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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편 진리를 공급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인솔하는 것이다

너희가 사람을 잘 인솔하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를 잘하려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과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더 깊이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각 방면의 요구를 깨달아야 하며, 진실해야 하는데, 깨달은 것만큼 경력(역주: 체험)해야 하고 아는 만큼 교통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주요한 것이다. 자랑하지 말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내뱉지 말며, 과장해 말하지 말라. 네가 과장하여 말하면 사람을 혐오케 하고, 그 후에는 자기 자신도 가책을 받게 되는데, 그러면 너무 적합하지 않다. 네가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할 때, 꼭 때리고 쳐야만 사람이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너에게 진리가 없으면서 때리고 치기만 한다면, 사람들이 다 너를 겁내고 두려워하지 그 사람들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일부 행정 사역에서는 훈계와 책망을 좀 하고, 통제를 좀 해도 괜찮다. 하지만 진리는 공급하지 못하면서 사람을 훈계할 줄밖에 모르고 성질만 부린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괴 추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되면 사람들이 너에게서 생명에 공급받지 못하고, 실제적인 것을 얻지 못하게 되어 너를 혐오하고 역겨워하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분별력이 없어 너에게서 부정적인 것을 좀 배우다 보니, 다른 사람을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도 배웠고, 화를 내고 성질부리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이것은 다 사람을 바울의 길로 이끌어 가고 멸망(원문: 沈淪)의 길로 이끌어 간 것이 아니냐? 이것은 악을 행한 것이 아니냐? 사역을 함에 있어서는 마땅히 진리를 교통함으로 생명에 공급하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한다. 네가 마구 책망하고 훈계하여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사역은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이 너의 본질을 알게 되어 모두 너를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이 사역을 하는 것이냐? 네가 그렇게 사역을 하면 어떤 사역을 하든 다 망치게 된다. 사람들이 다 너를 피하는데 네가 또 무슨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 전에 일부 인솔자들이 바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들은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할 줄 몰랐다. 사역안배가 내려와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서 구체적인 사역은 조금도 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글귀 도리를 교통하였으며 그 외에도 사람을 마구 훈계하고 책망하였다. 그 결과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피하였다. 그들은 사역을 망쳐 놓고도 이제 막 갈피를 잡았다고 하였는데, 결국 도태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성정이 변화되지 못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구실을 찾아 말한다. “제가 중국인들과 접촉해 보니 중국인들은 모두 너무 깊게 패괴되어 저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어떤 과오가 있어도 그것은 용서할 만한 것입니다. 만약 제가 외국인과 접촉하여 외국인의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면 아마 좋아질 것입니다.” 이 말은 실제적이지 못하다. 성정 변화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지식적인 것, 인격과 식견 방면의 것, 사람의 행실, 말하는 방식……겉면의 모든 것은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지만, 진리와 생명에 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에 있어 정당한 경로가 있어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리를 실행하여 실제에 진입하는 것과는 다르다. 진리를 깨달으려면 다음과 같이 먹고 마셔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면의 진리를 먹고 마시는 것을 예로 들어 보자. 하나님은 말씀에서 “사랑은 티 없이 순수한 감정이며, 사랑에는 의심이 없고, 간격이 없고, 거리가 없으며, 마음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헤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는데, 이것은 진리이다. 하나님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럼 누구를 사랑해야 하겠느냐?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어떤 형제자매든 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냐?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한 사랑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다. 이 진리를 어떻게 깨달아야 할까?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과 거리를 두지 말라는 것인데, 이것은 순수한 것이고 티 없는 것이다. 티 없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사치한 요구가 없고, 조건이 없고, 이유가 없으며, 더 이상 두 번째로 사랑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너의 마음속에 네 마음을 점유할 수 있는 두 번째의 것이 없으면, 그것은 순수하고 티 없는 감정인 것이다. 감정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네가 시시각각 하나님을 그리워하게 되고, 어느 때든 다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여기에는 헤아리고 돌봐 주고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네가 마음으로 사랑하려면, 반드시 인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네가 지금은 인식이 조금도 없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지향하고 그리워하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헤아리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수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모두 마음으로 해야지, 입으로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위해 이것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저것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말라. 오직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야말로 실제이다. 비록 입으로는 말하지 않을지라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며, 남편, 친척, 아내, 아들딸을 다 내려놓을 수 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되고,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되는데, 이러면 사랑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헤아리는 여기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다. 즉, 마음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헤아리며 시시각각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너의 행동으로 어떻게 나타내는가 하는 것도 아니다. 주로 너의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너의 마음으로 너의 행위를 지배하고, 너의 마음으로 네가 하는 모든 일을 지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속셈이 없고, 뒤섞임이 없으며, 의심이 없다. 이러한 마음이라면 많이 순결해진 것이다. 마음에 의심이 있다면, 어떻게 의심하느냐?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 정확할까? 하나님이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데에 이유가 없다면 난 듣지 않겠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 공의롭지 않다면 먼저 순복하지 않고 일단 내버려 둬야겠어.’라고 생각한다. 의심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어떻게 하든 그것은 다 정확하고, 하나님에게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순복해야 하고, 마땅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하며,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이 네가 보기에 의의가 있든 없든, 네가 보기에 관념에 부합되든 부합되지 않든, 네가 보기에 적합하든 적합하지 않든, 사람의 도리와 상상에 맞든 맞지 않든, 너는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을 대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면 진리에 부합되지 않겠느냐? 사랑의 표현이 아니겠느냐?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말씀하는 의도,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지, 어떤 효과를 보려고 하는지, 말씀하여 사람에게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무엇을 온전케 하려고 하는지를 알지 못했으면, 네가 여전히 진리를 깨닫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셔야 했는지, 왜 그런 어조로 말씀하셨고 어휘마다 그렇게 간절한지, 왜 그런 어휘를 사용했는지를 너는 아느냐? 