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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61편 진리를 추구하는 중요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길

진리 방면에 관한 진리를 이미 많이 교통했는데, 여기에는 각 방면이 다 있다. 너희들도 이제는 각 사람에 대한 진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많이 교통하고 나니 너희들은 진리가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 않았느냐? 너희들의 반응은 어땠느냐? 지금 아마 일부 사람들은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고, 마음도 단단히 먹었을 것이다. 자신이 이제부터는 반드시 진리를 잘 추구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최대의 공을 들여 진리를 많이 깨닫도록 노력하고, 진리를 많이 실행하도록 노력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공을 들이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들이 말해 보거라, 이러한 마음가짐이 맞느냐? (맞습니다.) 당연히 맞다. 그렇게 많이 교통했는데 너희들이 조금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정상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그 말은 헛되이 교통한 것이 되지 않겠느냐? 진리는 각 사람에게 있어, 진리를 추구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다. 진리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며, 우리가 먹고 입는 것과 잠자는 것, 다시 말해 우리 생활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너희들은 이 방면의 중요성을 인식했느냐? 너희들도 지금 분명 마음속에 이런 느낌이 있을 것이고, 인식했을 것이며, “저는 밥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더라도, 또 어떤 일은 하지 않더라도 진리는 추구해야 해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저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각 사람에게 있어 일생의 종신 대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교통을 듣고 난 후, 아마 너희들 마음속에는 다 이러한 기초와 인식이 있게 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느낌과 체험도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이러한 인식과 느낌은 맞고 정확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교통한 그런 내용과 우리가 깨달은 것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하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과 완전히 일치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지 않으냐?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사람은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 어떤 태도로 진리를 대하였느냐? 사람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해 낯설고, 진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왜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지, 왜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왜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를 모르며, 하나님이 왜 이렇게 많은 진리를 발표했는지는 더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 각 사람에게 있어 다 낯선 것이 아니었더냐?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이런 문제를 접해 본 적도 없다. 지금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여 많은 말씀을 발표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진리 방면에 관련되는 각각의 일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진리를 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너희들은 이런 것들을 다 알아들을 수 있겠지? (네.) 왜냐하면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살게 되는 환경에서 성장할 때까지, 그리고 직장에서 일하고 결혼하여 자립할 때까지, 접하는 모든 환경은 다 진리에 관련되지 않고, 진리는 더더욱 없다. 사람이 접하는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이르기까지 진리에 관련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사람이 진리로 대하는 것은 더더욱 없다. 그러므로 진리는 각 사람에게 있어 아주 낯설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진리를 참답게 대하고,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만약 사람이 아직도, 하나님을 믿었으면 반드시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오직 진리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온전케 하고, 사람으로 구원을 받게 하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만약 이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사람은 진리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진리를 더 이상 추구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교회 생활을 지체하지 않고, 본분도 지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도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도 지체하지 않고, 영 생활을 하는 것도 지체하지 않으면 되지 않나요? 또 무슨 진리를 추구할 필요가 있겠어요! 평소에 죄짓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지도 않고, 적그리스도도 되지 않고, 악인도 멀리하고 있으니 진리를 추구할 필요가 없지요. 단지 하나님 말씀의 일부 간단한 규례적인 것으로 저를 인도하고 도와주면 돼요. 너무 깊은 진리는 추구할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너희들이 말해 보아라, 이런 관점이 맞느냐? (틀립니다.) 어떤 점이 틀리느냐? (진리를 얻어야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맞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데, 진리가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이런 인식이 조금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뿌리내릴 수 있는지는 이후에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는지, 추구하는 것이 어떠한지에 달렸다. 너희에게 지금 이런 인식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너희는 이미 인식하고 있는데,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조금 인식이 있다. 예컨대, 사람이 소극적일 때, 사람이 연약할 때, 진리로 부축해 주지 않으면 사람이 굳세질 수 있겠느냐? 연약함을 이길 수 있겠느냐? 자신이 왜 연약하고 왜 소극적인지를 인식하고 해부할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예컨대, 네가 본분을 하면서 대충대충 하여 속일 때에 진리를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다고 하자. 네가 그렇게 한다면 너의 이 방면의 패괴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없다, 그렇지? 사람이 자신을 알고 자신의 패괴와 교만을 해결하려면, 진리를 찾거나 구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이 늘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고, 늘 자신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을 가늠하는데, 이런 문제들을 진리 없이 해결할 수 있느냐?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생활 방면의 일을 포함하여 많은 일이 닥칠 때, 만약 진리를 갖추지 못하고, 진리를 찾지도 구하지도 않고, 더욱이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한 것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이 그 방면에 관한 진리를 어떻게 발표하였는지, 그 방면에 관한 자신의 뜻을 어떻게 발표하였는지를 모른다면, 너희가 어떻게 너희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응하겠느냐? 좀 괜찮은 사람은 아마 자신이 평소에 좀 알고 있는 글귀와 자신이 평소에 좀 배운 규례나 자신이 좀 배운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느냐? 