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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편 너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가?

인류에 대한 성육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서 표현되느냐? 너희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역사를 체험하면 하나님의 각 단계 역사와 말씀에서 모두 어느 정도 방식을 쓰고, 어느 정도 예언을 하고, 어느 정도 진리와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람마다 이에 대한 반응이 있다. 사람의 반응은 어떠하냐?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한 가지도 없고 더욱이 주동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거나 기꺼이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한 가지도 없으며, 모두 소극적으로 대항하고 저항하고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종여일하게 역사하고, 인류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다.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든지, 거절하거나 억지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좀 바뀌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고, 그의 역사 절차도 시종일관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한 방면 표현이다. 그 밖에, 각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 사람에게 어떤 표현이 있든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며, 그는 계속 역사하고 계속 사람을 구원한다. 다음 단계에서 또 사역을 할 때면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는 말씀이 더 깊고 더 분명할 것이고, 더욱 사람의 현재 정형에 겨누어 말씀하여 사람에게 더욱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게 하고, 더욱 그의 뜻을 깨닫게 하고, 더욱 그의 뜻에 닿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에 대해 여전히 사랑임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의 반응이 시종일관 소극적이든, 대항하는 것이든 어느 단계 사역에서나 사람에게는 이런 반응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종일관 계속 말씀하고 역사하는데, 지금까지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없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다 사랑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또 “다 사랑의 사역이라면 왜 사람을 심판, 형벌하시는 건가요? 사람을 아주 미워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사람에게 죽음의 시련까지 주시니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두 사랑인 것은 확실하다. 하나님이 사람의 패역을 형벌하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새 출발을 하게 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여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순복이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저항하는 정서가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구원을 전혀 늦추지 않고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여기에는 크나큰 사랑이 들어 있다. 그렇지 않으냐? ‘효력자’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이고 고통스러워 대성통곡하였고, 심지어 억울함을 하소연하면서 ‘이렇게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효력자밖에 되지 않는다니, 이건 정말 못 받아들이겠어!’라고 여겼다. 너는 못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이해한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냐? 하나님의 사랑에는 사람을 이해하고, 꿰뚫어 보고, 손금 보듯 환하게 아는 것들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리석지 않고, 거짓되지 않으며, 공허하지 않고 진실하다. 네가 어느 방면에 부족함이 있고 무지몽매하면, 하나님은 너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며 계속 너를 감동시킨다. 네가 아무리 효력자가 되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하고 아무리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시종일관 말씀하면서 몇 개월 동안의 연단으로 사람의 패괴를 드러내어 사람에게 자신의 추태를 알게 하였다. 그 3개월 동안 사랑이 있지 않았느냐? 만약 하나님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너를 상대하지 않았을 것이고, ‘효력자’ 때의 너의 그 꼬락서니를 봐서는 일찌감치 너를 차 버렸을 것이다. 효력자가 된다니 그렇게 싫단 말이냐? 하나님과 함께 고난받게 된다면 싫고 복을 받게 된다면 기뻐서 펄쩍 뛴다. 하나님에게 사랑이 없고 미움만 있다면 사람에게 있는 이런 패괴된 반응을 봤을 때, 사람은 도태되었을 것이다. 사람을 연단한 그 3개월이라는 시간은 전혀 길지 않다. 왜 전혀 길지 않다고 말할까? 그것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길어져도 사람은 견디지 못한다. 늘 찬양하고 예배하고 교통한다고 해도 그런 것만 누리면 절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앞당겨 자민으로 전환시켰었는데, 거기에도 사랑이 깃들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과 사랑으로 사람을 감화시키고 사람을 사로잡는데, 그것 역시 사랑의 표현이다. 그 시간적인 면에서도 너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한 달도 늦추지 않고, 단 하루도 늦추지 않으며, 어느 날에 이르러 말씀해야 하면 곧바로 말씀한다. 만약 계속 몇 개월을 지연시킨다면 어떤 사람들은 점차 물러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실제 정형에 따라 사역하면서 전혀 지연시키거나 지체시키지 않으며 각 사람을 아주 중요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이상, 끝까지 책임진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고 스스로 떨어져 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떠나려고 했을 때, 성령이 특별히 감동시켜 만류하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 만류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말 너무나 사랑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물러간 사람들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면, 그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어 그런 사람을 철저히 상관하지 않는다. 