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제52편 사람 안의 불신 요소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

사람이 경력하는 중에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기 쉬운지, 어떤 일에서 넘어지기 쉬운지, 각 사람의 치명점이 무엇인지 하는 이런 것은 모두 파악해야 한다. 왜 일이 조금 닥치면 넘어지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진리를 계속 추구하려는 믿음이 없어지느냐? 지금 사람마다 이런 위험이 존재한다. 네가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고 힘이 얼마나 크든, 너에게 얼마나 심지가 있고 얼마나 굳세든, 어떤 부류의 일이 닥치기만 하면 모든 사람은 다 흔들리고 넘어지기 쉽다. 어떤 부류의 일일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억압받고 배척당하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세상에서 형통하고, 돈이 있고, 세력이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억눌리고 모욕당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에서 납득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원망하기까지 한다. ‘대체 하나님이 계실까? 하나님은 왜 우리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해 주시지 않을까? 하나님은 왜 저런 사람들을 관할하지 않으실까?’ 사람에게 늘 이런 정형이 나타나는 것은 무슨 문제이냐? 특히 이방인의 세력이 매우 큰 것을 보고 속으로 궁리한다. ‘하나님 집에는 왜 세력이 없을까? 하나님 집은 왜 늘 모욕당하고 억눌림만 받을까?’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일에서 다 이렇게 연약하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세상에서 관직에 오른 사람들은 기품이 있고, 처세 철학에 뛰어나고 감추며 드러내지 않아. 수양이며, 차림새며, 품격이며……’라는 이런 생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다 이런 것을 부러워한다. 그렇지 않으냐? 사람마다 안에 이런 것이 있어 이런 것에 짓눌릴 수 있고 유혹될 수 있으며, 심지어 이런 것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연약해질 수 있다. 이것은 사람 안에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진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음을 증명한다. 네가 얼마나 굳세고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다 한동안 연약해진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크면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대학에 붙은 것을 보면 질투하고, 누가 관직에 오른 걸 보면 질투하고, 누가 직장에서 월급이 오르고 가정 생활이 좋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차를 좋아하는데, 속으로 ‘다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할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가 먼저 이런 것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고, 하나님께서 마땅히 우리에게 먼저 이런 것을 누리게 하셔야 하는데, 왜 지금 누리지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이런 반응이 생기고, 속으로 이런 일을 생각하며, 이런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사람의 본성이 어떤 것인지를 드러낸다. 사람의 본성 안에 어떤 것이 있어 사람이 이런 것에 대해, 이런 일에 대해 흥미를 느낄 뿐만 아니라 마치 이런 것과 떨어질 수 없는 것 같고 이런 것이 없으면 사는 것이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진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한다. ‘진리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나님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까?’ 나중에 한참 궁리해 보더니 ‘살기야 살지. 너무 괴롭다고 느끼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의 사회, 국가, 이방인에게 있는 그런 것이 없다면, 세상이 아마 매우 공허하고 재미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사람의 본성 안에 이런 것이 있기에 하나님과, 긍정적이고 밝고 아름답고 선한 것을 결코 동경하지 않는다. 그러면 지금 사람이 왜 여전히 하나님을 믿느냐? 사람에게 욕망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요구가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사람의 욕망을 통해 사람에게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고난을 받고 심지가 있게 한다. 하지만 사람이 믿고 고난받는다고 해서 그런 것을 다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사실, 사람은 속으로 여전히 그런 것을 동경한다. 왜 어떤 사람들은 인솔자가 되거나 어떤 책임을 맡게 되면 귀신의 몰골이 드러나게 되느냐? 그것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동경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임을 설명한다. 이 본성은 어떤 본성일까? 이것은 사람 안에 있는 본성이 사탄의 본성과 같다는 것이다. 사탄이 숭배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고, 사탄이 좋아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사람 안에 있는 본성은 사탄의 본성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탄과 약속이나 한 듯이 견해나 행동이 완전히 일치하여 자연히 한데 합하게 되는 것이다. 보아라, 사람마다 진리와 서로 어긋나고 진리와 서로 저촉되는 것들, 즉 진리에 전혀 부합되지 않고 관련되지 않는 것들이 속에 있지만 사람은 발견하지 못한다. 사람은 가끔 또 ‘내가 이 일을 이렇게 하는 것은 이유가 있어! 