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제88편 진리를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매우 의의 있다

젊은 사람들이 사업을 좀 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대부분이 지긋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마음이 평온해야 하고, 지긋하게 앉아 있을 줄 알아야 하고, 시간을 투자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장난을 치든, 시시덕거리며 연애를 하든 ‘난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고, 그럴 시간도 없어. 난 내가 할 일도 바빠, 시간이 없어. 너희는 너희대로 장난을 치든 말든 난 그럴 시간이 없어. 난 내가 할 일을 잘해야 돼.’라고 하면서 집중해서 하고 끈기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사실 지금 너희는 에너지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업무 능력을 높이려면 자료를 찾아보면 된다. 더구나 너희는 그런 기초가 있고, 그런 머리도 있으며, 그런 특기도 있다. 그런데 노력을 들이는 것만 부족하다. 사실은 그것이 문제이다. 젊은 사람들을 보면 업무를 배우고 기술을 익힌 다음 어른들보다 쉽게 성공하지 않더냐? 각국에서 대통령을 선거할 때, 20~30대가 당선되는 경우가 있느냐? (없습니다.) 왜 그럴까? 여러 방면에서 자격과 체험이 다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경험이 부족하고, 생각이 성숙되지 않아서 일들을 전면적으로 보지 못한다. 또 담력이나 식견이나 지혜, 능력 등 여러 방면에서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 그 밖에 관건적인 원인이 하나 더 있다. 젊기 때문에 많은 일에서 쉽게 충동적이다. 그리고 젊기 때문에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해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고, 식견이 없다. 그러므로 많은 일들이 다 시험과 유혹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젊은 사람들이 일을 성공시키기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을 배웠든, 무엇을 전공했든 좋은 일이나 큰일을 하나 이루고, 일을 성공시켜 업적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시험이 너무나 크다. 일반적으로 50~60세, 70~80세 정도의 사람들은 세상의 일들을 거의 다 경험해 봤기 때문에 세계관이 기본적으로 다 자리 잡혀 있다. 결혼, 실패나 좌절, 여러 가지 시험, 유혹, 이러한 외부적인 일들을 다 경험해 보았고 거기에서 벗어났다. 너희처럼 20살 정도의 나이에는 외부의 많은 일들이 아직 수수께끼이다. 어떤 것이든 다 시도해 보고 싶어 하고, 어떤 일이든 다 새롭게 느껴지고 호기심을 가진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하다 보면 바깥의 화려한 세상이 그렇게 나쁘지 않고, 또 그렇게 엉망은 아닌 것 같다. 특히 그 나이에 이러한 사회 환경 속에서 보고 듣는 것에 대해 정확한 분별이 없다 보니 어떤 일이 자신에게 시험이 되는지, 어떤 일이 자신에게 화가 되고 유혹이 되는지 모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모른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은 어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나약하고 위험하다. 그 나이에는 머리로 알고 있는 일, 마음으로 간파하고, 마음에 채우고 있는 일들,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에게는 다 미지수이고 다 생소하기 때문에 많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아무리 해도 간파할 수 없으며, 경험한 것이 없고 본 것이 없으면 그 속의 내막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절대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일반적인 환경에서 본분을 한다면 굳게 서기가 쉽지 않다. 만약 교회에서, 진리가 있는 이 환경에서 몇 년 정도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면, 적어도 8~10년 정도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면, 너는 마음이 안정적이 되고, 하나님 집에 뿌리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도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큰 문젯거리이고, 매우 위험하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하는 것은 인생의 바른길로, 옳은 선택을 한 것이고, 하나님의 은총이다. 사람에게 이렇게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너희처럼 아주 젊은 나이에, ‘꽃다운 나이’에 본분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고, 너희 또한 협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조심하지 않아 어떤 사소한 일에 좌우되고 거기에 묶여서 본분을 계속하지 못할 정도로 영향받거나 혹은 본분에 방해받을 수도 있고, 심지어 본분을 중단하게 된다면, 그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아주 가엾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너희는 평소에 항상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자신과 무관하고 지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그런 문제들은 우선 생각하지 말라. 그 방면에서 우선 신경을 끄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젊으니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라. 인생에서 큰일은 결혼만이 아니고, 직업이나 앞날만이 아니고, 걱정 없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또 사회에서 빨리 자신의 위치를 찾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겠느냐? 과거에는 관혼상제를 다 큰일이라고 했었지만, 지금 보면 그런 일들이 가장 큰 일이 맞느냐? (아닙니다.) 무엇이 가장 큰 일이냐? (우선 하나님이 저에게 맡겨 주신 것을 잘하고,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과 기능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히 가져야 할 심지(心志)이다. 그렇지? 지금 너희는 하나님을 믿고 있고, 본분도 하고 있고, 인생 방향의 출발점도 옳은 것이다. 이것은 틀리지 않았고 정확하다. 