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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편 젊은 사람들은 세상의 사악한 풍조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 특히 16~17세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모두 무엇을 하느냐? (PC방에 갑니다.) PC방에 가서 인터넷 게임을 하는데 대다수 현대인의 생활이 다 이렇다. 게임에는 대부분 어떤 것이 있느냐? 게임에는 폭력적인 것들이 매우 많은데, 그것은 마귀의 세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기도 싫어하고 공부하는 것도 싫어하며 앞날도 생각하지 않고 인생의 일은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대다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 안에는 무엇이 들어차 있느냐? 먹고 마시고 그다음 게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그런 말과 일들 그리고 마음속에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모두 비인류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추함’ ‘사악함’이라는 이 두 단어로는 이미 형용할 수조차 없게 되었고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비인류의 것이다. 네가 그들 정상 인성에 관한 일을 말하고 정상 인성에 관한 화제를 이야기해도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고 흥미를 갖지 않으며, 들으려 하지 않고 듣자마자 머리를 긁적이고 반감을 가지면서 정상적인 인류와 공통 언어가 없고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사람들끼리 함께 모이면 이야깃거리가 있다. 그들의 화제는 다 어떤 것이냐? (바로 게임 하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대부분이 이런 것들이다. 늘 이런 이야기들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앞날은 어떻겠느냐? 전망이 있겠느냐? 그들의 미래는 어떻겠느냐? (그런 사람들은 쓸모없습니다!) ‘쓸모없다’라는 말이 아주 적합하다. 더 자세히 말하면 실제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느냐? 그들은 정상 인성에서 마땅히 해야 할 활동에 종사할 수 있느냐? 공부도 잘 할 수 없는 이런 사람들에게 힘들여 일하라고 한다면 그들이 원하겠느냐? 일하라고 하면 그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일하면 얼마나 피곤해. 게임 하면 얼마나 끝내 주는데. 총알 한 방에 하나씩 쏴 죽이고! 일은 언제까지 해야 끝날 수 있지? 그래도 게임 하는 게 재미있어. 얼마나 홀가분해. 일하는 게 무슨 재미가 있어? 뭘 얻을 수 있지? 아무것도 얻지 못해. 당신이 열심히 일을 해도 하루 세 끼 밥 먹는 거 아니야? 나보다 더 좋아보이는 건 없네 뭐! 게임 하는 게 얼마나 좋다고. 거기에 앉으면 뭐나 다 있어. 가상 세계에서 살면 그만이야!’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 사람에게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시간을 지켜 출근하라고 하면 어떤 느낌일까? 그 시간을 지키려고 하겠느냐? 내가 너희들과 말하는데, 사람이 게임을 오래 하면 사람의 의지(意志)가 사라진다. 이방인들에게 단어가 하나 있는데 뭐라고 하느냐? ‘퇴폐적이다’이다.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그것에 의해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된다. 이방인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방 세계에서 이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에 대해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 밖에 없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게임을 하며 거기에 빠질 때, 뇌에서 한 가지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이 사람에게 약간의 환각이 생기게 하여 게임을 하기만 하면 중독되어 항상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한가하거나 멍하니 가만히 있을 때, 혹은 본연의 일을 할 때, 즉 공부나 일을 해야 할 때 게임으로 대신하고 싶어지면서 게임 하는 것이 차츰차츰 생활의 전부가 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마치 마약처럼 사람이 일단 하기 시작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끊기 어렵고,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있는 사람이든 일단 이 나쁜 습관에 물들게 되면 고치기가 어렵다. 어떤 애들이 게임 하는 것은 부모가 아무리 감시하려고 애를 써도 안 된다. 낮에는 안 하지만 밤이 되어 부모가 잠들고 나면 아이는 몰래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밤새도록 게임을 한다. 몇 년 전 뉴스에서 한 어린 아이가 열 몇시간 동안 컴퓨터 게임을 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아이는 그동안 분명히 자지 않고 계속 했을 텐데, 어느 정도까지 했겠느냐? 부모가 발견했을 때, 아이는 이미 컴퓨터 앞에서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손이나 몸은 여전히 게임을 하는 자세였다고 한다. 그 아이는 어떻게 죽었겠느냐?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에 의하면 게임을 하다가 뇌괴사로 죽었다고 한다! 너희들이 말해 보아라, 게임을 하는 것은 정상 인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냐? 만약 게임이 정상 인성에 필요하고 올바른 길이라고 한다면 사람은 왜 그것을 끊지 못하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그 정도까지 미혹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써 증명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훑어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바른길이 아니다.

