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제31편 하나님의 전능과 실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인류는 사탄에게 패괴된 후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일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는데 하나님은 사람이 배반하지 않게 못하십니까? 왜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시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 이것은 문제가 아니냐? 이 일에서 너는 어떤 문제를 발견했느냐? 하나님께는 실제적인 면이 있고, 전능한 면도 있다. 사람은 사탄의 패괴를 거치지 않아도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신의 주관적인 의지가 없다.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까, 어떻게 사탄과 단절하고 사탄과 야합하지 않고 마땅히 하나님께 순복해야 할까, 하나님께는 진리와 생명과 길이 있으며, 하나님은 거스를 수 없는 분이다.’라는 이런 것이 사람 안에는 없고, 더욱이 사람은 사탄의 그런 본성도 인식하지 못했다. 원래 사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사람은 모두 사탄에게 패괴된 후, 내면에는 사탄에 속하는 것들이 있기에 더욱 쉽게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문제이다. 너는 이 문제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께는 전능한 면도 있고, 실제적인 면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만 보고 하나님의 전능한 면을 보지 못하면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하기 쉽고 그를 보통 사람으로 보기 쉬우며, 전능한 면만 보고 실제적인 면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기 쉽다. 어느 한 면도 보지 못하면 더더욱 하나님을 대적하기 쉽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많을수록 하나님의 뜻을 더욱 알게 되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는 의의를 알게 된다. 하지만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요구함에 있어 실제 내막이 있다. 즉,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 실제적인 면이 있지만, 사람은 영원히 완전하게 알 수는 없다. 하나님은 매우 높고 크고 기묘하고 난측하나, 사람의 사유는 너무나 제한되어 있다. 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영원히 갓난아이라고 할까? 바로 이런 뜻이다.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발표하거나 어떤 일을 하면, 사람은 늘 오해한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실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잖아!’ 사람의 내면에는 늘 싸움이 있다. 하나님이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하는 것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이 인간 세상의 고통이 어떤지 모르실까? 하나님은 전능하시잖아! 체험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하나님 역사의 실제적인 면이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사람을 구속하기 위한 것인데,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에 대해 항상 관념이 있어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구속하실 때, 사탄에게 ‘나는 전능하다. 네가 감히 인류를 나에게 안 주겠다고? 반드시 나에게 줘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기만 하면 해결됩니다. 하나님께는 권병(역주: 권세)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준다고 말씀하시기만 하면 사람에게는 죄가 없게 될 텐데, 이런 일은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한마디 말씀을 하시니 천지 만물도 다 생겼는데, 이 일은 왜 해결하시지 못합니까? 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까?”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전능한 면도 있고, 실제적인 면도 있다. 실제적인 면은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하여 땅에서 33년 반 동안 거하면서 많은 고난을 받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피를 흘리며 가장 심한 고통을 받은 것이다. 나중에 죽음에서 부활하였는데, 부활은 전능한 면이다. 하나님은 어떤 예시로, 또는 피를 좀 흘리거나 비를 좀 내리는 것으로 그것이 곧 속죄제라고 말씀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친히 말씀이 육신 되어 온 인류와 접촉하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인류에게 그런 사실이 있었음을 알게 하였다. 그 사실로 인류에게 하나님이 사람을 구속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였는데, 하나님이 확실히 사람을 구원한 그런 증거가 있게 하였다. 어느 차례의 성육신이 하는 사역이든, 혹은 영이 직접 하는 사역이든 모두 그 필요성이 있다. 그렇게 일을 해야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의의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인류에 대해 유익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경영하는 대상은 모든 인류이기 때문이다. 전에, 그렇게 하는 것은 사탄과 싸우기 위한 것이고 사탄이 수치를 당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사역을 하는 것은 결국 인류를 잘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인류에게 있어, 그 일은 기념이 되고,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의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온전케 하는 것은 환난 속에서 나온,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 한 무리 사람들이고, 사탄에게 패괴된 한 무리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 단계 사역에서 모두 인류의 필요에 따라 역사 방식을 택하는 것이지 아무렇게나 해도 다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선택이 있고 관념도 있다. 보라! 십자가에 못 박히니 사람은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그때 당시에 가장 심한 고통이었다, 그렇지? 영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느냐? 영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 고통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예표가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상징이 될 수도 없으며, 더욱이 피를 흘릴 수도 없다. 