그다음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느냐? (생명 진입의 길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했다.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확정하여 진리가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면, 너는 참으로 하나님이 택하고 예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선 뿌리를 내려야 한다. 지금 너희는 뿌리가 아직 튼튼하지 못하다. 큰 바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바람이 불어도 너희는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면 아직 뿌리가 없기에 아주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의 목표를 확립하고, 자신의 추구 방향도 확립하고, 평생 가야 할 길도 확립하고, 다 확정해야 한다. 이런 목표와 인생의 큰일을 다 확정한 다음, 앞으로 몇 년 동안에는 마음을 안정시켜 이 한 가지를 위해, 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고 공을 들이고 대가를 치르면서 다른 일에는 먼저 신경 쓰지 말라. 왜 신경 쓰지 말아야 할까? 네가 만약 그런 일까지 신경 쓴다면 이 일은 주가 아니라 부차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네가 직장을 구하고, 큰돈을 벌고, 부자가 되는 것에 신경 쓰고, 사회에서 기반을 다지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에 신경 쓰고, 또 결혼하거나 배우자를 찾는 것에 신경 쓴다면, 큰일이 몇 개나 되느냐? 그리고 또 앞으로 능력과 실력을 쌓아서 뛰어난 사람, 능력자가 되는 것에 신경 쓰고, 앞으로 또 가족을 부양하고, 부모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이것 보아라, 힘들지 않겠느냐? 욕심이 너무 크지 않으냐? 사람이 평생 동안 에너지가 얼마나 되느냐? 기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는 몇 년이나 되겠느냐? 모두 몇 년이나 되느냐? 사람이 평생 동안 기력이 가장 왕성하고 가장 순수하며 또한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20살가량이고 기껏해야 40살까지이다. 너희는 지금 다 20살가량 되지 않느냐? (맞습니다.) 20살 아래가 있느냐? (없습니다.) 다들 이젠 어리지 않다. 기껏해야 40살인데, 가장 좋은 시절이 바로 이 기간이다. 만약 이 기간에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알아야 할 진리를 다 장악하고, 그다음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시련, 연단을 받아들인다면 어느 정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난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아.’라고 할 정도가 되는데,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누가 날 잡아당기고 끌어당긴다 해도, 혹은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거나 결혼 상대를 찾았다 해도 피조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내 본분을 포기하면 안 돼.’라고 하는 정도가 된다. 또 다른 하나는 ‘앞으로 하나님이 나를 버린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진리를 추구할 것이고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추구할 거야.’라고 하는 정도가 된다. 너희는 이 방면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 방면에서 노력하면 너는 이 몇 년을 헛되이 살지 않게 된다.

만약 앞으로 몇 년 동안, 즉 10년의 시간을, 네가 이 가장 좋은 시절을 좋은 직장을 찾아 사회에서 기반을 다지는 것에 허비하고, 또 좋은 결혼 상대를 찾을 궁리를 하면서 누가 자신과 마음이 비교적 잘 맞는지, 누가 비교적 자기 눈에 차는지, 누가 자기한테 관심을 보이는지 살피고, 그런 사람을 물색해서 사귀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고, 사귀면서 본분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두 가지 다 지체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결국 이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하나님을 믿고 얻는 것이 조금도 없을 것이다. 상대를 찾아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을 것이다. 가정을 꾸려 독립은 하겠지만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고 가장 좋은 시절을 놓쳐 버리게 될 것이다. 네가 40이 되면, 집도 있고 자녀도 있어서 고독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굴레를 쓰게 되는 것이다. 어떤 굴레일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굴레이다! 네가 지금은 입이 하나고, 너를 부양해 주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 집에서 너를 부양해 주고 있으니 너는 아무 근심도 없이 오직 본분을 잘하고 진리를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면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겠지? 네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해 주겠느냐? 부모에게 해 달라고 하겠느냐? 그럴 수는 없지 않느냐? 너는 또 자신까지 책임져야 한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 같으냐? 두 사람이 서로 너 좋고 나 좋고 하면서 침대 하나, 테이블 하나, 주방 하나 있으면 살림이 척척 되는 것일까?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아내를 얻으면 “남들은 귀금속을 두르고 다니는데, 우리도 사야지, 장만하자!”라고 하게 되고, 남편을 얻으면 “남들이 차를 사는데, 우리도 한 대 사자. 대출받자!”라고 하게 된다. 대출받는 순간 끝났다. 차의 노예가 돼 버린다. 그 ‘작은 덫’에 걸려들었고 굴레가 씌워졌다. ‘행복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행복한 나날이 맞느냐? 어떨 땐 속으로 걱정하기도 한다. 하나님도 믿고 싶고 또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리에 열심히 공을 들여 제대로 깨닫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연애만 하고 쓸데없는 짓만 하느라 여러 해가 지나도 깨닫지 못하고 그럴 여력도 없다. 그럴 여력이 좀 있으면 아내가 바가지 긁는다. “나가서 돈이나 벌어 와요! 그 누구누구 좀 봐요! 머리 한 번 하는 데 4~5백 위안씩 쓴단 말이에요. 근데 나 봐요, 날마다 산발머리라 사람 꼴이 아니에요! 완전히 삶에 찌든 아줌마 다 되게 생겼어요! 