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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편 성령 역사를 잃은 사람은 가장 위험하다

사역을 확장할 때에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모든 것을 버리고 가정을 버릴 수 있으며, 나아가 10년 혹은 한평생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별로 고통도 느끼지 않을 것 같은데, 이것은 성령이 사람에게 더해 주는 힘이다. 하지만 사람의 분량을 놓고 보면, 그 정도에 이르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결코 진리가 갖추어져 있지 않고 단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성심만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에게 진리를 추구하려는 심지가 좀 있고 성령이 또 사람에게 은혜를 좀 더해 주면, 사람은 그 당시에 특별히 누림이 있고, 기운이 나고, 집을 떠나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은 본분을 함에 있어 바른길을 가지 않고,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멋대로 하는데,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이전에 성령 역사가 조금 있었을지라도 그것을 잃어버리고 부지중에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려는 심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성령이 은혜를 더해 주어 누리게 할 것이며, 성령의 길을 따라 앞으로 추구하여 진리에 대해 갈수록 환해지고 심지도 갈수록 확고해지며, 성령도 갈수록 역사하기 쉬워진다. 사람이 바른길을 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성령이 그 사람을 도태시킨다. 도태되고 나면, 사람 안의 이전의 심지, 이전의 열심, 버리고 헌신하려던 힘은 없어지고 사라져 “내가 왜 그때 하나님을 믿었지? 하나님을 안 믿었더라면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임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때는 그에게서 후회, 원망, 소극적인 것이 모두 나오는데, 성령이 진작부터 역사하지 않았다. 비록 그를 복음을 전하거나 어떤 사역을 하는 데에 쓴다면 그가 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것은 성령이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깨우쳐 주고 인도하는 것도 아니라 그가 머리가 좋고 학식이 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비록 육체로 할 수 있는 그런 외적인 일은 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성령의 인도라고 할 수 없고, 성령의 뜻이라고도 할 수 없다. 효력자와 같은데, 성령이 역사하지 않아도 사람이 한동안 효력할 수 있다. 그에게 어쨌든 사람의 사상과 두뇌 그리고 사유가 있기에 그는 소, 말, 당나귀와 다르다. 그에게 사람의 사유가 있기에 그는 고급 동물에 속하고, 어쨌든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는 단지 길을 잘못 갔을 뿐이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거나 구원받기를 추구하거나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를 추구하지 않았기에 가다가 길이 없어지니 집으로 돌아가 애를 키울 수밖에 없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저도 저의 본성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저 같은 사람은 정에 매였습니다. 패역이 너무 큽니다.” 어떻게 말하든, 그는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인식이 없고,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가 말하는 도리가 아무리 좋아도,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아도 도무지 실행해 내지 못하는데, 그것은 성령이 그에게 하는 사역이 이미 사라졌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그러므로 너 같은 사람의 인성이 어떻든지, 도리를 얼마나 알든지, 네가 얼마나 고생을 했고 얼마나 많이 버렸든지 성령 역사가 없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성령 역사가 없으면 사람은 멍청해지는데, 사람의 힘이 크면 얼마나 크겠느냐? 사람의 믿음이 크면 얼마나 크겠느냐? 사람의 인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옥살이하는 이 일을 놓고 보더라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부터 이런 일에 부딪히게 되는데, 늘 핍박받고 추적당하고 각지로 피난하다 보니 사람의 사상과 심령에 모두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다. ‘나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 절대 유다가 되어선 안 돼.’ 일반적으로 사람은 모두 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느냐? “나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돼. 절대로 교회의 일을 말해서는 안 돼.” 하지만 정작 너에게 일이 생겼을 때는 어떤 때에 자신도 어쩔 수 없다. 사람은 일시적으로 흐리멍덩해서 유다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말했듯이, 네가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는 우선 네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인지에 달렸다.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는 것은 너에게 성령 역사가 있는지,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가 따르는지, 은혜가 어느 정도 따르는지 하는 이런 것들을 주로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나올 때 정말 열의가 넘치고, 막 본분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았는데, 왜 한참 가다 보니 힘이 없어졌느냐? 당시의 그 사람을 지금과 대조해 보면 마치 두 사람인 듯하다. 왜 달라졌느냐? 