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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편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

그리스도의 실질을 인식하면 한 방면으로는 성육신 하나님과 인류를 구분할 수 있다. 그 밖에 실질을 인식하면 성육신 하나님을 더욱 확신할 수 있고,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 분임을 믿을 수 있다. 그는 선지자도, 사도도, 예언가도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이 보낸 작디작은 사람도 아니라 말씀으로 된 육신이고, 그리스도이고, 하나님 자신이다. 비록 육신은 인류 중의 일원이지만 그는 신성 실질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과 그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과 그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실질을 인식하게 하는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확실히 육신이고, 그 육신은 확실히 하나님임을 확신하게 하는 효과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을 세울 수 있고 참된 순복과 참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효과에 도달해야 너에게 하나님의 실질에 대한 인식이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지금,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없다.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영이 있다는 것만 시인한다. 말씀이 맞으니 당연히 영도 맞다고 하면서도 육신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육신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육신과 영이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육신이 말씀만 발표하고, 육신은 말씀하고 역사하는 데에만 쓰이는데 이것이 그의 직분이고, 감동이 있을 때는 말씀하고 말씀을 다 한 후에는 할 일이 없다고 여긴다. 마치 메가폰처럼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시인하는 것은 말씀으로 된 육신이 아니고 그리스도도 아니며 단지 선지자와 비슷한 사람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또 ‘그리스도는 사람이다. 말씀으로 된 육신의 실질이 어떠하든, 그분이 어떤 성품을 발표하시든 그분은 하늘의 하나님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고, 우주 만물을 주관하는 창조주를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다. 그분이 성육신하신 이상 하늘의 하나님이 땅에 왔다는 것인데, 왜 당시에 천지 만물을 어떻게 만드셨냐고 물어보면 모르실까? 왜 초자연적인 표적이 전혀 없을까? 그분께 권병이 있는데 왜 큰 붉은 용을 멸하지 않으실까?’라고 여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성육신이란 무엇인지를 모르고 더욱이 성육신 역사의 경영 범위가 어떻게 되고, 구원 대상이 어떤 사람이고, 발표하는 것이 무엇이고, 사람이 인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말씀으로 된 육신의 실질은 하나님의 실질이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 성육신한 것은 경영 범위의 마지막 단계 사역을 하는 것이니, 만유를 주관하고 열국을 다스리는 것과 상관없고 그런 일과 전혀 관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네가 인식해야 할 것은 이 단계 역사 기간에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것과 알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이 단계 역사의 실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하나님 성품의 발표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발표한 것은 하나님의 실질이 아니냐?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냐? 당연히 맞다. 전부일까? 내가 지금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것은 전부가 아니라 그저 말씀이 육신 된 기간에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것이며 사람이 마음속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전부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계획 내에 있는 해야 할 사역일 뿐이다.

성육신에 대해 사람이 깨닫기 쉬운 한 가지 예를 들겠다. 하나님이 분신(分身)하여 땅에 온다면 하나님의 영이 다른 곳에는 없을까? 있다. 그는 우주 만물을 주관하고 있다. 한 분의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다. 하나님이 지금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 왔다고 해서, 결코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서만 역사하고 다른 사역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하나님이 지금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 있으면 하늘에는 하나님이 있겠느냐?” 그 사람은 하나님이 한 분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하늘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은 또 틀렸다. 하나님은 우주 만유를 주관하는 영이다. 