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96편 조화로운 협력에 대해 나누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는 것과 이방인이 일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럼 어떤 부분이 다를까? 형제자매들은 같이 있으면 마음이 서로 통하는데, 진리를 교통할 때는 온화하게 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함께 교통하면서 상대방을 도와주고 자신을 털어놓는다. 혹은 상대방의 어려움에서 찾고 구하며 겉으로나 마음에서 다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저마다 자기 속셈을 챙기는 일이 없다. 야비한 사심을 품지 말고 목표를 같은 방향으로 하여 하나가 돼야 하되, 꼼수를 부리지 말고 교활한 수단으로 잇속을 채우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성령이 역사할 것이고 일을 해도 효율이 난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이런 것을 간파하지 못한다. 이런 방식으로 경력(역주: 체험)하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성령의 역사를 얻는 길을 찾고 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성령 역사의 방식과 성령의 깨우침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일을 하면서 함께 어울리고, 함께 일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방인들은 다 어떤 것을 찾느냐? 그들의 게임 법칙, 그들의 일처리 원칙과 일처리 방식은 어떤 것이냐? 이방인들의 일처리 원칙과 방식은 저마다 딴마음을 품고 있는데, 사람마다 속셈이 다르다. 가장 친한 친구 사이에도 서로 속셈이 다르고 같은 방향으로 힘을 쓰지 않는데, 두 사람이 절친이라 해도 안 된다. 이익이나 체면이나 지위나 명망 앞에서는 다 각자의 방향으로 힘을 쓰고 제각기 힘을 쓰며 제각기 저마다 딴마음을 품고 있는데, 누구와도 서로 같은 마음을 품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그들은 일을 해도 제대로 가거나 오래가기는 힘들다. 왜 어떤 단체든 일을 하면, 하다가 하다가 나중에 흩어지고 마느냐? 제대로 성공하는 것이 없고 오래가는 것이 없는데, 하다가 하다가 진행이 되지 않고, 가다 가다 더 이상 가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 본성의 어려움이다. 만약 너희도 일을 그런 식으로 한다면 너희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함께 본분을 잘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려면 우선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협력할 때 너는 ‘어떤 것을 조화롭다고 할까? 내가 저 사람하고 말하는 것이 조화로운가?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일이 저 사람과 조화를 이룰까? 나의 이 방법이 다른 형제자매들과 조화를 이룰까?’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조화로운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조화롭다는, 어떨 때는 양보도 하고 포용도 해 주지만 입장을 견지하고 원칙을 견지할 때도 있는 것이지,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고 무골호인이 되는 것도 아니며 중용의 길을 가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이 곧 원칙이다. 이 몇 가지 원칙을 잘 찾으면 너는 일을 할 때 어느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고 진리의 원칙대로 살아내게 된다. 그러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과 사람 사이에 처세 철학, 관념, 자신의 뜻과 욕망, 사심, 자신의 능력, 은사, 특기, 재간, 잔꾀와 머리에 의지해 어울린다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되지 못한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사람이 사탄의 패괴 성정 속에 살면서 일을 하면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최종의 결과는 어떤 것이겠느냐?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사람은 보잘것없는 재간과 잔꾀와 특기, 짧은 지식과 재능으로는 하나님 집에서 발휘하기가 매우 힘들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아주 어렵다. 발휘하기 매우 힘든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네가 언제나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을 파악하지 못하고, 일을 하는 원칙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본분의 원칙에 대해 늘 그 실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근원을 파악하지 못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모르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네가 그 실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본분하는 것이 실패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떨 때, 두 사람이 원칙적인 문제로 서로 다른 견해가 생기고 서로 다른 의견이 생기면서 논쟁이 붙었다고 하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문제는 자주 나타나지 않느냐? 