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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108편 종교를 믿으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

현재 너희들은 하나님을 믿는 개념에 대한 깊은 인식과 체험이 있느냐?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이해한 것과 다른 점이 있느냐? 진리와 관련된 것이 있느냐? 종교를 믿는 것은 어떤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종교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통상적으로 종교를 믿는 것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느냐? 종교를 믿는 것은 행위상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는 것, 나쁜 짓을 하거나 사람을 착취하는 것, 부당한 이익을 취하거나 좀도둑질하는 그런 행위를 변화시킨다. 누군가 종교를 믿는다면 그것은 좋은 행위가 있거나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겉면의 행위에서 바라는 부분이다. 그럼 정신적 사상 경지의 측면에서는 어떻게 되느냐?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의지할 데가 생긴다. 이쯤에서 종교를 믿게 되는 것은 좋은 행위가 있게 되고 정신적 지주가 생긴 것일 뿐이지, 신앙 대상의 존재 여부, 어떤 분인지, 사람에 대해 어떤 요구가 있는지에 관한 이런 세부적인 것에는 다 상상과 추리를 가진 채 그것에 근거하여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종교를 믿는 정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주로 행위상의 변화와 심적으로 의지하기만을 추구하는 것이어서 인생의 길, 인생의 목표와 방향, 삶의 근본 토대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떠하냐? 하나님이 정의하고 요구한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따라 생존하고 생활하고 본분을 하면서 정상 인성의 모든 활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가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살라는 대로 살며 하나님의 말씀(원문: 道)을 준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의 방향과 목표가 종교를 믿는 것과 완전히 다르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것과 관련되느냐? 사람이 살아내야 할 정상 인성 그리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그 말씀에 따르고 또 실행하는 것,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리에 연관된다는 근원을 짚어냈다. 이것이 인생의 바른길인데, 인생의 길에 관련되는 것이다. 종교를 믿으면 이런 것이 있느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인생의 길이 바뀌었느냐? “종교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라가느냐? 종교를 믿는 것은 행위적인 변화만 추구하는 것이다. 겉면의 행위, 절제, 규례적인 것뿐인데, 정신적 지주를 찾는 것만 추구하며, 그 어떤 진리에도 관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성정은 변화할 수 없고 또한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을 것이며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도 있을 수 없다. 그들이 종교를 믿고 행위가 얼마나 반듯해지고 정신적으로 얼마나 확고하게 의지가 되든 간에 그들은 누구를 따르는 것이냐?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냐? 여전히 사탄을 따르는 것이다. 그들이 살아내고 추구하고 지향하고 실행하는 것, 그리고 생존하는 근거는 모두 무엇에 근거한 것이냐? 모두 다 사탄의 패괴 성정과 사탄의 실질에 근거한 것이다. 진리가 전혀 없고 모두 다 사탄의 논리와 처세 철학에 따라 일 처리하고, 거짓말만 하면서 사탄 성정이 그 어떠한 변화도 없다. 그 사람이 따른 것은 여전히 사탄이다. 그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 일 처리 방식, 일 처리 원칙은 모두가 다 사탄의 실질과 사탄의 본성에 근거한 것이다. 그 사람은 겉면의 행위에만 변화가 있을 뿐, 인생의 길과 방향 그리고 따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으면 어떻느냐? 네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떤 것에서 변화가 일어나느냐? 네 삶의 근본 토대가 무엇인지, 삶의 근거는 무엇인지, 날마다 일하는 것은 무엇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그 일을 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지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근거는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요구, 진리에 근거해 행했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인생의 길이 이미 달라진 것이 아니겠느냐? 다시 돌아와서 종교를 믿는 것이란 무엇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결론을 내려보자. 종교를 믿는 것은 여전히 사탄을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점이 있다. 간단하지 않으냐? 너희가 지금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고 있는데, 종교를 믿고 있기 때문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이냐? 어떻게 구분하겠느냐? 근거는 무엇이냐?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네가 좋은 행위와 정신적으로 의지하기만을 추구하고, 규례를 지키는 것과 개인을 위해 복리를 꾀하는 것만 추구하면서, 진리는 조금도 추구하지 않고 무골호인이 되는 겉면의 것만 추구하여 본성 실질과 패괴 성정에 전혀 변화가 없다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종교를 믿는 것이다!

