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21편 진리를 추구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네가 어떤 일에 대해 경력(역주: 체험)이 없으면, 그런 일을 처리할 때 틀림없이 처리할 줄 모르고, 잘 처리하지 못한다. 설령 네가 일을 처리하고 ‘나는 거의 다 말했어. 많이 말했으니 그 사람도 많이 들었을 거야. 아주 많이 말했으니까. 나는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진리로 이 문제를 교통했다고 생각해.’라고 여길지라도, 사실 그것은 모두 도리이고 도리로 해결한 것이다. 왜 도리라고 하겠느냐? 네가 한 그 말이 듣기에는 마디마디 다 맞는 것 같지만 그 문제에 초점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 게다가 그 문제의 근본 원인, 즉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어떤 폐단이 있는지, 왜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그가 어떤 정형인지 파악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파헤치지 못한다면 너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너는 반드시 병의 근원을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때에는 사람이 배가 아픈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다. 어떤 때는 한기가 든 것이고, 어떤 때는 찬 것을 먹었기 때문이고, 어떤 때는 염증이 있는 것이고, 어떤 때는 경련을 일으킨 것에 속한다. 이것을 확실히 가려내지 못하면 안 된다. 똑같이 다 진통제를 먹으면 어떤 것은 한동안 진통이 되지만 어떤 것은 먹어도 아예 효과가 없다. 그럼 사람을 인솔하는 것은 어떠냐, 그것은 의사가 사람의 병을 치료해 주는 것과 같다. 그러려면 병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네가 그 근원과 그 정형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무슨 문제인지, 그가 한 말에서 어떤 것들이 유로(역주: 흘러나옴)되었는지 발견하지 못한다면, 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네가 스스로 자신이 말한 것이 다 진리라고 여기지만 실은 모두 도리이고 표면의 것이다. 예컨대, 아래에서 어떤 사람들이 본분을 하던 중에 실수를 저지르니 네가 “본분은요, 아주 충성스럽게 해야지요. 본분에서는요, 우린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해요. 본분을 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 본분을 대충대충 해서는 안 되죠!”라고 말하는데,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사실, 그 사람은 본분을 하는 이 일에 대해 다 알고 있고, 대충대충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정형이 있는데, 잘 가려내야 한다. 어쩌면 그 사람의 소질이 낮아 잘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바보같은 사람이어서 온전케 될 수가 없고 아무리 가르쳐도 배우지 못하는 이런 상황일 수도 있다. 다른 한 가지 상황은 아마 집 생각이 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밖에 또 직업이나 결혼이나 얽매임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하나는 ‘내가 본분을 잘하지 못해 집으로 돌려보내면 어쩌지?’라는 뒷근심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이 있다면, 네가 말한 그 몇 마디는 소용없다. “우린 대충대충 하면 안 돼요. 우린 하나님께 충성해야 해요. 우리의 속마음도 옳아야지요. 본분을 하면서 조건을 따져서는 안 되죠. 하나님께서 우릴 어떻게 대하시든 모두 순복해야 해요!”라는 이런 것을 말해서는 소용없다! 게다가 하나님을 믿는 관점까지도 말한다. “우리가 본분을 하는 건 뭘 위한 것이에요?”, 이런 말은 더욱 소용없다. 마구 끼워 맞춰서는 안 된다! 너희는 지금 글귀와 도리만 조금 알고는 일상생활 속에서 일부 문제를 접하게 된다. 일단 문제에 접하게 되면 “이건 어떤 문제죠? 어, 지금은 해야 할 본분이 많고 복음도 많이 전해야 하니 본분에 대해 말해 봅시다!”라고 하고, 좀 더 깊게는 “하나님을 믿는 관점을 말해 봅시다!”라고 한다. 다 말한 다음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는데, 어떻게 되었겠느냐? 나중에 또 그런 잘못을 범하게 된다. 사실 그 말은 전혀 효과가 없다. 그것은 네가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전에 어떤 사람이 음치이다 보니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듣기 좋지 않았다. 그 사람은 “저는 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할까요?”라고 하였다. 그 후에 다른 사람이 그에게 “이건 무슨 문제인가요?”라고 물으니 “소질이 부족해요!”라는 말을 했다. 그것이 어디 소질이 부족한 것이냐. 그것은 천성적으로 그런 세포가 없는 것이기에 너는 소질이 부족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냐? 음치는 천성적인 것이기에 그건 바뀔 수 없는 것인데, 그가 나중에 ‘소질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취급했으니 그것은 잘못 말한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으냐? 아무렇게나 맞추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지금 도리와 글귀를 좀 갖추고는 그런 것을 도대체 어디에 맞춰야 할지, 어디에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중에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에 진리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지만 “에휴, 저에겐 진리가 적지 않은데, 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을까요? 왜 문제를 보기만 하면 두려울까요?”라고 한다. 그것은 네가 아직도 진리를 모르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음을 증명한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지식 수준이 아주 높아요. 대학도 몇 년이나 다녔어요. 