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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편 너는 진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아는가?

너희는 늘 이런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예배할 때 교통할 것이 없다고 여기면서도 억지로 글자 그대로 교통하고, 도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교통할 것이다. 나중에는 자신도 힘이 없음을 느끼고, 교회의 형제자매들도 듣고 무미건조함을 느끼는데, 그렇지 않으냐? 억지로 교통한다면, 한 방면으로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없다. 진리에 대한 경력이 없으면서도 말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말해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고, 아무리 말해도 글귀이다. 네가 깨우침이 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 또한 도리상에서 깨달은 것이지 실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들어도 실제적인 것을 더듬을 수 없고, 당시에 들을 때는 아주 맞다고 여기지만 후에는 전부 잊어버린다. 실제 정형을 말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고, 사람들이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할 수 없으며, 더욱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너는 말하려고 해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되는데, 도리상에서 인식이 조금 있을 뿐 실질적인 것은 없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실질적인 문제까지 제기한다면 너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교통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예배에서 문제를 교통할 때, 어떤 경우에는 그래도 비교적 인식이 있고 실제적인 것도 좀 교통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얕은 것을 말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도 이미 깨달은 것이고, 더 깊은 것을 말하려면 말할 것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없는 것이면 너에게도 없을 수 있으므로 너는 억지로 말하지 말라. 여러 사람들이 그 문제를 교통하게 해도 된다. 네가 도리라고 느낀다면 말해도 소용없으며,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네가 아무리 말해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 네가 그냥 억지로 말하면 그릇됨과 편차가 생길 것이고, 사람을 치우치게 인도할 것이다. 보라,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비교적 깊은 것을 짧은 시간 내에 완전히 깨달을 수 없고,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토대가 너무 부족하고 소질도 낮아 그릇되고, 치우치고, 규례적인 그런 도리상의 것을 오히려 빨리 받아들이는데, 이것이야말로 비정상적인 것이다. 이 방면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사람 안에 허영심이 있어 어떤 때는 그 허영심의 지배를 받는다. 말하는 것이 도리인 줄 뻔히 알고, 마음속으로도 분명히 알면서 ‘교회 형제자매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내 얼굴을 위해서라도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겠어. 지금은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냐? 그것도 하나님에 대해 충성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마음에 가책을 받게 된다. 계속 설교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화제를 바꾸어 자신이 경력한 것을 좀 교통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인식을 조금 말해도 괜찮다. 분명하게 설교하지 못할 때는 교통하면 되지 않겠느냐! 항상 혼자서 설교하는 것도 좋지 않다. 너에게 경력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상상할 줄 알고 생각할 줄 알아도 그것은 결국 도리이고 사람의 관념에 속하는 것이다. 진리 방면에 속하는 일은 반드시 경력해야 한다. 경력이 없으면 아무도 진리의 실질을 완전하고 분명하게 알 수 없고, 더욱이 진리를 경력한 정형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반드시 진리에 대한 경력이 있어야만 말할 내용이 있다. 경력이 없으면 안 된다. 설령 경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유한한 범위에서 일부 유한한 정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더 많은 것은 말하지 못한다. 예배 때마다 늘 한 가지나 두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이렇게 저렇게 교통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다. 아마 너는 네가 이제 막 말하기 시작할 때 자신이 하는 말이 아주 실제적이라고 여기겠지만,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그다지 잘 깨닫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정형은 너의 정형이고, 교회 형제자매들의 정형이 너의 정형과 꼭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지금 너는 그것을 경력한 상태이지만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아직 그것을 경력하지 못해 네가 말한 것이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에는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문제들을 물어보고 상황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들에게 그런 일들이 닥칠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떻게 실행하면 진리에 부합되겠는지에 대해 물어보면서 교통하다 보면 길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사람을 본론으로 이끌 수 있는데, 그때 다시 교통해 주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책을 보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도리만 가득 알고, 어떤 사람은 치우친 도리만 잔뜩 아는데, 그 결과는 정말 다르다. 