너희들 중에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느냐? 종교를 믿는 사람은 이방인을 가리키느냐? (아닙니다.) 그럼 누구를 가리키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좋은 행위를 중요시하고 규례만 지키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아서 성정 변화가 조금도 없는 사람은 다 종교를 믿는 사람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냐? (방식과 겉면의 좋은 행위만 중요시합니다.) 일 처리하는 원칙과 근거는 무엇이냐? (사탄의 처세 철학입니다.) 사탄의 처세 철학과 사탄의 패괴 성정에는 다 어떤 것이 있느냐? 교활하고 간사하고, 독단전행하고, 교만자대하고, 무슨 일이든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거나 형제자매들과 교통하지 않고, 일을 하면 늘 자신의 이익, 체면, 지위, 그리고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려한다. 이것은 뭘 하는 것이냐? 이것은 사탄을 좇아서 완전히 사탄의 패괴 성정에 따라 일 처리하고 진리에 따라 실행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도 순복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익과 체면은 조금도 버리지 않고 단지 좋은 행위만 조금 있을 뿐이다. 비록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탄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데, 사탄의 처세 철학과 일 처리 방식, 행사의 방식은 조금도 버리지 않았고 바뀌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종교를 믿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겉으로 보면 포기도 했고 화비도 했지만 일상에서 매일 가는 길과 모든 일을 하는 근원과 출발점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패괴 성정과 상상, 주관적인 추측과 욕망에 근거하였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탄의 패괴 성정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 근원이자 근거로 된 것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일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고, 진리를 아는 일에서도 진리를 실행하거나 하나님을 존경하여 높이지 않고, 진리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하나님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말뿐이고, 일을 한 실질은 다 패괴 성정으로 한 것이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한 출발점이나 마음 가짐은 찾아 볼 수 없다. 일을 할 때 먼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먼저 자신의 욕망과 속셈을 만족시키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성정이 변화될 수 있겠느냐? 성정이 변화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이해도 하였지만 일을 할 때는 자신의 뜻이 너무 많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진리에 따라 실행하지 못하고 원칙에 따라 실행하지도 못한다. 하나님을 몇 년 믿고 나면 겉으로 봤을 때 사람이 많이 차분해지고 단정해져 좋은 행위도 많고 영생활도 정상적이며, 대인 관계에도 큰 문제가 없고, 본분도 어느 정도 하고 성과도 좀 있다. 그렇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어디에 그 문제가 있겠느냐? 사람의 마음에 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였다. 어떤 일을 하든 혹은 어떤 일이 임하든 그 사람은 제일 먼저 ‘난 어떻게 하고 싶어. 난 어떻게 해야 돼. 어떻게 하면 나에게 유리하고 어떻게 하면 나에게 불리해. 이렇게 했을 때 결과가 어떠어떠해.’라는 생각만 하지,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 그런 일에서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심은 갖지도 않고, 찾고 구하지도 않으며, 실행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비록 어떤 때는 형식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교통도 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 말씀에서 빛 비춤을 찾고 구하고 출로를 찾고 구하기도 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와 배치를 대하느냐? 자신의 뜻을 만족시킬 수 없는 일이 임하면, 도피하고 마음으로 대항한다. 또 자신의 이익에 손해가 되고 이득이 안 되는 일이 임하면, 그들은 갖은 방법을 다하여 출로를 찾고 구하는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떠한 피해도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는 것을 찾고 구하지 않고, 자신의 소망과 욕망만 채우려고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있느냐? 관계가 없다. 그 사람들은 아주 비열하고 천하고 야비하고 강퍅하고 추하게 산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매사에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거스른다. 그리고는 말끝마다 “하나님, 저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제 마음의 보좌에 올라 왕이 되어 권세를 잡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순복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배치하고 안배했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손해되는 일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 같으면 항상 순복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서 그 사람은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을 돌려세우려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지 않으려 하며, 완전히 자신의 생각대로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신경 쓰려고 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은 어떤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처지와 이익, 기분이 어떤지 자기의 느낌이 어떤지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그 사람의 마음에서 하나님은 무엇이냐? 하나의 전설이 아니냐? 정신적인 의지로만 삼는 게 아니냐?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외인이다. 그 사람에게 유리할 때, 하나님은 그의 주재자이고 그의 모든 것이다. 그 일이 그 사람에게 이득이 안 되거나 그 사람의 이익과 체면에 피해가 되어 훈계받고 시련당하고 고난받고 체면을 잃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대하겠느냐? 도피하고 반항하고 거절하고 심지어 원망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굳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괴롭고 소극적이다. 소극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그것은 반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왜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면서 나한테만 이러는 거예요? 하나님은 불공평해요.” 이것은 어떠한 정서냐? 반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한 것이 언짢게 생각되어 그렇게 공개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그때도 하나님이 아직 그의 마음속의 하나님이겠느냐? 