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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편 생명 진입에 있어 제일 관건은 본분을 하는 데서부터 착수해야 한다

본분을 함에 있어서 대충대충 해서 속이는 것은 가장 피해야 할 것이다. 이 한 가지 때문에 너는 합격된 본분을 하는 데에 이를 수 없다. 본분을 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본분할 수 있는 기회는 얻기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이 기회를 사람이 잡지 못하면 잃게 된다. 나중에 다시 본분할 기회를 얻으려고 해도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며, 본분할 기회도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기회가 많지 않으니 잘 잡아야 한다. 본분이 주어져 네가 힘을 쓰고 화비하고 네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바쳐야 할 때, 너는 남겨 두지 말고 숨기지 말고 여지를 두지 말라. 만일 여지를 두고 잔꾀를 부리고 뺀질댄다면 이 사역은 절대 잘할 수 없다. 네가 “아무도 내가 잔꾀를 부리는 걸 발견 못했으니 다행이야!”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슨 사상인가? 사람을 속여 넘기고 하나님도 속이는 것이다. 너희가 말해 봐라, 하나님을 속이면 하나님이 알겠는가, 모르겠는가? (아십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도 그와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알게 된다. “이 사람은 일하고 본분을 함에 있어서 자꾸 잔꾀를 부리는데 마음을 기울이고 힘을 쓴다고 해도 50%, 60%, 80%이고 기껏해야 85%이며 그다지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그저 흐리멍덩하다. 어떤 일이든 보고도 못 본 체하며, 하라고 시키면 좀 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좀 잘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참답게 하지 않는다. 만일 책망을 받으면 마음을 좀 기울여 하고 책망을 받지 않으면 어쨌든 보는 사람이 없다고 꾸벅꾸벅 졸며 속일 수 있는 데까지 속이려고 든다.”라고들 말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어떤 사람들은 발견한다. “이 사람은 믿고 신뢰할 수 없어. 만일 이 사람한테 중요한 본분을 맡기면 자칫 망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속임당할 수 있으니 누군가 책임지고 지켜봐야 해. 일반적인 일이나 원칙에 관련되지 않는 일은 그에게 시켜도 돼.” 사람은 그를 간파했다. 그는 자기의 존엄과 인격을 짓밟아 버렸다. 사람도 그를 신임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그를 신임할 수 있겠는가? 함부로 그에게 큰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맡길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 한 가지 일을 처리하게 할 때 다른 사람은 없고 꼭 그 사람이 가야 한다면 너는 다른 한 사람을 불러 그와 같이 가게 하거나 혹은 네가 살며시 뒤따라가야 한다. 만일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면 너는 중요한 일만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가 일을 처리할 때 너를 생각해 주고 마음이 착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처리해 주고, 심지어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신경 써서 해 주며, 매사에 너를 생각해 주고, 너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은 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인성이 있는 사람은 본분을 잘할 수 있지 않는가? 인성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감시하지 않아도 본분을 잘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인성이 없는 사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한 가지 본분을 해도 힘이 들고 한 가지 일을 하면 한 가지 물건을 망가뜨리기에 네가 늘 걱정해야 하고, 늘 지켜봐야 하며, 많이 말해 주고, 자꾸 물어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본분을 하면서 늘 성찰해야 한다. ‘내가 이 본분을 한 것이 합격되겠는지? 내가 마음을 기울였는지? 본분할 때 대충대충 해서 속이는 정형이 있었는지?’ 만일 이런 정형이 있다면 정말로 좋지 않다. 작게는 이 사람에게 신용이 없어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이고 크게는 본분을 함에 있어서 늘 대충대충 해서 속이고 하나님 앞에서 늘 대충대충 해서 속이는 것인데, 이러면 너무 위험하다! 너는 공공연히 사람을 속이는데 이 결과는 어떠하겠는가? 단기적으로 보면 너에게 패괴 성정이 있고 늘 과오가 있고 회개가 없으며, 진리를 실행할 줄 모르거니와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는다. 장기적으로 보면 네가 늘 이렇게 한다면 너의 결말이 없게 되고 위험해진다! 이것을 큰 잘못은 범하지 않지만 작은 잘못은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빚어질 결과는 겉잡을 수 없는데, 그 결과는 심각한 것이다!

