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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편 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해야만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고, 이런 일은 모두 꿰뚫어 보아야 한다. 진리를 깨달은 것이 너무 적으면 쉽게 착오가 생기고 치우친 길에 들어서게 된다. 생명이 자라기를 추구하려면 반드시 매사에서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한다. 어떤 일에서든 모두 어떻게 해야 진리에 부합되는지를 찾고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뒤섞임이 있으면 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의의 있는 일은 해도 괜찮지만 무의미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그만둘 수 있으면 그만둬야 한다. 또는 그만둬야 할 때가 되면 곧바로 그만두고 제때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것은 일 처리할 때 있어야 할 원칙이다. 어떤 사람이 “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과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모두 매우 어렵게 느껴질까요? 마치 배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서게 됩니다. 왜 악한 일을 하고 의의 없는 그런 일을 할 때는 오히려 순풍에 돛을 단 격으로 매우 쉬울까요? 이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고, 진보적인 것을 가로막는 세력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히 수월하고 쉽지만, 긍정적인 일을 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이것은 완전히 본성의 성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네가 참으로 진리를 깨닫고 내면에서 진리를 사랑하기 시작할 때 다시 진리에 부합되는 그런 일을 하면 순조롭고, 기운이 나고, 정상이 되고, 심지어 홀가분하고 유쾌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부정적인 일을 한다면 힘들다고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진리가 너의 마음속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참으로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광명정대한 사람이 되고 진솔한 사람이 될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될 것인지 하는 이런 진리를 깨달은 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짓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적그리스도나 거짓 목자의 역을 맡지 않을 것이다. 설사 어떤 사람이 너를 부추긴다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너를 핍박해도 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 안에 진리가 있고, 사람이 사악한 것을 싫어하고 부정적인 것에 대해 반감을 갖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었기에 해내기 어렵다. 정말 너에게 진리가 있으면 가는 길도 자연히 정확할 것이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악을 저지르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 자대(自大)가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 자대하는 본성의 지배를 받아 하게 되는 것이다. 교만 자대로 네가 하나님을 경시하게 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되며, 교만 자대로 걸핏하면 자신을 높이게 되고, 곳곳에서 자신을 나타내게 되며, 교만 자대로 나중에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을 증거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뜻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관념에서 나온 것을 다 진리로 삼아 공양하게 된다. 사람이 이 교만 자대의 본성에 지배되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되느냐! 사람이 나쁜 짓 하는 것을 해결하려면 먼저 사람의 본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고, 사람의 패괴를 보고 교만 자대의 비열함과 추함을 인식하게 되면, 너는 역겹게 느껴져 마음이 괴로울 것이다. 네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일을 좀 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면 마음에 누림이 있을 것이며, 의식적으로 자신을 파헤쳐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면 마음이 매우 홀가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정 변화를 추구하려면 첫째는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고 진리에 진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아야 분별력이 있게 되고, 분별력이 있어야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일을 꿰뚫어 보아야 육체를 배반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려는 심지가 어떠한가에 달렸다. 참으로 심지가 있다면, 6개월에서 1년을 추구하면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하고, 3년에서 5년을 추구하면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자신도 생명이 자랐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10년을 믿어도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나중에는 “하나님을 믿어도 그저 그렇구나, 별로 큰 의미가 없고 전에 세상에 있을 때와 큰 차이가 없구나. 사는 재미가 없어.”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로 진리가 없으니 살아도 공허하고, 글귀 도리를 좀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위로가 되지 않고 여전히 편하지 않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으면 어떻게 살아야 의의 있는지를 알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일을 좀 할 수 있으며, 마음속으로 이것이 진정한 인생이고 이렇게 살아야 의의 있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해야만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고, 마음이 편하다고 느낄 것이다. 사람이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배반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이런 일을 다 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면, 이것을 정확하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하고, 참으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전처럼 그렇게 상상에만 따르고 도리와 규례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을 하면 가장 힘들고, 도리와 규례를 지키면 가장 힘들며, 목표 없이 맹목적으로 일을 하면 가장 힘들다. 진리가 있어야 자유가 있게 된다는 것은 참말이다. 진리가 있으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수월하고 즐겁다. 이런 정형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리가 있는 사람이고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다.

