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68편 생명 진입을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가정의 그 환경 속에 있으면 네가 걱정하지 않으려고 해도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과 자질구레한 일들 그리고 먹고 사는 일들이 너를 성가시게 한다. 너의 마음은 여유롭지 않고 이것저것 걱정하게 되면서 그 환경은 네가 단순하게 마음을 안정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직장이라든가, 생활상의 일들이라든가, 자식, 가족, 친구라든가 별의별 일이 다 있다. 복잡한 그런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너는 몸과 마음을 다해 본분에 몰두할 수 없다. 지금, 네가 나오고 보니 집안일을 돌보고 싶어도 돌볼 수 없게 되었다. 가족이 어떻게 생활하든 네가 안정해서 본분을 하다 보면 본분을 하는 것이 효과에 이를 수 있고 천천히 마음도 안정된다. 마음에서 완전히 내려놓고 나오게 되면 본분을 할수록 더 잘하게 된다. 너는 우선 마음속에서부터 내려놓아야 하고 집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걱정하지 말고 그들을 염려하지 말고 순리에 맡겨야 한다.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신의 본분을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자신의 본분이 우선순위여야 한다. 집에 있으면 네가 얽매이지 않고 그런 일들을 내려놓고 싶다 해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 환경에 있으면 너는 완전히 내려놓을 수가 없다. 네가 나오기만 하면 마음이 많이 안정된다. 차츰차츰 기도도 하고 구하기도 하며 이 환경에서 본분을 하면 생명 진입이 있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본분을 하는 과정에 공을 더 들이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가 있고 수시로 하나님 앞에서 살면 너의 영 안의 정형이 점점 좋아지고, 그들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걱정하지 않게 되면서 마음이 깨끗해진다. 간간이 생각하는 것은 정상이다. 조금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일의 통제를 받지 않고 이 일이 너의 얽매임이 되지 않고 너의 마음과 본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면 너는 완전히 거기에서 나와 그 일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것은 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도달하는 것이다. 너의 마음이 흐트러져 아이와 가족이 생각나면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런 다음 몸과 마음을 다해 본분에 몰두하고 생명 진입이 있으면 영 안이 조금씩 굳세지고 연약해지지 않으며 이전에 너를 얽매었던 가정이나 가족, 생활상의 일이나 직장, 자신의 전망과 타산, 중요하지 않은 자질구레한 것, 이런 일들을 천천히 내려놓게 되기에 너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네가 지금 느닷없이 가정 생활이 생각나고 아내와 자식이 생각나면 마음은 한동안 좀 괴롭겠지만 6개월이 지나서 생명 진입이 정상적이 되고 영 안의 정형이 정상적이 되면 이런 일들이 너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네가 그들이 그리워도 몰래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고 마음속으로 견디기 어렵거나 자신이 고통스럽고 불쌍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들도 불쌍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면 네가 굳세진 것이다. 사람은 왜 늘 연약해지는가? 바로 각종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얽매임과 통제를 받으면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해서가 아닌가? 네가 벗어나지 못하면 굳세지지 못하는데, 그것은 너에게 생명 진입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생명 진입인가? 바로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진리 실제가 사람의 생명이 되면 사람은 인ㆍ사ㆍ물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너의 원래 성격, 패괴 성정, 배운 지식들이 네 안에서 생명이 되면 너는 영원히 굳세지지 못한다. 굳세지지 못하면 너는 어떤 정형에 빠지는가? 시종일관 소극적인 정형에 빠지지 않겠는가? 환경의 배치에 피동적으로 순복하면서 할 수 없어 본분을 한다. 