이런 게임은 어떻게 온 것이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어떤 그릇된 자들은 뭐라고 말하느냐? “게임은 현대 과학이 발달된 상징의 하나로, 과학의 성과입니다.” 이런 해석은 어떻느냐? 이런 해석은 듣기만 해도 역겹다. 너희들은 한가할 때 시간 때우려고 게임을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느냐? (네.) 그럼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게임을 하는 것은 사회적 풍조를 따라가는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네가 요만한 일조차도 끊지 못하고 자제할 수 없다면 아주 위험하다. 이방인 중에는 젊은이나 나이 든 사람을 막론하고 게임을 하고 마약을 하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흔한 일이다. 네가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 만일 게임을 하는 것마저 자신을 자제하거나 단속하지 못한다면, 어느 날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재미가 없고 무의미하다고 느껴지고 흥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 너도 그들을 따라 마약을 복용하고 너를 흥분시킬 수 있고 하늘을 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사람은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지 않느냐? 이것은 위험하다는 신호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제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이방인을 따르지 않고 세속도 따르지 않았기에, 이방인들과는 다릅니다.”라고 하지 말라. 이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어렵다. 너는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사악한 세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세계와 이 인류의 사악한 풍조를 꿰뚫어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전적으로 끌어들이고 유혹하고 있다. 네가 늘 하나님 앞에 올 수 없고 마음이나 머리가 늘 비어 있다면, 위험하다. 너희들은 백지상태일 때가 많으냐? 젊은 사람들은 머리가 백지상태일 때가 많다!

16~17세 그리고 20세는 어떤 나이냐? 꽃다운 나이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머리를 흔드는데 꽃다운 나이가 아니면 어떤 연령대냐? 내가 너희에게 한 마디를 알려 줄 테니, 들어 보아라. 내가 말한 것이 정확한지 보거라. 이 말은 내가 늘 하는 말이다. 20세 정도 되는 사람은 아직 본연의 일을 모른다. 인생의 목표를 세울 줄 모르고 포부가 없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 연령대의 사람은 모두 어떠냐?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고 사리 분별을 못한다. 왜 이렇게 말하느냐?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라는 것에 대해 먼저 말해 보자.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라는 것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너희가 해석해 보아라. 그 표현을 말해 보거라.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은 젊은이들의 한 가지 정형인데, 어떤 성정이냐?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늘 자기의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한 방면의 표현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거라. 실제 인물에 맞춰 보거라. 자신에게 맞춰 보든지 혹은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 맞춰 보거라. 그 사람의 성정을 어떤 단어로 형용할 수 있느냐? 오만하다. 이것은 그 어떤 젊은이든 그 연령대에서의 성정이고 표현인데, 사람마다 모두 같다. 생활환경이나 배경이 어떠하든 어느 시대든 막론하고 이것은 그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성정이다. 그 연령대를 보면 대략 그런 성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성정을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연령대에 있는지 알게 된다.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라는 이 표현은 어느 방면의 성정이냐? 16~17세 혹은 20세 정도 되는 연령대의 사람을 왜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라고 하느냐? 왜 이 단어로 그 연령대의 젊은이들을 형용하겠느냐? 그 연령대의 사람에게 편견이 있거나 혹은 눈에 차지 않아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 연령대의 사람에게 한 가지 성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연령대 사람들은 세상에 깊이 물들지 않고 인생의 일을 너무 적게 깨달아 세상의 어떤 일이나 인생에 관계되는 일을 막 접촉했을 때 ‘알았어! 파악했어. 다 알아! 어른들이 하는 말 다 알아듣고 세상에서 유행하는 것도 따라갈 수 있어. 지금 휴대폰도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기능도 얼마나 복잡해. 근데 난 다 할 줄 알아! 할머니들은 아무것도 몰라. TV도 켤 줄 모르고 켜놓고도 끌 줄 모르는데.’라고 생각한다. 어떤 젊은 애들은 나이든 사람이 “얘야, 이 할미한테 이것 좀 해 줄 수 없겠니?”라고 말하면 “흥, 이런 것도 모르세요? 늙으면 정말로 쓸모가 없네요!”라고 한다. 이것은 어떤 말이냐? 잊지 말아라, 너도 언젠가는 늙을 날이 있을 테니까. 그것을 조금 아는 것이 뭔 재주라도 되느냐?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느냐?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일이 닥치면 그런 성정을 드러낸다. 이것을 뭐라고 하느냐? 이것을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그 표현이다. 그럼 그가 기어이 그렇게 표현하려고 미리 생각한 것이냐,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한 것이냐? (자신도 모르게 한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것인데, 이것을 성정이라고 한다. 이런 성정은 정상 인성에서 좋은 성정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인성이 있는 성정이냐? 정상 인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느냐? 없다. 