무슨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진지하지 않고 흐리멍덩한데 이렇게 일하는 것은 무슨 태도인가? 이것은 인성 문제인가 아니면 소질 문제인가 아니면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을 더 쓰고 더 좋은 마음을 가지며 더 책임감 있게 하고 더 배려하면 너는 공을 더 많이 들일 수 있다. 네가 공을 많이 들일 수 있다면 본분을 함에 있어서 효과가 향상되고 더 좋아지고 사람으로 하여금 만족하게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만족스럽게 할 수 있다. 너는 마음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이방인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 ‘어쨌든 시간제로 돈을 받으니까’ 네가 이런 태도이면 끝장날 것이고 절대로 본분을 잘할 리가 없다. 이것은 어떤 인성인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인성이 있겠는가? 인성이 없다. 너는 네가 인성이 있어 진리를 실행하고 싶고 본분도 잘 하고 싶다면 본분에 공을 많이 들여야 하고 마음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네가 마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마음만 있어 뭐하겠는가? 쓸데없는 일만 하고 쓸데없는 생각만 하는데 이것이 적합한가? 이런 일은 마땅히 깊이 생각해 봐야 하고 다 깨달아야 한다. 네가 하는 본분이 규칙적인 것이든 아니면 불규칙적인 것이든, 지루한 것이든 아니면 신나게 할 수 있는 것이든 너는 생명 진입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네가 매일 카메라를 잡고 초점거리만 조절하면 ‘다른 일은 없고 이 기계 한 대로는 너무나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라고 느껴진다. 비록 네가 잡고 있는 것이 카메라이고 기계이지만 본분을 하는 정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때 사람은 기분이 좋으면 “잘 찍어서 선명하게 나오게 해야지, 초점도 자주 맞춰 보고 조절해야지”라고 하는데 정형이 괜찮다. 어떤 때는 기분이 안 좋아도 무슨 영향을 받아서인지 모르는데 사탄의 패괴 성정이 안에서 방해하여 사람의 관점이 올바르지 않고 정형이 안 좋으면 속이는 것이다. 사람 안의 정형은 수시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바뀌든지 간에 네가 기분에 따라 일을 하면 옳지 않다. 어떤 심정이든지 하나님 앞에 와서 조절해야 하고 생명 진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가 잡고 있는 것이 카메라이든지 아니면 컴퓨터이든지 아니면 네가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든지 너는 생명 진입이 있어야 한다. 너의 그 본분이 얼마나 지루하고 얼마나 재미없든지 너는 생명 진입이 있어야 한다. 너에게 생명 진입이 없으면 네 안의 정형을 자신이 늘 장악할 수 없다.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한 것이 어떤지, 하나님이 만족해 하는지, 본분을 하는 것이 합격되는지, 대충대충 해서 속이는 것이 없는지, 잔꾀를 부리지는 않았는지, 네가 이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면 이것이 진실로 본분을 하는 것인가? 이것은 순전히 형식적인 것이다. 생명 진입과 상관없이 일을 하는 것은 본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일만 하는 것이다. 마치 이방인들이 돈을 버는 것처럼 일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형식적인데, 이것이 바로 고생을 하는 것이다! 네가 어떤 본분을 하든지 네가 하고 있는 그 본분이 재미가 있든 없든 다 생명 진입과 관련된다. “오늘 기분이 괜찮으니 본분도 잘 했어. 오늘은 기분이 별로야. 어떤 사람이 나를 꾸짖었어도 영향 받지 않고 본분을 합격되게 잘 했고 남들도 나의 결점을 찾아내지 못했어. 최소한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했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날 믿으실 수 있게 했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부탁과 책임과 본분에 떳떳할 수 있어.” 네가 이 본분을 잘 해 사람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말한다. “저 사람 좀 봐요. 집에 그렇게 큰일이 생겼으면 마음이 무거울 텐데! 아니면 병 때문에 고통스럽고 어려움이 클 텐데 영향 받지 않고 혼자 조절해 정형도 정상이고 본분도 그만두지 않았으며 본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자신이 해야 할 책임과 충성을 다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네요.” 