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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편 진리 실제 진입에 가장 기본이 되는 실행 원칙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면 어떤 일을 하든 원칙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너의 본분이 급한 상황이라 누군가의 협력이 필요할 때, 상대방도 바쁜 상황이라 너와 겹치게 된다면 너는 어떻게 그 일을 처리하겠느냐? (상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의해야 인성에 맞고, 이지가 있으며, 진리를 실행하고 방해하지 않는 것이냐? 네가 “제 본분도 지금 바빠요. 이게 더 급하니까 먼저 합시다. 당신 일은 별거 아니니까 이틀 정도 늦으면 좀 어때요?”라고 하며 상대방과 대화가 오간다. “이 일은 아직 안 끝났어요.”, “그럼 서두르세요. 며칠이면 돼요?”, “일주일은 걸려요.”, “일주일이면 일을 그르치잖아요. 3일 안에 해 주세요!”, “3일은 안 돼요. 제대로 하지 못하면 속이는 거잖아요?”, “3일 드릴 테니 제 말대로 하세요!” 이것이 상의하는 것이냐? 이건 야만적인 행위이다. 그렇지 않으냐? 인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 상대방이 “왜 그렇게 강압적이에요?”라고 하니 “이게 뭐가 강압적이에요? 전 지금 급해요. 이건 다 하나님 집의 사역에 책임지는 거라고요.”라고 하는데, 이런 명목을 대며 일할 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상의도 하지 않는다. 이것을 교만한 본성이라고 한다. 너희는 이렇게 일하지는 않느냐? 너희는 쉽게 이런 성정을 유로하지는 않느냐? 아마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하고 싶지만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고 체면을 생각해서 상의하기는 한다. 하지만 사실, 속내는 강압적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나쁘다. 인성이 없는 것이다. 이방인이 그렇게 하더라도 너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어째서 너희는 그렇게 하면 안 되겠느냐? 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겠느냐? 어떤 일을 하든 원칙이 있어야 한다. 누구의 것이 먼저이고 누구의 것이 차선이라는 법이 있느냐? 네 것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법이 어디 있느냐? 네 일이 먼저이고 다른 사람 일은 뒷전이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 그런 경우는 없다. 그것은 이방인들 세계의 이치이다. 그들의 일 처리 원칙은 막무가내이고 무모하며 저돌적인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즉, 사탄의 패괴 성정, 처세 원칙, 일 처리 방식과 수단을 중심으로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사탄의 세계라고 한다. 하나님의 집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모든 일을 원칙대로 처리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무엇이냐? (이성과 인성을 갖추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다. 근원을 짚었다. 아무리 원칙과 진리가 있더라도 일 처리할 때는 먼저 인성과 이성을 기본적으로 갖춘 후에 모든 일을 대하고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가장 기본적인 실행 원칙이다. 일할 때는 체면과 지위, 명성과 자신의 이익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보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요구하는지를 고려해야 하며,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과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고려해야 한다. 그 일에 아무리 이치가 있다 해도 혈기대로 일하거나 언성을 높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탄의 패괴 성정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치가 있든 없든, 어떤 본분을 하든, 본분에는 크고 작음과 존귀하고 존귀하지 않음의 차이가 없다. 모두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면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되고 어떤 어려움도 다 사라진다. 사람의 어려움은 모두 사람의 패괴 성정에서 온다. 너희가 이 원칙을 잘 파악한다면,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너희들의 일 처리, 대화, 언사, 행동을 보고 모두가 탄복하고 신임할 것이다. 하지만 이 원칙을 잘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원칙대로 일 처리하기 싫어하고 더욱이 원칙대로 일 처리하는 것을 찾고 구하지도 않는다면,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버림받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악영향을 끼칠 것이며, 자신의 생명 진입에도 불리하게 된다. 네가 자주 그렇게 일을 하고 그런 원칙과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자신의 본분을 대한다면, 하나님은 혐오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너에게 천연적인 것이 너무 많고, 혈기가 너무 심하며, 성정이 너무 야만적이고 거만하여 사람의 모습이 없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 너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짐승으로 대하겠느냐? 그것도 아니다. 바로 너를 가볍게 보면서 “너는 아무 분량도 없고, 일할 때 분수도 없고 단속받지도 않으며,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리도 없다.”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볼 때, 하나님 앞에서의 네 언행과 생각, 그리고 네가 표현한 것은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평가할까? 하나님은 “이 사람이 유로한 것은 다 짐승의 성정이다.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세우며 마구 걷어차고 물어대는데, 너무나 야만적이다. 이성과 양심이 없고 정상 인성의 유로도 없으며, 성도의 품위도 없고, 마음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이런 자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높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자를 좋게 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이는 사람에게 화인 것이냐, 복인 것이냐? (화입니다.) 어째서 화라고 말하느냐?

