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85편 진리가 생명이 되어야 사악한 조류에 저항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조류를 빨리 따른다. 그렇지? (네.) 젊은이들은 성인들보다 조류를 빨리 받아들인다. 조류를 빨리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악한 조류에 적응되는 것도 빠르다. 또한 시험에 빠져드는 확률도 더 높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네.) 깊은 체득이 있느냐? 말해 보거라, 어떤 체득이 있느냐? 어느 방면의 체득이 있느냐? 예컨대, 예쁘게 생긴 여자가 있다고 하자. 윗 세대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여기겠느냐? 예쁘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고, 명분과 절의(節義)를 지켜야 하였다. 사람됨에 절개가 있어야 하고 최저선이 있어야 하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사상인데, 최저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정조를 잃고 명분과 절의를 잃으면 일생이 망쳐지고 끝난 것이며, 좋은 사람이 아니므로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람들은 어떠냐? 사람들은 현대 사회와 현대 문화에 영향받거나 물들어 있는데, 거기에 사회 분위기와 조류까지 더해져 어떻게 여기고 있느냐? 잘생긴 데다 학력도 좋고, 거기에 얼굴도 예쁘고 치장할 줄 알고 낭만적이며 어느 정도 특기까지 갖추었다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자본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자본이라고 한다. 자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자본으로 여기게 되면 그것은 어떤 사상이냐? 그것을 자본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사악한 조류를 따르는 사상적인 경향이 아니겠느냐? (맞습니다.) 일단 그런 경향이 있으면 그것은 사람에게 어떤 것을 초래하게 되느냐? (교만자대하고 안하무인하게 됩니다.) 그것은 한 방면이다. 그것은 성정 방면이다. 너의 행위, 그리고 네가 혼인을 대하고 명분과 절의를 대하고 명성을 대하고 사람됨의 최저선을 대하는 데에 있어 방해를 받고 훼손을 입게 되며, 심지어 그런 것을 깨뜨려 버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 사람은 다음으로 무엇을 하게 되겠느냐? 어떤 일들을 하겠느냐? (세계 조류를 따르며 도덕과 양심을 어기게 됩니다.) 도덕과 양심을 어기는 것은 타락의 시작이다. 과거의 조류나 사람됨의 최저선은 “좋은 여자는 두 번 시집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떠하냐? 지금은 어떤 조류냐?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완이 있는 여자는 한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는다. 절대 한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난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나도 상대가 변변치 않은 사람들이면 그것을 능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만나야 능력 있다고 할 수 있느냐?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맞다.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네가 성장(省長)을 만난다고 했지? 그럼 난 중앙에 있는 사람을 만날 거야.’ 네가 직위가 낮은 부서장을 만난다면 ‘바보, 못난이야! 싸구려 취향이야! 난 직접 시장을 만날 거야.’ 보아라, 비교하기 시작하지 않느냐? 이렇게 비교하는데 어떠냐? “좋은 여자는 두 번 시집가지 않는다.”는 이런 관점이 그래도 있겠느냐? (없습니다.) 사람의 명분과 절의라든가 명분과 절의를 중요시하는 것이라든가 사람됨의 최저선이라든가 하는 이런 사람됨의 원칙이 있느냐? (없습니다.) 어느 날 시장이 처분받고 해임되면 ‘차 버려야지! 아직 젊고 자본도 있을 때 시장보다 더 대단한 사람에게 시집가야지.’라며 찾고 찾다가 또 한 사람을 찾았다. 결혼하자니 ‘난 아직 젊어. 결혼해서는 안 돼, 서두를 것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하겠느냐? (결혼하면 속박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혼하면 얽매이게 되어 제멋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계속 제멋대로 해야 하고, 계속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에 누가 결혼한다고, 어떤 시대인데, 누가 결혼해? 누가 현모양처가 되길 바래? 누가 남편을 돕고 아이를 가르치길 원해? 방종할 줄도 알고 자기를 꾸밀 줄도 알아야 해. 아름다운 청춘 시절을 생활하는 데에 허비하고 날만 보내며 낭비할 수는 없어.” 보아라, 결혼도 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찾아 뭐하냐? 제멋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제멋대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으면 된다. 정직한 사람, 정상 사람의 사상 관념이 없어졌고, 사람됨의 원칙이 없어졌다. 그러면 타락된 것이다. 그렇지? (네.)