대체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가 진리를 찾거나 구하지 않는다면,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매사에서 원칙이 없고, 행할 길이 없으며, 더욱이 목표와 방향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삶 속에서 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고 형벌하려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므로 각 사람이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다 심판과 형벌, 채찍질과 징계가 어느 정도 임할 것인데, 그런 것은 다 사람에게 진리를 얻도록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을 믿은 후 경력(역주: 체험)하는 일에서 자주 곤혹스럽고 갈팡질팡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지 못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모르고, 혼자 머리를 쥐어짜도 방법이 없고, 찾고 구하며 교통하고 싶어도 어떤 화제에 해당하는지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답을 찾고 싶어도 주제에서 벗어나 두서없이 찾게 되고 목표도 없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늘 그렇지 않으냐? 이것이 바로 새 신자가 모든 일에서 진리가 없어 나타내게 되는 모양인데, 늘 그러하다. 그러므로 예배할 때 사람들에게 문제를 좀 제기하라고 하면, 그들은 겉으로 볼 때 진리와 무관한 일이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로부터 각 사람은 삶 속에서 진리를 실행한 적이 전혀 없고, 진리를 찾거나 구한 적도 없으며, 더욱이 진리를 삶의 원칙, 실행의 원칙과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어려움이 아니냐? 만약 사람이 실행하는 일에서 어느 한 방면에 관한 진리의 원칙을 이미 파악하여 진리의 실질이 있고, 진리의 실질을 깨달았다면 그래도 곤혹스러워하겠느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곤혹스럽지 않을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설사 좀 곤혹스러워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리에 대한 이해 정도가 너무 얕거나 진리상에서 별로 깊이 경력하지 못한 탓에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지 못하고, 자신의 패괴가 해결되지 못한 것 같아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들이 지금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금 진리 방면에서 너희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냐? 너희에게 진리 방면의 문제를 물을까 봐 두렵고, 진리 방면의 화제를 제기하여 너희에게 교통하라고 할까 봐 두렵고, 자신이 글귀 도리를 말하고 실제를 말하지 못할까 봐 두렵고, 더욱이 일에 부딪히면 어리둥절해질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런 것이다, 그렇지?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 진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진리가 있다면 그렇게 쩔쩔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원칙을 실행한다. 즉, 일이 닥치면 빨리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데, 한 단락을 찾아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후 절충적인 방법을 취하는데, 하나님 말씀의 글자 표면의 뜻대로 이해하고 그 규례만 지키면 그만이고 또한 그런대로 괜찮다고 여긴다. 기도하면 마음이 아주 평안하고 든든하다고 여기고, 형제자매들에게 물어보아도 자신보다 더 높은 견해가 없으니 ‘됐어, 이렇게 실행하자, 틀림없이 그런대로 괜찮을 거야.’라고 여긴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진리의 기준과 너무 동떨어졌고, 진리의 실질과 너무 동떨어졌으며, 하나님의 뜻과 너무 동떨어졌다. 그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이 아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깨달으려면 우선 너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한 일의 실질이 무엇인지, 어떤 문제인지, 어느 방면의 진리에 관련되는지 하는 이런 것을 찾고 구해야 한다. 그런 후, 너의 그 실제적인 어려움에 따라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한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경력하면 너는 너의 주변에서 발생한 매사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이 하려는 것과 너에게서 이루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너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해도 너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무관하고 진리와 무관하다고 여기며 ‘내겐 처리할 방법이 있어. 진리도, 하나님의 말씀도 필요 없어. 예배드릴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나 본분을 할 때, 진리로 맞추어 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맞추어 보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자신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일이며, 자신의 가정이며, 직업이며, 자신의 결혼이며, 자신의 앞날이며, 주변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은 모두 진리와 무관하다고 여기고 스스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만약 그렇게 경력한다면 너는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하나님이 너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기나긴 과정인데, 여기에는 간단한 면도 있고 복잡한 면도 있다. 간단한 것은 먼저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매사에서 관찰하고, 먼저 매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얻어야 할 진리와 추구해야 할 진리가 너무 많은데, 각 방면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 본분을 하는 사람이나 섬기는 사람 혹은 인솔자만이 매사에서 진리에 따라 실행해야 하고, 아래에서 따르는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 하나님이 발표한 그런 말씀은 소용이 없게 되고, 별로 큰 의의가 없게 된다. 너희들은 지금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길이 좀 있느냐? 실마리를 좀 잡았느냐? 우선 무엇부터 해결해야 하느냐? 우선 많이 먹고 마시고 많이 듣고 많이 찾고 구해야 한다. 충분히 먹고 마시면 빨리 자라고 분량이 있게 된다. 그때면 너희들은 일을 좀 할 수 있고, 시련과 시험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 그때에 너희들은 자신이 확실히 어느 정도 진리를 얻었고 진리를 깨달았음을 느끼게 될 것이며, 또 하나님이 한 말씀은 참으로 사람에게 필요하고, 사람이 얻어야 할 진리이며, 또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진리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 너희는 경력은 없고 그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만 조금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심오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주 많고,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 아주 많다고 느끼면서 그저 간절히 사모하는 그 마음만 있고 그런 힘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진리를 얻을 수 있는지는 너희들이 지금부터 어떻게 실행하고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마지막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이 간단한 진리만 좀 발표하고 심도 깊게 말씀하지 않고 별로 많이 말씀하지도 않는다면, 더욱이 사람을 심판하고 드러내는 아주 많은 말씀과 아주 심각한 말씀은 하지 않고 단지 적디 적은 일부분만, 그것도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따라, 사람의 머리로 깨달을 수 있는 것에 따라 조금만 발표한다면, 만약 하나님이 축복의 말씀만 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씀만 한다면, 사람이 결국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만약 하나님이 “지금 너희 이 무리 사람들은 다 심히 패괴된 사람들이고, 다 진리가 없는 사람들이고, 다 나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너희들의 본성 실질은 이미 살아 있는 사탄으로 변해 버렸고, 너희들은 나와 적대되고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자들이다.”라고 말한 다음,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거라!”고 알려 주고, 이어서 또 “나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축복한다.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고 끝까지 갈 수 있다.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을 축복하고, 어떠한 사람으로 나의 약속을 얻게 한다.”