도태될까 봐,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 이것저것 두려워 피동적으로 마지못해 본분을 하고 선행도 좀 예비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끌어 잡아당겨서, 다그쳐서 하는 것이지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요소는 아주 적다. 그러므로 본분을 하는 효과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이 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면 많은 인ㆍ사ㆍ물의 통제와 얽매임을 받게 되고 늘 소극적인 정형에 빠지게 된다. 이런 사람은 사는 것이 아주 피곤하고 자유롭지 못하고 해방받지 못하며 겉으로 봐도 불편해 보이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자신의 의지력으로 지탱해 나갈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심지가 있어서 겁나지 않고 젊어서 겁나지 않고 힘이 넘쳐요.”라고 말한다. 소용있는가? 너에게 아무리 큰 힘이 있어도 소용없다. 사람의 고만한 힘으로 얼마나 오래 지탱할 수 있겠는가? 너에게 소나 악어의 힘이 있다 해도 소용없고 사자나 호랑이의 힘이 있다 해도 소용없다. 그 힘은 소용이 없다. 그것은 정상인에게 있어야 할 생명이 아니고 일시적인 열심과 흥미이다. 공산당원이 입당할 때는 열심이 있고 힘이 있어서 “조국과 인민을 위해, 무산계급 혁명을 위해 평생 분투하겠습니다!”라고 외친다. 그도 하나의 힘이 있는데, 어떤 힘인가? 사악한 힘이 아닌가? 그 힘이 소용있는가? 오래갈 수 있는가? 그것은 일시적이다. 사람은 패괴 성정이 있고 정상인은 다 순간적인 열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혈기이다. 남자든, 여자든, 연장자든, 연소자든 다 이런 혈기가 있다. 한순간의 판단, 순간적인 힘, 일시적인 열심, 일시적으로 들끓는 열정, 일시적인 충동은 사람마다 다 있다. 그것은 진리 실제가 있는 생명의 자연적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아니다. 사람이 혈기에 의해 본분을 잘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명 진입이 있어야 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저는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죠? 저의 마음속의 얽매임이 왜 늘 이렇게 많죠? 어떡해요?”라고 말하는데, 사람 자신에 의해서 되겠는가?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의지력’이라고 짓고 “저는 의지력이 있고 심지가 있으니 어떤 어려움이든 이겨 나가겠습니다. 저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나갈 것이며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굳세고 담대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소용있는가? 이 의지력이 오래 가겠는가? 생명의 표현인가? 그저 한동안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사람의 실제적인 어려움과 패괴 성정이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므로 이런 것이 변화되지 않아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고 진리로 대체할 수 없고 진리를 자신의 생명으로 되게 할 수 없으면 사람의 혈기에 속하는 이런 것들은 오래가지 못한다. 너는 자주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면서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이것이 한 방면이다. 다른 한 방면은 실제적으로 본분하는 가운데서, 생활 속에서 너는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가 있는 것인지를 구해야 하며 이런 소극적인 정형에서 살지 않고 이런 정형에서 벗어나야 한다. 너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나 진리에 대해 터득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가서 구해야 하고 이런 사람과 교통해야 한다. “저의 마음속에 항상 하나의 생각이 있어 늘 이 생각에 얽매이는데 이건 잘못됐어요. 제가 이렇게 실행하는 게 맞는지 봐주세요. 한동안 실행해도 별로 큰 효과가 없는 것 같고 계속 여기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 마음을 열어놓고 구하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나 이 방면에 경력(역주: 체험)이 있는 사람이 듣고 나서 “당신의 이런 상황을 저도 경력해 봤어요. 저는 이렇게 나왔어요……”라고 교통하니 네가 그 속에서 좀 깨닫고 도움을 좀 얻고 실행의 길이 있게 되어 너도 그의 그 방식대로 실행하면 된다. 처음 실행할 때 달콤함을 느끼고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네 안의 상태도 점차적으로 좋아지는데, 이 길은 옳은 것이고 순수한 것이며 이 방향과 목표는 정확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구하여 도달한 효과이다.

