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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편 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

최근 몇 년간 똑같이 사역을 체험하였고 똑같이 말씀을 들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인식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전혀 인식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적인 것을 말하면서 자신의 실제 정형과 자신의 진입, 자신의 진보, 자신에게 아직도 어떤 결점이 있는지, 이후에 어떻게 진입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교통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조금도 말할 수 없어 그저 도리만 말하고 겉면의 사역만 말하고 지금의 형세를 말하고 복음 전도의 진전에 관해 말하는데, 겉면의 이런 것만 말하면서 구체적인 생명 진입에 관한 일과 자신이 겪은 일은 전혀 말하지 못한다. 이것은 생명 진입에서 아직 정상 궤도에 들어서지 못한 것이다. 성정 변화란 행위상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겉으로 위장한 변화나 일시적인 열심으로 인한 변화가 아니라, 참으로 성정이 변화되어 생긴 행위상의 변화이다. 이런 변화는 겉면의 행실 변화와는 다르다. 성정이 변화된 것이란 바로 진리에 대해 인식이 있고 체험이 있어 진리가 너의 생명이 된 것이다. 예전에 이 일에서 네가 진리를 알아도 실행하지 못했던 것은 진리가 너에게는 도리와 같아 네가 진리를 도리처럼 여겨 다 지나쳐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의 성정이 변화되어 진리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또 진리대로 실행할 수 있고, 이전에 좋아하던 것을 이제는 내려놓을 수 있고,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것과 너 자신의 상상과 관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으며, 이전에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을 지금 내려놓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성정이 변화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성정이 변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듣기에는 아주 간단하지만 사실 이 가운데서 사람은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고, 자기 몸을 쳐 복종케 하고 자기 육체의 본성에 속한 것을 배반해야 하며, 책망과 훈계, 형벌과 심판도 겪어야 하고 시련도 격어야 한다. 이런 것을 겪어야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된다. 인식이 어느 정도 있어도 즉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고난받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 가지 일을 네가 인식하자마자 실행할 수 있느냐? 즉시 실행할 수 없다. 인식하는 그 기간에 어떤 사람은 너를 책망하고 어떤 사람은 너를 훈계하며, 게다가 환경의 핍박으로 너를 하는 수 없이 이렇게 저렇게 하게 한다. 어떤 때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왜 해내지 못할까?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다른 사람이 말해 준다.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해요.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만 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되는 거예요.” 나중에 어느 정도에 이르러 다시 시련을 좀 겪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나서 다시 하면 좀 기꺼이 할 수 있다. 그래도 처음에는 좀 마지못해 한다. 충성스럽게 본분을 하는 이 일을 놓고 말하자면, 본분을 하는 것에 대해 조금 인식이 있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 인식이 있으며, 진리 방면에서도 깨달음이 있다. 하지만 언제면 참으로 충성스럽게 하는 데에 이를 수 있겠느냐? 참되게 본분을 할 수 있겠느냐? 여기에는 한동안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도 아마 네가 적지 않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누가 너를 훈계한다든가, 책망한다든가, 가로막는다든가, 몰아댄다든가, 강요한다든가, 여러 사람의 눈이 너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는 네가 자기 스스로도 자신이 나쁘다고 깨닫게 되는데, 본분을 할 때에 충성심이 없어서 되겠느냐? 대충대충 하며 속여서는 안 된다. 성령이 안에서 너를 깨우쳐 주고, 네가 일을 잘못했을 때 너를 책망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는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게 되고, 네가 하는 본분에 뒤섞임이 너무 많고 자신의 속셈이 너무 많고 자신의 욕망이 너무 많음을 알게 된다. 네가 인식한 후에 점차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되면 행위에서 변화될 수 있다. 너희가 지금처럼 본분하는 것을 실질상으로 말하면 진정으로 본분한 것이 얼마나 되느냐? 성정이 변화된 후 진리에 부합되게 본분한 것이 얼마나 되느냐? 이런 것들을 거듭 성찰해 보면 네가 도대체 성정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성정 변화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나는 행위도 변화되고 진리도 인식했다.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한 체험도 좀 말할 수 있고, 작은 깨달음도 좀 말할 수 있다. 또한 이 일에서 성령께서도 질책하신 적이 있어 지금은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순복할 수 있다.’ 이것은 생명 성정이 변화된 것이 아니다. 