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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편 모든 일에서 원칙을 장악하면 실행의 길이 있게 된다

너희의 안무는 어디까지 진행됐느냐?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는 정확하게 잡고 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길이 있느냐? 확신이 없어도 지체하지 말고 계속 연습해야 한다. 그렇지? 그렇다면 나머지 과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어떤 원칙을 장악해야만 진행 과정을 지체시키지 않을 수 있겠느냐? (계속 앞으로 진행하는 한편 교통하면서 모색해 봐야 합니다. 전반적인 윤곽을 먼저 잡아 놓고 그다음 다시 전체적인 효과를 봐야 합니다. 어느 한 곳에 걸려 있지 않고, 우리가 이해하는 만큼 먼저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그 원칙이 어떠냐? (아주 좋습니다. 지금은 먼저 해 본 다음 다시 수정하고, 수정한 다음 또 해 봅니다. 이렇게 모색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말해 보거라, 이 원칙이 어떠냐? 이것은 좋은 원칙이 맞느냐? 너희들이 장악한 이 원칙이 정확한 것이냐? (실제적으로 안무를 제작하다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전체적인 방향이 맞으면 일단 계속 진행해 나가려고 합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개미가 뼈다귀를 갉아먹는 식으로 우선 쉽고,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면 진도가 지체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말해 보거라, 이 원칙을 장악한 것이 어떠냐? 이것은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맞느냐? (전체적인 윤곽을 세운 다음 세부적인 것을 채워 넣는 것으로 큰 틀을 잡는 건 맞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다 이 원칙이 괜찮다고 여기는구나, 그렇지? 이 원칙이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느냐? 치우치지 않았느냐? (이 원칙에 따라 할 때에는 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부분에서 걸리면 앞으로 진행하지 못합니다.) 너희는 내가 묻기만 하면 갈피를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너희는 이 원칙을 아주 잘 지키고 있지 않으냐! 그런데 왜 계속 견지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냐? 예전에 너희에게 이 원칙을 지키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면 되지 않았느냐? 의심할 것이 뭐가 더 있느냐? 내가 물음표를 두 개 던졌더니 너희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구나! 지금 아주 잘하고 있지 않으냐? 진도를 지체하지 않는 선에서 큰 틀을 먼저 잡아 놓는 것은 아주 정확한 것이다. 사소한 일에 걸려서 시시콜콜 따지지 말라. 큰 틀이 맞으면 된다. 그러면 하나는 진도를 지체시키지 않으면서 작품을 계속 만들어 내고, 다른 하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생각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방향이 점점 명확해지게 된다. 네가 직접 해 보고 샘플을 만들어야 방향이 생기는 것이다. 만들어 보지는 않고 속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방향은 명확하지 않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화가를 보아라, 화가도 가끔 뭘 그리려고 할 때, 속에 완전한 그림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계속 그려 나가다 보면 손끝에서 그림 한 폭이 나오게 된다. 이쪽도 좀 다듬고, 저쪽도 좀 다듬으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볼 줄 모르는 사람은 화가가 왜 이쪽에는 선을 하나 긋고, 저쪽에는 선을 두 개 긋는지 모른다. 볼 줄 모르는 것이다. 마음속에 계산이 되어 있는 사람, 원칙이 있는 사람은 세부적인 것들을 모르고, 집을 그려야 할지 시냇물을 그려야 할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큰 틀은 맞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에는 전체적인 그림이 있다. 이런 방향이 맞다. 그러면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진정한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지금 너희는 마음속에 계산이 되어 있느냐? 지금의 원칙과 방향에 따라 이 안무를 완성할 수 있다는 그런 확신이 있느냐? (있습니다.) 있으면 된 것이 아니냐. 이 원칙이 있으면 틀리지 않았다. 그것은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물음표를 두 개 던졌더니 너희는 다 갈피를 잡지 못하느냐? 틀리지 않았다! 헤매지 말라. 이것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하나는 진도를 지체하지 않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할수록 더욱더 분명해진다. 너희들이 모색하는 과정에서, 교통하는 과정에서 더욱더 분명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가고 진도도 나가서 큰 틀이 뚜렷해져 가는데 방향을 잃게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절대 없다! 기껏해야 사소한 부분, 지엽적인 부분에서 조금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아 이 동작이 적절한지, 저 부분을 적절하게 표현했는지를 모르는 것뿐이다. 그것이 아마 그리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방향을 따라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은 맞다. 이것은 확실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안무를 짤 때, 다 먼저 큰 틀을 잡은 다음 그 방향에 따라 짜면서 세부적인 것을 조금씩 조금씩 채워 넣는다. 기본적으로 다 이 원칙에 따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편으로는 작품을 빨리 만들어 낼 수 있고, 한편으로는 정확하게 갈 수도 있다. 글을 쓰고 대본을 쓰는 것과 같다. 먼저 큰 틀을 잡아 놓는다. 몇 가지 요소와 큰 틀을 몇 개 잡아 놓은 다음 그 틀에 이야기 줄거리를 채워 넣고 세부적인 것을 채워 넣는 것이다. 이것은 명석한 사람들의 방식이다. 만약 요만한 원칙마저도 장악하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만약 큰 방향, 큰 틀을 잡지 못하여 방향이 없다면 세부적인 것은 더더욱 갈피를 잡지 못한다. 내가 말한 것이 사실이지 않으냐? (맞습니다.) 지금 너희가 장악한 원칙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아주 좋다. 주요 원칙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 방향대로 하면 전혀 틀리지 않는다!