예를 들어, 어떤 집에 자식이 몇 명 있다. 한 아이는 말도 잘 듣고 철도 들었다. 효성스럽고 일도 잘하며 말썽도 피우지 않는다. 그러면 부모는 그 아이를 믿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일을 맡길 수 있다. 다른 한 아이는 말썽쟁이인 데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아둔하고 게으르며 식탐이 많고 간사하다. 항상 말썽을 피워 부모를 화나고 속상하게 한다. 부모의 마음속에 아주 크고 높은 기대가 있다면 그 기대를 누구에게 걸겠느냐? (말을 잘 듣는 아이입니다.) 그렇다면 말을 잘 듣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중 부모는 누구에게 더 잘해 주겠느냐? (말을 잘 듣는 아이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 만약 부모가 대대로 물려받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 기술을 누구에게 전수해 주겠느냐? 누가 믿을 만하고 부모의 마음에 든다면 그가 부모의 기술과 자산을 계승할 수 있는데, 부모는 틀림없이 그 아이에게 맡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자식들 중에 누가 가장 많이 얻겠느냐? 누가 더 많이 얻게 되겠느냐? 분명 말을 잘 듣는 아이이다. 말을 안 듣는 아이는 다툰다고 할지라도 결국 쉽게 얻지 못할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냐? 부모가 그렇게 그를 대한 것이 차별한 것이냐? 편애한 것이냐? 그것은 그의 표현이나 성정 혹은 그가 하는 모든 것이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부모는 너무나 애를 태우고 상심했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어떠한 바람과 기대도 없을 것이다. 부모가 그 아이를 포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여 부모의 자산과 축복 또는 기술을 계승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아이가 충족시키지 못하고 그런 자본과 자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포기한 결과는 누가 초래한 것이냐? 부모의 편애로 초래된 것이냐, 아니면 부모가 그 아이의 장점을 발견하지 못해 초래된 것이냐? (아이가 스스로 초래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아이와 연관이 아주 큰데, 그 아이가 노력하지 않고 좋은 길로 가지 않은 것이다.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한 부모의 교육과 가르침을 받으며, 자질구레한 잔소리도 똑같이 듣고 지낸다. 하지만 말을 잘 듣는 아이는 부모를 마음 놓게 하고, 부모 마음속의 희망과 기대를 만족시키며, 하는 일마다 부모의 마음에 들게 한다. 또한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 방면의 표현을 봐도 부모의 중요한 부탁과 축복을 감당하고 계승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는 희망과 책임이나 부탁을 자연스럽게 그 아이에게 주게 된다. 그러므로 외적으로 볼 때, 그 아이가 더 많이 얻었는데, 사실 그것은 어떻게 얻은 것이냐? 그가 택한 길과 그의 생활 방식, 그리고 부모의 당부와 키워 준 은혜를 대하는 방식이 부모의 마음에 들고 부모에게 안심과 위로를 얻게 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부모의 신임을 얻어 그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축복은 그 아이의 모든 노력과 표현으로 얻은 것이다.