그래서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라고 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마치 무슨 일이든 다 알고 깨달은 것 같아 “우주 비행선이 우주로 몇 번 올라갔는지 난 알아. 넌 알고 있니? UFO가 어디에서 몇 번 나타났었어. 내가 직접 보진 못했어도 몇 초 머물다 지나갔고 몇 사람이 내렸는지 난 다 알아. 당신들은 알기나 해? 모르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시대의 흐름을 못 따라가는 거야. 글렀어!”라고 말하는데, 이것을 ‘경망하다’라고 한다. 왜 ‘경망하다’라고 하고 ‘교만하다’라고 하지 않느냐? 이것이 바로 젊은 사람들에게 있는 하나의 특유한 성정이다. 사소한 일을 좀 안답시고 붕 떠서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고 그것을 자본으로 삼는다. 6~70세를 살아 온 노인들은 생각해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애들은 다 그래, 정상이야. 나도 젊었을 때 그랬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많은 일을 알고 인생의 풍파와 고초를 많이 겪어 오다 보니 이젠 그러지 않지. 그렇게 하면 웃음거리만 되니까.” 이 연령대는 그런 성정이 있을 리도 없고 많이 믿음직스러워지고 무엇을 할 줄 알아도 잘난 체하지 않으며 무엇을 할 줄 모른다 해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무엇을 조금만 할 줄 알아도 들뜨고 잘난 체하면서 전 세계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 어떤 때에는 흥분하면 지구를 떠나 달나라로 날아가서 머물고 싶어 하는데 이것을 ‘경망하다’라고 한다. 주 특징은 바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것이다. 어디에 위험이 있고 어떤 일이 현실적인지 모르고 또한 사람이 살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너는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이 연령대의 사람에게 이런 성정이 있으면 쉽게 이런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있게 된다. 어떤 젊은이는 말할 때 눈을 내리깔고 어떤 사람도 안중에 없으며 말하기만 하면 “흥”, “어”라고 하는데,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몇 마디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지금은 부모 노릇하기가 정말 힘들다. 젊은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너무 어렵다.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아이는 그릇을 내동댕이치거나 뽀로통해서 가 버리고 어른들과 소통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말하자면, 많은 젊은이들의 생각에 문제가 있고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것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사악한 풍조와 사악한 사회가 야기한 것이 아니냐? 그래서 너희 젊은이들이 오늘 날 하나님 집에서 안정되게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가 좋아서도 아니고 너희들이 이 길을 기꺼이 선택해서도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인데, 하나님이 너희를 세상에 넘기지 않았고 너희를 사탄에게 넘기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 너희가 세상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타이르면 안 믿을 것인데, 내가 그들과 말해도 소용없다. 그들이 단지 나이가 어려서 경망한 것뿐이겠느냐? 모두 어떤 사람들이냐? 양심과 이지가 없으면 짐승이고 마귀인 것이다! 그들에게 정상 인성의 말을 하면 알아들을 수 있겠느냐? 소통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듣지 않는 것이다! 왜 지금 부모들은 자식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이 어려우냐? 지금의 부모들이 학력이 낮고 심리학을 배우지 않아 젊은 애들의 마음을 몰라서냐? 이것은 어떤 문제냐? 지금 젊은이들의 생각이 이상해진 것이다. 그래서 부모 노릇하기가 아주 힘들다. 어떤 부모는 일부러 청소년 심리학을 배우기도 한다. 지금 아동 자폐증, 우울증 등 괴상한 병이 아주 많고, ‘반항심리’, ‘반항기’, ‘청소년기’ 이런 단어들까지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왜 이런 단어들이 없었을까? 현재는 과학이 발달해서이냐? 이런 괴상한 단어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 사람의 타락 정도가 점점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는 본분할 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 기간에 너희들의 기초가 튼튼히 뿌리를 내릴 수 있어야 안전해지고 이 사악한 풍조에 쉽게 휩쓸려 가지 않게 된다. 만일 네가 다시 휩쓸려 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다시 너를 받아 주겠느냐? 받아 주지 않는다! 너에게 기회를 한 번 줬으니 더는 받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러면 너는 위험하고 무슨 일이든 다 저지를 수 있다.

또 하나가 있는데, ‘사리 분별을 못한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 쓰는 말인데, 글자 표면의 뜻을 보면,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못하고 무엇이 긍정적인 것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기에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은 다 틀리고 내가 말한 것이 맞아. 아무도 나한테 말하지 마. 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고집 부릴 거야. 틀려도 맞다고 우길 거고, 틀린 걸 알아도 고집할 거야.’ 이런 성정을 띠고 있는데, 사리 분별을 못하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영리한 것 같으나 그렇지 않고, 어리석은 것 같으나 그런 것도 아니고, 도리를 말할라 치면 줄줄 말하니 누구보다 똑똑하고 누구보다 잘 아는 것 같은데, 일을 하기만 하면 왜 어리둥절하겠느냐? 이렇게 하면 맞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듣지 않고 자기 성깔대로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즉, 내키는 대로 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너희들은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한 적이 있느냐?