철학과 정치와 법률도 적지 않게 알고 있고 언어적인 측면도 많이 알고 있죠. 하나님의 말씀도 적지 않게 보았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많아요. 그런데 문제를 다 해결하고 나면 왜 제가 진리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도리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할까요?”라고 한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냐? 모두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는 무엇을 진리라고 하는지 모른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모두 도리는 말할 줄 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순수해야 한다든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되게 본분을 해야 한다든가,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든가, 자신을 알아야 한다든가 하는 이런 말들을 늘 언급하긴 하지만 깨닫지는 못한다. 아직 그런 진리의 진정한 함의는 참으로 깨닫지 못했다. 너는 글자 겉면만 알고 있을 뿐 영적인 뜻과 내포된 뜻은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너희에게 진리가 없고, 인식이 조금 있어도 너무 얕다고 하는 것이다. 경력이 좀 있는 오래된 신자들은 얕은 것을 조금 깨달아도 표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적용할 줄도 모른다. 새 신자들은 그저 도리만 조금 말할 줄 알거나, 복음을 전해 사람은 얻지만 진리의 변두리에도 접근하지 못한다. 너희는 지식이 좀 있고 문화가 좀 있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니 도리나 글귀를 깨달은 것을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 여기지 말라. 오래된 신자 중 소질이 좋고 비교적 영이 통하는 어떤 사람들이 진리를 조금 체험했어도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인식은 아마 열 마디 중에 두 마디가 진실한 인식이고, 그 나머지는 다 도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은 지금 괜찮아 어디에 가서 설교하든 하루나 며칠은 설교할 수 있고, 늘 할 말이 있어 계속 설교할 수 있다고 여긴다. 설교를 한 다음 또 정리하여 책으로 인쇄해 나누어 주려고 하고, 또한 ‘명인 전기’를 써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 먹고 마시면서 다 같이 유익을 얻게 하려고 한다. 사람은 진리에 관한 일에서는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기껏해야 글귀만 안다. 그러다가 좀 총명하고 기억력이 있어 나중에 어느 정도 갖추게 되면 어디에 가든 하나님의 역사라든가, 도성육신(역주: 성육신)의 의의라든가, 도성육신의 심오한 비밀이라든가, 하나님 역사의 방식과 절차라든가 하는 이런 일들을 말하게 된다. 이런 것들을 자주 말할 수 있게 되면 자신에게 진리가 있다고 느끼고 자신이 풍족하다고 느끼는데, 이러면 얼마나 이지가 없느냐! 사람이 모두 진리를 깨닫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지금 사람은 도리는 조금 알고 있지만 모두 자기 자신을 모르며 더욱이 이지도 없다. 도리를 조금 알고는 진리가 있고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번이나 보았고 어떤 말씀은 기억도 하고 마음에도 새겨 두었어. 나는 어디에 가든 말하기 시작하기만 하면 며칠은 말할 수 있어.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든 밝히 연달아 말할 수 있어.’라고 여긴다. 사실 너는 다 깨닫지도 못했다. 왜 깨닫지 못했다고 말하겠느냐? 한 방면으로는 너희가 문제를 해결할 줄 모르는데, 근원을 찾지 못하고 실질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어떤 문제, 어떤 일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고 애매모호하여 진리와 연관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있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무엇을 믿음이라고 하는지, 어떤 사람이라야 믿음이 있다고 하는지, 어떤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이 진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바른 것인지, 어떤 태도를 갖고 있으면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바르지 않은 것인지,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하는 이런 일들을 너희는 생각해 보았느냐? 너희들은 다 진리의 ‘거인’ 같다. 하지만 너희는 어떤 것을 믿음이라고 하는지, 이 일을 생각해 보았느냐? 너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일들이 믿지 않는 표현인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참으로 믿음을 갖추게 되면 어떤 표현들이 있게 되는지, 불신자에게는 또 어떤 표현들이 있는지, 네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일 중에 어떤 일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 어떤 일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관련이 없는지, 너희는 밝히 말할 수 있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는 함의를 진정 깨달았느냐? 어떤 사람이라야 참된 믿음이 있고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이 일을 알고 있느냐? 피조물이 하나님을 믿는 이 함의를 깨달았느냐?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관련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 하나님을 믿는 건 좋은 일이고 바른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건 장사나 사업을 하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건 사람의 삶에서 가장 큰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지금 하나님을 위해 본분하는 것은 실제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건 구원받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라는 이런 말은 너희가 다 했겠지? 