지금 사람은 하나님 앞에 와서 항상 축복과 긍휼을 얻고 싶어 하고,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또한 하나님이 관용과 많은 축복을 내려 주기를 바란다. 이런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네게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고 관용을 베풀어 주고 모든 것을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하나님의 기대가 무엇일지 고려해 본 적이 있느냐?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네가 마음 깊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누렸다고 느끼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또 하나님이 준 모든 것이 다 매우 좋다는 것을 발견하긴 했지만, 너는 하나님이 네게 주신 모든 것에 보답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어떤 방식으로 보답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저버리지 않을 것인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만약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거나 그런 것들에 보답해야 하는 줄도 모른 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면서 지금껏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면,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좋은 인성과 인격을 갖췄다고 할 수도 없다. 또한 그것은 분량이 아직 작고 자라지 못해 그런 일에 대해 모르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하셨고 나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시고 공급해 주셨어.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에서 그토록 많은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와 축복을 받고 깨달았고 들었지만, 나는 왜 이 모든 것에 보답해야 한다는 걸 몰랐을까?’라고 생각해 볼 줄 모른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는 인성이 미성숙한 표현이자 유치한 표현이다. 인성이 미성숙하다는 말은 사실 꽤 듣기 좋지만 정말 그런 것이냐? 겉으로는 말 그대로의 뜻이지만 여기서 인성이 미성숙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진짜 미성숙한 것이냐? 아니다. 진리 실제를 너무 적게 갖추었기 때문에 노는 것만 탐하고, 열심으로 할 줄밖에 모르며, 일방적으로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줄밖에 모르는 것이다. 아직은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모든 행위는 다 좋은 마음과 열정, 자신이 배우고 보고 경험한 지식과 학문, 자신의 특기와 은사, 관념과 상상, 가정 교육으로 얻어진 전통 사상에 의지해 하는 것이다.

너희는 지금 이 상황에 놓여 있지는 않느냐? 이 상황에서는 계속 노력해야 하는데, 본분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행해야 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 처리해야 한다. 설령 겉면에서라도 따라 해야 하는데, 그렇게 천천히 깊이 체득하다 보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어떤 정형이고 어떤 상태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감을 잡고 정형을 정확히 찾았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과 진리를 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마음속으로 알게 된다. 너희가 이것을 알게 될 때는 성도의 품위와 사람의 모습을 조금 갖추게 된 것이다. 지금 너희가 아직 성도의 느낌과 하나님을 따르는 자의 느낌을 찾지 못했다면, 이는 너희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평소의 행실과 사람됨에서, 일상생활 환경에서, 세세하게 체득하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또한 서로 교통하고 격려하며, 서로 일깨워 주고 서로 돕고 아끼며, 서로 공급하고 돌봐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단점만 보지 말고 항상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그다음, 자신이 상대방을 방해하거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 열고 교통하는 것을 배우고, 그 밖에 자주 함께 모여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교통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주 이런 생활 환경에서 살면 형제자매 간의 관계도 정상이 되는데, 이방인들의 관계처럼 매우 복잡하거나 냉담하거나 냉혹하거나 잔인하거나 잔혹하지 않으며, 그런 관계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형제자매 사이는 비교적 가까워지고 마음이 통하게 되며, 서로 돌보고 사랑하면서 마음속에는 자선심이 생기며, 혹은 상대방을 동정하고 아끼며 서로 돌보고 보살펴 주는 마음 상태를 갖게 되는데, 서로 빼앗거나 억누르거나 질투하지 않으며, 속으로 겨루거나 서로 멸시하거나 무시하지 않으며, 혹은 서로에게 불복하는 정형이나 심리 상태를 갖지 않게 된다. 그런 부정적인 정형이나 상태에서 살게 되면, 사람 간의 관계가 아주 무서워진다. 자신에게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과 상처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각기 다른 정도의 상처와 영향을 가져다준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빛이 달라져도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의 말이 자기 뜻에 맞지 않아도 화를 내며, 다른 사람이 한 일로 인해 체면을 조금 구기게 되면 그 사람과 해보려고 하고, 불쾌해하고 언짢아하면서 어떻게든 체면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을 잘 이겨 내지 못한다. 특히 나이가 어린 여자들은 이런 일들을 잘 이겨 내지 못한다. 항상 각종 성정과 성미, 사소한 감정에 얽매여 하나님 앞으로 오기가 아주 어렵다. 이런 거미줄 같은 갖가지 복잡한 관계에 한데 얽히고 뒤틀리게 되면, 하나님 앞에 안정하기가 매우 힘들고 하나님 말씀으로 안정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므로 먼저 반드시 형제자매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서로 포용하고 관대하게 대하며 다른 사람의 좋은 면과 강점과 장점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깊이 반성하며 자신을 아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방종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야심과 욕망 또는 약간의 장점을 끝없이 부풀려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네 말을 듣고 복종하게 하거나 너를 높게 평가하고 떠받들게 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장점조차 보지 못하면 안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의 단점을 끝없이 확대하고 부풀려 어딜 가나 그것에 대해 떠들고 깔보고 멸시하며, 또는 말이나 각종 방식으로 상처 주고 스트레스를 주어 결국에는 다른 사람을 네게 복종시키고, 네 말을 듣게 하며, 널 두려워 피하게 만들면 안 된다. 너희는 사람 간에 이와 같은 관계가 생기거나 존재하는 것을 보기 원하느냐? 느끼고 싶으냐?

