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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16편 실제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는 세 부류가 있다

하나님 집에는 하나님에 대한 각기 다른 믿음 방식이 세 부류 존재하고 있다. 이 몇 가지 믿음 방식을 다 분별하고, 자신의 믿음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첫 번째, 가장 좋은 부류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범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폭로, 책망, 훈계도 다 수용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며, 하나님에 대해 사랑이 있고 충성이 있고 경배가 있으며, 진리를 실행하고자 한다. 이런 믿음은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성정이 변화되어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두 번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일부분 있고 의심도 일부분 있다. 하나님이 하는 일이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속으로 거듭 가늠해(원문: 對照對照) 본다. ‘하나님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며 항상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품기 때문에 일부분만 순복하고 일부분은 여전히 순복하지 못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순복하지만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일에는 관념이 생겨 속으로 저촉하면서 실행하지 않는다. 이것이 세 가지 중의 한 가지 방식이다. 지금 사람들의 분량을 보면 다수가 이런 정형에 놓여 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만 순복하고,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일에는 순복하지 못하며,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 밖에, 하나님에 대해 어떤 때는 일시적인 기분에 끌려 좀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게 되면 그제야 가서 본분을 한다. 혹은 간혹 교통에서 매우 감동받아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느낄 때라야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조금 생긴다. 평소에는 그저 대세를 따라 하나님을 믿을 뿐,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헤아림도 없고 더욱이 진실한 순복과 경배도 없다. 이런 방식으로 믿는 사람은 간혹 하나님을 조금 사랑하고 헤아리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다. 그것도 성령이 특별히 감동을 주거나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형이 좋지 않을 때나 누가 미혹할 때, 연약하고 소극적이 될 때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고 사라진다. 그렇지만 본인은 영문을 몰라 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싶어도 힘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는 일이 아주 평범하고 아주 정상인 것을 보면 의심하지는 않더라도 열정이 없어진다. 지금 이 단계의 분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두 번째 부류의 믿음이다.

세 번째, 성육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다. 성육신 하나님이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만 보이고 사람들과 별다른 구별이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하나님을 지위가 있는 평범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는데, 듣기 좋은 말을 좀 따라 하고 따라 믿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 아니다. 간혹 사소한 일을 가지고 말하면 그래도 따라 말할 수도 있지만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다. 사랑은 육체적으로 헤아려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에서, 본분에서 진정한 순복이 있고, 하나님을 헤아리고 경외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경력이 있는 사람만 놓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무턱대고 아무나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열심을 보고 함부로 “○○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요! 종교인 ○○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허튼소리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작은 일을 만나면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순복하겠지만, 진리에 관련되는 큰 일을 만나면 순복하기는커녕 관념만 생기고 하나님을 의심할 수도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도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늘 ‘하나님이 맞을까? 내가 보기엔 왜 하나님 같지 않은 거지? 이런 말씀을 하신 것도 성령께서 지시하신 거겠지! 성령이 지시하셔서 이런 말씀을 하고 이런 일들을 하셨을 거야……’라고 하면서 의심을 품는다. 이런 사람의 믿음이 제일 가련하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복, 하나님에 대한 사랑, 헤아림, 경외가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것을 근거로 결정하는지를 알려면 주로 몇 방면을 보아야 한다.

첫째,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에 근거한다. 네가 진리를 사랑한다면 더 높은 곳을 향해 추구할 것이고, 또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이 한 말씀과 사역을 알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를 알고, 하나님의 성품 알기를 중시할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주로 이것에 근거한다. 네가 하나님을 알수록 더욱 하나님에 대해 확신하게 되고, 하나님을 알수록 변함없이 하나님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기초 위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 사람이 성육신한 하나님을 아는지에 따라 결정하는데, 이것이 가장 관건이다. 실제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다 근본적으로 할 수 없는 빈말이다.

셋째, 사람의 인성이 좋은지 나쁜지에 근거한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인성이 참 좋지만 무골호인이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그 사람이 성육신한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도 성립되지 않는다. 호의로 부지중에 방해하는 일을 저지르게 될 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을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열심이 좀 있고, 호의가 좀 있고, 좋은 일을 좀 하는 것은 단지 겉면의 좋은 행위이고 겉면의 현상일 뿐, 사람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너는 네가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지, 왜 하나님을 믿는지, 사람들을 보고 덩달아 따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분이 하나님임을 보게 되어 믿는 것인지, 어떤 진리에 근거해 그분을 믿고 사랑한다고 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은 근거 없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걸핏하면 자신은 하나님을 참되게 믿고, 하나님을 참되게 사랑한다고 하지만 누가 진지하게 진리를 교통하자고 하면 말을 하지 못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를 겁니다. 저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말씀하시든 다 믿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떻게 일하시든 저는 관념을 가지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아는 것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정할 수 있을까? 실제 경력이 없으면 안 된다. 너는 성육신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밖에, 하나님의 실질은 무엇인지, 사람은 어떤 일에서 하나님께 쉽게 순복하지 못하는지, 어떤 일에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지, 너는 얼마나 순복했는지, 또한 순복할 수 없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하나님에 대한 너의 관념은 어떻게 해결받았는지,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은 어떻게 점점 깊어졌는지에 대한 이런 경력이 없다면, 너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오니 매우 기뻐하면서 친절하게 맞이하다가 하나님이 떠나면 바로 울었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뜻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그저 그 사람에게 성실한 마음이 있음을 뜻할 뿐, 그런 행동과 태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진실한 믿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헌금을 조금 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 혹은 너에게 물 한 잔 달라고 했을 때 네가 얼른 따라 주는 것이 진실한 순복일까? 또 어떤 사람들은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바로 믿었어요!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셨음을 믿었어요! 하나님께서 평범한 육신을 취하셨다는 것을 보고 저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데, 이것을 진실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는 하나님과 교제해 본 적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과 함께 지낸 적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의 성품을 아느냐? 하나님이 어떤 것을 사랑하는지 알고 있느냐? 너는 어떤 일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되는지 아느냐? 너는 자신에게 있는 어떤 패괴가 하나님의 증오를 사게 되는지 알고 있느냐?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어떤 사람들에게 나타났는지(원문: 實行) 아느냐?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혐오하는지 아느냐? 너에게 존재하는 어떤 문제들을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느냐? 이런 것을 다 모른다면 네가 하나님을 너무나 모른다는 것을 설명한다. 너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자신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너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있다고 해서는 안 되고, 자신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은 더욱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어떤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으며, 어떤 일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였고 진리대로 실행하였으며, 어떤 일에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한 가지 일에서 하나님께 순복하였다고 해서 네가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인 것일까?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단지 겉면의 자그마한 일을 가지고 누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겉면의 좋은 행위가 조금 있거나 하나님에 대해 특별히 마음을 썼다면, 그저 너를 마음이 착하다고 할 수 있을 뿐, 너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라고 하지는 못한다.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다 인성이 있는 기초에서 되는 것이다. 인성이 없으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말할 것도 못 된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자신이 도대체 어떤 정형에 있는지 비춰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그나마 괜찮다고 착각하는데, 그것은 실제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극단적으로 빠져 자신은 무엇을 해도 안 되기 때문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소극적인 태도에 속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데, 사람은 극좌주의가 아니면 극우주의가 된다. 이런 것은 다 사람의 현실 정형이고, 사람이 아직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분명히 알도록 전력으로 추구하여 실제에 들어가야만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