 진리 실행이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고,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당연한 일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네가 진리에 따라 일하는 것이 순리에 따르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너의 습관이 되어 인생의 방향이 옳고 정확한 것이다. 이러면 말씀이 너의 생명이 된 것이다. 아직까지 일이 임하면 생각하고 모색하고 찾고 구해야 한다면 아직은 멀었다. 일단 환경이 바뀌면 네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네가 진리를 얻기 전, 진리가 너의 생명이 되기 전에는 여전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금 네가 믿음이 좀 있고 기꺼이 헌신하려고 하고, 의지가 좀 있고 좋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너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실증하지 않는다. 그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다.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선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생길 때면, 즉 하나님이 너를 어디에 두어도, 설사 3~5년, 8~10년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이 변치 않을 정도, 욥처럼 예배도 없고 설교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의 도(道)와 말씀이 마음속에 있어 하나님을 떠나지도 않거니와 하나님이 날마다 어떻게 인도해 주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정도, 하나님의 시련이 임해도 네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너는 자립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너희들은 아직 부족하다. 그렇지? 너희들은 아직까지 자신을 위장하는 단계에 있다. 영적인 사람이 되고, 영적인 도리를 나누고, 많은 영적 표현과 영적 용어, 영적 이론을 갖추려고 추구하며, 바리새인이 되고, 거짓된 영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아직까지 이런 길을 가고 있고 이런 잘못된 길에 있는데, 그러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우선, 아직도 관점을 바로잡지 못했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확정하지 못했다. 마음은 아직도 밖으로 떠돌아다니는데, 겉면의 방법과 형식, 세력에 관심이 쏠려 있다. 공연할 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나 춤 잘 추는 사람, 혹은 예쁘게 꾸민 사람을 보면 눈빛이 달라지면서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말을 잘하고 공연에 소질이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팬이 되고 싶어 하고, 사인까지 받고 싶어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느냐? 왜 사람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게 되느냐? 세상의 사악한 흐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아직도 마음과 의식 속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면 어떤 사람들은 넋이 나간 사람 같다. 그러다가도 진리를 교통할 때면 졸거나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초조해하고, 불편해하는 추한 모습들이 다 나온다. ‘왜 못 알아듣겠지? 왜 귀에 안 들어오지? 왜 전부 같은 말처럼 들리는 걸까? 뭐 진리, 진리 원칙, 본분을 건성으로 하는 거, 진솔한 사람이 되는 거, 교만한 성정, 이런 말밖에 없어? 어떻게 늘 이런 말만 하지?’라고 하다가도 무슨 명절에 어떤 공연을 하는지, 언제 몇 시에 누가 출연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빠삭하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어느새 다 기억하고 있고, 마음에 새겨 두고 있다. 내가 그런 사람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으냐? (역겹고 가증스러우실 겁니다.) 역겹지도 않고 가증스럽지도 않다. 단지 속이 탈 뿐이다! 그들에게 날마다 입이 닳도록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진솔한 사람으로 살 것인지를 알려 주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알려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그러다가도 공연이나 무의미한 흥 돋우기에 신경을 쓰고 신바람이 나 한다. 그런 사람은 다 어떤 사람들이냐?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 교회가 요즘 대세예요.”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참 낯설었다. 우리 교회에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그들의 입에서는 어떤 말이 나올지 예상을 못 할 정도다. ‘묘필생화’라는 성어가 있는데, 그들은 말을 잘해 입에서 꽃이 핀다. 말주변이 좋아 이방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으면 그대로 따라 한다. 이방인의 흐름을 좇아 하나님 집에 가져다 그대로 적용하는데, 이들은 ‘접목’을 참 잘 한다! 말도 빨리 배우고 말재주도 아주 좋지만, 아쉽게도 이들이 하는 말에는 진리에 부합되고 긍정적인 것에 부합되는 말이 한마디도 없다. 사람의 이런 모습은 어떠냐? 추태가 아니냐? 그들은 교통 듣는 것을 시간 때우는 것으로, 심심풀이로, 기분 전환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각종 공연을 보고 같이 들썩이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며, 진짜 하나님 나라 자민의 삶인 것이다.