지금 많은 사람들이 파쿠르를 하고 있다. 너희들은 파쿠르를 해 본 적이 있느냐? 좋아하느냐? (그런 느낌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어떻게 그런 느낌을 좋아할 수 있느냐? 그런 느낌은 도대체 어떤 거냐? (벽을 타기도 하고 건물을 날아 뛰어넘기도 하는 느낌인데 아주 자극적입니다.) 그것이 정상이냐? (아닙니다.) 정상적이 아니라면서 왜 또 좋아하느냐? (그 느낌이 멋져서인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은 사람에게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하나의 자극을 줄 수 있다. 사람은 모두 그런 것을 동경한다. 무엇이 그런 생각을 지배하느냐? 사람은 왜 그런 것을 좋아하느냐? 사람의 뼛속에 세계를 구원하고 슈퍼맨이 되고 싶은 상상이 있는 것이 아니냐? 아주 많은 영화 작품에서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벽을 타기도 하고 건물을 날아 뛰어넘기도 하는 날아다니는 협객들을 상연했는데, 사람들이 보면서 매우 부러워했다. 그 후 지금 시대의 젊은 사람들 머릿속에는 이런 것들이 심어져 중독되었다! 왜 이런 것에 중독되겠느냐? 사람이 마음속으로 원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그럼 사람은 왜 파쿠르를 그렇게 좋아하느냐? 파쿠르가 위험해서 목숨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사람은 거미가 아니고 도마뱀도 아니어서 그런 기능이 없기에 벽을 타면 분명히 떨어진다. 사람이 지붕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려면 어디로 뛰어내려야 부딪히지 않고 다치지 않을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벽에 아무것도 없어도 어떤 물건의 도움도 받지 않고 벽을 타고 올라갔다가 아래로 뛰어내렸을 때, 사람은 매우 흥분되고, 보는 사람 또한 그렇게 감탄을 한다. 그럼 이것은 어떤 생각이 지배한 것이냐? (사람이 사는 게 따분하니 자극적인 걸 찾으려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을 찾기 좋아하는데, 너무나 공허하고 지루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 한다. 이것이 한 가지이다. 그 외에 사람은 또 하나의 생각의 지배를 받아 마음속에 욕망이 있다. 바로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되려고 하면서 어떤 세력을 동경하고 어떤 것을 동경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상 인성에 갖춰진 것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힘과 초능력의 힘인 것이다. 사람은 영웅이나 슈퍼맨 그리고 능력자가 되고 싶어 하고 특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즉, 사람은 마음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탄을 숭배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또 그런 기능이 있어서 높은 곳에 기어올라 갔다가 거기서 아래로 뛰어내릴 수 있느냐? 악령이 들린 사람만 분명히 그런 기능이 있다. 하나님이 만든 인류에게 그런 기능이 있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할 일이 없으면 파쿠르를 하라고 했느냐? 아담과 하와 그때 파쿠르가 있었느냐? 그들은 왜 파쿠르를 하지 않았느냐? 성경에 파쿠르에 대해 기록한 일이 있느냐? 왜 그때의 사람들은 파쿠르를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파쿠르를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겠느냐? 그것은 어떤 사상의 영향이나 영화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이끌어 사악한 풍조로 나아가게 한다. 사람에게 분별력이 없으니 마음속으로 괴상하고 자극적인 사탄의 특이한 능력을 좋아하고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사람은 그것을 “저는 영웅을 좋아합니다. 스파이더맨과 배트맨 다 영웅이 아닙니까?”라고 정의한다. 보통 사람은 그런 능력이 있느냐? 그런 능력이 없다. 사탄은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들을 만들고 편집하고 꾸며내 생각이 없는 그런 청소년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네가 영향을 받기만 하면 그런 것들이 너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한 가지 독소가 된다. 그런 독을 밖으로 빼내기가 쉬우냐? 그런 독소는 네가 간파하지 못하면 완전히 버릴 수 없다. 네가 그것의 영향을 하루 받으면 너는 하루 동안 그것의 방해와 통제를 받게 된다. 너희들은 믿느냐? (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느냐? 해결하기 쉬우냐? 너희들은 이런 것들을 내려놓고 싶으냐? (네.) 어느 정도로 내려놓고 싶으냐? 어떤 때는 ‘내려놓자니 좀 아쉬운데 왜 내려놔야 되지? 이런 게 있어서 정말 괜찮았는데. 겨우 내 것으로 만들었잖아. 이건 독이라고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한다. 네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내려놓을 수 없다. 사실은 너 스스로가 잡고 있으려는 것이지, 네가 내려놓지 못하거나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분량이 작을 때 될 수 있는 한 너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너를 중독되게 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너에게는 분별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경망하고 또 마음속에 갖춰진 긍정적인 것들이 너무 적고 그 어떤 진리 실제도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말로 한다면 너에게 생명이 없고 분량이 없다. 너는 “저는 하나님을 믿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바른길을 갈 수 있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서 좋아요.”라는 소망만 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더니 “이방인 가운데서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파쿠르를 좋아하는 것을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저는 그래도 좋은 아이이고 역시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한다면 곤란하다!

