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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편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너희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의 가련한 모습을 보았느냐? (지금은 좀 보았습니다.) 뭘 보았느냐? 말해 보거라. (사람은 진리를 모르면 자신을 우롱하며 살게 됩니다. 적어도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다른 방면은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도 없고, 어느 방면으로 깊이 진입해야 할지도 모르고, 일을 하거나 말을 해도 원칙이 없고, 천연적인 것이 너무 많고, 행하는 것이 다 진리와 무관합니다.)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해도 일은 해야 하는데, 무엇에 근거해 하느냐? 사람의 방법, 사람의 두뇌, 사람의 그 잘난 잔머리로 한다. 이런 것에 근거하여 일을 성사시키거나 잘하면 사람은 거들먹거리기 시작하고 밑천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사람은 그 일을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했는지 모르고 있다. 모르는 데다가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일에 잘 빠진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바로 이렇다. 일을 잘하면 거들먹거리기 시작하고 자랑하려고 한다. 이것을 이지(理智)가 없다고 한다. 일을 잘하지 못하면 외부에서 문제를 찾을 것이고, 소극적이 되거나 잠잠해질 것이다. 그러면서 ‘좀 조용히 있어야지. 이건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걸까?’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런 것이냐? 그 사람이 잘하든 못하든 유로한 것은 다 패괴 성정이고, 이지가 없는 것이고, 진리와 무관한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가련하다. 좋은 일을 좀 했다거나 옳은 일을 했다면, 그 사람은 거들먹거리면서 고참 티를 낸다. 잘못하여 훈계를 받으면 소처럼 떠받을 것이고, 외부에서 원인을 찾을 것이다. 이런저런 원망을 하는데, 환경이 나쁘다고 원망하고, 자신이 그 당시에 그 일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고 원망한다. 이렇게 외부에서만 원인을 찾으며 자신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진리 원칙을 파악하지 못했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본분을 해도 순복이 없고 충성을 다하거나 마음을 다했다고는 논할 수도 없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악을 멀리하는 것도 논할 수 없다. 계속 사람의 방법으로만 하고 또 하는데 끝까지 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보아라,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일을 제멋대로 하게 된다. 겉으로만 하거나 힘만 빼는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생명 성정에 변화가 있겠느냐? 그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겠느냐? 그 사람은 의지나 믿음 등 여러 면에서 자랐겠느냐? 변화가 있겠느냐?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가 전혀 없다. 하나님에 대한 순복에 진보가 있겠느냐? 역시 없다. 실제 진입이 없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모두 없다. 말하자면 생명 방면의 것은 자라지 않고 변하지 않은 반면에 교활하고 간사하게 변했고 더욱 교만방자해졌으며 사람의 약은 수가 많아졌다. ‘지난번에는 일을 그렇게 하는 바람에 손해를 봤어. 다음엔 이렇게 하면 손해 보지 않을 거야. 지난번에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일을 망쳤어. 다음에 다시 이런 일에 부딪히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좀 포장하거나 숨겨야겠어.’ 그 사람은 이런 처세 철학이나 사람의 약은 수법을 정리하면서 손자병법이나 처세 철학 그리고 어떤 사람의 약은 수를 따라 배우며 이런 것에만 공을 들인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의 이지가 갈수록 정상적일 수 있겠느냐? 사람은 갈수록 양심의 감각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겠느냐? 갈수록 하나님의 지위가 있게 될까? (하나님의 지위가 없습니다.) 행하는 것이 진리와 무관하고 하나님과 무관하면 문제가 된다! 분별할 줄 알겠지?