너희는 이런 말들을 참으로 깨달았느냐? 너 역시 이런 말들을 참으로 깨닫지 못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믿는 것도 아니며, 단지 사람의 모양이 있기 위해 믿는 것도 아니다. 사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만 믿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진리, 길, 생명이라는 것만 믿어서도 안 된다. 또한 네가 하나님을 시인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이 만물의 주재자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세계 만유를 창조하신 분이고, 유일무이하신 분이고, 지고지상하신 분임을 믿는 것만도 아니다. 너에게 이런 것만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온 몸과 마음, 즉 네 자신이 마땅히 하나님을 따라야 하고, 마땅히 하나님이 너를 사용하도록 해야 하며, 하나님이 너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위해 효력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다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정하고 택한 이 사람들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온 인류가 다 마땅히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고, 하나님을 따라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질의 문제를 접한 것이다. 네가 자꾸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겠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건 영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건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라고 말한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부수적인 일처럼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믿는 것 같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져야 할 관점이 아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하나의 진리에서 그 진리에 내포된 뜻이 무엇인지, 그 방면의 진리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고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를 찾고 구하고 묵상하고 탐구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것이다. 지금 마땅히 갖춰야 할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해, 그것이 어느 방면의 진리든지 너희는 다 글귀 도리만 알고 겉면의 현상만 알 뿐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였다. 그것은 네가 경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본분을 하는 이 방면에 얼마나 많은 진리가 포함되어 있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도 아주 많은 진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자신을 알려고 해도 많은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도성육신의 의의와 비밀, 여기에도 깨달아야 할 진리가 아주 많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고 어떻게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는지, 사람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지, 마땅히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등등, 여기에도 아주 많은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너희는 이런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한 문제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묵상해야 하겠느냐? 어떤 방면에든 다 아주 깊은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경력해야 한다. 만약 경력하지 않고 늘 그런 글귀들만 말하고, 늘 깊이 묵상하지 않고 경력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글귀에서 살게 되므로 변화될 리가 없다. 너희 인솔자들은 평신도가 너희에게 몇 마디 말하면 ‘흥!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에 대해 말하는데. 너는 설교를 몇 편이나 할 수 있어? 말은 얼마나 할 수 있어? 사람은 얼마나 인솔할 수 있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라고 할 것이다. 마치 너희는 그런 자격이 있는 것 같다. 늘 그렇게 나아간다면 곤란한데, 한동안 섬기다가 착오가 생기게 된다. 너희 모든 사람들도 해당되는데, 너희에게 작은 지역이나 구역을 맡기고 6개월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비뚠 길을 가게 될 것이고, 1년간 계속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면 너는 그 사람들을 세상으로 이끌어 가고 치우친 데로 이끌어 갈 것이며, 2년간 계속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면 너는 그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끌어갈 것이다. 이것은 무슨 까닭이냐? 너희는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느냐? 너희가 말해 봐라, 너희가 이럴 수 있는지 없는지? 너희의 인식은 겨우 한동안만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 네가 오랫동안 늘 그런 것들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분별해 낼 수 있어 너에게 깊은 것이 없고 있는 것은 너무 얕다고 말한다. 