네가 한 자매와 함께 있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너는 그 자매보다 키가 조금 크고 날씬하다. 그 자매의 키도 작은 편은 아니지만 약간 통통한데, 모르는 사람이 와서 네가 예쁘고 날씬하다면서 배우를 해도 되겠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너는 기분이 좋겠지만 그 자매는 칭찬을 받지 못해 기분이 별로다. 이때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만약 기분이 좋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만한 눈빛으로 그 자매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알짱거리고 듣기 거북한 말로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깔보고 비웃는 식으로 상대방을 비꼰다면 어떨까?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정상 인성의 표현인 것이냐?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임했을 때는 어떻게 대해야 가장 정확하겠느냐? (다른 사람의 단점을 가지고 그 사람을 놀리지 말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원칙이다. 보아하니, 느끼는 게 있는 것 같구나. 그렇다면 행위상에 어떤 표현과 유로가 있어야 상대방을 사랑하고 어떤 상처도 주지 않는 것이며, 또한 네가 마음이 착하며 사랑하는 마음과 진리의 원칙대로 일한다는 것을 볼 수 있느냐? 그런 칭찬을 듣고 나면 너는 어느 정도 흐뭇해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자매님 앞에서 나를 칭찬하면 자매님에게 상처 주는 게 아닌가? 칭찬을 받아 내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난 이런 칭찬은 안 받아들이겠어. 그리고 그 자매를 정상적으로 대하고 어떤 멸시나 무시, 비꼬는 뜻을 내비쳐서는 안 돼. 자매님을 바르게 대하고 칭찬받은 일은 접어 두고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해야지.’ 일반 사람은 모두 허영심이 있어 다른 사람이 몇 마디 칭찬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이 일을 꿰뚫어 보았다면 행동에서도 어느 정도 보여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우선, 노래를 흥얼거리고 고개를 쳐들고 걷는 것은 사탄의 몰골을 유로하고 살아내는 것이므로 좋지 않다. 칭찬을 받지 않았을 때는 흥얼거리지 않다가 칭찬을 받으니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고 상처 주는 게 아니겠느냐? 거기에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흉악하고 교만하고 사악한 성정이다. 만약 네가 이런 성정이 나쁘다는 것을 의식했다면 삼가하고 자제할 수 있겠느냐? 인식했다면 자제하기는 쉽다. 그러한 행동이 비열하고 뻔뻔하고 천하고 사악하고 음탕하다고 느낀다면, 그런 행동을 삼가하고 노래를 흥얼거리지도 않고 고개를 쳐들고 걷지도 않을 것이다. 기분이 좋아 몇 분간 즐기다가도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탄이 날 시험하고 방해하는 게 아닌가? 내가 예쁜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야? 당신 칭찬 몇 마디에 내가 하늘의 선녀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 당신이 칭찬하지 않아도 내 얼굴은 하나도 안 변해. 이건 하나님이 주신 거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릴 거야. 몇 마디 말로 우리 사이를 벌어지게 하려고? 난 절대 안 속아!’ 이러면 인성과 분량이 어느 정도 있으므로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다. 몇 분간 즐기다가 그것이 사탄의 시험이고 사탄의 방해임을 곧 알고 분별하게 되어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가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게 쉽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실행 방법을 말하는 건 아주 간단하지만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기 때문에 내면의 정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래도 실행 방법이 이렇기 때문에 이 방법에 따라 행하면 될 것이다. 예전에 이렇게 실행했었는지 안 했는지에 상관없이 결론적으로 이 방법은 맞는 것이기에 이렇게 실행하면 너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모두 유익이 된다.

