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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편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것인가

많은 사람이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을 체험할 줄 모른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생명 진입과 성정 변화에 관련되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하면서 늘 ‘우리가 하는 이 사역과 본분은 언제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인기도 없어. 배우들이나 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은 항상 주목을 받는데, 우리가 하는 본분은 그러지 못해, 항상 가려진 곳에 있어야 하고, 사역은 적지 않게 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또 ‘애초에 춤을 배웠으면 좋았을 걸, 왜 하필 이 분야를 선택했을까? 하나님께서 제대로 정해 주지 못하신 거야. 하나님께서 불공평하게 대하시는 거야. 하나님은 어떻게 보잘것없고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는 분야를 내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을까?’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괴로워지고 평정심을 잃게 되는데, 일을 할수록 슬퍼지고, 기운이 빠진다. 너희들은 이런 정형이 없느냐? 이런 정형이 있으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런 정형들은 해결하기 쉽다. 너희는 해결할 능력이 된다. 너희에게 좋은 방법을 하나 가르쳐 줄 것이니 그 방법대로 하면 무조건 통할 것이다. 어떤 방법일까? 너희가 자신의 분야와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본분을 야무지게 잘 완성해, 보는 사람들이 눈을 번뜩이면서 ‘이 본분은 정말 잘했네? 전문가 수준이야, 누가 했지?’라고 생각하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누가 했는지를 알아보면 대단한 너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이런 방법은 어떠냐? 사실 이런 것은 다 부차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분을 잘하는 것이다. 본분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자신의 본무, 직책 내의 일이다. 본무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부탁이자 맡겨주신 책임이다. 직책 내의 일이란 무엇이냐? 그 또한 같은 말로 본인의 책임이자 의무이며, 우리가 배운 기술로 능히 할 수 있는 것과 응당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분이다. 우리가 그 분야의 업무를 배워 잘하게 된 이상, 자신이 배운 기초에서 그 방면의 특기나 그 전문 분야에서의 강점을 살려 복음을 확장하는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활용해 기념으로 남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중에 너희가 성장하고 성숙해진 다음 돌아 보면, 철이 없을 적에 어떤 본분은 건성으로 하고 공을 들이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고 경력이 풍부해짐에 따라, 하나님을 믿으며 각 방면의 진리가 보강되고 깊어짐에 따라, 각 방면의 진리를 점점 더 많이 깨닫게 되었고, 자신이 본분을 점점 더 잘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너희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상하면서 예전에 그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자신의 성장 과정을 상기하게 된다.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해 어떠한 오해와 관념, 상상, 억지스러운 요구를 했던 모습, 심지어 불평과 원망도 했었고, 나아가 하나님께 거역과 대항도 했었고, 게다가 탐심과 허영심, 싸움, 질투 등등도 있었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보면 확실히 성장하였는데, 사역하고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 성정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게 된다. 어떤 변화일까? 더 이상 예전처럼 제멋대로 굴거나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일이 임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형제, 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할 뿐만 아니라 의논하고 교통하며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예전보다 커진 것이다. 본분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많은 일에 대해 선입견과 관념, 상상이 있었고, 언제나 자기 뜻대로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정형이 확실하게 바뀐 것이다. 스스로도 자신이 성숙했고 자라났다고 느끼게 되는데, 자신의 취향과 바람, 요구 혹은 자신의 관념, 상상과 맞지 않는 일이 임해도 혈기로 논쟁하지 않거니와 혈기로 자기 뜻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켜 생각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초창기에 교만하고 방탕하고 단속받지 않고 이지가 없고 인성이 없는 순 이방인에서 지금은 이지가 있고 순복이 있으며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것은 진보가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어떻게 진보가 있게 된 것이냐? 다 지금하고 있는 본분으로 인해,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있게 된 것이다. 본분을 통하여 네가 알고 있던 여러 가지 진리가 도리에서 실제로 바뀌게 되었고, 문자적 의미만 알고 있던 것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어떤 뜻인지를 체득하고, 하나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볼 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였는지와 하나님 말씀을 체험한 후, 하나님 말씀의 참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너는 변화가 있고 진보가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관념을 가지고 있던데로부터 각 방면에서 다 진보가 있는 정형과 상태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모두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근 몇년 동안 본분을 하면서 사람은 각 방면에서 모두 진보가 있게 되었다. 그렇지?

