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목차

제12편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최대한 구원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예정에 신경 쓰지 말고 추구에 신경 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고, 하나님이 예정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의 표현과 행위에 따라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에게 공의가 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 데에는 원칙이 하나 있다. 즉, 사람의 표현에 근거하고 또 행위에 근거하여 최종적으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보지 못하면서 늘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여 스스로 비관적이고 실망하는 상황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자업자득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네가 정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확정한 것일까? 네가 항상 ‘하나님의 예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규정하고 부인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겠느냐! 너는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고 더욱이 하나님의 6천년 경영 사역의 고심도 모르고 있다! 너는 자포자기하고, 하나님을 추측하고 의심하며, 자신이 효력자일까 봐 매우 두려워하고, ‘나 같은 사람은 별로인데, 왜 날 들어 이 사역을 하게 하시지? 하나님은 날 이용하시는 게 아닐까? 날 효력시키고, 효력을 다 하면 토사구팽하는 거 아닐까?’라며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한다면 하나님을 집권자들과 같은 부류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너는 늘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을 아주 나쁘게 생각하고 아주 비열하게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고백은 전혀 믿지 않고, 자발적으로 효력자가 되기를 추구하고 자발적으로 효력자의 길로 나아가며, 성정 변화는 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리 실행을 위해 고난받지도 않으면서 마지막에는 책임을 다 하나님에게 떠넘겨 하나님이 너를 예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 성의가 없다고 한다. 이것은 무슨 문제일까? 네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본분에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충성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이런 행실로는 효력자가 될 자격조차도 안 되는데 어찌 하나님과 조건을 따질 자격이 있겠느냐? 하나님께 공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하나님을 믿느냐? 항상 하나님이 친히 “네가 하나님 나라의 자민(子民)인 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라고 말해 주기를 바라는데, 그래야 하나님 집을 위해 힘을 바치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해 주지 않으면 영원히 진실한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을 이런 사람은 얼마나 패역한 사람이냐! 내가 보기에, 많은 사람들은 전혀 성정 변화를 중시하지 않고, 진리 실행은 더욱 중시하지 않고 있다. 그저 좋은 귀숙을 얻을 수 있는지, 하나님이 도대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자신은 자민으로 예정된 사람이 맞는지 등등, 이런 관심사를 여기저기에서 알아보는 것만 중시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하나님의 집에 남아 있겠느냐? 이제 나는 정중하게 너희에게 알리겠다. “설령 어떤 사람이 예정해 놓은 사람일지라도 그가 진리대로 실행하지 못하면, 그의 최종 결말은 여전히 도태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화비하는 자들, 전력을 다해 진리를 실행하는 자들은 설령 사람이 보기에 그들이 살아남는 자로 예정돼 있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공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들의 귀숙은 예정받았다고는 하나 충성한 적이 없는 자들보다 더 좋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는 믿겠느냐? 네가 이런 말들을 믿지 못하고 계속 거기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면, 나는 너를 절대 살아남지 못할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너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예정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표현과 행위에 따라 사람의 결말을 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예정은 단지 객관적으로 역할을 조금 할 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너희는 깨달았느냐?