이 사람은 진정 좋은 사람이고 진정 합격된 사람으로서 피조물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기분이 좋을 때는 본분을 합격되게 잘 하고 대충대충 하여 속이지 않고 내동댕이치지 않으며 또한 오만하지 않고 매우 진지하게 책임감 있게 자신이 매일 해야 할 일을 대한다. 그러나 그의 기분이 그리 좋지 않고 객관적인 요인이 그에게 불리하거나 좀 방해가 될 때 그는 본분을 하거나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고 먼저 기도한다. “얼마나 큰 일이 닥치든지 설령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하나님이 저를 살아 있게 하시는 한 저는 여기에서 제가 맡은 본분을 잘 할 겁니다. 이 본분을 주신 하나님께 죄송하지 않고 오늘 이 숨이 붙어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죄송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를 살게 하실지라도 그 하루 동안 잘하겠습니다. 저에게 어려움이 얼마나 크든지 한쪽에 내려놓고 본분을 우선순위에 놓겠습니다!” 그는 그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영향도 받지 않고 그 어떤 기분, 외부 환경의 통제도 받지 않으며 본분을 우선순위에 놓을 뿐만 아니라 평소보다 더 잘 하고 더 애쓸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은 생명 진입이 있고 진리의 실제에 진입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살아 냄에 있어서 가장 실제적이고 가장 진실한 표현이다. 너희가 말해 봐라, 이렇게 살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볼지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은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비결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 어떤 사람이 나한테 말하는 태도가 정말 안 좋았어. 흠을 잡고 나를 난처하게 하려는 것 같았고 나를 괴롭히고 트집잡으려고 했어. 마음이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정말 괴로워 밥도 먹기 싫고, 잠도 설쳤어. 어쨌든 기분이 안 좋고 불편해. 안 그럼 본분을 이틀 뒤로 좀 미뤄서 하든지 아니면 본분을 지체하지 않고 계속 하면서 아무렇게나 하면 되고 형식적으로 하면 그만이지 뭐! 기분이 안 좋으니 이 일은 누구나 다 이해해 줄 거야. 누구에게나 다 ‘순조롭지 못한 것 3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도 나에게 강요하시지 않겠지! 오늘 본분 좀 지체한다고 해서 어때, 괜찮아, 내일 잘하면 되지 뭐. 하나님의 사역이 이미 6천년이나 되었는데 내가 하루 지체한다고 무슨 상관이랴?” 조그만 일로 영향을 받으면 본분에 영향을 주는데 이는 어떤 사람인가? 이 사람은 어린아이 성질이라 발전성이 없다. 작은 일에 얽매여서 본분을 하지 않고 그만두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동동 구르면서 “나 본분 안 할 거야.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하라고 해. 난 안 할 거야. 난 지금 괴로워. 아무도 나 간섭하지 마.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리고 생떼를 쓰며 본분도 안 하고 심지도 없으며 맹세한 것도 까맣게 잊는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이 평소에는 이런 표현들이 없겠지만 기분이 안 좋으면 그만둘 수 있고 혹은 밤에 꿈을 잘못 꾸어도 아침에 일어나서 본분을 할 때 기운이 없고 힘이 나지 않는다. 이런 일은 너무나 많다. 이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이런 일을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게다가 저는 당장은 해결하고 싶지도 않아요. 될 대로 되라죠! 어쨌든 기분이 안 좋으니 아무도 상관하지 말아요. 제가 좀 괴롭게 내버려 둬요.” 그가 비록 본분을 하고 있지만 말만 하고 마음은 없으며 사람은 여기에 있어도 마음은 어디에 갔는지 모르며 본분에 대해 책임감도 없고 공을 들이지도 않고 힘도 없다. 언제 상태가 호전되면 그제야 본분을 하기 시작하는데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온 세상을 버리고,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어떻게 해도 다 괜찮아 한다. 이것은 좀 비정상적이지 않는가? 사람이 무엇 때문에 각종 정서와 환경의 영향을 받는가? 이것은 너희들 앞에 놓인 문제가 아닌가? 만약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성장할 수 없고 영원히 아이이다. 어떤 아이인가? 바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구르고, 울고 불고 생떼를 쓰는 그런 아이인데, 뭘 줘도 받지 않고, 아무리 달래도 안 되며, 실컷 울고 분이 풀려야 일어난다. 너희는 자주 이런 정형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한 마디 말이 너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너를 겨냥한 성질이 조금 있으면 너는 마음이 좀 언짢아하고, 혹은 빙빙 돌려서 너를 나무라면 좀 언짢아하며, 혹은 누가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때 네가 그 사이에 끼인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언짢아한다.