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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66편 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인사물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

너희들이 안무를 짜고 연습할 때 다 함께 기도하고 교통해야 하는데, 이것은 모두의 본분이자 역시 매 한 사람의 본분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마다 이 일들을 잘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의 책임만이 아니다. 모두가 공동으로 노력하고 이 일에서 많은 공을 들이면서 서로 조금씩 배우고 서로 조금씩 제공하다 보면 안무가 풍부해진다. 이방인들은 왜 한 가지 일을 하는 게 그렇게 힘이 드는가? 안무 하나 짜는데 6개월이 걸리고, 새 동작을 하나 만드는데 한두 달 지나도 정하지 못하고 노래 한 곡을 편곡하는데 1, 2년이 걸린다. 그들이 일을 하는 것은 왜 그렇게도 어려운가? 왜 가로막는 힘이 그렇게 큰가? (조화로운 협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조화로운 협력이 없는가? (독선적이고 자신을 내려놓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슨 성품인가? 오만하고 독선적인 성품인데, 모두 패괴된 성정이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쉬운가?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중앙의 지도자들이 해결할 수 있는가? 시장(市長)과 성장(省長) 그리고 관리들이 해결할 수 있는가? 유명한 감독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틀림없이 해결하지 못한다. 그들은 왜 모두가 해결하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육체와 패괴된 성정에 따라 살고 처세철학, 수단, 음모와 간계 그리고 사탄의 본성에 따라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논하지 않고 독선적인 것을 내려놓거나 자신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진리에 순복하는 것도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한 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이다. 누구와도 한마음이 되지 못하고 서로 아귀다툼을 한다. 여러 가지를 전공하거나 학술을 연구하는 사람, 지식이 있는 상류층 사람일수록 더 심하게 다툰다. 연줄로 낙하산 타기, 배후의 허튼 수작, 이면합의, 각종 추한 짓과 거래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므로 너에게 능력이 있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너에게 진정한 재능과 견실한 학문이 있다 하더라도 꼭 선택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수단이 있고 음모와 간계를 부릴 줄 알고 연줄을 찾을 줄 알고 결탁할 줄 아는 사람들이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데, 이들은 흔히 무슨 진정한 재능과 견실한 학문이라고는 없다. 너의 전공이 인가받고 네가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사람들이 너를 대우해 주지 않는다. 너는 아부할 줄도 모르고 “내 능력에 의지해 살아가겠다”라고 말을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최소한 너는 말을 잘해야 하며, 다음은 뇌물을 쓸 줄 알아야 하고, 너의 집에 돈이 있고 토대가 있고 배경이 있어야 하며, 게다가 네 자신까지 팔아야 한다. 서로 곤경에 빠뜨리고 서로 해하며 서로 궁지로 모는데 이런 일들은 너무나도 정상적이다. 사탄의 세상에서 살면서 일을 하면 이렇게 어렵고 가로막는 힘이 이렇게 크다. 마지막에 너는 하는 수 없이 밥줄을 잘 지키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존엄과 인격 그리고 자기의 이상(理想)을 포기해야 하고 자신의 사람됨의 원칙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이 이루려는 목적을 달성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그저 체면만 세우기 위해서지 아무것도 따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는데 결국은 자신을 팔아야 한다. 보라, 이 목표가 얼마나 작은가,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팔아야 한다!