왜 그럴까? 너는 조금 내려놓을 수 있지만 네가 실행한 것이 아직 진정으로 진리를 실행하는 데에 이르지 못했다. 일시적으로 환경이 적합하고 조건이 우월한 데다가 지금 네가 형세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하게 되거나 또는 너의 정서가 안정될 때, 성령이 역사할 때, 너는 아마 실행할 수도 있다. 만약 시련 속에서 욥처럼 시련을 받아 고통스러울 때 또는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죽으라고 말씀한 것처럼 너에게도 그렇게 말씀한다면, 너는 베드로처럼 “당신을 알게 된 후에는 저를 죽게 하셔도 괜찮습니다.”라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 성정이 변화되는 것은 일조일석의 일이 아니고, 네가 진리를 알았다고 여러 가지 환경에서 모두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에 관련된다. 네가 겉면으로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행실의 성질은 아직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겉면의 행실이 좀 있으면 ‘나는 진리를 실행하고 있다. 내가 지금 본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정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지 않았는가? 이 일에서 보면, 내가 본분을 하고 있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은 “나는 네가 진리를 실행하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한다. 그럼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일종 행실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것도 아마 정죄받을 것이고 칭찬받지 못하고 기념되지 못할 것이다. 더욱 엄격하게 해부한다면, 그것은 네가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고, 너의 행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네가 가로막지 않았고 방해하지 않았으며, 파괴하지 않았고 그 어떤 진리도 어기지 않아 논리에 부합되고 도리에 부합되는 것 같지만, 너는 악을 행하고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사람에게 성정 변화가 있는지 혹은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지를 하나님이 요구한 근원에서 찾아야 한다.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상상과 뜻에 부합되거나 자신의 구미에 맞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네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지, 네가 한 것이 진리가 있는지,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였는지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가늠해야 정확하다. 성정 변화와 진리 실행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그렇게 쉽지 않다. 지금 너희는 인식했느냐? 이 일에 대해 체험이 있느냐? 이 문제의 실질에 관련되면 너희는 아마 잘 모를 것이다. 너희는 진입한 것이 매우 얕다. 너희를 보면 별을 이고 달을 지며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온종일 뛰어다녀도 성정 변화란 무엇인지, 실제 정형은 어떤지 더듬지 못하는데, 이것이 매우 얕은 것이 아니냐? 오래된 신자든, 새 신자든 성정 변화의 실질적인 것과 깊은 것은 너희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칭찬하는지, 칭찬하지 않는지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 최소한 너는 일을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매우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네가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거나 어떤 사역을 할 때 또는 평소에, 너는 성령이 너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고 성령이 너에게 역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너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볼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어느 정도까지 체험하였을 때, 너는 네가 이전에 한 모든 것이 그래도 비교적 적합하다고 느낄 것이다. 만일 네가 한동안 체험하였을 때, 자신이 이전에 한 어떤 일들이 자신이 보기에도 적합하지 않고 자신이 보기에도 만족스럽지 않으며 확실히 진리가 없었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네가 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대적한 것임을 증명하고, 너의 섬김에 거역과 대적이 가득하고 사람의 행실이 가득하였음을 증명한다. 이렇게 말했는데, 너희는 성정 변화에 대해 마땅히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분명히 아느냐? 너희는 아마 평소에도 성정 변화에 대해 아주 적게 담론했을 것이고, 자신이 겪은 일을 아주 적게 교통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저는 이 근래에 정형이 안 좋아서 후에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를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세요.’ 나중에 하나님께서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시련을 겪어야 한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생각해 보니 맞더라구요! 그럼 시련을 받아야죠. 결국 저는 일어섰고 소극적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 저는 본분을 할 때 충성심이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라고 교통한다. 