이건 맞는 거야! 당연히 진리에 부합된다고 말할 수 있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한 거니까.’라고 생각한다. 사실, 너의 그 일은 사람의 호의에서 온 것이고, 사탄의 본성에서 온 것이다. 너는 그것이 아주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이방인의 세력이 큰 것을 보고는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속으로 또 부러워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런 세력이 있고, 많은 돈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옹호한다면 좋겠어.”라고 말하느냐? 사람이 부러워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뿐이다. 만일 사람에게 성령 역사가 없고 환경의 핍박이 없으며, 게다가 인솔하는 사람이 없고 독촉하는 사람이 없다면, 사람은 다 세계 조류를 따라갈 것이고, 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지금 인솔자가 되니 매우 힘이 나서 마음속으로 ‘잘해야지, 이 사람들을 잘 인솔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뒤에서 따르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이 너를 인솔한다면 아마 지금보다 힘이 없을 것이다. 아마 너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늘 연약해지고 낙담할 것이다. 네가 책임을 좀 맡게 되면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잘 따르면서 믿게 해야지. 내가 인솔하는 것으로 인해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너의 인솔자 사역은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모두 따르게 하는 것이다. 너에게 그런 지위가 있으면 잘할 수 있지만, 그런 지위가 없으면 아마 지금처럼 그렇게 힘이 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 안의 이런 것을 해부하면 사람이 속으로 동경하는 것은 정의로운 것이 아니고, 광명한 것, 진리가 있는 것, 사실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것, 사탄에게 속하는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들임을 발견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하는 이 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역하기 어렵고, 들어오는 사람이 너무 적은 것을 보고는 소극적이 되어 속으로 ‘각종각파(各宗各派)의 세력을 보면 얼마나 큰가,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대학생도 있고 여러 계층의 지식인들도 있고 또 관직에 오른 사람도 있네.’라고 생각한다. 그 몇밖에 안 되는 관직에 오른 사람과 대학생이 있는 것으로 인해 매우 영광스러운 것처럼 생각하지만, 대학생이 별것 아니라는 것은 인식하지 못한다. 지식이 좀 있고 학력이 좀 높으면 그는 대단히 우러러본다. 그는 관직에 오른 사람들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세력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그런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람의 세력을 믿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오히려 그런 세력에 의지하고 지식이 높은 그런 사람을 숭배하는데, 그것으로 또 사람의 본성이 어떤 것인지 결정된다.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사람이 우러러보는 이런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지식, 지위, 명리, 돈, 세력, 어떤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냐?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어느 집에 갔다가 그 집이 부유하고 가정 조건이 좋은 것을 보고는 뻔뻔스럽게도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는데, 심지어 부모마저도 다 잊는다. 그를 낳고 키워 준 부모가 그를 그렇게 성장시키고 오랫동안 키웠어도 다 잊어버리고, 심지어 언제든지 뿌리칠 수 있는데, 하나님을 잊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사람 안에 있는 배반의 본성은 아주 심각하며,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왜 사람의 본성이 배반이라고 말하겠느냐? 이 배반 안에 얼마나 많은 정형이 포함되어 있느냐?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 사람이 동경하는 것, 사람이 추구하고 수호하는 것,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하여튼 사람의 본성은 배반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바로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하나님에 대한 추구,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에 근거하여 사람이 마음속으로 온종일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지를 완전히 대조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루 24시간 무엇을 생각하느냐? 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느냐? 할 일이 없으면 앉아서 늘 ‘누구누구의 집을 보면 사는 것이 아주 행복하고 윤택해. 나도 저 사람처럼 저렇게 살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더 좋겠다. 그렇게 완벽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궁리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날마다 ‘다른 사람의 가정처럼 그렇게 원만하고, 좋은 결혼 상대를 찾고 상대가 나를 핍박하지도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좋은 직업이 있는 것을 보면 ‘아, 나도 그 사람과 같은 그런 환경이 있어 좋은 직장을 다니며 큰돈을 벌어 잘 입고 잘 먹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항상 마지막 자리에 놓는데, 하나님 믿는 것을 언급하면 ‘지금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옥에 티라고 할까, 좀 아쉽다고 생각해. 