하나님 집에서 모두가 함께 일을 하면 왜 이방인들보다 효율이 높은가? 한 방면은 모두가 하나님 집에 와 본분을 하면서 최소한 마음을 한곳으로 기울이고, 공통된 목표가 있으며, 공통된 신앙이 있고, 심령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남방이든 북방이든 중원(中原)이든 간에, 비록 지방 언어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여기에 함께 앉아서 교통하고 각 사람의 경력(역주: 체험)을 말하다 보면, 바로 친근해져서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한가족 같은 친근감을 느낀다. 다른 한 방면은 하나님 집에서 음모와 간계를 꾸미는 자, 실제적인 일을 하지 않는 자, 늘 수작을 부리는 자, 독선적인 자, 거만한 자, 간사한 자, 세상 사람들의 길을 가는 자들이 환영받을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실로 증명된 것이다. 네가 나이가 얼마이든, 어떤 성별이든, 어떤 전문 분야를 배웠든, 만약 네가 “내가 더 전문적이니까 내 생각대로 하고 니들 말 안 들을 거야”라고 말하면 너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모두가 너를 어떻게 보겠는가? 너를 높이 보겠는가? 이런 사람이 굳게 설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주변이 있고 언변에 능해서 단기간 내에 모두가 그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지만 시간이 오래되면 호감이 생길 수 있겠는가? 다들 어떻게 말하겠는가? “이 사람은 말은 달콤하나 속은 엉큼하고 말씨는 좋은데 마음씨가 나쁘네! 겉치레뿐이고 듣기 좋게 말하지만 실제적인 일은 하지 않고 실제 행동이 없고,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고 세상 사람들이 걷는 길만 가네. 무슨 실제적인 경력이 있는지 안 보여. 하나님을 믿는 일은 왜 말도 안 꺼내는 거야? 사람과 함께 지내고 일처리 하는 게 왜 세상 사람 느낌이 나지? 이건 하나님을 믿는 모습이 아니야!” 그래서 사람들은 귀찮아 한다. 그와 함께 말을 하고 일을 처리할 때 이익을 얻지 못하고 마음이 시원하지 않고 영 안이 자유롭지 못하며 또 도움을 얻지 못하고 진리를 얻지 못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한다고 느껴져 사람들은 천천히 그를 멀리하게 된다. 시간이 오래되면 그 자신이 봐도 ‘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돼, 세상 사람들의 길을 걷고 세상 사람들의 그런 수작만 부리면 안 돼, 역시 진리를 추구해야 돼!’라고 느끼게 된다. 이런 환경하에 사람은 부지중에 사람이 잔꾀만 부리고 머리만 믿고 자신이 귀납한 경험, 교훈, 처세철학, 수단대로 하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대다수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을 좋아하는가?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의 실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진리의 실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들이 있는가?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습니다.)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으면 실제 행동이 좀 있는 것이다.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는 것은 무엇을 포함하는가? 어떤 세부 사항이 있는가? 한 방면은 자신의 본분을 대함에 원칙이 있다. 너희처럼 무용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춤을 춰야 하는지, 하나님 집에는 어떤 무용 동작을 필요로 하는지, 무용의 각본을 짜는 원칙은 무엇인지, 이런 것이 바로 원칙이다. 그 밖에, 사람을 대하는 방면에서 평범한 형제자매들을 대하고 각급 인솔자들을 대함에 어떤 원칙이 있는가?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형제자매들을 대해야지 이방인을 대하는 것처럼 이 사람을 가까이하고 저 사람을 멀리해서는 안 되며, 결탁해서도 작당해서도 안 되고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보면 괴롭히거나 대단한 사람을 보면 아첨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함에 원칙이 있어야 하고 공평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좀 괜찮으면 바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누가 접근하기 어려우면 배척하는데 이것은 원칙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이방인들의 처세 철학이고 이방인들이 사람을 대하는 원칙이다. 이것은 사탄의 패괴 성정이고 사탄의 논리이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대하는 원칙은 마땅히 무엇이어야 하는가? 사람마다 모두 작은 흠과 결점이 있고 모두 약간의 특성의 것들이 있으며 모두가 독선적이고 모두가 연약함이 있으며 모두가 부족함이 있으므로 너는 마땅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주고 또한 포용하고 참고 양보할 수 있어야 하고 너무 지나치거나 시시콜콜 따지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믿은 시간이 짧거나 혹은 방금 왔거나 혹은 일부 특별한 요구를 할 때, 네가 약점을 잡고 놓지 않는다면 이것을 지나친 것이라 한다. 