당신한테 시집온 거 정말 재수 없어요!”라고 바가지 긁는다. 지난날의 달콤했던 감언이설은 전혀 없다. 네가 기도도 좀 하고, 조용하게 혼자 찬양도 좀 배우면서 자신의 영적 정형에 충실감을 좀 채워 보려고 하는데, 아이가 다가온다. “아빠, 다른 애들은 댄스 학원 다니는데, 한 달에 2,000위안이래. 나도 배우고 싶어. 나, 이렇게 예쁘게 생겼는데, 춤도 못 배우면 이 미모가 아깝지 않겠어?”라고 한다. 애가 이렇게 말을 꺼내니 그럼 등록하러 가자고 한다. 등록하려고 하니 한 달에 2,000위안인데, 주머니를 털어도 200위안밖에 없다. 그걸로는 예약금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럼 부족한 1,800위안은 어떻게 해야 할까? 벌어야 한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의논하면서 “등록해 줘야지, 그것도 못하면 우리가 자식한테 미안하잖아. 애한테 이런 특기가 있는데, 기죽이지 말아야지. 어른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도 괜찮지만 자식은 그러면 안 되지.”라고 한다. 그러자 “그럼 나가서 돈 벌어 와요!” “돈 벌어 오라고? 어디 가서 벌어?” 또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는다. “아휴, 찌질이! 1,800위안도 못 구해요? 훔쳐서라도 와요! 은행이라도 털든가!” 그럴 담력이 있느냐? 은행을 털려는 마음도 생기는데 하나님을 믿을 마음이 있겠느냐? 눈물 흘릴 일만 남았다. 그렇지? 그때가 되면 훌쩍거리면서 ‘에휴, 그때를 돌이켜 보면 젊었고 모든 게 다 엄청 쉬웠지. 그때 그렇게 많은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 생활 하고 본분하며, 같이 찬양하고 예배드렸었는데, 그때가 얼마나 좋았던가!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라고 한다. 아쉽게도 세상에는 후회약을 파는 곳이 없다. 아쉽게도 그 누구의 시간도 거꾸로 흐르지 않고, 거꾸로 돌릴 수 없다. CD, DVD 같은 것은 거꾸로 돌릴 수 있지만 이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인생은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지 못한다. 딱 한 번뿐이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흐리멍덩하게 있고, 종일 꿈만 꾸고 있다! 무슨 꿈을 꿀까? “아직 시간 많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거 다 정상적으로 하면 돼! 나 하나 부족한 건 아니잖아.”라고 한다. 맞다, 너 하나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면 딱 한 사람만 구원하고 다른 사람은 다 훼멸해 버릴 때도 있다. 사역을 끝내야 할 때 그 한 사람만 남았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만 데려가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은 내버려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지만 사람은 분간하지 못하고 간파하지 못한다. 노아 때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노아가 방주를 100년 넘게 지었지만 그 100년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다 회개하는 법을 몰랐다. 나중에 하나님은 노아 일가 여덟 식구만 구원했다. 그 여덟 사람이 방주에 오른 다음 나머지 사람들을 다 어떻게 했느냐? (전부 멸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하는 인류는 하나님의 눈에서 빈대이고 개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긍휼과 자비와 관용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끝마칠 때에는 그런 관용은 하나님이 거두어 가고 없다. 오직 진노와 위엄만 남는다. 지금 이 시기를 보아라, 너희가 맞이한 이 시기는 사실 아주 좋은 시기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역이 가장 관건적인 때에 너희가 때마침 이 나이가 되었고 좋은 시기를 만나게 되었으며 다 본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분야를 배웠든, 어떤 것을 알고 있든, 어떤 특기가 있든, 결론적으로 자신의 그 특기에 따라 특별한 곳에 와서 본분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또한 사람이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기회이기도 하다. 이것이 한 방면이다. 또 다른 방면이 있다. 바깥 세상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아라. 지금은 30, 40이 되어도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그래도 비웃는 사람이 없다. 노총각, 노처녀가 넘쳐나지만 비웃는 사람이 없다. 서방에는 홀아비, 과부, 독신이 많고도 많다. 예를 들어, 서류를 작성할 때 혼인란에 ‘싱글’이라고 쓰면 아주 부러워하기도 한다. 혹은 ‘이혼’이라고 쓰면 ‘아, 결혼했다가 이혼했구나. 독신이네, 홀로 지내는구나.’라고 한다. 비웃는 사람도 없고, 다 정상적인 상황이다. 그러니 너희는 이 방면에서 ‘난 이 나이가 먹도록 아직 장가(시집)도 못 가고, 정말 못났어. 사람들이 날 비웃을 거야.’라면서 멍에에 메이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지난 세대, 20년 전에는 사람들이 다 이런 걱정을 했다. 하나님을 믿으며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이웃이 죽도록 비웃을 것이고, 익사할 정도로 침을 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느냐? 지금은 기본적으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어떤 사람의 걱정은 개인적인 문제이고 혼자 급해하는 것이지 사실 사회적으로 압력을 받거나 사회적으로 어떤 소리를 들어서 하는 걱정이 아니다.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자유로운 일이다. 요즘 전문직 여성들을 보면 40이 넘어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독신이 수두룩하다. 남성도 마찬가지이다. 40이 넘어서 갓 여자친구를 사귀거나 사업이 이제 마무리되거나 혹은 자리를 잡으면 그제야 결혼 상대를 찾는 일도 수두룩하다. 그러니 대부분 20살 정도에는 아직 그런 걸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정상이지 변태가 아니기 때문에 심리적 압박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이런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와 배경이 있으니 마침 너희는 그런 것에 영향받을 필요도 없고, 한 방면의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이런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으니, 너희는 본연의 일을 먼저 착실하게 해결하면 된다.