경력이 있는 사람은 실제적인 것을 말할 수 있고 진리에 대한 실제 인식을 말할 수 있는데, 이 진리는 그 사람에게 있어 진리인 것이다. 경력이 없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보면, 글자 표면의 뜻만 받아들이고 진리 겉면의 글귀를 해석하는데, 그의 그 해석은 진리를 깨달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어떤 사람들이 “저분은 뭐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물으면, 어떤 사람은 “진리를 공급해 주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고, “저분은 전적으로 교회를 다니면서 진리를 공급해 주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단지 교회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하거나, 양육 사역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진리를 공급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너희처럼 작은 분량이 좀 있어도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해 준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해서는 절대 안 된다. 진리가 있는 사람이 몇이냐 되느냐? 사람의 그 분량으로 진리를 공급해 준다고 할 자격이 있느냐? 사람이 설령 진리상에서 경력이 좀 있고 인식이 좀 있다고 해도 진리를 공급할 줄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면 너무 치우친 것이다! 교회를 돌보는 사람, 양육만 하는 사람, 전적으로 교회의 생명 진입을 책임진 사람 본인도 진리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한다고 하니, 이것은 모순되지 않느냐? 다른 사람이 너에게 “진리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일에 대해 사람은 지금 아직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이 눈앞의 일조차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니 너는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자격이 없다. 지금 인솔자들에게는 진정한 생명 경력이 없다. 기껏해야 소질이 좀 있어 책을 보고 나면 터득이 다른 사람보다 좀 높고, 인식을 좀 말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중개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리 어째도 진리를 공급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나중에 자신에게 작은 인식이 좀 있게 되어 그것을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교통할 수 있다고 해도 진리를 공급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단지 인식을 좀 교통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조금 공급할 줄 안다고 해도 진리를 교통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진리를 공급하는 것은 어떤 인물이어야 할 수 있느냐? 단지 교회를 양육하는 사람이나 교회를 보살피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교회를 보살피는 사람’, 여기에도 내용이 있다. 즉, 형제자매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그는 그런 일로 인해 부담이 생기고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에게 터득 능력이 좀 있기에 깊이 생각하다 보면 깨우침을 좀 얻게 되어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게 된다.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해서 그가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느냐? 다른 사람에 비해 진리를 깨닫고 다른 사람에 비해 진리가 있다고 할 수 있느냐?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일부 사람들에게 교회를 양육하게 하는 것은 완전히 배양하기 위한 것이다. 그에게 소질이 좀 있고, 터득 능력이 좀 갖추어져 있으며, 거기에 가정 환경까지 적합하여 훈련하게 한 것이지 결코 누구를 발탁하면 그가 진리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에게 부담이 있을 때 정말 성령 역사가 있으면 빛 비춤과 깨우침을 좀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깨우침을 받을 수 있고 먼저 빛 비춤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빛 비춤은 진리를 대표하지 않는다. 발급한 소책자를 보면 어떤 것은 교통이고, 어떤 것은 여러 가지 진리 문답(진리의 기초상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답한 것을 진리 문답이라고 함)인데 그 안에 또 교통이 얼마큼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진리를 보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너는 도대체 어느 범위가 진리에 속하는지 알아야 하고, 어느 범위가 진리에 속하지 않는지도 알아야 한다. 말해 봐라. 진리의 말씀에서 사람에게 깨달음이 있고 경력하여 얻은 인식이 있으면, 그것을 진리라고 할 수 있느냐? 그것은 기껏해야 진리에 대해 인식이 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성령이 깨우쳐 준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지 않고, 진리를 대표하지 않으며, 진리에 속하지 않는다. 단지 진리에 대해 인식이 조금 있고, 성령의 깨우침이 조금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이 진리에서 인식을 좀 얻은 다음 다른 사람에게 공급한다고 해도 자신의 인식과 경력을 공급하는 것이지, “제가 당신에게 진리를 공급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교통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그 표현이 적합해야 한다. 