진입하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일이든 알아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비춰 보아야 한다. 그 일을 잘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부합되는지를 알게 되면, 자신의 뜻에서 나온 것을 버릴 수 있고,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인지를 알면 그렇게 행할 것인데, 마치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긴 것처럼 매우 홀가분하고 쉽다. 진리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일을 처리한다. 사람들에게 네가 참으로 성정이 변화되었고 확실히 선행을 좀 갖추었다는 것을 보게 하고, 네가 일을 처리함에 참으로 원칙이 있고 모든 것이 다 적합하다는 것도 보게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인데, 이들에게는 확실히 사람의 모습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사람에게서 효과를 본 것이다.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닫고 나면 자신의 여러 가지 정형을 분별할 수 있고, 복잡한 일도 꿰뚫어 볼 수 있고, 자신이 어떻게 행해야 합당한지도 알게 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자신의 정형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을 배반하려고 해도 어떻게 배반해야 하는지 또는 무엇을 배반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네가 자신의 뜻을 포기하려고 해도 자신의 뜻이 매우 진리에 부합된다고 여기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느냐? 또한 그것을 성령의 깨우침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가 없을 때는 자신의 뜻에서 나온 것이나 사람의 뒤섞임이나 사람의 호의나 사람의 흐리멍덩한 사랑이나 사람의 행위를 정확하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면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또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면 눈앞이 캄캄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기에 그저 자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어떤 일은 치우치고 그릇된 것이고, 어떤 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며, 어떤 것은 열심에서 나온 것이 된다. 또한 어떤 것은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방해하는 것이 된다.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이러하다. 왼쪽으로 치우치다가 오른쪽으로 치우치고, 제대로 가다가 또 곁길로 가기에 정확도가 전혀 없다. 진리가 없으면 일도 그릇되게 판단하는데, 어떻게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진리도 한계가 있다. 그 밖에, 사람이 평생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인식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비교적 체험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기껏해야 뚜렷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고, 확연히 드러나는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두에게 불리한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 자신의 뜻과 뒤섞임이 조금도 없게 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정상 사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고 한 방면의 터득에 속하기에 사람의 뜻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관건은 무릇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면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어긋나고, 성령의 깨우침에 어긋나는 것임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데에 공을 들여야 하는데, 진리를 깨달아야 분별이 생길 수 있다.

성정 변화를 추구함에 있어 반드시 자신을 알아가는 이 일에서 일정한 정도에 도달해야 하는데, 자신의 본성에 어떤 독소들이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어떤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것이라고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매사에 어떻게 행해야 진리에 부합되는지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양심이 있고 이지가 있어야 하고, 과장해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면 성정이 변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부분이 적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도 적으며, 본분을 함에 있어 하나님도 그로 인해 계속 속을 태우지 않아도 되고, 성령도 늘 징계 사역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일을 보는 관점에도 진리가 있는데, 이러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해졌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너에게 어느 한 부분의 사역을 맡기는데 너를 상관하는 사람도 필요 없이 네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도를 통해 이 사역을 잘하고, 사역하는 동안 절대로 교만 자대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고, 사람을 속박하지도 않으며, 또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도와 자신에게 어떤 체험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그 체험을 참을성 있게 교통해 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급받고 유익을 얻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역하는 기간에 자신의 지위나 이익을 꾀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어떤 부당한 이득도 챙기지 않으며, 자신을 위해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대하든 정확히 대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비교적 분량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어느 한 부분의 사역을 담당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을 하나님 말씀의 실제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큰 은사를 가지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다 넘어지고 무너졌다. 그러므로 진리가 없으면 절대 안전하지 못하고, 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더욱 안전하지 못하다. 너는 지금 어떤 분량이냐? 만일 누가 너에게 아부하면 어떻게 대하겠느냐? 누가 너에 대해 의견이 있고 견해가 있다면 어떻게 대하겠느냐?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적합한 사람을 선발해 쓸 수 있겠느냐? 너희들의 지금 분량은 어떠하냐? 정말 이렇게 해낼 수 있겠느냐? 너의 모든 행위가 많은 사람이 보기에 좋고 매우 적합하다면 되는 것이고 쓰기에 적합한 것이다. 만일 네가 한 곳에서 몇 년을 사역한 후, 많은 사람들이 너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네가 자격 미달이고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치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 받으려면 진리가 없어서는 안 된다.