네가 어느 무리에서나 사람과 사람 간의 질투, 분쟁, 괴롭힘, 폄하 혹은 갖가지 방식의 상처를 이겨 낼 수 있고, 사람들이 각종 수단으로 너를 대하더라도 모두 분별해 내고 그것에 속박받지 않고 정확히 대할 수 있으며, 그런 일을 혈기와 천연적인 모습으로, 사탄의 패괴 성정으로 대하거나 처리하지 않을 수 있다면, 너와 사람들 간의 관계는 매우 정상적으로 변해 웬만한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 웬만한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사람들 가운데서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속박과 방해를 받지 않게 된다면, 너의 정형은 정상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시비가 발생할 것인데, 그럴 때 진리에 따라 살지 않으면 시비에 말리게 된다. 이런 시비에는 어떤 것이 들어 있느냐? 분쟁, 질투, 원한, 멸시, 그리고 서로 겨루고, 서로 논단하고, 서로 우열을 다투고, 서로 은사의 크기를 비교하고, 능력의 크기를 비교하고, 외모를 비교하고, 키와 몸매를 비교하고, 또한 누가 소질이 좋은지, 누구의 지위가 높은지, 누구의 명망이 높은지, 누가 말하면 더 잘 통하는지, 누가 상대적으로 인기가 있는지, 누가 발전성이 있는지, 누가 상대적으로 굳센지 하는 이런 것을 비교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이러한 것들을 비교하고, 그런 시비에 얽매여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하지 못하고, 정상적으로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가 없다. 너의 마음이 분쟁이나 다툼 같은 의미 없는 일에 자주 묶여 있으면, 스스로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준다. 그러므로 너는 언제나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느냐?”라고 물으셨다. “장 씨와 말다툼을 합니다.” 이틀 후, “그 사람이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느냐?”, “어떤 사람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몇 마디 듣더니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오라고 해도 안 오는데, 이틀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 요 며칠 왜 그림자도 보이지 않느냐?”, “자신에게 은사가 없고 다른 사람처럼 반응도 빠르지 못해 언짢아합니다. 그래서 또 다른 사람과 겨루러 갔는데, 누구와 겨루러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불쌍하고,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는데,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한 것들이 영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 그 속에서 나오지 못하면 너는 항상 손해를 보게 된다. 겨우 정형이 좋아지기 시작하고 믿음이 생겼으며, 본분을 하는 데도 길이 조금씩 생겨 어떻게 충성하는지도 알게 되었는데, 분량이 너무 작아 사소한 일에 직면해도 굳게 서지 못하고 소극적이 된 것이다. 조금 기다렸다 다시 회복되면, ‘얼마 전에 깨달았던 그 진리가 뭐였더라?’라고 궁리하면서 노트를 펼쳐 본다. 말씀은 기억했지만 당시의 그 정형과 인식, 심지(心志)는 잊어버려 다 없어졌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예배드리고 기도하면서 겨우 또 믿음이 어느 정도 생겨 마침내 다시 좋은 상태로 돌아오니, 그래도 이것이 좋구나 하며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지도 않고, 기쁨과 평안도 있으며, 하나님의 함께하심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해 주지 않으면 ‘왜 날 상대해 주지 않지? 그럼 나도 널 상대 안 할 거야! 니가 날 우습게 봐? 난 원래 너 같은 거 취급도 안 했어!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나도 상대해 주지 않을 테니까!’라고 생각한다. 상대해 주지 않으면 그만이냐? 너의 마음이 방해받지 않겠느냐?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롭고 방해받는다. 어제 깨달았던 눈곱만큼의 진리마저 오늘은 또 없어져 다시 고통에 빠진다. 그러고는 하나님께 “하나님, 저를 깨우쳐 주시옵소서. 저로 깨닫게 하여 여기에서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고통에 빠져 있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자라고 싶고 변화받고 싶습니다.”라고 한다. 울고불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평안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데,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지고 스스로 너무 멀리 가 버렸다. 그것은 손해를 본 것이 아니냐? 아마 육체적으로는 털끝 하나 상하지 않았고, 머리카락 한 올도 빠지지 않았으며, 하루 세끼와 생활 규칙 등 모든 것이 평소와 같겠지만, 영 안의 손실은 매우 크다. 항상 하나님을 멀리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 없다가, 겨우 진리를 조금 깨달아 믿음이 조금 생기고, 기초가 조금 있게 되고, 본분을 하려는 심지와 결심이 조금 있게 되었지만, 분량이 너무 작아 인ㆍ사ㆍ물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 결국에는 스스로 늘 연약해지고 소극적이 되고 흑암에 빠지고 영 안이 가라앉아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지 못하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생활이 고통스럽지 않으냐? 너희는 이러한 고통을 충분히 겪지 않았느냐? (충분히 겪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가장 좋은 방법, 최선의 방법은 다른 사람이 한번 흘겨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구나. 나는 이미 다 컸으니 너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할 거야. 사람은 모두 그렇지. 별것 아니야. 나도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째려본 적이 있었어.’라고 하며 조금 괴로워도 지나가고, 정상적으로 그와 이야기하고 정상적으로 교류하는 것이다. 그런 일로 문제 삼지 말고, 혈기와 인위적인 방법으로 대하지 말라. 그러면 그 일이 빨리 해결되는데, 마음속으로 내려놓게 되어 너를 방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너의 상태는 하루하루 나아질 것이고, 너의 정형은 점차 정상적이 될 것이다. 