너희는 근래에 얻은 것이 있지 않으냐? 기술적인 면이나 전공 분야, 생명 진입 방면, 업무적인 분야에서나 조직적인 방면에서 다 얻은 것이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많이 성장하지 않았느냐? (네.) 자신도 모르게 성장했다. 작년에 너희가 처음 왔을 때에는 간단한 안무 하나를 짜라고 해도 힘겨워했다. 그때는 어떤 정형이었느냐? (많이 연단받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몰랐었고,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만들어 내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정형이 어땠느냐? 자신이 재능과 기술을 익히기는 했지만 발휘할 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 그다음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기분도 좀 가라앉고 괴로웠다. 그렇지? (네.) 왜 그런 것이냐? 왜 그런 정형이 나타나는 것일까? 알고 있느냐? 총결해 보았느냐? (일하는 원칙을 장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한 해 동안, 업무적인 분야에서 너희는 적지 않게 제고되었다. 사실, 너희들 자신이 출 줄 아는 춤의 부류나 기술은 기본적으로 원래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단지 얼마나 능숙하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럼 다른 점은 무엇이겠느냐? 너희가 발전한 부분과 원래 갖고 있던 것의 다른 점은 무엇이냐? 어떤 것과 관계되느냐? 그때에도 기술이 있었고, 또 이 분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까? (진리가 없고 일하는 원칙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큰 방향이다, 그렇지? 그것이 주된 원인이다. 그럼 사람이 원칙을 장악하면 업무도 따라서 제고되지 않겠느냐? 자신이 배운 그만한 것들을 다 써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 발휘할 곳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만약 그런 원칙을 장악하지 않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너희가 배운 것을 써먹을 때 적절하게 잘 살릴 수 있을까? 무척 힘들다, 그렇지? (맞습니다.) 스스로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모르고, 어디에다 써야 할지도 모르고, 어떤 것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다 꺼내서 쓰자니 아닌 것 같고, 다 꺼내 놓지 않자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일부분만 꺼내자니 그것도 또 맞는지 잘 모른다. 맞는지 틀리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갈피를 못 잡는다’, 그렇지? (네.) 그럼 ‘갈피를 못 잡는 것’은 무슨 영문이겠느냐? (원칙이 없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너희들을 보면, 대부분이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학력이 조금 더 높으면 대학 졸업생들이다. 다 지식이 있다. 현시대에 태어나 다 견식도 좀 있다. 모두 현대인들이다. 틀림없이 기성세대보다 보고 들은 것도 많고 박학다식하고, 또 할 줄 아는 것도 많다. 현대인인 너희의 여러 가지 조건들로 보면,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것에서, 또 일을 처리하는 것에서 갈팡질팡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그렇게도 생소해하는 것일까? 하나님 집에 들어와서 일을 처리할 때 왜 그렇게 힘겨워하는 것일까? 원칙에 부합되고 진리에 부합되게 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원인을 찾아보았느냐? 너희에게 말씀을 한 토막 꺼내 놓으면, 너희는 그 말씀의 글자는 다 알고 각 구절의 표면적인 뜻도 다 이해한다. 그럼 그 말씀을 가지고 안무를 짜라고 하면, 그러니까 그 말씀을 스토리로 풀어내라고 하면 너희는 할 수 있느냐? (이제는 갈피를 좀 잡았습니다.) 이제는 갈피도 좀 잡았고 원칙도 좀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할 줄 알았느냐? (몰랐습니다.) 왜 할 줄 몰랐을까? 글자도 알고 말씀도 이해하는데, 왜 할 줄 몰랐을까? (진리 실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말했다, 진리 실제가 없었다. 어떤 진리 실제가 없었던 것이냐? 말씀 한 구절을 꺼내 놓으면 어떤 사람은 “전 이 구절을 한 달 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요. 이 말씀을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정말 누림이 있어요, 정말 성령의 깨우침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저는 매일 이 구절을 놓고 적어도 10분, 20분은 보고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것 같고, 하나님과 서로 마음이 맞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눈앞에 계시고 제 마음속에 계시는 것 같아요. 이 말씀을 보고 있으면 마음에 정말 누림이 있어요.”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말씀의 진정한 함의가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실제로 일에 부딪힐 때에는 그 말씀을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그 말씀을 볼 때면 누림이 있다고 한다. 이러면 진리 실제가 있다고 할 수 있느냐? 너희는 이렇게 느낄 때가 있느냐? 말씀을 한 토막 보고 나면 정말 감동이 넘치고, 그 토막을 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말씀의 진리가 무엇인지, 어떤 진리를 표현한 것인지, 하나님의 어떤 마음과 요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이런 것을 모르는데 진리 실제가 있다고 할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어떤 것을 진리 실제가 없다고 하느냐? 어떤 것을 진리 실제가 있다고 하느냐? 너희가 이해한 대로, 경력(역주: 체험)한 대로 말해 보거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할 때마다 10분, 20분씩 있는다. 그리고 그 말씀을 날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면서 엄청 감동받는다. 그 감동이 진리 실제가 맞느냐? (아닙니다.) 또한 늘 그 말씀을 외워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그 말씀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잡아주고, 거기에서 공급을 받는다. 그러면 진리 실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 그것은 무엇이겠느냐? 그러한 감동, 그러한 심령의 느낌은 어떤 것인지 너희가 말해 보아라. (감성적인 인식입니다.) 감성적인 인식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느냐? 말해 보거라. (그 말씀에서 표현하려는 뜻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내포된 뜻은 파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내포된 뜻이란 무엇이냐? 무엇을 내포된 뜻이라고 했었지? (실제적인 경력입니다.) 실제적인 경력을 보통 어디에 활용하느냐? 실제적인 경력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원칙을 가리킵니다.) 그럼 그 원칙을 일상적인 말로 어떻게 표현하느냐? 일반적으로 어떻게 말하느냐? 바로 진리 실제가 아니냐? 알아듣기 쉽게 간단하게 말하자면 바로 그 말씀의 진리이다. 그 말씀의 진리, 그 진리를 실제에 활용하고 스스로 경력해 내고 인식이 생기는 것, 즉 감성적인 인식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력과 느낌과 인식이 생기는 것을 진리 실제라고 한다. 그럼 너희는 지금 자신이 어떤 진리에서 경력을 했고 진리 실제가 있게 되었는지 알고 있느냐? 스스로 알고 있느냐? 너희에게는 혹시 이런 느낌은 없느냐?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한 토막 꺼내 놓고 글자 표면상에서 한번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신의 정형에 비추어 봤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매우 감동받아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놓고 하는 말씀이고, 자신의 정형을 겨냥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토막 말씀에서 유익을 얻었고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았고 공급을 받아서 정형이 돌아섰다고 생각한다. 글자 표면을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감동도 받고 만족도 얻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좋다고 생각하며 기뻐한다. 그러고는 ‘됐어! 하나님 말씀에서 인식이 생겼으니 난 이제 진리 실제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으니 난 진리도 있고 실제도 있어.’라고 생각한다. 이런 느낌이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이런 느낌이 자주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그럼 이 일이 있고 난 뒤에, 너희는 그 단락에서 정말로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얻었다는 느낌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가늠하는지 알고 있느냐? 어떻게 가늠한 것이냐? 없었다고 했으니 그 느낌은 틀림없이 좀 감성적이고 일시적인 감동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감동받은 것은 틀림없이 진리 실제를 얻은 것이 아니고, 진리 실제에 진입한 것이 아니다. 그럼 그것은 어디에 진입한 것이냐? 바로 글자 표면의 뜻에 진입한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더 없이 감동받았다,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해야 글자 속의 뜻에 진입할 수 있을까? 글자 표면상에서 떠돌지 않고, 그 말씀을 너의 생명으로 만들고, 너 자신의 생명이 되게 하고, 너의 생명으로 바뀌게 하는 효과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희는 경력한 말로 얘기해 보거라, 너희들이 이런 말씀에서 좀 경력하였는지 보자. 너희는 경력한 적이 있느냐? 이러한 체험이 있느냐?