너는 거짓 인솔자,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는 것은 보지 못하면서 형제자매들에게 작은 문제와 흠이 있으면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고 크게 문제 삼으며 뒤에서 논단하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어나 그를 반대하거나 배척하게 하여 그를 고립시키는데, 이것은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의 패괴 성정이고 과오이다! 사람은 일을 하고 있고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 네가 어떻게 하고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원칙을 잘 장악하려면 너는 우선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데, 진리를 깨달으면 하나님의 뜻도 깨닫게 된다. 진리가 너에게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지를 알려 주어 네가 깨닫게 되면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게 된다. 만약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하나님 말씀 안에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거나 제시되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사람이 사람을 대해야 하는 태도이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라. 어떤 사람은 분량이 작고 혹은 나이가 어리며 혹은 믿은 시간이 짧고 혹은 이 사람의 본성 실질이 나쁘거나 악독하지 않고 단지 약간 우매하고 혹은 소질이 낮고 혹은 사회 전염을 너무 많이 받아 아직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고 아직 입문하지 못했으므로 우매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행동이 있는 것은 피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보지 않고 이 사람의 마음을 본다. 만약 그에게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고자 하는 심지가 있다면 이 방향은 옳은 것이다. 그에게 이 목표가 있으면 하나님 편에서는 보고 기다리면서 그에게 시간과 기회를 주어 진입하도록 하는 것이지 한두 가지 잘못으로 모든 것을 부정하거나 머리를 내밀면 바로 쳐서 쏙 들어가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그렇게 대한 적이 없다. 사람이 만약 이렇게 사람을 대한다면 이것이 바로 패괴 성정이다! 너는 하나님이 무지몽매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분량이 작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사람의 패괴 성정의 정상적인 유로(역주: 흘러나옴)를 어떻게 대하는지, 악독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봐야 한다. 각기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대하고 각기 다른 사람의 서로 다른 정형을 대할 때에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처리한다. 이 일들에서 너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이런 진리를 모두 깨달으면 너는 경력할 줄 알게 된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만드는 데에 사람에게 1, 2년의 시간만 주는가? 3~5년만 주는가? 사람에게 크고 작은 과오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가? 사람에게 무슨 특기가 있는지를 보는가? 얼굴이 잘생기고 못생겼는지를 보는가? 사람의 출신이 귀하고 천한지를 보는가? 사람에게 이전에 무슨 결함이 있었는지를 보는가? 나이가 얼마인지를 보는가? 다 안 본다. 하나님이 이런 것을 보지 않기 때문에 너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네가 보기에 누가 예쁘면 “사람도 좋으니 많이 접촉하고 나랑 가깝게 지내면 우리 둘이 가장 좋은 친구가 될 거야.”라고 두어 마디 더 하고, 누굴 봐서 못생기고 밉상인 데다가 듣기 싫게 말하고 다른 사람과 교류할 줄도 모르면 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심심하면 그를 괴롭히고 잔소리하며 억누르면서 그를 계속 왕따시킨다. 이런 방법으로 대하는 게 어떤가? 다 사탄의 패괴 성정이고 사탄의 독이다. 그렇지? 그러면 너희는 사탄의 이러한 패괴 성정 가운데서 살기를 원하는가? 사탄의 이런 패괴 성정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속박받아 그것의 지시대로 이런 일들을 하기를 원하는가? 각 사람의 주관적 바람에 따른다면 사탄의 패괴 성정 가운데 살면서 일하거나 본분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의 주관적 바람은 다 좋으나 만약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참답게 대하지 않고 공을 들이지 않는다면 너는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지 못한다.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면 네가 살아내는 것, 네가 일을 처리하는 원칙, 네가 하는 말은 다 진리에 부합되지 않고 진리가 없는 것이다. 네가 한 방면의 진리도 깨닫지 못하면 절대로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고,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면 너에게 진리가 없는 것이다. 진리가 없는 사람에게 인성이 있는가? 그가 살아내는 것은 다 무엇인가? 살아내는 것은 다 사탄의 패괴 성정이다. 사람이 본분을 하자마자 바로 진리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본분하는 것은 단지 하나의 방식이고 경로일 뿐이다. 