이것은 어찌 된 영문일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여 치우쳤고, 잘못된 길을 선택했으며, 이전의 추구에 어떤 것이 숨겨져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이 숨겨져 있었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마음에 소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날이 빨리 도래하여 이런 고난이 다 끝나고, 하나님의 형상이 바뀌어 사람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모두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기를 소망하고, 언젠가는 핍박을 받지 않고 완전히 자유로워져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면 그때에는 제한하는 사람도 없이 안일한 환경 속에서 살면서 호의호식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람에게 다 이런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것들은 사람의 심령 깊은 곳에 다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육체는 고통받기를 싫어하고, 고통받을 때는 다 좋은 날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상황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없을 때는 사람이 다 아주 좋아 보이고, 특별히 분량이 있어 보이고, 모두 진리를 잘 깨달은 것 같고, 또 힘이 넘치는 것 같지만, 어느 날 상황이 닥칠 때는 이런 것들이 다 드러나고, 심리적 갈등이 시작되어, 어떤 사람들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길을 개척해 주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은혜를 주지 않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하나님이 사람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네가 지금 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도 너의 복이다. 왜냐하면 네가 구원받아 살아남으려면 이런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명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통이 네게 임하게 된 것은 너의 복이다. 너는 이 일을 간단하게 보지 말라. 이것은 사람에게 고통을 좀 받게 하여 사람을 우롱하고는 끝내는 것이 아니다. 이 속의 의의는 너무나도 깊고 너무나도 크다. 네가 평생 배우자를 찾지 않고, 평생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다 의의 있는 일이다. 네가 가는 길이 정확하고 추구하는 것이 올바르다면, 마지막에는 역대의 성도들보다 더 많이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더 큰 약속도 받게 된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내가 겪는 이 고통을 하나님께서 도대체 기억해 주실까? 만일 나중에 부양해 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 병이 나면 누가 보살펴 줄까? 하나님께서 아실까? 언제까지 고생해야 끝이 날까? 언제면 두각을 나타낼 날이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늘 이런 일만 바라면서 ‘우리가 고생하는 의의가 무엇일까?’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는다. 사람은 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형상을 바꾸기만을 바란다. 사람마다 내면에 자신의 이해타산이 있는데, 나중에 보면 사람의 본성은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함께 지내며 생활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사람은 하나님이 빨리 땅을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얼마나 받으시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빨리 땅을 떠나 우리가 이런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돼.’ 왜 이렇게 말할까? 많은 사람들은 지금 모두 이런 소망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가시면 앞으로 우리가 왕권을 잡게 될 것이니 이런 고난은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돼. 큰 붉은 용도 끝장나고 우리가 철장으로 만국 만민을 다스리게 되면 우리가 두각을 나타낼 날이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남편, 아이, 가족, 친구가 다 뭐야. 너희 이 마귀들이 나를 핍박하고 있지만, 어느 날엔가 우리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나타나 반드시 너희를 징벌하실 거야. 너희에게 우리가 가는 길이야말로 바른길임을 보게 하실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런 소망은 비록 비정의적인 것이 아니지만 사람 안의 어떤 정형들은 문제가 있다. 일생 동안 이 길을 가면서 진리를 추구하여 인생을 얻고 하나님을 알게 되어 최종에 베드로처럼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한동안 가다가 치우치게 되고, 한동안 가다가 성령의 함께함이 없게 되고 성령도 역사하지 않게 되는데, 퇴보의 길을 가게 되고, 이전에 8~9년 믿었던 노력도 다 물거품이 된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얼마나 고생을 하고, 얼마나 말씀을 듣고, 얼마나 오랫동안 따랐든 모두 허사가 되는데, 이것은 얼마나 위험하냐! 네가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아주 쉽지만 오르막길을 걸으며 진정한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머리는 혼탁하다! 어떤 것이 바른길이고 어떤 것이 치우친 길인지를 분명히 선택하지 못한다. 도를 많이 듣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보고, 하나님인 줄 알면서도 믿지 못하고, 참 도인 줄 알면서도 걸어가지 못한다. 사람은 구원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냐! 하나님인데도 너는 왜 믿지 못하느냐? 너 같은 사람은 사탄이 아니냐? 너의 본성이 어떠한지는 말하지 않겠다. 너 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그렇게 멍청하냐? 참 도인데도 추구하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고도 실행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사탄이 아니냐? 