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편 하나님나라시대의 행정에 관해 말하다

우선 무엇을 행정이라고 하는지 말해 보자. 행정에 대한 정의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행정이라는 말을 들으면, ‘행정? 이건 어떤 의미일까? 행정은 법률인가? 규정인가? 제도인가? 아니면 가법(家法) 같은 건가? 도대체 어떤 것일까?’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행정에 대해 모른다. 행정은 계명일까? 어떤 사람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행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늘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행정이 있어요.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은 행정으로 징벌하시고, 행정으로 규제하실 거예요.’라는 말을 하면서 ‘행정’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있지만, 사실 행정의 실질적인 함의는 모르고 있다. 그럼 행정은 도대체 무엇일까? 행정은 바로 사람의 본성과 사람의 패괴 성정에 초점을 맞춰 만든 사람의 행위를 규제하는 말이다. 행정은 법률이 아니고 율법도 아니며, 더욱이 세상의 어떤 헌법과도 같지 않다. 행정은 하나님이 사람의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사람에게 정해 준 범위인 것이다. 행정의 각 조목 내용은 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어떻게 피조물이 되고, 어떻게 사람이 되고,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지와 관련된다. 행정의 내용은 이렇게 많은 것과 관련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은 역사하실 수 있어서 사람을 징벌할 수도 있고, 각 사람에게 보응을 내릴 수도 있고, 또 진리로 각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시는데, 왜 꼭 행정을 사용해야 하는 걸까?’라고 한다. 진리는 사람의 생명 진입에 관한 것이고, 사람의 패괴 성정으로 나타나는 세부적인 정형 방면에 관한 것이다. 행정은 명문으로 규정된 것이다. 어떤 정형이든,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 하나님 집에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만약 사람이 행정에서 규정한 대로, 행정에서 말한 대로 하지 못하면, 제명될 것이다. 사람이 행정에서 규정한 것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기에 혐오받아 버림받을 대상이다. 사실 행정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최소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경배하고, 제사를 드리고, 안식일을 지키고, 또한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과 규정을 따른 것과 같은 것이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역사하면서 아주 많은 말씀을 하셨다. 물론 많은 율법도 세우셨다. 그런 율법에는 당연히 사람이 해야 할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때에 사람이 당연히 지켜야 했던 것에는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해야 하는지, 어떻게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바치고 헌금해야 하는지 등등의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것을 율법이라고 했다. 은혜시대에 와서는 계명이라고 칭했다.

우리도 예전에는 그런 것을 말했었고, 새 시대의 계명이 있기도 했었다. 그런 계명도 행정의 일부에 속한다. 단지 지금에 와서는 행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전의 그 시대에서는 계명이라고 불렀지만, 그 시대의 계명을 가져다가 지금의 행정으로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시대와 시대에서 사람이 해야 할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계명이 있고, 시대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시대가 서로 다르고 사역의 필요가 서로 다름에 따라 그때 그때에 바뀌는 것이다. 마치 율법시대에 있었던 어떤 율법들은 지금에 가져오면 맞지 않는 것과 같다, 물론 어떤 것들은 잘 맞는다. 그리고 예수가 그때 알려 주었던 그 여러 가지 계명은 지금도 많은 것이 다 맞다. 개별적으로 몇 가지가 맞지 않을 뿐이다. 그럼 어떤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말라, 범죄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혹은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이런 것들이 안 맞을 수 있겠어요?”라고 하는데, 내가 말하는 것은 개별적인 몇 가지들이다. “부모를 공경하라”와 같은 것은 상황을 봐야 한다. 잘못 이해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예전 것은 다 폐하고 개별적인 몇 가지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이렇게 전달하지 말라. 이렇게 전달한다면 잘못 전달한 것이고, 방해한 것이다. 그러면 마귀에 속하는 것이다! “예전에 ‘담배를 피우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 ‘범죄하지 말라’고 한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폐했다고 말씀하셨어요.” 다 폐하셨으니까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나쁜 짓도 해야겠네 그럼! 최소한 성도의 품위로 갖춰야 할 그 몇 가지는 다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과 계명 혹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행정은 다 시대에 근거하고, 그 시대의 정형, 그 당시의 배경, 그 당시의 역사와 사람에게 필요한 것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말을 추가하게 되는 것은 사람에게 그만큼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서도 말을 더 하고 규정을 더 추가하여 사람을 규제하는 것은 사람에게 기준을 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떤 것은 하고 어떤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다. 예수의 그때를 보아라, 예수는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많은 율법을 폐하였다. 물론 폐한 율법들은 이미 그때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하는 역사에 맞지 않고, 그 당시의 환경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폐했던 것이다. 그럼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것들을 더욱 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신약의 계명도 지금, 곧 새로운 시대에 오면 어떤 것은 폐하고 어떤 것은 계속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역사하는 환경이 다르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더 높아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릇되어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신다고 하셨으면서 왜 또 많은 율법을 폐하시고, 많은 율법을 도태시키신 거죠? 예수님이 하신 것은 왜 율법에 어긋나는 거예요?”라고 한다. 사실 예수는 율법을 폐하기도 하였고 완전케 하기도 하였다. 완전케 했다는 것은 뭘 말할까? 어떤 것은 이어졌다는 말이다. 즉, 이전의 율법보다 더 높아졌고, 이어지는 그 기초에서 한 단계 더 높인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어울리지 않는 것은 폐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역을 함에 있어 규례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에 와서는 어떨까? 그런 율법이나 계명들은 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폐한 것은 일부분이다. 너희가 그릇되다면 잘못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폐했다고 하셨어요!”, 그럼 예전의 계명을 다 폐해 버렸느냐? 그것은 다 쓸모없는 것이냐? 그러면 사람이 그릇된 것이다. 지금은 지금 사람들의 정형에 따른 행정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자꾸 행정을 반포합니까?”라고 한다. 사람이 이렇게 패괴되었는데 행정을 반포하지 않으면 되겠느냐? 안 되겠지? ‘왜 자꾸 행정을 반포하시는 거지? 한 번 반포하시면 됐지, 사람이 알면 되는 거잖아! 그대로 행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계속 반포하는 거지?’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람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꾸 변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바로 그런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진공 속에서 살고 성결하게 되어 의를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패괴 성정이 있기 때문에 늘 패괴 성정으로 살고, 늘 패괴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항상 거기에 알맞은 행정을 가지고 사람의 행위를 규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정말 행정을 범하는 사람이 생기면 출교시키거나 규제하거나 장기간 쓰지 않거나 도태시키는 것이다. 결과는 여러 가지이다. 그 시대에 행정이 있었으면, 당연히 지금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나라시대의 행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가 몇 가지 말할 테니 적어 놓거라.