사람은 모두 본분을 하는 기간에 이런 기회로 말미암아 점차적으로 진리를 깨닫게 되고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며 그다음 진리에 진입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의 속박과 통제에서 벗어나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이 되고 또한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 된다. 사람이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본분을 하고 말을 하고 일을 함에 있어서 비로소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비로소 하나님을 만족스럽게 할 수 있다. 이야말로 표준적이고 합격된 피조된 인류인 것이다. 본분하는 이 일을 보라, 비록 너희들이 지금 지불하는 것, 헌신하는 것은 너희들이 배운 각종 기능과 지식 그리고 문화이지만 바로 이러한 경로를 통해 너희에게 이 기간에 진리를 깨닫게 하고, 본분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온 것이란 무엇인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고 자기를 내려놓고 독선적이지 않고 진리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것은 바로 옳은 것에 순복하고 진리에서 온 것과 진리에 부합되는 것에 순복하기를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너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말해 봐라,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본분을 함에 있어 각 방면의 원칙을 모르는 사람이 본분을 잘할 수 있는가? 어려움이 있지 않겠는가? 말할 필요 없이 분명히 어려움이 있다. 아마 너희들도 체득했을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함에 있어 만약 네가 진리 실제를 조금도 구비하지도 않고 진입하지도 않는다면 본분을 계속하거나 본분을 잘하거나 본분을 합격되게 하기가 매우 어렵고 굳게 서기도 매우 어렵다. 진리가 없으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럼 지금 무엇이 사람을 가장 깊이 체험하게 하는가? (훈계와 책망, 시련과 연단, 실패와 좌절입니다.) 너희는 실패를 몇 번 겪었는가? (몇 번 겪었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겪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드러나게 되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본분을 하는 것은 다 좋은 기회이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드러나거나 훈계와 책망을 겪거나 혹은 상면의 책망과 훈계를 받았거나 혹은 형제자매들에게 책망받았으면 너는 이 일을 기억하라. 사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정죄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이다. 이것은 자신을 알아가는 가장 좋은 기회이고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전환점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자신의 진상(眞相)을 아는 데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와 이런 조건과 배경도 없게 된다. 네가 자신 안의 것들, 자신의 여러 가지 면들, 그리고 자신이 인식하기 어려운 깊숙한 곳에 있는 것들, 파헤치기 어려운 것들을 인식했다면 이것은 좋은 일이고, 네가 모습을 바꾸어 새 사람이 될 가장 좋은 기회이자 새 생명을 얻을 가장 좋은 기회이며, 네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이 한 고비를 넘어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좋은 일이다! 만약 네가 이 기회를 붙잡을 수 있고 이런 일로 말미암아 진리를 많이 구하며 기도를 많이 하고 진지하게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네가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이 한 고비를 넘어선다면 너는 한 걸음 크게 진보할 수 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다면 매일 발생하는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누가 일부러 너를 괴롭히거나 일부러 너를 겨냥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안배하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너의 몰골을 드러내거나 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너를 드러내는 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려 하고 너를 구원하려 하는 것이 목적이다. 너를 어떻게 온전케 하는가? 너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우선 너로 하여금 자신의 패괴 성정을 알게 하고 자신의 본성 실질과 자신의 부족함과 결점을 알게 한다. 네가 이것을 알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데, 너는 기회를 잡는 것을 배우고 알아야지 소처럼 떠받지 말고 맞서지도 말아야 한다. 만약 하나님이 네 주변에 안배한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 대해 네가 늘 맞서고 늘 벗어나려 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늘 생각하고 늘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늘 오해한다면 너는 진리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렵다. 