지금 땅에 와 있어도 그는 하늘의 일을 주관하고 있고, 땅의 사역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도 어떤 때에는 육신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생각하더니 ‘아마 그래야 할 거야. 어떤 때에는 이 육신이 아무것도 모르실 거야. 육신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때는 영이 떠나 있고, 말씀을 하실 때는 영이 또 오실 거야. 잠잘 때가 되면 영이 다른 일을 보러 가셨다가 깨어날 때면 돌아와 육신에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실 거야. 할 사역이 없으면 식사할 때 영은 짬을 내서 다른 일을 하러 가고, 육신은 아마 정상 인성의 행동 표현만 있을 거야.’라고 여긴다. 많은 사람이 다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또 ‘하나님은 돈을 어떻게 분배하시는지 모르겠어. 사사로이 다른 사람이 쓰게 하시지는 않을까?’라고 근심하기까지 한다. 사람의 생각은 참으로 복잡하다. 이런 사람은 심보가 나쁜데 어떻게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느냐?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 말씀으로 된 육신의 실질을 인식하는 것이든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이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성육신 역사 기간에 네가 체험할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것을 인식해야지 접할 수 없는 것을 함부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하나님의 육신이 가면 이후에 다시 사역하실 때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실까? 또 땅에 와서 우리와 대면하실 수 있을까? 성육신 하나님이 지금 표적과 기사를 매우 나타내고 싶을 경우, 하늘의 아버지께 구하고 영께 구하면 영이 일을 하실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일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당시 예수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지 않았느냐? 무화과 나무는 그 즉시 말라 버렸다. 지금의 하나님은 이 정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이어서 초자연적인 일을 하시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초자연적인 일을 하시지 않는다구요? 그분께 하나님의 실질이 있는데, 왜 말씀을 하시면 소용없겠습니까?”라고 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모두 이런 겉면의 일을 중요시한다. 이런 일은 전혀 그리스도의 실질에 관련되지 않기에 이런 일은 알아도 사실 소용없다. 어떤 일은 네가 알 필요가 없는데, 알아야 할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된다. 이런 일을 알고 모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설사 네가 알게 되더라도 믿음이 얼마 더해지지 않을 것이다. 전에 선지자가 표적과 기사를 나타냈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얻었느냐? 선지자들은 표적과 기사를 아무리 많이 행할 수 있어도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실질이 있으면 표적을 나타내지 않아도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실질이 있으면 표적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해서 나타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지금 하나님의 실질 인식하기를 추구하는 것은 너희에게 유익하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바른길이다. 너희는 알아야 한다. 성육신 기간에 역사할 때가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실질과 성품을 가장 많이 접하고 볼 수 있는 때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전에 사람이 말하던, 하나님의 행사를 알아가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간다는 것은 도달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당시 모세가 여호와를 알고 그의 행사를 보았는데, 실제적인 인식이 얼마나 있었겠느냐? 지금의 사람처럼 높았겠느냐? 지금처럼 실제가 있었겠느냐? 물론 없었다. 당시 여호와가 역사할 때, 그의 행사는 이스라엘에서 많이 나타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것을 보았었다. 또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뒷모습을 보았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천사도 보았었다. 하지만 후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느냐? 너무나 적다!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직 말세의 사람만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하는 기간에 하나님을 적지 않게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사역을 하는 것에 어떤 목적이 있고, 나의 뜻이 무엇이고, 내가 인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으며, 인류가 패괴된 정형과 실질이 어떠한가’를 대면하여 사람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통해서야 사람은 비로소 하나님은 원래 그런 하나님이고, 원래는 인류에 대해 그런 뜻을 갖고 있고, 하나님은 원래 그런 성품이고, 그의 행사는 원래 그렇게 기묘하고, 그의 지혜는 원래 그렇게 심오하고, 사람에 대한 그의 긍휼은 원래 그렇게 진실함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너에게 인류에 대한 그의 사랑과 사람에 대한 그의 관용이 확실히 한량없음을 체험하게 하였다. 