역사 절차나 시간 면에서, 어느 절차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려야 하는지, 어느 절차에서 말씀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어느 절차에서 어떤 어조와 어떤 방식을 써야 하는지, 또 어떤 진리를 적용시켜 깨닫게 해야 하는지 하는 여기에는 모두 하나님의 고심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밀한 안배와 주밀한 계획이다.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계속 자신의 지혜로 인류를 인도하고 공급하고 보살피면서, 조금씩 조금씩 사람을 지금의 이 정도까지 양성시키며 이끌어 왔다. 체험해 온 사람이라면 이제 어느 정도 인식이 있는데,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다. 한 단계 한 단계의 과정은 다 기억에 생생하며, 그 속의 사랑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참으로 깊이 사랑하지만, 사람은 영원토록 그것을 분명하게 느끼지 못한다. 그 사랑이 너무나 깊어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고, 시간 면으로만 보아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시간 면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데, 작은 일 하나에서도 하나님은 아주 정밀하게 고려하여 시간을 더 늘리지 않는다.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갈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사람을 단단히 붙잡고 전혀 느슨하게 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하나님은 형벌과 심판의 몇 개 절차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 만약 방식이 하나라도 더 많아지면 사람은 또 하나님이 사람을 기만하고 우롱한다고 느낄 것이다. 사람의 분량이 도달하지 못하기에 아주 쉽게 물러갈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3개월을 연단한 후에 또 말씀하여 효력자를 자민으로 전환했는데, 그러자 모든 사람이 다 기뻐하고 격동되어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으며, 정말 하나님의 지혜로움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는 정말 효력자이고 귀착지가 없는 줄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려 우리는 철저히 끝난 줄로 알았습니다.” 당시 내가 너희를 죽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면, 사람은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정말 확실한 거야.’라고 여길 것이다. 3개월이 지난 후에 나는 또 말씀을 발표하여 효력자의 시련을 끝냈다. 비록 사람의 본성이 패괴되었을지라도 사람은 가끔, 어린애처럼 특별히 천진하다. 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라고 말할까? 일거일동이 모두 어린아이의 행동이다. 사람이 보기엔 모두 패괴되고 부패된 것 같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사람은 언제나 어린아이이고, 특별히 유치하고 천진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전혀 원수처럼 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구원할 대상과 사랑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좋은 말만 하고, 축복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의 하나님 역사에서 어떤 말씀은 확실히 사람의 뜻에 맞지 않고, 심지어 사람의 마음을 찔러 고통스럽게 하였다. 어떤 심판의 말씀은 마치 죄를 덮어씌우는 것 같고 또 사람을 욕하는 것 같지만, 사실 거기에는 실제 배경이 있고 그것은 완전히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는 것이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패괴 실질에 근거하여 말씀하였으므로 사람이 한동안 체험하기만 하면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한 목적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해야만 최상의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의 고심은 전적으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체현된 것은 전부 하나님의 사랑임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지혜에서 보든 아니면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에서 보든 혹은 역사 시간의 길고 짧음과 정밀한 안배 계획에서 보든, 그 속에는 모두 그의 사랑이 있다. 예컨대, 사람은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어서 자식이 바른길에 들어서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들인다. 아이의 결점을 발견했을 때 가볍게 말하면 듣지 않고 고치지 못할까 걱정하고, 너무 엄하게 말하면 아이의 자존심이 상할까, 견디지 못할까 걱정한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다 사랑의 지배를 받아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아마 너희도 자녀로서 부모의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온유와 보살핌만이 사랑인 것이 아니라 엄한 때림은 더욱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대하는 것은 더욱 사랑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사랑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온갖 심혈을 기울여 패괴된 인류를 구원한다. 그것은 대충대충 해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정밀히 계획하고 절차에 따라 하는 것이다. 시간상에서, 지점에서, 말씀하는 어조에서, 말씀하는 방식에서, 하나님이 기울인 노력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유로(역주: 흘러나옴)되지 않은 것은 한 가지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것이나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한량없음을 충분히 설명한다. 또한, 많은 사람이 효력자의 시련을 겪을 때에 모두 패역한 말을 하고 어느 정도 원망도 했지만, 하나님은 결코 사람과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고, 더욱이 그것으로 인해 어떤 사람도 징벌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기에 무엇이나 다 포용했다. 만약 그에게 사랑이 없고 미움만 있었다면 일찌감치 사람을 다 정죄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에게 사랑이 있기에 따지지 않고 관용을 베풀었다. 그는 사람의 어려움을 세심하게 살폈는데, 그 모든 것은 완전히 사랑의 지배를 받아 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이해하지 사람은 자신마저 자기를 모른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가 자세히 돌이켜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원망하고 저것을 원망하는데, 사람은 모두 생트집만 잡으며 복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그 복을 모른다. 