네가 순복하고 구하며 기도를 많이 하고 영 안으로 돌아와 하나님 앞에 오면 부지중에 네 안의 정형은 변화된다. 이 기간에 진리 실제를 네 안에 만들어 넣으면 너는 진보하게 되고 생명 정형에 변화가 생긴다. 너에게 변화가 생기고 이러한 진리 실제가 있으면 분량이 있게 되고, 분량이 있으면 생명이 있게 된다. 만약 사람이 늘 사탄의 패괴 성정에 따라 산다면 아무리 힘이 많고 아무리 믿음이 많고 아무리 열심이 많고 아무리 열정적인 감정이 많아도 이것은 분량이 아니고 생명이 아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역사함에 있어서 어떤 방식이든, 어떤 형식을 사용하든, 사람에게 어떤 말투로 말씀하든 간에 최종 목적은 오로지 하나, 바로 너를 구원하려는 것이다. 너를 구원하기 전에 너를 변화시키려고 하는데 네가 고생을 하지 않으면 되겠는가? 너는 고생을 좀 해야 한다. 고생을 한다고 하면 포함되는 것이 많은데, 하나님이 주변의 인ㆍ사ㆍ물을 일으키고 환경을 배치하여 너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직접 책망하고 훈계하고 들춰내어 마치 수술대에 오른 것처럼 조금 아프게 할 것인데 느낌이 없으면 되겠는가? 매번의 훈계와 책망, 매번 하나님이 일으킨 인ㆍ사ㆍ물은 너에게 있어서 다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또한 촉진시키는 것이다. 네가 이렇게 경력하면 옳은 것이고 너에게 분량이 있게 되며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된다. 매번의 훈계와 책망, 매번 하나님이 일으킨 환경이 너에게 있어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고 느낌이 없으며 네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으며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너무나도 마비된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마비되고 영 안에 늘 감각이 없으면 하나님이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아, 이 사람은 너무 마비되었고 너무 깊이 패괴되었어! 내가 이렇게 하고 이렇게 많은 공을 들이고 그의 몸에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뜻밖에 그의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그의 영을 일깨우지 못하니 이 사람은 정말 골칫거리구나. 온전케 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씀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너에게 약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을 배치하거나 혹은 너를 훈계하고 책망하여 네가 이 가운데서 공과를 배우고 하나님 앞에 오는 것을 배우고 진리를 구하는 것을 배우며 부지중에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아 진리를 얻고, 이런 환경 가운데서 변화가 있고 수확이 있고 진보가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원망치 않는다면, 즉 이런 환경과 시련에서 굳게 서고 시련을 견딜 수 있다면 된 것이고 네가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 기준을 통과한 사람을 하나님 편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이 사람은 참된 마음이 있고 이런 고생을 할 수 있으며 그의 마음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 대해 이런 평가가 있으면 너에게 분량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람은 생명이 있지 않는가? 이 생명은 어떻게 얻은 것인가?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어떻게 베풀어 주었는가? 하나님이 친히 밥 한 그릇을 들고 네 입에 떠 넣어 줘서 먹게 한 후에 배불리고 굳세게 설 수 있게 한다. 너는 이런 것을 다 이렇게 보고 이렇게 깨달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에 순복하는 것이다. 너는 이러한 마음 상태와 태도를 갖춰야 하고 진리를 구하는 것을 배워야지 외부에서 원인을 찾아서는 안 되고 늘 사람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되며 늘 다른 사람의 흠을 잡아서는 안 된다. 겉으로 보기엔 일부 사람들이 너에 대해 견해가 있지만 그런 각도에서 보지 말아야 한다. 네가 만약 그 각도에 서서 본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네가 다른 각도에서 보고 너의 관점을 바로잡고 너의 마음 상태를 바로잡으면 진리를 얻게 되는데, 이건 기뻐할 일이 아닌가? 너는 무엇 때문에 맞서는가? 네가 만약 맞서지 않는다면 진리를 얻게 되고, 네가 만약 맞선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을 상심케 하고 실망케 한다. 하나님은 어디에서 실망하는가? 이것은 하나님이 친히 너에게 가져다준 밥을 더군다나 그것도 하나님이 친히 네 입에 떠 넣어 주는 밥을 네가 밀쳐 내는 것과 같다. 너는 원치 않고 “안 먹겠습니다, 배고프지 않으니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누차 권해도 너는 배고픔을 참을지언정 먹지 않는다. 너는 자신이 배부르다고 여기지만 사실 너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바로 이렇다.