환경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크냐, 크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면서 이런 환경에서 형제자매들과 늘 함께 있다. 주위에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너도 착실하게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 하지만 만약 너 혼자 이방인들 가운데 있게 된다면 너의 마음속에 그래도 하나님이 있을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너의 마음속에 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그들과 같이 있으면 그들과 똑같이 되기가 쉽지 않겠느냐? 그때면 너는 “하나님, 저를 보호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는 ‘괜찮아, 하나님이 날 보호하시고 있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저를 보살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는 ‘하나님이 보살펴 주시고 있어!’라고 하며, 작은 일을 저지르게 되면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한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하고 내일은 저렇게 기도하다가 시간이 길어지면 속에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 하나님이 어디 있어? 난 왜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안 보이지?’라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았느냐? 이러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너는 생각할 것이다. ‘내가 그때 왜 그렇게 어리석었지? 당당한 사내 대장부가 어떻게 그렇게 무식한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무식한 어린 여자애들, 또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수가 있었지? 내가 왜 그렇게 멍청했지?’ 왜 그렇게 변하기 쉽겠느냐? 사실 네가 그런 환경이 있어야 변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네가 단지 하나님 집에 있기 때문인 것이지, 만약 너에게 진리 실제가 없어서 네 안의 세상적인 것과 사탄의 사상, 성정, 인식, 관점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고 안에 담은 것이 다 그런 것들이라면 여전히 그런 것으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네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람 안의 패괴 성정, 사탄의 그런 관점을 아직 없애지 못했기에 너는 분량이 아주 작고 여전히 위험한 단계에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없고 안전하지 못한 것이다. 너는 우선 사악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어떤 해를 끼치는지, 사탄이 왜 그렇게 하는지, 사람이 그런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어떤 변화가 있게 되는지 또 어떤 중독성이 있는지, 사람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들이 정상 인성이고 어떤 것들이 긍정적인 것이며, 어떤 것들이 부정적인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소극적인 방면에서 이런 것을 마땅히 인식해야 한다. 적극적인 방면에서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너의 본분에 협력하고 너의 진실된 마음과 충성을 바치며 잔꾀를 부리거나 간사한 짓을 하지 말고, 이방인의 방식으로 본분하지 말며 이방인의 철학으로 너의 본분이나 너에게 맡겨준 임무를 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다음 다시 각 방면의 진리에 진입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면과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방면에 점차적으로 도달해야 한다. 이러면 너는 알게 모르게 변화될 것이다. 즉, 긍정적인 것은 많아지고 부정적인 것은 적어지며, 적극적인 것이 많아지고 소극적인 것이 적어지게 되며, 너의 분별력도 이전보다 더 정확해진다. 분량이 이 정도까지 자라났을 때, 너는 세상의 일들을 대함에 있어서 분별력이 커지게 된다. 예를 들면, 만화 영화를 한 편 봐도 그런 만화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들이 어떤 것에 중독되는지를 알 수 있다. 사탄이 이런 방식과 풍조로 사람에게 어떤 것들을 심어주는지, 사람의 무엇을 좀먹게 하는지 네가 이런 것을 점차적으로 간파할 수 있으므로 만화 영화를 봐도 중독되지 않고 거기에서 분별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에게 정말 분량이 있는 것이다. 지금 너희는 이런 분량이 있느냐?

네가 분량이 아직 작아 분별력이 없을 때, 이런 사악한 풍조는 네 안에 먼저 유입되어 자리를 차지해 너에게 그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아주 정상적인 일로 여기게 한다. ‘왜 내가 따라하면 안 되지? 왜 나에게 그런 소원이 있으면 안 되지? 이건 아주 정상적인 건데.’라며 너는 이것을 하나의 정당한 일로 본다. 이것은 사탄이 사람을 독해(毒害)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말해 봐라, 사탄이 사악하지 않으냐? 네가 그것이 두렵고 메스껍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사탄이 한 것에 대해 분별력이 조금 생기지 않겠느냐? 너는 마땅히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겠느냐? 마땅히 그런 것을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틈틈이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면서 자신의 생각 속에 또 어떤 괴이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너희의 생각 속에는 괴이한 것들이 많다. 왜 그렇겠느냐? 그것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너희들이 너무나 많이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벽을 타고 건물을 뛰어넘는다거나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이 되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많다! 정상 인성에 있어서는 안 될 것, 정상 인성에 정상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 정상 인성에 갖추어지지 않은 것을 무리하게 추구하고 애써 맛보고 체험하려고 한다면 다른 한 종류의 영이 와서 일을 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이 일단 악령에게 한 번 사로잡히게 되면 문제가 된다. 하나님이 받아 주지 않는다. 그것은 위험성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네가 사탄에게 사로잡히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겠느냐? 하나님은 받아 주지 않는다.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는 것이 맞느냐? (맞습니다.) 그럼 너희들은 이 길을 가기 원하느냐? 너희들은 늘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 살고 하나님의 징계 아래에 살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자유세계에서 살기를 원하느냐? 만약 너희들이 누가 말을 듣지 않거나 혹은 누가 너무 패역해서, 하나님의 징계로 병이 나거나 어떤 때 너희들의 육체가 좀 고통을 받게 되면 너희들이 원하겠느냐? (네.) 그때 너희들의 행동을 보자. 너희들이 지금 “원한다”라고 말하지만 “원한다”라는 세 글자는 행하기가 쉽지 않다. 젊은이들은 확실하지 못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마음 속에 본연의 일이 없을까 봐 걱정된다.