어떤 사람은 “저는 이전에 이 전공을 공부하면서 석사 학위까지 딸 수 있었는데,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전공을 포기하고 배우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나님 집에서 저의 전공은 써먹을 데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이 전공을 써먹지 못하면 썩히게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라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 집에 정말 이 분야에 관련된 사역이 없고, 이 방면의 본분이 없어 썩히게 된다해도 무방하다. 그것은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아까울 것이 없다. 어떤 기술도 진리를 아는 것을 대체하지 못한다. 네가 익힌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세상의 수준을 초월했어도, 네가 일등으로 이름을 날리는 전문가가 되었어도 진리를 아는 것을 대체하지 못한다. 그런 것들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지금 너희들은 좋은 시기를 만났다.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확장하려면 각 방면의 기술을 익힌 인재가 필요하다 보니 너희들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본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특별한 시기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은총이다. 이런 시대적 환경하에서 너희는 운이 좋게 적지 않은 진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너희들의 생명 진입과 성정 변화는 웬만한 사람들 보다 진보가 빠르다. 이것은 특별한 은총이 아니냐? 그러니 이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원망할 이유가 없다. 비교하지 마라. 노래하고 춤 추는 사람들은 늘 무대에 서고, 자신은 늘 무대 뒤에 있다고 서운해하지 마라. 사실, 사람은 이미 많은 것을 받았다. 네가 만약 2천 년 전에 태어났었다면 너의 그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 그 시기에는 정보가 발달하지 않았고 교통도 막혀있어 네가 배운 것을 하나님의 경영 계획속에 활용하고, 자신의 본분을 하려고 해도 그런 기회를 찾기가 아주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은 말세인 데다 복음을 확장하는 시기를 만나 너희들은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디에 쓰는 것이냐? 돈을 벌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개인의 사업과 앞날을 위해, 개인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세 복음 확장 사역에 쓰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이냐! 사람은 혼자 몰래 기뻐해야 할 일이다. 누가 이런 시기를 만날 수 있겠느냐! 옛날 베드로와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인류의 구속 사역을 하는 시기에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행복해했다. 그들은 온전케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또 구원받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나중에 그런 특별한 환경에서 베드로는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여 온전케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이런 엄청나고 구체적인 사역을 하지 않았다. 그 시기의 사람들은 기껏해야 일부 서신을 남기는 정도였다. 베드로의 경우도 그 당시 교회들에게 서신을 보냈고, 그중의 일부가 성경에 수록됨으로 사람들은 그 당시 베드로의 생명 진입 상황은 어땠는지, 베드로의 인성이 어떠한지를 알게 되었고, 베드로에 관한 정보도 조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르러 하나님이 밝혀준 덕분에 사람들은 그 당시에 베드로가 어떻게 체험하였는지와 마지막에 온전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알게 된 정보는 겨우 이런 것 뿐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교회들을 다니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믿는 평생 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베드로의 세부적인 체험이 어떠했는지와 베드로의 일기와 영적 메모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에 대해 후세 사람들에게 남기지 않았으므로 아는 사람이 없다. 가장 기념할 만한 것은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렸고 온전케 되었으며, 지금은 천국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후세 사람들이 지향하는 바이자 후세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다. 그럼 너희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역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10년, 20년 후에 가서 전 인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만약 일시적으로 비위가 틀어지거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본분과 사역을 건성으로 하거나 게을리한다면 훗날 남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훗날에는 아쉬움만 남는다. 그것은 오점이다! 아쉬움을 남기면 기억되지 못하고, 너희 마음 깊은 곳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고 괴로워진다. 그렇지 않느냐? 