현재 하나님 집에서 복음을 전해 하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이 왔다는 소식을 증거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했는지 모르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헌신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사이자 지혜이며, 하나님이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우리 교회가 대세’라는 말 한 마디로 요약해 버렸다. 그 ‘대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 세력이 커진 것이냐? 유명해진 것이냐? 세상에서 인정받게 된 것이냐? 성공적으로 세상의 환심을 산 것이냐?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느냐? 너희도 이 말을 들어 보면 정말 화가 나지 않느냐? (납니다.) 그런 말은 하나님 집 사람들 입에서 나오면 안 되는 말이다. 이방인들이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무엇을 대세라고 하느냐? 이방인이 배우나 유명인이 되거나 혹은 어떤 일을 했을 때 대세라고 말한다. 그것은 돈을 잘 벌 수 있게 되고 유명해진 것을 가리킨다. 명성으로 큰 이익을 바꾸어 오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흐름으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차원이자 삶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명리와 사악한 흐름을 추구하며 대세가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이름과 이익이 대박 나기를 바라며 그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님 집의 사역과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의 성과를 ‘대세’라는 말로 묘사하면, 너희가 듣기에는 어떠하냐? 그것은 이방인과 불신파들이 하는 말이다. 하나님을 따른 시간이 얼마인데 어떻게 아직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맞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맞느냐? 누구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냐? 그 말은 검증을 통과하지 못할 말이다. 그렇지? 너희가 갑자기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생각을 해 보더니 ‘되지 않을까? 별거 아니잖아.’라는 마음 자세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긴다. 만일 너희가 참으로 진리를 깨달았다면 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반박했어야 한다. 이 말은 절대 여기에 사용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아니고 사용해야 할 단어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존엄을 모욕하고 우리의 입을 더럽히는 것이다. 이런 허튼소리를 어떻게 우리들 입으로 할 수 있느냐? 우리가 영적인 말이나 진리 교통은 하지 못해도 그런 허튼소리는 하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냐?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다 가련한 몰골이 아니냐?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주 가련하다. 깨달은 것도 없으면서 추구도 하지 않는 사람은 가련한 데다 밉상이다.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고 추구하지도 않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곳곳에서 이방인의 성정과 태도를 유로하고 드러낸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자제할 수 없다. 시간이 짧으면 좀 절제할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답답하고 괴롭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다 유로하게 된다. 그런데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되겠느냐?

지금 너희들 마음속에는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한 기준과 목표가 있느냐? 사람이 어떤 길을 가고 무엇을 추구해야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길을 가야 바른길을 가는 것이고 올바른 사람이 가는 길이냐? 어떤 길이 올바른 사람이 갈 길이 아니라 건달이나 악인, 사악한 자가 갈 길이냐? 이런 것을 알고 있느냐? (압니다.) 그럼 된다. 그것은 너희들 마음에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사악한 것과 정의로운 것, 옳은 것과 그릇된 것, 진리에 부합되는 것과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계선이 있어 그런 것들을 분별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분별할 줄 알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단지 너희가 어리석어서 이런 것을 전혀 모를까 걱정될 뿐이다. 이런 것을 알았다면 너희는 모든 생각과 행위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노력하고, 진리 추구에 힘써야 한다. 그것으로 늘 글귀만 추구하는 것을 피하고, 말만 잘하는 사람, 겉모습으로 남을 속이는 사람, 보기 좋게 가식으로 꾸미는 사람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어떤 일에서든 거짓으로 꾸미지 말고 남에게 거짓된 모습을 보여 주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결점이든 부족한 점이든, 자신의 약점이든 패괴 성정이든 포장하거나 꾸미지 말고 털어놔야 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사람이 진리로 진입하는 첫걸음이자 가장 돌파하기 어려운 관문이다. 네가 이 관문을 극복하면 진리에 진입하는 것이 쉬워진다. 그 첫걸음은 네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자신의 모든 것, 즉 좋은 것과 나쁜 것,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들을 다 사람에게 그대로 보여 주고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도 드러내 보이고 감추지 않으며 포장하지 않고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간사하게 하지 않고, 기만하지 않으며, 사람을 대할 때도 솔직하고 진실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어떤 상태에서 살게 되겠느냐? 