왜 이렇게 말할까? 이 말 속에도 숨겨진 뜻이 있으니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표현만 하면 된다고 여기지 말라. 이것은 어떤 표현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것을 진리를 통해 어느 정도 얻게 되지만 결코 사람에게 진리가 있다거나 사람이 진리에 속한다는 것은 아니다. 절대로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네가 아무리 진리를 통해 무언가를 얻었다고 해도 너에게 그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고, 네가 진리에 속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절대로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너는 단지 진리에서 영양이 있는 것을 좀 얻고, 네 자신의 생명을 윤택하게 하여 너의 내면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데에 있어야 할 것이 조금 있게 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통해 사람에게 공급해 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통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한다. 나중에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게 되어도 사람이 진리에 속한 자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사람 안에 진리가 생명이 되었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이 발표한 진리에 대해 경력과 인식이 있고, 모든 진리를 철저히 인식하게 될 때에는 당연히 진리를 발표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또 ‘신인경(神人經)’이 되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아무튼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네가 진리에 대해 얼마나 인식이 있든, 얼마나 경력이 있든, 네가 얼마나 하나님의 배치에 완전히 순복할 수 있든, 너의 생명 진입이 아무리 높고 아무리 깊어도 너의 그 생명은 여전히 사람의 생명이고,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사람은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에 네가 모든 진리를 다 철저히 먹고, 하나님의 지배에 맡길 수 있고, 온전케 된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네가 진리에 속한 자라고 말할 수 없고, 더욱이 네가 진리를 발표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리고 전에 말한 내면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것도 틀린 것이다. 그것은 모두 지난날의 논법이다. 지금은 비록 사람이 그런 것을 말하지 않을지라도 사람 안에 여전히 모호한 인식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이미 진리를 얻었고 진리가 우리 안에 있는 이상, 우리에게 진리가 있고 진리가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 우리도 진리를 발표할 수 있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또 틀린 것이 아니냐?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 진리에 대한 경력과 인식이 있는지, 네가 그렇게 실행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는 알게 된다. 진리는 사람마다 경력하지만 각 사람이 경력하는 정형이 모두 다르고, 각 사람이 똑같은 진리에서 얻는 것 또한 다르다. 하지만 사람의 인식을 모두 종합해도 그 진리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진리는 바로 이렇게 깊은 것이다! 네가 얻은 것과 너의 인식이 왜 진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겠느냐? 너의 그 인식을 다른 사람에게 교통해 줄 경우, 다른 사람은 이틀이나 사흘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 경력하게 된다. 하지만 진리는 사람이 일생 동안 경력해도 다 철저히 경력하지 못한다. 즉, 모든 사람이 합쳐서 경력해도 철저하게 경력하지 못한다. 보다시피, 진리는 아주 심오하여 언어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다. 진리를 인류의 언어로는 인류의 참된 이치라고 하는데, 인류는 영원히 다 철저히 경력하지 못하며, 마땅히 이것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 한 가지 진리만으로도 전체 인류를 몇 천년 동안 살게 할 수 있다. 진리는 곧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며,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대표하고 하나님 자신의 실질을 대표하고 하나님 안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 만약 사람이 사람에게 진리가 있다고 말하고, 경력이 좀 있다고 해서 진리가 있다고 말한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할 수 있느냐? 대표할 수 없다. 사람은 진리의 어느 측면이나 어느 방면에 대해 경력이 좀 있고 빛 비춤이 좀 있지만, 사람에게 영원히 공급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너의 그 빛 비춤은 진리가 아니라 단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정도, 즉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경력, 올바른 경력, 올바른 인식이고, 진리 경력의 실제적인 면이다. 그만한 빛 비춤, 깨우침, 경력으로 얻은 인식은 영원히 진리를 대체할 수 없다. 즉, 모든 사람이 한 마디 진리를 경력한 후에 그 경력한 말을 함께 종합해 놓아도 그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이전에 “나는 또 한 마디 격언을 총결해 냈다. 사람들 중에 결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진리이고, 인생의 참뜻이며, 가장 심오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발표이고, 진리이다. 