그 사람이 순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가 함부로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 외의 어떤 다른 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고, 생각하면 바로바로 이뤄 주셔야 하나님이시지. 이 하나님은 날 지배하려고만 하고 내 뜻대로 해 주지 않아서 별로 좋지 않아. 하나님 같지도 않잖아. 사람이 하나님 안중의 눈동자라고 했는데, 하나님이라면 뭐든 다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되는 거 아닌가? 어쩜 눈동자를 이렇게 대할 수 있어? 왜 자꾸 날 꼬이게 해? 왜 자꾸 나한테 굴곡을 겪게 해? 왜 항상 내게 시련을 겪게 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거야? 남들은 술술 잘도 풀리게 해 주면서 왜 나만 항상 은혜를 누릴 수 없는 거야? 왜 내겐 특별하게 해 줄 때가 없는데? 하나님이 맞긴 한 거야? 하나님이 어디 있는데?’ 별일 없거나 모든 것이 막힘없고 순조로울 때는, 하나님이 위대하고 공의롭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시련하고 훈계하고 책벌하고 징계하려 할 때, 그 사람에게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육체를 배반하고 진리에 따라 실행하라고 할 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서, 그 사람 마음에서 왕이 되어 권세를 잡으려고 할 때, 그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배치하며 그의 인생을 주재하려고 할 때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장벽이 되어 하나님이 한 것과 배치한 것, 하나님의 행사는 깊은 골짜기가 된 듯, 하나님과 멀어지고 모순이 생긴다. 이때, 하나님은 무엇을 해도 그의 소원을 만족게 해 주지 않아 그는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우며 기분이 아주 언짢기 때문에, 하나님이 조금도 사랑스럽거나 위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냐?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것이냐?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냐? 다 아니다. 그러므로 너에게 생명 성정의 변화가 얼마나 있든, 너에게 좋은 행위가 얼마나 있든 상관없이, 네가 정말 진리를 추구한다면, 하나님이 배치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행할 수 있고, 순복을 구하여 자신의 뜻, 염원, 바람, 타산, 속셈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대항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따른다고 말은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다 자신의 뜻에 따르려고 하고 모두 자신만의 의도와 타산이 있어 하나님이 결정하지 못하게 한다면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겠느냐?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럼 네가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냐? 사람을 속이는 말이 아니냐? 네가 하나님을 따르지만 너희 모든 소행, 인생관과 가치관, 일 처리하는 태도와 원칙, 일이 임했을 때 일을 대하는 태도와 원칙은 모두 다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완전히 사탄의 원칙과 사탄의 논리에 의해 일을 처리하게 된다. 그렇다면 네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당시 베드로가 주 예수에게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태복음 16:22)라고 말했을 때, 주 예수는 베드로에게 뭐라고 답하였느냐?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마태복음 16:23)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는 베드로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렸느냐?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했느냐? 베드로가 사탄이냐? 베드로는 예수가 하는 사역의 뜻을 알지 못해 사탄의 출구가 되어 사탄을 대신해 말하였는데, 하나님의 뜻을 통행하려는 예수를 가로막으려고 했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베드로는 곧 사탄의 출구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사람이 표면상에서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따르고 있지만 모든 행위와 모든 생각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다 사탄의 논리와 철학에 따라 실행하고 살아낸다면 그 사람의 실질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조금 듣기 좋게 말하면 종교를 믿는 것이다. 사악하고 패괴된 인류 중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사물을 추구하고 지향하고 있고, 또한 고상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기에 좋은 행위가 있고 나쁜 짓을 하지 않을 뿐이다. 나쁜 짓을 많이 하면 천벌을 받아 이후에 지옥에 떨어지거나 징벌을 받거나 영원히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어 두렵기 때문에 그래도 착하게 사는 게 평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좋은 사람은 일생 동안 평안하다”라고 하는데, 이런 사상의 영향을 받고 그런 사상의 흐름에 전염되어 종교를 믿는 것이 좋은 일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런 단속도 없고 정신적으로 의지할 만한 곳이 전혀 없기에 살인, 방화, 간음, 약탈 등 나쁜 짓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의 결말은 아무런 보장이 없고 나중에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고상한 사람으로, 인류 중에서 거룩히 구별된 사람으로 여기면서 행위와 사고방식에 변화가 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종교를 믿는 것이다. 종교를 믿는 데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데로 넘어갈 수 있을까? 사람이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에는 그런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은 지 3년, 5년, 8년, 10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런 방식대로 살고 여전히 사탄을 따르고 추종하며 끝까지 변화가 없다면 큰일이다. 진리를 알아도 실행할 수 없고, 실행하지도 않고, 실행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재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의의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가치도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가장 간단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복하며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말씀에 따라 모든 일을 하면서 진정한 피조물로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데에 이르는 것이 비로소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겉면으로만 따르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복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와 안배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하나님이 하신 것에 대해 언제나 다른 견해와 오해가 있고, 언제나 원망과 불만을 토로하며, 언제나 다른 시선과 관념으로 가늠하고 대하며 언제나 자신만의 이해가 있다면 문제가 된다. 그러면 너는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데 도달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다.