이런 현상은 다 정상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각이나 소질이나 식견이나 연령이나 경험이 다 다른 데다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로 다른 의견이 생기고, 서로 다른 견해가 나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고 아주 평범한 일이므로 크게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그럼 관건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이런 일이 임하면 어떻게 협력해야 할까? 어떻게 찾고 구해야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되고 의견을 통일할 수 있을까? 의견을 통일하는 목표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모두 그 방면의 진리 원칙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네 뜻대로도 하지 말고 내 뜻대로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고 구해 보자.’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길이 아니냐? 이것이 곧 길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이 요구하는 원칙이 어떤 것인지를 찾고 구해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지 않고 네 쪽으로 치우치면 상대방이 싫어할 텐데, 하나가 될 수 있겠느냐? 또 상대방의 뜻대로 하면 네가 속이 불편하고 못마땅하고 완전히 간파할 수 없어 하며 마음에 걸려하면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적합한 건가?’라는 생각에 너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너는 승강이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할 것 같고, 승강이를 하자니 “이러면 자신을 과시하는 게 아닌가? 체면을 세우는 게 아닌가? 지위 다툼을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도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는데, 어떤 것이 원칙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기준인지를 찾고 구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이 요구하는 기준을 찾은 다음 상대와 교통하면 상대방도 들어보고 “그러네요, 제 것도 아직 좀 부족하네요.”라고 할 것이고, 너 또한 생각하다 보면 “내 방식도 별로야. 그래도 저 사람 것이 좋구나. 저 사람의 방식이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더 가까워! 그럼 됐어! 나도 뭐라고 할 것이 없어. 내 의견은 좀 치우치고 얕으니 내가 내려놔야지. 내 것을 포기하고 순복할 거야. 그래도 저 사람의 의견이 더 좋으니까, 저 사람 의견에다 좀 더 추가하고 조금만 바꾸면 대체적으로 괜찮을 것 같아. 이제 저 사람의 의견대로 하면서 앞으로도 저 사람에게서, 저 사람의 방법에서 뭘 좀 배워야겠어.’라고 하게 된다. 보아라, 이러면 너는 하나 더 얻게 되지 않느냐? 상대방이 하나를 내놓으면 네가 얻게 되지 않느냐? 그것도 다 된 것을 누리게 된다. 이런 걸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고 한다. 그럼 너는 더 얻게 된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해야 얻는다고 생각하느냐? 꼭 머리로 생각하다가 ‘맞아, 이건 성령의 깨우침이야.’라고 해야 더 얻는 것이겠느냐? 다른 사람이 의견이나 빛 비춤 받은 것을 너와 교통하거나 네가 그 사람의 원칙대로 실행하고 그렇게 했을 때, 네가 보고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으면, 얻게 되지 않느냐? 그것도 얻은 것이다. 형제자매들이 함께 협력하는 자체가 원래 절장보단(截長補短)의 과정이다. 너는 너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단점을 보완하고, 또 상대방은 상대방의 장점으로 너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절장보단이고, 조화로운 협력이다. 오직 조화롭게 협력해야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축복받을 수 있다. 그러면 갈수록 더 순조롭고 갈수록 환해지고 마음은 점점 더 평안해진다. 너는 계속 못마땅해하고 상대방이 하는 말에 늘 불복하고, 상대방은 상대방대로 네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또 너는 상대방의 체면을 봐주었는데, 상대방은 네 체면을 봐주지 않아 너는 속에 내려가지 않아 한다. 또 상대방이 한 마디를 했더니 너는 그 사람의 위신을 하나도 세워 주지 않았고, 그 사람은 그것을 속에다 두었다가 다음번에 너에게 그대로 앙갚음한다. 이것이 무엇이냐? 이런 걸 절장보단하고, 조화롭게 협력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싸우는 것이다. 혈기로, 패괴 성정으로 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다.

