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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편 자신을 아는 것은 주로 사람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성정이 변화되는 데에 있어,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드러낸 것에 근거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서만이 자신의 추악한 본성을 알고, 자기 본성에 있는 각종 사탄의 독소를 알고, 자신의 무지몽매함을 인식하고, 자기 본성의 취약함과 소극적인 요소를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밝히 알고 난 후에 참으로 육체를 배반하게 되고,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 실행하는 것을 견지하게 되고, 참으로 절대적으로 성령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할 심지가 있게 된다면, 너는 베드로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가 없다면, 이 길은 가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자신을 배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온전케 되는 길을 가려면, 주로 자신에게 심지와 믿음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순복해야 하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중요한 몇 가지 방면인데, 모두 어겨서는 안 된다. 경력(역주: 체험)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알기란 아주 어렵고, 성령 역사가 없다면 진입하기도 쉽지 않다. 베드로의 길을 가려면 반드시 자신을 알기를 중요시하고, 성정 변화를 중요시해야 한다. 바울의 길은 생명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을 알기를 중요시하지 않은 반면, 특별히 사역을 중요시하고 사역하는 기세를 중요시한 것이다. 그의 속마음은 고생하여 사역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바꾸어 오고 하나님의 상을 받으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잘못되었다. 그는 생명을 중요시하지 않고 성정 변화를 중요시하지 않고 상받는 것만 중요시하였는데, 그의 추구 목표가 틀렸기에 당연히 간 길도 틀린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교만자대로 초래된 것이다. 보다시피, 바울에게는 진리가 조금도 없었고, 양심과 이지도 없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주로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목적은 사람에게서 성정 변화의 효과를 보고, 사람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고 역사하는 목적이다. 바울의 추구법은 하나님의 뜻에 정확히 어긋나고 저촉되는 것이며,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의 추구법은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이루려는 효과에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길이다. 바울의 길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에 하나님이 혐오하고 저주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길을 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달을 수 있다면,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나중에 어떤 효과를 보려고 하는지를 알아야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네가 만약 소망만 있을 뿐 베드로의 길에 대해 잘 모른다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다시 말해, 네가 많은 도리를 알더라도 나중에는 여전히 실제에 진입할 수 없는데, 설령 좀 얕은 진입이 있더라도 실제적인 효과는 볼 수 없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얕고, 자신의 본성 안에 있는 것에 대해 전혀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단지 자신의 일부 패괴 정형을 알고, 어떤 일을 저지르기 쉬운지에 대해 알거나 자신에게 어떤 결점이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는 자신을 안다고 여기고, 또 일부 규례를 지키어 어느 몇 가지 방면의 잘못을 범하지 않음을 보증하고 몇 가지 과오를 피할 수 있으면 하나님을 믿음에 실제가 있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완전히 사람의 상상이다. 네가 그런 것을 지킨다고 해서 정말 과오가 생기지 않을 수 있느냐? 정말로 성정이 변화되었느냐? 정말로 사람의 모습을 살아냈느냐? 정말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느냐? 절대로 그럴 수 없는데, 이것은 틀림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진리를 얻고 생명 성정이 어느 정도 변화되도록 높은 기준이 있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얕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생명 성정도 절대로 변화되지 못한다. 자신을 어느 깊이까지 인식해야 하는데, 바로 자신의 본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본성 안에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 그런 것들은 어디에서 생겼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리고 네가 그런 것들을 정말 증오할 수 있는지, 자신의 추한 영혼과 사악한 본성을 보았는지 하는 것이다. 정말로 자신의 진상을 보게 된다면, 사람은 자신을 증오하게 된다. 자신을 증오하게 되었을 때 네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한다면, 그때는 육체를 배반할 수 있어 진리를 실행할 힘이 생기고 힘들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이전에는 왜 육체를 따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적합하고 정당하다고 여겨 그 어떤 잘못된 점도 없고 심지어는 그것이 완전히 정확하다고까지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본성이 도대체 어떤 것이고, 얼마나 추하고 얼마나 비열하고 얼마나 가련한지를 참으로 알게 되면, 그 후에는 그렇게 자고(自高)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교만방자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전처럼 그렇게 득의양양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착실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사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하나님 앞에서 살 면목도 없어.’라고 여기게 된다. 그가 정말 자신이 아주 보잘것없다고 보고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볼 때, 그때에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고, 사람의 모양도 어느 정도 있어 보일 것이다.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을 증오할 때에야 육체를 배반할 수 있다. 자신을 증오하지 않는다면 육체를 배반할 수 없다. 참으로 자신을 증오하는 여기에도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이 빈궁하고 가련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님을 알며, 자신의 가련한 영혼, 더러운 영혼을 아는 것이다. 참으로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이 효과에 도달하였다면 진실로 자신을 알게 된 것인데, 자신을 완전히 인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때에야 사람은 자신을 증오하고, 심지어 자신을 저주하면서 정말로 사람이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어 사람의 모양이 전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정말로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될 때, 그는 ‘아!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이야, 역시 하나님은 공의로우셔. 나 같은 사람은 죽어 마땅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불평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너무나도 가련하고, 너무나도 더럽고 패괴되었으니 마땅히 하나님께 멸망돼야 해. 이런 영혼은 땅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이 괜찮다고 여긴다면 죽음의 위협을 당할 때, 그는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잘 믿고 이렇게 추구하고 이렇게 많은 것을 치르고 이렇게 많은 고생을 했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나에게 죽으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왜 나보고 죽으라고 하시는 걸까? 나 같은 사람마저 죽어야 한다면 어느 누가 구원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인류는 모두 끝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첫째, 관념이 있고, 둘째, 원망이 있고 순복은 조금도 없다. 바울은 죽을 때까지도 자신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때면 후회해도 늦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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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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