종교를 믿는 것이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어떤 것이냐? 종교를 믿는 것은 여전히 사탄을 좇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야말로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생명으로 삼지도 못하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오래 있든, 하나님 집에 얼마나 오래 있든 소용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엇에 근거하여 네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느냐? 하나님은 네가 범사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하였는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늠한다. 하나님은 너의 행위가 얼마나 변화되었고 겉으로 얼마나 많이 뛰어다녔느냐에 근거하지 않고 네가 가는 길과 너의 추구에 근거한다. 네가 겉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한 말씀을 좋아하지 않고 무관심하며 그래도 사탄의 철학, 세상의 각종 학설에 따라 살아야만 정상적이고, 또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그래야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가치 있다고 여긴다면,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네가 어느 위인의 말이나 어느 명인의 명언에 철학성이 보인다면 그것을 진리로 여기고 좌우명으로 삼고 지키지만, 너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고 단정하고 곧고 바르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착실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하나님 말씀을 보면 실행하지도 않고, 진리로 여기지도 않는다면 네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맞겠느냐? 너는 실행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진실을 요구하며 “네가 실행한 것은 무엇이냐? 네가 실행한 그런 말은 누구의 말이냐? 네가 지킨 원칙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냐?”라고 물을 때, 네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말에 근거해 살아왔으면서 오히려 진리를 실행했다거나 하나님을 만족게 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면 어떤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성실하지 않은 표현에는 어떤 살아냄과 유로가 있고, 성실한 표현에는 어떤 살아냄과 유로가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의 실질을 묵상하지는 않고 따로 이방인의 책을 찾아 읽는다. 책을 보며 “이 글이 참 좋네, 하나님 말씀보다도 더 좋아. ‘솔직한 사람이 오래간다’, 하나님 말씀과 똑같잖아. 이 말도 진리야!”라고 하면서 그 말을 지킨다. 그 말을 지키면 살아내는 것은 무엇이냐? 진리 실제를 살아낼 수 있느냐? 이런 사람이 많지 않으냐? 배운 것도 좀 있는 데다가 책이나 명작 같은 데서 좀 본 걸로 식견이 늘고 아울러 명언이나 민간 속담까지 알면서 그것을 진리로 여기고 그런 말에 따라 행하는데, 본분에도 사용하고 하나님을 믿는 생활에도 적용하면서 하나님을 만족게 한 줄로 생각한다. 이것은 투량환주한 것이 아니냐? 이것은 기만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사람에게 이런 일이 적지 않게 있다. 민간에서 하는 듣기 좋은 말과 맞는 도리는 다 진리로 여기고 지키면서 오히려 하나님 말씀은 제쳐놓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심지어 몇 번을 읽어도 마음에 새기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그 사람은 종교를 믿는 것이고 아직도 사탄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사탄의 말들에 철학성이 있고 심오한 뜻이 있으며 너무나 근사하고 또 격언이므로 다른 건 다 포기해도 그런 말은 절대 포기하지 못하고, 포기하면 목숨을 앗아가거나 심장을 도려내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사탄을 따르는 사람인 것이다.