이렇게 하는 것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고 빛 속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다 간파할 수 있고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너는 자신의 명예와 체면, 지위를 위해, 혹은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감추거나 꾸미거나 어떤 수단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런 부질없는 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너는 사는 것이 힘들지 않고 빛 아래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첫걸음이다. 그다음은 자신의 모든 생각을 해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틀린 건지, 하나님은 어떤 일을 기뻐하지 않는지를 알고 제때에 돌이키고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바로잡는 목적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진리를 받아들여 사탄이 패괴시킨 것들을 밀어내고 진리로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원래 간사함과 기만의 성정으로 일을 처리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진솔하고 단순하게 마음을 여는 태도와 정형, 성정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범사에 솔직 담백하고, 감싸거나 포장하지 않고,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숨기지 않으며, 형제자매들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 교통하면서 네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진솔한 태도라는 것을 보게 한다. 그러면 진리가 점차 너에게 뿌리내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조금씩 성과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네 마음은 갈수록 진솔해지고 점점 더 하나님께로 향하며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진리가 너에게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진리가 이미 너의 생명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진리가 너의 생명이 되었을 때, 만일 네가 누군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경외하지 않고, 기만하고, 방해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는 것을 본다면, 이를 분별할 줄 알고 폭로할 수 있으며 진리 원칙에 따라 대할 수 있다. 만일 진리가 너의 생명이 되지 못하고 사탄 성정이 너를 지배하여 너의 생명이 되었다면, 너는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것이다.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상관하지 않고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고, 심지어 피하면서 ‘차라리 안 볼래.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말하면 되겠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데, 나도 상관 안 할래. 어쨌든 말 안 할 거야.’라고 한다. 하나님 집의 이익과 하나님의 사역이 얼마나 손해를 보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사탄이 지배한 결과인데, 너는 귀신도 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살게 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것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이 손해를 입고 피해를 입는 것을 보아도 팔이 안으로 굽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 그런 사람이 사는 것이 인간다운 데가 있겠느냐? 그러면 분명 귀신이다.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진리가 네 마음에서 왕 노릇 하여 너의 생명이 되었을 때,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며 사악한 어떤 일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네 마음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선 양심의 가책을 받아 편치 않다. 그런 후에 바로 ‘난 모르는 척할 수 없어. 그 일을 말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해.’라는 느낌이 들어 벌떡 일어나 그런 악행을 폭로하면서 제지시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교란을 받지 않게 한다. 너는 그런 용기와 각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간파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으며 책임을 다해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다. 이 본분은 어떻게 한 것이냐? 진리가 너에게서 빛을 발하여 너의 생명이 된 결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너는 이렇게 본분을 다 한 후, 하나님이 너에게 상을 줄지, 네가 이렇게 한 것을 하나님이 보았는지,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는지, 하나님이 열납하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데, 너는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을 다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면 네가 양심과 이성이 있고, 인성이 있고, 인격이 있고, 존엄 있게 사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네가 행한 모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것”이라는 하나님 말씀을 이행한 것이 된다. 너는 이 말씀의 실질을 실천한 것이고, 또한 이 말씀을 실제로 살아낸 것이다. 진리가 너의 생명이 되었을 때, 그런 것들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아직 그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다면, 너는 간사함과 기만, 거짓을 유로할 것이다. 또한, 악인이 못된 짓을 하고 사악한 세력이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것을 보았을 때,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어떠한 느낌도 없을 것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여전히 잘 놀고 즐거울 것이며, 심지어 그런 일이 네 눈앞에서 발생해도 웃음으로 대하고, 아주 마음 편하게 먹고 잘 것이며, 어떠한 가책도 받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삶에서 너희는 어떤 것을 택하겠느냐? 어떤 삶이 참다운 사람의 모습이고 긍정적인 것의 실제인지, 어떤 삶이 사악한 것이고 마귀 본성대로 사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진리를 실제로 만들지 못하고, 진리가 생명이 되지 않았을 때, 사람의 삶은 그렇게 비참하고 가련하며 사람 스스로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진리가 생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도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조금 괴롭다가도 금방 지나가 버리고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