이런 정형을 교통하는데, 교통을 다 한 다음 다른 사람이 “네, 우리는 모두 비슷하네요. 온 세상의 까마귀가 다 검듯이 피차일반이에요.”라고 말한다. 늘 이런 것만 교통하면 곤란하다. 깊은 것을 알지 못하면 나중에도 성정이 변화되지 못한다. 성정 변화란 주로 너의 본성 방면의 변화를 가리킨다. 본성의 것들은 겉면의 행실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성의 것들은 사람 삶의 가치, 삶의 의의, 인생의 가치관에 직접 관련되고, 영혼 깊은 곳의 것들과 관련되며, 사람의 실질과 관련된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사람의 이런 방면에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이 완전히 진리에 진입하여 사람의 가치관, 생존관, 인생관에 다 변화가 일어나고, 일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일치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할 수 있어야만 성정이 변화된 것이라고 한다. 겉으로 공을 좀 들일 수 있다든가, 고생을 좀 할 수 있다든가, 상면의 사역안배를 시행할 수 있다든가, 너에게 어디에 가라고 하면 거기로 간다든가 하는 것은 행위상에서 조금 달라진 것일 뿐, 성정 변화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너는 아마 많은 길을 뛰어다닐 수도, 많은 고난을 받을 수도, 큰 굴욕을 참을 수도 있을지 모르고, 하나님과 아주 가깝고 성령도 너에게 사역을 좀 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너에게 너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을 하라고 요구할 때에는 네가 여전히 순복하지 못할 수 있고, 여전히 이유를 따질 수도 있고, 여전히 거역하고 대적할 수도 있으며, 더욱 심한 경우에는 하나님을 비난하고 하나님께 항의할 수도 있다. 이러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원래 그대로여서 조금도 변화가 없음을 증명한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하나님을 논단하기까지 하는데,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너에게 관념이 있으면 너는 여전히 이유를 따지거나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시면 마땅히 모두에게 공개하여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게 하셔야 합니다.” 사람에게 이런 행실이 있는 것은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이고, 그 본성은 영원히 변화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마땅히 포기해야 한다. 오직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할 때 찾고 구하고 알아보며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성정이 변화될 희망이 있다. 체험 중에 일부 정상적인 정형에 대해서도 분별이 있어야 한다. 아마 네가 기도할 때에 눈물을 흘리며 울거나, 아마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아주 사랑하고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단지 성령이 역사할 때의 정형이다. 하지만 너는 아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진리가 있는 사람도 아니며, 더욱이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성정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너희는 아느냐? 바로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그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찾아야 합니다.) 찾은 다음 어떻게 맞추어 볼 것이냐? 본분을 할 때 찾을 수 있는데, 본분을 하지 않을 때면 찾을 수 있느냐? 가정생활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 찾을 수 있느냐? 너는 어떻게 찾겠느냐? 시시각각 찾아야 한다! 너희처럼 오래 믿은 사람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실행해 왔는데, 지금은 자신의 본성에 대해 인식이 있느냐? 아직도 멀었다! 그럼 어떻게 찾아야겠느냐? 그래도 길이 있어야지 근거 없이 말해서는 안 된다. 너는 “날마다 찾고, 항상 찾고, 잠자고 밥 먹을 때 외에는 평소에도 계속 찾아야 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 어떤 일에서 찾아야 하느냐? 어떻게 찾아야 하느냐? 어떤 효과가 있어야 하느냐? (본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면 변화될 수 있다는 이런 말은 누구나 다 쉽게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찾겠느냐? 어떻게 인식하겠느냐? 여기에는 길이 있어야 한다! 길이 있어야 네가 체험할 줄 알게 된다. 길이 없으면 “우리 모두 본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성이 나쁩니다! 본성을 인식하면 성정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라고 구호만 외칠 뿐이다. 외친 후에는 바람이 스쳐가듯 아무도 인식이 없는데, 이것을 길이 없이 도리만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네가 이렇게 사역하면 일을 그르치지 않겠느냐? 이렇게 사역을 하면 어떤 효과를 볼 수 있겠느냐? 너희는 평소에 일반적으로 다 이렇게 구호를 외친다. “본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 순복하고 모두 엎드려야 합니다! 모두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도리를 말해서는 소용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너희는 아직 이 문제를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인식하겠느냐? 인식한다는 것은 사실 영혼 깊은 곳의 것, 곧 너의 그 생명 안의 것, 원래 네가 살면서 근거로 하고 있는 그 사탄의 논리와 사탄의 많은 관점, 즉 네가 살면서 의지하고 있는 그 사탄의 생명을 해부하는 것이다. 