너희들은 자신을 말씀에 비춰 볼 줄 아느냐?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부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이와 같은 정형을 인식할 줄 아느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나서 하나님 말씀도 자주 보지만 일이 임하면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그러던데...”, “어떤 유명 인사가 그러던데...”, “어떤 책에서 본 말인데...”, 이런 말만 하지, “하나님은 어떠어떠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어떠어떠합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에서 ...”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냐? 사람이 이러한 정형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느냐? 네가 하나님을 3~5년, 8~10년간 믿었으면서도 자신이 아직도 사탄을 따르고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데, 매우 위험한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못하거나 하나님이 어떻게 배치하고 요구하든 순복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탄을 좇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어디에 있느냐? 사탄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너희들은 모두 말씀에 자신을 비춰 보면서 자신의 사상관점을 해부하여 아직도 어떤 것이 처세 철학이나 민간속담, 전통문화, 지식에서 얻은 것인지 그리고 여전히 그것을 옳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거나 진리로 간주하고 지키면서 진리를 대체하였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특히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과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리로 간주한 것은 간파하기 쉽지 않다. 그런 것을 간파할 수 있다면, 큰 난관을 돌파한 것이다. 그런 것은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데 있어 모두 장벽이다. 사람이 온종일 흐리멍덩하고 무위도식하며 그런 일들을 묵상하지 않고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들이 사람에게는 영원히 마음의 병이 되어 떼어 내지 못한다. 그러면 사람은 참되게 하나님을 따를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

지금까지 교통하면서 너희에게 있는 어떤 정형과 생각 그리고 편협한 관점들이 하나님의 뜻과 요구,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그것을 진리로 간주하여 실행하고 지키고 있었던 건 없는지 떠오르는 것이 있느냐? (저는 요즘 변화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겉면의 행위의 변화에 공을 들였다는 것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에게 교만해서 같이 협력하기 힘들다고 했었는데, 그 말을 들은 후로는 뭐든지 좋도록 토의하며 다른 사람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게 되고, 문제가 보여도 못 본 척 입 다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관점이 있어 책임지는 게 무서워 앞장서는 걸 꺼려했습니다. 방금 하나님 교통을 들으면서 이런 정형을 비춰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처세 철학에 근거하고 겉면의 좋은 행위로 사람을 미혹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너희들은 느낀 점도 있고 생각되는 것도 있긴 한데 진입하는 걸 어려워하고 있다. 이런 정형을 느끼고 나서, 패괴된 인류가 모두 사탄에게 꽉 잡히고 완전히 통제되었다는 느낌이 들더냐? (네.) 언제 그런 느낌이 있더냐? (진리를 실행하고 싶을 때 사탄 본성에 통제되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내면의 싸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서야 제 자신이 사탄의 속박과 제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럴 때, 사탄이 매우 가증스럽다는 느낌이 드느냐? 아니면 시간이 오래되면서 무감각해져 미움도 생기지 않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 참으로 필요하다는 느낌이 드느냐? 하나님이 하신 이러한 말씀들, 하나님이 사람을 폭로한 이러한 말씀들이 모두 실정이고 한 마디도 틀리지 않으며,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기에 하나님이 하신 이러한 말씀이 없거나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사탄의 철학에 의해 살다가 결국 다 죽게 되고 멸망의 대상이 될 거란 느낌이 드느냐? 느끼기만 하면 되겠느냐? 그것만 느끼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간절한 사모의 마음만 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고 긍정적 사물을 좋아하고, 사악함을 증오하고 사탄에게서 온 것을 증오하고 자신의 본성을 증오해야 한다. 자신의 본성 실질이 추악하고 사악하고 하나님과 적대되며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임을 간파하고 마음으로부터 거부감을 가지고 혐오해야만 이 모든 얽매임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빠져나올 원동력과 소망이 생기게 된다. 이런 원동력이 없이 거저 진리를 실행하려면 쉽지 않다. 사람은 반드시 패괴 성정의 얽매임, 우롱, 괴롭힘, 유린, 짓밟힘의 정형에서 반 죽어가는 시달림을 받으며 고통을 느껴야 그런 것을 증오하게 되고 그 모든 것을 변화시키려는 결심과 심지(心志)가 있게 된다.