하지만 오늘날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너의 실생활에 적용하여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하고, 또 하나님 말씀으로 네 자신에게 요구하며,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본분, 너의 본무를 잘 완수하고, 네게 임하는 사역마다 마음을 들이고, 신경을 써가며 전력을 다한다면,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돌이켜 봐도,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네가 전력을 다해 자신이 배운 것과 파악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본분에 투자를 했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으며 건성으로 하지 않았고 어물쩍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본분이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복음 확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출로를 개척하게 되었는지를 보게 될 것인데, 그러면 기념될 일이 아니겠느냐? 그때 자신이 한 본분을 다시 상기해보면 어떤 기분이 들겠느냐? 어떤 느낌이겠느냐? 흐뭇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겠느냐? 너는 자신이 했던 것에 당당하고, 하나님을 뵐 면목이 서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에 미안하지도 않으며, 자기가 했던 본분에도 미안하지 않은 느낌이 들 것이다. 양심에 부끄러운 데가 없으니 흐뭇함을 느끼고, 평강과 든든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너희는 지금 본분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아쉬움을 느끼고 싶으냐, 평안과 든든함을 느끼고 싶으냐? (평안과 든든함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소망이다. 그렇다면 그 소망을 평소에 하는 본분에 적용할 수는 없겠느냐? 이것을 평소에도 꼭 생각해야 한다. 즉, 자신이 왜 이 본분을 해야 하는지, 이 본분이 어떻게 자신에게 온 것인지, 자신의 본분은 도대체 무엇인지, 자신의 본분을 어떻게 해야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서 자신의 미약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며, 방해하고, 가로막고, 교란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의 힘이 보잘것없을지라도 하나님 말세의 복음 확장을 위해 자신의 힘을 다하여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할 수 있을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이런 것은 평소에 자주 생각하고 묵상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 누군가가 자신은 자제력이 매우 강하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서 나쁜 짓도 하지 않고, 건성으로 하지도 않으며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잔꾀를 부리지 않으며 스스로를 단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으로 진리를 실행한다고 할 수 있느냐? (없습니다.) 또 자신은 본분을 할 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패괴 성정이 없음을 뜻하느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에 근거하여 일을 하느냐? 무엇에 근거하여 사느냐? 사탄의 처세 철학, 사심, 꼼수 등, 이런 것으로 산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그런 말을 듣게 되어, 그를 마음이 깨끗하고 순결하고 생각이 복잡하지 않으며 궤사하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미혹된 것이 아니냐? 항상 자신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들이 사람을 미혹할 수 있다. 사실 그 사람은 마음에 있는 꼼수와 수완, 교활하고 궤사한 생각을 성찰하지도 않거니와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도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실제 생각은 다 포장해 놓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실제 정형으로 여기는 것이데, 그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척한 것이고, 성결한 척 하는 것이고, 단순하고 순수한 척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으로 위장하는 것이 아니냐? 그럼, 사람이 아무것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이 만든 사람에게는 생각이 있고 자유 의지가 있다. 다만 사람의 생각과 성정이 사탄에게 패괴되었을 뿐이다. 사람은 사탄의 패괴 성정이 있기 때문에 생각과 사상, 속셈, 그리고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근원과 동기가 사탄 성정에 지배당하고, 통제를 받으며, 좌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 있다. 다만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봐야 한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허튼소리이다. 그럼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생각하고, 일을 하게 되는 동기와 근원이 어떤 것이어야 옳은 것이고, 사람이 지녀야 하는 것이고, 갖추어야 할 것이냐? 일이 임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일에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그 일을 하는 진리의 원칙은 무엇인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확한 길이고 바른길이다. 네가 이렇게 생각해야만 본분을 잘할 수 있다. 이것은 100% 확실하다.