네가 경력해 보아라. 3년을 경력하면 너에게 얕은 인식이 조금 있게 될 것이고, 좀 더 경력하여 8년이 되면 너에게 또 인식이 조금 있게 되겠지만, 너의 그 인식은 영원히 그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2년을 경력하면 자그마한 인식이 있게 되고, 10년을 경력하면 좀 높은 인식이 있게 되며, 일생 동안 경력하면 인식이 더 있게 되지만, 너희 둘의 인식을 종합해도 그 말씀을 대신할 수는 없다. 너희 둘의 것을 종합하여 인식과 경력, 깨달음과 빛 비춤, 그리고 실례(實例)가 얼마 있게 되어도 모두 그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내가 한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바로 사람의 생명은 영원히 사람의 생명이란 말이다. 네 것이 아무리 진리에 부합되고, 아무리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고, 아무리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되어도 영원히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 사람에게 진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실제가 좀 있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 좀 있고, 하나님이 한 말씀에 대해 실제 진입이 좀 있고 실제 경력이 좀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만으로도 사람이 일생 동안 경력하고, 여러 생(生)을 경력하고, 몇천 년을 경력해도 다 경력하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하나의 진리를 완전히 철저하게 경력할 수는 없다. 네가 이제 막 글귀를 좀 알고는 진리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황당무계한 말이 아니냐? 어떤 말은 그 말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주로는 그래도 사람 안에 어떤 바르지 않은 인식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진리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생각할 때가 있다! 작은 빛 비춤이 좀 있고, 가끔 정형이 좋아서 빛 비춤을 좀 교통하고는 흐뭇해한다. 밥을 먹어도 잘 넘어가고 무엇을 하든 순조로우니 자신에게 진리가 있다고 느끼는데, 무슨 진리가 있단 말이냐? 사람에게 진리가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넘어질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 진리가 있으면 왜 아직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느냐? 너에게 진리가 있다면 네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음을 증명하는데, 그럼 정말 큰일이 아니냐? 그러면 주님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릇된 논법이고, 완전히 사람의 추리이며,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속한다. 하나님 편에서는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가 생명이 되게 한다는 것에서 이 생명은 어떤 생명을 가리킬까?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 안에 이런 생명이 있으면 사람의 그 생명은 진리의 기초 위에서 살아가고, 진리의 범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너의 생명 안에 진리에 대한 인식과 경력이 가득하여 그 기초 위에서 범위를 벗어나지 않게 되는데, 이 생명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생명이 되게 하고 진리가 생명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 안에 진리를 생명이 되게 하면 진리의 생명이 있다는 것이 아니고, 너에게 진리가 생명이 되면 네가 진리가 된다는 것이 아니고, 네 안의 생명이 곧 진리의 생명이 된다는 것도 아니다! 너의 최종의 생명은 여전히 사람의 생명인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런 말씀에 근거해 살 수 있고, 진리에 대해 인식이 있고 그 인식이 깊이 뿌리박혀 그런 인식을 너의 안에서 없앨 수 없고, 네가 경력하여 철저히 인식하고, 또한 그런 것이 좋고 매우 귀하게 느껴지기에 받아들여 네 삶의 토대가 되게 하고, 그 후에는 그런 것에 근거해 살기 때문에 아무도 바꿀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너의 생명이다. 즉, 너의 생명 안에 이런 것밖에 없고, 진리에 대한 인식과 경력과 깨달음밖에 없는 것이다. 네가 어떤 일을 하든 이런 것에 근거해 살고, 어떤 일을 하든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이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면, 너는 바로 이런 생명을 가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최종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이런 생명이다. 만약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무리의 크고 작은 하나님으로 만든다면 혼란스러워지지 않겠느냐? 게다가 그것은 또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황당한 일이고, 사람의 황당한 생각이며,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 뿐이지 하나님을 만들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육신의 형상이 되었을 뿐이지 하나님을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만들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자신만의 실질이 있는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들고 다른 것을 만들 뿐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력이 좀 있고 진리에 대한 이런 인식에 근거해 산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이 된 것이다. 하지만 너는 진리가 너의 생명이고 네가 발표한 것이 진리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네가 그렇게 여긴다면 또 틀린 것이다. 