첫째, 사람은 망자존대해서는 안 되고, 자신을 높여서는 안 되며,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하나님을 크게 높여야 한다.

이것에 대해 설명을 좀 해야겠다. “망자존대해서는 안 되고, 자신을 높여서는 안 되며,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하나님을 크게 높여야 한다.” 이 네 마디는 사실 한 가지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말하는 어투상에서 사람의 각도에 서야 하고, 사람의 위치에 서서 말해야 하며, 자화자찬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그 지역의 교회를 잘 이끌고 있고, 그 지역은 자신에게 속한다고, 자신은 하나님이 써 주고 특별히 잘 대해 주는 사람이라고 자화자찬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식사도 하시고, 이야기도 주고 받고, 같이 일도 하셨어.”라고 자랑하지 말라. 그런 말은 해도 소용없다. 그럼 사람은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말할 때 해야 하는 말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네가 만약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할지 말할 줄 모른다면, 이런 생명의 공급을 할 줄 모른다면,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을 해부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모든 사람에게 너 자신이 한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변명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즉, 네 속에 있는 속셈이나 생각을 다 폭로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낮추고, 즉 자신의 속셈을 내려놓고, 자신의 속셈을 해부하고, 자신의 더러운 것을 드러내고, 자신을 폭로할 수 있다면, 네가 제 위치에 제대로 섰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남을 훈계할 줄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 설교할 줄만 알았지, 사람들과 교통하고 정상적으로 교제할 줄은 모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저 남을 훈계할 줄밖에 모르고, 높은 위치에 서서 다른 사람에게 설교하고 높은 것으로 가르칠 줄밖에 모른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강연하는 것밖에 모르고, 보고서 작성하는 것밖에 모른다. 말할 때는 항상 다른 사람의 정형을 상대로 할 줄밖에 모르고 자기 자신은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먼저 자기에게 칼 대는 법은 전혀 모르는데, 자신의 패괴 성정을 분석하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의 패괴 성정을 해부하여 사람들에게 인식시킨다. 그런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할까? 왜 그런 식으로 설교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패괴 성정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높고, 다른 사람보다 안목이 있고, 다른 사람보다 패괴된 정도가 얕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분석하고 훈계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패괴 성정을 폭로하지도, 분석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속셈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합당치 않게 한 것만 훈계하는 것은 자신을 대단하다고 하고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왜 어떤 사람은 무턱대고 트집 잡아 소란을 피우는 것일까? 왜 어느 지역의 교회를 이끌고 사람들 몇몇을 이끌라고 맡겨 주면 함부로 그 사람들을 훈계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망령되게 행하며, 자기 생각대로만 하는 것일까? 왜 그런 말을 할 때 그 뒤에 따르는 결과를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자기의 신분을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는 것일까?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너에게 인솔하라고 맡겨 주긴 했지만 네가 자신의 신분, 자신의 지위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이끌라고 맡겨 준 것은 그저 너를 괜찮게 봤기 때문인 것이지, 결코 네가 다른 사람보다 높다는 말이 아니다. 사실 너도 그 사람들과 똑같은 것이다. 심지어는 네가 그 사람들보다 더 나쁘다. 왜 이유 없이 트집을 잡아 다른 사람을 훈계하고, 멋대로 꾸짖고 멋대로 통제하는 것일까? 왜 자신이 잘못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그것은 너 같은 부류의 사람이 위치를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너는 사람의 위치에 서서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높은 자리에 앉아서 사역을 했다는 것이다. 네가 분명 잘못했으면서도 왜 다른 사람이 너의 말을 듣게 하는 것일까? 너에게 권병(역주: 권세)이 있어서? 네가 가장 지고한 자라서? 네가 진리여서? 너의 말이 맞으면 들어도 된다. 그건 괜찮다. 그건 경우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지만 틀렸음에도 왜 너의 말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거기에서 할 사역이 있는데도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가지 말라고 말리면 그는 바로 훈계한다. “왜 못 가게 해요?”, “여기에서 할 일이 있는데 왜 가려고 하세요?”, “그래도 안 들을래요.”