그가 사람을 구원하는 뜻은 그의 역사와 말씀 속에 있는데, 사람에게 실제적으로 체험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말씀이 육신 된 기간에서만 말씀으로 된 육신의 실질을 인식할 수 있고, 이 기간을 제외하고는 네가 아무리 인식해도 실제적이지 않다. 성육신 하나님이 사역을 다 하고 간 다음에는 네가 하나님의 역사를 아무리 체험해 보겠다고 해도 지금처럼 이렇게 실제적이지 않다. 지금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정말로 만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면하여 계속 이렇게 역사하고 있기에 사람은 점차 몸소 체험하게 된다. 당시에 베드로가 체험한 것은 지금처럼 이렇게 실제적이지 않았다. 당시에 예수가 유대에서 사역하는 기간에 베드로는 따르면서 얼마 체험하였지만 그때는 어디까지나 천박하고 분량이 작았다. 예수가 떠난 후에 그는 세심히 돌아보면서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 예수도 하나님의 소시소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인류에 대한 한량없는 관용과 은총을 어느 정도 발표하였다. 당시의 사람은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었는데, 그 후의 사람이 체험한 것은 어쨌든 그 당시에 체험한 것보다 깊지 못했다. 그 외,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기도했지만 그때에 체험한 것은 어렴풋하고 어떤 때에는 정확하게 더듬을 수 없어서 아무도 함부로 자신의 인식이 정확한지를 확정할 수 없었다. 나중에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사람들이 그를 구출했는데, 사실 당시 예수의 뜻은 그로 십자가에 못 박혀 마지막 간증을 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길 끝까지 갔을 때,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그런 방식으로 간증을 하게 하여 좋은 처소가 있게 하였는데, 이것이 베드로의 길이다. 그때 베드로는 길 끝까지 갔을 때에도 예수의 참된 뜻은 몰랐다. 예수가 알려 준 후에야 그는 예수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의 실질을 가장 알차게 인식할 수 있는 때는 바로 성육신 기간인데, 그 기간에는 네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날 수 있으며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다.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가 끝난 후에는 네가 아무리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체험하려고 하고 돌아보려고 해도 그렇게 깊지 않으며 아무리 인식한다고 해도 얕을 것이다. 그때면 사람의 패괴 성정을 연단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연단을 받아 진리를 좀 더 많이 깨닫게 되고, 이미 얻은 진리를 삶의 토대로 하여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킨다. 네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든,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이 그때에는 그다지 많은 진보가 없고, 말씀이 육신 된 기간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알차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말씀이 육신 된 기간에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들어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토록 사랑하고 관용할지라도 사람은 느끼지 못하고 다 그렇게 마비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가 끝날 때에야 어느 정도 깨닫고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무엇이냐? 그리스도의 실질은 사람에게는 사랑이다.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한량없는 사랑이다. 그에게 사랑과 긍휼이 없다면 사람이 오늘날까지 따를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는 공의도 있잖아요?”라고 말하는데, 그렇다! 그에게 또 공의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성품을 놓고 말하면 그에게 공의가 있는 것은 인류의 패괴와 사악함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공의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어떻겠느냐? 사랑이 공의를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겠느냐? 그러면 사람은 다 끝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사실대로 말하는데, 하나님이 성육신 된 기간에 인류에게 한 사역에서 가장 뚜렷하고 가장 두드러진 실질은 사랑이고 한량없는 관용이다. 사랑이 아니라 너희가 상상한 것처럼 하나님이 사람을 격살한다면, 격살한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격살하고, 사람을 미워한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징벌하고 저주하고 심판하고 형벌할 것인데, 그러면 얼마나 엄하겠느냐! 만일 사람에게 노한다면 사람은 모두 무서워 벌벌 떨며 하나님의 눈앞에 서 있지도 못할 것이다. …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하는 한 가지 방식일 뿐, 최종 목적은 그래도 구원하는 것이다. 그의 사랑은 모든 성품에 걸쳐 유로되고 있다. 너희는 회상해 보아라, 말씀이 육신 된 기간에 역사하면서 사람에게 가장 많이 유로한 것은 사랑이다. 인내는 무엇이냐? 인내도 그 안에 사랑이 있기에 긍휼히 여기는 것인데, 여전히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 사랑이 있기에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다. 