지금 보니 너희는 다 분량이 조금 자랐고, 다들 조금은 깨달은 것이 있구나! 글자 표면에서 깨닫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진리를 깨닫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너희는 감성적인 인식이 조금 있구나. 글자 표면을 깨닫는 것은 글귀 도리이고, 그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그런 말씀이 너의 생명으로 될 수 있을까? 너의 생명으로 변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 안에 자리 잡게 해서 사람의 생명으로 변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경력이 있느냐? 그 말씀이 도리로 남지 않고 글 표면의 뜻으로 남지 않고, 말씀을 너의 생명으로 여기고 진리로 여기며, 자신의 생명으로 바뀌게 하고 자신의 실제로 바뀌게 하고, 그 말씀을 살아내려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 생활 속으로 가져와 실행해야 합니다. 생활 속의 정말 작은 일에서 실행해야 합니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으로 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이것 보아라! 너희들 가운데 20년을 믿은 사람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 모르고 있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경력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먹어야 너 자신의 실제가 되고, 너 자신의 것이 되는지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성찰하면서 자신이 한 모든 소행의 실질을 찾아서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한 방면이다. 가장 기초적인 것을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 생활 속으로 가져와 실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는 생명이기 때문에 너에게 가져다가 쓰라는 것이다. 무슨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쓰라는 것일까? (자기 속에 있는 패괴 성정을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패괴 성정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패역, 관념, 상상, 교만한 성정, 이런 것들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그럼 너희는 어느 단락의 말씀으로 자신의 한 방면의 패괴 성정을 해결하였고, 지금 그것을 경력하고 있다고, 지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그 방면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경력이 있느냐? 이런 경력이 있느냐? (있습니다.) 그럼 너희는 자신의 경력을 말해 보거라. 얕아도 걱정할 것 없다. 얕아도 실제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 생활 속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럼 어떻게 가져왔는지 보자.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고, 사람의 패괴 성정을 해결하고, 사람의 패역을 해결하고, 언제나 사람에게 공급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사람에게 길이 되고, 방향이 되어 준다는 것을 느낀 경력이 있느냐? 이런 경력이 있느냐? (있습니다.) 이런 경력이 있다면 말해 보거라. 너희의 어떤 결함과 문제를 해결했는지, 어떤 방면의 패괴 성정을 해결했는지 말해 보거라.

하나님 말씀을 외우는 것으로 패괴 성정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느냐? 항상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항상 다른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는 것으로 패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느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비추거나 설교를 해 주는 것으로 패괴 성정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람의 패괴 성정이 해결될 수 있느냐? 억제하면 될까? 가장하면 될까? 말을 적게 하면 될까? 아무것도 안 하면 될까? (안 됩니다.) 어디에 숨어 버리면 될까?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하나님 말씀에서 자신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대조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대조된 다음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진리를 실행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것, 우선 원칙부터 장악해야 하지 않겠느냐? 우선 원칙부터 장악해야 한다. 원칙이란 무엇이냐? 진리의 실제적인 면이 아니냐? 원칙이란 바로 진리의 실제적인 면이다. 네가 어느 말씀을 글자 표면상으로 보고 진리가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 속의 원칙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그 말씀이 맞다고 생각되어도 그 속의 실질적인 면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엇을 겨냥한 말씀인지, 어떤 정형을 겨냥한 말씀인지, 그 말씀의 원칙이 무엇인지, 너에게 길이 되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장악하지 못한다면, 그 진리는 너에게 도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일단 그 말씀의 원칙을 장악하게 되면, 너는 그 진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네가 기꺼이 대가를 치러 실행해 낼 수 있다면, 즉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고 실행할 수 있다면, 너는 진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진리를 얻는 기간에 너의 패괴 성정은 조금씩 해결되며, 진리를 얻는 기간에 그 진리가 네 마음에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네가 진리의 실제를 가지고 진리를 실행하고 그 원칙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즉 그 원칙으로 본분을 하고, 모든 일을 처리하고, 그 원칙으로 참된 사람이 된다면, 너는 변화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겠느냐? 우선은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럼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은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냐? (맞습니다.) 그럼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진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냐? 진리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데에 이를 수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바로 이런 관계이다, 알겠지? 이런 관계가 복잡하냐? (복잡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항상 ‘진리가 없어, 진리가 없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럼 진리가 없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일 처리에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바로 진리의 실제를 깨닫지 못했고, 진리의 정수(精髓)와 실제적인 면을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네가 단지 글자 표면에만 머물러 있으며 말은 이해했고 글자 표면의 뜻은 알았지만, 그 속에 있는 진리의 실제적인 면이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면, 너는 일을 해도 원칙이 없고 할 줄도 모르며, 늘 구속받아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다 어느 정도 기술이 있고,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다 괜찮게 하는 것 같은데, 특히 어떤 사람들은 어느 방면의 기술이나 그 분야에 대해서 다 능통한 사람인 것 같은데, 왜 활용하려면 그렇게 힘겨운 걸까? 