지금 너희에게 먹을 것이 부족하냐? (부족하지 않습니다.) 입을 것이 부족하냐? (부족하지 않습니다.) 용돈이 부족하냐?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일상생활 방면에서는 별로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부담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너희들 가운데 결혼한 사람이 있느냐? 아직도 사귀면서 헤어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자녀가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담이 더욱 없다. 친구도 사귀지 않았는데 아이가 어디 있겠느냐. 그렇지? 부모는 말할 필요 없다, 다 있다. 그저 어떤 사람은 홀어머니일 뿐이다. 어찌 됐든 부모는 다 있다. 너희가 부모를 책임질 필요가 있느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20살 정도면 부모가 기껏해야 50세 정도다. 50세 정도면 몸이 좀 허약하다 해도 기본적으로는 혼자 생활할 수 있다. 너희들이 걱정하고 돌볼 필요가 없다. 너희같이 20살 정도의 아이들이 부모를 뭐 어떻게 보살펴 주겠느냐? 너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너희는 부모를 보살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부모가 감기에 걸렸을 때 물이나 떠다 주면 끝이다. 죽을 끓이려고 해도 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마 어떤 사람은 부지런해서 일찍이 밥하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가 너의 덕을 본다고 할 수는 없다. 너희는 기본적으로 별로 부담이 없으며 홀가분한 몸이다. 그렇지? (맞습니다.) 그 나이에 이런 환경에 있고, 그런 가정 환경이 있다면, 정말 홀가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가장 큰 은총이다! 너희에게 이렇게 좋은 조건을 준 것이 가장 큰 은총이다. 너희에게 이렇게 좋은 길을 열어 주어서 너희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다 갖추었으니 별로 부담이 없다. 결혼 상황에서는 싱글이지, 직업은 본분을 정규직으로 하고 있지, 외모도 다 좋은 편이지, 아이큐도 다 중급 이상이라 멍청하지도 않지, 학력은 고졸 이상이다. 다들 이렇지 않으냐? 초등학교 학력이 있느냐? 소를 모느라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없다. 특별하게 외진 시골, 산동(山東) 기몽(沂蒙)산 일대 같은 곳이 아니면 지금 시대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 다 외동인데 누가 자식이 좋은 직업, 좋은 앞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찍 공부시키려고 하지 않겠느냐? 그다음 건강 상태를 보자, 장애인이 있느냐? 몸이 허약하고 잔병이 많은 사람이 있느냐? 더더욱 없다, 그렇지? 너희는 이 여러 가지 상황이 다 아주 좋다! 사람들 가운데서 너희의 이런 조건은 매우 우월한 셈이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을 것도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지금 본분을 하고 있으니 특히 부모가 다 믿는 집이면 맛있는 것이 먹고 싶다고 하거나 돈이 얼마 필요하다고 손을 내밀면 혹시라도 늦게 주면 싫다고 할까 봐 바로바로 준다. 그러면서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아유, 우리 자식이 바른길을 가고 있는데 빨리 줘야지. 지지해 줘야지, 온 힘을 다해 지지해야지!”라고 한다. 너희에게는 조금도 엄격하지 않고,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너희를 막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소수는 한쪽 부모만 믿어서 어려움이 좀 있다. 그렇지? 그래도 그건 극복하기 어렵지 않다. 네가 여기에서 눈을 딱 감고 부모를 생각하지 않으면, 부모와 관련된 일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부모도 너를 관여할 수 없고 너와 상관도 없다. 너를 찾아오면 “돌아가세요. 또 찾아오면 연을 끊을 거예요!”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연을 끊는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야.’라고 하면서 얼른 돌아간다. 조건이 다 괜찮은 편이다. 다른 하나, 너희는 진리를 깨닫는 부분에서 어떠하냐? 어려움이 있느냐? 예배 때 들어도 “왜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겠지? 왜 아무리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느냐? 이런 경우가 있느냐? (없습니다.) 설교 교통을 듣거나 예배를 해도 다 따라갈 수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그러면 됐다. 우리 모두 이곳에서 본분을 하고 있는데, 이런 환경과 이런 본분이 너희의 체력으로 감당이 되느냐? (됩니다, 괜찮습니다.) 어려움이 없다. 그렇지? (네.) 거의 어려움이 없다. 뒤에서 잡아끄는 사람도 없고 앞에서 가로막는 사람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 조건이냐. 온갖 좋은 일은 다 너희에게 생겼다. 하나님을 20년 넘게 믿어 오면서 이제는 40~50세가 된 사람들은 너희를 보면 심통이 날 것이다. 왜 심통이 날까? 질투하면 그만이지 심통은 왜 날까? ‘너희 꼬맹이들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자랐지, 집에서 뒷바라지해 줘서 대학도 다녔지, 또 재능을 키워 노래 부를 줄 아는 사람도 있고 춤출 줄 아는 사람도 있지, 사회에서 억울함을 당해 본 적도 없이 바로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하지. 또 너희는 하나님 집에서도 환대해 주지, 오자마자 교통 듣지, 거기다 보통 너희에게는 다 관대하지. 너희가 아직 어리고, 젊고, 나약하고, 여리다고 일반적으로 훈계하지 않고 최대한 체면을 봐 주지. 어떤 일이든 다 녹색 신호등이고 달래 줄 때가 더 많지. 복이란 복은 다 너희가 누리게 되는구나!’라고 한다. 그래서 심통이 난 것이다. ‘우리가 중국에서 믿던 그 시절 좀 봐봐, 우리는 하나님을 20년 믿고 나서야 이렇게 좋은 시절을 만났는데, 너희는 믿자마자 적절한 나이에 이런 시절을 만났으니 지금 너희들이 누리는 복이 얼마나 크냐!’라고 한다. 그 세대들은 중국에서 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 너희가 고난받으면 얼마나 받았느냐? 어떤 사람은 지하실에 한번 들어가면 몇 개월 동안 살아야 했다. 밥은 위에서 다른 사람이 내려보내 주었고, 또 오랫동안 햇빛도 보지 못하다 보니 햇빛을 보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였다. 