네가 늘 하나님 앞에서 살고 늘 하나님 앞에서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해 나가게 되면, 하나님은 네가 바른 일을 하고 바른길을 가는 착한 아이라고 하며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러한 길을 가고 이러한 상태에서 살아가면, 네 마음은 항상 기쁘고, 안정되고, 평안하고, 충실해질 것인데,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다른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진리를 많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진리는 글귀 도리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참된 의미이고, 하나님의 뜻이다. 도리만 깨닫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은 실제적인 것이고, 진실한 것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다. 진리를 깨닫는 실행 길이 얼마나 중요하냐!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기 전에, 너를 방해하고 넘어뜨릴 수 있는 주변의 그런 소소한 것들과 각종 인ㆍ사ㆍ물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알맞게 처리해야 한다. 어떻게 정리하고 처리해야 할까? 단순히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관여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단호하게 끊어 버리면 될까? 그것은 모두 인위적인 방법이고 혈기이며, 사탄이 사람과 사건을 대하는 방식이다. ‘삼십육계’를 배워 보면 될까? 음모와 궤계를 많이 배우면 될까? 그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맞다. 나이 든 사람을 대하든 젊은이를 대하든 아니면 동년배의 형제자매를 대하든,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원칙으로 대해야 한다. 이것이 최고의 지혜이고 뛰어난 방법이다. 이런 작은 일을 대할 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즉, 혈기나 천연적인 모습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억제해야 할 것인데, 자신의 성질, 내키는 대로 하려는 성미, 난폭함을 억제해야 하고, 자신의 이유와 변명, 체면을 내려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그 생각이 일리가 있고 정말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이 통과시키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사람들과 논쟁하면서 “이 일은 정말 오랫동안 찾고 구하면서 많은 자료를 찾아본 거예요. 이렇게 하면 절대적으로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제 말에 따르지 않으면 분명 손해를 볼 겁니다. 그때 가서 손해 보는 게 누구인지 알게 될 거예요.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곧 저를 찾게 될 거예요!”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는 건 어떠냐? (옳지 않습니다.) 그럼, “제가 평소에 말을 하지 않아 아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 아무도 제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네요. 제가 온순하다고 다들 저를 함부로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고,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다들 안 듣는 거지요. 그렇죠? 저도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호랑이가 위세를 부리지 않는다고 다들 병든 고양이로 아시나요? 제가 여러분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을 무서워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참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누군들 무서워하겠습니까? 책상을 내리치며 행패를 부린다면, 여러분은 다 제 상대가 안 됩니다. 오늘 여기서 할 말 다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듣든 말든, 하나님은 누가 맞고 틀렸는지 아실 겁니다.” 이런 식은 어떠냐? 이것은 온순한 사람이 참다 못해 버럭 한 것이니 별 문제 될 것이 없는 그런 상황이냐? 괴롭힘을 당하고 억압받고 배척당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져 답답해지면 기분을 풀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아닙니다.) 왜 아니냐? 온순한 사람이든 괴팍한 사람이든,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 이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온순한 사람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냐? 네가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기분을 풀려고 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냐? 그것은 한풀이이고 혈기이다. 혈기가 폭발하면 사탄의 모습이 나타나 책상을 밟고 의자를 걷어차면서 몰상식한 형상, 떼강도의 형상을 드러내는데, 그것이 좋은 것이냐? 네가 그러한 방법이 얼마나 많은 이유가 있고 얼마나 체면치레를 할 수 있고 사람들 가운데서 위신을 세워 다른 사람들이 감히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할 수 있다고 여기든, 네가 어떤 속마음을 가지고 있든, 어떤 방식으로 그 모든 것을 충족시키든, 이는 모두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으로, 사탄 성정의 유로이고 귀신의 몰골이지, 인성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인성이 아닌 귀신의 몰골이고 사탄의 원형인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시에 얼마나 크게 화가 났든 침착하고 안정하여 즉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 앞에 오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고, 네가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데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조금 인내하고, 조금 서럽고, 조금 고난받고, 조금 억울함을 받는다고 하여, 그것이 치욕스런 일이 아니다.