어떻게 해서 타락되기 시작한 것이냐? (사악한 조류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였느냐? 왜 사악한 사상 조류를 받아들일 수 있었느냐?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느냐? 한 사람은 밖에 나가 며칠을 지내다가 전염병에 걸려 돌아왔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나가서 그 사람과 똑같은 곳에서 며칠 머물다가 돌아왔는데, 그는 아무 일도 없었고 그런 병에 걸리지도 않았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냐? (저항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맞다. 저항력이 있는 것이다. 보아라, 독감이 유행할 때 모든 사람이 다 독감에 걸리느냐? (아닙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걸리느냐? (저항력이 약한 사람입니다.) 저항력이 약한 사람이 독감에 걸리고 독감에 전염될 수 있다. 저항력이 강한 사람은 어떠냐? 그런 사람은 면역력이 있기 때문에 쉽게 전염되지 않는다. 그렇지? 저항력이 강한 사람의 몸에는 무엇이 갖춰져 있느냐? (면역 능력입니다.) 면역력이 갖춰져 있다. 사상적 면역력은 무엇이냐?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이든 연로한 사람이든, 아니면 성인이든 미성년자든, 그가 전통 사상을 받아들이고 도덕과 윤리 교육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사악한 조류에 저항할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중국의 전통 교육인 유가와 도교의 교육, 심지어 어떤 집의 매우 엄격한 가법, 이런 것들은 사람의 사상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러나 깊이 뿌리내린 이런 것들이 사람의 행위를 좌우할 수 있고, 사람의 인생 방향과 갈 길을 좌우할 수 있겠느냐? (좌우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있어도 마찬가지로 사악한 세상 조류의 유혹과 시험, 통제, 얽매임, 심지어 해독과 침식까지도 이겨 낼 수 없고,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렇지? (네.) 이것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전통문화로, 그런 효과에 도달할 수 없는데, 사람들에게 이런 사악한 조류를 막아 낼 수 있게 하겠느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전통문화는 너무 뒤떨어졌어요. 중국 사람은 세상 물정에 어두워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지요. 일단 우물 밖에 나와 보면 ‘야, 이 번화한 세상이 너무 좋구나.’라며 전통문화를 버리게 될 겁니다. 그것 때문에 타락된 거니깐요.” 정말 그런 것이냐? 그럼 서양에서 태어났다면 전통문화 교육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스러워 받아들이는 지식 문화 방면이 좀 더 넓고, 교육도 비교적 개방적이고 인권도 있어 사람들이 각 나라 어디나 두루 돌아다니면서 견식도 넓힐 수 있다. 견식을 넓힌 뒤에 어떤 사람은 “됐어. 모든 일을 다 경험해 보았고 어떤 사람과도 다 지내보았으니 이런 사악한 조류의 시험과 유혹은 쉽게 이겨 낼 수 있어. 그러니 일반적인 일이나 보통 사람에게는 영향받지 않아.”라고 말한다. 이 말이 성립되느냐?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럼 사악한 조류란 도대체 무엇이냐? 그것과 사람의 전통문화, 각 나라 교육과의 관계는 무엇이냐? 그것들 사이에는 연대 관계가 없느냐? 사악한 조류란 도대체 무엇이냐? 사악한 조류에는 전통문화가 포함되어 있지 않느냐? (포함됩니다.) 문화, 지식, 교육이 포함되어 있지 않느냐? (포함됩니다.) 과학의 인도, 교육이 포함되어 있지 않느냐? 가정 교육, 가족 교육, 민족 전통 교육이 포함되어 있지 않느냐? (포함됩니다.)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그렇지? 그럼 이런 것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냐? (사탄에게서 온 것입니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그럼 사탄에게서 온 것을 네가 보았느냐? 너는 사탄을 보았느냐? (보지 못했습니다.) 네가 보지 못했는데 왜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하느냐? 그 말은 어떻게 한 것이냐? (이런 사탄의 것들이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결과는 사람들을 패괴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거라. 맞지 않다. 핵심적인 것을 말하지 못했고 근원적인 것을 말하지 못했다. (한 세대 한 세대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전해져 내려오면서 점점 더 사악해졌다는 것인데, 그 말이 성립되느냐? (성립되지 않습니다.)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주 분명하다.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마땅히 좋은 것이어야 한다. 전통문화며, 도덕 윤리관이며, 수치감이며, 양심이며, 이런 좋은 것들이 왜 전해져 내려올수록 점점 더 사악해졌을까? 제대로 전해져 내려오지 못하고 잘못 전해졌기 때문일까? 무슨 원인일까? 원인을 찾아보거라. (사람의 본성과도 관계됩니다.) (사람의 본성이 조류의 변화에 따라 그런 사악한 것들을 숭상하게 되는 것은 바로 사람의 본성이 본래 사탄에게 속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악을 숭상하면 왜 사악을 발전시키게 되느냐? 왜 사악을 더 격상시키느냐? 컴퓨터에 업그레이드 버전이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업그레이드는 어떻게 온 것이냐? 사람이 숭배해서 온 것이냐? (아닙니다.) 어떻게 온 것이냐? (사람이 연구해 낸 것입니다.) 여기에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잘 생각해 보거라. 누가 사악한 조류를 통제하고 있느냐? 사탄이 사악한 조류를 통제하고 있다. 그렇지? (네.) 그럼 그런 사악한 조류는 어떻게 온 것이냐? 1+1=2, 이것이 사람을 패괴시킬 수 있느냐? (패괴시킬 수 없습니다.) 1+1=2, 이런 것은 사람을 패괴시킬 수 없다. 수학은 사람을 패괴시킬 수 없다. 그렇지? 뉴턴 이론은 사람을 패괴시킬 수 있느냐? 그것은 과학이다. 사람을 패괴시킬 수 있느냐? 지구 인력은 존재하지 않느냐? (존재합니다.) 그럼 사람이 지구 인력을 알게 된 것은 지식이 많아진 것이냐, 아니면 패괴된 것이냐? (지식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 지식이 사람을 패괴시킬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사람을 패괴시키느냐? (사상 관점입니다.) 어떤 관점들이 사람을 패괴시킬 수 있느냐? (탐색하고 연구하고 싶어 하며, 사람이 스스로 장악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그런 것들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고 그런 것들이 다 하나님의 안배임을 믿지 않기에, 더욱 연구하려고 하고, 더욱 분석하려고 하며 또한 두각을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갖은 방법을 다해 사람들로 숭배하게 합니다.) (무신론, 유물론, 이런 사상 관점이 사람 안에 심어져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고 긍정적인 것도 모르기에 전부 사탄이 사람에게 준 것에 따라, 과학 이론에 따라 하게 됩니다. 이런 사상 관점이 사람을 패괴시키게 됩니다. 부모가 가르쳐 준 것을 포함해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접촉하는 것들, 또 학교 다니면서 학교에서 교육받은 것들, 접촉한 것들은 지금까지 다 사탄의 이런 관점들이기에 안에는 긍정적인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큰 방면이다.