나는 자주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지혜가 무엇인지 아느냐?”라고 묻는데, 그들은 모른다고 한다. 너희들이 말해 보아라, 무엇이 가장 큰 지혜냐? 지금 너희의 분량과 너희가 하나님을 믿은 시간으로 볼 때, 어떻게 실행해야 가장 큰 지혜냐? 이런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 그렇지! 예를 들면 이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것 같고 말할 줄도 모르며 언변에 능치 않고 말수가 적어 과묵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가장 큰 지혜가 있는데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다 그렇게 하지 않으므로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낀다. ‘그 사람은 왜 계속 저렇게 할까? 너무 규례를 지키는 거 아니야? 하나님을 너무 어리석게 믿는 거 아니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너희가 말해 봐라, 도대체 무엇이 가장 큰 지혜냐? (마음을 늘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과 많이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좀 근접했다. 너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목적은 무엇을 위해서이냐?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목적은 무엇을 위해서냐? (실행 길이 있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들이 대체적인 뜻은 알고 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목적은 하나님에게 의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냐? (네.) 하나님에게 의지하면 너희들 자신이 쉽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다 하시면 네가 할 필요도 없고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이것이 지혜가 아니냐? 내가 알려 주겠다.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설교를 많이 듣고 예배를 많이 드리고 재능을 많이 키우고 찬송가를 많이 배우고, 그다음 많이 기도하고 형제자매들과 많이 교통하고 본분도 많이 하고 고생도 많이 하고 대가도 많이 치르고 많이 포기하면,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일 거야!’ 그러나 너희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최종 목적을 소홀히 하였다. 

사람이 진리를 얼마나 깨달았든, 본분을 얼마나 했든 본분을 하는 기간에 얼마나 많은 일을 경력(역주: 체험)했고 또 사람의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왜 이것을 가장 큰 지혜라고 말하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많이 깨달았다고 해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되느냐? 어떤 사람들은 “저는 나이가 많고 하나님을 믿은 시간도 길고 진리도 많이 깨달아서 하나하나 다 말할 수 있고 실제적인 경력도 좀 있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에게 지혜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지혜가 없다면 무엇이냐? 지혜의 반대말은 무엇이냐? 어리석음이다. 만약 네가 진리를 깨달았고 하나님을 믿은 시간도 조금 길고 하나님에 대해 충성심이 조금 있고 시련도 여러 번 겪어서 경험이 조금 있고 경력도 조금 있고 진리 방면에 실제적인 인식도 조금 있긴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앙망하고 의지해야 할지 모른다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저는 많은 진리를 깨달았고 진리 실제도 구비하고 있으니 일을 처리함에 원칙이 있으면 돼요. 제가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있고 하나님을 어떻게 가까이 하는지도 알았으니 진리에 의지하면 되잖아요!” ‘진리에 의지한다’라는 말은 이치대로라면 맞는 것 같지만, 많은 경우에 대부분의 상황에서 사람은 진리의 원칙이 무엇인지 모른다. 실제 경력이 있는 사람은 다 이런 체험이 있다. 네가 한 가지 일에 임했을 때, 그 방면의 진리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고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모른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에게 실제적인 경력이 있다고 해도 모든 일에서 다 진리가 있을 수는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다고 해도, 경력한 일이나 경력한 훈계와 책망, 징계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네가 진리의 근원이냐? 어떤 사람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이 책을 저는 막힘없이 줄줄 외울 수 있고 그 유명한 문구들도 다 외울 수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앙망하지 않아도 돼요. 때가 되어 그런 말씀에 의지하면 돼요.”라고 한다. 그런 말들은 죽은 것이고 사람에게 닥치는 환경이나 사람의 정형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네가 글귀를 장악하였다고 해서 진리를 장악한 것이 아니고, 네가 글귀를 장악하였다고 해서 하나하나의 일에서 모두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에 아주 중요한 공과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 공과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또 앙망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행할 길이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사람이 이 일을 한 것이 맞고 진리의 원칙에 부합된다고 해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인위적인 일부 행위일 뿐, 하나님이 만족스러워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얕기 때문에 사람에게 늘 약간의 서로 다른 환경이 닥치면 똑같은 진리로 규례를 적용하여 글귀 도리를 사수한다고 한다. 즉, 많은 일을 처리했고 대체적으로 진리의 원칙에도 부합되지만 하나님의 인도나 성령의 역사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대부분 경우에 장악한 경험이나 규례 그리고 인위적인 일부 상상에 근거해 일하기 때문에, 그 일에서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확실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난 후,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인도로 말미암아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라고 말한다. 이 말이 성립되느냐? (네.) 그럼 너희들은 실행하려고 하느냐? (네.)