마치 부부간에 진정한 사랑이 있는 것과 같다. 상대방에게 결함이나 허물이 있어도 덮어 감추고, 화나게 했을 때도 인내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은 다 사랑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만약 미워한다면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런 유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며 그런 효과도 없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 미움과 노여움만 있고 심판과 형벌만 하여 거기에 사랑이 없다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이런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너희에게 좋은 일이 없을 텐데, 계속 너희에게 진리를 공급해 주겠느냐? 만일 형벌하고 심판한 후에 저주해야 한다면 사람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예컨대, 병에 걸린다든가, 종기가 난다든가, 옴이 생긴다든가, 머리카락이 빠진다든가, 목이 떨어진다든가, 눈이 먼다든가, 입이 썩어 문드러진다든가, 귀가 잘린다든가, 발꿈치가 썩는다든가… 사람은 철저히 끝날 것이다. 설령 사람이 즉시 죽지는 않을지라도 병들 것은 병들고, 불구가 될 것은 불구가 되고, 미칠 것은 미치고, 눈멀 것은 눈멀고, 악령이나 더러운 귀신에게 넘겨 주어 짓밟히게 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모양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많은 사랑을 누렸고, 많은 관용과 긍휼과 자비를 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당연히 이렇게 하셔야 해. 하나님께는 공의와 진노도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적지 않게 누렸으니까 말이야!’라고 여긴다. 네가 정말로 누렸느냐? 정말로 누렸다면 너는 끝났을 것이다. 어찌 오늘날 이 인류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미움과 진노와 공의는 이 무리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기초에서 발하게 된 것이다. 이런 성품에는 사랑과 긍휼이 들어 있고 지극히 큰 인내도 들어 있다. 이 미움은 부득이한 것인데, 여기에는 인류에 대한 한량없는 걱정과 기대가 들어 있다! 하나님이 미워한다는 것은 인류의 패괴를 겨냥해 말한 것이고, 인류의 패역과 죄악을 겨냥해 말한 것이며, 일방적인 것이자 또한 사랑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사랑이 있기에 미움도 있는 것이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미움은 사탄에 대한 미움과는 다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지 사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원래 있는 것이다. 진노와 공의와 심판은 그에게 원래 있는 것이지, 인류에게 발할 때에야 있게 된 것이 아니다. 사실 인류가 보기 전부터 하나님에게는 이런 성품이 있었다. 다만 사람은 자신이 느껴 봐야 하나님의 공의가 원래 그런 것임을 알게 될 뿐이다. 사실 그가 공의나 위엄이나 진노를 발할 때든,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경영 계획을 할 때든 그것은 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럼 사랑이 얼마큼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얼마큼 있는 것이 아니라 100% 사랑이다. 사랑이 조금만 부족해도 인류는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사랑을 다 바쳤다. 왜 말씀이 육신 되었겠느냐? 이전에 하나님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인류를 구원한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 말씀이 육신 된 여기에 모든 사랑이 들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인류가 극도로 하나님을 거역하여 이미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득이하게 말씀이 육신 되어 인류를 위해 몸을 바치고 모든 사랑을 바쳤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인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성육신 될 리가 없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천둥 치며 직접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발하면 인류가 땅에 쓰러질 것인데, 성육신하여 이렇게 큰 공력을 들이고,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고, 이렇게 큰 굴욕을 당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뚜렷한 예이다. 그는 자신이 고통받고 굴욕당하고 저버림받고 핍박받을지라도 인류를 구원하며, 이러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구원하러 왔는데, 이것이 사랑이 아니냐? 만약 공의만 있어 인류에 대해 끝없는 미움이 가득하다면, 그가 성육신 되어 사역할 리가 없다. 하나님은 인류가 극도로 패괴되었을 때에 멸절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에 대해 지극히 큰 사랑이 있기 때문에 성육신하여 극도로 패괴된 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어 자신의 본성을 알고 난 후, “끝이야, 난 구원받기 글렀어.”라고 말하는데, 네가 자신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여길 때에야 하나님에게 참으로 지극히 큰 인내와 사랑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본성이 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너희에게 말씀한다. 