머릿속에 인생의 목표, 인생의 방향, 진정한 사람에 속하는 것이 전혀 없다. 마치 짐승과도 같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일부러 역사하지 않거나 일부러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역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사람 내면이 너무나 패괴되고, 너무나 다루기 힘들고, 사람이 바른길을 택하지 않는데,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겠느냐? 성령은 역사할 때마다 사람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며 전혀 사람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너무 혼탁해 오히려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고난받는 길을 가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힘을 들이거나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눈앞의 것만 생각하는데, 사람의 이기심 또한 너무나 크다. 눈앞에 보이고 누릴 수 있는 것이면 추구하고 노력하지만, 보이지 않거나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정형은 바로 이러한데, 성령이 역사할 여지가 거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의 이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저에게 말해 주면 좀 좋아질 것 같아요.” 그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그에게 말해 준 후에는 어떠냐? 그때는 그것이 확실히 맞다고 느끼고 도리상으로는 납득을 하지만 도저히 실행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실행하지 못하는데 말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한쪽으로 물러나거라! 너는 진리를 들을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을 믿을 자격이 없다! 멸망되기나 기다리거라! 그것은 네가 선택한 것이 추악하고 비열한 마귀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에게 진리를 아무리 많이 말해 주어도 너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쪽으로 물러나거라!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이제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사람들에게서 “나는 뭐든 다 아는데 실행하지 못하겠어.”라고 하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 말에서 그가 마귀이고, 완전히 사탄의 종류라는 것이 충분히 증명된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사악한 사람이다.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 어떤 것을 사모하는지는 완전히 그 사람의 본성을 대표한다. 네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너는 마귀에 속하는 자이기에 멸망의 대상이다. 네가 진리를 사랑한다면, 너는 하나님이 예정하고 택하신 자이다. 이것은 뻔한 일이 아니냐? 사람이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 하는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너는 지금 돌아서도 늦지 않다. 너에게 심지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이며, 심지가 없으면 가장 형편없는 사람이다. 최소한 너에게 먼저 심지가 있어야 하고 또 어떻게 그 심지대로 해서 너의 그 심지를 완성할 수 있을지 하는 여기에는 길이 있어야 한다. 너는 우선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인류의 훗날의 처소를 알아야 하고, 인류가 가야 할 길과 도달해야 할 목표를 알아야 한다. 이전에 “만사만물이 다 하나님 손에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너는 이 말씀을 체험하고, 매사에서 대조해 보아라. 너는 지금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마땅히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 하나님을 믿는 의의는 무엇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단지 복을 받기 위한 것이냐? 네가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데 이후에 끝까지 견지하여 갈 수 있느냐? 너는 이후에 어떻게 갈 것이냐? 어려움에 부딪히면 진리의 좌우명으로 자신을 격려하여 넘어지지 않고 연약해지지 않으며, 소극적이 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일은 모두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람은 기쁠 때 “나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 한평생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라고 말하지만, 좌절을 조금 당하게 될 때에는 소극적이 될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난 믿지 못하겠어. 이 길은 가기 쉽지 않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다가 후에 기도를 하더니 “아, 하나님께 빚졌습니다!”라며 가책을 받는다. 하나님께 빚진 것을 알게 되었으면 그 후에는 마땅히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여의치 않은 일이 닥칠 때에는 또 소극적이 되어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께서는 왜 저에게 이런 환경을 배치하시고, 왜 늘 고난받게 하십니까? 고난받지 않게 하시면 안 됩니까?”라고 말한다. 사람은 늘 원망하면서 또 하나님께 빚졌다고 말하는데, 언제나 변화가 없다. 좌절을 당하고 심지어 여의치 않은 일이 조금이라도 있게 되면 바로 원망이 생기고 화를 낸다. 가장 심각하면 심지어 어떤 사람은 모독하는 말과 논단하는 말까지 한다. 후에는 또 그런 말을 한 것이 옳지 않다고 느끼고 불편하게 생각되어 빨리 본분을 하고 좋은 일을 좀 하여 보완하려고 한다. 이런 일은 무엇을 설명하느냐? 사람의 본성은 다 아주 비열하고 사리를 모르는 데다가 이지도 없으며, 거래를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필요할 때는 가까이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대적하며, 자신이 좋을 대로 한다. 