사람이 일을 할 때, 그것이 본분을 하는 것이든 아니면 자신의 사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이든 그 사람이 마음을 어느 방향으로 쓰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사람의 방법으로 노력한다면 그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인지,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득죄하지 않을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을지, 그렇게 하면 방해되지 않을지, 하나님을 슬프게 하지 않을지, 하나님이 증오하지 않을지, 그렇게 하면 이지가 있는지,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을지, 이렇게 하면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지, 그렇게 하는 것이 악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지, 하나님이 어떻게 볼지, 늘 이런 방면에서 생각한다. 너희들이 말해 보거라, 이렇게 실행하면 맞느냐? (맞습니다.) 이것은 어떤 표현이냐? 이것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표현이고,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다는 표현이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데, 일만 하고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불순물과 자신의 뜻이 특별히 많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뜻만 뒤섞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뒤섞을 때 마음속으로 전혀 성찰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 조금의 여지도 없이, 완고하게 자신의 뜻에 따라 하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하는데,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험하지 않으냐! 너희는 언제 잘못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될지 알고 있느냐? 그런 것은 장담하지 못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겉면의 성정이나 생활 그리고 됨됨이와 일을 처리함에 있어 어떤 특징이 있느냐? (제멋대로 행동하고 단속을 받지 않습니다.) 제멋대로 행동하고 제 뜻대로 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한다. 또 있느냐? (안하무인입니다.) 또 있느냐? (특별히 교만하고 방탕합니다.) 주로는 방탕하고 방종하며 마구 날뛰고, 일을 함에 있어 특별히 이성이 없고 생각나는 대로 해 버리는데, 안정되지 못하고 초조하다. 아무도 책망하거나 훈계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마구 날뛰다가도 누가 책망하고 훈계하면 어떤 표현이 있느냐? (소극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소극적이고 어떤 사람은 불복하거나 반항하며 소처럼 떠받는데, 마치 야생 동물 같다. 야생 동물인 얼룩말이 수레를 끄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본 적이 없겠지? 사람이 얼룩말을 타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얼룩말이 수레를 끌거나 사람을 태우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느냐? 사람이 다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얼룩말이 야외에서 풀을 뜯어 먹거나 뛰거나 장난하는 것을 보아라. 그것을 놀라게 하지 않는 상태에서 사람이 멀리서 구경하는 것은 괜찮다. 관상용으로는 괜찮지만 일을 시키지는 못한다. 사람이 얼룩말을 타거나 그것에게 수레를 끌게 하면 다치거나 차이게 될 것이다. 그 야성이 드러나게 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일을 하지 않거나 말을 하지 않을 때는 그래도 사람 모양이 있지만, 일단 일에 부딪힐 때 드러나게 되는 그 패괴 성정은 야만적이고 짐승의 본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부류의 사람을 어떻게 표현하였느냐? (“너희가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것은 부모에게서 벗어난 어린애의 장난기 같은 것이 아니라, 소나 말이 주인의 채찍질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폭발하는 짐승의 본성이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이 드러내는 성정은 짐승의 본성이고 정상 인성이 없다고 표현하였다. 사람들 가운데 이런 부류의 사람이 있으면 너희들은 분별할 수 있느냐?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과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는 사람은 여러 면에서 표현하는 것과 유로하는 것이 다르다.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는 사람의 뚜렷한 표현은 이성이 없고 양심이 없고, 일을 해도 진리 원칙이 없고, 허튼수작을 부리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간덩이가 부어 있는 것이다. 이러면 큰일이 아니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가련하기도 하고 가증스럽기도 하다. 그들은 추악한 몰골만 드러내기에, 보기만 해도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된다. 사람이 봐도 도움이 안 되는데, 하나님이 증오하지 않겠느냐? (증오합니다.) 그렇다면 그들 자신은 의식하고 있느냐? (만약 이런 상태라면 당연히 의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들을 가련하다고 말하겠느냐? 자신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고, 사람 모양조차 없는데도 괜찮다고 여기고 허튼수작을 부리고 있으니, 가련한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을 분별할 때 주로 진리를 추구하는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이것을 분별할 줄 알면 너희는 각 부류의 사람을 볼 줄 알게 될 것인데, 겉면의 성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너희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맞느냐? (이전에는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던 그 몇 해 동안, 너희에게 방금 내가 말한 그런 표현들이 있었느냐? (바로 그런 표현이었습니다.) 그런 표현이 있을 때, 그런 정형에서 살 때, 마음이 고통스럽지 않았느냐?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면 가련한 것이다. 너무나 가련하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 실제가 없는 것은 가장 가련한 일이고, 가장 슬픈 일이다. 진리를 지키고 항상 교통을 듣지만 자신이 얻지 못해 여전히 사탄의 결박 속에 살고 있으니 가련하지 않으냐? 일을 하거나 말을 해도 이성이 없어, 보기만 해도 사람이 아니다. 너무나 가련하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제는 의식하였느냐? (의식했습니다.) 의식했다면 좋은 일이다. 다만 감각이 없고 둔해서 의식하지 못할까 봐 염려될 뿐이다.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면 진리를 추구할 수 없다. 이것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의식했는데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까 봐 염려된다. 이것을 뭐라 하느냐?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범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범하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강퍅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강퍅하고 악독하며 진리를 싫어한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합할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냐? 그런 사람은 절대로 회개하지 않고, 절대로 하나님이 진리이고,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과 맞서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결말이 있겠느냐?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남겨 두지 않는다. 바로 이런 결말이다. 성경에 기재된 그 250명의 족장들은 강퍅한 사람들이 아니냐? 그들은 나중에 어떤 결말을 맞이했느냐? (땅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바로 그런 결말이다. 어떤 사람은 우매무지해서 하나님을 믿은 햇수가 길든 짧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므로 따라오는 가련한 모습과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너무 어리고 우매무지하고 아직도 노는 데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의 가련한 모습이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인데, 바로 효력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너희가 충성으로 본분을 할 수 있고 힘을 바르게 쓸 수 있고 악을 행하지 않고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아직 진리는 추구하지 않더라도 진심이 있고 충성으로 본분을 하고 힘을 쓰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중요성을 의식했고, 이미 이 방면의 진리와 이상(異像)을 알았는데도, 여전히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죽을병이다! 그래서 치료하기 힘들고 치료할 수 없다! 의식했는데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받을 수 없으면 결말은 정해졌다. 이렇게 되면 분류된 것이 아니냐?