라며 사역을 지체할지언정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마음먹은 대로 한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대단하다고 하는 자가 아니냐? 자신을 높이는 자가 아니냐? 그런 자들은 사람들을 진리 실행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말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왜 사람들에게 그따위 허튼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냐? 마귀 성정을 가지고 왜 다른 사람으로 너에게 순복하게 하는 것이냐? 이런 사람은 자신을 크다고 하는 자가 아니냐? 자신을 높이는 자가 아니냐? 이런 자들이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경배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자는 사람들로 자신에게 순복하게 하는 것이다. 사역을 얼마나 많이 지체시키든, 얼마나 큰 일을 지체시키든 자기 말에 따라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자의 본성은 귀신의 본성이 아니냐? 나는 그런 자들을 사람의 탈을 쓴 귀신이라고 한다.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 속에 있는 것은 전부 귀신인 것이다. 즉, 귀신의 본성이다. 귀신의 말을 하고, 귀신의 짓거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행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한 것이다. 이것은 알 만하겠지? 이것이 첫째이다. 너희가 일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처신할 때, 즉 너희 삶 속에서 모든 일을 할 때 너희는 마땅히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겨서는 안 되고 자신을 높여서는 안 되며 마땅히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잘 생각해 보아라. 마이동풍처럼 하지 말고 많이 묵상해 보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사역에 유익이 되는 일을 하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증거와 하나님의 사역을 수호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 집의 이익에 관련되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관련되고, 하나님의 이름에 관련되는 일이면, 너는 반드시 옹호해야 하고, 반드시 나서서 말해야 한다. 사람마다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다. 이것은 네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알았겠지?

셋째, 하나님 집의 돈과 물질, 모든 재산은 다 사람이 마땅히 바쳐야 하는 제물이다. 그 제물은 제사장과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향유할 수 없다. 사람이 바친 제물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고, 하나님은 그 제물을 제사장에게만 향유하게 해 주었기에 다른 사람은 조금이라도 누릴 자격이나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드린 제물(돈과 물질을 포함하여 향유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께 바친 것이지 사람에게 바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런 것을 누려서는 안 된다. 만일 사람이 그런 것을 누린다면 제물을 훔쳐 먹는 것이다. 무릇 그런 자는 다 유다이다. 왜냐하면 유다는 주를 팔았을 뿐만 아니라 돈주머니에서 돈을 훔쳐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일에 대해 내가 설명을 해야겠다. 내가 이 말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후안무치하여 뻔뻔스럽게 먹을 것이다! 이 말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지 않으냐? 너희는 잘 모르고 있지 않으냐? 아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냐? 제사장은 절대로 자그마하게 사람을 이끈다거나 교회를 이끈다거나, 어느 지역의 인솔자 같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너희 같은 경우는 잠시 써 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너희는 불합격이 되면 바로 버릴 수 있는 존재이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너를 써 준다고 네가 이미 정해져 영원히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지 말라. 그런 망상은 하지 말라. 그것은 사치한 욕망에 속한다. 제사장은 권리가 있고 자격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자격은 누가 준 것이냐? 그 권리는 누가 준 것이냐? 당연히 하나님이 준 것이다. 하나님을 직접 섬길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자격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는데, 제물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럼 지금은 어떤 사람이 제사장일까? 예전에는 제사장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럼 너희는 그런 사람일까? 너희는 제사장이 아니다! 내가 제사장이라는 말을 꺼냈다고, ‘음, 어때? 나잖아!’라고 생각하지 말라. 너는 아니다. 너는 그 정도까지 되지 못했다! 제사장이라고 하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 제물을 향유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도 그런 자격이 없다. 만약 네가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네가 한 말이다. 나는 네가 향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너에게 주는 것이 아니니 너는 향유해서는 안 된다.