한 사람이 학교에서 사회로 진출하여 회사에 취직할 때, 갓 졸업한 사람의 생활 습관이나 일처리 방식, 업무 방식은 일반적으로 어떤 방식이냐? 다시 말하면, 사람됨의 원칙은 어떤 것이냐? (성실하고 착실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환상이 있는데, 사회에 대해 이런 환상을 품고 있다. ‘내가 일을 잘하면 틀림없이 승진하게 될 거야. 능력이 있으니 겁날 게 없어! 난 명문대 출신이고 또 재능도 있으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두려울 게 없어. 상사에게 아부할 필요도 없고, 어떤 특별한 수단을 취해 다른 사람을 밟고, 남을 디딤돌로 삼을 필요도 없어. 난 이렇게 부지런하고 착실하게 하면 돼. 상사가 뭘 시키면 그대로 하고, 뭘 물으면 그것에 답해 주면 돼.’ 이 원칙이 맞느냐? 사회에서 통하느냐? (통하지 않습니다.)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너는 다른 방식을 취하게 되지 않겠느냐? 그 길이 통하지 않으면 다른 출구를 찾게 되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냐?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생존하기 위한 것이다. 이래야 현실적이다. 두각을 나타내서 뭘 하겠느냐?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우선 자신이 틈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틈새에서 살아남으려고 할 때는 어떤 행동이 있어야 하겠느냐? (이 사회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런 사악한 법칙에 적응해야 합니다.) 사악한 생활 법칙에 적응해야 한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어떤 법칙과 규칙들이 있느냐? (아부해야 합니다.) (눈치를 봐 가며 행동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투와 안색을 살펴 심중을 헤아려야 한다. 상사가 어떤 술을 마시기 좋아하는지를 잘 알아보고, 어떤 담배를 피우기 좋아하는지를 잘 관찰해 두는데, 물어볼 수 없으니 잘 관찰해야 한다. 상사가 어떤 곳에 가서 놀기 좋아하는지를 뒤에서 다 알아보고 잘 파악해야 한다. 상사가 어떤 방식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지, 몇 년 동안 이런 정보들은 거의 다 파악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거의 다 파악하게 된 것은 의도적으로 파악한 것이냐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알게 된 것이냐? (의도적인 것입니다.) 맞다. 의도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래야 적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악한 조류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럭저럭하는 가운데 몇 년이 지나가게 된다. 네가 변하지 않았느냐? (변했습니다.) 너는 자랐느냐 아니면 움츠러들었느냐? 어떻게 변했느냐? 권세와 이익에 빌붙는 속물이 되어,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양심 지각도 없게 되었다. 그렇지? 또 어떤 것이 있느냐? 아부할 줄도 알고, 처세술도 뛰어나고, 상황에 따라 행동한다. 또 있느냐? 마음이 갈수록 독해진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그런 것들을 어떻게 얻었느냐? 몇 년 뒤에는 그런 것들이 성과가 되지 않겠느냐? 월급도 올라가고, 상사도 너를 마음에 들어 하고, 직위도 높아지고 직함도 높아졌으니 성과가 아주 큰 것이다. 그렇지? 그럼 이런 성과는 어떻게 온 것이냐? 정당한 방법으로 온 것이냐? 정말로 네가 그 당시 갓 졸업하여 일할 때처럼 부지런하고 착실하게 일하고, 참다운 사람이 되는 이런 원칙에 따라 얻은 것이냐?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얻은 것이냐? 비정상적인 수단으로 얻은 것이다. 그렇지? 비정상적인 수단들을 쓴 것이다. 그럼 네가 비정상적인 수단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될 때가 되면 그런 것들이 너 자신의 것이 된 것이 아니냐? 그럼 너는 사람됨의 원칙과 방향이 다 변한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그럼 너의 목표는 무엇이냐? 다음 단계의 목표는 무엇이냐? ‘마음이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또 있느냐? ‘마음이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의 다음 단계는 무엇이냐?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입니다.) 이것이겠지.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더 무섭게 변합니다. 사람답지 않게 됩니다.) 이방인들에게 또 어떤 것들이 있느냐? (‘도둑들이 날뛰는 무법천지’입니다.) 또 어떤 것들이 있느냐?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입니다.) 또 어떤 것들이 있느냐? (‘오늘로 만족한다’입니다.) 이미 마비되었다. 그렇지? 타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비되기까지 하였다.