어떤 사람은 일이 임했을 때 ‘하나님의 요구를 알았으니 그대로 해야겠어! 그전에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봐야 겠어. 만약 다들 이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두드러지지 못하잖아. 어떻게 해서든 다른 사람들에게 혼란을 줘야겠어. 나만 알고 있어야지. 그래야 내가 1등이 될 수 있잖아? 이름을 날릴 수 있잖아? 이것은 드문 기회야!’라고 생각한다. 이건 어떤 생각이냐?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 너희들은 이런 생각이 있느냐? 자주 있지 않으냐? (자주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있는 것은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그럼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 어떻게 했느냐? 대책을 취했느냐? 대책을 취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단 하고 보자.’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각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한다. 그럼 다들 그 말을 듣고 나서 정말로 아이디어를 바꾼다. 그러고 나면 혼자 속으로 좋아하면서 ‘난 머리가 잘 돌아가. 손을 좀 썼더니 다 나한테 속아 넘어갔네? 이제 마음이 놓인다. 내 본무에 전념해야겠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이었지? 왜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지? 왜 모르겠지? 어떻게 하는 거였지?’라고 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보이지 않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었던 것을 다시 거두어 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2~3일씩 끙끙거린다. 그사이에 생각을 바꾼 다른 사람들은 여럿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서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사람은 한쪽에서 끙끙거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끙끙거리다 얼굴만 까매졌다. 그것은 총명한 것이냐? 자기 꾀에 넘어간 것이다. 그것은 진짜로 총명한 것이 아니라 교활하고 간사한 것이다.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축복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단순하고 마음을 털어놓는 진솔한 사람을 사랑한다. 설령 그런 사람이 조금 우매할지라도 하나님은 인도하고 축복할 것이다.

이런 일이 임했을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렸다면, 그럼 어떻게 하고,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정확하고 바른길이며, 어떠한 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생각과 방식이냐? 길이 있느냐?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면서 다른 사람과 의논해야 합니다.) 다들 같이 교통하고 의논하면서 목표부터 분명히 하고 확실하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어떻게 할지를 교통한다면 길이 생긴다. 그런 방식은 이방인들의 방식과 완전히 다르지 않으냐? 어떤 점이 다르냐?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기만 한다면 어떤 일을 하든지 형제, 자매와 분열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되어 공동된 목표를 바라보게 된다. 어떤 목표일까? 본분을 잘하고, 자신에게 속한 사역을 잘하여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방인이나 사탄의 패괴 성정의 지배와 통제를 받는 사람들이 일하는 길과는 판이하게 다른 길이다.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는 것이 공동된 목표이다. 그것이 목표가 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자신을 위하고 자신의 사심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 목표가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것이라면 그것은 사탄의 패괴 성정의 유로이다. 사람이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아 일을 하면, 각자 자기만의 속셈과 자기만의 목적, 자기만의 계획, 자기만의 타산을 품고, 전부 자신의 이익, 즉, 승진, 월급 인상, 출세를 위해, 상사의 칭찬이나 진급을 위해 일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작은 이익을 위해서도 다투고, 한 치의 양보도 없으며,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분산되고 분열되는 것이다. 그들은 공동된 목표를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목표의 성질은 같지만 다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진리가 권세를 잡는 일이 없다. 사탄의 패괴 성정이 권세를 잡으며, 사탄의 성정이 주인이 되고,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이익은 사탄의 성정으로 결정된다. 만약 하나님 집에서 너희가 일을 하는 원칙과 방식, 동기와 근원이 그들처럼 사탄 패괴 성정에 좌우되고, 통제받고 조종을 받는다면 너희가 일을 하게 되는 근원도 자신의 이익과 명예, 체면과 명성을 위한 것이 된다. 