네 영혼 깊은 곳의 것을 파내야만 너의 본성을 인식할 수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파내겠느냐?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파내지 못하고 해부하지 못한다. 많은 경우에 너는 일을 다 하고 난 후에도 인식하지 못하는데, 아마 3년, 5년 후에 어느 정도 깨달음이 있거나 인식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본성을 알려면 반드시 몇 가지 방면을 통해 알아야 한다. 우선 네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네가 무엇을 먹기 좋아하고 무엇을 입기 좋아하는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부러워하는지, 어떤 것을 숭배하는지,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중요시하는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일을 너희는 아느냐?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것에 어떤 종류가 포함되어 있는지 너는 아느냐? 너는 평소에 무엇을 중요시하고, 무엇을 숭배하며,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일을 처리하기 좋아하느냐? 너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사람이 너의 우상이냐? 예컨대, 많은 사람들은 높고 큰 사람, 언행과 겉모습에 품위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거나, 경박하고 능글맞은 말을 좋아하며,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 잘 위장하는 자들을 좋아한다. 이것은 사람과 접촉하기 좋아하는 방면이다. 일이나 물건을 좋아하는 방면에서는 어떠하냐? 매우 순조로운 일을 하려고 하고,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일, 사람들이 보고는 찬성하는 일, 사람들이 손뼉을 치는 일, 사람들이 칭찬하는 일을 하기 좋아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의 본성 안에는 사람이 좋아하는 공통성이 하나 있다. 즉, 사람들은 겉으로 사람들이 모두 특별히 부러워하는 것, 화려한 것, 매우 호화스러운 것, 겉으로 특별히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그런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좋아하는데, 모두 이런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이런 것은 모두 높고 크고 눈부시고 화려하고 고귀한 것인데, 사람은 모두 이런 것을 우러러본다. 보다시피, 사람에게는 진리가 전혀 없고 사람의 참된 모습이 없다. 이런 것을 우러러보는 것은 전혀 의의가 없지만, 사람은 이런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이런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 매우 좋은 것이고, 매우 추구하기 원하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사람들은 연예인이나 스타나 가수를 특별히 우러러본다. 예컨대, 중국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특정 스타 열성팬들이 있다. 사람마다 따라다니면서 그에게 사인이나 글을 받거나 악수하거나 포옹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런 것이 없느냐? 어떤 때는 자신이 우러러보는 스타의 노래를 부르지 않느냐? 혹은 어떤 때는 자기가 마음속으로 바라는 스타일을 모방하여 단장하지 않느냐? 그런 스타나 유명인을 자신이 우러러보는 대상으로, 우러러보는 모델로 여기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 좋아하는, 안에 똑같이 갖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우러러보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정말 우러러보지 않느냐? 많은 사람들의 심령 깊은 곳에는 여전히 우러러보는 마음이 있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있어 뚜렷하게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 같지만 너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그런 것을 부러워하고 좋아한다. 간혹 그 사람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겠지? 그 사람 드라마도 다시 보고 싶겠지? ‘그 사람은 어떻게 지낼까?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사람과 만나서 악수라도 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럼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사람들이 어떤 스타, 배우, 일류 스타를 숭상하면 그들을 온종일 입에 달고 다니며 그들의 소식을 알아본다. 그 사람의 근황이 어떠한지, 어디로 갔는지, 또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어떤 사람들은 이런 소식을 알아보기 좋아하고, 늘 이런 것을 중요시한다. 하여간 네가 어떤 사람을 숭상하든 결론적으로 사람은 다 이런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마 네가 이런 인ㆍ사ㆍ물을 만날 기회나 조건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너의 마음속에는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이런 것을 바라는 것은 세상 사람과 야합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이며, 진리가 없는 것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며, 마귀의 몰골이다. 이것은 간단한 예를 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취향이다. 너는 너의 취향에서 너의 본성을 파내야 한다. 사람의 옷단장에서도 그 사람의 취향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괴상한 옷, 사람들이 중시하는 옷, 색상이 화려한 옷을 입거나 기이한 옷차림을 하기 좋아하고, 남들이 착용해 보지 못한 것들을 착용하거나 이성을 끌어당길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그가 그런 것을 착용하고 그런 것을 입는 것은 그의 생명 안에, 그의 심령 깊은 곳에 그런 것이 있음을 설명한다. 