조금 더 누리고, 더 잘 먹고, 게다가 핍박도 없으면 그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왜 나에게 그렇게 이루어 주지 않으실까?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만족시켜 주지 않으실까?’라고 생각한다. 왜 전에 사람 마음속에 품은 것은 다 악이고 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였을까? 사람 안에 먹고 입고 누리고 노는 이런 것들이 가득한데, 이런 것은 다 어디에 속할까? 세상에 속하고 마귀에게 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에게 이런 것만 누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전에 성경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는 말씀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지금 단지 하나님을 믿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아직도 많은 목표와 동경하는 것이 있고, 사람 삶의 관점은 하나님을 위해 살거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아니고, 정의를 위해 살거나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에 도달하기 위해 살거나 구원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목표는 이것이 아니다. 여기에 도달하려면 거리가 멀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복을 받으려는 목표를 위해 살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체면을 세우기 위해 살고 있는데, 그것은 더욱 틀린 것이다! ‘큰 붉은 용이 나를 이 정도까지 핍박하였는데, 내가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큰 붉은 용이 이렇게 나와 형제자매들을 잔혹하게 해치고 하나님 집도 잔혹하게 해치는데, 나는 잘 살아야겠어. 그것에게 보여 주어 보란 듯이 갚아 주려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구원받아야 해.’ 또 어떤 사람은 속으로 ‘만약 우리가 잘 믿지 않아서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에게서 수포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해. 그럼 세상 사람들을 대할 면목도 없어! 이전에 우리를 비웃고 훼방하던 그 사람들을 볼 면목도 없어!’라고 생각한다. 그 뜻은 바로 ‘하나님, 당신은 꼭 저를 온전케 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의 얼굴을 어디에 두겠습니까? 사람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 안에 있는 관점이다. 여기에서 사람이 왜 살고 있는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인생관이 무엇인지, 삶의 토대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난 이제 하나님을 위하려는 마음이 좀 생긴 것 같아! 이것도 구체적 표현이 어느 정도 있는 거잖아. 나는 가정을 버리고 나와서 화비하고 봉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도 버리고 남편(아내)도 버렸잖아.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 또한 젊은이들은 ‘난 결혼하지 않을 거야, 이러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거잖아!’라고 생각한다. 네가 겉으로 좀 버리고 그런 행위와 행동이 좀 있는데, 이것은 사람이 협력해야 할 방면이다. 하지만 사람이 속으로 동경하는 목표는 이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루 24시간 생각하는 것은 어떤 맛있는 것을 먹을까, 어떤 좋은 옷을 사 입을까, 어떤 좋은 신발을 사 신을까 하는 것이다. 혹은 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수군거리거나 이후에 도대체 어떻게 될지를 궁리하거나 어떻게 하면 살림살이를 잘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은 다 이런 것들이다. 또 어떤 사람은 ‘앞으로 늘그막에 집도 없고 갈 곳도 없으면 언제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을까? 언제면 이런 고난을 받지 않게 될까?’라고 궁리하는데, 속으로 늘 이런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숨 막힐 정도로 억눌려 있다. 보아라, 너희가 함께 모여 교통하면 늘 다음과 같은 정형이 나타난다. 한 자매가 다른 사람과 교통할 때, “요즘 어때요?”라고 물으면 상대방은 “한동안 정형이 안 좋다가 나중에 좋아졌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좋아지게 되었는지 얘기 좀 해 주시겠어요?” 상대방이 그 자매와 교통하는데, 말하다 보니 밖의 일을 말하게 되어 본론에서 벗어났다. 단속하는 사람이 없으면 예배에서 잡담만 하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사람 안에 진리의 빛 비춤이 얼마 없고 진리에 대한 경력과 인식도 얼마 없다. 그러므로 말하고 교통해도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게 있는 지금의 분량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시련과 환경이 없으니 ‘지금 이렇게 추구하니 아주 좋아. 최소한 경력할 줄 알고 실제도 좀 있잖아.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도 알아들을 수 있고 터득할 수 있어. 어떤 일이 생겨도 배신하거나 하나님을 떠날 것 같지는 않아.’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대부분 안일한 사람의 생각이다. 사실, 사람은 몸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은 얼마든지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만약 네가 정말로 어떤 환경에서든 나아갈 수 있고, 어떤 일이 임하든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환난이나 시련, 또는 고통이나 질병의 시달림이 임하든, 어떤 일이든 나아갈 수 있고, 너의 원래의 심지와 추구 목표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할 수 있다면, 너는 모든 걸림돌을 다 없애 버려야 한다. 