그러면 너희가 하는 본분도 이방인들이 하는 일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너희가 진리를 추구한다면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개인의 사심과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일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먼저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교통하고, 그 다음 개인의 장점과 약점에 따라 일을 분담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넘겨 받아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 그때는 서로 다투지도 빼앗지도 말고, 참고 양보하는 법, 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누군가는 그 본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이제 막 배우다 보니 제대로 못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일을 억지로 떠맡기지 말고 상대적으로 쉬운 것을 맡겨야 한다. 그럼 그 사람은 강점을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수도 있게 되는데, 그것이 포용하는 것이고 참고 양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성에 있어야 할 것으로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자, 사람이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네가 그 일을 잘 배운 편이고 그 방면의 업무에 비교적 능숙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해 본 기간도 오래 되었다면 상대적으로 힘든 일은 네가 맡으면 된다. 그러면 너는 그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 순복해야 해야지 일을 가리거나 ‘왜 다들 날 못살게 굴지? 힘든 건 다 내 몫이고 쉬운 건 다른 사람 몫이고 말이야. 이건 애먹이려는 거잖아?.’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애를 먹인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옷도 몸에 맞춰 디자인해야 하고 능력 있는 자가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것처럼, 배운 것이 많고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은 네가 막중한 책임을 맡는 것은 당연하다. 막중한 책임을 맡기는 것은 너를 애먹이려는 것이 아니라 안성맞춤인 것이다. 그것은 너의 본분이니 가리지도 거절하지도 말고 피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런데 너는 왜 힘들다고 생각하게 될까? 사실 그 일은 네가 조금만 마음을 들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네가 힘들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널 차별하고 못살게 군다고 생각하는 것은 패괴 성정의 유로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도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아니라 본분을 거절하는 것이다. 네가 늘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복하지 못한다면 너에게 아직도 하나님에 대한 패역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너는 대항하고, 거절하고, 도피하고 있는 것이다. 본분을 하는 것도 가볍고 쉽고 체면이 서는 일만 골라서 하려는 것은 사탄의 패괴 성정이다. 네가 그런 것이 패괴 성정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겠느냐?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 일은 이틀이면 다 끝나는데 네가 맡은 것은 삼일 밤낮이나 걸리고, 거기에 마음도 들이고, 신경도 많이 들여야 하는 일이면, 두통이 시작되고 불쾌해지면서, 반발심이 생긴다. ‘내가 만만하고 조용해 보이니, 매번 쉽고 체면이 서는 일은 다른 사람을 시키고,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일은 다 나한테만 시키잖아, 좀 안 하면 안 돼? 다들 번갈아 가면서 하면 안 되냐고? 그래야 공평하잖아?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으셨나? 왜 이런 일에서는 공의롭지 않으시지? 왜 하필 나냐고? 이건 만만한 사람을 괴롭히는 거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고 본분을 팽개치고 싶어진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해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고, 완성을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냐? 우선 마음의 자세가 틀렸다. 마음의 자세가 틀렸다는 것은 어떤 것이냐? 본분을 대하는 자세가 틀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분을 대할 때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니다. 일을 왜 가리느냐? 네가 해야 하는 것은 원망하지 말고 순복하고 받아들이며, 가리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냐?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두렵지 않아. 이렇게 많은 형제, 자매들이 협력하고 있잖아! 그리고 또 상면에 물어볼 수도 있는데, 100점은 못 돼도 80점이야 안 되겠어? 힘닿는 데까지 해 보자’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좋습니다.) 그럼 앞에 태도는 어떠냐? 그 태도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시작하기도 전에, 어려운 점이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기 싫은 마음에 짜증부터 부리고 불평하고, 거부하고 대항하는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들면 패괴 성정이 철저히 너를 통제하게 되는데, 그러면 네가 알고 있던 얼마 되지도 않는 진리가 주인이 되지 못하게 되고, 그 태도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너희는 평소에 이런 정형이 있을 경우,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느냐? (조금은 할 수 있습니다.) 인지를 했다면 자기 자신의 힘으로, 믿음으로, 분량으로 그런 태도를 바꿀 수는 있느냐? 그런 태도는 바꾸어야 한다 ‘이 태도는 틀린 거야. 이건 본분을 자기 좋은대로 고르는 거잖아? 이것은 순복이 아니지! 왜 또 짜증이 났을까? 왜 불쾌해졌지? 