대다수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행하고 싶어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런 의지와 소망에서만 그칠 뿐이다. 사람에게 진리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사악한 세력이나 악인, 나쁜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혹은 거짓 인솔자와 적그리스도가 원칙에 어긋나게 일을 처리해 하나님 집의 사역에 손해를 끼치고 하나님 선민이 해를 입어도 담대하게 앞장서서 말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왜 용기가 없겠느냐? 간이 작아서일까? 아니면 표현력이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제대로 간파하지 못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다 아니다. 몇 가지 성정의 제약을 받는 것이다. 하나는 간사한 것인데, 자기 생각부터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면 무슨 이득이 있지?’라는 것은 간사한 성정이 아니냐? ‘이걸 말하면 미움을 사게 될 텐데, 그럼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봐?’라고 생각하는 것도 간사한 성정으로 나온 것이 아니냐? 또 다른 하나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성정 때문이다.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해 보는 게 내 일이야?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왜 신경 써야 돼? 내 일도 아닌데. 보고 들은 게 있어도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나는 인솔자도 아니니까 내 책임 아니야.’ 이러한 생각들이 네 속에 있는 것인데, 어찌 보면 네가 순간 무의식중에 생각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네 마음에서 영구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사람에게 있는 사탄의 패괴 성정이다. 그 패괴 성정은 너의 생각을 좌지우지하고 너의 손발을 묶고, 또한 너의 입도 통제한다. 네가 입을 열어 말하고 싶을 때, 말이 입안에서 맴돌지만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설령 말했다 해도 완곡하게 여지를 남기지, 콕 집어서 말하지 않는다. 결과는 미지근하게 되어 버린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어쨌든 난 말했으니까 양심은 편해. 책임을 다했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고, 또 효과도 없거니와 하나님 집의 사역은 여전히 손해를 입었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본인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은 당당하게 책임을 다했다고 말하거나 그때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완전히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은 것이 아니냐? 바로 네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옳다고 여기는 것들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일지라도 자기 입술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하는 말은 늘 본심과 다르고, 항상 머리에서 가공을 거쳐 많은 생각을 해 본 다음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는데, 너는 그것을 보고 아주 만족스럽게 여긴다. 일이 처리됐든 안 됐든 개의치 않는데, 이것이 바로 너의 마음이다. 이것은 무엇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냐?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너는 입이 있어도 자기 의지대로 안 된다. 하고 싶은 말이나 솔직한 말은 과감하게 하지 못하고, 말을 꺼내지 못한다. 네가 당연하게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 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만 분의 일도 하지 못한다. 너의 손발은 다 사탄의 패괴 성정에 묶여 너의 손발이 아니고, 너의 입이 아니며, 너의 머리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사탄 패괴 성정의 입과 다리, 손으로, 네 자신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너는 사탄의 패괴 성정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지시한 대로 행하고, 말하라고 한 대로 말하게 된다. 너는 속으로 ‘이번엔 용기 내 담대하게 말해야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일어나서 나쁜 사람과 나쁜 일, 그리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는 사람과 책임감이 없는 사람을 꾸짖어야 돼. 책임감이 있어야 돼.’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 말하러 갔지만, 상대방이 책상을 내리치는 순간, 심리적으로 무너진다. 그런데도 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느냐? 너에게 용기가 있으면 무슨 소용 있느냐? 결심도 있고 의지도 있지만 무슨 소용 있느냐? 다 소용없다. 너희는 그런 일에 틀림없이 많이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결국 투항하고 만다. ‘안 되겠구나! 난 진리를 사랑하지 않아, 도태됐어, 진리를 추구할 사람이 못 돼.’라고 한다. 네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리를 추구했느냐? 진리를 실행했느냐? 야욕과 뚝심만 가지고 뒤에서 계속 기도하고, 결심을 하고, 의지를 다지고, 맹세한들, 무슨 결과가 있느냐? 결과적으로 예스맨이 된 것밖에 없다. ‘누구도 건드리거나 꼬집으면 안 돼.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 나 몰라라 할 거야. 나와 상관없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말 안 해. 