사람은 모두 아주 교만방자할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고 진정한 증오도 없고 진정한 호감도 없으며, 아무런 정의나 비정의도 없고 경계도 없고 목표도 없으며, 어떤 일을 하든지 원칙과 절도는 더욱 없는데, 사람의 마음은 아주 추하다. 심지어 사람은 이런 배경하에서 후에 얼마나 큰 약속을 받을 수 있고, 얼마나 많은 복을 받을 수 있겠는지를 바란다. 혹은 후에 어떻게 사람들 앞에 나서고 무엇을 누릴 수 있을지 하는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속으로 ‘아,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스럽구나!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지!’라고 느끼게 된다. 하나님이 사랑스럽다고 말한 것은 무엇에서 온 것일까? 보답하겠다는 것은 무엇에서 온 것일까? 모두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냐? 모두 잠깐의 흥미와 기쁨으로 정서적인 말을 조금 하는데, 이것이 진정한 인식이냐? 이것이 참된 사랑이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냐? 너에게 정말 이런 인식이 있다면 왜 아직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냐? 네가 정말 하나님께 빚졌다고 생각하면 왜 원망을 하는 것이냐? ‘하나님께서 제게 잘 대해 주지 않고, 상대해 주지 않고, 언짢아하시니 저도 당신을 상대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쓰지 않으시겠다니 저도 당신을 위해 일하지 않겠습니다.’ 사람 안의 원망이 얼마나 크냐! 마지막에는 스스로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라고 여기는데, 어디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가 있느냐?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직 자신의 본성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증명한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에 속하는지, 도대체 값어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의 본성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것인데, 이것은 공통된 것으로, 모두에게 이런 것이 있다. 좋아할 만한 것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더욱이 미워해야 할 것을 미워하는 사람도 없는데, 모두 경계가 없고 이상(異象)은 더욱 없다. 정의와 비정의의 차이가 없고, 흑과 백의 차이가 없으며, 더욱이 진리와 도리, 사설(邪說)과의 차이도 없고, 그것을 분별하지도 못한다. 무엇이 좋아할 가치가 있고 무엇이 추구할 가치가 있으며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지, 사람은 모두 잘 모르는데, 분별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자≫라는 노래에 사람들이 매혹되어 떠나가 버렸다. 사람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느냐? 진리가 조금이라도 있느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사역도 좀 할 수 있고 자격도 좀 있는 것 같아 이젠 진리가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 너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네가 지금은 도리를 좀 말하여 다른 사람에게 들려 줄 수 있지만, 어느 날에는 다른 사람이 너를 달래야 할지 모른다. 너는 누구보다 더 비참하게 좌절을 당할 것이고, 누구보다 더 심하게 소극적이 될 것인데, 너는 이것을 믿느냐? 너희들은 이 일을 인정하느냐? 아마 너희들은 아직 크게 소극적이 되거나 좌절을 당한 적이 없어 자신은 그래도 비교적 굳세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 체험이 없으면 자신에게 아주 분량이 있는 줄로 여기겠지만, 어느 날엔가 드러나게 될 때에는 훌쩍거리면서 “끝났어, 난 이제 끝이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극단에서 또 다른 극단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다 열정이 아주 컸지만, 어떤 일이 닥치게 되면 갑자기 힘이 빠져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너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어떤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느냐? 사람마다 연약해지거나 굳세지는 것은 스스로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안에 감추어져 있던 것들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데, 사람 안에는 그런 더러운 쓰레기들이 적지 않고, 또한 끊임없이 나온다! 그래서 사람의 본성을 사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실질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이것은 조금도 틀림없다. 예전에 하나님이 “나는 사람을 영원히 미워할 수도 있고, 영원히 사랑할 수도 있다.”라고 말씀하였다. 즉, 하나님에게는 기준이 있고, 그의 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기초에서 어떤 일을 규정하는지,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증오하는지, 어떤 일을 기뻐하고 어떤 일을 혐오하는지, 모두 그의 규정과 척도 그리고 기준이 있지만 사람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가다가 치우치는 이런 것을 늘 되풀이하는데, 인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영원히 올바로 가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늘 바란다. “하나님은 언제라야 땅을 떠나십니까? 빨리 떠나세요!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결혼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되었습니다.”라며 책임을 모두 하나님께 돌린다. 사람은 최근 몇 년간에 얻은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 만일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가 없었다면 중국인은 벌써 멸절되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마 이 일을 믿지 않을 것인데, 그것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으셔도 우리는 이제 스스로 갈 수 있어. 