그가 그런 것을 좋아한다면, 그는 단정한 자가 아니고 진정 사람에 속하는 자가 아니며, 그가 좋아하는 여기에는 불의가 있고 세상 사람과 같은 관점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을 접촉하였는데, 그의 옷차림새와 일을 보는 관점은 모두 세상 사람과 같고, 그들에게서 진리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무엇을 숭상하는지, 무엇을 부러워하는지, 마음속으로 매일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하는 것은 너의 본성을 대표한다. 이것은 너의 본성 안에 불의를 좋아하는 요소가 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심한 자는 본성이 아주 사악하여 구제 불능이다. 이렇게 자신의 본성을 해부해야 한다. 이것은 너의 삶 속에서 네가 좋아하고 네가 버리는 것이 모두 무엇인지에 달렸다. 아마 네가 일시적으로 누구를 좋게 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네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네가 참으로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너의 본성 안의 것이다. 설사 너의 뼈를 부러뜨릴지라도 너는 그것을 좋아할 것이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 상대를 찾는 이 일을 보아라. 네가 어떤 사람이면 그런 사람을 찾는다. 만일 한 사람이 참으로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면 아무도 막지 못한다. 부모가 다리를 분질러 놓겠다고 해도 그 딸은 그 남자와 함께 도망가려고 하고, 죽더라도 그 남자에게 시집가려고 한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냐? 바로 사람의 뼛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아무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심장을 파내어 죽었다고 할지라도 그 여자의 영혼이 좋아하는 것은 여전히 그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성 안에 있는 것인데, 그것은 사람의 실질을 대표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는 모두 불의한 것들이 들어 있다. 어떤 것은 뚜렷하고 어떤 것은 뚜렷하지 않으며, 어떤 것은 강렬하고 어떤 것은 강렬하지 않으며, 어떤 것은 스스로 자제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억제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흑암한 것에 빠져 있는데, 이것은 그에게 생명이 전혀 없음을 증명한다. 만약 사람이 그런 것에 점유되지 않고 속박받지 않는다면, 성정이 조금 변화되었고 어느 정도 분량이 있음을 증명한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조금 깨닫고는 자신에게 생명이 있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여기는데, 사실 아직 멀었다. 성정이 변화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본성을 알기 쉬우냐? 설사 조금 인식할 수 있어도 변화되기란 쉽지 않은데, 이것은 모두 사람의 어려움이다. 언제 주변의 인ㆍ사ㆍ물 이 어떻게 변해도, 천지개벽이 일어난다고 해도 네 안에서 진리가 주도하고, 진리가 네 안에 뿌리박히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삶을 인도하고 너의 취향을 인도하고 너의 체험과 생존을 인도해야 너에게 정말로 변화가 있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변화는 협력을 조금 하고, 열심이 조금 있고, 믿음이 조금 있는 것인데, 이것을 변화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증명할 수 없다. 이것은 단지 사람의 취향일 뿐이다. 본성 안에 있는 사람의 취향을 파내려면 본성 안의 것에 속하는 기타 각 방면을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일을 보는 관점, 삶의 방식과 목표, 삶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무엇인지, 또한 진리에 관련된 모든 관점과 견해, 이런 것은 다 영혼 깊은 곳에 있는 것인데, 성정 변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또 사람의 패괴 본성 안에 있는 인생관이 어떤 것인지를 보자. 그것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다.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마치 개돼지처럼 다른 목표가 없이 먹고 입는 것을 위해, 입 하나를 위해 살기에 아무런 뜻도 없고 더욱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인생관은 바로 네가 생존하고 살아가면서 무엇에 의지해 살아가는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본성 안에 있는 실질적인 것이다. 사람의 본성 해부를 통해 너는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고 모두 마귀여서 진정 좋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해부해야만 참으로 사람의 실질과 패괴를 인식할 수 있고, 사람이 도대체 무엇에 속하는지, 사람에게 진정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내야 하는지를 인식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진정으로 해부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진리가 없고 체험이 없으면 역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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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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