너희에게 그만한 능력이 없어서일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 너희가 무식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처음에 그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런 것이 맞느냐? 어떤 사람들은 이렇다고 해도 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천편일률로 똑같게 말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진리를 얻지 못했고 진리의 실제를 모른다면, 학력이 아무리 높아도,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많은 분야의 일을 할 줄 알고 많은 기술을 익혀도 소용이 있을까? 소용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집에 오면 뭐 같느냐? 바보 같지 않으냐? 스스로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렇지? 그런데 왜 한두 해 지나면 바보스러워 보이지 않느냐? 거기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까? 무엇이 발전되었기 때문일까? 무엇을 얻었기 때문에 그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진리를 좀 깨달았고, 일 처리에 원칙이 좀 생겼기 때문입니다.) 맞다. 일 처리에 원칙이 좀 생기고 진리를 좀 깨닫게 되면, 일을 하는 데에 방향이 좀 있게 되지 않겠느냐? 이런 것을 보고 뭐라고 하느냐? 진리 실제에 좀 진입한 것이 아니겠느냐? (맞습니다.) 그러면 진리 실제에 좀 진입한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지금 어떤 일들을 할 때 전처럼 그렇게 찜찜한 느낌이 없지 않으냐? (네.) 전에는 좀 찜찜했다. ‘이렇게 하는 게 도대체 맞는 건가?’ 하면서 아는 사람도 없으니 되는 대로 하자는 식으로 했다. 해놓고 나면 책망을 받거나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늘 거부당했다. 그러면 너희는 속으로 불쾌해했다. 지금은 어떤 느낌이냐? 그 당시에는 너희를 책망하면 너희는 어떻게 생각했었느냐? 너희는 ‘상면은 너무 각박해! 계속 통과시켜 주지 않아! 이렇게 해도 안 된다 그러고, 저렇게 해도 안 된다 그러고. 왜 우리한테만 트집 잡는 거야? 이래도 틀리고, 저래도 틀리다고 하네.’라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짜증 내면서 거역하는 정서가 있지 않았느냐?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떠하냐? 지금은 많이 좋아지지 않았느냐? (좋아졌습니다.) 사실로 증명되는 것처럼 지난 1년을 지내오면서 너희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으냐? 상면에서 너희에게 요구한 것이 대부분 합당하지 않았느냐? (합당했습니다.) 너희에게 유익하지 않았느냐? (유익했습니다.) 너희에 대한 요구에 원칙이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너희는 원칙들을 장악하게 되었구나. 그렇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기술을 배우는 것과는 다르다. 3~5년의 시간을 들여 쇠공이를 바늘로 가는 식으로 공만 들이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진심이다. 그것은 공을 들여서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마음을 기울여야 하고 진짜로 실행해야 하고 진짜로 힘을 써야 하는 것이다. 한 방면으로는 대가를 치러야 하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방향이 맞아야 하고 가는 길도 옳아야 한다. 사람이 은혜시대에 하나님을 믿을 때에는 성경을 좀 많이 외웠다. 처음에는 성경을 읽어도 대부분 구절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뜻인지 모른다. 그렇게 3~5년 믿다 보면 사람들은 늘 입에 달고 있는 구절들을 조금씩 외우게 되고, 그러면 조금 얻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님을 믿는 데에 성과가 있어.’라고 하게 된다. 계속해서 8~10년 믿으면 유명한 구절들을 대부분 외울 수도 있고 볼 줄도 알게 된다. 그리고 8~10년 더 믿으면 오래된 신자가 된다. 오래된 신자가 되면 성경 이야기도 거의 대부분 하나하나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좀 해 주고, 좀 읽어 줄 수도 있게 되니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다 됐다고 느끼며 천국에 들어가는 데에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보면 사람의 생각은 너무 황당하지 않으냐? (황당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믿으면 뭔가를 얻을 수 있느냐?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주로 무엇을 얻어야 하느냐? 너희는 이 한 해 동안에 하나님을 믿는 의의에 대해 심령에서 좀 깨달은 것이 있느냐? 실제적으로 알게 된 것이 좀 있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은 도대체 뭘 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하신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은 사람에게 도대체 어떤 의의가 있느냐? 이것에 대해 어떤 인식이 없느냐? 이런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봐라,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장황해. 만약 그림책처럼 8~10페이지 정도 되면 참 좋을 텐데! 평생 그 정도만 봐도 충분해, 그 정도면 돼. 대충 읽고 어느 정도 깨달으면 되지, 이렇게 쉬웠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면서 말씀이 너무 많아서 읽으면 좀 지겹고, 보기만 하면 졸리고, 졸리니 좀 자고 싶고 눈을 잠깐 붙이고 싶어 한다. 눈을 좀 붙이고 깨어나서는 그래도 하나님을 믿을 바에는 잘 믿어야 한다면서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 눈꺼풀에 성냥개비를 꽂아 지탱시키더라도 말씀을 많이 봐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많이 봐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으니 어떡하냐고 한다. 젊은이들은 시간만 나면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 게임이나 새로운 뉴스나 핫이슈를 보고 싶어 한다. 여자들은 유행하는 의류나 헤어스타일이나 유행하는 춤이나 지금의 트렌드를 본다. 남자들은 지금 출시되는 게임이나 휴대폰이나 컴퓨터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어떤 것들이 유행되고 어떤 것이 더 멋있는지, 지금 시장에서는 모두 어떤 옷들이 유행되고 있는지, 어떤 유행어가 있는지를 본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이렇게 신나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무미건조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보았느냐? 다수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는 게임을 하는 것을 철저히 막는다고 여기지 않느냐? 게임 속에 마귀가 있으니 하나님은 절대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하고, 또 이방인들 사이트에도 마귀가 있으니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리고 시대의 흐름도 다 마귀이고, 다 사람의 혼을 홀려 가는 것이고, 다 사람을 해치는 요괴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시대의 흐름도 따라가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또 웹사이트도 보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특히 어떤 젊은 친구들은 궁금한 것들을 보고 나면 마음이 불안하고 죄책감에 빠져 또 마귀에게 속았고, 또 마귀에게 해를 당했다고 생각하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면 이겨 낼 수 있을까?’라고 하지 않느냐? 너희들이 좋아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서 선택하기가 쉬우냐? 가장 내려놓기 쉬운 것은 어떤 것이고, 가장 유혹당하기 쉬운 것은 어떤 것이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의 말씀에서 너희가 가장 보기 좋아하는 것은 어느 단락, 어떤 부분이냐? 너희같이 젊은 친구들 중에 예배만 드리면 잠이 쏟아지면서 졸리고 기분이 가라앉다가도 춤출 때만 되면 신나고 쌩쌩해지고 흥분되는 사람이 없느냐? (있습니다.)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느냐? 다들 곰곰이 생각해 보거라. 작은 문제일지라도 마음을 많이 써야 한다. 마음을 많이 쓰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지? 잘 생각해 보거라.