네가 만약 사탄에 속하는 것들이 사람의 육체, 상상, 관념, 욕망, 사람의 각종 취향까지 만족시킬 수 있어 좋게만 느끼고, 고통을 느끼거나 사탄이 사람에게 잘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사탄이 사람을 어떠어떠하게 해친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길 원하겠느냐? 궤사한 사람이 자신은 궤사한 사람이고 거짓말을 잘하며 솔직하지 못해 뭘 해도 감추고 숨긴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만 하고, 여전히 ‘이렇게 살아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다 내 손에 놀아나잖아, 다른 사람은 내 손에 놀아나도 난 놀아나는 일이 없지. 내 이익과 체면과 지위와 허영심이 항상 채워지고 계획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고 빈틈없이 완벽하잖아.’라고 하면서 그것을 즐기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성실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겠느냐? 자신의 궤사함을 내버릴 수 있겠느냐? 그 사람은 궤사하고 교활한 것을 긍정적 사물로 간주하여 귀히 여기고 버리기 아쉬워한다. 그 사람은 인생은 그렇게 살아야 올바르고 삶이 윤택하고 진정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며, 사람이 그래야 완벽하고 가치 있고 고상하며,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본다고 생각한다. 만약 성실한 사람으로 살면서 예수님이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마태복음 5:3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뭐든지 솔직하게 다 말한다면, 남들을 휘두르기는커녕 유리처럼 투명하여 남들이 다 간파하고 휘두른다고 생각되어, 그런 사람이 되려는 사람이 없다면서 절대 그런 사람으로 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 진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든, 진리의 말씀(원문: 道)을 얼마나 많이 깨달았든 하나님을 따르면 많은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실로 따르지도 않을 것이고 또한 기꺼이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단지 종교에 이름을 등록하고 믿으면서 행위적으로 좋아지고 정신적으로 의지할 데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는 그 어떤 것도 지불할 필요가 없고 버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뿐이고 그것을 족하게 여기고 있다. 그런 사람은 최종에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를 얻을 수 없는 원인이 무엇이냐? 그 사람은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고 광명을 지향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원문: 道)을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며, 사악한 것을 좋아하고 숭상하며 사악한 것과 부정적 사물을 귀히 여기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마음으로 숭배하고 우러러보고 추구하고 지향하는 것은 진리가 있는 사람이 되거나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되려는 것이 아니라, 겉면에 좋은 행위가 있고, 아무도 속생각을 간파하지 못하고, 개인의 욕망과 타산은 쥐도 새도 모르게 모든 사람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고, 모든 무리에서 팔방미인이 될 수 있을 뿐더러 각종 음모 술수와 수단을 노련하게 부릴 수 있어 어떤 자리에 가서나 사람들의 숭배와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길이냐? 마귀의 길이다. 그것은 진정한 사람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다. 사탄의 처세 철학, 사탄의 논리, 사탄의 일 처리 원칙 방향으로, 각종 수단과 수법으로 모든 자리에서 사람들의 신뢰를 꾀하고 호감을 사고 허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이 아닌데, 최후의 결말은 구원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징벌까지 받아야 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구원받는 것은 무엇에 달렸느냐?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 종교를 믿어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며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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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너희들은 본분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이고 진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지 알고 있느냐? 어떤 일을 하든지 마음을 쓰고 종합해 정리할 줄 알면 기본적으로 일을 지체하지는 않는다. 마음을 쓰지 않고 흐리멍덩하면 할 수 있는 것조차 하지 못하기에 분명히 일을 지체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너희는 성질을 부리기도 하느냐? 기분이 다운되거나 자그마한 문제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일을 내팽개치거나 또는 며칠간 기분이 나쁘다 하면 사역을 지체하고 그럴 수도 있느냐? 2~3일, 3~5일, 심지어 1~2주씩 지체해도 양심의 가책이 없고 뭘 해도 단속받지 않고 아무런 감각이 없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 본분을 할 자격이 없고 그 사역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오늘날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전파하는 일은 큰일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본분이니 우습게 보지 말라. 너희의 짐은 가볍지 않다.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이것은 개인의 작은 경력(역주: 체험)에 관련되는 일이 아니고 매우 넓은 범위에 관련되는 일이다. 너희가 여기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중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계속 떼를 쓰고 삐지고 성질을 부린다면 너희는 이 일을 감당할 자격이 없다. 물론, 업무나 능력 방면은 경험이나 개인 소질에도 관련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 부차적인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바르고 일을 함에 있어서 화비하고 대가를 치러야 하며 충성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이 본분은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역 중의 일부분이므로 이 일을 우습게 보지 말라. 