조화로운 협력이란 어떤 것일까? ‘너는 네가 할 것을 하고 나는 내가 할 것을 하며, 너는 네 것만 잘하면 되고 나는 내 것만 잘하면 돼, 둘 다 각자 할 것만 하자.’라는 생각으로 서로 호흡이 맞지 않고, 소통도 없고 교통도 없으며 어떠한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고 속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면서 ‘나도 본분을 하고 있고 너도 본분을 하고 있으니까, 너는 네 본분이나 하고 나는 내 본분이나 하면 돼. 네가 뭘 하든 나와 상관없고, 내가 뭘 해도 너와 상관없는 거야. 우리 서로 간섭하지도 말고 싸우지도 말면서 서로 방해하지 말고 서로에게 지장을 주지 말자.’라고 하면, 이것은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냐? 겉으로 보면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논쟁도 없고, 서로에게 아무런 의견이 없어 마치 서로 간섭하거나 구속하지 않고 서로 통제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마음속에는 조화로운 협력이 없고 서로 통하는 것이 없으며 서로 배려하는 것도 없다. 어디까지나 각자의 일을 위해 힘을 쓰고 각자 힘을 쓰는 것에 불과할 뿐, 어떠한 협력도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마치 누가 누구를 관리하지도 않고, 누가 누구에게 복종하지도 않고, 누가 누구를 지도하지 않고, 누가 누구의 조수가 된 것도 없어 보여 이성적인 것 같지만, 사람의 깊은 곳에는 패괴 성정이 하나 있다. 어떤 패괴 성정인지 아느냐? 이것은 간파 못하겠지? 저마다 앞다투어 선봉장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어떤 사랑도, 배려도, 도움도 없다. 여기에 조화로운 협력이 있느냐? (없습니다.) 협력이 없이 혼자 고군분투한다면 많은 일에서 원만하지 못하고 전면적이지 못하다. 사람의 이런 정형은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간혹 보면 이런 문제가 있는데, 왜 그러는지 생각해 보거라. 어떤 사람은 속으로 생각하고 일하기 좋아한다.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있다가 생각해 놓은 대로 일을 시작한다. 이렇게 그 사람이 일을 시작한 다음에야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는데,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우린 왜 몰랐지?”라고 한다.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난 책임자고 리더야, 너희들은 배우는 입장이지, 그러니까 너희들은 무조건 내가 하는 대로 따라오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다른 사람에게 한 마디도 알려 주지 않는데, 투명성이란 전혀 없고 늘 속으로 남몰래 힘을 쓰고 남몰래 일을 하는데, 큰 붉은 용처럼 늘 독재하고 혼자 다 휘두르려고 하며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들면서, 항상 다른 사람을 매우 하찮게 보고 매우 값없이 본다. 어떤 일이든 항상 자기가 결정하려고 하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도 없고 교류도 없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법이 없다. 이런 방식은 어떻느냐? 여기에 정상 인성이 있느냐? 이런 방식에 큰 붉은 용의 본성이 좀 있지 않느냐? (있습니다.) 큰 붉은 용의 어떤 본성이 있느냐? (독단전행입니다.) 보아라! 맞춰졌지? 너희들에게 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너희들은 스스로 의식하느냐? 만약 의식할 수 있다면 아직 가망이 있고, 의식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된다. 의식하지 못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는 예방 주사를 놓아야 한다. “난 이런 결점이 있으니까, 여러분에게 사전에 알리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하려고 할 때, 여러분은 불만을 갖지 말고 다들 좀 참으세요! 난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기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지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도 이 결점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극복하고 있으니까 여러분이 날 포용해 주길 바랍니다. 이런 일이 생겨도 여러분이 좀 참고 견디세요. 나도 천천히 고치고 있으니 여러분도 나한테 협조해 주면서 조화로운 협력을 이루도록 노력합시다.”라고 말한다면 어떻느냐?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좋지 않으냐? (그렇게 말하면 이지(理智)가 없습니다.) 왜 이지가 없다는 것이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감독해 달라고 하거나 ‘저에게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보여지면 형제자매님들이 제가 빨리 이런 문제를 고치고, 이 방면에서 변화받을 수 있도록, 지적해 주세요.’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사람은 어떻게 하였느냐?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패괴 성정에 협조하라고 했습니다. “난 이런 문제가 있으니 형제자매들이 좀 이해하세요.”라는 식으로 자신의 패괴 성정이 유로하는 것을 방임하면서 최대한 빨리 바로잡고 변화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이런 행태가 있다는 것은 진리를 실행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냐? 분명히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지 않고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협조하라고 하는 것은 무슨 행태냐?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행태가 좀 있지 않느냐? 