다들 좀 생각해 봤는데 어떠냐? 생각해 낸 것이 있느냐? 결과를 얻었느냐? 이런 일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개인의 취미, 개인의 일상생활을 조절하면 되는 일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개인적인 취미가 있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빨간색을 입으면 되고, 검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검은색을 입으면 된다. 하지만 너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너희는 지금 여기서 본분을 하면서 본분을 지체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적인 자유 활동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주말이나 일이 바쁘지 않을 때, 특히 어떤 젊은 형제들은 게임을 좋아하니까 시간표를 짜 놓을 수 있다. 말하자면, 오늘은 바쁘지 않으니까 자신에게 쉴 시간을 주는데, 20분이나 30분이라는 시간을 주어 게임을 좀 하는 것이다. 게임을 다 하고 별로 재미없는 것 같으면 다음번에는 하지 않게 된다. 이번에 한 번 한 것으로 20일 정도는 해결됐다. 20일이 지난 뒤에 생각해 보니 ‘아니야, 그래도 참 재미있었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하고 싶다. 최근에 앵그리버드라는 미니 게임이 출시됐으니 좀 해 보고 싶어진다. 해 보니 꽤 재미있었다. 그래서 며칠 뒤에 또 하고 싶어졌는데 ‘안 돼. 본분이 있어, 지체하면 안 돼. 하다 보면 일이 지체될 수 있으니, 하지 말고 먼저 본분부터 잘하자.’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안정해서 본분을 잘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첫째가는 중요 임무이다. 중요 임무란 무슨 뜻이냐? 지식인들은 ‘첫째가는 중요 임무’가 무엇인지 다 안다. 첫째가는 중요 임무란 무슨 뜻이냐? (가장 중요한 일을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첫 번째로 중요한 일, 첫 번째로 큰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으냐?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결하기 쉽다. 첫 번째로 큰 일이니 너는 그것을 자신의 생활 계획표의 첫 순위에 놓고 자신의 본분부터 잘해야 한다. 오늘은 본분도 마쳤는데, 누구랑 수다 떨 생각도 없고 예배도 없으니 좀 한가하다. 그럼 어떻게 하지? 마음이 아주 혼란스러운 것 같다. 그래서 기도를 한다. 기도를 하고 나니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 하지만 작은 취미가 좀 있는데, 게임도 하고 싶고,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도 해 보고 싶고, 컴퓨터로 검색도 해 보고 싶고, 또 새로 출시된 게임기도 검색해 보고 싶다. 그럼 검색해 보거라, 검색해 보는 것은 괜찮다. 돈을 내서 사는 것도 아니고, 보는 것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걱정할 것이 뭐가 있느냐. 검색해 보면서 요즘 새로 출시된 컴퓨터를 본다. ‘괜찮네? 기능도 아주 많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보다는 못하다. 보면 그만이다. 보고 나면 어떠냐? 시대의 흐름과 같이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 시대의 유행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 시대적 유행이나 이 시대에서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 속으로 굉장히 흐뭇해하며 ‘난 현대인이야. 컴퓨터로 검색할 줄도 알아. 요즘 출시된 최신 전자 제품을 검색할 줄도 알아.’라고 한다. 검색을 해 보고는 뿌듯해하면서 만족을 얻는다. 그럼 이제 마음을 다잡아야겠지? 근데 아닌 것 같다. 최근에 이런 이런 휴대폰이 출시된 것 같은데, 계속 검색해 봐야겠다. 검색한 다음에는 입을 다시며 만족해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걸 나도 알았어. 내가 사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어. 다른 사람이 할 줄 아는 거 나도 할 줄 알아.’라고 생각한다. 만족스러워하지 않느냐? (맞습니다.) 만족스러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네 마음속에 기껏해야 그 정도의 것들을 담고 있지 않으냐?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 그 두 가지가 다 만족을 얻었으니 마음을 다잡아야 하지 않겠느냐? (네.) 너희는 이 두 가지를 검색해 보는 데에 보통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계산해 본 적이 있느냐? 손이 빠르고 능숙한 사람은 10분이면 다 검색해 볼 수 있느냐? 통계해 본 적이 없느냐? 10분에 다 검색하지 못하면, 20분이면 다 검색할 수 있느냐? 대답을 안 하는구나. 너희는 지금 내가 함정을 판다고 생각하느냐? 만약 너희가 얼마만한 시간이면 다 검색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내가, 너희는 자주 검색한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그러는 것이냐? 앞으로 검색하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스스로 계산해 보거라. 형제들은 보통 이런 것들을 검색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에 몇 번 툭툭 하면 사실 20분도 필요 없이 3~5분이나 1~2분이면 검색해 낼 수 있다. 이런 것을 검색하는 것은 쉽다. 근데 꼭 그렇게 거기에 딱 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다 검색하면 또 저것을 검색하고 싶고, 저것을 다 검색하면 또 다른 것을 검색하고 싶어 한다. 하나하나 검색하면서 줄줄이 검색하다 보면 떨어지지 못한다. 본연의 일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맞습니다.)