내 이익과 허영심에 관련되고 체면 깎이는 일은 절대 상관 안 할래.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대할 거야. 모험할 수 없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난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안 할 거야!’라고 한다. 너는 철저히 사악함과 간사함, 강퍅함, 진리를 싫어하는 그런 패괴 성정에 통제된 것이다. 아주 단단히 통제돼 손오공의 금고아를 쓴 것보다도 더 괴롭다.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는 삶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냐! 너희가 말해 보아라,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패괴를 벗어 버리기가 쉽겠느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내가 말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믿는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교통(원문: 道)을 들어도 소용없다. 그런 식으로 마지막까지 버틴다고 해도 종교 사기꾼이나 바리새인으로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더 나쁜 결과라면, 어떤 일로 시험에 빠져 본분을 잃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낙오될 수도 있다. 이것은 위험천만한 상태다! 지금 어떤 것도 진리를 추구하는 것만큼 중요치 않다. 그 어떤 것을 추구해도 부질없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늘 글귀를 말하고 글귀만 갖추는지를 살펴보아라. 누가 툭하면 메모하고, 외우고, 듣기도 하지만, 나중에 교통하는 내용을 들어 보면 다 텅 빈 이론과 글귀뿐이며, 사람을 속이는 종교 사기꾼 같은 사람인지 살펴보아라. 그런 사람이 날마다 글귀를 갖추는 목적은 남을 속이기 위한 것일 뿐, 본인은 그 글귀를 전혀 실행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교통은 별로 잘하는 것 같진 않지만 본분을 하거나 설교 교통을 들을 때에 추구하거나 생각하는 모습이 있으며, 늘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늘 빛 비춤이 따르며, 일할 때 보면 원칙에 따라 한다. 비록 교통하는 내용은 많지 않지만 실천에 옮기고, 일할 때 하나님의 요구대로, 진리의 원칙대로 처리한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일을 해도 정확하고 원칙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너희는 어떤 길을 갈 계획이냐? (진리를 추구하는 길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려면 어떤 것을 피해야 하느냐? (종교 사기꾼이 되는 것과 바리새인의 길로 가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맞다, 종교 사기꾼이 되는 것과 바리새인의 길로 가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럼 너희는 2~3년 뒤에 어느 정도로 변화될 생각이냐? 계획이 있느냐? (일이 임하면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대로가 아닌 진리 원칙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스맨이 되지 않고 진솔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함으로써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라니 참 좋구나. 추구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쉽지가 않다. 사람이 세상의 사악한 흐름이나 타락된 성정을 좇아 타락하기는 쉬워도, 진리를 추구해 진리의 실제가 있는 사람이 되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 되고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러려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만 네가 그런 의지가 있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영과 마음이 있는 올바른 사람이라면, 그런 고생을 해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사악한 흐름을 좋아하고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진리를 얻기가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고 가치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것은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상을 받는 것도 아니며, 눈앞의 이익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신파의 마음가짐이 아니냐? 늘 눈앞의 물질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불신파의 심리 상태이다. 너희들은 그런 정형이 없느냐? (있습니다.) 그런 정형이 있으면 그것을 알고 깨달아야 한다. 그다음 하나님이 폭로하고 파헤친 것을 받아들이고,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에서, 사악한 흐름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고,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그렇게 하려면 고생할 각오,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정도, 정의와 공평 공의를 좋아하는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에 달렸다. 네가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정도가 보통이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돼. 어쨌든 세상에서 살아도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그리고 사악한 흐름을 따라도 별로 괴롭지 않으니까. 어떻게 살든 한평생 사는 것은 마찬가지니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것이다. 네가 진리를 추구할 각오가 별로 크지 않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정의감 있는 사람이 되려는 열망이 강렬하지 않다면 진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추구와 의지에 달렸다. 너희들의 열망은 어느 정도가 되느냐? 이 사악한 세상에 대해, 사악한 인류에 대해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느냐? 패괴 성정에 얽매이고 속박을 받고 학대를 받은 체득이 얼마나 깊으냐?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지향하는 정도가 얼마나 크냐? (단지 소원일 뿐입니다.) 