우리는 이 책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이미 윤곽이 있고 원칙도 다 알았으니 우리도 키를 잡을 수 있어.’라고 여긴다. 정말 키를 잡을 수 있느냐? 길도 올바로 가지 못해 가다가는 치우치는데, 그래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지금까지도 불복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이끌어 주지 않으면 모두 치우치게 갈 것이다. 은혜시대에 성령 역사가 없었느냐? 그때에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느냐? 후에 얼마나 많은 교파가 갈라져 나왔느냐?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별의별 교파가 다 있는데, 네가 생각지도 못하고 뭐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교파들도 다 존재한다. 이것은 무슨 문제냐? 사람 안에 있는 본성의 것들을 꿰뚫어 보아야 하고, 사람의 실질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꿰뚫어 보고 알고 난 후에는 그 안에 계속 빠져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벗어나 진리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 사람의 본성을 인식하고, 사람의 실질을 알고, 또 진리에 공을 들여야만 바른길을 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본성을 폭로하고 드러내어 사람에게 사람의 실질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인류의 패괴 실질을 꿰뚫어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보아라, 사탄은 흐리멍덩한 놈이다. 하나님이 그것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으니 사탄은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대답했다. 너는 그것이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한 말을 자세히 들어 보아라. 도대체 어디를 다녀왔다는 것이냐? 그러므로 그 말은 흐릿한 말이다. 그 말에서 보면 사탄은 ‘흐리멍덩’한데, 사람의 내면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사람 역시 흐릿해져 어떤 일을 하든 척도와 기준이 없고 원칙이 없다. 그래서 사람마다 치우친 길을 가기 쉽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여 “너, 왜 저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아?”라고 하니, 하와가 “하나님께서 저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사탄은 “저 나무의 실과를 먹어도 죽지 않을 수 있어.”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는 유혹하려는 뜻이 있다. 사탄은 그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절대 죽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다. 사탄은 다만 “죽지 않을 수도 있어.”라고 말하여 사람으로 ‘죽지 않을 수도 있다면 먹어도 되겠네!’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사람은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해 먹고 말았다. 사탄은 그렇게 사람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였고 또한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게 하였다. 왜냐하면 사탄은 사람에게 강제로 먹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 안에도 사탄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사람을 유혹하는 독소가 들어 있다. 간혹 사람은 말을 할 때 사탄의 그런 어조를 띠고 말하는데, 시험하고 유혹하는 뜻을 띠고 있다. 사람 안에 가득한 생각과 견해는 다 사탄의 독소들이라서 풍기는 그 냄새조차도 사탄의 것들이다. 어떤 때에는 그 눈빛이나 행동이 시험과 유혹의 의미를 띠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대로 따르면 꼭 얻을 수 있어요.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도 끝까지 따르고, 본분을 하면서 힘써 헌신하고 힘써 모든 것을 버린다면, 설사 과오가 좀 있을지라도 저는 얻을 수 있어요.” 사람은 모두 자신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사람 안에 패괴된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어떻게 변화될 수 있겠느냐? 사람의 패괴된 정도를 놓고 볼 때, 하나님의 보호가 없다면 사람은 즉시 넘어져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갈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네가 스스로 자신을 억제한다고 해도 끝까지 가지 못한다. 마지막 이 단계에서는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하는데, 네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쉽겠느냐? 최종적으로 사람에게 100% 또는 80% 정도 변화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30~40% 정도의 변화는 있어야 하고, 적어도 너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박힌 것들을 파내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이 요구한 요소의 30~40% 정도, 가장 좋기는 60~70% 정도에 도달한다면, 진리가 네 안에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고 하나님과 합하는 요소가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또다시 일이 닥칠 때에는 쉽게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게 된다. 그래야만 마지막에 온전케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늘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배나 드리고, 찬송이나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좀 듣고, 기도나 좀 하고, 또 본분이 있으면 좀 하는 것이야.