누구도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에 오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른다. 하나님이 그렇게 높고 크면서도 그렇게 보잘것없고 그렇게 낮고 그렇게 굴욕당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럼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야 하겠느냐! 세상의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백성을 자기 자녀처럼 사랑하는 한 어진 황제가 민간의 고통을 알아보기 위하여 친히 가서 세심히 살펴보려고 한다. 그의 신분에 따르면, 그는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지만 백성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평복 차림으로 민간에 나가 살피는데, 일반인의 신분으로 백성 속에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두루 살핀다. 그의 신분을 보통 사람의 지위로 낮추는 자체가 굴욕적인 일인데, 또 보통 사람처럼 생활해야 한다. 사람은 모두 그의 지위를 모르기에 당연히 그 황제를 보통 사람으로 대할 것이다. 민간에는 위험한 일이 아주 많은데, 당연히 그를 이렇게 저렇게 대하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그는 민간의 고통을 조금씩 체험하였고 보통 사람이 받는 고통도 다 겪었으며 어디로 가나 특별히 신중하고 조심해야 했다. 그는 왜 그렇게 해야 했을까? 그것은 하나의 목표가 그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오늘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경영 계획을 이 정도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기에 인류를 구원하는데, 사랑에 이끌려 사랑의 전제하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패괴된 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여 크나큰 굴욕을 당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절마다 권면과 위로가 있고, 격려와 포용과 인내가 있으며, 더욱이 심판과 형벌이 있고, 저주와 공개적인 폭로가 있고, 아름다운 약속이 있다… 어떤 방식이든 다 사랑의 지배를 받아 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역사의 실질이다. 그렇지 않으냐? 지금 너희는 모두 어느 정도의 인식이 있지만 별로 깊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다. 앞으로 너희가 3~5년을 더 체험하면 이 사랑이 너무나 깊고 너무나 커서 사람의 말로 형용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이 없으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겠느냐? 설사 네가 목숨을 바칠지라도 보답하지 못한다. 너희가 3~5년을 더 체험한 후에 너희 지금의 표현과 지금의 성정을 회상해 보면 매우 후회하게 될 것이고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짝 따르는 것일까? 또 왜 이렇게 열의가 있는 것일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을 구원하는 것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의 역사가 시간 면에서 아주 정밀하지 않으냐? 고리에 고리가 맞물려 조금도 지체되지 않는데, 하나님이 지체하지 않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여전히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고 한 영혼이라도 잃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니 세상에서 누가 너를 가장 사랑하겠느냐? 너 자신마저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아낄 줄도 모르고 소중히 여길 줄도 모른다. 그래도 하나님이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데, 오로지 하나님만이 사람을 가장 사랑한다. 사람은 아마 아직 느끼지 못하여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길 것이다. 사실, 자신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너는 앞으로 차츰 느끼게 될 것이다. 만약 성육신 하나님이 이렇게 직접 대면하여 역사하거나 인솔하지 않고, 늘 사람과 함께 지내지 않고, 사람과 함께 생활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과 하나님은 원래 동류가 아닐 뿐만 아니라 두 경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알고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과 동류(겉모습으로 볼 때 동류)가 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크나큰 굴욕과 고통을 참으면서 사람을 구원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한다. 하나님은 왜 계속 사람을 구원하며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 사람에 대해 사랑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인류가 사탄에게 패괴된 것을 보고 마음을 놓지 못하고, 또 끊어 버릴 수도 없기 때문에 비로소 경영 계획이 있게 되었다. 만일 그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홧김에 인류를 훼멸한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고통스럽게 사람을 구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성육신 하나님이 받는 고통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유로되기 때문에 그의 사랑이 조금씩 인류에게 발견되어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만약 오늘날의 이런 역사가 없다면, 사람은 하늘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께 인류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만 안다. 그것은 도리일 뿐이라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오직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해야만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게 되는데, 그 인식은 막연하고 텅 빈 것이나 입술로만 말하는 도리가 아니라 아주 진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사랑은 실제로 유익한 것이고, 이 사역은 오직 성육신해야만 해낼 수 있고 영은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었느냐? 