방 안에서 먹고 싸면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떤 섬김의 집은 가족이 다 믿는 것도 아니라서 계속 눈총을 주면서 쫓아낸다. 쫓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참고 견뎌야만 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큰 고난을 받았다. 너희는 그런 고통을 받아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심통이 난 것이다! 심통이 나는 것도 정상이다. 그 사람들이 질투를 해도 괜찮다. 우리가 그런 고난을 못 받아 본 탓이지 뭐! 이런 것은 다 작은 일이다. 사람이 무엇을 제대로 보는 것이 관건이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 이런 복을 누리게 해 주는 것은 육체를 만족시키라는 것이 아니고 안일함 속에 있으면서 발전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어떤 길을 열어 주든, 어떻게 은총을 베풀어 주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네가 성장하기에 적절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진리를 깨달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진리가 네 안에 자리 잡아 너의 생명이 되고, 네가 하나님을 자신의 친부모로 여기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고, 나이는 어려도 심지가 작지 않고 생명도 어리지 않고 열정이 대단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대단하다면, 그럼 됐다. 하나님은 만족스러워한다. 하나님은 ‘너에게 은총을 헛되이 베풀지 않았구나. 내가 수확을 얻었구나, 네 몸에서 성과를 얻고 결실을 보게 됐구나. 내가 대가를 헛되이 지불하지 않았구나.’라고 한다. 하나님은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사람이 선택할 일이냐?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치른 대가를 보아라, 그게 어찌 네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그 20년뿐이겠느냐? 그 20년만이 아니다. 네 자신은 모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너는 이 인간 세상에 몇 번이나 왔다 갔는지,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났는지 모른다. 이런 것은 누가 주관하느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관한다. 네가 무엇을 알겠느냐? 너는 모르겠지만, 네가 한 번씩 올 때마다 하나님이 친히 안배해 준다. 너의 그 일생이 몇 년이 될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언제 가정을 이뤄 독립할지, 이 세상에서 네가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네가 무엇으로 먹고 살지를 안배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네가 일생 동안 너의 사명을 순조롭게 끝마치고 완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길을 열어 준다. 그다음에 네가 다시 와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너에게 있어야 할 것과 너에게 주어야 할 것으로 그 일생을 안배하고 실현시켜 준다. 그다음에도 그렇게… 수없이 안배해서 너를 말세의 이 시대에 태어나게 하고,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게 한 것이다. 태어나게 해서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게 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준 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지금까지 살아오게 된 것이다. 몇 세대가 흘렀는지 모르고, 네가 얼마나 많이 왔다 갔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손이 계속 너를 받쳐 주고 있었고, 하나님이 계속 너를 보살펴 주고 있었다. 너의 외모는 몇 번이나 변했는지 모르고, 가정을 몇 개나 거쳤는지 모른다. 또 네가 얼마나 많은 시대와 왕조를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느냐! 어떤 사람은 “난 60이야! 하나님께서 60년 동안 나한테 공을 들이셨어! 60년 동안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셨어. 내 운명을 60년 동안 주재하셨어.”라고 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말이 아니냐? 한평생 동안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한평생만 해 준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닐 것이고, 하나님이 그런 권병(역주: 권세)과 능력을 구비하지 않은 것인데, 그럼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고 모든 것을 주재한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쏟은 노력과 치른 대가는 단지 네가 이 일생 동안 어떠어떠한 일을 할 수 있을지만 안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일을 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대가로 일을 하면서 그것으로 각 사람을 인도하고, 각 사람의 일생을 안배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렇게 노력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고, 또 모든 진리와 생명을 베풀어 주었는데도 사람이 만약 이 마지막 시간에 피조물의 본분을 하지 않고, 창조주의 앞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람이 몇 세대를 지나왔든, 그것은 사람이 손해 보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치른 대가를 헛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치른 대가를 너무 헛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생에, 전의 것은 말하지 않고 이 일생에 자신의 사명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나 몸 이외의 것들을 버리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하나님이 너에게 치른 대가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물질적인 누림이나 가족의 단란함 같은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별로 좋은 물건이 아니다! 사실 네가 어떤 대가를 치르든 다 가치가 있다. 