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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91편 여러 가지 환경을 경력할 줄 알면 생명이 자랄 수 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진리 실행에 관해 거론하면 사람은 본분이 없을 때, 늘 ‘이 진리를 어디에다 실행해야 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한다. 늘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느낌이 들고, 힘이 있어도 쓸 곳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너에게 임무를 좀 맡기고 본분을 좀 주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젊은 사람은 고생을 해야 하고, 나이 든 사람도 고생을 좀 해야 한다. 모두가 고생을 해야 하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힘들거나 배고프거나 옷이 더러워질 때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지금은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중국 대륙에 있을 때는 신발 한 켤레도 오랫동안 신어야 했다. 어떤 때는 어디에 갔다가 날씨가 바뀌게 되면 추위에 발이 얼 것만 같고, 감기에 걸려도 신발을 가지러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꾹 참아야 했다. 어떤 때는 예배드리다가 갑자기 안 좋은 환경이 닥치거나 특별한 상황이 생기면 그날 밤 바로 길을 떠나야 했는데, 새벽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가야 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가 그곳에 일이 생기면 또 떠나야 했는데, 예배도 드리지 못할뿐더러 엉덩이를 붙일 새도 없이 떠나야 했다. 그래도 뭐 별수 있겠느냐? 짐을 챙겨 들고 서둘러 떠나 다른 곳에 가 계속해서 예배드려야 했다. 대륙은 이런 환경이다. 지금은 너희가 외국에 있으니 환경이 많이 좋아지지 않았느냐? 다른 사람이 해 주는 밥을 먹고, 옷은 빨아 주는 사람이 없지만 여름옷은 빨기 쉬울 것이다. 몸에서 약간 냄새가 나도 참고 견뎌야 하고 이틀 후에 씻으면 된다. 본분을 하는 중요한 시기에 이런 고생은 극복해야 한다. 하나님이 역사하면서 사람을 이끌 때 사람은 곳곳에서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런 사소한 부분은 다 사람이 마땅히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환경이 다 너를 기쁘게 하고 마음을 든든하게 하거나 평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혹은 무엇이든 다 그렇게 규칙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늘 이런 것도 아니라 좋을 때도 있는데, 잘 먹고 편히 잘 자며 생활에서 뭐든지 다 규칙적일 때도 있는 것이다.

어떤 환경이든 다 경력(역주: 체험)해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젊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일을 처음 경력할 때, 고생을 좀 하면 눈물도 흘리고 억울해한다. 예전에 그런 고생을 할 때는 고통스럽다고 느꼈었지만 30~40살이 된 지금에 와 보니 그런 느낌이 없다. 그때는 여름철에 보름이나 한 달 정도 몸을 씻지 못하고 샤워할 곳도 없어 등에 땀띠가 많이 나서 가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언제면 땀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땀띠도 나지 않고 땀띠가 날 때의 그 느낌도 없고 괴롭지도 않다. 반대로 마음에 체험이 좀 더해져 사람이 고생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늘 편안하게 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런 환경을 안배해 주지 않는다면 고생하고 싶어도 고생할 수 없고, 구하고 싶어도 구해 오지 못한다. 그러니 너에게 그런 환경을 주면 피하지 말라. 사람은 반드시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순리에 맡기며 하나님이 배치한 모든 환경에 순복하고, 고생해야 할 때는 반드시 고생해야 한다. 좋은 환경과 좋은 조건이 있어도 우리는 정확히 대하고 정확히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집에서 살 여건이 되면 거기서 살면 된다. 우리는 촌놈도 아니니 정리할 줄도 알고 꾸밀 줄도 알고 관리할 줄도 알아야 한다. 흙집이나 초막에서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거기서 편안히 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잊지 말고 하나님 따르는 것을 잊지 말며 진리 추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활이 편안해져 하루 세끼 제시간에 먹고 그것도 맛있게 잘 먹으면서 날마다 편히 자고 아무런 박해도 없는데, 그렇다고 하나님을 잊으면 되겠느냐? 본분을 잊으면 되겠느냐? 그러면 양심이 없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 좋은 집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데, 뭐든 다 갖추어져 있다. 에어컨, 보일러도 설치되어 있어 잘 누리면서도 본분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편안하여 본분을 잊는다면 되겠느냐? 좋은 환경이든 나쁜 환경이든 다 하나님이 준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주재를 경력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러다가 30~40살이 되면 “10~20년 정도 고생도 해 봤고, 호의호식하며 좋은 날도 지내봤어요.”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고생하던 그때는 하루에 맹물과 장아찌에 *만터우로 때우고, 어떤 때는 하루 세끼를 한 끼로 때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떠냐? 너는 여전히 네가 아니냐? 팔다리가 없어졌느냐?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고 달라진 게 없다. 편안한 환경이 주어져 좋은 집에서 살고 하루 세끼 모두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살이 더 쪘느냐, 아니면 머리가 하나 더 생겼느냐? 여전히 너 자신이 아니냐? 여전히 너 자신인 것이다. 어떤 환경이든 다 경력하게 될 때 너는 ‘어떤 환경도 다 경력해 봤어. 이 인생 말이야, 물질적인 것은 원래 그런 거야. 그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사람의 심령에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거야.’라고 생각해 볼 것이다. 