※  ※  ※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이 책에서 무엇을 발표하였느냐? 어떤 내용이 있느냐? (진리와 생명입니다.) 맞다, 진리와 생명이다. 가장 주요한 것은 무엇이냐? 진리가 무엇인지는 사람이 듣기에 아주 추상적이다. 생명도 사람이 느낄 수 없으니 아주 추상적이다. 그럼 사람에게 가장 현실적인 것은 무엇이냐? 이 말씀은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이르는 길이다. 하나님이 발표한 말씀, 이 책에 수록된 말씀이 바로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므로 네가 이 말씀을 읽으면 구원받을 수 있고, 이 말씀을 얻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데, 사람에게 있어서 이것이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아니냐? 하나님이 육신에 와서 사람이 되고 사람에게 나타났는데, 사람은 무엇을 얻었느냐?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막연한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게 되었고, 모색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주 좋은 메시지이자 기쁜 소식이다. 그리고 사람이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어떻게 인류에게 발표하는지 모색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쉬워졌다. 사람이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기다림이 드디어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로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냐? 하나님이 말씀을 하여 너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직접 알려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바로 동쪽으로 가면 된다. 너는 ‘하나님이 나에게 동쪽으로 가라는 것일까, 서쪽으로 가라는 것일까?’라고 추측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이 하나의 메시지나 한 마디 말씀을 한평생 기다려도 자신이 행한 것이 맞는지 틀린지도 확정하지 못하고, 마음에 확신이 서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육신에 와서 사람에게 나타나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함으로, 인류가 막연한 가운데서 모색하던 시대를 끝마쳤다.” 여기서 너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알려 준다. 하나님이 왔고 네가 해야 할 것을 하나님이 직접 알려 주기에 너는 모색할 필요가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일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 말은 사람에게 두 가지 메시지, 즉 하나님이 성육신 되었다는 것과 인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하는 것을 알려 준다. 사람은 듣고 나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시니 사람에게 좋은 점이 이렇게 많은데, 하나님이 오시지 않았으면 어떨까?’라고 반성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오지 않았으면 너는 이 좋은 점을 얻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이 만약 오지 않고, 하늘에서 기침 소리를 한 번 내어 너에게 한 가지 뜻을 알려 준다면, 네가 듣고 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수 있겠느냐? (알지 못합니다.) 지금 이런 말을 하면, 어쩌면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나 혹은 이미 받아들인 너희들이 아직 이 몇 마디 말의 뜻과 목적을 음미해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가 오랫동안 보고, 오랫동안 들으면 무의식중에 네 마음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일깨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경력(역주: 체험)하는 과정에서 부지중에 “하나님이 오시니 정말 좋습니다. 하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디 가서 이런 일들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오시니 너무나 좋습니다! 하나님이 한 마디로 밝히시니 이 우둔한 머리가 단번에 트였고, 우리는 다 영적으로 변해 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시면, 사람은 다 목석과 같습니다.”라고 느낄 것이다. 보아라, 네가 부지중에 이 말의 참된 함의를 체득하게 된 것이다. ‘구원받는 길’이 사람에게 있어서 비교적 깊이가 있는 어휘일지라도 사람이 경력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진리인지 깨달아야 하며, 점차 이 말에 진입하고 체득하고 경력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이 부지중에 “일이 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못 살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행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중요합니다!”라고 느낄 것이다. 처음에는 원칙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어떤 때는 그 원칙에 맞지 않으니, 부지중에 ‘안 돼. 아무래도 진리에 공을 많이 들여 진리를 깨달아야겠어. 규례만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부지중에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일이 간단치 않고, 형식에 얽매이는 것이나 일종의 의식이 아니라, 여기에 찾고 구할 진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보아라, 네가 삶 속에서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그래도 꽤 충실하게 살고 있고 사람답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신이 사람답지 못하고 어떤 일을 해도 목표가 없으며, 마치 머리가 없는 파리처럼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방향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부지중에 이런 느낌이 들 때면 갈급하게 되어 ‘이렇게 살면 안 돼. 힘들어. 이렇게 살면 산송장 같아.’