생명을 추구함에 있어 반드시 두 가지를 중시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는 근본적인 것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생명이 없고 진리도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진리를 찾겠느냐? 세상 어디에 진리가 있느냐? 세상에서 출판된 책은 다 마귀 사탄의 이론이 아니냐? 어디 조금이라도 진리를 논할 만한 것이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는 것에는 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알고, 인생을 알고, 각 방면의 진리를 아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알고, 삶의 의의를 찾아내는 것이다. …모든 진리는 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으므로 진리에 진입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가 없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가장 주요하게 도달해야 할 효과이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면 진리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역하고 설교할 때,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전부 하나님 말씀의 글자 표면의 뜻으로 하고 실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사람이 설교하는 것은 마치 국문학을 가르치는 것처럼 한 조목씩, 한 방면씩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설교가 끝나면 다들 또 분위기에 맞춰 치켜 주며 “와, 저분은 실제가 있고, 설교도 꼼꼼하게 참 잘하시네요.”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설교를 마치면 그것을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사람을 미혹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전부 그릇된 논리만 말하는데, 겉으로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 같고 진리에 매우 부합되는 것 같다. 하지만 세세하게 분별해 보면, 그 속에 있는 것은 전부 글귀 도리이고 그릇된 논리뿐이다. 그리고 사람의 상상과 관념이 있고 또 하나님을 규정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게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 또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적하는 것이다. 이지가 있는 사람이 하는 말에는 반드시 범위와 한계가 있어야 한다. 어떤 방면의 말은 사람이 해야 할 말이고 사람이 해야 할 본본이며, 어떤 방면의 말은 하나님만이 말씀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사람은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규정할 수 있겠느냐? 더욱이 사람은 규정할 자격이 없으니 이지 없는 짓을 하지 않도록 이런 일은 모두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너는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야 하고 어떤 말을 해야 적합한지를 알아야 하며, 어떤 말이 자신이 해야 할 말이 아니면 알아도 말하지 말고, 설사 하나님이 너에게 말씀해 준 적이 있다고 해도 따라 하지 말라. 그런 것을 말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말을 함에 있어 늘 한도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것은 교만이 아니냐? 하나님의 일에 대해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아는 척하지 말고 만물박사가 되려고 하지 말라. 너무나 역겹다! 늘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무엇이든 다 안다며 자신을 나타내고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는데, 항상 하나님 대신 많이 말하고 많이 하려고 한다. 사람에게는 모두 이런 야심이 있는데, 이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늘날, 외국인들도 와서 참 도를 찾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겠느냐? 만일 사람에게 이지가 없고 교만 자대하고 제멋대로 한다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그것을 본분을 하는 것이라고 하겠느냐?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탄 몰골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정 정복된 사람은 참말 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실제적인 간증을 좀 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명 체험을 말하는 것이 좋은데, 그럼에도 과장해 말하고 큰 이론을 말하려고 한다. 그것이 무슨 소용 있느냐? 하나님의 역사를 여러 해 체험하고도 사람은 여전히 고분고분하게 하지 않는다. 사람의 신분에 따른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다. 이지가 없는 교만한 자도 하나님을 증거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모독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하나님에 대해 모를 뿐만 아니라 너의 성정은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데 네가 증거하면 역겨운 느낌이 없겠느냐? 비린내가 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누가 “당신이 우리에게 중국에서의 하나님 역사를 증거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때, 네가 “제가 하나님의 역사를 몇 년 체험했으니 하나님을 증거할 만도 하지요.”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또 이지가 없다!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다. 너는 단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체험했으니 교통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증거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자신의 체험을 말할 뿐입니다.” 너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정복 사역을 체험했는지, 당시에 어떤 패괴가 있었는지, 어떻게 교만했었는지, 나중에 정복된 후 어떤 효과가 있게 되었는지, 후에 어떤 심지가 있게 되었는지를 교통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증거하는 방법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가장 잘 부합된다. 네가 만약 아직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싶다고 말하고 아직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위치에 서려고 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고, 이지가 없고 교만한 것이다! 너는 “저희는 체험을 좀 말할 뿐이지 증거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먼저 한 가지 일을 교통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중국에 성육신하셨는지 여러분은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저희는 이것을 하나님의 역사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 사람은 사탄에게 가장 깊게 패괴되었고,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는 사탄에게 너무 깊게 패괴되었기에 인성도 가장 나쁘고, 인격도 가장 낮으며, 사람의 모양이 조금도 없습니다. 각 나라, 각 지역의 하나님 선민에 비하면 저희가 가장 형편없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하나님을 증거할 낯이 없어 단지 개인 체험을 간증할 뿐입니다. 저희는 가장 더럽고 가장 패괴된 사람인데 또 하나님의 이렇게 큰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이렇게 큰 사랑을 얻었기에 자신의 체험을 간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묻어 둘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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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④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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