사람에게 그런 사상이 있으면 마음은 점점 더 독해지고, 양심, 인성, 지각은 점점 없어지고 갈수록 마비된다. 점점 더 마비되면 사람됨의 원칙도 다르게 변질된다. 그럼 그런 사상과 그런 사람됨의 원칙, 최저선, 목표는 어떻게 온 것이냐? 어떻게 얻어진 것이냐? 그것이 이제는 사람의 생명이 되어 버렸다. 그 정도에 이르면 사람은 이미 타락된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타락될 대로 타락되었는데, 거기서 그친 것이냐, 아니면 더 타락될 수 있겠느냐? (점점 더 타락될 것입니다.) 그래, 점점 더 타락된다. 어떻게 그 정도까지 타락하게 되었느냐? 무슨 원인이냐? 어떻게 초래된 것이냐? 어떤 한 사람이 초래한 것이냐, 아니면 너무 부패한 업무 환경으로 초래된 것이냐? (사악한 조류에 패괴된 것입니다.) 사악한 조류는 어떻게 온 것이냐? 누가 통제하고 있느냐? (사탄입니다.) 그러면 똑똑히 보게 되었다. 사탄이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 환경, 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느냐? 즉, 무엇으로 결정되는 것이냐? 무엇으로 그 사람들이 바른길을 가는지 아니면 사악한 길을 가는지가 결정되느냐? (누가 권력을 잡고 누가 지배하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맞다. 누가 지배하고 있고 누가 권력을 잡고 있는가에 달렸다. 이 말에 너희들은 찬성하느냐? (찬성합니다.) 그럼 너희가 말해 보아라. 찬성하는 이상 너희들이 함께 나누어 보아라. 이 말은 어디가 맞느냐?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생존하면서 점점 더 타락하게 되고 사악해지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목표와 방향과 원칙이 있게 되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사탄이 권력을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각종 독소들입니다. 그런 다음 점차적으로 사람도 사탄처럼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오늘날 진리가 있는 환경에서 살게 된다면,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긍정적인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긍정적인 것의 실제이기에 사람이 살아내는 것에는 갈수록 사람의 모양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또 말해 보거라. (제가 조금 더 보충하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는 그런 환경에서 확실히 점점 더 패괴되어 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 그런 것들에 대해 분별력이 있게 되었고, 분별력이 있게 된 후에는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인지, 어떤 것이 부정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이런 것에 대한 분별이 없습니다. 본성 역시 사악한 것이어서 그런 것들만 좋아하기 때문에 점점 더 나쁘게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은 후에 진리를 받아들이고 분별력이 있게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그런 것들을 조금씩 내버리게 됩니다.) 비슷하게 말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에 사람 안의 생명이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너는 어떤 환경이 너에게 무엇을 주입시키면 그렇게 변하게 되고, 무엇을 주입시키면 그런 것을 얻게 된다. 너는 결국 그것이 너를 통제하고 인도하는 대로 그런 사람이 된다. 사람이 타락하고 사악하고 극도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그 환경이 바로 그런 것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런 환경을 지배하는 그 조종자는 누구냐? 그의 본성은 어떤 것이냐?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러면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몸이 바르면 그림자가 비뚤어져도 두렵지 않아. 그가 내게 그렇게 하라고 해도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돼.’ 혹은 어떤 사람들이 말했어도 ‘나란 사람은 그런 부정당한 것을 믿지 않아. 난 기어코 그런 환경에 맞설 거야! 난 꼭 그것을 바꾸어 달라지게 만들 거야!’라고 생각한다. 1년은 괜찮고 2년도 괜찮다. 3년이면 버티기 좀 힘들어한다. 4년이 될 때에는 어떻겠느냐? (환경에 따릅니다.) 5년이 될 때에는 어떻겠느냐? 너는 적응된다. 그렇지? 6년이 될 때에는 어떻겠느냐? (그중의 일원이 됩니다.) 그중의 일원이 되어 떠날 수 없게 된다. 다른 사람이 너를 나오라고 잡아당기면 “왜 날 잡아당겨요? 여기가 아주 좋아요.”라고 한다. 완전히 그중의 일원이 되었다. 사람이 그중의 일원이 되었을 때,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사탄과 똑같이 됩니다.) (사탄과 야합하게 됩니다.) 사탄이 되고, 마귀가 된다. 산 귀신이나 사탄과 같아지고 마찬가지가 된다. 너는 사람이 그렇게 변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고 있고, 분명치도 않다. 어떻게 변했는지는 너도 잘 모른다. 어쨌든 오늘의 너로 변하게 된 것이다. 네가 도대체 어떻게 지내 왔는지 너는 모르고, 애초에 왜 그 길을 가게 되었는지도 잘 모른다. 왜 자신이 지금의 그 모양으로 변했는지 너도 분명치 않다. 어쨌든 얼떨떨하게 그대로 지내 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과정이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방식이다. 바로 이렇게 패괴시킨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타락된 것이다. 그럼 만약 사람이 처음부터 진리를 깨닫고,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생명이 되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게 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쉽게 해낼 수 있겠느냐? (싸움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싸워 봤느냐? (어떤 때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데,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힘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견지하였지만 나중에는 그래도 끝까지 견지하지 못하고 타협한 적이 있지 않았느냐? 