작은 정도의 소원이 있다는 것은 조금 지향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지향은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다. 좋아하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좋아하는 정도에 이르는 것도 쉽지 않다.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좋아하고 바라게 되며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 심판 형벌을 추구하고 개인의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그 정도의 고생을 하고 그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진다.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정도가 보통이라면 그런 것을 내려놓을 때 너무 아쉽고, 안타깝고, 아주 어렵다. 네 스스로 가늠해 보아라, 이것도 네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 뭘 평가하겠느냐? 너의 여러 가지 태도와 유로를 평가해야 한다. 네가 어떻게 했고, 긍정적인 것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생각했으며, 어떻게 대했고, 그것을 마음속에서 중시했는지 안 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사악한 흐름이나 나쁜 사람, 나쁜 일에 부딪히면 네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어떻게 대했는지도 평가해야 한다. 네가 좋아하고 맞장구를 치고 그것을 바라는지, 아니면 아예 거기에 빠졌는지, 아니면 마음에 용납할 수 없는지, 아니면 그것에 대해 혐오감과 반감을 느끼는지 네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대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를 스스로도 평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냐? 평가를 하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잡아야 한다. 그다음 긍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네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최종에 진리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아직 미지수이고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면 너는 소극적이 되겠느냐? 소극적이 되면 안 된다. 어쨌든 우리는 한번 도전해 봐야 한다. 이방인들의 말처럼 ‘한번 해 보자, 한번 가 보자’라고 해야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바른길로 가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바른길이다! 현재 너희들도 이것이 바른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이 전 인류에게는 가장 큰 복음이고 인류에게 주는 가장 큰 소망이다. 사람에게 소망을 가져다준 이상, 너는 마땅히 그 소망을 향해 노력하고 추구해야 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반평생이나 일생동안 추구하다가 머리가 세고 주름이 가득 해지는 50~60세가 되었을 때는 지금처럼 늘 사탄 성정에 묶여서 힘들고 괴롭게 사는 멍청한 모습이 아니라 최소한 진리를 좀 갖추고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진리를 얻은 것이다. 네가 참으로 진리를 얻었다면 자유로울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와도 하나님께 그 어떤 요구도, 상상도 없을 것이며, 하나님이 시키는 일에서 어떤 선택도 없이, 원망도 불평도 없이 하나님이 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 때나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 원망 없이 진심으로 순종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사람이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너는 마땅히 진지한 자세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무조건 맞아. 의심하지 말고 마땅히 순종해야 돼.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까 기다릴 거야. 조용히 희소식을 기다릴 거야. 하나님께서 하시게 해야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틀림없이 하셔. 이 일은 나한테서 꼭 이루어질 거야.’ 만약 하나님이 너희 것을 거두어 가 재산이 없어지고 아들이 죽는다고 해도 하나님께 더욱 순종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몇 년은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난 아브라함의 믿음이 없으니 죽을 거야. 안 살래. 추구하지도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무슨 태도이냐? 그 태도는 옳지 않다. 이것은 무지막지한 태도이다. 어떤 좌절이나 고난이 임하든, 어떤 환경이 임하든, 어떤 상황에 놓이든 포기하지 말고 소극적이 되지 말아라. 너희가 아브라함만큼 되지는 못해도 롯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지금 내가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사람이 지금 롯의 믿음 정도는 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사자가 왔을 때 의인이 되어 그 사자들을 섬기고 하나님이 한 사역을 의심하지 않으려면 분량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맞습니다.) 그러려면 진리를 좀 갖춰야 한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야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태도가 올바른 태도이다.

어떤 일들은 교통을 좀 해야 깨닫게 되고 분명해진다. 그렇지 않으냐? 말을 적게 하거나 교통하지 않으면 너희는 영 안이 흑암에 빠진다. 어떤 진리든 깨닫지 못하면 실행의 길이 없어 제자리에서 머뭇거리게 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발전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런 것들을 몇 년씩 걸려 깨닫게 된다면 그 몇 년이란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겠느냐? 교통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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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④묘필생화(妙筆生花): 붓끝에서 꽃이 핀다는 뜻으로 뛰어난 글 솜씨를 비유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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