위험해지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 길로 갈 수 있지 않느냐?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여전히 그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럼 이것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 사람이 형제자매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마음을 열어 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행실이냐? (아닙니다.)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순전히 기선 제압을 하는 것이고 통지하는 것이다! “알려 주는데, 난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웬만한 사람은 눈에 들지도 않고, 웬만한 일은 내 의사대로 가는 거야. 그러니 다른 사람은 나하고 의논할 생각도 하지 마. 의논할 생각이라면 저리 썩 꺼져, 난 의논할 것도 없어. 그래, 난 이런 결점이 있어. 나한테 맡겼으면 내가 결정한 대로 가야 하니까 누구도 나와 협력할 생각 하지 마. 나하고 협력하고 싶어도 넌 그럴 자격도 없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냐? 이것은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탄의 행태를 대표하는데, 단지 패괴 성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참으로 진리를 실행하려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에게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것이 하루 이틀에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진리를 찾고 구하려고 하고, 진리를 실행하려고 하면서 합당한 실행의 길을 찾아 자신의 그 결점이나 패괴 성정을 점차적으로 변화받고 점차적으로 벗어 버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먼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마음을 열어 자신에게 있는 그 방면의 패괴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게 첫째다. 어떻게 드러내야 하느냐? 태도와 정형은 어때야 하느냐? “난 성깔이 안 좋으니 적당히 건드리세요.”라고 하면 그것이 털어놓는 것일까? ‘집에서도 일반적으로 내가 하자는 대로 안 되면 될 때까지 난 끝장을 봐야 해요. 성깔이 이런 걸 어떡하겠어요? 여러분들이 이해하세요.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능력이 뛰어난 걸 어떡해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보통 한 성격 하거든요.’ 이런 태도로 하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보통 집에서도 내가 죽을 먹겠다고 하면 우리 엄마는 밥을 못 주고, 내가 속이 있는 찐빵을 먹겠다면 우리 엄마가 꽃빵을 못 줘요. 난 어릴 때부터 이런 성깔이었어요. 두 번 말하지 않아요! 난 완벽주의고 자아주의예요. 지금은 하나님을 믿다 보니 많이 좋아져서 웬만한 일은 참을 수 있고 견딜 수 있지만 그래도 완벽을 좋아해요.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안 돼요. 나한테선 절대 통과 못해요.” 이것이 털어놓는 것이냐? 이런 것을 뭘 한다고 하느냐? 이런 것은 자신을 과시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 주는 것이다. 그렇지? 일반적으로 망나니나 깡패들은 서로 만나면 뭐부터 하느냐? (거친 말부터 합니다.) 거친 말부터 한다. 그다음 윗옷을 벗는데, 뭘 드러내느냐? (근육을 드러냅니다.) 근육을 드러낸다. 그 뜻은 ‘봐봐, 내 양쪽 근육은 빵빵한 데다 움직이기까지 해. 어디 한번 쳐 봐!’라는 것인데, 쳐 보면 돌처럼 딱딱해서 도리어 멀리 튕겨나갈 것 같다. 그것은 ‘네가 날 건드릴 수 있겠어? 그럴 수 있다면 우리 한번 주먹을 겨루어 보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의 본색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몰골이다. 보아라! 털어놓는 것도 서로 다르다. 그 사람이 드러내는 것은 늘 타인을 위협하고 기선 제압하고 겁을 주며 다른 사람을 휘어잡으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사탄의 몰골이다! 그것은 정상 인성에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정상 인성에서 드러내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드러내는 것이고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일까? 어떤 어투와 어떤 태도로 어떤 말들을 해야 털어놓는 것이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사실 자신의 그 본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고 자기를 증오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 앞에서 드러내는 것도 그것으로 진리를 실행하려는 것인데, 자기 속에 있는 그런 패괴 성정을 하나님께서 혐오하신다는 것을 알고 또한 자신의 그런 추악상을 보고 나서 교통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 자신에게 미혹되지 않게 하고, 또한 형제자매들에게 사과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교통하고, 더 이상은 그것으로 살지 않으려는 모습, 진정으로 회개하려는 태도, 마음으로 매우 부끄러워하고 매우 괴로워하는 상태여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하고, 자기 모습을 드러낼 때에는 자신을 위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어떤 해명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정이 나쁜데도 그 사람은 항상 “저는 성격이 안 좋습니다.”