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고 싶다면 우선 생활의 소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주변의 인ㆍ사ㆍ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네 주변에서 발생하는 매 한 가지 일, 네 주변의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하든, 혹은 너에게 매일 어떤 일이 닥치고 어떤 환경이 닥치든, 만약 네가 그 가운데서 공과를 배울 수 있다면 너는 성장한 것이고 정상 궤도에 들어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종종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면서 이 일에는 이런 원인이 있고 그 일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고 말하며 이런 핑계를 댄다. “저는 이 일을 분명하게 해명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된 일이 아니고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러면 아주 골칫거리다! 너는 순복하는 태도가 없고 진리를 구하는 태도가 없다. 이런 사람은 한 방면으로는 우매하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완고하며, 게다가 이런 사람은 분량이 너무나 작아 언급할 가치도 없다. 그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에 성인(成人)과 소통할 수가 없고, 사람들이 그를 성인으로 대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진보가 매우 느리다. 왜 진보가 느린가? 바로 그가 진리를 구할 줄 모르고 또한 진리를 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매사마다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고 이유를 찾는다.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그는 진리를 구하지 않으며, 사람 앞에서 비위를 맞추고 처세에 뛰어나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할지언정 진리를 얻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싫어한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인ㆍ사ㆍ물이 어디 그렇게 많은가? 하나님께서 돌보실 겨를이 있겠는가?’ 이것은 사람의 관념이 아닌가? 사람의 패역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손에 있고 만사만물도 다 하나님 손에 있고 매사마다 하나님의 주재가 있다고 입으로는 믿고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이 사실들을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불신파가 아닌가? 그가 “당신들은 왜 매사마다 공과를 배워요? 저는 왜 공과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당신들이 너무나도 우매한 게 아닌가요? 이건 규례를 지키는 게 아닌가요?”라고 말하는데, 이런 논법이 어떤가? 이것이 바로 불신파이다! 불신파가 진리를 얻을 수 있는가? 아마 마지막에 조금은 얻을지 모르겠지만 이 부류의 사람들은 진리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큰일은 하나님께 구하고 작은 일은 하나님을 귀찮게 하지 말자, 하나님도 아주 바쁘실 텐데,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랴, 매 한 사람을 주관하시랴 하나님께서 너무나 피곤하시니 하나님 귀찮게 하지 말고 내가 혼자 처리하고 해결할 거야. 이 일을 내가 혼자 해도 하나님이 만족하시면 되니 하나님을 걱정시키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데, 이런 논법이 어떤가? 이것은 다 불신파의 관점이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주관하면서 피곤하다고 말씀했는가? 돌볼 겨를이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했는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고 온 우주를 주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그러므로 그가 택한 각 사람의 주변에서 매일 발생하는 매사는 하나님으로 놓고 말하면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다. 너는 이 일에서 귀찮게 할까 봐 걱정하지 말고, 진리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네가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 앞으로 올수록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고 안심하며 위안을 느끼고 누림을 얻게 되지만 네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과 가까이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찾을 줄 모를수록 하나님은 더욱 상심한다.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상심하는가? 말할 상대가 없어서인가? 고독해서인가? 하나님은 각 사람의 몸에 모두 심혈 대가를 지불하였고 모두 그의 뜻이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몸에 모두 기대와 희망을 걸었다. 그러므로 그의 심혈 대가를 값없이 이 사람들에게 주었고, 그의 생명과 진리를 각 사람에게 공급해 준 것은 기꺼이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사람이 만약 이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기쁨과 위안을 느끼게 된다. 만약 네가 받아들일 수 있고 순복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은 이런 심혈과 대가를 헛되이 지불하지 않았다고 여긴다. 