그는 패괴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제가 되었는데, 그는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온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힐 때까지의 그 사랑은 한량없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너무나 의의 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성육신에 대해 관념이 있는데, 무슨 관념이 있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허울뿐, 끝까지 믿어도 멸망될 것이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주로 성육신하여 사역을 하면서 친히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과 대면하여 말씀하고, 사람과 대면하여 함께 생활하는 데에서 나타나는데 거리나 거짓이 전혀 없고 아주 실제적인 것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심지어 그가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와서 사람과 함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그의 사랑과 인류에 대한 긍휼로 인한 것이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고 토색이 없는데, 그가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이냐? 사람은 하나님을 쌀쌀맞게 대하는데, 누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겨 대할 수 있단 말이냐? 사람은 자그마한 위로조차 하나님께 주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사람의 참된 사랑을 얻지 못했다. 하나님은 단지 사심 없이 헌신하고 사심 없이 공급하기만 하는데, 사람은 그래도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은혜를 구하기만 한다. 사람은 얼마나 다루기 힘들고 얼마나 골치 아픈 존재이냐! 하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역사가 효과에 도달할 것이고 많은 사람은 모두 마음속으로 진실한 감사가 우러나올 것이다. 오랫동안 체험한 사람은 이 방면에 대해 느낌이 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비록 마비되었을지라도 어쨌든 로봇이 아니고 생명 없는 물건이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체험이 없는 사람은 아마 이런 것을 체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시인만 하고 이런 진리가 다 맞다고 말하지만 아주 깊은 인식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몇 년간 역사하면서 수많은 말씀을 했다. 사람에게 효력자의 시련을 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잇달아 또 예언을 하고 심판과 형벌 사역을 하고 또 죽음의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여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로 이끌어 들어갔다. 말씀으로 사람에게 모든 진리를 공급하고, 각 부류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고, 후에 또 사람에게 작은 소망을 주어 앞날에 희망이 있음을 보게 하였다. 즉,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처소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사역은 비록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는 것일지라도 인류의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로 이 모든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에게 사랑이 있기에 패괴된 이런 인류를 이렇게 지혜로 이렇게 참답게 대하고 있는 것이지 사람을 장남감으로 여겨 우롱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조와 사용하는 어휘를 보면 어떤 때는 사람에게 시련을 주고, 어떤 때는 어떤 어휘로 사람을 괴롭게 하고, 어떤 때는 어휘 하나로 사람을 해방받고 홀가분해지게 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사람을 위해 고심하는 것이다. 비록 사람이 피조물이고 모두 사탄의 패괴를 겪어 가치가 없는 천한 놈이며 본성도 그러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실질에 따라, 사람이 받아야 할 보응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말씀이 비록 엄하지만 시종일관 인내와 관용, 긍휼로 사람을 대한다. 곰곰이 잘 생각해 보아라! 만일 하나님이 관용과 긍휼로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지 않는다면, 말씀을 이렇게 많이 하여 사람을 구원하겠느냐? 하나님은 왜 사람을 직접 정죄하지 않을까? 사람은 너무나 무지몽매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질에 사랑이 없고, 사랑이란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는지 모른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런 사역은 아주 좋아. 사람에게 유익하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어.’라고 여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너무나 좋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너무나 의의 있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깊어. 정말로 사람을 더럽기 그지없는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다.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은 너를 짐승이라고 말했어도 전혀 너를 짐승으로 대하지 않았다. 만약 너를 짐승으로 대했다면 뭐하러 너에게 진리를 공급했겠느냐? 왜 너를 구원하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또 몹시 억울해한다. “하나님께서 저를 천한 놈이라고 하셨으니 살아갈 낯짝이 없어요.”라고 말하는데, 사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역사하는 지혜와 고심은 네가 평생을 체험해도 그다지 깊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느낀 것이 깊든 얕든, 나중에 깨닫고 그 뜻을 알면 된다.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에게 진리를 깨닫고 성정 변화를 중요시하게 하는데,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에서, 순복에서 또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런 방면에서 점차적으로 깊어지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좀 헌신하고 고통을 좀 받으면 하나님 앞에서 큰 공로가 있고 큰 자격이 있다고 느끼고, 공헌을 좀 하면 우쭐대거나 떠벌리는데,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고 평정심을 잃는다. 사람에게 어디 사랑이 있느냐? 사람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하나님이 사람의 참된 사랑을 얻었느냐? 설마 하나님이 사람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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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④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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