라고 말씀했다고 하자. 하나님이 만약 이런 말씀만 하여 각 사람에게 간단하게 알려 준다면,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겠느냐? 사람이 향상하려고 하겠느냐? 그럴 리 없다. 그렇지 않으냐? (네.)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하나님이 하신 이런 말씀은 우리도 거의 다 알 수 있어. 겨우 이 정도네 뭐. 우리가 굉장히 패괴된 것도 아니네, 그래도 괜찮은 거야! 단지 겉으로 도덕이 조금 패괴되었고, 인품이 조금 비열하고, 혹은 생활 습관 면에서 세상을 조금 따르고 있을 뿐이야. 사탄에게 패괴되었어도 하나님을 아주 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그 정도는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슬쩍 작은 계책을 쓰거나 약간 노력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을 테니 이것은 아주 간단한 거야.’ 그러면서 사람은 진리 추구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또한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공을 들이거나 고통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주 간단하고 아주 쉬우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아주 쉽고 아주 가볍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그런 것이냐? 아니다!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과 모든 내용, 그리고 하나님이 발표하신 모든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다 실제로 필요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다 실제적인 면과 진실한 면이 있다. 사람들이 오늘날 볼 수 있든 없든, 경력할 수 있든 없든, 느낄 수 있든 없든, 아무튼 이것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3~5년을 경력하고 나면 언젠가 하나님이 오늘날 하신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면 너희는 ‘아, 하나님이 발표하신 이런 말씀은 정말 좋구나! 하나님이 만약 여전히 은혜시대처럼 우리를 달래시면서 우리가 그분 품속의 어린 양이고, 우리가 그분이 잃어버린 양이며, 한 마리 양을 잃어버리면 아흔아홉 마리 양을 놓아두고 그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다고 말씀하신다면, 내가 바로 ‘그 한 마리 양’이야. 하나님은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참으로 너무나 위대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라고 여기게 된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에 대해 늘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대한다면, 사람은 진실하게 하나님께 찾고 구할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본래의 사탄 마귀가 하나님을 대하는 그 태도이고, 여전히 거만한 태도이며, 진리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람은 진리가 무엇인지 영원히 모를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란 무엇인지, 진리를 찾고 구하고 진리를 얻는 것이란 무엇인지를 영원히 참으로 알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만약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발표하지 않고, 각 사람을 형벌하거나 심판하지 않고, 이런 엄한 말씀으로 각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믿었으니 얻었고, 하나님을 믿었으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나중에 들림받을 것만 기다리면 되고,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왕 노릇 할 것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 잘 예비해 놓았다. “나 같은 재목감은 하나님 나라에서 적어도 문지기는 될 수 있어.” 어떤 사람은 “나 같은 재목감은 요구도 높지 않아. 하나님 나라에 가서 거리 청소부가 되어도 괜찮아!”, “나 같은 사람은 아마 백부장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처음 믿기 시작할 때에 가지는 최초의 소망이고, 또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꿈과 소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한 후, 사람의 관념과 상상 그리고 사람의 사치스러운 욕망과 생각을 다 철저히 드러냈는데,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과 맞는 것이 하나도 없고, 사람이 바라는 것과 사람의 이상(理想)으로 도달하려는 것은 진리와 맞는 것이 하나도 없고 전혀 진리와 맞지 않다.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은 후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고, 우리의 관념과 맞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한 우리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와 방식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의 사역을 받아들였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에게 도달하라고 한 하나님의 요구를 참답게 대하기 싫어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진리 추구를 언급하기만 하면 재미없어하고 졸리기 시작한다. 진리 추구와 진리 교통을 언급하기만 하면 사람은 졸면서 들을 마음이 없고 재미없어한다. 복받는 것과 약속에 대해 말하고 심오한 비밀에 대해 말하면 사람은 기운이 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냐? 사람은 마음 깊이, 마음속으로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너무나 귀찮고 자질구레하고, 골치 아프고 신경 쓰이고 너무 고생스럽고, 또한 대가를 너무 많이 치르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주 간단하여 마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나 동요를 읽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다면, 아마 일부 사람들은 흥미를 좀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간단하고 쉬워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고, 너무 많이 화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다. 그리하여 일부 사람들은 많이 필기한 다음 집에 가서 자세히 보더니 “너무 귀찮아, 한 조목씩 귀납하려니 골치 아프고 너무 번거로워. 일단 제쳐 두고 한잠 푹 자고 나서 다시 보자.”라고 한다. 한잠 자고 난 후에 생각해 본다. ‘진리가 뭐더라? 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지? 진리를 추구하는 의의는 뭐라고 했더라?’라고 생각해 봐도 별 재미가 없는 것 같다. 보아라, 한잠 자는 사이에 변했다. 아니면 일부 사람들은 이방인과 잠깐 한담하거나 이야기하다가, 혹은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없다. 진리 추구며, 성정 변화며,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것이며 하는 이런 것이 완전히 없어진다! 이것은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은 것인데, 사람에게 진리가 없고,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한다.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사람에게 진리가 있을 수 없다. 네 마음에 진리가 없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의 실질을 모르고 진리의 실질을 경력한 적이 없으면, 너는 영원히 진리의 실질을 깨닫지 못할 것이고, 네 마음에 하나님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 않으냐?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왜 사소한 일에서 막히기만 하면 속박을 받을까요? 왜 믿을 마음이 없어지죠? 주변에 특별한 일이나 어려움이 좀 생겨 힘들 것 같으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재미없다고 느껴지죠? 어떤 때 예배하면 왜 흥미를 느끼지 못하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데 왜 흥미가 없죠? 왜 이방인의 일은 이야기만 하면 흥이 날까요? 이것은 어찌 된 일일까요?” 어찌 된 일인지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진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맞다. 사실, 사람의 본성 실질로 말하면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진실하겠느냐? 진실하지 않다.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겠느냐?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없다. 이것은 확실하다.