너의 마음에 아직도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어떤 것이 있으면 모두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금 몇몇 사람이 “저는 일생을 다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저의 이 일생이 몇 년이 되든 끝까지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 저는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신 이런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아직 그런 심지가 없다고 느끼고 아직 사람의 힘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런 정형은 사람의 마음에 모두 존재하고 있다. 그럼 후에 갑자기 변동이 생기면 너는 아마 넘어질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고, 참 도에서 떠날지도 모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이것이 위험한 것이 아니냐? 사람 안에 원래 있던 관점과 사상, 그리고 삶의 목표와 삶의 토대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안전성이 없고 위기가 나타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각이 날마다 바뀌고, 사람의 머리와 사람의 마음도 다 살아 움직이며, 심지어 언제든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지금은 여기에 앉아 있지만, 다음에는 어디로 사라져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 변하는 것이 얼마나 빠르냐! 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오늘은 찬양을 부르고 춤을 추면서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지만, 내일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종적을 감췄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영화관이나 댄스 홀, 도박장에 갈 수도 있고, 바다같이 넓은 세상 속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다. 너희는 오늘 인솔자, 일꾼이 되었기에 넘어질 정도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일이 생겨 옥살이한 적도 있고, 고난을 받고 시련을 겪었어도 물러가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들은 너의 운명을 결정하는 보증 수표가 아니다. 사실 사람마다 매일 아주 위험하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날 우연히,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못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심지어 죽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어떤 사람은 아주 심하게 앓다가 마지막 숨이 남아 있을 때,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아무런 의미도 없기에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죽는 것도 해탈이라고 느낀다. 이런 생각이 있지 않겠느냐? 일이 임하지 않았을 때는 사람이 ‘난 그럴 수 없어. 난 그러지 않아!’라고 느낀다. 너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느낌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아무리 궁리해 봐도 그때의 그 심리가 어떠한지를 궁리해 내지 못한다. 사람에게 질병이 있을 때에는 아파서 죽을 지경이고 견딜 수 없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생각나지 않는데, 마치 아픈 적이 없었던 것같이 말이다. 사람은 상처가 나으면 아픔을 잊어버린다. 사람은 살아 숨 쉬는 생령이기에 살아 움직이는 생각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상황에 따라 변한다. 이것은 사람마다 아주 위험하고 모두 벼랑 끝에 있음을 말한다. 너는 안전성이 없고 믿음성이 없기에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나중에 일부 사람들에게 어떤 큰 핍박이나 큰 시련이 임할 것이다. 물론 나중에 너희에게 아무리 큰 시련이 임한다고 하더라도 욥의 정도까지는 아니다. 사람에게 어디 욥과 같은 분량이 있겠느냐! 지금의 사람은 의인으로 불리기는커녕 좋은 사람이라고도 불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후의 사람은 욥과 같은 그런 시련을 누릴 자격이 없다. 욥과 같은 그런 시련은 여호와를 증거하기 위해 한 것이기에, 이후에 다시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욥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그런 시련을 누렸으며, 그의 간증은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의 사람은 욥의 믿음과 인성을 전혀 갖추지 못했고 또한 마땅히 갖춰야 할 진리마저도 없다. 사람의 패괴 본성은 구제 불능인데, 어떻게 시련 속에서 설 수 있겠느냐? 나중에 어떤 시련이 임하면 네가 어떻게 굳게 서야 하고, 마땅히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진리를 갖출 필요가 있다. 지금 진리를 잘 갖추지 않으면 시련이 임할 때 견디기 어려울 것인데, 그때는 후회해도 늦다.

─────────

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저촉(抵觸): 대립하고 저항하는 심리 상태.

③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④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⑤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⑥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이전 말씀:제51편 너는 진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아는가?

다음 말씀:제53편 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성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