어떤 사람은 “저는 나이도 어리고 분량도 작을 뿐더러 하나님을 믿은 시간도 짧아서 하나님을 어떻게 앙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이 공과가 저에게는 어려운 일이어서 하나님을 의지할 줄도 몰라요.”라고 하는데, 이것은 문제가 아니냐? (네.)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것은 텅 빈 도리이냐? 형식이냐? 다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대부분 본분할 때만 필요하고 개인의 사소한 일은 하나님을 앙망할 필요없어요.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세요.”라고 한다. 이런 논법이 맞느냐? (틀립니다.) 그럼 사람은 어떤 일에서 마땅히 하나님을 앙망해야 하느냐? (모든 일에서입니다.) ‘모든 일’이라면 무엇을 가리키느냐?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다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러면 머리가 길어서 자르려면 하나님을 앙망해야 하겠느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느냐? 아침에 일어나니 눈꼽이 끼고 얼굴도 당겨 세수를 하려면 하나님을 앙망해야 하겠느냐?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배가 고픈데 밥이 채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을 앙망해야 하겠느냐? 하나님께 의지해서 배고프지 않게 하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게 하겠느냐?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어떤 사람은 “컴퓨터 키보드가 고장 나서 타자를 할 수 없어. 근데 손으로 쓰기는 싫고 타자로 하고 싶은데, 이걸 어떡하지?”라고 한다. 이 일에서 하나님을 앙망해야 되느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 이것은 문제가 아니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이 다 문제가 된다. 양치질하고, 세수하고, 샤워하고, 빨래하고, 밥 먹는 것과 같이 일부 정상 인성에 관계되는 이런 일은 스스로 처리하면 되고 특별한 상황에 부딪힐 때는 기도하면 된다. 예를 들어 오늘 위가 불편해 본분에 영향을 준다면 이 일은 성찰해야 하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제가 오늘 위가 불편해서 밥도 못 먹고 본분에 영향을 주게 됐습니다. 제가 뭘 잘못 먹거나 오한이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본분을 함에 있어서 충심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저를 징계하신 건지?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세요.” 너는 이렇게 간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인해 정상 인성의 모든 활동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 기도하고 나서 밥 먹을 때는 먹고, 먹을 수 없다면 적당한 것을 찾아서 먹으면 된다. 만약 위가 몹시 아프다면 약을 복용하는 한편 기도하고 구해야 하는데, 이것은 정상 인성에서 갖추어야 할 것이다.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지, 느낌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이 일에서 찾고 구해야 할 부분은 찾고 구해야 하고 마땅히 하나님을 앙망해야 된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한 가지 일을 통해 너를 깨우쳐 주는데, “네가 본분을 하는 것을 보면, 어떤 태도들은 그다지 좋지 않다.”라고 무의식중에 알게 한다. 이것을 알게 된 후, 너는 곧바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와서 죄를 자백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본분을 함에 있어 뒤섞임과 개인의 생각이 있었고 제 뜻에 따라 제멋대로 했으며,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려 하나님의 사역을 지체하고 본분의 진전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에 감사드립니다. 다음부터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그 병으로 인해 비록 밥은 못 먹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병이 조금씩 나아진다.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사람이 해야 하고 동시에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행이다. 네가 하나님을 앙망할 때, 하나님께서 아마 너에게 느낌이나 명확한 뜻을 주지 않을 수도 있고 더욱이 명확한 가르침을 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너에게 한 가지 일을 깨닫게 할 것이다. 혹은 이번에 깨달은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네가 하나님을 앙망한 이 일은 옳으냐, 틀리냐? 틀림없이 옳다! 사람이 이렇게 실행하면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필요이고 사람이 실행해야 할 것이다. 매번 하나님을 앙망하고 부르짖는다고 깨우침과 인도를 다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생명 영 안의 그 정형이 정상적이고 자연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심령과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하나의 교제인 것이다. 