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진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진리도 모르고 어떠한 진리도 실행할 줄 모른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진리 실행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 묵상하는 것을 이야기하기만 하면 사람은 기운이 없고,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다. 만약 그 사람에게 이것은 돈벌이가 좋아 많이 버는데, 한 달에 8~10만 위안 정도 벌 수 있으니 돈 벌러 가라고 하면, 그 사람은 갖은 방법을 다하여 어떤 곤란이라도 극복해서 그 일을 성사시키려고 할 것이다. 실패한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한 뒤에도 또다시 해 나간다. 무엇 때문이냐? 이익에 사람이 매혹당하고 있고 이익에 사람의 마음이 이끌리고 있으며, 사람의 마음이 이익에 점유되었고 사람의 마음에 이익이 첫자리가 되었으며, 이익이 사람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금전이 사람에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갖은 방법을 다하고 모든 수를 다 써서라도 자신의 소원과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데, 심지어 어떤 대가도 아끼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냐? 만약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일을 인생의 가장 큰 일로 여긴다면, 나는 너에게 길이 없을 리가 없고, 시간이 없을 리가 없으며, 더욱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네가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이런 심지(心志)가 있느냐? 이런 힘이 있느냐? (있습니다.) 아들딸이 대학교에 다니겠다며 돈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집에 그만한 돈이 없다면, 부모는 아들딸을 위해 어떻게 하겠느냐? 여기저기 돈을 빌려 모으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돈을 마련해 아들딸이 대학에 다니도록 뒷바라지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돈을 빌리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 작은 장사를 하든지 일자리를 찾든지 한다. 얼마나 많이 고생하든 상관하지 않고 돈을 마련하여 아들딸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좋은 앞날이 있도록 키운다. 너희에게 정말 이와 같은 심지가 있다면, 나는 그 어떤 어려움도 사람을 곤경에 빠뜨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지능 장애가 있거나 천성적으로 머리에 문제가 있다면 몰라도 말이다. 이런 천성적인 장애자, 머리나 생각에 문제가 있는 바보나 치매증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보통 사람의 정상적인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마땅히 다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어려움도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추구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협력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추구하려는 심지와 마음이 있으면, 성령은 우리를 돕고 인도하고 수시로 우리에게 공급하고 깨우쳐 주어 어려운 고비를 하나하나 넘어가게 하고,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게 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서 안 되는 일이라도 하나님에게서는 다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많은 공을 들이고 온갖 힘을 기울여도 소용없다.

은혜시대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였고, 하나님을 따른다고도 말하였다. 하지만 사람의 목표는 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진리를 추구한다든가, 구원을 받는다든가 하는 것은 언급하지 않고, 단지 규례만 좀 지키고 예배일을 좀 지키고 성경을 좀 읽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막연한 소망까지 하나 있으면 그런대로 괜찮고, 죽은 후에는 천국에 들어간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어느 것이나 다 현실적인 것이기에 사람이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르고, 실제적으로 찾고 구하고 경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얻을 수 있는데,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 하나님이 발표하신 진리를 얻게 된다. 만약 은혜시대의 그런 믿음법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사람들이 함께 모임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또 모두 들림받기를 기다리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기다린다면, 사람이 어느 정도로 교만방자하겠느냐? 사람들은 모두 셋째 하늘에 올라가기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보아라. 인간이란 존재는 칭찬하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도 칭찬하지 않고 그 어떤 약속도 주지 않으며, 단지 사람에게 일부 규례와 원칙을 주어 지키게 한 다음 약속을 준다면, 사람은 자신이 그런대로 괜찮고 당연히 천국에 갈 것이고 들림받게 될 것이라고 여긴다. 인간은 바로 이런 존재이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도 모르고, 좋은 쪽으로만 올라가고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면서 좋은 것에만 비교한다. 아무도 자신을 멸망의 대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더욱이 아무도 자신을 사탄의 종류라고 여기지 않고, 모두 자신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이상 틀림없이 괜찮아.’라고 여긴다. 이런 관점은 틀린 것이다. 사람이 처음 믿었을 때, 하나님을 방금 믿었을 때에 하나님의 집에 오게 되면, 누구에게도 수그리지 않고, 누구를 보아도 눈에 거슬리고, 누구를 보아도 자기보다 못한데,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리스도가 하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한 것은 단지 어떤 것이냐? 단지 명의상으로만 하나님의 이 단계 역사를 받아들이고, 명의상으로만 성육신한 하나님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한 것에 대해 관념이 없고 상상이 없고 저촉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방금 받아들인 사람이 하나님을 보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도 맞지 않고 저렇게 하는 것도 틀린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보면 몹시 흥분하고 감격스러워하며, 영광으로 생각하고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사람은 진리가 없고 하나님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보아도 관념이 생기고, 하나님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아도 관념이 생기며, 심지어 하나님이 드시는 음식과 입으시는 옷에 대해서도 관념이 생기고,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관념이 생긴다. 심지어 하나님의 표정과 행동에 대해서도 다 관념과 견해와 의견이 생긴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냐? 이것은 사람이 상상한 하나님과 진실한 하나님이 전혀 다른 데다가, 사람에게 패괴 성정이 있고 교만방자한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억제하지 못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수가 없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견해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경력한 사람은 어떠하겠느냐? 이런 일들에서 경력한 사람, 헤쳐 나온 사람은 이런 일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하겠느냐? 하나님이 하는 매사, 한 마디 한 마디 말씀, 매사를 처리하는 원칙, 여기에는 다 찾고 구할 진리가 있으니 관념이 있어서는 안 되고, 저촉과 반감을 가져서는 더욱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여러 해 동안 경력한 후에 사람은 정확하게 대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진리를 생명이 되게 하고, 이 방면과 관련되는 진리를 실행 원칙으로 삼을 수 있어 더 이상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 방금 믿은 사람, 경력하지 못한 사람은 이런 일들에서 넘어지기 쉽고, 착오가 생기기 쉬우며, 또 어리석은 일이나 무모한 일을 하기도 일쑤다. 너희도 지금 하나님에 대해 상상이 가득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지금 성육신한 하나님을 믿기가 너무 어렵다고 느끼지 않느냐? 어떤 사람은 “우리는 전에 아주 편하게 하나님을 믿었어요. 아무도 우리와 진지하게 따지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에게 이것저것 요구하지도 않았어요.