하나님이 너에게 치른 대가에 비하면 네가 조금 바치고 조금 헌신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정도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 아느냐? 사람이 고생을 조금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 더군다나 네가 지금 본분을 하고 진리를 얻으면, 최종에 살아남는 사람은 너이다. 사람이 이 기간 동안 고생을 하든, 대가를 치르든 사실은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면 그 말씀대로 따르고, 하나님이 저렇게 하라고 하면 그 말씀대로 따르면서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하지 말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협력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협력하려면, 사람은 고생을 좀 해야 하고,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내려놓거나 포기해야 한다. 명예나 지위나 돈을 포기해야 하고, 또 세상의 누림이나 심지어 결혼이나 직장을 포기해야 하며, 나아가 세상에서의 앞날 같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네가 그런 것들을 포기했다면 하나님이 알까, 모를까? 하나님이 볼까, 보지 못할까? (보십니다.) 하나님이 보게 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할까? 하나님이 어떻게 할지 모르겠느냐? (하나님은 위안을 받으실 것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태도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일을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의의가 없게 된다. 하나님은 일을 한다. 하나님은 그저 기뻐서 수염을 만지거나 웃고 즐거워하면서 “봐라, 내가 치른 대가가 효과를 보았다. 사람은 나와 협력하려고 한다. 사람에게 그런 심지가 있다. 나는 사람을 얻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떤 태도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기뻐하든, 즐거워하든, 만족스러워하든, 위로를 얻었든, 하나님은 어떤 태도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푸는 은총, 사랑, 긍휼은 단지 태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다. 어떤 사실일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에게 더해 주어 깨우침을 받게 해 주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해 주며, 이 세상의 내막을 제대로 알게 해 주고, 네 마음을 환하게 해 주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를 깨닫게 해 준다. 이렇게 보면 너는 얻어야 할 것을 얻지 않았느냐? 이러면 하나님은 어떤 태도만 보이는 것이 아니지? 너는 무엇을 얻었느냐? (진리입니다.) 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면 하나님은 태도를 보일 것이다. 하나님은 태도를 보이는 동시에 일을 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는 태도만 보이지 말고, 실제 행동을 좀 보여야 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저는 필요 없어요,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저는 하나님께 아무런 요구도 없어요.”라고 해도 하나님은 “그건 안 되지, 나는 너에게 베풀어 줄 것이다. 나는 너에게 상을 줄 것이다. 이것은 네가 당연하게 얻어야 할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보아라, 너는 얻게 된 것이다. 무엇을 얻었느냐? 너는 진리를 얻었고, 생명을 얻었으며, 창조주에 대한 인식을 얻게 되었다. 그래도 너는 안이 비어 있을까? 너는 충만함을 느끼지 않겠느냐? (맞습니다.) 충만함을 느끼면 너는 살아도 가치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욥을 보아라, 욥이 온 산 가득한 가축과 거액의 재산을 구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욥은 무엇을 구했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보기에 좋았다고 했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은 이 말 한 마디만 하고 말았느냐? 하나님은 일을 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했느냐? 사탄을 보내어 욥을 시험하게 했다. 욥의 가득했던 가축, 거액의 재산, 아들딸과 종들을 빼앗아 가게 했다. 하나님이 욥에게 시련을 주었다. 하나님이 욥을 시련하면서 원했던 것은 무엇이냐?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원했던 것은 욥의 증거이다. 그럼 하나님이 욥에게 베풀어 준 것은 무엇이냐? 그때 베풀어 준 것은 무엇이냐? 이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 사람은 ‘욥에게 무엇을 베풀어 주셨지? 가축을 다 거두어 가셨잖아. 뭘 베풀어 주신 게 없는 거 같은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베풀어 준 것이 있고, 상이 있다. 하나님이 욥에게 어떤 상을 주었는지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욥의 증거를 원하면서 욥에게 기회를 하사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기회이지? 바로 욥이 사탄 앞에서,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기회이다. 즉,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실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그 사실을 증거하고, 욥이 완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할 기회를 하사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그런 기회를 하사하지 않았다면, 사탄이 욥을 건드릴 엄두를 낼 수 있을까? (없습니다.) 사탄은 틀림없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것은 100% 확실한 것이다! 사탄이 엄두를 내지 못하면, 욥에게 그런 기회가 생기겠느냐? 그러면 욥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욥에게 베풀어 준 것은 이런 기회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욥이 간 길,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은 옳은 것이고, 하나님이 열납하는 것이며, 또한 욥은 정직하고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기회이다. 