네가 분명히 말하지 못한다면, 네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였고, 하나님이 말씀한 배경을 깨닫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네가 깨닫지 못했는데 어찌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얻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마디마디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다음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어 너의 실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네가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네가 마음으로 깊이 깨달아야만 참으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너는 글귀만 알고는 “하나님께서 성실한 사람이 되고 궤사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셨으니 그렇게 합시다.”라고 말한다. 왜 성실한 사람이 되고 궤사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했을까? 하나님은 왜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을까? 왜 사람에게 그렇게 요구한 것일까? 왜 그렇게 정의를 내린 것일까? 그렇게 말씀한 것은 모두 일정한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발표한 진리는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한 것이고,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한 것이며,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한 것이다. 글귀 도리를 중요시하는 사람, 늘 탁상공론만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얻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희롱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관점이 다른바, 목이 비뚤어진 사람이 시계를 보는 격이라 관점이 바르지 않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줄밖에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복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얘기했는지, 귀숙에 대해 어떻게 논했는지 하는 이런 것이 자신의 관념에 맞지 않으면 소극적이 되어 추구하지 않는데, 이것은 그 사람이 진리에는 관심이 없으면서도 도리어 간단한 방식으로 온갖 방법을 다해 좋은 일을 하고 자신을 잘 드러내 보여 이후에 좋은 귀숙이 있게 하려고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런 사람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셨지만 진리를 얻지 못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그저 형식만 거치고 글귀 도리를 알고는 진리를 얻었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매우 우매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신다고 해서 모두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없고, 진리를 본다고 해서 꼭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꼭 깨달을 수 있다거나 얻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진리를 얻지 못하면 글귀를 얻는 것이다. 네가 진리를 얻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모른다면, 설령 하나님의 말씀 책을 들고 있더라도 다 본 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기에 글귀 도리밖에 얻지 못한다. 너는 우선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심오한데, 네가 몇 년간 경력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겠느냐? 한 마디 말씀일지라도 사람이 일생 동안 경력하기에 충분하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이 말씀을 한 의도와 근원 및 도달하려고 하는 효과를 모르며,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를 모른다면, 어찌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책을 여러 번 펼친 적이 있고 여러 번 본 적이 있으며, 많은 글귀를 외울 수도 있겠지만, 네가 조금의 변화도 없고 조금의 진보도 없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여전히 원래처럼 멀고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원래처럼 간격이 있고 의심이 있고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대적할 수 있고 심지어 모독까지 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이유를 따질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있다면, 이것을 어찌 진리를 얻은 것이라고 하겠느냐? 사람마다 하나님의 말씀 책을 갖고 있고,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리를 교통할 때 모두 기록한다. 하지만 후에 도달한 효과는 다 같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도리를 중요시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중요시한다. 어떤 사람들은 심오한 비밀 같은 것을 보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훗날의 귀숙에 관한 일을 보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행정을 보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위로의 말씀을 보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예언을 보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뭇 교회에 한 말씀을 보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의 아들’이 되기를 원하는데, 그러면 결국 무엇을 얻게 되겠느냐? 지금 일부 새 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봐요,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좋습니까! ‘나의 아들아, 나의 아들아.’, 세상에서 누가 이렇게 위로해 줍니까!” 그런 사람은 그 말씀이 누구를 상대해 한 말씀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모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인 지가 1, 2년이 되어도 여전히 모르는데, 그래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염치 없이 또 그런 말을 해도 얼굴도 붉어지지 않고 창피해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진리를 깨달은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서도 감히 아들의 지위에 섰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무엇을 깨달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기만 한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진리를 얻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에 네가 아무리 교통해 주어도 그것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더듬을 수 있으며, 진리를 고찰하고 교통하는데, 이런 사람만이 진리를 얻을 희망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이 형상을 바꾸는 것은 어떤 방식이고, 하나님이 도대체 언제 떠나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늘 하나님의 날에만 관심을 갖고 자신의 생명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람이 관심을 갖는 그런 문제는 모두 하나님 자신의 일이다. 만일 네가 늘 그런 것을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행정에 간섭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에 간섭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지가 없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이다. 네가 만일 특별히 묻고 싶고 알고 싶어 스스로 자신을 억제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 기도하여라. “하나님, 우리는 이런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경영 계획에 관련되고 당신 자신의 일이기에 우리가 따지며 묻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과 경영 계획을 말씀하지도 않고 선포하지도 않았으면, 하나님은 사람이 그런 일을 알기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게 하려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이 말씀 책에 있으니 얼마든지 보아라. 네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이 안에 있고, 네가 깨달아야 할 진리도 많으니 얼마든지 여기에서 찾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없는 것은 파고들지 말라. 하나님이 너에게 알려 주지 않았으니 파고들어도 소용없다. 네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너에게 알게 하였고, 네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공개하지 않으며 말씀하지도 않는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아직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줄 모르고, 게다가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진리를 깨닫는 것에도 상당히 긴 과정이 필요하다.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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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③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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