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닌가?’ 지금 너희는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 하나님을 믿는 의의를 아직 꿰뚫어 보지 못하였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 의의는 너무나 깊기에 사람이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마지막에는 사람 안에 있는 사탄에게 속한 것들과 사람의 본성에 속한 것들이 반드시 변화되어야 하고, 진리의 요구에 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참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만일 네가 아직도 종교 단체에서 믿을 때처럼 글귀 도리와 구호만 좀 외치고, 거기에다 좋은 행동이나 좋은 행실이 좀 있고, 또 네가 죄짓는 일은 하지 않고,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런 죄들을 범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섰음을 뜻하지 않는다. 네가 규례를 지킬 수 있다고 해서 바른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느냐? 네가 바르게 선택했다고 할 수 있느냐? 본성 안에 있는 것들이 변화되지 않으면, 너는 결국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여전히 하나님을 거스르게 된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내가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하겠느냐? 너희가 마음속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말씀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진리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너는 길을 잘 선택하고, 진리에 공을 들이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여야 한다. 하나나 반쯤 알고 그만두거나 웬만하면 된다고 여기지 말라. 네가 자신을 속이면 너 자신만 망치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곁길로 가서는 안 된다. 나중에는 믿다가도 마음에 하나님이 없게 된다. 그저 책만 받쳐 들고 말 타고 꽃구경하듯이 본다면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게 되는데, 그러면 끝난 것이다. 너희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안 된다.”라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라는 이 말과 모순되느냐? 너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데 어찌 하나님이 있을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인도가 없다면, 모든 게 끝난 것이다. 네가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없다면, 큰 원칙적인 일이 닥칠 때는 더욱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면 너에게 간증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위험한데, 그것은 너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은 많은 일을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말해 줄 수 없다. 언제 성령이 너희를 깨우쳐 주어야만 전부 깨달을 수 있다. 지금은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평범하고 그다지 논리에 부합되지 않는 말로 표현할 뿐인데 그러면 된다. 지금 너희가 이 국가에서 이런 고난을 받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고 있는 것을 외국인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너는 아느냐? 외국인들의 소원은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싶습니다. 어떤 고난을 받는다고 해도 좋습니다. 우리도 진리를 얻고 싶습니다! 우리도 식견을 넓히고 분량을 키우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런 환경이 없습니다.’라는 것이다. 그들은 중국인들이 얼마나 복이 있느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희는 도리어 그들이야말로 복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으니 정말 복 안에서 살면서도 복을 모르는구나. 큰 붉은 용 국가에서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데, 이 사람들에게 이런 고난을 받게 하는 것은 지극히 크게 높여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에 “나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동방에 옮겨 왔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너희는 이 말의 뜻을 알고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이후의 길을 갈 것이냐? 너는 어떻게 진리를 추구할 것이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어떻게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일단 성령 역사를 잃게 되면 그런 사람은 가장 위험하다. 눈앞의 이런 고난은 다 무엇이냐? 그것이 너희를 위해 무엇을 성취할지 너는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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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②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③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④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⑤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⑥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⑦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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