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고, 우리가 어떻게 믿고 있는지, 순수하게 깨닫는지, 진리를 추구하는지에 대해서도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은 너무 번거롭고 너무 어려워요!”라고 한다. 너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아닙니다.) 만약 아직도 예전의 그런 믿음법에 따라 믿는다면 끝장이다. 결말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상상에 따르면 안 되고, 관념에 따라도 안 되며, 더욱이 취미에 따라서도 안 된다. 만약 일시적인 취미나 일시적인 충동으로 믿은 것이라면, 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이 계속 믿어야 할지 말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은 정말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는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는지, 이미 이 길을 가려고 결심하였는지, 진리를 추구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분은 성육신한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바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아주 실제적으로 사람이 되었으므로 겉모습은 사람과 똑같은 모습이지만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주 실제적으로 이런 사역을 하였는데, 아주 실제적으로 많은 말씀을 발표하였고, 많은 사역을 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을 택하여 실제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확장하였고 자신의 복음을 확장하였다. 이 하나하나의 실제적인 사역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면서 사람에게도 실제적으로 진입하고 추구하도록 요구하고, 실제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경력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을 실증한다. 이래야만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받아들이기 시작해서부터 지금까지, 너희들도 어떤 일들은 경력하였을 것이다. 너희가 초자연적이라고 여기는 것이든,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거나 사람의 사유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든, 아무튼 매사에서 모두 하나님이 아주 실제적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하고, 우리 가운데서 하고, 우리 주변에서 하여 우리로 볼 수 있게 하고 더듬을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이자 현실적인 공과라고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과 생각에 의거해, 우리의 관념에 의거해, 혹은 우리의 보잘것없는 지식에 의거해 진리를 깨닫거나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고, 실제적으로 삶 속에서 체험하고, 찾고 구하고, 묵상하고, 교통하며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에, 진리에 어느 정도 진입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수 있다. 나중에 언젠가는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진리의 실질인지를 깨닫게 되고, 성육신 하나님이 한 이런 말씀이 바로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필요한 실제적인 생명의 원칙이고, 삶의 목표와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에 너는 “아,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은 너무나도 의의 있구나! 성육신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하고 너무나도 가치 있구나! 하나님께서 하신 한 마디 한 마디 말씀과 하나님께서 하신 하나하나의 사역과 각 단계의 사역, 하나님의 일언일행과 일거일동, 그분의 생각, 관점과 마음은 모두 사람들로 구원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야. 텅 빈 것이 하나도 없이 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이야.”라고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시대부터 경력해 온 사람이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든, 이제는 더 이상 꿈꾸지 말고, 상상에 의거하지 말고, 자신의 이상주의 속에서 살지 말고, 공상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역사하기에 우리는 실제적으로 경력하면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렇게 경력한 것이라야 우리가 얻으려는 것이고, 우리 생명에 필요한 것인데, 이런 것이 하나님을 믿는 노정에서 우리가 정말(원문: 最) 얻어야 하는 것이다. 네가 이것을 얻게 되면 네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게 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이 네 마음에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네가 진리를 깨달았고 진리를 경력하였으면, 진리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진리가 네 마음에 뿌리내리고, 네가 진리에 대해 실제적인 경력이 있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네 마음에서 진정으로 너의 생명이 된 것이다. 이 과정이 실제적이지 않으냐? 아주 실제적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우선 하나님의 말씀에 진입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하려는 범위는 어떠하며, 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알라고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라고 한 것이다. 이 두 가지이다. 자신을 알려면 자신의 패괴된 실질을 인식하고, 자신의 치명적인 부분을 인식하며, 자신의 성정과 자신의 본성을 인식해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조금씩 유로(역주: 흘러나옴)되는 것, 집에서든 밖에서든, 혹은 예배드릴 때,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혹은 너에게 일이 임할 때마다 유로되는 너의 속셈과 관점 및 갖가지 일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이런 일들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물론, 자신을 더 깊이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결부시켜야 한다.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며,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 형벌 방면의 말씀과 패괴된 실질을 폭로한 말씀을 많이 보아야 한다. 많이 보면서 많이 맞추어 보되, 다른 사람에게 맞추지 말고 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 어느 것이나 다 우리에게 적지 않게 있기에 모두 맞추어 볼 수 있다. 믿지 못하겠으면 네가 경력해 보아라. 어떤 사람들이 “저는 정말 인정 못하겠어요.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을 음녀, 기생이라고 하셨는데, 이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라고 말하자, 한 형제가 “그건 분명 저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여자가 아니니 분명 음녀도 아니고 기생도 아니지요.”라고 말한다. 또 한 자매가 “저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싱글이에요. 음란을 한 적이 없고, 더구나 남자에 대해 엉큼한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어요.”라고 말한다. 어떤 자매는 “저는 저의 남편에게 일편단심이어서 다른 사람을 따라갈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특히, 저는 하나님을 믿으니 정결을 지켜야지요. 저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없어요. 그러니 이 말씀은 저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더욱이 어떤 자매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듣기 거북해요. 저는 받아들이기 싫어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건 사람을 모욕하시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실제에 부합되지 않아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더욱이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말씀하신 것이 정확하지 않은 곳도 있네요. 그럼 저는 믿지 않을래요.”라고 말한다. 이 태도가 옳으냐? 옳지 않다. 분명히 틀린 것이고, 확실히 틀린 것이며, 절대적으로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일단 그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이 한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이 듣기 싫든 좋든, 쓰든 달든, 쓰리든 아프든,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야 할 태도이다. 