영은 피를 흘릴 수 없고 육신만이 피를 흘릴 수 있는데, 그 보혈이 바로 속죄제의 증거이다. 하나님의 육신이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어 인류를 대신해 고통을 담당했다. 영은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기에 인류를 대신해 고통을 받을 수 없고, 사람의 죄를 속량할 수 없다. 그것은 인류를 위해 한 것으로, 실제적인 그 일면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있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이다. 왜 그를 하나님이라고 하고, 전능한 면이 있다고 말하겠느냐? 일을 할 때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전능한 면이 있고, 실제적인 면도 있다. 하나님의 전능은 바로 그의 실질이며, 그의 실제적인 면에도 그의 실질적인 면이 있다. 이 두 방면은 서로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역사하는 것은 그의 실제적인 면이고, 그가 그렇게 역사하는 여기에도 그의 전능한 면이 있다.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역사한다고 해서 하나님은 실제적이고, 실제적인 면만 있고 전능한 면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말한 대로라면 그것은 또 규례가 된다. 그것은 전능한 면이기도 하고, 실제적인 면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든 모두 전능하고 실제적인 두 방면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그의 실질에 근거하여 하는 것이고, 그의 성품의 발표이고 실질의 유로(역주: 흘러나옴)와 소시(所是)의 유로이다. 사람은 은혜시대의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께는 또 진노의 일면도 있다! 심판의 일면으로는 바리새인을 저주하고 전체 유대인을 저주했는데, 그것은 진노와 공의가 아니냐? 너는 하나님이 은혜시대에는 긍휼과 자비만 있었을 뿐이지 진노하고 심판하고 저주하려는 뜻은 전혀 없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이 없는 것이다. 그 시대에 예수가 사역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한 것이었다. 사람이 본, 예수가 한 모든 사역은 다 그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고 전능하신 분임을 증명하고, 그 자신에게 하나님의 실질이 있음을 증명한다. 이 단계에서는 어떠하냐? 하나님이 심판과 형벌을 한다고 해서 설마 하나님에게 긍휼과 자비가 없단 말이냐? 여전히 있다. 사람이 만약 한 종류의 말이나 한두 마디 말로 하나님의 실질과 성품을 개괄한다면, 그것은 너무 무지몽매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방면의 진리를 교통해 주세요. 우리에게 분명하게 얘기해 주세요.”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가장 심오한 일입니다. 한두 마디 말로는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하루 이틀만에 명확하게 말하지 못합니다.”라고 할 텐데, 이 뜻을 알면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 영원히 밝히 알지 못한다. 교만방자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저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압니다. 저는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어떤 일들은 사람이 경력(역주: 체험)하지 않고 사실을 보지 못하면, 참으로 인식할 수 없고 체득할 수 없어 아주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깨닫지 못한 사람이 들으면 어떤 논법으로밖에 들리지 않아 도리상으로는 알지만 인식은 없다. 네가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추상적이라는 것은 경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 깨닫기 쉽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추상적이지 않다. 정말로 경력이 있다면, 어떤 말씀이든 어떤 배경에나 다 결부시킬 수 있고, 어떤 일과 어떤 인식, 어떤 방면은 어떤 정형에서 말한 것인지, 어떤 일을 가리키는지, 자신의 머릿속에 인상이 있는 인식을 좀 말할 수 있다. 네가 글귀로만 듣고, 실제적인 인식은 조금도 없고, 너 자신의 내면에 인상이 없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네가 받아들였다고 해도 어떤 논법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이것은 경력해야만 되는 일이지, 배워서 익힐 수 있는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다. 전 인류를 구속하고 전 인류의 죄를 속량한 것은 하나님의 전능한 일면이다. 하나님이 앉아 있기만 하면서 자신이 전능하다고 해도 안 된다. 이 전능에는 실제적으로 사역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사역을 하면서 사람을 정복하여 사람이 모두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전능과 실제의 이 두 방면을 따로따로 말하면 사람이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기에 반드시 두 방면을 동시에 인식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성품을 발표하고,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며,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전능한 면이다. 그가 친히 하는 것은 실제적인 면이다. 이 두 방면은 서로 결합되어 있다. 하나님이 말씀을 하는 것에 그의 전능한 면이 있다. 그에게 권병이 있기에 이루어지라고 말씀하면 바로 이루어지는데, 최종 효과에 대해 말할 필요 없이 말씀하는 동시에 전능이 나타난다. 이것을 잊지 말라. 즉, 하나님 자신의 실질은 전능이고 또한 실제인데, 이 두 방면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매사에서 자신의 성품을 발표하고 자신의 소시를 유로하는데, 그 소시에는 전능과 공의와 위엄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라고 알려 준 것은 하나님께 실제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요나가 듣지 않아 나중에 물고기 배 속에 사흘이나 갇혀 있게 되었는데, 그래도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전능이다. 요나에게 한 일에서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역사하면서 언제나 자신의 실질을 유로하고 있고,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고 있다. 하나님의 그 실질은 바로 이 두 방면인데, 하나는 전능한 면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적인 면이다. 어느 단계의 역사에서 보든 다 이 두 방면이 있다. 하나님이 하는 매사에 이 두 방면이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

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이전 말씀:제30편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베드로의 길을 가야 한다

다음 말씀:제32편 어떤 사람이 징벌을 받는가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