넷째, 사람에게는 패괴 성정이 있고 더욱이 감정이 있으므로, 남녀 단 둘이 협력하여 섬기는 것은 일률적으로 금한다. 발견하면 누구든지 일률적으로 출교시켜야 한다.

어떤 형제는 꼭 자매와 교통하려고 한다. 그것도 단 둘만 마음을 열고 교통하겠다고 하면서 그 자매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런 자는 얼마나 나쁘냐! 어떤 자매를 보면, 자매들과는 교통하지 않는다. 자매에게는 전혀 마음을 열지 않으면서 형제만 찾아 교통하고 형제들에게 가서 교통한다. 이건 또 어떤 사람일까? 자매 중에는 너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까? 아무도 교통해 주지 않아서 그럴까? 다 너를 하찮게 보고, 마음이 맞지 않아서 그럴까? 맞는 사람은 형제밖에 없다는 말이냐? 내가 볼 때는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치근덕거린다. 그런 것은 다 의지로 절제해야지 아무렇게나 자신을 방종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패괴 성정이 있기 때문에 항상 단속을 받아야 한다. 단속이 없다면 사람은 심하게 방탕해진다. 항상 너를 단속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항상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되면, 사람의 행위는 많이 좋아질 수 있다.

다섯째, 하나님을 논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함부로 논단하지 말라.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사람이 해야 하는 말을 하며, 범위에서 벗어나지 말고, 선을 넘지 말라. 자신의 입과 혀를 경계하고 자신의 발걸음을 조심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도록 하라.

여섯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자신의 직책을 이행하고,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바쳐야 할 몫을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집에 남아 있을 자격이 없다.

여섯째는 사람의 본분과 관련된다. 교회 사역에 네가 필요하다면 너는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한다. 네가 이전에 생명이 어떻든, 자신이 어떻게 추구했든, 너의 소질이 어느 정도가 되든, 인성이 어떻든, 교회에서 네가 해야 한다고 하면 너는 해야 한다. 목이 떨어진다고 해도 해야 한다. 하지 않겠다면 꺼지면 된다. 하나님 집에서는 공밥 먹는 사람을 먹여 살리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믿거나 말거나 쫓아내면 된다! 이건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사람은 행위상에서라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이 있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동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소질도 있고, 인성도 좋고, 사역도 잘하고, 얼렁뚱땅하지도 않는 사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너무 높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최소한 행실상에서라도, 행위상에서라도 통과되어야 한다. 만약 이런 것도 하지 못하겠다면 하나님 집에 머물지 말고 빨리 나가라. 지금 많은 곳에는 일꾼이 가든, 누가 가든 접대할 집이 없다. 그런 곳은 일단 제쳐 놓아라. 접대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자는 앞으로 책을 주지 않으면 된다. 그런 사역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책을 주지 말라. 여러 번 어떻게 말을 해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빨리 그만두게 하고 공밥을 먹지 못하게 하라. 여기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게 하지 말라. 보기만 해도 역겹다.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지 말라! 네가 믿고 싶으면 믿어라. 믿기 싫다면 부탁하지도 않는다. 누가 부탁한 적이 있느냐? 스스로 원한 것이다! 그만한 일도 못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느냐? 의인은 못 되어도 세상의 좋은 사람이라도 되면 좋지 않겠느냐? 좋은 일도 하고, 좋은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좋은 사람조차도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폐품에 불과하다. 하나님 집에는 폐품이 필요 없다. 여기는 폐품을 수거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 폐품은 쓸모가 없다. 쓸모없는 인간은 차 버릴 것이다. 다 차 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너희는 아무렇게 막 해서도 안 된다. 만약 너희가 그렇게 마구 하는 것을 발견하면, 나는 일단 너희부터 출교시키고, 너희부터 차 버릴 것이다.