그렇지 않으냐? 이것은 어떤 태도이냐? 경건한 태도이냐? 공경스럽고 정성스러운 태도이냐? 아니면 어떤 태도이냐? 인내하는 태도이냐? 고통받으려는 태도이냐? 너희들은 좀 어리둥절해한다. 그럼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모두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대함에 있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인 이상 우리는 마땅히 이지(理智)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든 없든, 시인할 수 있든 없든, 우리의 우선적인 태도는 바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렇게 말씀한 것이 너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면 누구에 대해 말한 것이겠느냐? 너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면 왜 너에게 받아들이라고 하겠느냐? 이러면 모순되지 않느냐? 모순되느냐? (모순되지 않습니다.) 너희는 모두 대답은 아주 정확하게 하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고 있다. 모순되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에게 해석하라고 하면 분명하게 해석하지 못한다. 바로 하나님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에는 모두 그 한 마디 말씀의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 말씀마다 겉면의 현상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겉면의 규례나 사람의 간단한 행위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이 아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이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행위를 드러내고, 사람의 간단한 행위와 겉면의 현상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면, 너는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오한데, 그 심오함이 어디에 있느냐? 바로 하나님이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으로 말하고 폭로한 것은 사람의 패괴 성정과 생명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실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실질적인 것이지 겉면의 현상이 아니고, 더욱이 겉면의 행위도 아니다. 겉면의 현상으로 볼 때 아마 너는 누구나 다 아주 좋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왜 어떤 사람들은 악령이라고 말씀하고, 어떤 사람들은 더러운 귀신이라고 말씀하겠느냐? 이것은 네가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상이나 겉으로 본 것에 근거해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교통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너희의 태도가 좀 바뀔 수 있지 않겠느냐? 조금 변화될 수 있지 않겠느냐? 얼마나 크게 바뀌든지, 하여간 이후에 또다시 이런 말씀을 보게 되면 너희는 틀림없이 최소한 하나님과 논쟁하지는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너무 듣기 거북해요. 이 페이지는 안 보고 넘어갈 거예요! 축복과 약속의 말씀들을 좀 찾아서 볼래요. 저의 마음을 좀 위로해야겠어요!”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고르면서 선택해서도 안 된다.

지금 너희는 분량이 작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아마 아직도 자기 생각에 따르고, 아직도 취향에 따라 “장자들아”나 “내 아들아”와 같은 축복의 말씀이나 훗날의 약속에 관한 말씀을 찾기 좋아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항상 마음이 좀 후련하고 도리가 있다고 느끼거나 희망이 좀 보인다고 느껴 하나님을 믿는 것에 힘이 나고 원동력이 생긴다고 느낀다. 만약 늘 이런 폭로의 말씀이나 늘 형벌과 심판의 말씀을 본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데에 힘이 없어지고 풀이 죽는다. 풀이 죽는다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오한 비밀의 말씀을 보게 하면 너무 깊어서 이해하지 못한다. 축복의 말씀을 보게 하면 아주 요원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패괴 성정을 폭로한 말씀을 보게 한다면 그런 말씀은 그래도 좀 사실에 가까워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고 겉으로 약간 맞출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또 별로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다. 보아라, 사람이 얼마나 골칫거리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데도 사람은 받아들이기 싫어한다. 이것이 바로 네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것을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또 얻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몇 부류로 나누고 선후 순서에 따라 먹고 마셔야 한다. 우선, 먹고 마실 때마다 먼저 심오한 비밀에 관한 말씀을 한 단락 읽고, 심오한 비밀을 풀어놓은 말씀을 한 단락 읽는다.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이 셋째 하늘에 계시니 자신이 믿는 하나님은 높지 그렇게 미소하지 않다고 생각하므로 자신은 마땅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고 여기게 된다. 이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지고지상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자이시기에 저의 운명을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지배에 순복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일에 순복하기를 더더욱 원합니다.” 이러면 네 마음에 하나님이 위대하게 느껴지지 않겠느냐? 이렇게 기도하면 사람에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조금 생기게 된다. 사람은 위대한 하나님을 믿기 원하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 전에 첫 번째로 하나님을 하늘에 모셔야 한다. 그다음 두 번째로 축복과 약속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셔야 한다. 이렇게 하면 맞느냐? 어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맞습니다! 아, 딱 맞습니다! 우리에게 이 방면의 진리가 필요합니다!” 사람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사람은 격동되어 눈물을 흘린다. “하나님, 하나님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우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가 경배해야 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스러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하며, 하나님의 약속은 더더욱 받기 원합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분량이 작고 생명이 아직 자라지 못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이 공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축복을 보게 되니 정말 좋아한다! 그럼 어떤 축복이 있을까? 하나님이 말씀하였다. 그때에는 어떤 재난도 결코 너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이 번거로운 하루 세끼에서 벗어나게 되거나 씻고 닦는 번거로운 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등과 같은 약속이다. 읽을수록 힘이 나고, 읽을수록 기운이 난다. 하지만 아무리 힘이 나도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잊지 말라. 세 번째로 마땅히 무엇을 읽어야 할까? (사람의 패괴를 폭로하는 말씀입니다.) 이 절차는 너희가 알고 있다. 세 번째로, 마땅히 사람의 패괴 성정과 패괴 실질, 이런 방면을 폭로한 말씀을 읽어야 한다. 사람의 패괴 실질을 폭로한 이 방면의 말씀은 매번 많이 먹고 마실 필요는 없다. 그저 한 가지나 두 가지만 먹고 마시면 된다. 먹고 마신 다음, 모르는 것이나 맞출 수 없는, 자신과 대조되지 않는 것은 먼저 내버려 두고, 대조되는 것은 먼저 기록해 놓아야 한다. 이렇게 조금씩, 점차적으로 많이 파악하게 되면 자신의 본성과 자신의 실질에 대한 인식이 있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거라, 이러면 좋지 않으냐? 아주 좋겠지? 보아하니, 지금 너희들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심오한 비밀 방면의 말씀에 대해 아직도 요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사모하고 있다. 어린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에는 언제나 먼저 아이를 불러와서 달아나지 못하게 잡고 사탕을 준다. 