언제 어떤 문제를 물어보든 빨리 답해 주는데, 깨닫지 못할까 봐, 곁길로 빠질까 봐, 극단으로 나갈까 봐 매우 염려한다. 이러한데도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지금 많은 사람들이 관찰하고 있다. ‘육신이 사역을 다 끝냈는데 왜 아직도 미적거리며 떠나시지 않을까? 설마 다음 단계 사역이 있단 말인가? 그럼 왜 다음 단계 사역을 아직도 빨리 하지 않으실까?’ 여기에는 물론 의의가 있다. 육신이 많은 말씀을 한 후, 사람에게 있게 되는 효과는 도대체 어떠할까? 사람은 들은 후, 마음속에 담아 두고는 진입이 얼마 없기에 변화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너희의 지금 같은 이런 상황에서는 많은 진리를 아직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에 실제에 진입했다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너희가 말해 봐라, 성육신이 사역을 하면서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였는데, 그의 목적이 무엇이고 최종 효과는 무엇이냐? 그가 지금 이 사람들을 내버리고 관계하지 않은 채 다음 단계 사역을 시작한다면, 이 사역은 중도에서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성육신의 역사는 반드시 두 단계의 완전한 사역을 해야 한다. 예컨대 은혜시대에 예수가 왔을 때는 강생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고 승천하기까지 모두 33년 반인데, 사람의 정상적인 수명으로 말하자면 시간이 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땅에 온 시간으로 봤을 때는 짧은 것도 아니다! 33년 반, 아주 괴로웠다! 비인류인 하나님이 땅에 와서 패괴된 인류와 33년 반을 지냈는데, 이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람이 그를 좋게 대하든 나쁘게 대하든, 그에게 편히 거할 곳이 있든 없든, 이런 것 외에 그의 육신이 별로 큰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인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동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이 돼지와 한동안 온종일 함께 생활하면 틀림없이 괴로워 죽을 지경일 것이다. 왜냐하면 둘은 같은 부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돼지와 공통 언어가 없는데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느냐! 부부라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함께 있어도 반감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땅에서 33년 반을 지냈다는 그 자체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인 데다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 오히려 ‘성육신 하나님은 하고 싶은 대로 하시고, 말씀하고 싶은 대로 말씀하시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고 있는데 고통스러울 게 뭐가 있겠어? 편히 거할 곳이 없고 육신이 고통을 좀 받고 감당해야 한다고 해도 그것이 크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잖아!’라고 여길 것이다. 그런 고통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고 견뎌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육신도 예외가 아니다. 그도 견뎌 낼 수 있으니 그것은 큰 고통이라고 할 수 없다. 그가 받는 가장 주요한 고통은 극도로 패괴된 인류와 함께 생활하면서 각종 사람의 조소, 모욕, 논단, 정죄를 당하고 또 악마의 추적, 교계의 저버림과 적대시함을 당하는 것인데, 그 심령의 상처는 누구도 메울 수 없다! 이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는 극대한 인내로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며 상처를 지닌 채로 사람을 사랑한다. 이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사역이다. 인류의 흉악한 대적, 정죄와 훼방, 모함과 핍박, 그리고 추적과 살육에 하나님의 육신은 큰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역을 하게 되었다. 그가 받는 이런 고통을 누가 이해하고 또 위로할 수 있겠느냐? 인류는 다만 조그마한 열정이나 원망 또는 소극적이고 무시하는 태도로 그를 대할 뿐이다. 하나님이 이런 것으로 어찌 고통받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받는 심령의 고통은 너무나 크다. 단지 조금의 물질적인 누림으로 인류가 하나님에게 준 상처를 메울 수 있단 말이냐? 너는 잘 먹고 잘 입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관점은 너무나 황당하다! 예수는 땅에서 33년 반을 생활하면서 사역하다가 나중에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음에서 부활한 후 인류에게 40일 동안 나타나고서야 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인류와 함께 생활하던 그 고통스러운 세월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도 늘 인류의 처소를 걱정함으로 인해 같은 고통을 받는데, 그 고통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했고, 그의 보혈로 인류는 구원받는 데에 기초가 있게 되었다. 그는 보혈로 인류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속량해 왔는데, 전체 구속 사역을 완성한 후에야 인간 세상에서의 고통스러운 생활을 끝마쳤다. 전체 사역을 완성한 후 그는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사람에게 나타나 하나님이 확실히 구속을 이루어 사역을 완성했고, 그의 성육신의 계획을 하나 완성했음을 알게 하였다. 