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과 말할 때 그 사람이 너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체면을 세워 주지 않으면 언짢아하며, 혹은 오늘 본분을 한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언짢아하며, 밤에 꿈을 잘못 꿔서 징조가 좋지 않아 언짢아하고, 오늘 집의 안 좋은 소식을 듣고는 언짢아하고 기분이 좋지 않고 힘이 나지 않으며, 내일 누가 칭찬을 받고 본분을 잘해서 인솔자로 발탁되면 너는 언짢아하고 마음이 영향을 받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이 무릇 너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다 너를 소극적인 데에 빠지게 하고 의기소침하게 하여 네 본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람에게 이런 표현이 있으면 무엇을 설명하는가? 성품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인성이 성숙되지 못한 것은 한 방면이다. 생명 진입 방면에서 말한다면 이런 겉면의 현상들을 통틀어 인ㆍ사ㆍ물의 통제를 잘 받는 것이라고 한다. 인ㆍ사ㆍ물의 통제를 잘 받고 항상 소극적이며 조그마한 일도 네 마음과 네 본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너를 넘어지게 할 수 있는데, 이런 것은 다 생명 진입이 너무 얕은 원인이 아닌가?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은 표현이 아닌가? 네가 어떤 성격이고 얼마나 높은 교육을 받았든지, 나이가 얼마이고 어떤 성별이든지, 너의 생명 진입이 너무 얕고 분량이 작으면 너는 늘 여러 가지 일의 통제를 받게 된다. 통제를 받기만 하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이 걸리는데 그 일이 네 마음속에 그늘이 되어 잊을 수 없고 뿌리칠 수 없다. 너는 항상 이런 일에 빠져 이런 정형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이것은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아서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본분하는 적극성이 있고 본분하고자 하는 결심도 있으며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고 버리고 봉헌하고자 하는 결심도 있으며 맹세도 여러 번 하였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한평생을 하나님께 바치고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본분만 하겠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장가도 안 가겠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시집도 안 가겠다고 말하는데, 이런 것들을 다 구비하였지만 생명 진입은 없다. 생명 진입이 없으면 사람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인ㆍ사ㆍ물 가운데서 특히 견디기 어렵고 대처하기 어렵고 방향을 찾을 수 없고 길도 찾을 수 없어 보이며, 늘 자신이 소극적인 정형에서 벗어날 수 없고 여러 가지 인ㆍ사ㆍ물에 얽매이고 단속받고 통제받고 묶여 있다고 느끼면서 어떻게 실행해야 가장 정확한지를 모른다. 지금 너희에게 한 가지 비결을 가르쳐 주겠다. 너에게 어떤 일이 임하든, 너를 검증하는 일이든 아니면 너를 책망하는 일이든 아니면 누군가 너에게 눈치를 주거나 너를 궁지에 몰아넣거나 고의로 너를 겨냥하든 너는 우선 이런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오고 영 안으로 돌아와 영 안에서 해결하고 정형을 잘 조절하고 기도해야 한다. “이 일이 얼마나 크든지 하늘이 무너지든 아니면 하늘에서 칼이 떨어지든 본분을 잘해야겠어요. 숨이 붙어 있는 한 나의 이 본분을 그만둘 수 없어요.” 이것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본분을 잘할 것인가? 본분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은 여기에 있고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이 아니다. 너의 마음은 본분하는 데 있어야 한다. 얼마나 큰 일이 닥치든지 너는 내려놓는 것을 배우고 그 일을 한쪽에 두고 그다음 하나님 앞에 와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오늘 이 본분을 어떻게 하지? 예전에는 그렇게 했었는데 오늘도 그렇게 한다면 그건 아닌 것 같아. 대충대충 해서 속이는 태도가 좀 있는 것 같아. 방법을 바꿔 더 잘하도록 노력해서 다른 사람이 흠 잡지 못하게 해야지.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안심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본분을 보시고 “네가 말을 잘 듣고 순복이 있을 뿐만 아니라 충심도 있구나!”라고 말씀하시게 해야지’. 네가 이 방면에 힘쓰면 너의 본분을 지체하지 않고 잘할 수 있다. 네가 이렇게 끊임없이 조절하고 기도하는 것에 따라 정서적인 일부 일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정서적인 일은 일시적인 일이 아닌가, 혹시 네가 본분하는 과정에서 일부 일을 잊어버림으로 기분이 금방 좋아질지도 모른다. 