너희들은 지금 진리를 구하는 것을 배웠는가? 업무 방면에서 일부 원칙을 장악하는 것 외에 자신의 생명 진입 방면에서, 각종 정형을 개선하고 자신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키는 방면에서 진리를 구할 줄 아는가? 만약 지금 한 가지 일로 너를 책망하면 너는 통제받을 수 있는가? “이렇게 심하게 책망했는데 날 도태시키려는 게 아닐까?” 사람이 진리에 진입하는 것은 늦지만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것은 아주 빨리 생긴다. 한 가지 환경에 임하거나 한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한 마디 말을 들었거나 한 가지 뜻을 알아보고 나면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수시로 생기는데, 이것이 패괴 성정의 자연적인 유로가 아닌가?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사람의 생명 안에 진리의 요소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람의 자연적인 유로는 일부러 유로되는 것이 아니라 가공을 거치지 않고 유로되는 것이다. 너의 두뇌로 생각한 것이든 아니면 입으로 말한 것이든 혹은 네가 마음먹고 하려고 했던 것이든 유로한 것이든 다 패괴 성정과 관계가 있다. 사람이 유로한 것을 놓고 보면 패괴 성정이 사람의 생명의 근원이고 패괴된 인류의 생명이 자연적으로 유로되는 근원으로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고 정상 인성과 이지도 조금도 없다. 현재로선 너희들도 자기 안의 속셈과 생각 혹은 일부 인식과 사상을 해부할 줄 알고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면 도대체 맞는지 맞지 않는지, 진리에 부합되는지 부합되지 않는지를 거의 다 분간할 수 있고 알 수 있다. 알고 나면 너희는 해결할 수 있는가? 아니면 발전하도록 내버려두는가? “난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할 거야, 이렇게 생각해서 나한테 유리하면 난 그렇게 생각할 거야, 다른 사람은 관여할 수 없어.” 이것은 어떤 표현인가? 이것이 바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표현이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하고 틀린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고 배반하지 않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제멋대로 방종하고 마음대로 드러낸다.

보라, 사람이 본분을 하지 않고 아무도 그에게 진지하게 따지지 않을 때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런 거지 뭐, 하나님 말씀 좀 읽어보고 교회 생활이나 좀 하고 평소에 이방인처럼 그렇게 나쁜 짓 하지 않고 방종하지 않으면 돼. 나중에 복을 좀 받거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라고 여긴다. 그는 이런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데 겉으로는 큰 죄를 범하지 않지만 생명 진입이 조금도 없고 진리 실제도 얻지 못했다. 누군가가 정말로 짚고 넘어가려 하면 여기저기 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면 그는 소극적이 된다. ‘이러면 끝장 아니야,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니 의미가 없네, 믿지 말아야지!’라고 여기면서 식어버린다. 외국에 와 본분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진지하게 요구하니 그는 “이거 진리가 없으면 안 되겠네! 조금만 조심하지 않아도 책망을 받고 말을 잘못하거나 일을 잘못해도 책망을 받고 무슨 일을 하든 원칙을 모르고 함부로 해도 책망을 받으니 말이야. 어디서든 조심해야지 함부로 말하거나 일해선 안 되고 손이나 머리도 길게 내밀어선 안 되고 앞장서선 안 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목을 움츠려 넣고 거북이가 된다. 일을 하거나 일이 생기면 즉시 머리를 움츠리면서 어디서든 조심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소홀히 했다. 진리를 추구하고 개인의 생명 진입의 추구를 소홀히 한 것이다. 그는 그저 본분을 잘하고 일을 잘하고 임무를 완성하는 데에만 만족하고 저녁 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면서 어쩌다 바쁠 때는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고 참고 견딜 수 있는데, 생명 진입이 전혀 없다. 이런 정형이 옳은가? 이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가? 너희들이 말해 봐라, 이런 사람이 마지막까지 참고 견딘다고 진리를 많이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는가?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많지 않은가? 너희들은 자주 이런 정형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 너희 자신이 마음속으로 이게 안 좋은 것이고 소극적인 정형이라고 경각심을 갖는가? 늘 절충하거나 무골호인이 되고 늘 겁쟁이가 되어 손도 그리 길게 뻗지 않아서 겉보기에 월권(越權)하지도 않고 자신의 위치도 잘 지키고 자신의 본직 사역도 지키고 사역도 잘 완성하는 것 같고 시키는 대로 잘해 마치 큰 결점이 없는 것 같고 별로 나쁜 일을 하지 않아 정죄하려고 해도 정죄할 만한 어느 한 가지 조목도 내놓을 수 없다. 