이 모든 것을 사람들이 다 보게 되었고, 하나님도 보았다. 욥은 그 기회에서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였고, 사탄을 반격하였고, 사탄을 패배시켰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었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욥에게 상을 주지 않았느냐? (주셨습니다.) 욥에게 준 두 번째 상은 무엇이었느냐? 또 다른 상은 무엇이었느냐? 하나님은 욥을, 하나님을 위해 증거했고 하나님이 열납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은 하나님이 열납하는 것이라고 했다. 욥이 사탄 앞에서 증거하니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했으며, 매우 흐뭇해하고 기뻐했다. 또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럼 이런 태도를 보인 다음 하나님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했느냐? 너희는 <욥기>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구나.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나이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이냐?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을 하신 다음입니다.) 하나님이 욥을 향해 말씀을 했고, 하나님의 뒷모습을 욥에게 보여 주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욥에게 준 상이 아니냐? (맞습니다.) 욥 이전에 하나님을 본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를 본 사람이 없다. 뒷모습도 본 사람이 없다. 그런데 욥이 보게 되었고, 듣게 되었다. 하나님의 뒷모습을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것이 피조물로서 가장 얻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욥은 얻었다. 그럼 너희는 부럽지 않느냐? (부럽습니다.) 이것은 얻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하면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런 은총과 상을 얻을 수 있겠느냐? 그러려면 너는 하나님을 위해 증거해야 한다. 너는 사탄의 시험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로 가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기에 좋다고 말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흐뭇해하고 기뻐하면서 네가 한 것들, 너의 증거에 대해 하나님이 보기에 좋다고 하고, 너를 완전한 사람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면, 너는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욥이 여호와의 뒷모습을 본 뒤에, 하나님의 상은 거기에서 멈추고 더 없었느냐? 거기까지이고 더 없었던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그 뒤에 하나님은 또 무엇을 했느냐? (복을 베푸셨습니다.) 욥에게 전보다 갑절로 복을 베풀었다. 그렇지? 전보다 더 갑절이라는 말은, 전보다 더 부유해졌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원래는 천만장자였다면 지금은 억만장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 보아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면, 억만장자가 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네가 안 하겠다고 해도 안 된다. 전 세계 억만장자 랭킹에 어쩌면 네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1위로 말이다. 네가 내려오고 싶어도 내려오지 못하고,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지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백만장자가 되려고 해도 아주 힘들다. 가슴 졸이며 여기저기에서 도둑질하고 사기치고 갖은 방법으로 돈을 벌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것은 사람이 구하는 것과 바라는 것을 초월한다. 그러나 네가 자신이 구하고 바라는 것을 초월하는 상을 받고 싶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를 준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 대가는 헛되이 치르는 것이 아니라 보상이 따르는 것이다. 사람은 늘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냥 어떤 태도만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일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고, 관찰하기만 하며, 보기만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부모와 같다. 네가 말을 잘 듣고 착실하며, 제대로 된 일을 하고 부모의 말을 들으며, 바른길로 간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떻겠느냐? 내 아이는 말을 아주 잘 듣는다고 할 것이다. 바른길을 가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는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부모는 마음 아파할 것이다. 부모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네가 고생을 적게 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누리게 해 주고 싶어 할 것이다. 부모는 네가 가난하길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것보다 더 좋고, 더 아름답고, 더 선하면 선했지 이것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지금 너희의 나이가 되면 부모가 잘해 주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너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 보아라.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 보아라. 예를 들어 네가 감기에 걸렸거나 아파서 방에 누워 있다고 하자. 