어떤 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명확한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구하거나 어떻게 인도해 달라고 구하거나 혹은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이 닥칠 때 진심으로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겠느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사람에게 ‘하나님, 저는 이 일을 할 줄도 모르겠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었습니다.’라는 생각이 있을 때, 하나님이 알고 있지 않겠느냐?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이 진실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이렇게 진실하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겠느냐? 어떤 때는 사람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진심이 움직였다면 하나님은 곧 응답을 한다. 사람이 한 가지 어려움에 부닥쳐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의지할 곳이 없을 때, 매우 무력할 때, 사람은 유일한 희망을 하나님께 두게 되는데, 그러면 사람의 그 기도는 어떠하겠느냐? 사람의 마음 상태는 어떠하겠느냐? 진심이지 않겠느냐? 그때 뒤섞임이 있겠느냐? 네가 목숨을 건지려고 마지막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너를 도와주기를 바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너의 마음에 진정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네가 입으로는 몇 마디 하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의 마음이 이미 움직인 것이다. 즉, 네가 진정성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하나님께서 들은 것이다. 하나님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너의 어려운 점을 보고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며 도와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느 때에 가장 진정성이 있느냐?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을 때이다. 사람이 사막에서 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을 때,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그 마음에 진정성이 있지 않겠느냐? 네가 물 한 동이를 보았을 때, 네가 목마르지 않으면서 “아, 난 물 좀 마시고 싶어.” 혹은 “난 물을 좋아해. 물은 좋은 거야. 사람은 물을 떠나면 안 되니까.”라고 한다면, 이 말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마음에서 나온 것이냐? (아닙니다.) 이것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건성으로 대충대충 말한 것이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으며 정말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을 앙망하려면 가장 먼저 하나의 마음과 하나의 정형을 구비해야 하는데, 어떤 정형이겠느냐? 사람의 마음에 최소한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충대충 하지 말고 입만 놀리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 대충 넘어가려 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저는 이미 계획했어요. 그저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알려 드릴 뿐이에요. 동의하시든 안 하시든 저는 이렇게 할 거예요.”라는 뜻인데, 이러면 문제가 된다!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다 이런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옳은지를 모른다. 그러고 나서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선택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주위의 조건이나 환경 그리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 의지하려고 한다. 이것은 사람이 가장 잘하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못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너무 귀찮고 사람이 볼 수 있거나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런 것을 막연하고 또한 비현실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은 이 방면의 공과가 가장 부족하고 진입이 가장 얕다. 네가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고 인도하고 깨우쳐 준 것을 늘 보지 못하게 되고, 너의 심령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존재 여부와 하나님이 사람의 모든 생활을 인도하는지의 여부에 대해 마침표나 감탄표도 아닌 물음표일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든 생활을 인도하실――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실――까?’ 이러면 문제가 된다! 무엇 때문에 너는 이 ‘까’와 물음표를 붙이느냐? 네가 하나님을 진실되게 의지하거나 앙망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생길 수 없고, 너에게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생기기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에 대해 영원히 물음표이고 마침표를 찍지 못하게 된다. 너희들은 틈틈이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라.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이다” 이 한 마디 뒤에 “까”와 의문의 부호가 있는가?’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만물의 주재자인 거야?’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자인가, 아닌가?’ 너희들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도대체 어떤 정형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아니면 자신이 어떤 일들을 경력하고 나서 “하나님이 바로 만물의 주재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긍정적이고 감탄표가 붙을 뿐만 아니라 감탄표가 3개여서 그 어떤 사람도 의심하거나 부인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냐? 너희들은 어떤 정형이냐? 너희들 지금의 이 분량과 정형을 보면 물음표가 아주 많을 것이다. 게다가 물음표가 하나인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을 것인데, 이러면 아주 위험하다. 사람의 분량이 크고 작음은 무엇에 근거하여 확정할 수 있느냐? 왜 너희들의 분량이 작다고 하겠느냐? 바로 하나님에 대해 네가 얼마만큼의 진실한 믿음을 갖추고 있는지에 근거한다. 너희는 얼마만큼의 믿음을 구비했느냐? 자기 스스로 검증해 보았느냐?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좀 들었거나 혹은 가족이나 선배에게 조금 전해 듣고 하나님 믿는 것은 좋은 일이고 긍정적인 것이라고만 느꼈을 뿐, 아직 검증해 보거나 사실로 증명해 보지 않았기에 물음표가 너무 많은 것이다. 만약 너의 입에서 한 말들이 대부분 긍정적이거나 감탄표가 아니고 물음표라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너희들 가운데 16~17세, 20세나 30세가 되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 연령대에서 이런 물음표가 많은 것은 정상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한동안 본분을 하고 나서 이런 물음표를 얼마나 없앨 수 있느냐? 이 물음표를 감탄표로 바꿀 수 있느냐? 이것은 너희들이 어떻게 경력하느냐에 달렸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내가 방금 사람의 가장 큰 지혜는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그럼 너희들은 귀찮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건 너무 격이 떨어지잖아요. 일이 없어도 하나님을 앙망한다면 하나님께서 귀찮아하시지 않을까요? 우리가 늘 하나님을 앙망한다면 할머니처럼 잔소리하는 게 되잖아요!” 이 말이 어떻느냐? 비록 하나님을 앙망하는 이 일은 듣기에는 아주 얕은 실행법인 것 같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한평생 배우고 진입해야 할 공과이다. 욥이 70세였을 때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느냐? (네.) 어떻게 앙망했느냐? 그가 하나님을 앙망한 구체적 표현은 어떤 것이냐? 재산과 자녀들을 박탈당한 일이 닥쳤을 때, 그는 어떻게 하나님을 앙망했느냐? 속으로는 기도하고 있었고, 겉으로도 보여지는 행동들이 있었다. 성경에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느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욥1:20)라고 했습니다.) 땅에 엎드려 경배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하나의 표현이다! 너희들은 도달할 수 있느냐?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너희들은 도달할 수 있도록 추구하느냐? 그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사람이 완벽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에 너는 고난받을 심지가 있어야 한다. 너희들이 이것을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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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파쿠르: 맨몸으로 도시의 건물이나 다리, 벽 등을 오르거나 뛰어넘는 행동.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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