라고 하는데, 그것은 변명이 아니냐? 성정이 나쁘면 그냥 성정이 나쁜 것이다. 이지 없는 일을 했거나 여러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을 했으면 그것은 성정과 인성의 문제다. 어떤 사람은 항상 “그 순간에 성격을 억제하지 못해서 화를 좀 많이 냈어요. 어제 고추를 좀 많이 먹었는지 오늘 화를 많이 냈네요. 미안하게 됐습니다.”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항상 문제를 실질로부터 인식하지 못한다. 문제를 실질로부터 인식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해부하는 것이 한 방면인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성실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진실한 태도로 자신이 인식한 자신의 성정 문제를 말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 방면은, 자신의 그 성정이 매우 심각하다고 느끼면 여러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 “제가 그런 잘못을 한다면 여러분들이 다 나서서 저를 책망하시고 일깨워 주세요. 심하게 해도 돼요. 제가 감당하지 못해도 무시하시고 다 같이 저를 감독해 주세요. 만약 제가 그 잘못을 저지르면, 제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형제자매님들이 어떠어떠한 말로 일러 주세요. 저는 진심으로 형제자매님들이 저를 감독하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심할 경우, 다 같이 일어나 저를 공격하고 책망해 주세요.” 이런 태도는 어떠냐? (좋습니다.) 이런 태도로 말한 다음 생각하다 보면 ‘만약 여러 사람이 모두 일어나 나 한 사람을 공격하면 어떡하지? 그건 사람을 괴롭히는 게 아닐까? 내가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려 온다. 너희들은 두려우냐? 이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런 뒷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 그런 다짐을 했고 그런 바람이 있는데, 형제자매들의 책망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느냐?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뜻은 무엇일까? 누구에게 다른 사람을 괴롭히라는 것이 아니라, 성정 변화를 위해서는 사람에게 먼저 어떤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를 갖춘 뒤에 적합한 실행 길을 찾아내야 하고, 그다음은 체면이나 얼굴이 깎이고 기분이 상하는 그런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체면의 그 관문을 통과하게 되면 그것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누구든 다 같다. “이번에는 내가 받고 다음에는 어느 형제(자매)가 받고, 우리 돌아가면서 받아요.” 교회에서 어떤 상태가 형성돼야 할까? 어떤 일이 있으면 일만 겨냥하고, 사람은 겨냥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다들 서로 얼굴을 붉히며 쟁론했지만 쟁론이 끝난 뒤에도 마음에 아무런 간격이 생기지 않는데, 다 성정 변화를 위해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니 원한도 없는 것이다. 모두 구원을 받고 있는 동안이기에 누구든 다 같다. 패괴 성정도 다 똑같으니 서로 따지지 말아야 한다. 어떤 말은 심했다 하더라도, 어떤 말은 좀 과했다 하더라도, 어떤 때에는 태도가 별로였을지라도 서로 따지지 마라.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고 아무리 납득이 되지 않을 때가 있더라도 마지막 하나가 더 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믿고 있고, 한 하나님을 따르고 있으니, 견해에서 어떤 차이가 있든, 의견이 어떻게 다르든, 서로 어떠한 장벽이 있든, 하나님 앞에서 우린 하나인 거야.”라고 해야 한다. 다음 하나님 앞에서 기도도 하고, 생각도 하다 보면 ‘저 사람이나 나나, 나나 저 사람이나 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데, 속에서 내려놓지 못할 게 뭐가 있겠어?’라고 하게 된다. 이렇게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내려놓을 수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저렇게 말했지만, 최종 목표는 뭘 위한 것이겠느냐? 목표는 바로 조화롭게 협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범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해 찾고 구하며,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원칙이 하나가 되고 목표가 하나가 되고, 일하는 마음가짐과 출발점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이 말로는 쉬워 보여도 실천하려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왜 그럴까?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고 사탄의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맞다, 그것이 근본 원인이다. 사람이 성깔이 있어서도 아니고, 성격이 달라서도 아니고, 연령대가 달라서도 아니고,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인 것도 아니라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근본 원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패괴 성정을 해결할 수 있느냐? (진리를 실행해야 합니다.) 다 진리를 실행하고 다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하면, 하나님 앞에서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고, 하나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목표여야 한다.