네가 진리의 한 방면에 대해 경력이 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를 대표할 수 있느냐? 절대로 진리를 대표하지 못한다. 그럼 너는 진리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느냐? 더욱이 분명히 말하지 못한다. 너는 진리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느냐? 역시 볼 수 없다. 하나님의 실질을 발견할 수 있느냐? 발견할 수 없다. 사람마다 진리를 경력하는 것은 한 방면이고 한 각도이고 한 범위인데, 자신의 유한한 범위 안에서 경력하면 진리의 전반적인 것에 관련될 수 없다. 예컨대, 진리를 발표한 본의, 그 근원에서부터 인류의 공통성을 다 말하였다. 네가 그 정도로 경력한 것이 겨우 얼마의 비례를 차지하느냐? 모래톱의 한 알이고 바닷물의 한 방울이다. 그러므로 네가 경력한 그 인식과 네가 얻은 그 느낌이 얼마나 소중하고, 심지어 대단히 소중하다고 해도 그것을 진리라고 할 수 없다. 진리의 근원과 진리의 내용에 포함된 면은 얼마나 많으냐! 그 어떤 것으로도 반박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저의 이 경력은 언제나 반박당할 수 없나요?” 당연하다. 네가 진리에서 경력해 온 실제 정형이 어떻게 반박당할 수 있겠느냐? 어떤 환경에서도 그것이 너의 생명이 될 수 있고, 너에게 길이 있게 할 수 있고, 너로 살아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얼마 안 되는 것, 사람의 얼마 안 되는 빛 비춤은 단지 한 범위 안에서만 자신이나 일부 사람들에게 적합할 뿐이지, 다른 범위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사람이 아무리 깊게 경력해도 너무 유한한 것이고, 어떻게 해도 진리가 적용되는 범위에 닿을 수 없다. 사람의 빛 비춤과 사람의 인식은 영원히 진리와 비교될 수 없다.

사람은 진리에 대해 어느 정도 경력이 있고, 하나님의 뜻도 어느 정도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인식이 좀 있게 되었다. 사람이 어느 정도 변화되고 비교적 성결해져도 너를 여전히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하나님이 얻으려는 정상적인 사람인 것이다. 너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사람들은 “저는 진리가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면 적합하지 않다. 너는 단지 “저는 사탄의 패괴를 겪었지만 후에는 또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의 구원을 겪어 마침내 진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력 인식이 있게 된 사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일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만약 네가 “저는 참으로 진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경력하였고 다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어느 말씀이 어떤 뜻이고 어떤 배경인지, 어떤 정형에서 말씀하신 것인지 다 압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한다면, 너는 또 틀린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경력이 좀 있고, 빛 비춤이 좀 있어도 네가 진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도리만 알고, 도리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진리 앞에서 도대체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사람 안의 생명은 도대체 무엇인지, 하나님의 생명은 무엇인지를 사람은 반드시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사람이 도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어떤 실질을 갖고 있는지 사람은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며칠 경력하고는 진리가 있다고 여기는데, 이런 사람은 가장 교만방자한 사람이고, 이지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이 일은 마땅히 모든 사람들로 해부하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람으로 자신을 알게 하고 인류를 알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도대체 어떤 물건짝인지, 나중에 온전케 된 후에 어느 정도, 어떤 논법, 어떤 칭호, 어떤 명칭에 도달할 수 있어야 적합한지 하는 이런 것을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하지, 늘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됨에 있어 그래도 좀 현실적인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 좀 더 실속 있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자신의 꿈을 추구하고, 늘 하나님의 생명에 닿으려고 하며, 늘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위험한 일이 아니냐? 이런 것들은 다 아주 위험한 일이다. 한동안 사역하고 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큰 붉은 용이 무너지면 마땅히 우리가 왕 노릇 하게 되고, 여러 고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이 유로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경력이 없는 사람은 도리를 말하기 좋아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기 좋아하며, 그러고도 스스로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마치 하나님을 믿으면서 얻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모두 바울의 제자들이고, 가는 길이 완전히 바울의 길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적그리스도가 되어 중형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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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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