즉 네가 하나님의 애쓰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았고, 매번의 환경 가운데서 다소 수확이 있으며, 너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하나님이 네 몸에 행하려는 것이 예정된 효과와 목표에 도달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만족스러운 것이다. 만약 네가 언제나 받아들이지 않고 늘 거절하고 대항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염려하고 조급해 할 것이다. “이렇게 너에게 환경을 배치해 주고 이렇게 많은 심혈과 대가를 지불했는데 왜 너에게서 효과를 얻지 못하는가? 왜 네 안에 만들어 넣을 수 없는가?” 결과를 보지 못하므로 하나님은 상심한다. 그가 상심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네가 마비되고 우매하고 둔하고 완고하여 그가 네 생명을 위해 책임지고 염려하고 조급해 하고 애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로 인해 상심한다.

말해 보라, 누가 사람의 생명에 대해 가장 책임감이 있는가? (하나님이십니다.) 오로지 하나님이다. 사람의 부모나 가족도 아니다. 사람은 마비되고 멍청하여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은 항상 “아,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셔도 나는 느끼지 못하겠어. 어쨌든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가장 사랑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사랑하는가? “무용을 배우게 해 주셨어요. 커서 출세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스타가 되고 유명인이 되라고 저를 20년 동안 길러 주셨어요. 제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정말 많은 돈을 들였고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셨으며 좋은 옷도 입어보지 못하셨고 맛있는 것도 먹어보지 못하셨으니 그 사랑이 얼마나 큰가요, 저는 다 보답할 수 없어요!” 너희가 말해 보라, 그것이 사랑인가? 부모가 어떻게 하든,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든지 아니면 너를 위한 것이든지 간에 결론적으로 그가 가는 그 길은 바로 무작정 너로 하여금 두각을 나타내고 온몸과 마음을 다해 이 세상에 뛰어들고 사탄의 품에 안기게 하는 것인데, 이것이 사랑인가? 언젠가 네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고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여 지옥에 떨어지면 그때에야 너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아, 우리 부모는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곤경에 빠뜨렸어!” 지금은 너희가 아마도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또 말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나는 아직도 느끼지 못했어. 그래도 우리 엄마가 나를 가장 사랑해.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이야. 세상에 이런 노래가 있잖아?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이것은 명실상부한 것이고 조금도 틀리지 않아.” 언젠가 그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되면 그때야말로 너에게 정말로 생명이 있는 것이다. 네가 생명에 진입하고 진리를 얻으면 너는 “엄마는 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아빠도 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를 가장 사랑하시고 저와 가장 가까운 분이시고 최고의 사랑이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생명을 주셨고 또한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시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 말은 네가 진리를 깨닫는 그날, 네가 완전히 진리를 얻는 그날에 가서야 너에게 비로소 깊은 체득이 있을 수 있다.

진리를 얻으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주변에서부터 시작해 공과를 배워야 하며, 주변의 인ㆍ사ㆍ물에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네가 비로소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작은 일을 거들떠보지 않고 항상 ‘왜 큰일이 없고 조금도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이 없지? 만약 정말로 세상을 놀라게 할 일이 좀 있어 큰 진리를 조금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현실적인가? 실용적인가? 걷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하는 성질이 조금 있고 또한 조금 오만한 성품도 있다. 이런 추구법은 진리를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네 주변에서 네가 가장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일에서부터 원칙을 잡고 공과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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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