나는 너희가 갈수록 더 잘하고, 갈수록 진리를 더 깨닫고, 갈수록 진보가 있기를 바란다. 실패한 사람들의 교훈을 총결하고, 그리고 너희들이 같이 협력해 섬길 때에도 어떻게 하면 더 잘 협력하고, 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범사에서 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할 것인지를 총결지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임했을 때, 쟁론이 있었든, 매우 쉽게 매우 홀가분하게 조화롭게 되고, 통일되었든, 경력한 과정이야 어떠했든, 최종적으로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사람마다 그 일을 경력한 뒤에는 수확이 있고 진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긍정적인 것에서 알게 되었든, 부정적인 것에서 알게 되었든, 그 일을 경력한 뒤에 너희가 크게 한 걸음 나아가게 되고, 크게 한 걸음 발전하게 되면, 얼마나 좋으냐! 그러면 너희는 그 일을 헛되이 경력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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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이 좁은 사람은 발전성이 없다. 그러면 발전성이 없는 사람이 일을 해낼 수 있느냐? 본분을 잘할 수 있느냐? 누가 잘 해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괴롭고, 누가 자신보다 낫다는 말을 들으면 불쾌하고, 속박을 받고, 소극적이 된다. 이것은 다 분량이 너무나 작은 표현이다. 이방인들은 각 분야에서 경쟁을 하는데, 우리 여기에는 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 집에는 사람마다 다 기회가 있는데, 진리를 추구하고 참으로 믿으며 어떤 방면의 특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다 공평하게 대하고 그 누구에게도 차별 대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한다고 믿어야 하며,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재하실 것이고 어떤 사람이 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네가 노래를 잘한다고 하자, 그런데 누가 너를 배척한다면, 이것이 문제가 되겠느냐? (문제가 안 됩니다.) 왜 문제가 되지 않느냐? 이런 일이 이방인들에게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출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든든한 인맥을 찾는다. 무엇 때문일까? 그들이 어떤 사람에게 억눌린다면 아마도 영원히 일어서지 못하고 그 일생이 끝장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어떤 특기가 있어도 발휘할 수 없어 전망이 없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 집에는 이런 문제가 존재하겠느냐?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느냐? 너희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진실한 생각을 말해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상(異像) 방면에 있어, 너는 먼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사람을 차별하실 리가 없으며, 사람의 폐부를 감찰하시고 너의 진심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에게 이런 진심이 있는 데다가 네가 인재가 될 재목이고, 이 방면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방인들도 “금이라면 언젠가는 빛을 낸다”고 말하는데, 하나님 집에서 너희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거나 중임을 맡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지금 실제 상황이 이렇지 않으냐? 이것이 한 방면이다. 그 밖에 또 한 방면이 있는데, 큰 측면으로는 만사만물 가운데서 진입하고, 작은 측면으로는 네 주변의 환경과 인사물(人事物) 그리고 너에게 임하는 하나하나의 일과 날마다 발생하는 일에서 진입해야 한다. 이런 것은 다 유익한 것으로 너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인다’라는 말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너는 이 말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그런 환경은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것이라는 것을 믿고, 먼저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실행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인다’라는 말은 진리지만, 만일 실행할 줄 모른다면 이 말은 도리로 변하게 된다. 그러면 네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인다’라는 말 가운데서 어떻게 실행의 길과 실행 원칙을 찾아내야 하는지는 네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너를 툭 치고, 건드리고, 배척한다고, 방법을 생각해 그와 맞서고, 고집을 부리고, 그 사람과 겨루고, 다투고 싸우며, 마지막에 수단을 쓰고 본때를 보이며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그 사람을 패배시켜 수치를 당하게 하면 되겠느냐? 이것은 무엇이냐?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냐? 이것은 혈기를 부리고, 패괴 성정을 유로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고 간증이 없는 것으로 하나님을 크게 욕되게 하는 것이다! 네가 이방인들이 하는 대로 한다면, 그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그들이 그런 식으로 한다고, 그들의 됨됨이가 그렇다고, 그들의 처신 처사 방식이 범사에서 혈기로, 수법으로, 패괴 성정으로, 잔꾀로, 악하고 독하게 한다고 너도 그렇게 한다면, 너는 그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어떻게 해야 간증을 설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이것은 너희가 마땅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누가 너를 억압하고 불공평하게 대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먼저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고 찾고 구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오고, 혈기로 하지 말며,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사실, 많은 때에 이런 일들은 명백한데, 너는 곰곰이 생각한다. ‘만사만물은 다 하나님 손에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배정 가운데 있어. 난 이 일이 우연한 것이 아님을 믿어. 비록 그가 패괴 성정이 있어 지금 나를 괴롭히고 억누르며, 나를 우롱하거나 손 좀 보려고 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어. 이 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고 정확하게 대할 거야.