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17편 성육신에 대한 인식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저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뵌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야 되나요?”라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 등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말씀은 사람을 통해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발표한 것인데, 하나님 자신이 친히 발표한 것이고,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의 말씀을 발표하고 마음의 소리를 발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 마음의 말이라고 할까? 바로 마음 깊은 곳에서 발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하고, 하나님의 뜻과 생각, 인류에 대한 사랑과 구원, 인류를 향한 기대를 발표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어떤 말씀은 엄하고, 어떤 말씀은 부드럽고, 어떤 말씀은 자상하고, 어떤 말씀은 인지상정에 맞지 않게 폭로한 것도 있다. 네가 폭로한 말씀만 본다면 하나님이 매우 엄하다고 생각될 것이고, 부드러운 부분만 본다면 하나님은 권력이 그리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너는 단장취의(斷章取義)해서는 안 된다. 너는 여러 각도에서 봐야 한다. 하나님이 부드럽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각도에서 말씀할 때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고, 엄한 각도에서 말씀할 때면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은 더럽기 그지없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자격도 없다. 그러기에 지금 하나님 앞으로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방식과 역사하는 의의에서 하나님의 지혜로운 면을 보게 되는데, 사람은 하나님과 접촉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런 것을 볼 수 있다. 정말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접촉할 때에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도리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면 하나님과 접촉해도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이 방면의 진리는 가장 심오한 비밀이어서 측량하기 쉽지 않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에 관한 하나님의 이 방면의 모든 말씀을 다 총괄하여 모든 방면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다 같이 이런 부분을 교통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기도하고 많이 묵상하고 교통하면 혹시 성령이 깨우쳐 주어 알게 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하나님과 접촉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경력(역주: 체험)하면서 조금씩 모색하여 진입함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 자신을 아는 이 방면의 진리가 가장 깊다. 하지만 사람이 이 방면의 진리에 대해 찾고 구하기를 중요시한다면, 마음이 환해지고 편해질 것이며 나아갈 길이 생길 것이다. 이 방면의 진리를 무엇에 비유하자면 사람의 심장과 같다. 이 방면의 진리가 없다면 힘이 나지 않을 것이고, 이 방면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 있으면 있을수록 힘이 커질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성육신이란 무엇입니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서 성육신이라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서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럼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도 하나님이신가요? 혹은 일부분만 말씀하셨어도 하나님이신가요?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으로 결정한 건가요? 단지 이런 말씀으로만 결정한 건가요?”라고 한다. 이것은 관건적인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 말씀은 다 성령이 지시한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데, 성령이 지시한 후에 떠나가 역사하지 않으면 이 육신은 그저 평범하고 정상적인 육신이기에 하나님으로 불릴 수 없다고 한다. 인자로 불리는 것은 괜찮지만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오해하고 있다. 그럼 이렇게 오해하는 근본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말씀이 육신 되는 이 일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하고, 깊이 파보지 않아 여기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얕기 때문이고, 겉면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였기에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지 않고 조금만 했다면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일까? 정말 조금만 말했는데 그것이 신성의 발표라면 그분은 하나님일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특별히 의의가 있는데, 사람의 마음을 다 정복하고 한 무리 사람들을 얻었다. 만약 이 사역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면 그가 하나님 자신임을 알 수 있겠느냐? 예전에 사역을 절반 하였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보기에 이 사역은 또 바뀔 것 같아. 성육신은 어떻게 된 일인지 확실히 단언하기 어려워!’ 이것은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 일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아니냐? 네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을 의심한다면, 이는 네가 성육신을 믿지 않고, 그가 하나님임을 믿지 않으며, 그에게 하나님의 실질이 있음을 믿지 않고, 그가 한 말씀이 하나님의 발표임을 믿지 않으며, 더욱이 그가 한 말씀이 바로 그 자신의 성품을 나타낸 것이고 그의 실질을 발표한 것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떤 사람들은 당시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의 역사 방식은 또 바뀔 것 같아. 성육신은 어떻게 된 일인지 확실히 단언하기 어려워. 또 다른 설이 있을지도 몰라.”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할 때 어떤 어조를 띠고 있는지, 계속 진리를 말씀하는지, 새 말씀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본다. ‘만약 내가 엑스레이를 갖고 있다면 그분의 배 속에 여전히 진리가 있는지 좀 볼 거야. 진리가 없고 그저 사람이라면 얼른 도망가고 믿지 않겠어. 그분에게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영이 그분을 도와주고 그분에게 지시하여 말씀하게 하시는지 좀 볼 거야.’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의심하고 마음속으로 일삼아 늘 생각한다. 왜 이런 정형이 있겠느냐? 