그럼 너의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일하러 나갈 마음도 사라지고, 네가 먹지 못하면 부모도 먹지 못할 것이다. 네가 걷지도 못하고 기지도 못할 때, 부모는 밤새도록 너를 안아 주고, 네가 조금도 먹지 못할 때에는 부모가 입으로 너에게 먹여 준다. 바로 이런 마음이다. 네가 자라나 걸음을 떼면, 부모는 늘 네가 어디에 부딪칠까 걱정한다. 네가 한번 부딪치기라도 하면 부모는 마음 아파서 문질러 주기도 하고, 두드려 주기도 하고, 너를 달래 주기도 한다. 그만큼 마음 아파한다. 네가 울기라도 하면, 부모는 마음이 찢어지고, 네가 억울한 일을 당하기라도 하면, 부모는 그 사람과 죽기 살기로 해보려고 할 것이다. 부모의 마음은 이런 것이다. 네가 고생하거나 밖에서 일을 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마음은 어떻겠느냐? 자기가 먹지 않고 마시지 않더라도 하루 종일 너의 곁을 지켜 주고, 곁에서 밥을 해 주고, 빨래를 해 주고 시중들면서 너의 하인이 되어 주고, 네가 고생을 적게 하도록 너를 대신해서 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부모가 자기 자식한테 이렇게 해 줄 수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이보다 더 깊고 진실했지 못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을 보살피는 데에는 어쨌거나 보살피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매우 세심하게 보살펴 주기 때문이다! 너의 부모는 너를 낳았기 때문에 골육처럼 아껴 주고 사랑해 주고 보호해 준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친히 만든 사람은 하나님에게 어떤 존재일까? 사람은 하나님에게 골육이다. 비록 사람의 개념처럼 태어나서 혈육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손으로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생기를 불어넣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기대가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희망을 건 것이다. 사람에게 요구가 있고, 바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렇게 단순하게 사람을 만들어 입김을 불어넣은 다음, 어차피 하나님은 능력이 넘쳐 나니 이걸 내버려 두고 하나 더 만들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일을 다 한 다음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다. 인류는 하나님의 골육이자 동반자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모든 희망을 걸고 있고, 또 경영 계획의 모든 희망을 부탁받은 자이고 담당한 자이다. 최종에 하나님은 그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려고 하고,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럼 너희는 이런 의미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 좀 더 깊이 느낄 수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 출세하라고 자녀가 한쪽에서 공부하면 옆에서 부채질도 해 주고, 꿀물도 타 주었다가 또 계란찜도 해 주고, 또 가려운 곳을 긁어 주기도 하고 마사지를 해 주면서 어떻게 해 주면 좋을지 몰라 한다. 자녀가 그러고 있는 것을 보면 부모의 마음이 계속 따라다니고 자녀 곁에서 맴돈다. 부모가 자녀 곁에서 맴도는 것은 자녀에게 기대를 걸었고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 아니냐? (맞습니다.) 희망을 건 것이다. 네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늘 거역하면, 부모는 상심하지 않느냐? 괴로워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너는 이런 의미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거라. 하나님이 인류를 볼 때에는 네 나이가 얼마나 되었든 하나님 눈에는 그저 아이이다. 네가 80살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너를 아이라고 한다. 네가 20살이라고 한다면 더 아이인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나이의 구분이 없다. 하나님이 보기에 인류는 다 갓난아이이고 아동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이렇게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에 너는 하나님의 골육이고, 하나님의 동반자인 것이다. 그러면 네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고 하나님이 만족스러워하는 골육이 되고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까? 이것은 인류가 고려해 볼 만한 문제가 아니냐?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가 아니냐? (맞습니다.)

인류를 골육으로 보고, 동반자로 보고, 치르는 심혈과 대가를 받을 자로 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하나님은 어떤 심정일까?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갖고 있기에 이런 관계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이런 관계가 있다면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사람이 조금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네가 “저는 하나님을 본 적도 없고, 하나님이 저의 전생들에서 하신 일을 느끼지도 못했어요.”라고 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이 너의 전생들에서 한 일을 느끼지 못해도 지금 살면서 하나님이 너를 인도해 주고 너에게 치른 대가는 느낄 수 있지 않으냐? 그것은 알 수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네가 알 수 있으면 됐다. 그럼 너는 모자란 사람이 아님이 증명된다. 네가 이것만 깊이 느낄 수 있어도 충분하다. 그러면 네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도 가치가 있다.

─────────

①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정직(正直): 여기서는 정의롭고 솔직하다의 뜻.

④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이전 말씀:제87편 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다음 말씀:제89편 정상 인성이 있으려면 최소한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