만일 정말 이런 사실이 있다면 너는 구하고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하고 순복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일이 생기기만 하면 사람의 분량을 검증하는 것인데, 네가 이 일에 빠져서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자기의 정형을 잘 조절하여 각종 인ㆍ사ㆍ물의 통제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비결은 바로 시시각각 본분과 책임감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다. 너는 늘 성찰해야 한다. ‘내가 대충대충 해서 속이는 태도가 있는지? 대충대충 해서 속이려는 정형이 있는지? 이 일을 최선을 다해 잘 했는지? 이 일을 하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를 믿으실 수 있게 했는지? 나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놓았는지?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동의하시는지?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원칙에 부합되는지? 내가 이렇게 하면 제일 좋은 효과에 이를 수 있는지?’ 이런 일에서 깊이 생각해 보면 본분을 할수록 더 잘하게 되고, 할수록 더 잘하면 너에게 생명 진입이 있게 되며, 너에게 생명 진입이 있으면 생명이 있게 되고, 너에게 생명이 있으면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며, 어린아이가 아니면 너는 갈수록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고 한 마디 말과 한 가지 일로 영향을 받지 않게 되며 일부 외부 환경의 통제와 방해도 받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너는 좀 성장하지 않겠는가? 네가 성장할수록 너의 본분을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네가 성장할수록 진리를 더 많이 깨닫게 되고, 어떻게 본분을 잘할 수 있고 어떻게 진리에 진입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점점 더 많이 깨닫게 되지 않겠는가? 네가 점점 더 많이 깨달으면 너의 생명이 자라나고 네 안의 정형도 점점 정상이 되며 그 크고 작은 일들, 원래 너를 방해하고 통제하고 구속할 수 있었던 그런 일들과 사람들이 너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겠지? 이렇게 되면 점차적으로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정상적이 된다. 네가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를 알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지를 알고, 자기의 위치가 어딘지를 알고, 자신이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고, 어떤 일을 상관해야 하고 어떤 일을 상관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면 점점 더 정상적이 되지 않겠는가? 네가 이렇게 살면 피곤하겠는가? 네가 피곤하지 않으면 마음이 탁 트이게 되고 즐거울 때가 많아지고, 너에게 즐거울 때가 많아지면 사람들이 너의 모든 정신 면모를 보고 누림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를 보기만 해도 누림이 있으면 너는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네가 말을 하고 일을 함에는 한도도 있고 원칙도 있으며, 누가 연약하고 소극적인 것을 보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사람을 속박하거나 교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경력(역주: 체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유익을 주는 것이다. 이때면 너는 하나님 집에서 힘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유용한 사람인 것이다. 누가 어떤 일로 구속을 받아 너에게 도와 달라고 하면 너는 ‘이런 작은 일은 문제 없어. 내가 정말 그를 나처럼 홀가분하고 즐겁게 살게 도와줄 수 있어!’라고 여긴다. 너의 도움으로 그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그도 자라나게 되었는데, 너는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이끌어 작은 아이를 너 같은 큰 아이로 되게 한 것이다. 그럼 너는 하나님 앞에서 유용하게 되고 네가 하나님 집에서 의의 있는 일을 좀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은 당연히 사람들이 좋아할 사람이 아닌가? 사람들이 당연히 환영할 사람이 아닌가? 그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위치겠는가?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한다. 