너희들이 말해 봐라,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면 본분을 잘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이런 정형이 아주 위험해서 수시로 하나님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가? 이런 생각과 정형 그리고 사람이 항상 유로하는 무골호인의 사상, 여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 그저 아무 이유없이 공포를 느끼고 두려워하기만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인가? 비록 전인을 다 본분에 바쳐 직장도 사직하고 가정도 버렸지만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계하고 있다. 이것은 진리 실제에 진입한 정상적인 정형인가? 이런 정형이 지속된다면 사람이 진리와 생명을 얻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어떤 때 마음이 “덜컥” 내려 앉으면서 ‘내가 왜 계속 이렇게 생각하지? 정말 무섭다! 이건 하나님께 저촉되고 진리를 거절하고 하나님을 경계하고 있는 거야!’라고 의식했는가? 하나님을 경계하는 이 정형은 나쁜 사람을 경계하는 그 정형과 좀 비슷하지 않은가? ‘하나님을 잘못 건드리면 안 돼!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한바탕 심판하고 형벌하실 수 있어. 만약 그분을 노하시게 하면 가볍게는 책망과 훈계를 하시고 심하게는 징벌하셔서 병이 나게 하고 마음을 괴롭게 하실 거야.’ 사람에게 이런 오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인가? 이런 정형은 두렵지 않은가? 사람에게 이런 정형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이런 마음과 생각이 있고 하나님을 대함에 이런 태도가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긴 것인가? 최소한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가 있는 것은 거짓이 아니지만 하나님께는 진노도 있어요.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에게 임하면 큰일나요, 수시로 사람을 격살하실 수 있고 누구를 훼멸하신다고 말씀하시면 훼멸하시고 눈도 한번 깜짝하시지 않아요! 하나님을 거스려 화나시게 하면 안 돼요.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하나님과 좀 멀리하는 게 좋아요!” 사람에게 이런 태도와 생각이 있는데, 전인이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올 수 있겠는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가 있지 않은가?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막혀 있는 것이 아닌가? 너희들이 깊이 생각해 보라, 어떤 것들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거절하는 태도가 생기게 하고 진리를 거절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게 하는가? 어떤 것들이 사람이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오는 것을 가로막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가로막고 사람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이 주관하고 주재하시게 하는 것을 가로막는가? 어떤 것들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오해가 생기게 하는가? 사람은 패괴 성정이 있고 사탄 철학과 사탄의 사상이 있고 마음이 간사하여 어디서든 하나님을 경계하고 추측하고 의심하고 오해하는데, 이런 것들이 마음속에 섞여 있으면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할 수 있는가? 일부 사람들은 “저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 말씀으로 감동받을 수도 있고 그런 다음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삼고 그토록 보애(寶愛)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날마다 읽고 자주 읽고 자주 외우고 자주 마음속으로 묵도도 하지만 일이 닥치기만 하면 이 말씀들을 써먹지 못하고 겉으로만 사랑하고 제 자신의 생명이 되게 못해 일이 닥치기만 하면 이런 말씀이 효과가 없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말한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입에 달고 다니는 노래로 삼아 그렇게 흥얼거리고 읽기만 하면 그만이고 자신과 비춰보지 않고 실행하지 않는데, 이러면 문제가 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 매우 어렵다. 사람이 아무리 해도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면 하나님에 대해 늘 오해가 생기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늘 뭔가 막혀 있게 된다. 어떤 것들이 막혀 있어서 너와 하나님 사이에 늘 간격이 있게 되는지, 너희는 다 체험이 있지 않는가? 네가 “저는 하나님을 경계하고 싶지 않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싶지만 일이 닥치기만 하면 경계하고 자신을 포장하고 감싸려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하는데, 일이 닥치기만 하면 이런다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가 아주 어렵고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기가 아주 어렵다.