어쩌면 물질적으로 부족할 때 고통이 조금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주재라고 생각하면 사람은 마음에 만족을 느끼게 된다. 지금 물질적 조건이 아주 좋다고 한들 어떻단 말이냐? 여전히 하루 세끼 먹는 것이 아니냐? 잠을 편안하게 자고 여름에도 별로 더운 줄 모르고 겨울에도 별로 추운 줄 모르지만 병은 여전히 걸리지 않느냐? 나이가 들면 여전히 늙지 않느냐? 여전히 흰머리도 나지 않느냐? 이런 것은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이런 일에서 너는 무엇을 얻었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배치한 이 모든 환경은 아무 생각 없이 어디까지 인도하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어떤 특별한 환경을 배치해 준다. 너에게 가정과 생활 환경 그리고 성장 환경을 주고 혹은 너에게 하나님을 믿은 후에 본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주는데, 너에게 어떤 특별한 장소나 특별한 배경을 주어 경력하게 한다. 네가 각종 장소에서, 각종 배경에서, 각종 환경에서 경력할 줄 알게 되면, 설령 가장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쓰러지지 않고, 또한 가장 좋은 환경, 가장 편안한 환경, 시험이 매우 큰 상황에서도 유혹되지 않고 유인되지 않고 넘어지지 않게 되면, 너는 진보가 있고 분량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엄격히 말해서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적어도 환경에 좌우되지 않게 된다면 너는 기초가 있는 것이다. 이 기초는 어떻게 있게 된 것이냐? 그것은 네가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지난 세월 동안 진리를 어느 정도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말씀의 진실한 함의를 느끼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이 한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사람에게 이 한 해 한 해의 시간을 안배한 그 아름다운 뜻이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너는 심령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한 것이 너무나 좋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마 네가 깨닫지 못해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런 환경을 주셨을까?’ 혹은 ‘하나님께서 왜 내게 그런 시련을 주셨을까?’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령에서 하나님이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때면 너는 자신이 자랐고 더 이상 그 당시에 하나님이 너에게 시련을 주거나 고난의 환경을 주었을 때 마음이 괴로워 늘 반항하거나 거절하려는 그런 정서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네가 자라게 된 그때면 너는 그런 정서에서 점점 좋아져 환경에 적응할 수 있고 마음으로 순복할 수 있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그 정도의 감사만 있어도 너는 ‘하나님께서 나를 잘 대해 주셨어. 그때는 원망했었는데도 분량이 작다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않으셨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하나님의 보살핌과 인도였어.’라고 느껴질 것이다. 그때면 너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진실하고 더듬을 수 있는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자란 것이다. 네가 자랐으면 일을 맡을 수 있고 책임을 어느 정도 맡을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자라는 것은 좋은 일이고, 기초가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어떤 특별한 환경과 특별한 배경을 경력해야 한다. 그런 서로 다른 환경과 배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차츰차츰 경력하고 모색하면 궁극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으려는 마음과 하나님을 따르려는 마음이 점점 확고해질 수 있어 절대 지금의 이런 분량이 아닐 것이다. 지금 어떤 때는 ‘내 동창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더니 CEO(최고경영자)가 됐어. 정말 멋져. 나중에 걔를 만나게 되면 얼마나 체면이 구겨지겠어. 내가 하나님을 믿어서 그렇지, 믿지 않았더라면 걔하고 막상막하로 비슷할 거야.’라고 궁리한다. 가끔씩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지만, 분량이 자랐을 때는 이런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 지금 너희가 분량이 작아 이런 생각이 있는 것은 정상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통스러워 수도승과 같은 느낌이 들어 늘 규제하고 단속하고 억제하고 극복해야 하므로 이런 생활이 좀 고생스럽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분량이 아직 너무 작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세상에 대해 아직 꿰뚫어 보지 못했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것을 포기하지 못했고 아직도 미련을 두고 있어 좋아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은 분량이 작은 표현이다. 분량이 작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확고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려는 심지(心志)가 확고하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매우 작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매우 작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나님에 대한 확신, 하나님이 한 말씀과 하나님이 너에게 준 약속과 구원받는 일에 대한 확신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네 마음에 아직도 그런 생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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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터우: 속 없는 찐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