이 일을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다가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있겠느냐? 사람의 한 평생에 이런 기회가 몇 번 있겠느냐? 너에게 그런 특기가 있어서 하나님이 너에게 그 본분을 하도록 기회를 준 것은 하나님이 너를 높여 주고 신임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네가 마음을 들이지 않고, 늘 대충대충 하고 게을리하고 삐지며, 늘 개인의 사적인 일로 인해 사역을 지체하고 꾸물거린다면, 이것은 호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렇게 큰 사역을 하고 그 사역에서 네가 마음에 들기에 본분을 주고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도록 중요한 책임을 맡겼는데, 네가 늘 내팽개치고 농간을 부리고 책임을 지지 않고 충성심이 없다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축복하겠느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축복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혐오할 것이다. 사람은 원래 이 사역을 할 자격이 없고 하나님이 파격적으로 높여 준 것인데, 그런데도 사람이 좋은 길로 가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양심이 없는 사람은 인성이 없다! 인성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일이 닥쳤을 때, 자신의 뜻에 맞지 않고 대가를 치러야 하고 고생을 해야 한다면, 그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겠느냐? 늘 억울해하면 되겠느냐? 농간을 부리면 되겠느냐? 조건을 따지면 되겠느냐? 늘 남의 탓만 하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일이 임하면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한다. 진리를 찾고 구한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득히 멀고 낯설기만 하다. 그 사람은 찾고 구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찾고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많은 설교를 들었고 하나님의 많은 말씀을 읽었지만 일이 닥치면 어떻게 착수해야 할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가장 낮은 기준이 하나 있다. 빠르면서도 마음고생하지 않고 힘들지도 않은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자신의 관념과 맞지 않고 고난을 받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그런 일이 닥치면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일에 좋은 쪽으로 해야겠어. 내 자신의 일을 하는 거라면 내가 어떻게 할까? 내 일이라면 난 이렇게 할 건데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좋아 보여. 그럼 이렇게 해 보자.’ 이런 방법이 어떠하냐? 우선 하나님 집의 일과 본분을 마치 자신의 일을 하는 것처럼 사심 없이 하는 것이다. 이 원칙이 괜찮지 않으냐? 그리고 어떤 때 일이 임하면 손해를 보게 되거나 체면이 구겨지거나 개인의 이익에 피해가 되고 또 그렇게 됐을 때, 자신의 뜻에 어긋나서 기분이 불쾌해질 때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럴 때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내 뜻에 어긋나긴 하지만 그런 건 생각지 말고 어떻게 해야 양심적인지만 생각하자.’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것이 또 하나의 기준이 아니냐? ‘어떻게 하면 양심적일까? 양심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양심이 있는 걸까? 누구에게 양심적이어야 할까? 인솔자에게? 아니면 나에게? 아니야. 나에게만 떳떳해선 안 돼. 엄마에게 미안하지 않게 해야지! 지금까지 날 키워 준 보람이 있게 엄마가 듣고 좋아하고 날 칭찬하게 해야지.’ 이 기준이 어떠하냐? (하나님께 미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내가 이렇게 하고 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흡족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맞다. 그것이 양심의 기준이다. 누구를 향해서 하는지에 달렸다. 네가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고 구속받지 않지만 만약 하나님을 생각할 경우, 원래는 양심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데, 양심에 반응이 없다면 너라는 사람은 폐기된 것이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큰 일을 맡기시는데, 이건 날 신임하는 거잖아? 높여주신 거잖아? 요만한 재간으로 내가 세상에서 벌어도 얼마 번다고? 누가 나를 써 주기나 하겠어? 세상에 프로들이 가득하고 그중에 제대로 밥벌이 안 되는 사람도 많은데, 난 그래도 하나님 집에서 적어도 의식주까지 공급받고 있잖아. 모든 것을 공급받고 있어. 공짜로 누리기만 하면 안 되지! 더군다나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과 진리를 공급해 주셔서 이렇게 많은 것을 깨닫게 됐는데, 하나님께 미안하지 않게 해야 해! 성질부리면 안 돼. 내 생각에 안 맞는 말을 좀 들었다고 일을 내팽개치면 안 되지. 최소한 누굴 향해서 하는지는 알아야지! 난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볼 거야. 저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해서 괴롭긴 하지만 본분에 영향 주지 않을 거야. 본분을 건성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속이지도 않을 거야. 본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자꾸 내팽개치고 항상 내 자신을 내세우고 성질을 부리거나 사적인 일을 자주 본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거야. 양심도 없어!’ 이런 것이 양심이 주는 작용이 아니겠느냐? 너에게 이런 생각이 있다면 좀 단속받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은 늘 뒤에서 딴짓하거나 남몰래 놀거나 늦잠 자거나 혹은 어떤 일에서 문제점을 발견해도 말하지 않고 눈을 감아버린다. 이런 것은 양심 없는 사람이 하는 짓이 아니냐? 본분이 바쁠 때일수록 사적인 일이 더 많다. 연애도 하고 게임도 하고 도움이 안 되는 잡지나 정보를 보는데, 항상 본분하는 시간을 이용해서 개인의 일을 본다. 이런 사람은 양심이 있느냐? 충성심과 절대적인 순복을 언급하면 화제가 좀 커서 너희는 난이도가 있고 또 듣기에도 좀 불편하고 통제를 받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양심과 인성을 언급하면 너희가 갖추었느냐? 