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조금 주어 달랜 다음 아이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약을 한입 먹인다. 아이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배 속에 들어간 것이다. 알고 나서 생각해 보니 “왜 이렇게 쓰지? 엄마, 방금 내게 먹인 거 뭐야? 왜 이렇게 써!”, 알아차리기도 전에 또 달래면서 사탕을 입에 넣어 주면, 아이는 생각하다 말고 또 달콤하니까 냠냠 먹는다. 보아라, 아이는 속이기 쉽다. 사탕 두 알에 속아서 약을 먹은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어떠냐? 다 자랐으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가지런히 들고 마실 것이다. 이것은 분량 문제이다. 즉, 분량이 크고 작은 문제이다. 너에게 그 분량이 없는데 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라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본성을 폭로한 말씀과 진리를 찾아 대조하라고 하며, 날마다 이런 말씀만 먹고 마시라고 한다면, 너는 먹고 마시다가 질릴 것이고 싫증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너의 경력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간에 반드시 단맛이 나는 것이나 맛있는 것을 좀 곁들여야 한다. 너희가 이후에 심판, 형벌에 관한 말씀이나 사람의 실질을 폭로한 말씀을 먹고 마실 때에 아주 힘들어하고 먹고 마시기 싫어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빨리 축복과 약속에 관한 말씀을 찾고 심오한 비밀에 관한 말씀을 찾아서 먹고 마셔라. 먹고 마시다가 힘이 나고 하나님과 관계가 좀 가까워졌다고 느껴지면, 때를 놓치지 말고 빨리 심판, 형벌에 관한 말씀을 찾거라. 먹고 마시다가 또 안 되겠다 싶고 흥미가 없어지면 빨리 또 축복의 말씀을 찾아 보아라…… 이렇게 차츰차츰, 조금씩 말씀에 들어가게 된다. 너희는 이렇게 먹고 마실 줄 알겠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 방면의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는 너희들도 다 알고 있다, 그렇지? 이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전에 한 형제가 이런 일을 말한 것이 생각난다. 그가 말하기를, 어떤 형제가 하나님이 언제 땅을 떠나는지를 연구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이다.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은 밤낮없이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면서부터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땅을 떠난다는 이 방면에 관한 모든 말씀들을 다 찾아 한데 모았다. 한데 모은 다음에 ‘하나님은 도대체 언제 떠나실까?’라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분명하게 생각해 내지 못했다. 물론, 그렇게 공을 들인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틀림없이 2~3년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 떠나실까?’라고 깊이 생각하면서 앞뒤를 뒤지며 그렇게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마치 성경을 보는 것 같고, 성경을 구슬 꿰듯 앞에서 뒤까지 각 장절을 맞추어 본 것이다. 그렇게 많은 공을 들인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언제 땅을 떠나는지를 보기 위해, 하나님이 도대체 언제 떠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아내기 위해 ‘하나님이 떠나실 때는 어느 시간대에 떠나시는지, 꽃피는 봄날인지, 아니면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 지진이 나거나 온역이 발생하거나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지, 혹은 교회의 사람에게 어떤 반응이 있을 것인지’와 같은 이 방면의 말씀들을 다 한데 모았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았느냐? (들였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땅을 떠나는 이 일은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아주 중대한 일인데, 그에게 발견된 것이다. 그는 이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았고,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이 구원받는 일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 일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어떤 진리를 찾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그런 말씀을 한데 모았는데, 나중에 답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럼 그 답이 정확할까? 너희가 말해 보아라, 정확하겠느냐?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가 헛되이 공을 들인 것이 아니냐? 먼저 그가 연구한 결과의 정확 여부에 대하여 말하지 말고, 그 사람이 추구하는 관점과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 말해 보자.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추구 방식과 이런 각고의 노력이 어떠하냐? 너희는 이런 사람이 들인 노력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필요한 것이냐? (필요 없습니다.) 이런 각고의 노력은 소용없다! 하나님이 땅을 떠나는 것이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나님이 올 때에도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잖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이 갈 때에도 너에게 알릴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떠날 때 사람에게 알게 하겠느냐? 그럴 리 없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많은 일들을 모르게 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알아도 이로운 점이 없을 것이고, 사람의 훗날 귀숙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알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했는데, 어떤 비밀인들 모르겠느냐? 어떤 일인들 모르겠느냐? 하나님이 어떤 일인들 우리에게 말씀할 수 없겠느냐? 말씀하고자 하면 다 말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알게 할 필요가 없고, 알려 줄 필요도 없다. 하나님이 언제 돌아가고, 언제 땅을 떠나고, 어느 시간대, 어떤 장소, 어느 시기에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는지 하는 것이 사람과 관계가 있느냐? 관계가 없다.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관계가 없겠어요? 제가 제때에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면 어떡해요? 하나님의 날까지 시간이 아직 얼마 남았는지를 알아야죠. 시일을 정확히 알고 계속 추구해야 하잖아요!”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흐리멍덩하지 않으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맞느냐? 전혀 아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런 일들에 관심 갖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있어 아무런 의의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무의미한 화제에 그렇게 마음을 쓰거나 공을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럼 하나님의 날에 대해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거잖아요?”라고 한다. 그것을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언제 땅을 떠나는지에 네가 관심을 두고 그것을 다 알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네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참 사랑이겠느냐? 그것이 무슨 사랑이냐?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하나님에 관한 소식을 탐문하려고 하고, 늘 뜬소문을 주워들으려고 하며, 언제나 심오한 비밀을 알려고 하는 것이기에 그저 호기심에 불과할 뿐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전혀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아니며,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이거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마음은 조금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또다시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그렇게 공을 들인다면 너는 어떻게 대할 것이냐? 그를 존중할 것이냐? 그에게 탄복할 것이냐? 그를 부러워할 것이냐? 그런 심오한 비밀을 찾도록 그를 도와줄 것이냐? 그리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틀림없이 그런 사람을 경시할 것이다. 그렇지? 너는 “우린 지금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서조차 아직 윤곽을 잡지 못했어요. 