일곱째, 사역이나 교회의 사무적인 일에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 외에 모든 것은 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말을 따르고 조금이라도 어겨서는 안 된다. 절대적으로 청종하고, 옳고 그름을 분석하지 말라. 옳든 그르든 너와 무관하니 절대적으로 순복하기만 하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하든, 너는 다 들어야 한다. 그가 어떻게 배정해 주면 너는 그대로 하고, 무엇을 하라고 하면 그것을 하면 된다. “하나님은 알고 계세요? 저는 하나님께 물어봐야겠어요.”라고 말하지 말라. 물어볼 필요가 없다.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알겠지? 이것은 너희가 속으로 잘 알고 있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여덟째,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해야지, 사람을 높이거나 우러러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첫 순위에 두고, 자신이 우러러보는 사람을 두 번째 순위에 두고, 자신을 세 번째 순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 마음속에 어떤 사람의 자리도 두지 말라. 특히, 자신이 숭상하는 자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지 말고 평등하게 보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잘 취하고, 아부를 아주 잘한다. 내가 누구를 잘 대해 주고, 누구를 칭찬해 주고, 누구를 자주 부르고, 누구와 늘 얘기를 나누면, 그 사람에게 가서 알랑거린다. 그러고 난 후 머릿속에는 어떤 관념과 어떤 규칙이 생긴다. ‘응, 지금 하나님 다음에는 어느 어느 형제야, 그 형제 다음에는 어느 어느 자매이고, 그 자매 다음은 또 어느 어느 형제야, 그 형제 다음엔 또 어느 어느 자매야, 음!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은 무조건 보장해 주실 거야, 이 사람들을 이미 정해 놓으셨어!’ 내가 너에게 알려 주겠다. 그 사람들은 영원히 정해진 것이 아니다. 너희 이 사람들은 영원히 정해진 것이 아니다. 지금 누가 높아졌다고 해서 영원히 그 사람을 쓸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라, 언제 그 사람을 차 버릴지도 모른다. 숭상하지 말라! 머릿속으로 계급을 나누지 말라. ‘하나님이 가장 크시고, 두 번째는 누구, 세 번째는 누구, 네 번째는 누구’, 이런 것을 나눠서 무슨 쓸모가 있느냐? 그러면 조정에서 황제가 가장 크고, 재상이 두 번째고, 누구누구가 세 번째이고, 누구누구가 네 번째인 것과 같지 않으냐? 첫째, 둘째라는 이런 차이는 없다! 너희 머릿속에는 계급의 차이가 있지 않으냐? 사실, 너희는 다 평등하다. ‘흥, 난 저 사람보다 먼저 올라 왔어’, ‘흥, 난 저 사람보다 먼저 올라온 데다가 지금까지 내려간 적도 없어’, 이런 것들을 비교하지 말라! 혹시 네가 다른 사람에 비해 소질이 좀 뛰어날 수는 있겠지만, 너도 책망을 적게 받은 것은 아니다. 너도 좋은 놈이 아니다. 네가 눈물을 적게 흘리었더냐? 책망을 적게 받았었더냐? 훈계를 적게 받았었더냐? 왜 너를 훈계했겠느냐? 너는 좋은 놈이 아니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계급을 나누지 말라. 일단 계급을 나누면, 네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네가 숭상하고 있는 것, 네가 순복하고 있는 것에 사람의 것이 많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홉째, 교회의 사역을 위해 생각하고 자신의 육체의 앞날은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바로바로 결단을 내리고,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사역에 쏟아야 한다. 마땅히 하나님의 사역을 주된 것으로 하고 자신의 삶은 부차적인 것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갖춰야 할 품위이다.

열째, 믿지 않는 가족(자녀, 남편, 아내 혹은 형제나 부모 등등)을 억지로 끌어당기지 말라. 하나님의 집에는 사람이 부족하지 않으니 쓸데없는 사람으로 숫자를 채울 필요가 없다. 믿고 싶어 하는 자가 아니라면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지 말라. 이 조항은 모든 사람을 상대로 말하는 것이니 너희는 마땅히 서로 제약하고, 서로 감독하고, 서로 일깨워 주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거스려서는 안 된다. 설사 믿지 않는 가족이 마지못해 교회에 들어왔다고 해도 책을 내 주지도, 새 이름을 지어 주지도 말라. 그런 자는 하나님 집의 사람이 아니니 어떤 상황이든 이 부류는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마귀가 교회에 침입해 누를 끼친다면, 그 자를 데려온 너를 출교시키거나 제한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일에서는 모든 이에게 시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함부로 하지 말고, 개인적으로 앙갚음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이다. 이것은 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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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③망자존대(妄自尊大): 망령되게 함부로 잘난 체하다.

④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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