너희들이 말해 봐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일인가? 한 가지 학문을 닦는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가? 진리를 추구하여 한 방면의 진리를 깨닫고 한 방면의 진리를 구하는 데에 이르는 것은 어떤 과정인가? 사실 네가 진리를 사랑하든 아니면 진리를 사랑하지 않든 진리를 추구하는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자탄이나 핵무기를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과학의 한 분야와 한 가지 세균을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네가 생활하는 것보다도 더 쉽다. 그것은 진리의 실제가 바로 정상 인성이 마땅히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며, 사람의 정상 인성과 관계가 있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진리는 이론이 아니고 한 가지 학술이 아니며 그 어떤 전공도 아니고 공허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너는 갑자기 생소한 전문 분야를 접하게 되면 어렵다고 느끼고 당황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며, 하나의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면 방향을 잃은 것 같고 자아를 잃어버린 것 같다. 진리는 사람의 정상 인성의 생명과 관련이 있기에 너의 각 방면의 나쁜 습관과 나쁜 사상 그리고 소극적인 생각과 사탄의 성품을 바로잡을 수 있고 갖가지 사탄의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 다음 너의 생명이 되어 너에게 인성이 있게 하고 사상이 정상적이고 마음이 정상적이고 이성이 있게 한다. 진리가 너의 생명이 되면 너의 살아냄과 인성의 각 방면의 유로가 다 정상적이 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심오한 일이 아니고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다. 너희들이 길을 찾게 되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생명으로 하지 못한 것은 어디에서 표현되는가? 사람이 사탄의 패괴 성정을 생명으로 하면 사람의 살아냄과 유로는 다 어떤 것들이 있는가? 오만 자대(自大)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제멋대로 하고 독단적이며 허풍을 치고 간사하며 음험하고 사람을 쉽게 의심하고 공격하고 논단하며 사람을 늘 정확히 평가하지 못하고 늘 사심을 품고 속셈을 갖고 있다. 또한 항상 소극적이어서 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갈 태세이고 그렇지 않으면 오만하기가 하늘을 찌르고 제멋대로 날뛰거나 가련한 척한다. 즉 두 극단으로 언제나 비정상적이다.

너희는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다. 즉 고생하고 대가 치르기를 원하며 심지와 결심이 가득하지만 진리 실제가 없다. 그럼 진리 실제를 생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표현이 있는가? 너희에게 몇 가지 큰 방향을 알려 주겠다.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으면 한 방면은 자신이 일부 진리를 깨닫게 되고 다른 한 방면은 주로 성품상의 변화가 생긴다. 성품상의 변화에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옳은 것과 진리에 부합되는 것에 순복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의견을 내든지, 그가 연장자이든 아니면 연소자이든, 너와 마음이 맞는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둘 사이의 관계가 좋거나 나쁘든, 가깝거나 멀든, 둘 사이가 서로 익숙하거나 낯설든, 둘 사이에 원한이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그가 말한 것이 옳고 진리에 부합되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유리하면 네가 들을 수 있고 채택할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떤 요소의 영향도 받지 않는데, 이것이 한 방면의 표현이다. 우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옳은 것과 진리에 부합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 외에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할 수 있다. 예컨대, 이 일은 여러 사람이 다 모르고 이전에 들어본 적도 없는 새로운 일이라 해도 네가 구할 수 있고 이 일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실행하면 진리의 원칙에 부합되고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요구에 달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또 한 방면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가? 네가 어떤 본분을 하고 어떤 일을 하든지 이 방면의 원칙을 장악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며 어떤 효과에 도달해야 되는지를 알고 이 방면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 밖에 너는 또 책임을 다하고 충심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 일에서 네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해 이 일에서 구해야 한다. 너희들이 이 세 방면을 실제 생활에 적용해 보면서 모두 어떤 실행 원칙들이 있는지, 매 한 가지마다 어떤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를 찾은 다음, 실행할 때 맞춰보고 매 한 가지에 세부적인 것을 조금 더하면 된다. 실행할 때 또 적지 않은 정형과 세부적인 것들이 있다. 그렇지? 