그런 상황이 있지 않았느냐?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은 어떻게 된 일이냐? 타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아주 굳세었을 뿐만 아니라 서원도 하고 맹세도 하였다. 하지만 여러 해가 되니 소용이 없었다. (사람은 속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긍정적인 것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심지와 의지력이 없습니다.) 그럼 진리가 네 안에서 생명이 되었느냐?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 원인이다. 네가 말한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일을 견지하거나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겉면의 의지력 때문이 아니고 겉면의 심지 때문이 아니다. 여기에는 생명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진리가 생명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 진리가 너의 생명이 되지 못했다. 즉, 너 자신의 실제가 되지 못했고, 네 생명의 일부분이 되지 못한 것이다.

사탄은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패괴시켰다. 날마다, 해마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존 솜씨를 배우게 되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부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부 사물을 보게 됨으로, 일부 일들을 경력함으로 인해 그 사상이 바뀌게 되었고, 서로 다른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얻은 후에 어떻게 될지는 둘째 치고, 세상에서(원문: 外邦世界) 한 번 손해를 본 뒤에 그 길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음번에는 어떻게 하면 더 이상 손해 보지 않고 이익을 챙길 수 있을까?’라고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맞습니다.) 이런 일은 늘 생기는 것이 아니냐? 모든 사람에게 다 발생한 적이 있지 않느냐?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니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은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너는 그들과 접촉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생활은 해야겠지! 네가 이 패괴된 세상에서 살고 있고, 이 패괴된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너는 그들과 왕래하며 일처리를 해야 하고, 그들과 공존하면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햇빛을 쬐며 같은 물을 마시기 때문에 그런 일들은 피할 수가 없다. 때로는 비록 네가 손해는 보지 않았을지라도, 너는 그에게서 어떤 일을 보게 되거나 그와 함께 일처리하고 왕래하는 기간에 생긴 어떤 일에서 너의 생각이 움직이게 되고, 너의 생각이 다른 지경에 들어가게 된다. 보아라, 네가 어제 하나님께 “하나님, 당신을 위해 평생을 화비하겠습니다. 저의 남은 시간을 전부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만약 제가 당신을 위해 남은 반평생을 화비하지 못한다면 저에게 저주를 내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는데, 이런 심지는 맞지 않으냐? (맞습니다.) 심지는 맞다. 이런 심지는 진실하냐? (진실합니다.) 그럼 이 맹세는 진심으로 한 것이냐? (진심입니다.) 모두 진심이다. 하지만 일의 시련을 견뎌 내지 못한다. 이 일에서는 모두 깊은 체험이 있다. 그렇지? (네.) 사람은 매우 고통을 느끼며 견디기 어려워한다. 어떤 일이 임했을 때, 너의 직접적인 이익이나 직접 체험한 것이 손해를 보았고, 이익에 손해를 보았거나 그것이 네 앞날의 귀숙이나 인생이나 생활에 관련된다면, 생각이 흔들려 거듭 궁리해 보게 된다. ‘내가 지금은 30살이니 60살까지 살려면 아직 30년 정도 남았고, 80살까지 살 수 있다면 아직 50년 정도 더 있는데, 평생을 그저 이렇게 보내야 한단 말인가? 남들은 저렇게 윤택하게 살고 있는데, 난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사는 걸까? 왜 그럴까?’라며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렇지? 생각이 흔들리는데 확고할 수 있겠느냐? (확고하지 못합니다.) 심지가 확고하지 않다. 의지력이 검증받은 것이 아니냐? 의지력이 도전받은 것이 아니냐?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생각할수록 괴로워진다. 그러고는 또 궁리한다. ‘만약 남은 반평생을 이렇게 산다면, 사람은 한평생을 살아도 체험한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 견식이 너무 많이 부족할 텐데, 이대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겠지? 내가 이렇게 화비하고 이렇게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보셨을까? 하나님께서 열납하실까? 이렇게 끝까지 간다고 해도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봐, 남들은 얼마나 윤택하게 살고 있어. 남들은 얼마나 좋은 생활을 누리고 있냐 말이야. 독일도 가고 프랑스도 가는데 난 아무 데도 가 보지 못했어. 하다못해 국내의 여러 성(省)이라도 돌아다녀 봤으면 좋겠어.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 괴로운 것 같아!’ 울적해진 거지? 마음이 언짢아졌다. 생각할수록 더욱 언짢아지고, 생각할수록 더욱 불쾌해진다. 하나님을 믿는 힘이 아직도 남아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전에 했던 맹세는 어디로 갔느냐? 