2.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는 사람의 죄를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난 본성이 좋지 않으니 그대로 가자!”라고 말한다. 네가 그렇다고 육체를 배반하면 안 되느냐? 너는 포부가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 아니냐? 너희는 날마다 어떻게 기도하느냐? “육체야, 나오너라! 나오는 대로 가자.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셨으니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기도하느냐? 아니다! 그런데 너는 왜 하나님과 협력하지 않느냐? 어떤 사람은 과오가 좀 있으면 ‘하나님께 격살되지 않을까?’라고 추측한다. 하나님이 이번에 온 것은 사람을 격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대한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가 잘못이 없겠느냐? 만일 다 격살한다면 그것을 구원이라고 하겠느냐? 어떤 과오는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고, 어떤 과오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에서는 네가 인식하면 변화될 수 있는데도 하나님은 네가 변화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너를 격살할까?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구원하겠느냐? 그런 것이 아니다! 네가 스스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든 패역 본성이 나온 것이든 상관없다. 기억하여라. 다시 말하니 일이 지난 후에 빨리 각성하여라! 어떤 상황이 오든 향상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기에 구원할 사람을 함부로 격살할 리가 없다. 네가 어느 정도까지 변화될 수 있든, 설사 하나님이 마지막에 너를 격살하게 될지라도 하나님이 하는 것은 확실히 공의로운데, 때가 되면 그래도 네게 알게 할 것이다. 지금 너의 임무는 오로지 향상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오로지 변화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본분하는 것이다. 그러면 틀림이 없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그것은 확실히 공의로운 것이다. 너는 이것을 의심해서는 안 되고 근심할 필요도 없다. 네가 하나님의 공의를 지금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진심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정부 관원이나 마왕과 같지 않다! 너희가 이 방면에서 자세히 생각해 본다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행한 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고,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사역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사역인 이상, 사람이 유로(역주: 흘러나옴)하지 않는다면 사역할 수 없고 효과가 있을 수도 없다. 하지만 유로한 다음에도 네가 계속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러면 행정을 거스르게 되고, 하나님을 거스르게 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런 것에 대해 각각 차등 있게 보응할 것이고, 사람도 자신의 과오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어쩌다가 방탕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것을 명확하게 지적해 주고 거기에 책망과 훈계를 더해 주는데, 네가 좋은 방향으로 변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다. 이것이 변화되는 정상 과정이다. 구원 사역의 참뜻은 이런 과정에서 표현되는데, 이것이 핵심 포인트이다! 남녀 간의 경계 문제를 예로 들어 보면, 오늘 네가 마음이 흔들려 상대방의 손을 잡았다고 하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이건 망나니 짓이잖아? 죄를 짓는 거잖아? 남녀 경계가 분명치 않은 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거잖아? 내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라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 제가 또 죄를 지었습니다. 이 일은 진리에 맞지 않습니다. 저는 패괴된 육체를 증오합니다.”라고 하면서 기도하게 된다. 그런 다음, 심지(心志)를 세워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고 곁에 가지도 않는다. 이것은 변화된 것이 아니냐? 너에게 이런 변화가 있는데도 하나님이 네가 손 잡은 것을 죄로 정하실까? 만약 네가 손을 잡은 다음 그것을 석연치 않게 느끼면서도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지 않고, 그것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더욱이 자신을 증오하지 않고 자신을 경계하지 않고 심지를 세우지도 않는다면, 나중에는 손만 잡는 것이 아니라 껴안기까지 하게 될 것이다! 일이 점점 더 심각하게 발전되어, 너는 죄를 짓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너를 정죄할 것이다. 너는 몇 번이고 계속하면서 죄를 지어 구제 불능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도 어쩔 수 없어 패괴 성정을 조금 유로했지만 네가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정죄하지 않을 것이고 너는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맞지만 사람의 본성이 조금도 유로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너는 즉시 회개하고 변화되기를 중시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은 믿지 못해 하나님에 대해 항상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이런 사람은 언젠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전에 ‘지난날의 일은 다 탕감해 줄 것이니 장래로 과거를 대체하여라. 하나님의 도량은 한량없다.’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말에도 원칙이 있다. 네가 아무리 큰 죄를 범했다고 해도 하나님이 다 탕감해 준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에는 다 원칙이 있다.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기 전에 어떤 죄를 범했든지 먼저 들어오게 하고, 들어온 후 재범하는 자는 어떻게 처리하고, 또다시 범하는 자는 출교시켜야 한다’라는 행정이 있었다. 하나님은 역사하면서 언제나 사람에게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어 준다. 이것에서 이 사역이 정말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이 단계에서도 여전히 사함받지 못할 죄를 범한다면, 정말로 구제 불능이고 변화시킬 수가 없다. 하나님이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는 과정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자신을 과시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이 끊임없이 유로하고 변화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본성이니 실컷 다 드러내야지! 그런 후 다시 인식하고 다시 진리를 실행하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만약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있는 어려움이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되도록 그것을 피하고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간접적인 변화가 아니냐? 혹은, 어떤 때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식하고 배반할 수 있다. 이것도 구원받게 된 효과가 아니냐? 어떤 진리를 실행하든 거기에는 다 과정이 있다. 사람이 이제 막 실행하기 시작했을 때, 착오 없이 정확하고, 자신의 뜻과 뒤섞임이 조금도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일들은 여전히 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훈계와 책망의 과정을 거쳐 나중에는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좋은 방향으로 바뀐 것이고 변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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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②귀숙(歸宿):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 또는 결말, 처소, 본향을 뜻함.

③화비(花費): 몸과 마음, 시간, 노력, 물질 등을 바치다.

④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