인류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하므로 어떤 부류의 사람에 대해서도 참아야 한다. 내가 오랜 세월 동안 참아 왔지만, 손해 본 것이 있느냐? 나도 참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을 대하든 다 참아 준다. 강요하지 않고 그 사람과 상의하고 교통하고 조금씩 말을 해 주면서 그 일에 대한 이치를 알게 하고 깨닫게 해 주는데, 어떤 사람이든 다 그렇게 대해 준다. 아무리 상의해도 안 되면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이 존귀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억울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존엄이 짓밟혔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런 것은 다 별것 아니다. 관건은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하고,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다. 범사에 사람에게 유익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말은 너희에게 있어 요구치가 좀 높을지도 모른다. 사람에게는 그런 인성도 없고 그런 분량도 없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어떻게 해야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려해야 한다. 천연적인 혈기가 폭발하려고 할 때는 빨리 하나님 앞에 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화가 풀리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시의 분노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던 그 이상하고 해괴한 말들이 어떻게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이 사탄이 행한 것과 사람이 생각했던 그런 이유와 혈기들을 네게서 옮겨 간 것이다. 다음 하나님은 네게 평안과 기쁨을 주어 너의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혀 줄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방금 어쩜 그렇게 충동적이었지? 왜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지? 별것 아닌데 그렇게 성질을 부리다니.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진정한 방패가 되셔서 나를 지켜 주셨어. 그래서 내가 또 한 번 추한 몰골이 드러나지 않아 수치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았으니, 정말 하나님의 은총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에게 있어 하나님의 관용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은 한량없는 것이니,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하고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에게 믿음이 있고 진심이 있다면, 하나님은 베풀어 줄 것이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도와줄 것이다.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네가 확실히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잘 생각해 보지 못했다면 먼저 안정해야 한다. 모든 일을 하기 전에, 혈기가 폭발하기 전에, 먼저 안정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어야 한다.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봐야 하는데, 하나님이 만족하는 일이 아니면 혈기가 조금씩 사라지도록 하나님이 도와주고, 상황이 호전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것이 너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지내면서 지나치게 틀어진 관계가 되어 버리면, 그 후에는 처음의 그런 관계로 돌이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성질이 나올 때, 천연적인 것과 혈기가 폭발하려고 할 때, 그 천연적인 것과 혈기가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을 때, 먼저 많이 생각해 보고 많이 기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형제자매든 가족이든 그들과 모두 화목하게 지내야 하는데,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이런 관계를 잘 처리하면 사람은 성장하게 되고, 진정으로 일을 맡고 책임질 수 있으며, 부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분량이 아주 작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의미한 일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늘 거기에 빠지고 휘둘려 녹초가 되고 만신창이가 된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 집에서 맡겨 준 사역도, 책임자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것은 네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심지나 결심이 없어서,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며, 더욱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의 분량이 너무 작아 주변의 갖가지 복잡한 인ㆍ사ㆍ물을 잘 처리하지 못해 갖가지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역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부탁을 이행하지도 못해 너의 본직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남녀 문제에 빠지거나 갖가지 복잡한 인간관계에 빠져 시비에 얽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은 어떻게 할지 몰라 멈추게 되고, 혹은 어떤 일에 얽매이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너의 심지, 결심, 믿음, 의지력은 다 어디로 갔느냐? 이런 일들에서 너의 믿음, 결심, 심지는 언급할 가치도 없고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에게 매우 훌륭하고 긍정적인 소망, 바람, 심지도 있고, 하나님 앞에서 맹세도 했고, 하나님이 너의 그 심지를 이룰 수 있게 도와주기를 바란다면, 전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 전제 조건은 네가 충분한 분량과 충분한 진리를 갖추어야 하고, 네 주변의 시비와 주변의 인ㆍ사ㆍ물을 잘 처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너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든, 네가 어떤 인ㆍ사ㆍ물이나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본분에 충실할 수 있고 진리로 대하고 진리의 원칙을 지켜 그런 일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억눌리지 않고, 방해받지 않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너의 분량과 진리 진입이 한 단계 더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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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본분(本分): 피조물이 수행해야 할 의무와 천직.

②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④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⑤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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