라고 할 것이다. 비록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름은 걸었지만, 진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너의 안은 여전히 공허하다. 이럴 때 너는 자신도 모르게 ‘에휴,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간단치 않구나. 정말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으면서 하나님 말씀 속에서 길을 찾아야겠어.’라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3년, 5년, 8년, 10년 경력하다 보면 너는 한 가지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슨 일을 하든 만약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앞길은 온통 칠흑 같고 행할 길이 없으며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어느 한 방면을 확실하게 이해하면, 그 방면을 자유자재로 실행할 수 있으며 정말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 일에서 헷갈리고 행할 길이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네가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살아가는 방향이고 사람 삶의 길이다.’라고 느끼지 않겠는가? 보아라, 여자나 남자는 다 30~40대가 되면 어떻게 살림을 하고,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아끼고, 어떻게 절약하고, 어떻게 계획해야 하는지 다 알게 된다. 여자는 빨래하고 밥하고, 부모와 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계획도 이상적으로 잘 세우게 된다. 남자는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집안을 지키고, 어떻게 집안을 일으키고, 어떻게 자식과 아내를 잘 먹이고 잘 입혀야 할지 알게 된다. 몇 년이 지나면 이런 일들에 대해 규칙과 경험을 정리해 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나서 ‘살림살이를 하는 경험들이 소용없구나! 내가 사회생활을 몇 년 하면서 성숙한 남자(성숙한 여자)가 된 줄 알았는데, 결국 하나님을 믿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 알고 보니 몇 년 동안 허송세월했어. 인생의 일에 대해 조금도 모르고, 심령의 일이나 사상적인 일은 조금도 모르니, 그동안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닌가?’라고 할 것이다. 부지중에 몇 년 경력하고 나면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견해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서의 하나님 말씀의 무게, 자신에 대한 하나님 말씀의 의의와 가치가 점점 다르게 느껴지게 된다. 점점 다르게 느껴지면, 이때 사람 안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필요와 요구가 조금씩 있게 되며, 하나님 말씀을 가져와서 좀 읽어 보고 생각해 보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안에 받아들이고 먹어서, 자신이 일을 하거나 사람답게 사는 방향과 목표로 되게 하려고 한다. 이러면 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이 사람이 구원받는 길임을 점점 더 깊이 체득하게 될 것이 아니냐? 너희는 이런 것들에 대해 지금 체득이 좀 있지 않으냐? 조금은 있지만 아직 깊지 않고, 그렇게 강렬하진 않다. 그렇지? (네.)

예를 들어, 너를 공기가 없는 곳에 놓아둔다면, 네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겠느냐?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냐?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살 수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이것은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너희들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한 것이냐? 살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았는데, 시험한 적이 있느냐? (숨을 조금만 참아도 힘듭니다.) 너는 이미 공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공기는 사람의 생존과 생명에 너무나 중요하기에 사람은 공기를 떠날 수 없다. 보아라. 풀이나 동물이나 식물은 다 공기를 떠날 수 없다. 그것은 네가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기가 없으면 온몸이 불편하여 금방 질식한다는 것을 너는 알게 된다. “사람은 공기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공기가 없는 곳에 보내려고 한다면, 뭐라 해도 가지 못하겠습니다.” “왜 가지 못하느냐?”라고 물으면 “죽기 때문입니다!”라고 할 것이다. 보아라, 너는 공기가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느 날에 하나님 말씀이 네가 살아가는 근본이고, 생존하는 기초이며, 구원받는 데에 있어서 유일하게 가장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될 때,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런 인식이 있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네가 구원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공기가 너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것과 같다. 그때 가서 만약 너에게 하나님 말씀을 주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읽지 못하게 한다면 너는 태도가 돌변하여 “그건 안 됩니다. 그러면 저는 죽을 것입니다.”라고 할 것이다. 마치 너에게 공기를 주지 않고 호흡하라고 하면 “그건 안 됩니다. 그러면 저는 죽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때가 되면 아마 하나님 말씀이 너의 실제가 되어 너는 떠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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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③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④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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