네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고 네 자신에게 생명 진입이 있게 되면 너는 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너는 늘 진리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네가 이런 사람인 데다가 다른 사람도 이런 사람이 되도록 인솔하면 너는 다른 사람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것이 아닌가? 만약 네가 이런 진리를 갖추지 않고 이런 경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없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도 없으며, 네가 힘만 쓰고 있다면 대부분의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너는 그저 힘을 쓰기 위해 힘을 쓴 것뿐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검증을 이겨 낼 수 있겠는가? 시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겠는가? 다 그럴 수 없다. 그럼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는가? (증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최소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아직 하나님 집의 문에 들어서지 못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으면서 아무런 생명 진입도 없고 하나님을 증거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면 하나님의 증인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이 분량이 작고 생명 진입이 없으면 영원히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뜻인즉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생명 진입이 없고 하나님의 증인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너를 하나님을 따르는 자라고 인정하겠는가? 하나님이 입으로는 인정할 것이다. “그래, 네가 나를 믿었으니 오라! 내 집에 와서 본분을 해라!” 너도 본분하기를 원하지만 너의 표현과 네가 최근에 걸어온 길을 통해 네가 하나님을 이렇게 오랫동안 믿었어도 하나님을 증거할 줄 모르고 자신 앞에서 살고 사탄 앞에서 살고 사탄의 패괴 성정 안에서 살면서 하나님 앞에 전혀 나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너에게 시련을 주면 네가 감당할 수 없고 책망과 훈계를 좀 하면 견딜 수 없으며 심판 형벌을 좀 하면 함부로 본분을 그만두고 짜증을 내는데, 이런 사람은 다루기 어렵다. 하나님은 이렇게 본다. “이 사람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내가 어디에 가서 역사하고 일을 하든 이런 사람은 따를 자격이 없고 하나님과 함께 있을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진리에 진입하지 않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생명 진입이 추호도 없고 진리에 대해 조금의 터득과 경력도 없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과 합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말하기 어렵고 다 미지수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만약 하나님 앞에 있고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곳곳에서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고 하나님을 논단할 수 있으며 곳곳에서 하나님에 대해 추측하고 의심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그다음 갖가지 생각이 생기는데 심각하면 마지막에 배반까지 생긴다. 이런 결과가 있을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겠는가? 그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을 따르는 자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다면 너는 우선 무엇에 도달해야 하는가? 생명 진입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겠는가? 너희의 현실 상황으로 보면 생명 진입에 있어서 가장 관건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자신의 본분을 잘 지키는 것이 첫 번째이다. 결국은 그래도 본분을 하는 데에 있다. 본분을 하는 데서부터 자신의 생명 진입에 착수해야 하고 생명 진입 가운데서 조금씩 진리를 얻고 진리를 깨달아 자신에게 분량이 있게 되면서 점차적으로 자라나고 진리에 대해 실제 경력이 있고 그다음 여러 가지 실행 원칙을 장악하여 그 어떤 인ㆍ사ㆍ물의 속박과 방해를 받지 않는 데에 이를 수 있다면 너는 점차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된다. 네가 각종 인ㆍ사ㆍ물 의 방해를 받지 않고 진리에 대해 경력이 있을 수 있으면 네가 경력하는 것이 풍부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증거할 수 있고, 네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으면 유용한 사람이 된다. 유용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 집에서 지위가 있게 되고 발붙일 수 있게 되며 좋은 사람이 되고 진정한 사람이 된다. 이러면 공밥을 먹지 않게 되고 너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준 하나님께 미안하지 않게 된다! 지금 생명 진입의 관건은 무엇인가?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것입니다.) 늘 심지를 표한다고 소용 있겠는가? 늘 맹세한다고 소용 있겠는가? 늘 결심을 내린다고 소용 있겠는가? 그것은 비현실적이다.