맹세가 무엇으로 변했느냐? (거짓말로 변했습니다.) 빈말이 되었다. 그렇지? (네.) 말하자면 대포 안에 포탄을 넣고 ‘펑’ 하고 쏜 것과도 같다. ‘듣자니 소리가 아주 컸어. 소리가 났는데 왜 포탄 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것은 공포탄인 것이다. 사람은 맹세한 후에 일이 임하면 생각이 흔들려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시련도 견뎌 내지 못한다. 그럼 그 맹세는 무엇이 되었느냐? (거짓말이 되고, 빈말이 되었습니다.) 공포탄이 되었다. 그렇지? 그러니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번에 또 심지가 있을 때에 함부로 맹세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그 맹세대로 이루어지게 하면 어떡하겠느냐? 그러니 조심해야 하고 여지를 두어야 한다. 하나님이 만약 정말 너의 맹세대로 이루신다면 너는 손해 보지 않겠느냐? 맹세를 하지 않는다면 그런 속박을 받을 필요가 없고, 퇴로가 더 넓어질 것이다. 이 방법은 어떠냐?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공감한다. “이 방법이 괜찮네요. 뒷근심도 없게 되고요. 앞으로는 적게 맹세하고 심지를 많이 세우면 되겠네요.”라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의 분량이 그 정도에 도달하지 못해 상황에 따라 혹은 사람의 정형이나 주변에서 닥치는 일에 따라 어느 정도 영향을 받다 보니 생각이 흔들리고, 마음에 약간의 동요가 생기고, 심지에 조금 뒤섞임이 생겨 좀 흔들리게 된다. 이것은 문제가 되겠느냐? 이것은 두 가지 상황으로 나뉜다. 한 가지 상황은 위험한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이 사람의 정상적인 연약이라고 할 수 있느냐? (사람은 일이 닥치면 조금 소극적이 되고 조금 피동적이 되기는 하지만 진리를 찾고 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거기에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실 수 있기에 정형을 돌려세울 수 있어 정상적으로 진입하고 정상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연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사람마다 다 연약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연약이다. 그러나 네가 일에서 손을 떼고 그만둘 정도로 연약해져 본분을 내려놓고 너의 삶의 방식, 삶의 방향을 바꾸려고 한다면, 이것은 연약의 문제가 아니다. 네게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생각이 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저버리려고 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위험하게 된다. 그것이 어디 연약이냐? 연약이라면 실제적으로 일은 저지르지 않고 마음만 조금 괴로울 뿐이다. 얼마나 괴롭든 하나님에 대해, 자신의 본분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고, 충성하는 정도도 변하지 않기에 본분을 팽개치지는 않는다. 이것은 정상적인 연약이다. 비정상적인 것은 이보다 정도가 깊은 것이다. 그것은 연약한 것만이 아니고 마음이 변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성질이 다르다. 변하려는 것이다. 변하려고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느냐?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을 떠나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을 떠나가려고 하는 것에는 어떤 구체적인 행동들이 있느냐? (본분을 하지 않고 세상으로 달아납니다.) 그렇게 심각하냐? 그 정도까지 되었느냐? (대충대충 하며 속입니다.) 맞다. 대충대충 하며 속이기 시작한다. (소극적이 되어 드러눕습니다.) 드러누웠으니 실제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생각만 한 것이 아니고 행동까지 나왔다. 세상으로 달아난 것이면 철저히 믿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정형만이 아니다. 그렇지? 대충대충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 일은 이렇게 하면 안 돼요!”라고 하면 “알겠어요. 그래요, 그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알겠어요.”라고 한다. 하지만 뒤에서 뒤돌아서면 “흥, 뭐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가 꼭 이렇게 하겠다면 어쩔 건데!”라고 한다. 보아라, 대항한다. 양심 기준이 없다. 본분은 하고 있는 것이냐? (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고 있느냐? (형식적으로 합니다. 대충대충 하여 속이고 양심에 따라 일하지 않습니다.) 충성심이 없고, 본분을 본분으로 대하지 않는다. 비록 완전히 손을 떼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만 걸어 놓고 거기에서 그럭저럭 때우고 있다. “하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어느 정도 했나요?” “당신들이 보고 판단하세요.” “언제까지 하면 끝낼 수 있죠?” “그걸 누가 알아요. 끝날 때가 되면 끝나겠죠, 뭐!” 이건 어떤 태도이냐? (건성으로 대하는 태도입니다.) 건성으로 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이런 정형은 무서운 것이다. 그렇지? (네.)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에는 언제 어디서나 연약해질 수 있고, 소극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연약함과 소극적인 것은 사람에게 어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느냐? 알고 있느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저버리게 된다. 또 있느냐? (하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자포자기합니다.) 자포자기하기까지 하는구나! 또 있느냐? (다시 사탄의 진영으로 돌아가 또 완전히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게 됩니다.)

