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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편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사역과 말씀은 거의 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이라는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책 속의 어떤 말씀은 예언적인 말씀인데, 이후의 시대가 어떠할지를 예언하였다. 사실, 예언은 대체적인 테두리에 관한 것이고, 대부분의 내용은 사람의 생명 진입에 관해 말한 것이고,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에 관해 말한 것이다. 이후의 시대는 어떤 시대이고 몇 개의 시대가 더 있는지, 이후에 인류가 어떤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고,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바도 없으며, 더욱이 연대도 없지 않으냐? 그것은 이후의 시대는 네가 상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아직 그럴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그럴 때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이다. 내가 말해 준다고 하더라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지금 그런 것은 알 필요가 없으며, 단지 지금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는 이런 말씀만 깨달으면 된다. 누가 또 심오한 비밀에 관한 일을 물어보면,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그런 일은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것과 큰 상관이 없어요. 알 수 있는 것만큼 알면 돼요. 도무지 모르겠으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세요!”

전에 어떤 일들을 예언한 적이 있다. 예컨대, 천년 하나님 나라의 일,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가는 것, 말씀시대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예언하였다. 말씀이 예언한 것은 모두 가까운 시기의 것이고,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주 먼일이다. 너희는 그런 아주 먼일을 연구하지 말라. 너희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은 너희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진리이다. 예컨대, 하나님이 사람에게 발표한 성품, 말씀이 나타낸 하나님의 소유소시, 심판과 형벌로 사람의 본성을 폭로하는 것 이외에 사람에게 인생의 방향을 가리켜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은 바로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기간에 한 이런 말씀은 주로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고,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을 취지로 한다. 지금 이 말씀의 시대는 현실적인 시대이고, 진리가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는 시대이다. 이후의 말씀은 더욱 많을 것인데, 아직 많은 말씀을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지금 이런 말씀이 하나님 발표의 전부라고 여기는데, 그것은 크게 틀린 인식이다. 왜냐하면 말씀시대의 사역은 중국에서 시작했을 뿐, 후에 공개적으로 나타나 역사할 때면 말씀이 더욱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의 하나님나라시대는 어떠하고, 인류가 어떤 귀숙으로 들어가며, 귀숙으로 들어가면 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인류의 그때 생활 방식은 어떠하고, 사람의 본능이 어느 정도에 도달할 수 있는지, 어떤 인도와 어떤 공급이 필요한지 등등, 이런 일은 모두 말씀시대의 사역 내용이다. 하나님의 풍부함은 네가 상상한 것처럼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이 책 속에 다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성품의 발표와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할 것인지는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하나님이 풍부하고 무소부재하고 무소불능하고 지고지상하다는 이런 말은 빈말이 아니다. 만일 이 한 권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모든 경영을 끝낸다고 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너무 보잘것없이 본 것이다. 그것은 또다시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냐? 너는 이런 말씀이 단지 풍부한 하나님의 아주 작은 한 방면임을 알아야 한다. 온 교계는 하나님을 성경에 규정해 놓았는데, 오늘 너희가 또 하나님을 규정하고 있느냐? 너희는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폄하하는 것임을 모르느냐? 그것은 하나님을 정죄하고 모독하는 것임을 모르느냐?

지금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신 말씀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이 책뿐이고, 더는 다른 말씀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끝났다.’라고 여기고 있지 않느냐? 이렇게 여기는 것은 크게 틀린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이 책은 단지 중국에서 하는 이 단계의 정복 사역이 일단락을 짓고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하나님 자신의 모든 경영이 끝났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전 우주의 사역이 끝나게 되면 6천년 경영 계획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경영 계획이 끝난 그때에도 하나님이 여전히 존재하고, 사람이 이 우주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지 않겠느냐? 생명이 존재하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하나님의 경영은 반드시 있는 것이다. 마치 한 공장과 같다. 한 가지 제품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이 공장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이 공장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면 이 공장은 계속 운영되고 방식만 바뀔 뿐 또 새로운 제품을 생산할 것이다. 6천년 경영 계획이 끝난 후, 인류가 있고 생활이 있고 생명이 있고 이 우주가 있는 한, 하나님에게는 또 다른 경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6천년 경영 계획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경영이라고 말하지만 이후에는 무엇이라고 말할지, 아마 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또 다른 생활일 것이므로 하나님이 여전히 지금의 이런 말씀으로 사람을 인도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말씀은 이 단계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너는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공급하시는 것은 이 말씀뿐이고 더 이상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만 하십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또 하나님을 어떤 정도에 국한시킨 것이다. 예컨대 지금은 하나님나라시대인데, 네가 예수 시대의 말씀을 가져오면 적용되겠느냐? 어떤 말씀은 적용되지만 어떤 것은 폐했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든지 폐할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규정하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어떤 일에서 규정할지 모른다. 어느 날, 혹시 네가 지금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 것처럼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이라는 이 책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이라는 이 책을 읽을 때이다. 하지만 그때에 가서 다시 이런 말씀을 보면 아마 노황력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으로 낡은 것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필요는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생기고 발전되는 것이다. 그때면 사람의 본성과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본능 속성이 어느 정도 바뀌게 되는데, 이 세상이 바뀐 후 인류의 필요는 또 달라진다. 누가 “하나님께서 후에도 계속 말씀을 하실까요?”라고 물으면 어떤 사람은 규정하면서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의 사역은 끝났고, 말씀시대의 사역이 끝났기 때문에 다른 말씀을 더 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말씀이 있으면 그것은 가짜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또 틀린 것이 아니냐? 인류는 모두 하나님을 규정하는 착오를 범하기 쉽고, 모두 옛것을 지키기 좋아하고 규정하기 좋아한다. 분명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함부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는데, 사람의 본성은 정말 너무나 교만한 것이다! 사람은 늘 이전의 옛 관념을 지키고 이전의 것을 마음에 두기 좋아하며, 아울러 그런 것을 자본으로 삼아 교만자대하고 제 나름대로 모든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함부로 규정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논단하는 것이 아니냐? 그 밖에, 사람은 전혀 하나님의 새 역사를 알아보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마음대로 규정하는데, 사람은 정말 교만하여 이지조차도 없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하나님이 한 말씀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인데,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 찼고 순복은 전혀 없다.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정죄할 때 바로 이러하였다. “당신이 옳다고 해도 따르지 않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그분이 그리스도라고? 그분이 정말로 그리스도라고 해도 따르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이 없느냐? 있다. 교계에는 이런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것은 사람의 성정이 너무 나빠 구제 불능임을 설명한다.

역대의 성도들 중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이 있는 사람은 모세와 베드로밖에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정한 것인데,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을 측량할 수 있느냐? 그들이 도달한 것도 유한한 것이고, 그들 스스로도 함부로 자신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 못하였다.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헤아릴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을 규정하기 좋아한다.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규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이 한 것에 대해 가장 쉽게 관념이 생긴다. 그러므로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크게 대적하는 사람이고,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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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②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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