너는 별수 없이 도리만 말해 사람을 미혹시키게 된다. 네가 늘 그렇게 하면, 형제자매들도 모두 너의 방식에 따라, 너의 절차에 따라, 너의 그 형식대로 하나님을 믿고 경력하면서 그런 글귀 도리들을 실행하게 된다. 네가 그렇게 설교하다 보면 나중에는 모두가 너를 본보기로 삼게 된다. 네가 사람들을 인솔하면서 도리를 말하면, 형제자매들도 따라서 도리를 배우게 된다. 그렇게 가다 보면 사람의 잘못된 것들이 나오고, 형제자매들까지 다 너를 따라가게 될 것인데, 그러면 너는 ‘이제는 권력이 있게 되었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내 말을 들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구나.’라고 여기게 된다. 사람 안에 있는 이 배반으로 인해 부지중에 하나님을 배척하여 실권을 잃게 하고는 자기 나름대로 어떤 종파, 어떤 교파를 형성하게 된다. 각종각파가 어떻게 생겼겠느냐? 바로 이렇게 생긴 것이다. 각 교파의 지도자들을 보면, 그들은 다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모두 성경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자신의 상상에 따라 해석하며, 모두 은사와 지식으로 사역한다. 만약 그가 아무것도 말해 낼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를 따를 수 있겠느냐? 그는 어쨌든 지식이 좀 있어 도리를 좀 말할 줄 알고, 사람을 구슬릴 줄 알고, 수단도 좀 쓰기에 사람을 자기 앞으로 끌어가고, 사람을 다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사람들이 명의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은 그를 따르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참 도를 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그분께 물어봐야 돼요.” 봐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다른 사람을 거쳐야 하니 이러면 큰일이 아니겠느냐? 그럼 인솔자는 뭐가 되었느냐? 바리새인이 되고, 거짓 목자가 되고, 적그리스도가 되고, 사람이 참 도를 받아들이는 데의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니냐? 이 부류 사람들이 바로 바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바울이 쓴 편지는 거의 2천년이 되었는데, 은혜시대 내내 전해져 내려왔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말을 먹고 마시고, 그의 말을 준칙으로 삼았다. 고난을 받는다든지,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든지, 최후의 의의 면류관이라든지…… 사람은 모두 그가 한 말에 따라, 도리에 근거해 하나님을 믿어 왔다. 사람은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깨달을 수 있었을까? 그때에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디까지나 소수였다. 예수에 대해 아는 사람은 더욱 적었는데, 몇몇 제자들마저도 예수에 대해 진실로 알지 못하였다. 사람이 성경에서 빛을 조금 보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고, 깨우침이 조금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안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사람은 모두 교만자대하고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며 도리를 조금 알면 제각각 파벌을 만들어 많은 교파를 형성하였는데,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지하게 따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예수 이름 안에 있는 각종각파에는 다 성령 역사가 어느 정도 있었다. 악령이 역사하는 장소가 아니기만 하면 다 성령이 역사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이전에는 사람을 따랐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지 못했든, 이 단계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와야 한다. 만약 이 단계에서, 이 단계 역사를 경력한 기초에서 또 사람을 따른다면, 너는 용서받을 수 없고, 너의 결말은 바울의 결말과 같게 된다. 내가 처음에 바울의 예를 들고 베드로의 예를 들어 말했는데, 무엇 때문이겠느냐? 그것은 두 갈래 길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베드로의 길을 가지 않으면 바울의 길을 가게 된다. 이 두 갈래 길밖에 없다. 네가 아래에서 따르는 자든 아니면 인솔자든 다 마찬가지이다. 네가 베드로의 길을 가지 못하면 바울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데, 갈 수 있는 다른 세 번째 길은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진리 깨닫기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지 못한다면, 마지막에는 모두 바울과 같은 끝장을 보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알기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추구하지 않고, 약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과 도리를 갖추는 것만 구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그 일이 비록 진리에 부합되지 않을지라도 별로 나쁜 일은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일은 비록 진리대로 하지 않았지만 저는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진리대로 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진리대로 하지 않았으면 도리대로, 사람의 뜻대로 한 것이고,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사람의 뜻에서 온 것인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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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③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