본분을 하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고, 달갑게 해야 하는 일인데 말이야. 내 본분인 것도 알고 내가 해야 될 것인 줄 분명히 아는데도 왜 순복하지 못할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겠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패괴 성정이 유로한 것을 인식해야 겠어.’ 이렇게 기도를 하면서 일을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도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전 제멋대로 하는 습관이 있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제 태도가 잘못됐습니다. 순복이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순복할 수 있도록 징계해 주십시오. 전 하나님께 순복하고 싶고 하나님께 협력하렵니다. 짜증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짜증을 부리는 건 잘못된 것이고 패역입니다. 패역하지 않겠으니 제가 본분을 잘 할 수 있도록 징계하고 감화시켜 주세요. 전 사탄을 위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진리를 위해 살며 진리를 실행하기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하지 않느냐? 네가 이렇게 기도하면 네 안의 정형이 좋아진다. 정형이 좋아지면 순복하게 되면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하는 거야. 저 사람들이 놀 때 나는 놀지 않고, 한담할 때 나는 한담을 하지 않는 거야. 하나님께서 내게 본분을 더 많이 주시면서 막중한 책임을 맡기신 것은 하나님께서 날 중히 여기시기 때문이야. 내가 이걸 해낼 능력이 되고, 이런 중책을 감당할 능력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야. 하나님께서 내게 잘해 주시니 마땅히 순복해야 해.’라고 생각하게 되고, 저도 모르게 태도가 좋아지고 바뀌게 된다. 처음에 본분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좋지 않고 순복하지 못하던 것에서 제때에 마음을 돌려세우고 하나님의 감찰과 징계를 받아들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순복하는 태도와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태도를 가지기까지, 더 나아가 본분을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 달가운 마음으로 잘하기까지에는 싸움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그 싸우는 과정이 네가 변화받는 과정이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어떤 일이 임하든 다 순복하고 달갑게 받아들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이 그럴 수 있다면 패괴 성정이 없다는 증거이니 하나님이 진리를 발표하여 구원할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 생각이 있고, 잘못된 태도, 잘못된 정형과 소극적인 정형이 있는 것은 전부 현실적인 문제이다. 다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인 정형이나 부정적인 정형, 그리고 소극적인 정서나 패괴 성정이 주인이 되어 행동을 지배하거나 생각과 태도를 통제할 때, 네가 어떻게 하고, 어떻게 실행하며,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따라 진리에 대한 너의 태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네가 불괘할 수 있고, 소극적인 정형, 부당한 생각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정형이 생길 때, 하나님 앞에 오게 됨으로 인해, 진리를 깨달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찾고 구함으로 인해, 순복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짐으로 인해, 그런 정형들이 하나하나 격파되고, 바뀌고,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자신의 본분을 순조롭게 잘 해나가면서 사탄 성정의 통제를 이기고 마지막에 성공적으로 그 본분을 받아들여 완성하게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과정이다.

사람이 항상 이런 과정을 체험하고, 이런 과정에서 늘 진리를 얻으며, 하나님 앞에 나오고, 진리의 원칙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임으로 최종에 순복하게 되고, 진리에 따라 실행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게 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주권을 잡은 것이고 진리가 네 마음에서 보좌에 오른 것이다. 누군가는 처음 본분을 할 때, 진리를 깨닫지 못해, 자신의 생각과 관념, 상상과 바람에 따라 일을 해나가면서 시종일관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시종일관 패괴 성정의 지배를 받아 일을 한다. 설령 그번에 맡은 본분을 끝마쳤을지라도 진리를 전혀 얻지 못했다. 그럼 그 사람은 무엇으로 본분을 한 것이냐? 무엇에 따라 산 것이냐? 진리를 따른 것도 하나님을 의지한 것도 아니다. 진리가 그의 마음속에서 주권을 잡지 못했다. 그럼 그 사람은 그 본분을 어떻게 끝마친 것일까? 자신의 은사로, 자기 능력으로, 자신이 배운 지식과 재능으로, 그리고 자신의 의지 혹은 호의로 본분을 완성한 것이다. 성질이 다르지? 때로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은 천성과 상상, 관념, 지식, 학문에 따라 해도 원칙적인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또 별로 큰 문제가 생기지 않으니 겉으로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만일 본분을 하는 모든 과정에서 너의 관념과 상상, 생각에 전혀 변화가 생기지 않고, 이제까지 이러한 것들을 진리로 대체한 적이 없으며,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이 진리의 원칙에 따른 적이 없다면, 결국 어떤 결과를 낳게 되겠느냐? (생명 진입이 없습니다) 생명 진입이 없으면 무엇이 된 것이냐? 효력자가 된 것이다. 