※ ※ ※

어떨 때는 네가 겉으로 보기에 나쁜 일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다. 예컨대, 사람이 어느 날 외출하려다가 음식을 잘못 먹어 배탈이 나는 바람에 나가지 못했는데, 나중에 보니 어땠을까? 밖에 전염병이 발생했었다. 네가 말해 보아라, 그것은 좋은 일이냐 아니면 나쁜 일이냐? (좋은 일입니다.) 잘못 먹어 배탈이 나고 식중독에 걸릴 때 가벼운 경우는 보통 며칠 걸리느냐? (2, 3일 걸립니다.) 3일은 설사를 할 텐데,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배가 계속 아파 싸기도 하고 토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먹든 회복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심한 경우는 며칠이 걸리겠느냐? (일주일입니다.) 일주일이다. 몸이 약한 사람이라면 아마 보름이 되어야 천천히 회복될 것이다. 그렇지? 먹는 것도 적은 데다 흡수도 잘 안 되니 아마 열흘이나 보름은 걸릴 것이다. 그 열흘이나 보름 동안 네가 집에 묶여 있다 보니 밖에서 얼마나 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수도 있다. 네가 병이 다 나아서 집 밖에 나가 보니 ‘아이구,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무슨 일일까?’라고 한다. 어찌 된 일이냐? 하나님이 일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방식으로 너를 보호해 주고자 한 것이었다. 그럼 그런 방식을 사람들은 평소에 생각할 수 있느냐?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에게 네가 생각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할 때에 너는 순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첫 반응은 무엇일까? 너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너의 첫 반응은 그것에 반항하고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오해한다. ‘왜 이럴까? 나는 본분을 잘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하나님은 내가 본분하고 있는 걸 모르실까? 일이 얼마나 바쁜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게 하셨을까?’라고 한다. 네게 충성심이 있는데 하나님이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렇지? 이것이 사람과 하나님의 간격이 아니냐? (맞습니다.) 오해는 바로 이렇게 생기는 것이다. 그럼 사람이 태도를 바꾸면 어떨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걸 난 이해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이런 일을 안배하신 것에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을 거야.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하나님의 어떤 아름다운 뜻이 있을까? 난 잘 모르겠고 이해되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일을 잘못하실 리는 없어. 난 순복하며 기다릴 거야.’라며 기다렸더니 보름이 지났다. 그러고는 집 밖에 나가 보니, ‘아이구,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지?’ 그런 후, 그 보름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앞뒤를 잘 생각해 본다. ‘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 거구나.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나의 목숨을 보전해 주시고, 저런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살짝 막아 주셨구나.’ 그렇게 막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아니냐? (맞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냐? (맞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너를 보호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해 늘 오해하면서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말하면 어떤 잘못을 범하게 되겠느냐? (하나님을 논단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논단하게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상하게 한다. 네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악의로 여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원수같이 여길 뿐만 아니라, 게다가 속으로 원망하기까지 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겠느냐? (상하게 합니다.) 이런 경우가 많지 않으냐? (많습니다.) 이런 상황은 너무나도 많다. 이것이 한 방면이다.