봐라, 진리 실행에 관련되지 않을 때, 사람은 자신을 아주 좋게 여기지만 진리 실행에 관련되기만 하면 사람의 패괴 성정이 나와서 가로막아 어디서든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면 네 나이가 어떻게 되든지 네가 솔직한 말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이것은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네가 솔직한 말을 할 때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가? 어떤 가로막음이 있는가? 어떤 것들이 너를 솔직한 말을 하지 못하게 통제하고 얽매는가? 체면과 지위 그리고 허영심이 있다. 그 외에 또 너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보려 한다. “그가 나를 공격하면 그 사람에게 마음 터놓지 말고 나를 공격하지 않는 사람이나 나한테 해가 없는 온순한 사람에게 말해야겠어.” 너에게 선택이 있으면 이것은 매우 곤란하다. 사람 안이 간단한가? 비록 머리는 크지 않지만 ‘생산량’은 정말 적지 않다. 나오는 것들이 어떤 때는 일리가 있고 어떤 때는 아무런 일리도 없는데, 이것이 바로 패괴 성정이다. 패괴 성정은 어디서든 너를 얽매고 속박하며 지배하고 통제하며 가로막아 진리를 실행함에 있어 아주 힘들게 하고 너무나 어렵게 한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것이 아주 힘들다고 말한다. 보기엔 손발이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 사람은 사탄의 패괴 성정에 단단히 묶여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고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들다. 사는 것과 숨쉬는 것 그리고 무엇을 생각하는 것도 힘들고, 말하는 것도 힘들며, 본분을 하면서 좋은 마음과 충성심을 조금 갖는 것도 힘들며, 한 마디 솔직한 말을 하거나 하나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도 힘들고, 하나의 사람을 분별하는 것도 힘들다. 누군가와 속마음을 얘기하고 싶어도 힘들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실제 사정을 말하고 싶어도 힘들다. 어쨌든 모두가 복잡하고 어렵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패괴 성정의 속박 아래에서 사는 것이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흑암 권세 아래에서 사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벗어나는가? 진리를 실행하여 생명 진입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 두 번째 길이 있는가? ‘3자경’이나 ‘도덕경’을 많이 배우면 바뀔 수 있고 좋은 행위가 있으면 바뀔 수 있고 ‘아동 심리학’을 많이 배우면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사실 쉬워요. 그저 말을 적게 하고 일을 많이 처리하며, 더 열정적이 되고 나쁜 마음이 없으면 어디를 가든 다 순조롭고 아무도 싫어하거나 귀찮아 하지 않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사람이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많은 진리를 추구할 필요가 없어요. 이것저것 다하면 너무 복잡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이런 길을 찾았는데, 이 길은 어떤가? 이것은 해가 되는 방법이다. 그것은 바로 좋은 사람으로 위장하고 썩어빠진 좋은 사람, 위선자가 되는 것인데 사실 뱃속에는 다 나쁜 물로 가득찼고 웃는 호랑이여서 누구도 허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겉보기에 항상 따뜻한 마음이고 누구를 보아도 다 도와주기에 마치 패괴 성정이 전혀 유로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실제 사정은 안에 감싸져 있어 누구도 모르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는 뒤에서 사람을 욕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 대해 견해가 있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배척하는데 다 아주 음험한 생각들이고 다 떳떳하지 못한 생각들이고 전혀 사람에게 솔직한 말을 하지 않고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가장 음험하다! 중용적인 사람이 가장 음험한 사람인데 그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처세에 뛰어나 능수능란하고, 팔방미인이며, 즉흥적으로 연기해도 그 누구도 허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사탄이다!

말해 봐라, 사람이 상대하기 어렵지 않은가? 너희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힘듭니다.) 그럼 바꿔 보려고 방법은 생각해 보았는가? 우선 어디서부터 돌파해야 하는가?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한다고 말하지 말라. 이것은 빈말이고 비현실적인 도리이다. 너는 큰 테두리나 윤곽을 말하지 말고 하나의 작은 세부적인 일부터 말해야 한다. 우선 사실대로 말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 가지 구체적인 실행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마음을 터놓는 사람이 되고 속이거나 숨기는 사람이 되지 말며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을 빙빙 돌리는 사람이 되지 말며 직설적인 사람이 되고 정의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은 누가 한 거예요?”라고 묻는데, 네가 누가 한 줄 알면서도 둘 사이의 관계가 좋으니 그 사람의 미움을 사기 싫어서 “저기…… 음, 잘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일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고, “그럼 도대체 누가 한 거예요?” “제가 한 거 아니에요.” “그럼 누가 한 건지 알아요?” “제가 아는 일이에요? 아, 제가 잘 모르는 일 같아요! 누굴 말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간사한 것이 아닌가? 