구원받는 일에서도 아직 윤곽이 잡히지 않았죠. 자신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도 아직 잘 안 되고 있어요. 각 방면의 진리를 찾고 구하고, 추구하고, 실행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런 희생은 하기 원치 않고, 그런 심오한 비밀들을 보려고 쓸모없는 공을 들일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도대체 언제 떠나실지, 떠나실 때에는 온역이 얼마 일어날지, 하나님이 떠나실 때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러갈지, 하나님이 떠나실 때에 하나님은 어떠하실지에 대해 연구하며 그런 공을 들일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네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네게 하나님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참으로 그날이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너에게 모르게 하지 않을 것이고, 결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이런 인식도 있어야 한다. 너에게 이런 믿음과 인식이 있다면,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너에게 알려 줄 뜻이 있다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겠느냐? 빙빙 돌려 말씀할 필요가 있겠느냐? 또 말씀 속에 말씀을 숨길 필요가 있겠느냐? 속이고 숨길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 없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게 하려는 것은 바로 진리이고, 자신의 모든 역사와 말씀, 자신의 뜻이기에 전혀 숨길 리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에게 알게 할 마음이 없는 일은 네가 알아볼 필요도 없고, 깊이 생각해 보거나 공을 들여 찾고 대조하고 서로 연계시킬 필요도 없다. 소용없다! 그런 공을 들이는 것은 아무런 의의도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께 혐오받게 된다. 하나님이 왜 혐오하겠느냐? 우선 하나님이 한 말씀을 네가 찾거나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혐오하여 너를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고, 외곬으로 빠져들기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경만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형식적으로 대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네 마음에 진정한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네 마음에는 다만 하나님이 너로 알게 하기를 원치 않는 일들이 있을 뿐이다. 예컨대, 하나님이 계시는 셋째 하늘은 어떠하다든가, 도대체 어디에 있나 라든가, 하나님의 나라는 이후에 어떠하다든가, 성육신 하나님은 언제 땅을 떠난다든가, 등등 이런 일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를 혐오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이 일리가 없느냐? (있습니다.) 일리가 있다. 만약 너의 자녀가 하루 종일 공부를 잘 하지 않고, 해야 할 숙제도 하지 않고, 지켜야 할 일도 지키지 못하고, 해야 할 것도 하지 못하고, 늘 ‘아빠와 엄마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연애할 때의 과정은 어떠했을까? 아빠는 어떻게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엄마는 또 어떻게 아빠에게 시집왔을까? 아빠와 엄마는 어떻게 나를 낳았을까? 나를 낳은 후 나를 이뻐했을까? 우리 집 형편은 어떤 거지? 이후에 큰돈을 벌 수 있을까? ……’라며 이런 문제만 연구한다면, 너는 그 아이를 미워하지 않겠느냐? 그 아이에게 반감을 가지지 않겠느냐? 아이가 늘 너에게 “엄마, 우리 집에 아직 돈이 얼마 있어요? 다음 달까지 생활할 수 있겠어요?”라고 묻는다면, 너는 반감을 가지지 않겠느냐? 아이가 이렇게 하는 것을 혐오하지 않겠느냐? 너는 아이가 뭘 하는 것을 기뻐하겠느냐? 학교를 잘 다니고 글을 익히고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너의 마음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마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에게 무의미한 공을 들이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리고 늘 몰래 하나님을 훔쳐보고 관찰하고, 하나님의 일거일동과 일언일행을 관찰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 자신의 본분과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는 전혀 무관심하고, 조금도 중시하지 않고, 공을 들이지 않고, 대가도 치르지 않으며, 항상 하나님이 언제 떠나는지, 언제 재난을 내리는지, 하나님의 날까지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 등등의 이런 일들에 관심을 갖는 것도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땅을 떠나신 후에 또 우리와 만나실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땅을 떠나신 후에 또 지금처럼 이렇게 사역하실까?’, ‘하나님께서 땅을 떠나신 후에 셋째 하늘에 올라가 얼마나 머무르실까? 또 오실까? 또 사람과 만나실까?’, ‘이후의 하나님나라시대에는 천사가 있을까? 천사는 사람과 교제할까?’ 등등의 이런 이상한 화제를 하나님은 혐오한다. 너희는 이걸 이해할 수 있느냐? (네.) 이해할 수 있다. 이건 이해하기도 쉽다. 우리가 성육신한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할지,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하나님이 한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을 어떻게 깨달아야 할지 하는 이것은 우리의 본분 내의 일이고,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이다. 이 일을 내버려 둔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의의가 없는 일이 되고,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허울 좋은 구호일 뿐 그 어떤 실제적인 내용도 없게 된다. 네가 만약 뒤에서 늘 심오한 비밀에 대해, 하나님이 언제 땅을 떠나는지에 대해 생각하거나 너희들 사이에서 항상 이런 일들을 담론한다면, 예컨대 하나님의 육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는지, 하나님 육신의 생활은 어떠한지, 하나님 육신의 나이는 얼마인지, 혹은 학력이 어느 정도인지, 예전에 성경을 본 적이 있는지, 예수님을 얼마 동안 믿었는지, 하나님을 믿은 적이 있는지, 가정 배경은 어떠한지 하는 등등의 내용을 담론한다고 하자. 늘 이런 것들을 연구한다면, 너희는 하나님을 논단하고, 하나님의 육신을 모독하고, 성육신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게 한 다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라는 것이지, 하나님을 연구하고 뒤에서 하나님에 대해 왈가왈부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육신을 받아들인 이상,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과 하나님으로 받아들인 이상, 우리는 마땅히 경외심으로, 경건한 태도로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대해야 하고,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을 대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이지이고, 마땅히 있어야 할 인성이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너희가 “우리는 지금 인식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라고 한다고 하자. 인식이 별로 없으면 말하지 말거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교통하지 말라. 그럼 뭘 교통해야 할까?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 대해 교통하고, 어떻게 하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교통해야 한다. 진리를 갖추는 데에 있어 마땅히 이런 것을 갖추어야 한다. 어느 날에 이르러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좀 있는 것 같아요”라고 한다면, 여럿이 함께 모여 교통하여라. 진실한 인식이 좀 있으면 교통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육신에 관한 소식이나 정보나 일부 사람들이 여기는, 사람이 모르는 심오한 비밀에 대한 이런 일을 얘기하는 것이라면 되도록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너희가 잘못 말하게 되면 하나님께 정죄받아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이 된다. 그러면 성령은 너희를 버릴 것이다. 너희는 마땅히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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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③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④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