모두 말씀이 육신 된 이 일에 대해 꿰뚫어 보지 못했고, 밝히 인식하지 못했으며,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단지 이 사람 몸에 하나님의 영이 있다는 것만 시인할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성품이 있고,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하나님의 전부가 있으며, 그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꿰뚫어 보지 못하고 어떤 일에서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보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실질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보게 되는 것은 단지 그런 말씀과 실제적인 역사일 뿐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일부 사역만 했고, 하나님이 성육신 되어 이런 사역밖에 할 수 없다고 여긴다. 성육신 하나님이 현재 발표한 것은 이런 사역이지만 그에게 신성(神性)의 모든 실질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아요. 만약 하나님의 영이 친히 역사하신다면 인식하기 쉬울 거예요. 영이 역사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권병(역주: 권세)을 직접 보게 될 테고, 그때 하나님을 알아가면 쉬울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성립되느냐? 나는 지금 너희에게 이렇게 묻겠다. “성육신 하나님을 알아가기 쉬우냐, 아니면 영을 알아가기 쉬우냐? 만약 성육신 하나님이 한 사역이 여호와가 한 사역만큼 많다면 어느 분에 대해 알기 쉽겠느냐?” 다 알기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길이 있다면 다 알기 쉽고, 영이 통하지 않는다면 다 알기 쉽지 않다. 성육신 하나님이 처음에 역사하고 말씀할 때도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지 않느냐? 모두 오해하지 않았느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한 것이 어떤 일인지 몰랐는데, 다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았지? 사람들에게 다 관념이 생기지 않았느냐? 이는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도 영을 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느냐? 왜냐하면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바로 영의 발표이기 때문이다. 단지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내포된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가 사역하는 목적이 도대체 무엇이고 의의가 무엇인지, 그의 어떤 방면의 성품을 대표하는지, 그가 왜 그렇게 유로(역주: 흘러나옴)했는지를 사람은 알지 못하겠지? 네가 알지 못한다면 인식하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영이 와서 사역하여 많은 말씀을 하고 간다면 사람은 그저 따르고 실행할 뿐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느냐? 사람은 그런 말씀에서 여호와의 성품을 알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영은 알기 쉬워요. 영이 오셔서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을 지니고 역사하시는데 어찌 알기 쉽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 네가 겉면의 형상은 알겠지만 하나님의 실질을 알 수 있느냐? 지금 너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 접촉하기 쉽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실질과 성품을 발표할 때 사람이 알기 쉽겠느냐? 그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말을 하면 사람은 받아들이기 쉽겠느냐? 지금 사람은 모두 “성육신 하나님을 알아가기는 쉽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이 나중에 형상을 바꾸신다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정말 쉬울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모든 죄책을 다 성육신 하나님에게 씌우는데 사실 그런 것이냐? 영이 와도 너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영이 사역을 한다면 사람에게 말씀하기만 한 후 떠나는데, 그렇게 많이 해석하지 않고 사람과 정상적으로 함께 지내는 생활이 없기에 사람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없다. 성육신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은 사람에게 유익한 점이 아주 많다.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진리가 더욱 실제적이어서 사람에게 실제의 하나님 자신을 보게 한다. 하지만 성육신의 실질과 영의 실질을 알아가는 것은 다 마찬가지로 어렵고 똑같이 알기 쉽지 않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어떤 것이냐? 사람이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성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그의 공의와 긍휼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으며, 그가 무엇을 증오하는지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꼭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할 수 없는데, 구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네가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깨닫거나 알 수 있고, 그의 마음도 알고 있다면 진실로 그를 믿고, 진실로 그에게 순복하고, 진실로 그를 사랑하고 경배할 수 있다. 네가 만약 이런 것을 알지 못한다면 너는 추종자이고 덩달아 뛰어다니고 대세를 따르는 자이니 참된 순복과 참된 경배는 말할 나위도 없다. 참된 경배는 어떻게 생기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보았을 때 참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을 자가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자가 없으며, 하나님을 보기만 해도 두려워할 것이다. 지금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역사하는 기간에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소시에 대해 인식이 있을수록 더 귀히 여기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 생기게 된다. 흔히 하나님에 대해 모를수록 덜렁거리면서 하나님을 사람으로 대하게 된다.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정말로 하나님을 보게 된다면 두려워 벌벌 떨게 될 것이다. 왜 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말했겠느냐? 그는 비록 그리 깊은 인식은 없었지만 하나님이 두려운 분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그리스도의 실질을 모르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께 진실로 경배한다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겉모습이 평범하고 정상인 것만 보았지 그의 실질에 대한 인식은 없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보통 사람으로 여겨 경만한 태도로 대할 수 있고, 기만할 수 있으며, 대적하고 거역하고 논단할 수 있고, 독선적일 수 있다. 또한 그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그의 육신을 마음대로 대하며, 관념이 생기고 모독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그리스도의 실질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의 주요 방면이고, 실제의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진입하고 해야 할 것이다.

─────────

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