만약 너희들이 양심, 인성, 정상 인성의 이지마저도 모르고 또 어떻게 비추어 봐야 할지도 모르고, 이런 것으로 자신의 행위를 단속하고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고 바로잡을 줄 모른다면, 아예 진리와 상관없이 살고 있는 것이고 진리를 좋아하고 진리를 추구한다고 언급할 가치가 못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인성이 있고 양심 이지(理智)를 갖춘 사람들 중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이다. 인성이 없고 양심 이지가 없는 사람은 진리를 안다고 말할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구원받는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못 된다. 현재는 사역이 바쁘고 시간이 긴박하다. 너희는 자신의 사적인 일을 잠시 접어 두면 안 되겠느냐? 어떤 여자는 미를 추구하는데, 매일 치장하고 화장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미를 추구하는 것은 인성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때를 가려서 해야 한다. 사역이 바쁘고 일이 많을 때는 미모에 너무 중시하지 말라. 아니면 지금은 치장하는 데 시간을 적게 들이고, 일이 적고 별로 바쁘지 않을 때에 가서 치장을 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 더 많은 시간과 정력과 마음을 본분에 쓰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하나님께 미안하지 않고 양심이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데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큰일이 닥치고, 본분이 아무리 바쁘고,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긴박감이 없는데, 그것을 인간적인 데가 없다고 한다. 인간적인 데가 없는 것을 통틀어 양심이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 종일 그 일을 생각하며 정말 애태우고 있는데, 그 사람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본분을 받아들일 때는 “잘하지 못하면 저주를 받겠습니다. 훈계와 책망을 해도 좋고 제명해도 됩니다!”라고 서약서를 쓰고 맹세까지 하다가 돌아서면 언제 그랬나 싶다. 그런 것은 양심이 없고 인성이 없는 것이 아니냐? 양심과 인성이 없으면 본분을 잘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부탁에 충성심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이 본분을 잘하려면 우선 양심과 이지를 갖춰야 한다. 양심이 없는 사람이 사람이냐? 양심이 없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 나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본분을 어느 정도 건성으로 했는지 속으로 뻔히 알지만 뉘우치려 하지 않고 회개할 줄 모르고 하나님께 빚졌다는 느낌이 없으며 아무 단속을 받지 않아 항상 하던 대로 하는데,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보고 예배를 아무리 많이 드리고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마음이 바뀌지 않고 정형을 돌려세우지 않는다. 그러면 끝난 것이다. 많은 진리를 들었음에도 그 사람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어떤 사람이겠느냐? 뭐든 다 알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바뀌지 않고 감각이 없다면, 죽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깨닫고 나서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돌아서야 한다. 돌아선다는 것은 어떤 것이냐? 성경에서 어떻게 말했느냐?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요나 3:8)) 맞다. 이게 돌아서는 것이다. 지각이 없는 사람이 돌아설 수 있느냐? 진리를 듣고도 별 감각이 없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뜻, 욕망, 사심을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의도와 타산이 있다면, 그것은 돌아선 것이 아니다. 돌아서지 못하는 사람은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일을 잘못했을 때, 자신의 정형이 틀렸을 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바로 돌려세우고 손의 악과 강포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양심이 있고 인성 지각이 있는 사람이다. 만약 스스로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하고 포기하지 못하고 돌아서지 못한다면, 인성 지각이 있는 사람이겠느냐? 그 사람은 끝난 것이고 그냥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에게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느냐? 죽은 사람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느냐? 죽은 사람과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죽은 사람의 표현은 어떠하냐? 아무리 말해도 반응이 없고 욕해도 반응이 없고 송곳으로 찔러도 반응이 없으며 칭찬해 줘도 반응이 없다. 그 어떤 생명의 기미도 없다면 전혀 반응이 없을 것인데, 그러면 죽은 사람이다.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은 이런 표현이고,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실행하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으며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뭐가 틀렸는지 모르고, 자신이 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엇 때문에 정형이 잘못됐는지 원인을 모르며 사실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해도 말을 듣지 않고 거부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더 이상 구원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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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③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④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⑤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⑥투량환주(偸梁換柱): 대들보를 훔쳐 기둥을 바꾼다는 뜻으로 본질적인 내용물을 바꿔치기 한다는 말.

⑦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