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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28편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을 거스르기 쉽다

너희가 그렇게 ‘진리 귀납’ 책을 만든다면, 사람들에게 진리에서 생명을 얻거나 성정 변화를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진리에서 지식과 도리에 정통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달은 듯하지만, 사실 사람은 글귀 도리만 갖추었을 뿐 그 속에 내포된 뜻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였다. 마치 신학교를 다니고 성경을 읽는 것과도 같다. 네가 늘 이런 책들이나 저런 자료들을 정리해서 이 방면의 도리를 갖추고 저 방면의 지식도 있게 되어 도리를 말하는 데에는 훌륭한데, 말을 한 후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사람들은 모두 경력(역주: 체험)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여 나중에는 자신들이 얻은 그런 것들이 다 공식과 규례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그저 그 몇 가지 방면만 말할 수 있을 뿐, 더 많은 방면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또 새로운 일을 한다면 네가 알고 있는 그 도리로 맞출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너의 그런 것들은 다 규례이고,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신학을 배우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를 경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정리한 그런 책들은 단지 사람들을 신학이나 지식 속으로 이끌고, 새 공식 속으로 이끌고, 규례와 관습 속으로 이끌 수 있을 뿐,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할 수 없다. 너는 그런 말을 하나하나 질문하고는 대답하고, 그 무슨 요점이니 종합이니 하는데, 그렇게 하면 형제자매들이 알기 쉽고 기억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또 그런 문제들을 한눈에 환히 알 수 있다고 여긴다. 너는 그렇게 하면 아주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깨달은 것은 진정한 함의가 아니고, 실제와 맞지 않는 것이며, 그저 글귀 도리일 뿐이다. 그래서 네가 하는 그런 일들은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고 한다!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을 이끌어 지식을 알게 하고, 지식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네가 사람들을 도리 속으로 이끌고, 종교 지식 속으로 이끌어 모두가 종교적인 도리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믿게 하는데, 그러면 너는 바울과 같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진리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외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너희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기억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도리를 말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많은 공식을 발견할 수 있는지 등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늘 그런 것들을 체계화하여 모두가 다 이구동성으로 똑같은 말을 하게 하고, 똑같은 도리를 말하게 하며, 모두에게 똑같은 지식이 있게 하고, 모두에게 똑같은 규례를 지키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의 목적이다. 너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더 잘 깨닫게 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도리어 사람들을 하나님 말씀 진리 밖의 규례 속으로 이끌게 된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구나! 사람들에게 참으로 진리를 깨닫게 하려면, 너는 실제에 결부시키고 사역에 결부시켜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진리를 갖출 수 있다. 네가 만일 공식과 규례로 글에만 공을 들인다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되고, 사람들을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솔하지 못하게 되며, 더욱이 사람들로 더 많이 변화되게 하거나 자신을 알게 할 수도 없다. 만일 글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다면, 너희가 가서 사역할 필요가 없다. 너희는 지금도 하나님이 말씀하는 규칙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데는 논리도 없어요. 한 편 한 편의 말씀에 별별 내용이 다 있어요. 한 단락 한 단락 말씀, 한 구절 한 구절 말씀의 함의도 다 같지 않아서 기억하기 쉽지 않고, 깨닫기도 쉽지 않네요. 한 단락 한 단락의 말씀에서 그 단락의 대의를 귀납하려고 해도 귀납해 낼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소설이 아니고 산문이 아니고 한 편의 작품이 아니라, 진리이고 사람의 생명을 공급하는 말이다. 이런 말은 사람의 머리로 궁리한다고 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사람이 공을 많이 들인다고 해서 규칙을 귀납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느 방면에서든 인식이 조금 있거나 규례를 좀 찾아낸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단편적인 인식에 불과하고, 그저 피상적인 것이고 한 방울의 바닷물일 뿐이어서 하나님의 원뜻에는 전혀 도달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하신 어느 편의 말씀에도 다 몇 가지 방면의 진리가 있다. 예를 들어, 어느 편의 말씀이 하나님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에 관한 것이면, 그 속에는 성육신 된 의의와 성육신이 한 사역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마땅히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도 있고, 아마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도 있을 것인데, 여러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만약 너의 상상대로 성육신 된 의의는 몇 가지밖에 안 되고 몇 마디 말로 개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에게서 어떤 효과가 있겠느냐? 사람에게 성육신의 의의를 깨닫게 하려는 것은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된 후에는 자연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의 실행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어떤 방면의 말씀이든, 어떤 방면의 진리이든 다 네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말씀, 신성(神性)의 언어를 그렇게 간단하게 보고 어떤 문제든지 한 단락의 말씀으로만 대답하면 딱 맞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한 편 한 편의 말씀은 여러 각도로 말씀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총결할 수 없고 귀납할 수도 없다. 너희는 그것을 귀납한 후, 그 한 단락에서 위의 그 문제를 대답했다고 여긴다. 사실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너는 그것을 어떻게 말할 것이냐? 