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와 맞서지 않고, 상대하지 않을 거야. 그 사람한테 신경 쓰지 않고, 그와 똑같이 행동하지 않으며,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할 거야. 나에 대한 하나님의 훈계와 책망에 감사드려. 이런 환경을 마련해 주셔서 나의 패괴와 혈기를 책망하신 것에 감사해.’ 네가 이렇게 실행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사탄이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게 된다. 네가 만일 혈기로 하면 어떠하겠느냐? 만일 주먹으로 그와 맞서면 어떻게 되겠느냐? 작은 일이 큰일로 되고, 큰일이 나쁜 일로 된다. 왜 나쁜 일이라고 하느냐? 너는 크리스천 중의 일원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사탄이 너를 시험하여 혈기를 불러일으킬 때, 어떤 무기를 가지고 이 일을 대하겠느냐? 네가 진짜 칼과 총 그리고 패괴 성정을 가지고 그와 맞선다면 사탄은 기뻐할 것이다. 바로 네가 걸려들기를 바라고 있는데, 어리석게도 딱 걸려드니 사탄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사탄이 너의 마음을 차지하고 너희의 시간과 생각을 빼앗아 가 하나님 앞으로 올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너는 속으로 화가 잔뜩 나고 억울한 마음이 가득하며 불복으로 가득 차게 되는데, 그때면 진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혈기로 가득하여 폭발하기 직전이면, 사람들은 늘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다’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사람이 크게 화났을 때,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까지도 벗겨질 지경인데, 그런 것이 바로 혈기이다. 혈기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결과는 어떤 것이냐? 사탄의 올무에 빠지게 만든다. 무엇을 사탄의 올무라고 할까? 바로 마음이 그런 시시비비, 그런 일에 얽매인 것인데, ‘저 사람한테 어떻게 갚아 주지?’라고 생각하면서 낮에는 밥도 안 넘어가고, 밤에는 잠도 안 와 머리 속에는 온통 그런 일들로 가득 찬다. 늘 상대방이 너를 어떤 눈길로 봤는지 생각하고, 상대방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연구하다가 거꾸로 네가 어떻게 갚아 줄지를 생각한다. 사람의 기력이 다 해봤자 얼마나 되겠느냐? 그나마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려는 마음, 그 작은 심지(心志)와 소망마저도 그런 것들에 점유되면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와 있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 앞에 오려면 사람은 안정해야 한다. 안정된 마음, 경건한 마음, 성실한 마음, 진실한 마음, 순복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필요한데, 이런 마음이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올 수 없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너희가 그런 요구에 이르지 못하면 언제든지 사탄에게 끌려갈 수 있는데, 그러면 완전히 실패한 자가 되고 간증이 없게 된다. 그러면 가련하다! 그런 시시비비를 따지는 올무에 빠지면 삶이 힘들어지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오기도 힘겨워진다.

사람이 날마다 사는 것을 보면 본분도 하고, 찬양도 하고, 춤도 추고, 작곡도 하고, 글도 쓰고, 전도도 하는데, 하루 사이에 어떤 일에 부딪히게 될지 모른다. 그것은 미지수인데, 그렇다 해도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왜 그런 것일까? 우리에겐 하나님이 있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계셔서 의지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닥쳐도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우리에겐 의지할 곳이 있고 원동력이 있어, 의지할 데 없는 이방인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분주히 보내며 늘 어떤 일이 발생할까 봐 두려워하는데,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지, 소송이나 다툼에 휘말리지는 않을지, 직장 상사나 동료나 친척, 유용한 사람에게 밉보이지는 않을지, 어떤 재앙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등등…… 그들은 온종일 가슴을 졸이면서 이런 일들을 두려워한다. 왜 그럴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으니 그들은 매우 가련해 보이고, 의지할 곳도 기댈 곳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지고지상하신 분으로 우리의 주님이시고, 우리가 의지할 분이고, 기댈 수 있는 분이다. 우리는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미 원칙을 알려 주셨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는 광명이 있고 평안이 있다. 하지만 ‘난 예전에 닥쳤던 여러 가지 일에서 다 실패했어. 그래도 최근 1~2년 사이에 분량은 조금 자랐어, 본분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는 일은 있어도 이젠 실행법이 예전과 좀 달라졌잖아. 예전에는 늘 이유를 따지고, 체면을 세우려고 했으며, 위신을 챙기려고 하고, 늘 우세를 차지하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원하는 것이 달라졌잖아. 그런 것들을 원치 않고, 그런 것들이 중요치 않은 것 같아. 중요한 것은 뭐겠어? 일이 임했을 때,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와 있을 수 있으며, 평안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찾는 거야. 더 중요한 것은 경력하면서 진리를 얻는 거야.’ 이렇게 추구하고 진입해야 한다. 이것 보아라. 행복감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의가 더 뚜렷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협력하며 본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가장 중요한 것은 시시각각 하나님 앞에 와야 하는 것인데, 누가 건드리거나 속을 긁거나 누가 실수로 너희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지라도 다 정확하게 대하면서 짜증을 부리거나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리지 말고 제멋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면 본분을 갈수록 더 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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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④독단전행(獨斷專行): 자기 혼자만의 판단으로 제멋대로 행동함.

⑤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⑥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