너희와 이런 일들을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이겠느냐? 사람이 젊었을 때에는 다 이런 취미가 있고, 머릿속에 다 이런 것들이 있으니 정상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너는 그것을 용서할 수 없는 심각한 죄로 여기지 말거라. 우린 그런 것을 용서할 수 없는 심각한 죄로 여기지 않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제멋대로 방종해서도 안 된다. 취미로 가져도 되고, 가끔씩 좀 놀아도 되고, 긴장 상태를 풀거나 한숨을 돌리거나 산책을 좀 하는 것도 다 된다. 하지만 본연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든, 젊은이든 중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네가 본연의 일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싫어한다.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날마다 빈둥빈둥 놀 생각만 하고, 늘 돌아다니고 싶어 하고, 항상 가만히 있고 싶어 하고, 계속 놀고 싶어 하고, 늘 잡담하기 좋아한다면, 어디를 가든 아무도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라고 해도 이런 자녀를 기뻐하겠느냐? (기뻐하지 않습니다.) 너희 부모도 기뻐하지 않는데, 하나님이라고 기뻐하겠느냐?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기뻐하지 않는다. 기뻐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본연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한 방면이다. 다른 한 방면은 바로 젊은 사람들은 스스로 계획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계획적이라고 하는지 아느냐? 학교에 다녀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계획적이란 무엇이냐? (계획을 세우는 걸 말합니다.) 바로 생활 속에서 어느 시간대에는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해야 할 시간에는 그것을 하는 것이다. 시간에 따라, 계획에 따라, 시간표에 따라 정직하고 반듯하게 규칙적으로 일을 하면서 마음대로 하거나 산만하지 않고 방탕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대로 하고 산만하고 방탕하면서 제멋대로 규약도 없고 규제도 없이 일한다면 큰일이다. 그런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다. 하나님 집에서 엄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어느 회사나 직장에서 일을 해도 마음대로 하거나 산만하고 항상 빈둥거리면서 10분이면 할 일을 2시간씩 하고, 중간에 툭하면 가서 물을 마시고 툭하면 화장실에 가고, 툭하면 돌아다니고 수다나 떤다면, 어디를 가도 너를 써 줄 사람이 없고 다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냐? 사람들은 보통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맞다. 효율적이고, 신용이 있고, 믿음직스럽고,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 일을 착실하고 정성을 들여서 하고, 다른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고, 어느 부분을 담당할 수 있다면, 이는 좋은 사람이다. 정말 매우 좋은 사람이다. 거기다 진리를 깨달아 원칙 있게 일을 하고 대충대충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며 진리에 부합되게 한다면,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냐? 그러면 좋은 사람, 진리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냐? 이것 보아라, 이런 사람은 사는 것이 떳떳하지 않겠느냐? (떳떳합니다.) 좀도둑이나 하는 짓, 떳떳하지 못한 짓, 그런 생각들이 합당하겠느냐? 버려야 하고 변화돼야 하겠지? (네.)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너희 젊은 사람들은 자신이 전에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었든, 늦잠을 자기 좋아한다거나, 침대에서 뒹굴거리기 좋아한다거나, 우스갯소리를 하기 좋아하는 등 일부 악습관들을 고쳐야 한다. 그리고 정직하고 반듯하며, 인성이 있고, 말을 똑 부러지게 하고, 생각이 있으며, 말을 하고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말라. 우선 자신의 하루의 삶, 일주일 동안 날마다 어떻게 할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매일 각 시간대마다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일들을 할 것인지를 계획하고 시간표를 짜야 한다. 어느 시간에 쉬고 어느 시간에 일을 하며, 어느 시간에 사적인 일을 할 것인지, 속으로 생각이 있어야 하고 계획이 있어야 한다. 아침 몇 시에 일어나고 일어난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계획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일이 바쁘지 않다면,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영적 수양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눈을 뜬 다음 해야 할 제일 큰 일이다. 영적 수양을 해야 한다. 영 생활이 비정상적이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성장할 수가 없다. 우선 생활이 규칙적이어야 한다. 첫 번째가 영적 수양을 하는 것이다. 매일 영적 수양이 보장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묵도하고, 찬양을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교통해야 한다. 형제자매들과 교통하면서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찾고 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한동안 어떤 패괴 성정을 유로(역주: 흘러나옴)했는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 진리에 어긋나는 일, 인성이 없고 도덕이 없는 일은 어떤 것을 했는지 성찰하면서 주기적으로 총결해 봐야 한다. 혼자 총결해서 너희의 컴퓨터 메모장에 적다 보면 부지중에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하게 되고 하나님 믿는 삶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면 너는 먹는 일, 노는 일, 또 트렌드에 관련되는 일들에 대해서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고, 그런 것들을 보는 횟수도 갈수록 줄어들게 될 것인데, 그런 것들이 갈수록 너를 매료시키지 못하고 유혹하지 못하게 된다.

너희는 지금 어떠하냐? 아직도 가끔씩 이것저것 보고 싶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럼 너희는 어떻게 했느냐? 원칙이 있느냐? 제멋대로 하면 되겠느냐? 보고 싶을 때는 좀 더 보고, 보고 싶지 않을 때는 좀 적게 보다가 본분을 좀 하는 식으로 하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뭐든 순리대로 가야 하지 않느냐! (그것은 육체를 방탕하는 것입니다.) 맞다. 네가 그렇게 한다면 너의 생명은 자랄 수 없다. 네가 본분을 잘하지 못하면 진리를 얻지 못한다. 솔직하게 말해 주겠다. 네가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진리를 얻을 수 없다. 네가 여기서 시간을 때워도 소용없다. 너희는 진리를 얻고 싶으냐?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고 싶으냐? (네.) 그럼 첫 단계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자신의 생활에 계획을 짜야 한다. 어떤 사람은 게임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한 번만 하고, 한 번에 20분으로 정하고, 다 하고 나면 그 한 주간은 더 이상 하지 못한다. 어느 날 짬을 내서 하고 싶어도 더 이상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하고 싶으면 다음 주를 기다려야 한다. 다음 주 어느 날? 그건 시간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20분으로 정해 놓고 스스로 알람을 설정해 놓아야 한다. 그래서 휴대폰이 “따르릉” 울리면 시간이 다 되었으니 바로 멈춰야 한다. 그날은 더 하지 말고 거기까지만 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에서 결과가 나지 않았어도 하지 못한다. 어떠냐? (좋습니다.) 만약 오늘 시간을 초과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번에 벌을 준다. 10분을 초과했으면 다음번에는 몇 분을 해야지? (10분을 적게 해야 합니다.) 