진리 안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왜 진리는 생명이고, 사람에게 누리도록 공급할 수 있는 것이며, 사람이 몇 세대를 경력해도 다 경력할 수 없는 것이고, 몇백 년을 경력해도 다 경력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느냐? 네가 만약 어느 한 방면의 진리, 어느 한 단락의 말씀을 귀납한 후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에 맞춰 그 단락의 말씀을 읽고 말한다면, 분명히 그 단락의 말씀은 위의 그 문제만을 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단락의 말씀은 공식이 되고 규례가 되고 도리가 되는 것이지 진리는 아닌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원 말씀을 바꾸지 않았고 한 글자도 바꾸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아주 분명한 것은 그것이 도리이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러냐? 너는 그 문제를 잘못 제기하였는데, 사람들을 유인하여 도리 속으로 이끌어 사람들에게 너의 그 도리에 근거해 생각하게 하고, 상상하게 하고, 문제를 고려하게 하고, 그 단락의 말씀을 보게 했기 때문이다. 너의 그 도리상의 관점으로 그 말씀을 본다면, 사람들은 아무리 보아도 그 단락의 말씀에서 한 가지 문제만 보게 될 뿐 다른 방면의 문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사람들을 이끌어 모두 진리를 경력할 줄 모르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할 줄 모르게 하며, 도리만 갖출 줄 알게 하고 도리만 논의할 줄 알게 할 뿐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기에 입으로 말하는 것은 다 듣기 좋은 도리이고 맞는 도리이지만 실제가 없고 행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런 인솔자는 정말 사람에게 큰 해를 입힌다!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가장 큰 금기는 무엇이냐?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 이 인솔자들은 늘 남다르고 남보다 한 수 위가 되려고 색다른 수작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재주가 도대체 얼마나 큰지 보여 주려고 하면서도 오히려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늘 솜씨를 자랑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교만방자한 본성의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은 “제가 이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아주 기뻐하시고 아주 좋아하실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하나님께 보여 드려 깜짝 기쁨을 드릴 것입니다.”라고 한다. 그 기쁨은 문제될 것 없지만 결국은 네가 도태되는 것이다! 일시적인 충동으로 내키는 대로 해서는 안 된다. 결과를 고려하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그때에 가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행정을 거스려 도태된다면, 너는 할 말이 없게 된다. 너의 마음가짐이 어떻든, 일부러 한 것이든 아니든,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하나님을 거스르기 쉽고 하나님의 행정을 범하기 쉽다. 이것은 사람마다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행정을 범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것이 매우 엄중하다면, 하나님 편에서는 네가 고의적인지 아닌지를 보지 않는다. 이것은 네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길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발걸음을 크게 내디디려고 하고, 큰일을 하려고 하고, 큰소리치려고 하고, 큰 사역을 하려고 하고, 대단한 책을 내려고 하며, 또한 대집회를 열려고 하고, 큰 인솔자가 되려고 한다. 너에게 늘 큰 야심이 있으면 큰 행정을 범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은 오히려 빨리 죽게 된다.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솔직하지 않고 경건하지 않고 신중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행정을 범하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행정을 거스려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어떤 이유가 있든지 보지 않고, 너의 속마음도 보지 않는다. 그럼 너희가 말해 보거라, 그것은 하나님이 이치대로 하지 않는 것이냐? 인지상정에 어긋나는 것이냐? 아니다. 왜 아니라고 하느냐? 사람은 귀머거리도, 바보도, 소경도 아니어서 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거스르는데, 또 무슨 이치를 따질 나위가 있겠느냐? 너에게 더 이상 속셈이 없어도 거스르기만 하면 그때에 가서 반드시 멸망될 것이고, 반드시 징벌받게 될 것이다. 이런 일까지 너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느냐? 다른 사람이 칼을 들고 억지로 강요해서 하나님의 행정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런 일은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너의 목에 칼을 대고 “너희의 하나님을 욕해 봐. 욕하면 돈도 얼마 주고 죽이지 않겠다.”라고 강요한다면, 아마 그런 상황에서는 네가 죽을까 봐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있을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그 내포된 뜻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징벌하는 것도 사람의 *정형과 배경에 근거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 거스르게 된다면, 이것은 한 가지 정형이다. 만일 알면서도 일부러 거스른다면, 그것은 또 다른 정형이다. 하나님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누가 여전히 거스른다면 징벌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각 단계 역사에서 모두 자신의 성품을 일부 발표하는데, 사람은 다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오랫동안 역사했으니 그에게 어떤 성품이 있는지,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말을 하면 쉽게 하나님을 거스르게 되는지를 사람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또 행정에서 규정한, 사람이 마땅히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되는지도 알고 있지 않느냐? 진리 방면의 일, 원칙 방면의 일에서 사람이 어떤 일은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아직 거기까지 경력하지 못하여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에 관한 일은 규정된 범위 내에 있는 것이고, 규례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별로 인식할 필요 없이 그저 글자의 뜻에 따라 하면 된다. 이것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니냐? 네가 건성건성 하면서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당연히 징벌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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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