바로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7:22) 주님은 뭐라고 하셨느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 그러면 하나님은 왜 힘을 쓰고 효력하는 사람을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했겠느냐?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 사람들이 어떤 본분을 했든, 어떤 사역을 했든, 그들의 동기와 근원, 마음 가짐, 생각은 온전히 사욕에서 비롯된 것이고, 온전히 자신의 뜻과 개인의 이익에 근거한 것이며, 그들은 온전히 자신의 체면과 지위, 허영심 자신의 이익, 자신의 앞날을 중심에 두고 고려하고 계획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진리가 없으며, 그들은 진리에 따라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차이점이다. 그러므로 지금 너희는 어떻게 추구하는 것이 관건이겠느냐? (진리를 찾고 구하고 나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본분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하는 세부적인 내용은 어떤 것이 있느냐? 일할 때 너는 어떤 마음을 먹거나 생각이 들때면, 그것이 진리에 맞는 것인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인지, 사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진리에 부합한다면 너는 원래 생각한대로 해도 되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얼른 돌이켜 그 길을 포기해야 한다. 그 길은 잘못된 길이기 때문에 그대로 행하면 안 된다. 만일 계속 그대로 행한다면 악행이 되는 것이다.

아까 내가 어떤 예를 들었는지, 기억하느냐?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자기가 남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이 자신과 똑같이 하는 것을 막은 예입니다.) 그것은 어떤 유로이냐?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궤사한 것입니다) 사악하고 궤사한 것이며, 패괴 성정의 유로이다. 만일 네가 그런 패괴 성정의 유로에 따라 그런 생각대로 움직인다면, 어떤 결과를 낳게 되겠느냐? 너는 어떻게 하게 될까?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세부적인 문제가 아니냐? 본분을 맡으니 그 본분이 마음에 든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고, 사람들에게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혼자 몰래 다른 곳을 찾아 그 일을 시작한다. 심지어 남에게 들킬까 봐 이불 속에 들어가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했는지, 작품이 합당한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말하지도 않고 교통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했어요?”라고 물으면, “금방 끝나요, 거의 다 됐어요”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한참 남았다. 거의 다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이 “다 끝냈어요? 내일 넘겨줄 수 있어요?”라고 물으면, “오늘 줄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여전히 남을 속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일하는 원칙은 자신의 생각과 패괴 성정에 따르는 것이다. 투명성도 없고, 찾고 구하지도 않으며 광명정대하지 않고 남몰래 슬쩍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쳐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도 못한다. 자신의 퇴로를 막아 버린 것이다. 그 사람의 목적은 무엇이냐? 독보적이고 싶고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과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한 것이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그런 목적과 마음을 마지막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시종일관 그런 목적과 마음을 중심으로 일을 한다. 그러면 패괴 성정에 통제된 것이 아니냐? 그 속에는 조화로운 협력, 공통된 교통이 있느냐? (없습니다.) 거기에 진솔한 태도가 있느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 본분을 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한 것이냐? (자신의 이익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을 먹은 순간부터 그 본분을 완성하는 순간까지, 전부 이익과 생각, 관념, 동기, 목적의 통제를 받고 지배당한 것이다. 결국 일은 마쳤지만 주변에서 보고 ‘이건 안 돼요, 완제품이 아니에요, 다시 해야 해요”라고 하게 된다. 다시 하게 되면 시간을 지체하지 않느냐? 시간도 지체하고 정력도 낭비하는 것이다. 만일 급한 사역이라면 진도를 늦추게 되는 것이다. 본래 삼 일이면 끝낼 일을 그가 지체시키고 다시 하게 됨으로 일주일이나 걸리게 됐다. 그는 자신의 사욕을 위해 사역의 진도를 지체시키고 시간과 힘도 낭비하게 됐다. 그것은 손해가 아니냐? 너희는 이런 경우가 많으냐, 적으냐? (많습니다) 이런 경우가 많으면 성찰해야 한다. 어디서나 패괴 성정에 통제되고 교란을 받으며, 자신의 사욕에 통제받고 교란을 받으며,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리에 따라 실행하지 못하면 결국 사역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기껏 한 일이 불합격이라 늘 다시 해야 하는 것이다. 패괴 성정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 바로 이런 결과를 야기시킨다. 늘 자신을 과시하고, 늘 독자적으로 하고, 늘 솜씨를 보이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항상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맞다. 항상 좌절하고 효율성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징계이다. 