지금 가장 실제적인 문제는 바로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본분을 대하고 어떻게 본분을 잘할 것인가 하는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생명 진입이 있는 데에 도달하는 것이다. 생명 진입이 있다는 것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하는가? 진리에 대해 경력이 있는 것인데 이 경로를 통해 생명 진입이 있는 데에 도달하는 것이다. 너희는 지금 생명 진입이 있는가? 좀 있지만 아직 너무 얕다. 그렇지 않은가? 너희 지금의 이 생명 진입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데에 도달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경우에 여전히 도리상에서 맴돌고 진정으로 진리에 대해 인식과 경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네가 진리에 대해 진실한 경력과 인식이 있는 데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에 감성적인 인식이어서 마치 그렇게 하면 옳은 것 같고 저렇게 하면 옳은 것 같고 이 말이 진리에 부합되는 것 같고 저 말이 진리에 부합되는 것 같고 하나님의 말씀이 다 맞는 것 같고 다 “아멘” 하고 찬성하지만 정작 자신과 맞출 수 없고 자신이 일을 할 때 어리둥절해 하며 어떤 진리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 너희는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정형에 처해 있어 적잖게 깨닫고 적잖게 장악했지만 아직 적용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너희가 다 적용하고 다 경력하고 나면 너희의 생명이 곧 자라나는데, 이것이 바로 기준이고 표징이기도 하다. 어느 날엔가 네가 “저는 이 방면의 진리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 인식한 것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저의 인식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고 이런 방면의 인식이 있게 되면 이때 너는 바로 하나님의 증인인 것이다. 네가 만약 “지금 제가 장악한 도리도 꽤 되고 깨달은 것도 아주 많아 여기에 앉아 도리 방면의 도를 말하면 반나절은 말할 수 있지만 일단 자신의 문제와 관련되면 해결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모릅니다.”라고 말한다면 네가 설교한 것이 무엇인가? 글귀 도리이다. 일부분은 글귀 도리도 아니라 감성적인 인식인데, 이 말도 맞는 것 같아 자신도 이 말에 아멘을 한다. “정말 좋아요, 정말 맞아요!” 다른 사람이 다 말하고 나면 자신도 동감하는 것 같지만 어떻게 경력할지를 모르고 어떻게 맞출지를 모른다. 그럼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전히 본분을 하는 데로 돌아와야 한다. 본분을 하는 데로 돌아온 이 일에서 본분을 하는 기간에 자신이 유로(역주: 흘러나옴)한 갖가지 패괴와 자신의 여러 가지 정형을 조금씩 성찰할 수 있고 장악할 수 있으며 그다음 하나하나 돌파할 수 있다. 네가 유로한 패괴 즉 독선적이고 간사하여 늘 한 수 남겨두고 여지를 남겨 두려 하거나 대충대충 해서 속이려 하는데, 여러 가지 정형을 스스로 장악해야 하고 각종 정형을 통해 자신의 패괴 성정을 발견해야 한다. 자신의 패괴 성정을 발견하기만 하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네가 일을 할 때 이기적인 것을 유로하여 자신의 체면을 생각한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자신의 체면을 내려놓아야 한다. “저는 그렇게 말해서 저의 체면을 지키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속셈이 있고 그것은 패괴 성정이기에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솔직히 말해서 제 자신을 드러내고 제 자신의 진상을 보여 주고 제 마음속의 진실된 생각을 말할게요. 제 체면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칠지언정 그것을 지키지 않고 저의 허영심을 만족시키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배반하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의 진실한 생각을 말함으로써 한 방면은 성실한 사람이 된 것이고, 다른 한 방면은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체면을 지키지 않아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 도달하고 본분을 더 잘하고 자신의 본분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데에 이른 것이다. 