그는 완성해야 할 사역이 조금만 남아 있어도 떠나지 않는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늘 “때가 이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때가 이르지 않았다”라는 말은 사역이 끝날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육신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곳곳을 다니면서 말씀하고, 교회 생활을 돌아보고, 해야 할 말씀을 다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성육신 하나님이 사역을 다 한 후, 그는 그렇게 많은 말씀을 다 하고 나서 또 그 결과를 기다리는데, 그가 한 말씀으로 생기는 효과를 기다리고 인류가 구원을 받는 모습을 보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는 모든 심혈 대가를 다 이 사역에 치렀는데 그냥 내버려 두고 떠날 수 있겠느냐? 그는 계속 지켜 보면서 이 일이 결과가 난 후에야 안심하고 다음 단계의 사역을 할 수 있다. 특히 하나님 자신의 경영 계획과 그 자신의 사역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나중에 인류가 어떤 모습인지, 구원받은 사람이 나중에 어떤 모습인지, 그의 뜻에 맞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참으로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나중에 어떤 모습인지, 참으로 그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를 위해 봉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참으로 그를 경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하는 이런 일이 결과가 나야 하지 않겠느냐?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땅에서 사역을 다 하셨으니 휴식해야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얼마나 누림이 있으실까! 얼마나 좋으실까! 얼마나 자유로우실까!’라고 상상하는 것과 같지 않다. 내가 너에게 알려 주는데, 조금도 자유롭지 않다. 가만히 있자니 더욱 견디기 힘들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사역을 다 하시고 말씀이 없으면 영이 떠난 것이 아닐까?’라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사역을 다 하시고 말씀을 다 하셨는데, 기다리지 않고 떠나시면 안 되는지요?”라고 말한다. 안 된다.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는 범위가 있다.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사역을 다 하셔서 일이 없으니 영에게 맡기시면 되지!’라는 이런 일이 아니다. 아직도 어떤 일들은 육신이 지도하고 육신이 처리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대체할 수 없다. 이것도 성육신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의의이다. 이것은 알겠지? 이전에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너희와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구나.”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또 말했다. “함께 있고 싶지 않으면 떠나시면 되지 왜 아직도 기다리시는 겁니까?”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그가 지금까지 인내할 수 있겠느냐? 어떤 때에는 그가 화나서 기분 나쁜 말을 했지만 할 사역은 다 했고 사역 절차 역시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 해야 할 사역과 말씀은 한 마디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해야 할 것은 다 하고 해야 할 말씀도 다 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금 왜 말씀을 적게 하시고 이전처럼 그렇게 많이 하시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역 절차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지금의 마지막 이 단계는 기다리는 것이니, 나는 지도하는 사역만 조금 할 뿐이다. 마음을 써야 할 것은 쓸 만큼 다 썼다. 마지막의 이 기간에 왜 몸이 늘 불편하겠느냐? 이것에도 다 의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일부 고통과 질병을 담당하기 위해 성육신이 어느 정도 병고를 겪는 것도 사실 다 단계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사역을 육신의 질병을 통해 제한하여 더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육신이 고통을 좀 받아야 한다. 만일 큰 제한이 없으면 항상 인류에게 말을 많이 해 주고, 많이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그가 하는 것이 구원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2년간 환경이 허락되거나 몸이 지금보다 많이 좋아지면 곳곳의 교회를 다 한번 돌아보려고 하는데, 몸이 안 되고 허락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쉴 수밖에 없구나. 큰 일이 임하면 몇 마디 말로 키를 잡아 주면 된다.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유로되는 것은 전부 하나님의 사랑인데, 그가 하는 사역의 실질은 바로 사랑이다. 그는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전부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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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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