이번에 10분을 더 많이 했으니 다음번에는 10분을 적게 하는 것이다. 다음번에도 또 10분을 초과하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 다음 주에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 (취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너는 또 감독 제도를 세워야 한다. 네 주변 사람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제가 이번 주에 10분을 넘었어요.”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너에게 “그럼 다음 주에는 하지 못하겠네요! 다음 주에는 10분밖에 없어요.”라고 한다. 다음 주에 모르고 또 20분을 했다면, 그 사람은 너에게 “다음 주에는 없어요. 또 하면 혼낼 거예요.”라고 한다. 그러면 너는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감독을 해야 한다. 너는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인위적인 협력, 사람의 자제, 그리고 자기의 몸을 극복하는 것, 육체 배반, 자신의 취미를 버리는 것, 자신의 취미를 내려놓는 것 등이다. 그런 것들에는 너의 대가가 필요하다. 네가 오늘은 10분을 버리고 내일이나 다음번에 또 10분을 버리는 식으로 간다면, 너는 게임을 하는 횟수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많아지면서 너는 이런 것, 젊었을 때 가졌던 취미에 대해 조금씩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10살 때에는 막대 사탕을 좋아한다. 하지만 20살이 되면서 더 이상 막대 사탕을 물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20살, 30살이 넘었는데도 막대 사탕을 물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 거의 없다. 다 10살 정도의 아이들, 3~5살 정도 아이들이나 입에 막대 사탕을 물고 먹으면서 엄마를 부른다. 20살 정도 된 사람은 거의 그것을 먹지 않는다. 그때 가서도 먹는 사람은 말썽을 피우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사람,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 그럼 왜 그 나이대에는 좋아하지 않겠느냐? (나이가 많아지면서 재미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 자라나는 자연적인 과정이고, 자연적인 법칙이다. 여자들이 어렸을 때 머리 묶는 것을 보아라. 양 갈래 머리를 하고, 거기에 꽃 모양 핀도 꽂고, 또 사과 머리도 하고, 세 갈래 머리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안 할까? (유치합니다. 너무 바보 같습니다.) 왜 바보 같으냐? 그때는 왜 바보 같다는 것을 몰랐느냐? 그때는 필요했었다. 그렇지? 지금은 왜 그렇게 묶지 않느냐? 지금 나이대에서는 성숙해졌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어릴 때에는 핑크색 옷이나 핑크색 바지, 핑크색 신발 등을 좋아한다. 그럼 지금 나이대에도 그렇게 입고 나갈 수 있을까? 그때 그렇게 좋아했으면 평생 좋아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왜 지금은 좋아하지 않을까? 성장한 것이다, 그렇지? 성장했으니 아주 자연스럽게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네가 좋아하지 않는 그 기간에 이르고 그 정도에 이르기까지, 이 과도기에는 단속하고 자제할 방법을 취해야 한다. 자제한다고 그것을 완전히 못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견디지 못한다. 젊은이들은 자제하지도 못하고, 억제하기도 힘들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조치가 있어야 하고, 방법이 있어야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닐 때를 보아라.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꼬리잡기 놀이를 한다. 만약 선생님이 데리고 놀지 않으면 아이들은 혼자라도 놀아야 한다. 수업 전에 휴식 시간이 있는데 아이들은 꼭 놀아야 한다. 수업이 하나 끝나면 10분 동안 논다. 수업 시간은 45분이다. 중국의 학교는 이렇다. 그만한 시간을 공부하고 잠시 놀아야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을 보면 그저 ‘1+1=2’, “소치기 소년 왕이소”, 이런 것만 배운다. 이렇게 간단하지만 휴식 시간에 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대학에 가면 누가 상관하느냐? 놀든 말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이냐? 거기서도 꼬리잡기 게임을 하느냐?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1~2학년에서 놀지 못하게 하면 되겠느냐? 제기차기나 고무줄이나 꼬리잡기나 줄넘기 같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그럼 계속 놀기만 하는 것은 안 되느냐?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그것도 안 됩니다.) 그럼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떻게 하면 공부하는 것과 노는 것을 알맞게 나눌 수 있겠느냐? 공부도 지체시키지 않고 성장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시간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계획이 있고 규칙 있게 생활해야 한다. 두 가지 다 극단적으로 하면 안 된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하고 양만 치게 하면서 아무 지식도 배우지 못하게 하거나 아니면 하루 24시간에서 8시간은 내내 수업만 듣게 하고 잠시도 놀지 못하게 한다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안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싫어한다. 하나님을 믿는 대부분 젊은이들은 만약 스스로 매우 열정이 있어서 믿은 것이 아니라면 다 부모를 따라 믿었거나 가족의 영향을 받아 믿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것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특히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서 늘 힘이 나지 않는다.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두 눈꺼풀과 씨름을 하고, 예배를 드리지 않을 때에는 두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정신이 나는데, 밤을 새워도 괜찮을 정도이다. 그것은 한 방면으로는 이 패괴된 인류가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천성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20살 정도 되는 젊은이들에게는 본연의 일을 하냐 안 하냐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인생이나, 앞으로의 귀숙이나, 하나님을 믿는 일이나, 피조물이나, 조물주나, 천지 만물 등등 이런 것에 관한 개념이 아주 희미하고, 의식적으로 아주 모호하고 또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이 세상, 화려한 세상의 각종 정보나 트렌드들이 사람에게 유혹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기 쉽지 않은 것도 있다. 사람에게 본래 이런 정형이 있는 데다가 지금의 이런 환경에서 네가 자신의 삶을 규칙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다. 보아라, 지금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며 본분을 하는 환경이 있어서 너희가 다 여기에 안정적으로 앉아 있고, 본분을 하는 것 같아도 만약 너희를 집으로 돌려보낸다면 너희들 중에 어떤 사람은 아마 넘어질 것이다. 지금 이런 환경이 너희에게는 아주 유익하다. 만약 너희들이 이 기회를 잘 잡는다면 2~3년 안에 신앙의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수 있다. 정상적으로 영 생활을 하는 습관을 스스로 키워야 한다.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데에 관심을 가져서 하나님을 믿는 데에 관련된 아주 많은 이상(異象)을 모두 깨닫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야 할 길에 대해 잘 알고 분명해진다면, 그 뿌리를 튼튼히 내린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너희를 집이나 현지 교회에 돌려보내도 지금의 분량이 있고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아무런 위험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렇지?