다른 한 방면은, 하나님이 왜 늘 사람에게 징계를 하는 걸까? 사람은 사람이 순결하지 못하고, 사람 안에 불순물이 너무 많고, 야심과 욕망이 너무 크기에 하나님이 반드시 가로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하나님이 가로막거나 너에게 아주 작은 경고를 주어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효과는 무엇이겠느냐? (사람들로 패괴와 불순물을 벗어 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은 너로 성찰하게 하고, 그런 것들을 벗어 버리게 한다. 너로 그런 것들을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오게 하며, 자신을 의지하여 제멋대로 하지 못하게 한다. 왜 하나님은 너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느냐? 사람을 의지해 일처리해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어떠냐? (아무 일도 성사시키지 못합니다.) 사람을 의지해도 어떤 경우에는 일을 성사시킬 수 있다. 봐라, 뒷거래를 하여 뇌물을 좀 주면 성사시킬 수도 있지 않느냐? 이 말이 맞느냐? 그럼 뇌물을 주고도 성사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으냐? (역시 있습니다.) 그 결정권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있습니다.) 관건적인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이것은 진리이므로 네가 사람을 의지하든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든 결국 하나님은 너에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것을 보게 할 것이다. 그 일에 대해 너의 욕망이 얼마나 크든, 너의 속셈이 무엇이든, 네가 어떻게 하려고 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너의 뜻이 중요하냐? 너의 뜻이 다 뭐냐?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은 그 일을 어떻게 계획하고 어떻게 안배하려고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너를 해외에 오도록 계획하였다면 네가 세 번이나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을지라도 막힐 수 있겠느냐? (막히지 않습니다.) 지금 큰 환경이 좋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출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민을 가려고 해도 이민 갈 수가 없고, 비자 발급도 다 거부당했으니, 이것이 눈앞에 놓인 큰 환경이다. 이 일에서 네가 “어휴, 큰일이야, 이젠 끝이야. 난 희망이 없어. 해외로 갈 수 없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어.”라고 하는데, 너는 무슨 착오를 범했느냐?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았다고? 너는 하나님이 어떻게 주재하는지 알고 있느냐? 하나님이 너에게 네가 반드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규정했느냐? (아닙니다.) 그럼 네가 무슨 착오를 범했느냐? 네가 제멋대로 규정한 것이다. 그렇지? 비자를 발급받도록 한다거나 발급받지 못하도록 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한 적이 있느냐? 네가 하나님의 뜻을 더듬지 못하고는 “어휴, 큰일 났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어. 난 이제 다 틀렸어. 더 이상 해외로 갈 수 없어!”라고 말한다. 내일 비자 발급을 받으러 가라고 하면 너는 어떤 심정이겠느냐? “아무튼 비자 발급을 받으러 가도 받지 못할 거야. 그냥 한번 가 보지 뭐. 어쨌든 간다고 해도 형식일 뿐이지 틀림없이 발급받지 못할 거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거부당했는데 내가 되기나 할까?” 네가 규정한 거지? 네가 단언한 것이다. 너는 왜 단언했느냐? 그것은 너에게 참된 믿음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너의 인식, 참된 믿음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너는 일을 함에 있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누구의 뜻을 생각한 것이냐? 너는 밖에 있는 사탄의 뜻을 생각한 것이다. 네가 큰 환경은 분명히 보았으나 하나님의 손은 보지 못하였다. 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정한 일이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이룰 수 있다고 정해진 일은 이룰 수 있지 않겠느냐? (이룰 수 있습니다.) 네가 어떻게 알았느냐? (하나님께는 이루시지 못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흔히 행차 뒤에 나팔 불듯이 일이 있은 후에야 알게 된다. 이런 말을 어떻게 하지? (뒷북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맞다, 뒷북치는 것이다. 사실 네가 비자를 발급받으러 갈 때는 할 수 없이 간 것이라 형식적이었다. 비자 신청이 끝난 후에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저 이민관을 보니 나한테 비자 발급을 허락해 줄 것 같지 않아. 틀림없이 안 될 거야. 되기는 뭐가 돼! 다른 사람도 발급받지 못했는데, 나한테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연줄도 없고, 그 사람에게 돈을 건네준 적도 없잖아. 딱 봐도 저 사람은 비자를 발급해 줄 것 같지 않아.’ 나중에, 며칠 지나 통지서가 날아왔다. “비자가 발급되었습니다.” ‘어? 비자가 발급됐어! 글쎄, 어쩐지 하나님께서 내게 비자를 발급받게 해 주실 것 같았어.’라고 한다. 이건 어떤 놈이냐? 위선적이다, 그렇지? 사실 너는 이미 속으로 ‘난 비자를 발급받지 못할 줄 알고 있었어.’라고 했다. 그다음 비자를 발급받게 되니 또 ‘난 비자를 발급받을 줄 알았어.’라고 한다. 너는 왜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말을 돌리느냐? 역겹지 않으냐? (역겹습니다.) 사람됨이 그러면 역겹다. 그렇게 말하지 말고 그렇게 처신하지 말라. 마땅히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막는다면 그 일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또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일은 하나님이 막아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의 한 방면 표현이 아니겠느냐? (맞습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다. 참된 믿음은 참으로 믿는 마음이 아니겠느냐? (맞습니다.) 너는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큰 환경이 좋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마음은 그래도 아주 평안하고 어떤 가로막힘도 없는 것 같아. 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난 더듬지 못하겠고 감도 잡히지 않아. 여기까지 안배하셨고, 일이 이 정도까지 진척됐으니 난 가겠어. 비자를 발급받아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발급받지 못해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으니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거야. 어쨌든 ‘순복’이라는 이 두 글자밖에 없어.”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표현이다. 너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으면 참된 순복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은 어떠하냐? (좋습니다.) 보아라, 똑같이 다 가지만 그 안의 정형은 같지 않다. 하나는 참된 믿음을 품고 가는 것이고, 하나는 거부하고 저촉하는 정형을 품고 가는 것이다. 마음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보아라, 겉으로 보기에는 다 똑같아 아무 문제도 없겠지? 어떤 것에 결함이 있느냐? 어떤 것에 문제가 있느냐? 어떤 문제가 크냐? 저촉하고 의심하며, 겉면의 일로 하나님의 주재를 가늠하고, 외적인 환경으로, 세상 사람의 세력으로 하나님의 주재를 결정하려고 한 것이다. 이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런 잘못을 저질렀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패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