잃은 것은 자신의 체면이지만 지킨 것은 하나님 집의 이익과 진리이다. 이렇게 살면 영예롭지 않은가? 광명정대하여 사람 앞에 내놓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도 내놓을 수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실행하면 비록 어려운 점은 있지만 네가 만약 이 방향대로 실행하고 행동하고 노력한다면 아마도 두세 번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다섯 번째에는 성공할 것이다. 성공은 너에게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가? 네가 진리를 실행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는 그 한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고, 자신을 배반하는 이 한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으며 자신의 허영심과 체면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네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네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동경하는 사람이고 정의와 광명을 동경하는 사람임을 보게 한다. 동시에 사탄도 수치를 당하게 된다. 그것이 너를 패괴시켜 자신을 옹호하게 하고 이기적이 되게 하고 체면을 생각하게 했는데 지금은 이런 것들이 너를 얽매지 못하게 되었다. 사탄은 이렇게 본다. ‘이 일에선 방법이 없구나. 그가 벗어나 이 일의 통제를 받지 않고 허영심과 체면, 개인 이익의 통제를 받지 않고 진리를 실행했어.’ 그것이 수치를 당한 것이 아닌가? 그것이 수치를 당했으면 네가 이긴 것이 아닌가? 네가 이겼으면 너는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선 것이 아닌가? 이것이 아름다운 싸움을 싸운 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싸움을 싸우고 나면 사람 마음속은 평안하고 즐겁고 편안하다. 만약 사람에게 늘 참소가 있고 마음이 편치 않으며 기쁨과 평안이 없고 매사에 근심하고 고뇌한다면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사람이 늘 사탄의 패괴 성정 속에서 살면서 늘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늘 진리를 배반하며 늘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탄의 패괴 성정 속에서 살면서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며 진리를 얻지 못했기에 고민과 번뇌가 너무 많고 얽매임이 너무 많다. 이런 것은 너의 정형에 근거해 알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지금 어떤 정형에서 살 때가 많은가, 긍정적인 것이 많은가 아니면 부정적인 것이 많은가? 만약 네가 부정적인 정형에서 살 때가 많은데도 계속 본분을 하고 있다면 너무 피곤하지 않겠는가? 사람은 패괴 성정 속에서 사는 괴로움을 느꼈고 깊은 체득이 있다! 그럼 너희는 진리를 깨닫고 나서 진리의 원칙을 지키고 그다음 자신이 실행할 수 있어 기뻐했던 것을 경력한 적이 있는가? 이런 경력이 많은가, 적은가? 한데 모으면 간증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흩어져 있는 것이 많지 않은가? 어쩌다가 하나님의 깨우침을 누리면 매우 기뻐하고, 어쩌다가 작은 빛비춤이 있으면 매우 기뻐하며, 어쩌다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나서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하나의 빛을 주고 생각지도 못한 한 가지 방법을 주어 이 일을 해결하면 매우 기뻐한다. 자주 이런 작은 경력들이 있다. 그렇지? 그러면 너희는 진리의 실제 진입이 얼마나 되는가? 진리 실질의 실제적인 방면에 관련되는 것이 있는가? 이것을 아직 접해 보지 못했다면 조급해 하지 말라! 너희가 분량이 일정한 정도에까지 자라나면 일부 일들을 겪게 되는데, 이것은 조급해 해서 될 일이 아니니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지금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본분을 잘하고 본분을 하는 기간에 생명 진입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힘만 쓰지 말고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본분을 하라고 하는 것은 너의 노동력을 팔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진심을 바치라는 것이다. 이 기간에 너는 생명 진입이 있어야 한다. 생명 진입이 있어야 너에게 비로소 생명이 있게 되고, 네가 생명이 있어야 비로소 자랄 수 있으며,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진리를 갖추게 되고 비로소 진리가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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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④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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