만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방법을 바꾸어 실행해 보고, 다른 방식으로 본분을 대했을 때, 결과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아라. 자신의 명예를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성과를 고려치 말며, 늘 혼자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보다 특색 있게 하려고 하지 말며, 남보다 높아지려고도, 남보다 나아지려고도 하지 말고, 모든 사람보다 위에 있으려고 하지 마라. 너희는 범상한 사람,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고, 늘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게다가 남보다 한 수 위가 되려고 자신에게 그런 규정을 정하고, 그런 기준을 정하는데, 그러면 네 자신도 숨 막힐 정도로 힘들고, 다른 사람도 숨 막힐 정도로 힘들고, 하나님 집 사역에도 크게 손해를 준다. 이 얼마나 큰 손실이냐! 하지만 사람들은 늘 자신의 사소한 욕심과 자신의 바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런 것들을 개의치 않으며, 본인이 응당 고려해야 하는 범위 내에 두지 않고 자신의 만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데, 그것은 패괴 성정이 주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 패괴 성정이 주인이 되고, 결정을 하고, 통제를 한다면, 범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너희는 길을 바꾸어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해야 한다. 마음을 열고 교통하며, 매사를 다 꺼내 놓고 대범하고 진실하게 공개적으로 형제, 자매들과 교통하여 일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서로 분담하고 협조해야 조화로운 협력을 이를 수 있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형제, 자매들과 함께 다시 교통해 봐야 하고, 방법을 아는 사람은 망설이지 말고 말을 하고, 깨달음과 빛 비춤이 있는 사람도 주저하지 말고 형제, 자매에게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본분을 할 때, 많이 지원해 줄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있는 힘껏 도와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어린 여자의 마음은 어떤 것이냐? ‘난 이걸 알고 있어도 네게 알려 주지 않겠어’, ‘네가 알려 주지 않으면 나도 알려 주지 않겠어.’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린 여자의 마음인데, 비열한 심보로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나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상 인성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정상 인성이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닌, 바로 패괴 성정이다. 이런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궤사하고, 옹졸하고, 어둡고, 떳떳하지 못한 것들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고 모두 부정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것들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것들에 통제, 속박받지 말고, 좌우되지 말며, 이런 것들을 돌파해 진리가 있고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솔하고 허심탄회하고 진실하고, 포용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고, 양보할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아끼고 보호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법을 배우며, 선행을 갖추고 착한 마음을 갖춰야 한다. 이런 것들은 긍정적인 것이다. 반면에 부정적인 것들을 배반하고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면 거기에 통제된다. 거기에 통제되면 너는 부정적인 일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너는 영원히 사탄의 패괴 성정에 부림 당하고, 통제당하는 꼭두각시가 되고, 진리를 얻지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얻고 싶다면 자신에게 어떤 패괴 성정이 있는지부터 인식해야 한다. 어떤 패괴 성정의 유로가 있는지, 어떤 생각이 있는지, 어떤 마음이 있는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정형이 있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이런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것들을 끄집어 내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하나하나 해결하며 배반하고, 돌파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진리로 사람을 대하는 법, 진리로 자신의 본분을 대하고, 자기 삶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진리에 부합하는 말을 하는 법, 진리에 부합하는 일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조금씩 사람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고 본분을 해도 점점 더 좋아질 수 있으며, 모두가 갈수록 더 조화롭게 지내고, 갈수록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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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②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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