너는 언제나 마음속의 실제 사정을 알려 주거나 말하지 않고 늘 마음에 숨겨 둔다. “마음에 숨겨 둔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네가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고 대인 관계가 네 마음속에 첫 자리이고 진리를 실행하고 사실대로 말하는 것을 뒤에다 놓고 마지막에 놓는 것이다. 정말 마지못해서 다른 사람이 너에게 “도대체 아는 거예요, 모르는 거예요? 오늘 사실대로 말 안 하면 당신을 교체해서 여기서 본분을 그만두게 해야겠어요.”라고 말하면 너는 ‘본분을 못하게 하면 이것도 내 개인적인 이익에 관련되는데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견주어 보면 어떤 것이 더 좋을까? 어떤 것이 나한테 더 중요할까? 에라, 내 개인의 본분이 중요하니 그럼 이번에 그 사람을 한번 팔아먹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는 말한다. “원중네 집하고 관계 있는 것 같아요!” “원중네 집요? 그럼 원중 엄마가 한 건가요? 원중 엄마는 오지 않았잖아요! 그럼 원중이 했다는 건가요?” “그럼 가서 원중한테 물어봐요, 저도 이 일을 잘 몰라요.” 너는 또 빙빙 돌려 말한다. 얼마나 간사한가! 사실대로 한 마디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힘이 드는가! 몇 바퀴를 돌았는가? 말이 입가에 나와도 하지 않고 또 삼켜 버리는데 그 입은 너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입이 너의 것이 아닌가? 무엇의 통제를 받았는가? 이것이 바로 사탄에게 통제되어 사탄이 너의 입을 틀어막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패괴 성정이라 하는가? 패괴 성정이 바로 사탄이다. 즉 살아 있는 사탄이다! 말을 함에 늘 얼버무리고 직설적이지 않다. 너희들은 다 이런 잘못을 범한다. 너희들 대부분은 다 하나님께 미움을 사고 하나님을 기만할지언정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사람들 가운데의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지키려 한다. 이것이 진리를 사랑하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인가? 눈을 뻔히 뜨고 기만하니 정말 간이 부었다! 평소엔 그래도 ‘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정말 사랑하고 경외해, 하나님을 생각할 때면 하나님이 높고 위대하고 심오하셔서 측량할 수 없다고 느끼게 돼.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셔, 그 사랑이 사람 마음속의 얼었던 얼음을 녹아내리게 하는 느낌이야.’라고 여기지만 사실이 임하면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진실한 말을 하라고 해도 그렇게 힘들다. 너는 이 진실한 말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말을 했는지 모르고 자신의 명예와 체면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얼버무렸는지 모른다. 힘들지 않은가! 그토록 많은 뇌세포가 손상되는데 마음 아프지 않은가? 사람이 사는 것이 매우 힘들다. 그렇지? 사람이 힘들게 살지 않으려면 우선 성실한 사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솔직한 말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났어요?”라고 물으니 그는 늦잠을 좀 자고 8시에 일어났기에 생각해 보더니 8시에 일어난 게 너무 늦어 말이 안 되니 7시 56분에 일어났다고 말해서 다른 사람이 듣기에 7시 좀 지나서 일어난 것처럼 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이런 작은 일에서도 그는 말을 빙빙 돌리고 잔꾀를 부려 너를 미혹하여 너에게 7시 좀 지나서 8시가 안 되어 일어났으니 늦은 셈이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간사하지 않은가? 이것은 기만이 아닌가? 그 일이 지나고 생각해 보면 ‘내가 남을 속였구나. 이 일은 썩 좋지 않아! 괜찮아, 7시 56분이면 8시나 마찬가지니 거짓말한 것도 아닌 거야, 혼자 알아서 생각하겠지.’ 기만에 기만을 더하고 틀린 데에 틀린 것을 더한다. 이 사람은 얼마나 위험한가! 이것이 사탄의 기만술이다!

세상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보자, 100위안짜리 물건을 어떻게 가격을 매기는가? 99.9위안이라 한다. 사람이 들어보면 “100위안이 안 되는구나, 싸네!”라고 말한다. 만일 100위안이라고 하면 너무 비싸다고 느끼지만 90여 위안이라고 하면 싸다고 느낀다! 사실은 0.1위안 차이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속기를 달가워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심리학이라고 한다. 무슨 심리학인가? 그것은 장사꾼들의 기만술이고 공심술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간계이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사탄의 세계에서 살면 어디든 다 함정이고 기만이고 가상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 집에서 살면서 하나님 앞에 와서도 여전히 원래의 그 방식대로 살고 목표와 원칙이 바뀌지 않는다면 너는 단지 이방인보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만 다를 뿐이고, 겉보기에 하나님을 따르고 있는 것 같지만 생명 성품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은 헛되이 믿은 것이고 괜히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의의가 있는가? 가치가 있는가? 어떻게 교통하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 진리를 실행하기를 원하는 사람, 인성이 있는 사람, 양심이 있는 사람은 변화될 수 있고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양심과 인성이 없는 사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얻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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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