지금 너희 자신의 생활, 각 사람의 생활에 모두 계획이 있어야 한다. 하루 동안 본분을 몇 시간 할지 계획해야 한다. 밥을 먹고 사람들과 함께 수다를 떨거나 길에서 시간을 좀 지체하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 외에, 본분하고 예배한 나머지 시간에서 혼자 영적 수양을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거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거나, 묵상하거나, 진리를 추구하는 시간을 스스로 내야 한다. 흐리멍덩하게 지내지 말고 효율적인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1년이 지나지 않았느냐? 시간이 길게 느껴지느냐? 눈 깜짝할 사이에 너희는 한 살 더 먹지 않았느냐? 작년까지만 해도 어린이였는데 올해는 큰 어린이가 되고, 내년이면 어른이 된다. 아직도 어리느냐? (어리지 않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어린애인 것 같으냐. 예전 같으면 그 나이가 적은 것이 아니다. 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줄줄이 있었을 것이다. 위로는 노인을 모시고 아래로는 아이들을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일은 너희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뿌리를 내리는 것, 뿌리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 우선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 (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활에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흐리멍덩하게 보내지 말고 마음에 본연의 일이 있고 길이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 시간표에 따라 엄격하게 실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요일, 주말 저녁에 밥을 먹은 뒤에 자유 시간을 가지고 게임을 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네가 월요일에 해 버렸다. 그러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감독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감독을 시키겠느냐? (형제자매들끼리 서로 감독하거나 주변의 사람에게 감독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것은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께 지켜봐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렇지? 사람이 사람을 지키는 것은 소용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켜야 효과가 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하나님, 제가 일요일에 게임하기로 했었는데, 지금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게임하지 못하게 징계해 주세요. 그럼 하지 못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되느냐? (됩니다.) 스스로 방법을 좀 취해야 하고 심지(心志)도 있어야 한다. 네가 그렇게 정한 이상,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정한 이상 너는 말한 대로 지켜야 한다. 하나님에게 감찰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야 한다. 자신이 잘못을 해서 하나님을 기만했으면, 자기 잘못을 인정해야 하고 회개할 줄 알아야 한다. 강퍅하고 거역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우선 매일 하루의 생활을 잘 계획해야 한다. 어느 날에 할 것인지, 매일 어느 시간에 영적 수양을 하고, 어느 시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을 것인지, 일이 임하면 어떤 원칙에 따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자신의 본분을 잘하려면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하는지,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모두 잘 정해 놓아야 한다. 어느 시간에 휴대폰을 볼 것인지, 어느 시간에 휴대폰 검색을 할 것인지, 어느 시간에 컴퓨터 검색을 할 것인지, 이런 것들을 다 분명하게 나눠 놓아야 한다. 이런 생활이 규칙적으로 되어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너는 자신도 모르게 이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 하나는 그렇게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고, 다른 하나는 주요하게 생명 진입 방면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런 큰일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되는데,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 흐리멍덩하여 아무것도 모르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다. 자신의 계획에 따라 엄격하게 실행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어려움이 임하거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정형이 좋지 않으면 놓치지 말고 잘 잡아서 성찰해야 한다. 그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비추어 보고 또 실행의 길을 찾으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가끔 소극적인 정형이 있으면, 그 원인을 찾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체면을 구기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사치한 욕망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왜 소극적이 되었는지, 어떻게 된 것인지를 거듭 성찰하면서 최대한 빨리 소극적인 정형에서 나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람이 늘 소극적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느냐?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도 계속 소극적이 될까? (안 됩니다.) 진리가 사람의 소극적인 정형을 해결할 수 있느냐? (있습니다.) 너희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됐다. 계획을 정하여라. 생활에 규칙이 있어야 한다. 정상 인성의 제일 첫 번째가 바로 생활에 규칙이 있는 것이다.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방종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잘 믿으려면 먼저 뿌리를 튼튼하게 내려야 한다! 먼저 뿌리를 내리고 점차적으로 자신의 악습관, 나쁜 버릇, 안 좋은 습관, 안 좋은 생활 방식들을 조금씩 고치면서 인성이 있는 사람, 정상 인성의 삶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 생활도 정상적이고 정상 인성의 생활도 정상적이고 규칙이 있어야지 건성건성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한 방면으로는 본분을 잘할 수 있는 보장이 된다. 그 밖에 하나님을 믿는 이 방면의 생활에서도 발전이 있고, 규칙적이 되고, 갈수록 정상이 된다. 영 생활이 갈수록 정상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 점점 뚜렷해질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의의에 대해서도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그러면 너는 세상의 일이나, 사회의 트렌드나, 너를 매료시킬 수 있는 것들이나, 너를 유혹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잘 내려놓을 수 있다. 그렇지? 참된 사람이 되겠다는 심지가 있느냐?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에는 분량이 너무 작아 외적인 일들에 아주 쉽게 끌려가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힘들다.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통제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너의 마음은 너의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구의 것이겠느냐? 사탄에게 통제되어 있다. 그래서 너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네가 실행할수록 얻는 것이 더 많아지고, 얻는 것이 많아질수록 너는 더 깨닫게 된다. 그럼 밖의 유혹이나 환경이나 각종 망령된 설이나 그릇된 논리들을 막을 수 있는 분량이 더 있게 된다. 네가 그런 것을 분별할 줄 알고 꿰뚫어 볼 수 있으면 너는 그런 것을 이겨 낼 수 있다. 네가 그런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꿰뚫어 보지 못하면 그런 것을 이겨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분량이 작을 때에는 아주 많은 일들을 될수록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협력해야 하고, 심지가 있어야 하며, 자제해야 하고, 방탕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단속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인도와 징계를 구하고,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채찍질을 구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으로부터 순복해야 한다. 그러면 너는 점차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좋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손이 줄곧 너를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이 바로 너의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너는 하나님이 진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갈수록 느끼게 되고, 너의 마음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갈수록 진실해지고 갈수록 튼튼해진다. 갈수록 튼튼해지면 너에게 믿음이 더해진 것이 아니냐? 믿음이 더해지면 너의 분량이 커진 것 아니냐? 사람 분량의 크기는 나이에 달려 있지 않다. 너희가 만약 3~5년을 잘 추구한다면,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고, 진리를 적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분량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아서 믿은 시간이 길기 때문에 분량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분량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는다. 네가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너에게 경력이 있고, 항상 진리를 받아들이고, 늘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고, 늘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이익과 체면을 버릴 수 있고 내려놓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연단과 시련을 받아들인다면, 너는 얻는 것이 많아진다. 그러면 분량도 커지는 것이다. 너의 분량이 커지면,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과 확신도 커지고, 믿음도 진실해지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성분이 많아지고, 본분을 합격되게 하는 부분도 많아지는 것이다.

됐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언제 시간이 있으면 또 이야기하자.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생명 진입에 관한 것은 한두 마디로 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 말해도 다 하지 못한다! 말을 할수록 사람은 더 깨닫게 된다. 그리고 깨달을수록 더 향상하려고 하고, 이런 말씀을 들으면 점점 더 좋은 것 같고, 들어도 들어도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몇 번 들어봤는데 다 이런 말씀들뿐이야, 별 차이 없어’라고 한다. 이러면 입문하지 못한 것이다. 입문한 사람들은 아무리 들어도 싫증 나지 않고 몇 년씩 들어도 싫증 나지 않는다. 이방인들, 큰 붉은 용은 궁금해하면서 ‘저 사람들은 계속 모여서 이런 말만 반복하고 있어. 들어보면 다 같은 말인 거 같은데, 맨날 같이 모여서 말하고 있어. 저 사람들은 왜 아무리 들어도 끝이 없을까?’라고 한다. 그들은 궁금해하고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 너희는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좀 알고 있기도 하고, 좀 체험하기도 했구나, 그렇지? 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서 ‘저 사람들은 20~30년 동안 계속 저런 것들만 말하는데도, 성이 차지 않아서 듣고 듣고 또 듣네. 싫증 내지도 않아.’라고 한다. 그들은 몇 번만 들으면 싫증 낸다. 그들은 추구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알아듣지도 못한다. 하나님이 깨우쳐 주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얻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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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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